현충일 추념사 속 김원봉 - 미래를 이끌 청소년들이 되짚어 봐야 할 독립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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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호국보훈

현충일 추념사 속 김원봉 - 미래를 이끌 청소년들이 되짚어 봐야 할 독립투사

by 깨알석사 2019. 6.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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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6월 6일, 제 64회를 맞는 현충일을 기점으로 우리나라 정치판은 또 한 번 난장판이 되었다. 국가 기념일이자 유일한 국가 추념일인 현충일의 추념식에서 대통령은 화합과 통합을 위해 독립투사 김원봉의 이야기를 추념사로 끄집어 냈는데 그것이 정치판에서는 동상이몽이 되면서 의도와 달리 정작 화합과 통합의 걸림돌이 되는 꼴이 되고 말았다. 

국민 화합과 민족의 대통합을 위해 조국에 헌신한 순국선열과 호국영령에 대한 발언이고 그 바탕 속에서 애국에는 정치적 사상, 정치적 이념이 필요치 않다는 논조로 대통령의 현충일 추념식 속의 추념사가 이루어졌다. 단순하게 보면 추념식의 대통령 추념사는 국민적 공분을 일으키거나 할 만한 민감한 문제가 없다. 일단 겉으로 드러난 표면적인 것들 말이다. 그러나 야당은 김원봉을 현충일 추념사에 언급한 건 적절하지 못했다고 말하고 또 그 자체가 자유주의를 무시하는 행동이라고 주장하며 청와대를 맹렬히 비난하고 있다. 국가 추념일에 국가 지도자인 대통령이 현충원에서 독립투사를 언급하며 추념사를 했는데 그것이 문제가 된다? 상식적으로 보면 현충일, 현충원에서 잊혀져 가는 독립투사 이야기를 한 것이고 이것은 문제가 될 수 없는 문제인데 오히려 이 날의 추념사는 여당과 야당 사이 또 하나의 분란과 혼란을 일으키며 다시 정치적 이념 논쟁을 낳는다. 

이런 논쟁과 정치적 싸움에 의아해 하는 분들이 있을 수 있다. 또 이걸 말도 안되는 억지라고 생각할 수 있다. 현충일 추념사에서 잊혀진 우리의 독립투사 중 한 분을 이야기 했을 뿐인데 그게 정치적 이념 논쟁을 불러 일으킬 만한 호들갑 떨 정도냐며 의문을 가질 수 있다. 어떤 부분에서는 문재인 대통령이 무슨 말을 하든, 누굴 갖다 붙이든 대통령을 못 마땅해 하는 야당에게는 다 공격 대상이 되고 꼬투리가 될 수 있다고 여겨 야당의 쓸데없는 트집 잡기로 보일 수 있다. 

하지만 모든 건 "타이밍 (때)"이라는 것이 있는 법, 바른 말도 시기, 때가 있고 싫은 말도 때와 장소에 따라 구분해야 하는 것인데 이 날의 추념사 속 김원봉은 사실 이 날의 등장 인물로 적당하다고 할 수 없다. 물론 김원봉이라는 한 인물에 대한 독립 투쟁사를 보면 그 가치와 열의는 그 어떤 독립 운동가 못지 않고 안중근, 안창호, 유관순, 윤봉길, 김구 등 대중이 잘 알고 있는 독립 운동가와 격을 같이 할 수 있는 분으로 상대적으로 소외되고 잘 알려지지 않아 그 분에 대한 언급 자체가 잊혀진 독립투사에 대한 상기와 독립 정신을 키우는 계기가 될 수는 있지만 그가 독립유공자라는 공훈자로서의 지위는 갖지 못하였다는 사실은 명백한 사실이기 때문에 사실 부적절한 추념사가 될 수 밖에 없다. 단지 잊혀지거나 소외되어 독립유공자로 인정 받지 못한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지위를 갖지 못한 근거, 이유가 중요하기 때문이다.

이념과 상관 없이 현충일에 대한 순국선열과 호국영령에 대한 추념사, 혹은 그 추념사에 등장하는 내용의 등장 인물에 대해 역사적 접근은 단순하지 않다. 한 사람에 대한 가치 판단, 재해석, 재판단이 중심이 될 수 없다. 현충일은 개인의 추념일도 아니고 현충원 역시 개인 묘지가 아니기에 국가 기념일의 국립 묘지에서는 이것과 연관된 분들의 이야기를 할 때 항상 상대적인 방향성을 따질 수 밖에 없는데 그래서 순국선열과 호국영령은 다르게 분류하지만 늘 같이 붙여 말하게 된다. 순국선열과 호국영령을 함께 기리는 국가적인 단일 행사에서는 두 영웅들에게 폐가 되지 않도록 해야 하는데 호국영령이라는 천사 안에 친일파라는 악마의 탈을 쓴 거짓 영령들과 순국선열이라는 천사 안에 공산당 빨갱이 악마 탈을 쓴 거짓 선열들을 가려 구분해야만 진정한 순국선열과 호국영령의 추념이 되기 때문에 이것이 엮이거나 뒤 섞인 경우에는 그 영웅들의 순수함과 열의가 순식간에 사라지기 때문에 대표성을 띄는 선열과 영령을 말할 때는 늘 조심해야 하는 것이 우리나라 보훈 역사다.

순국선열과 호국영령에 대한 기본적인 관심이 없다면 대통령의 추념사는 별 문제 없이 넘어갈 수 있다. 또 순국선열 따로, 호국영령 따로 나누어 보는 경우라면 역시 문제가 될 수 없다. 그러나 어떤 인물이 그 영역을 넘나드는 경우라면 그렇게 쉽게 단정할 수 없다. 분명 그 어떤 사람이 순국선열이라 부를 수 있는 위치, 지위를 갖는다 해도 그것이 다른 쪽, 호국영령의 대치점에 있는 인물이라면 그 사람은 진정한 순국선열이라 말하기 어렵다. 과거의 행적이 순국선열의 지위를 갖는다 해도 이후의 행적이 호국영령들이 그토록 원망했던 "적"이라면 순국선열과 호국영령을 동시에 붙여 추모하는 우리나라에서는 그 대상이 선열과 영령의 두 관계를 선이 아닌 악의 관계로 이어나간 경우 예우가 아닌 비난을 하게 되어 있고 이건 양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상식"에 의해 결정하게 되는 단순 논리의 결과가 된다. 

중요한 건 우리나라 만의 특수성 때문에 기반한 것도 있지만 논리적으로, 상식적으로 순국선열과 호국영령은 뗄 수 없는 영웅들의 한 대명사이기 때문에 각각 포함되는 분도 있지만 둘 다 포함되는 분이 있을 수 있다. 각각 나뉘어 하나의 지위만 갖는 경우라면 거의 문제가 없지만 순국선열과 호국영령의 두 지위에서 서로 다른 양극 지위를 갖는 경우라면 그 사람은 "절대로" 국민의 영웅이 될 수 없다, 이건 진리고 상식이다. 좋은 놈과 나쁜 놈, 그리고 이상한 놈이 있는 것이 세상의 이치라면 이 경우는 나쁘면서 이상한 놈이기 때문이다.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 순국선열들을 싸잡아 공격하고 오히려 그들을 잡아 족치던 일제 앞잡이가 후에 호국영령의 지위를 갖는 경우 우리는 앞선 경우와 동일하게 판단할 수 밖에 없다. 아무리 후에 호국(나라를 지키다) 행위를 했다고 해도, 그 앞의 행동이 그 행위를 무효, 무력화 시킬 만한 행적을 가졌다면 진정한 영웅 대접을 할 수 없는데 국군 영웅 중 일제시대 활동이 논란이 되어 역사적 재평가를 받는 경우가 있는 것도 같은 선상이라 할 수 있다. 경찰이나 군인(국군) 중 일제 친일 행위를 한 자들이 분명 존재한다. 결국 후대에는 그 사람에 대한 평가를 이중적으로 바라볼 수 밖에 없다. 호국영령이 될 순 있어도 순국선열과 대치하는 경우이기 때문에 진정한 영웅이라 판단하지 않고 만일 맹목적으로 좋게 평가하는 경우 비판 내용을 반드시 같이 적시하여 후대가 스스로 판단할 수 있게 한다. 

예를 들어 박정희 대통령과 같은 경우 아무리 후대에서 한국전 (국군) 활동 및 대통령으로서 경제개발과 안보 확립에 큰 공을 세웠어도 그의 일본 육사 졸업과 만주군 복무, 독립군 잡는 일제 앞잡이 논란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것이다. 남로당 활동에서 전향서를 내고 공산군과 맞서 싸웠다 해도 마찬가지. 끝까지 족쇄가 될 수 밖에 없다. 그를 모두가 하나 같이 영웅, 또는 최고의 지도자로 추앙하지 않고 극단적으로 편이 나뉘어 비난하는 쪽과 추모하는 쪽으로 갈리는데 이처럼 역사적 평가에 있어 순국선열과 호국영령의 지위가 역으로 꼬인 경우, 또는 순국선열이 호국영령에게는 적이 되거나 반대로 호국영령의 적이 순국선열이 되는 자에 해당 한다면 그 사람은 절대로 국가 영웅이라는 타이틀을 완벽하게 가질 수 없다. 

참고로 박정희 전 대통령, 그가 현충원에 있는 건 "대통령"이라는 지위 때문이지 순국선열은 물론이오, 호국영령으로 묻힌 것이 아니라는 걸 알아야 하는데 궁극적으로 현충원 안장 대상에 대통령이 포함되기 때문에 대통령에서 탄핵 되지 않았다면 "민주주의"를 지향하는 국가에서는 그 부분은 당연히 따르는 것이 더 큰 민주주의 발전을 위해선 필요하기 때문에 대통령 지위를 유지한다면 그의 현충원 안장은 논쟁의 대상은 될 수 없다. 물론 더 발전된 사고 방식으로 보면 전직 대통령과 지도자로서의 지위, 그리고 경제 발전과 개발의 큰 공적이 상당히 큰 것이 사실이나 현충원이라는 성지가 국군 묘지(원래 설치 이유)로 계속 유지 되거나 순국선열 없이 호국영령만 있는 경우라면 앞으로도 상관이 없겠지만 현행 국립 묘지라는 것이 다른 나라와 다르게 우리는 순국선열도 함께 모신 성역으로 보기 때문에 논란이 될 만한 인물은 (대통령 포함) 대통령 지위로 현충원 안장 대상의 합리성이 있어도 중대한 흠결이 하나라도 있으면 제외토록 하는 것이 맞다. 궁극적으로 순국선열도 모시는 곳이 현충원이기 때문에 대통령이라 해도 그가 친일 행적이 있다면 현충원 밖으로 나가는 것이 맞다.

그런데 순국선열과 호국영령을 같이 모시는 우리 입장에서 그것의 반대 상황이 되는 예가 바로 "김원봉"이다. 그는 독립운동가로서 상당한 위치와 공적을 남긴 위대한 분이지만 그의 후에 공적은 호국영령의 반대점에 있는 분으로 호국영령이 왜 생겼고 그들이 왜 현충원에 묻혔는지를 다시 고민한다면 그의 업적은 퇴색 될 수 밖에 없고 퇴색되어야 하는 것이 맞다. 피난민들이 고통과 죽음의 사선을 넘나 드는 와중에 태극기를 들며 환영하던 그 영웅들이 쓸쓸히 현충원에 묻혔고 찾는 이도 이제는 드물어 외로이 묘비 만을 남긴 체 유치원 아이들의 작은 손에 유일하게 기대고 있는데 그가 만약 남한 정부, 혹은 남한 정부의 국군에서 대한인을 위해 다시금 싸웠다면 가장 우선시 해야 할 1순위 독립투사이지만 그것이 국군과 유엔군을 잡아 족치던 상대 적군의 수장 중 한 명으로 자리를 옮겼다면 그 사람은 북한에서 인정 받아야 할 위인이지 남한에서 인정 받아야 할 위인은 될 수 없다. 김원봉은 북한의 입장에서는 순국선열과 호국영령의 지위가 같은 선상에 놓여 참이 되지만 남한에서는 순국선열의 자리와 호국영령의 지위가 틀어진 경우이기 때문에 그는 남한에서는 변절이라는 심판대 앞에 놓여 끊임 없이 심판을 받는 대상이 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김원봉의 경우 북한 정권을 수립한 김일성의 경우와 완전 같은 경우인데 독립 운동가로서 그를 평가하는 것과 한국전 발발의 원흉으로 지목해 천하의 원수가 되는 두 가지 시선이 존재한다. 이런 두 가지 경우를 모두 가진 사람 중 대표적인 인물이 바로 김일성인데 남한에서는 그 누구도 김일성을 위대한 독립 운동가로 추앙하지 않는다. 그의 업적과 활동이 일제 시대에서는 영웅으로 대접 받는 자리였을지 몰라도 그의 후세 업적은 남북을 제대로 가른 원인이 되고 잔인한 수 많은 민족 비극을 낳은 악인으로 평가할 뿐이다. 심지어 그가 행한 일은 현재까지도 진행 중이며 수 많은 사람들이 여전히 고통 받고 있다. (군 징집으로 인한 사회적 손실과 이산가족 문제 등, 현대 사회에서도 지속되는 이념 전쟁 몰이까지) 김원봉을 독립유공자로 서훈하고 건국훈장을 수훈해야 한다면 김일성도 독립유공자로 예우하고 서훈 해야 하느냐고 자한당이 되묻는 것도 그래서다.

이처럼 때로는 영웅이었던 사람이 다른 행동으로 인해 영웅이 아닌 경우가 생기는데 이런 경우 논란의 대상이 되는 것이 당연하고 객관적인 사료와 평가가 압도적으로 높아도 주관적인 평가에서 진정한 "영웅"으로 대접 받기 어렵다면 그를 끝까지 영웅으로 예우하는 건 어렵다. 그런 논란이 당연시 되는 인물을 가장 먼저 대통령이 앞장 세운 꼴이니 다른 쪽에서는 난리가 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임시정부가 중국 충칭에서 좌우합작과 광복군 창설을 이뤘고, 김원봉 선생이 이끌던 조선의용대가 합류하며 통합된 광복군의 항쟁의지와 역량이 광복 후 국군 창설의 뿌리가 됐고, 한미동맹의 토대가 됐다 

위 내용은 논란의 불씨가 된 대통령의 추념사 내용이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건 국군 창설의 뿌리에 그가 있고 더 나아가 한미 동맹의 토대가 되는데 큰 역할을 하였다는 부분이다. 조금만 깊게 파고들면 현충원에 계신 호국영령들이 깜짝 놀라 무덤에서 일어날 수 있을 정도로 꽤 부적절한 표현이라는 걸 알 수 있다. 무엇보다 지금도 연평해전(서해교전), 연평도 포격 사건 등 현재까지도 많은 국군 장병이 희생을 당하고 있고 그 희생의 값어치가 훼손 당하고 있기 때문에 조금만 달리 보면 심각한 표현이 된다. 

다만 문장이라는 건 맥락 전체를 보아야 하기 때문에 이 문장이 나오기 전과 후를 봐야 하는데 여기서의 김원봉 선생의 조선의용대는 "합류"하였다고 하였기 때문에 당연히 본래의 줄기가 될 수 없다. 무엇보다 "통합된 광복군"이라고 충분히 설명을 뒷받침 한 뒤 그 통합 광복군이 국군 창설의 뿌리가 되었다고 설명하였기에 이건 우리가 알고 있는 광복군에 대한 설명이지 조선의용대의 뿌리를 찾는 이야기가 아니다. 

여러 의용대와 독립군이 통합하여 광복군이라는 임시정부의 정규군으로 발전된 이후 그것이 국군의 뿌리가 되었다는 건 당연히 정확한 워딩이고 확실한 표현이다. 그 자체까지 걸고 넘어가거나 대통령의 말을 부정하면 그게 문제다. 만약 통합된 "광복군"이 아닌 김원봉의 조선의용대가 국군의 사실상 뿌리이자 원조라고 했다면 크게 잘못된 추념사이고 문제가 될 수 밖에 없는 사실이지만 맥락 자체는 김원봉 선생의 조선의용대를 포함하여~ 나중에 통합된 광복군에 중심을 둔 이야기라 논란의 주어가 되지 않는다.

그러나 인생은 타이밍의 연속이라는 말처럼, 말과 행동도 그 때와 장소, 시기에 맞는 경우가 있는데 맥락 전체에서 보면 김원봉을 특정 지어 그것과 광복군을 연결하고 그 광복군의 국군 시초를 김원봉과 연결 지을 수 있는 각자의 재해석이 충분히 가능하기 때문에 완전히 무결한 추념사라고 하기는 어렵다. 조선의용대만 나와도 상관이 없겠지만 김원봉의 조선의용대가 되면 결국 이 두 줄의 문장은 김원봉이 주인공이 되는 글이고 김원봉에 대한 이야기가 될 수 밖에 없게 된다. 무엇보다 이것을 현충일에 현충원에서 호국영령들을 주변에 모시고 했다는 것이 가장 큰 결례이자 실수가 될 수 있다, 독립 투사 김원봉은 순국선열의 카테고리 입장에서만 보면 흠 잡을 곳 없는 우리의 영웅이고 그 이름을 거론 하는 것조차 기쁘게 받아 들이고 칭송해야 하지만 결과적으로 그의 후세 행적이 호국영령에게는 대척하는 지위를 갖기 때문에 현충일이 아닌 삼일절, 혹은 광복절, 순국선열의 날에 이 추념사를 했다면 그나마 이해해도 호국영령이 조금 더 대접 받는 현충일에서 이런 추념사를 한 것은 분명 부적절 할 수 밖에 없다는 지적이 충분히 나올 수 있다. 

삼일절, 광복절, 그리고 공휴일은 아니지만 법정 기념일(정부기념일)인 순국선열의 날 (11월 17일) 김원봉을 언급 했다면 이 세 날의 날은 모두 독립 운동과 관련되고 독립 운동에만 연관된 날이니 문제가 될 수 없지만 그것이 아닌 호국영령까지 모시는 현충일 만큼은 호국영령을 조금 더 예우하고 기억하는 날이기 때문에 조금 더 세심한 배려가 있었어야 한다. 6월 한 달을 "호국" 보훈의 달로 이름을 붙여 국가와 국민 모두가 기념하는 것 자체도 그래서다. 독립 운동과 관련한 날은 국경일이면서 여럿 날을 따로 기념하는데 반해 호국 관련 날은 현충일에 한정 되어 상대적으로 적다고 보는 사람도 있지만 실상 6월은 호국보훈의 달로 한 달 전체를 기념하고 추념하기 때문에 둘 다 소중하지 어디를 더 챙기고 어디를 소외하고 그런 건 없다. 

하지만 기념 하는 특정 일이 있고 없고 차이가 분명 존재할 수 밖에 없는데 삼일절, 광복절, 순국선열의 날과 달리 호국영령을 정식으로 모시는 날은 현충일이 유일하다. 국군의 날은 현역 군인과 예비역에 대한 것이 더 크고 호국영령에 대한 것 보다는 육/해/공/해병에 대한 국군 행사의 날로 인식을 하기 때문에 현충일에서의 호국영령 추념은 상당히 의미가 있다고 볼 수 있다. 외국의 인디펜더스 데이가 현충일이 아닌 메모리얼 데이가 현충일로 번역 되는 것도 그래서다. 우리나라 현충일은 다른 나라와 달리 인디펜더스 데이의 대상자와 메모리얼 데이의 대상자가 모두 합쳐진 경우로 그 의미가 더 남다를 수 밖에 없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충일은 메모리얼 데이의 대상자가 더 주인공이 되는 날이기 때문에 그 대상자들에 대한 부분에 있어 조금 더 세심한 측면이 있어야 한다.

대통령의 추념사에서 광복군과 국군, 한미동맹의 맥이 이어진 것도 결국 호국영령(희생 군인, 희생 경찰)에 대한 부분이 중요하기 때문에 나온 문장이다. 그 걸 김원봉과 연결 짓다 보니 뒤의 국군(호국영령)이 밀리는 워딩이 되었다. 문제는 이렇게 되면, 이런 식으로 워딩이 전개 되면 호국영령의 희생은 "개죽음" 밖에 안된다는 결론이 나올 수 밖에 없다. 야당이 들고 일어난 이유다. 물론 그 표현이 순국선열이 호국영령에 비해 더 중요하거나 우선시 되었다는 것도 아니다. 순국선열들의 광복군이 호국영령의 국군과 맥을 같이 하고 다르지 않기 때문에 연결되는 건 당연하고 그건 상당히 중요한 의미도 갖는다. 헌법 정신과 대한민국 민주주의 정신에도 이어지기 때문에 둘을 떼 놓고 이야기 할 수 없고 둘을 다르게 보고 말할 수도 없다.

중요한 건 현충원에 계신 희생 장병들의 전사, 순직 책임에 김원봉이 자유로울 수 없는 위치의 대상자라는 점이다. 이건 마치 김원봉 대신 김일성 이름을 넣고 김일성과 같은 사회주의 독립 운동가들이 있기에 오늘 날 우리가 있다고 한 것과 다름이 없어 당연히 듣는 희생 전몰장병 유족 입장에서는 이게 뭔 소리인가 싶은 생각이 들 수 밖에 없다. 그래서 불한당 같은 느낌의 자한당 세력이 트집 잡는 건 어제 오늘의 문제는 아니지만 이번 만큼은 자한당의 지적이 맞을 수 밖에 없고 옳은 비판이 될 수 밖에 없다. 꼬투리를 잡혀도 허무맹랑한 것에 잡힌 것이 아니라 분명 크게 잘못하고 실수한 것에 근거하기 때문에 자한당 입장에서는 더 크게 문제를 삼을 수 밖에 없는데 이런 식의 기조가 정부 스스로 계속 유지된다면 삼일절, 광복절도 의미가 퇴색 될 수 밖에 없고 또 다른 싸움판의 기회로 삼아 정치적으로 활용될 여지가 많다. 경축 혹은 추념해야 할 모든 자리가 이념 논쟁의 중심이 되는 것이다.

무엇보다 김원봉의 역사적 재평가는 학계 차원의 순수한 재해석이 아니라는 것이 무척 크다. 일례로 문재인 대통령이 대통령이 아니었을 때부터 김원봉을 재해석 해야 한다고 주장 했다. 새정치민주연합 대표 시절인 2015년 광복절에 사회주의 계열 독립 운동가를 재평가 해야 한다며 그 때 이미 김원봉을 언급했다. 이번 현충일이 있기 이전에도 다시금 김원봉에 대한 역사적 재평가를 보훈처가 먼저 나서게 되는데 이 과정 자체가 순수하다고 볼 수 없다. 국민 누구도 김원봉에 대한 역사적 재평가를 요구하지 않고 신경도 안 쓰는데 갑자기 김원봉이 이번 정권에 들어서면서 꼭지가 된다. 마치 무언가를 위해 있어야 할 하나의 브랜드가 필요한 것처럼 김원봉이 새 이념의 주입하는데 쓰이는 것이다. 오직 단 한 사람, 대통령만이 김원봉을 재해석 해야 한다고 쭉 주장한다. 그리고 되지도 않는 이유로 보훈처가 급 토론회를 개최하고 재평가를 유도한다. 삼일절 이후 보훈처 관련 뉴스는 김원봉 관련 뉴스가 더 많았고 그게 더 화제가 되었다. 삼일정, 현충일이 이렇다면 곧 이어 오는 광복절도 또 다른 논쟁에 휘말리거나 김원봉이 다시 또 등장할 수 밖에 없다.

특히 국가보훈처의 자문 기구에 지나지 않는 '국민 중심 보훈혁신위원회'는 마치 예상된 시나리오처럼 올 봄 김원봉을 독립유공자로 포상할 것을 권고하면서 일찍이 정치권의 싸움을 시동 걸었다. 권고라는 것이 효력이 없는 주관적인 입장 표명이기는 하지만 보훈 혁신위원회가 그렇게 나온다면 결국 여론에 따라 얼마든지 보훈처가 입장을 바꿀 수 있다는 걸 넌지시 던졌다고 볼 수 있는데 실제로 피우진 보훈처장은 김원봉의 서훈 가능 여부에 대해 지난 국감에서 현재로서는 불가하지만 여론에 따라 가능성은 있다라고 열린 결말을 내렸다. 이게 얼마나 무서운 발상인가 하면 독립유공자나 국가유공자 등록에 있어 대통령, 총리, 보훈처장은 입김을 작용할 수 없다, 심사위원회라는 것이 분명히 존재하고 심사위원이 나름의 사료를 보고 판단해 심사위원회가 결정하는 것이 등록 사무인데 그것이 심사위가 아닌 다른 사람에 의해 얼마든지 좌지우지 된다면 공정한 심사가 애초에 성립이 불가능 하다. 물론 국민 여론을 무시할 수 없고 국민 여론에 의해 부처가 일을 해야 하는 것이 맞지만 이 경우는 국민 여론에 의한 것인지 권력자의 입맛에 의해 의한 것인지 구분해야 하는 경우이기 때문에 같은 여론이어도 그 의미가 다르다. 지자자들의 여론 합세와 순수 자발적 여론은 다르다.

모든 것은 심사위원회가 재심을 하든 재판단을 하든 전적으로 심사위와 심사위원이 결정할 것인지 보훈처장이나 다른 권력자가 개입할 수 없는 부분으로 김원봉 역시 오직 유공자 등록 관련한 심사위원들의 판단에 맡겨야 함에도 불구하고 개입할 수 없는 사람들이 사실상 압박을 가하며 유공자로 등록이 가능하게 분위기를 조성한다는 것이 문제가 된다. 영화 "극한직업"에서 마약 패거리들이 서로 강력반, 마약반으로 나뉘어 TV 채널로 싸울 때 60초 광고 보기에서 채널 잠깐 튼 걸로 뭐라 하느냐 따지는 것과 마약반 쪽에서 그런 식으로 야금 야금 들어오는 수법 모를 줄 아느냐 하는 장면이 있는데 어떤 면에서는 이런 식의 구도가 여기서도 작용되고 있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일단 당장 안 될 줄은 알지만 언급을 하고 논란을 스스로 키워 김원봉에 대한 역사적 재평가와 인물에 대한 호감을 불러 일으켜 나중에라도 독립유공자가 되게 한다는 발상 말이다.

그러나 이런 논란이 되는 인물, 즉 김원봉을 독립유공자로 포상 할 시 북한 정권 출범에 관여한 인물도 유공자로 선정될 수 있다는 해석이 되기에 논란이 될 수 밖에 없는데 민주유공자와 그들을 진압한 일부 진압군이 국가유공자가 되어 한 지붕 (보훈처) 두 가족으로 같은 포상을 받아 관리가 되는 아이러니한 현실처럼, 그런 말도 안되는 일이 벌어져 여전히 이념 싸움의 단초로 활용되는 것처럼 김원봉의 사례 역시 북한 정부 요인의 독립유공자 추서는 호국영령들에 반하는 아이러니의 또 다른 사례가 될 수 밖에 없어 호국영령들이 왜 그토록 힘겹게 싸우고 죽어야 했는지에 대한 의문감만 더 크게 남게 된다. (건들지 말아야 할 걸 건드리려고 하는 형국이다)

https://news.joins.com/article/23423952 (보훈처, 김원봉 독립유공자 추천 검토, 토론회 개최)

아래 각 정당의 이번 추념사 관련 논평을 보자. 

독립사에 거대한 족적을 남긴 인물이 월북했다는 이유 하나로 공적을 폄훼 당하고 비하 받는 것은 온당치 못하다.한국당 등이 반발하는 것은 김원봉과 같은 이들을 때려잡던 노덕술류 친일파들의 행동이 정당했다고 항변하는 것이며, 자신들의 뿌리가 친일파에 있다는 것을 자백하는 것 - 정의당 최석 대변인

역사는 역사의 영역에 남아야 한다. 김원봉을 둘러싼 정치적 논란은 바람직하지 않으며 중지하는 게 옳다. 지나치게 정치의 영역으로 끌어오게 되면 국론만 분열시킬 뿐, 역사의 공과는 있는 그대로 평가하면 되는 것 - 민주평화당 김정현 대변인

김원봉에 대한 서훈 논쟁이 있어 왔고, 당시 자리가 현충일의 국립현충원이라는 점에서 적절한 언급이었는지 문제를 제기하지 않을 수 없다. 문 대통령이 진정한 국민 통합의 의지가 있는지 의심을 지울 수 없다, 사회통합을 말하려다 오히려 이념 갈등을 부추기고 있다- 손학규 바른미래당 대표

어제 문재인 대통령의 현충일 추념사가 또 다시 우리 사회를 분열로 몰아넣고 있습니다. 셀 수 없이 많은 6.25 영웅들의 영혼이 잠든 현충원에서 북한 정권 수립에 기여하고 고위직까지 오른 김원봉을 추켜 세웠습니다. (중략)

실제 문 대통령은 신년사부터 어제 현충일 추념식까지, 매우 자극적이고 위험한 발언을 이어오고 있습니다. 3.1절 경축사에서는 매우 적대적인 역사 인식을 표출하기도 했습니다. 5.18 기념사에서는 독재자의 후예라는 표현도 썼습니다. 그리고 어제는 급기야 다른 날도 아닌 현충일에 김원봉을 추켜 세우는 발언을 한 것입니다. (중략)

겉으로는 통합을 내걸지만 실제론 균열을 바라고, 대화를 이야기하지만, 갈등을 부추긴다는 생각입니다. 한 정당의 후보로, 지지층의 투표로 당선됐더라도, 그래도 대한민국 국민 모두의 대통령입니다. 그래서 대통령은 균형과 통합의 정치를 해야 합니다. 하지만 문재인 대통령께서는 분열과 갈등의 정치로 정치권과 국민들에게 “누구 편이냐”고 다그칩니다. 결국 내 편, 네 편을 갈라 치는 정치입니다. - 나경원 자유한국당 대표

6·25에서 전사한 호국영령 앞에서 김원봉에 대한 헌사를 낭독한 대통령이야말로 상식의 선 안에 있는가, 귀를 의심케 하는 추념사였다. 대통령의 추념사 속 역사 인식은 심각한 문제를 안고 있다. 이 정부에서 김원봉에 서훈을 안기기 위한 눈물겨운 노력은 보훈처를 넘어 방송 드라마에 이르기까지 전방위로 펼쳐지고 있다. 여기에 대통령의 현충일 추념사가 종지부를 찍은 것 - 전희경 자유한국당 대변인

6·25전사자가 가장 많이 묻혀있는 곳에서 6·25전쟁의 가해자에 대해서는 한마디 못하면서 북한의 6·25전쟁 공훈자를 굳이 소환해 치켜세우며 스스로 논란을 키우고 있지 않느냐 - 이종철 바른미래당 대변인

국민 통합은 중요한 가치이지만, 보수와 진보를 나누지 말자는 대통령의 언급이 김원봉 등 사회주의 독립운동가들까지 서훈하기 위한 이 정권의 분위기 조성용 발언은 아니어야 할 것 - 이만희 자유한국당 원내 대변인

채명신 장군이 5·16 군사 쿠데타에 참여하고 국가재건회의에 참여했다고 해서 민주인사들을 탄압하고 독재를 추종했다고 비난하지 않는 것처럼 독립 영웅 김원봉이 친일 경찰 노덕술에게 굴욕을 당하고 쫓기듯 북으로 갈 수밖에 없었던 것은 그것대로 애달파할 이유가 된다 - 이해식 더불어민주당 대변인

불한당 같은 자한당 말에 동조할 생각은 없지만 야당 대변인들의 말에 있어 딱히 문제 삼을 수 없는 것이 이번 논란이다. 똑같은 말과 행동이어도 장소에 맞고 어울리는 양식이라는 것이 있는데 대통령이 추념사로 현충일, 현충원에서 하는 말로 보기에는 문제가 분명 있다. 김원봉이 얼마나 위대한지는 충분히 아나 그 사람이 현충일, 현충원에 울려 퍼질 만한 상대는 지금은 될 수 없다는 것도 분명하기 때문에 상당히 조심했어야 하는데 호국영령들의 묘지를 코 앞에 두고 북한 정권 수립자의 한 사람을 유공자로 치켜 세우며 엄지 척을 하려 하는 건 영령들에 대한 모독이 충분히 될 수 있다. 

연평도 포격 희생 장병의 유족을 모신 자리에 김정은과 손 잡고 있는 대통령 사진이 담긴 책자를 준 것도 같이 묶어서 비난을 받는데 타이밍의 관점에서 보면 크게 다르지 않다. 누구 때문에 자식을 잃고 왜 희생 되어야 했는지를 안다면 청와대가 그런 책자가 일상적인 안내 책자였어도 그 자리에서는 유족에게 보이지 않도록 배려를 했어야 했는데 그렇지 못하고 만찬에 온 유족들에게 보이지 않는 대못을 박았다. 위안부 할머니들 모셔 놓고 일본 아베 총리랑 손 잡고 있는 사진 준 것과 다르지 않고 광주 항쟁 유족 모셔 놓고 전두환과 찍은 사진 챙겨 준 것과 다르지 않다. 그래서 해당 기사를 보면 대통령 열성 지지자도 유족들에게 그런 사진이 안내 된 건 잘못이라는 말을 하고 있는데 현충일의 추념사도 그 점과 동일하게 봐야 하는 것이지 이건 잘못이 아니라고 부정하면 안된다. 청와대 만찬에 모신 유족이나 현충원의 추념식장에 온 유족들이나 다 같은 유족이고 희생 전몰장병 가족들인데 그들 앞에서 북한 정부와 북한 사람을 치켜 세우는 건 당연히 장소에 맞지 않는 실망감만 남는 부적절한 추념사가 된다. 

민주당의 의견을 보면 대통령이 추념사에서 같이 언급한 채명신 장군에 대해서는 말이 없는데 왜 김원봉에 대해서만 따져 물고 넘어가냐는 뉘앙스가 보인다. 여기서 두 가지를 따져야 하는데 일단 채명신 장군은 김원봉 선생과 같은 선상에서 비교할 수 없는 대상이다. 호국영령을 잡아 먹은 순국선열의 예와 호국영령 중 그 사람의 일부 과오를 끄집어 낸 것은 분명 조건이 다르며 기준이 틀리다. 또 재건회의에 참여 했다고 해서 그것이 정부(정권)의 중심이라고 할 수 없다. 물론 당시 기준으로 보면 그것이 곧 청와대요, 정부의 중심이라 하겠지만 그들 세계에서의 "혁명" 과정에서 생긴 과정일 뿐, 그게 정권의 연속성이 될 수 없다. 그 권력의 중심은 의장에서 곧 대통령으로 바뀌고 채명신 장군은 입각하여 주도적인 정부 요인 활동을 하지 않았다. 

더군다나 채명신이라는 인물에 대해 아주 작은 관심이라도 있다면 그를 이번 추념사에 방어막으로 활용하면 안된다. 마치 민주당 대변인의 말만 보면 채명신 장군의 재건 회의 참석은 단순 참여라 사람들이 문제 삼지 않았다는 식으로 말을 하는데 (김원봉도 단순 참여니 문제가 없다는 식) 그는 박정희의 장기 집권을 대놓고 반대한 사람이며 박정희가 군부 지지를 요구할 때도 거부한 인물이다. 그가 대장 진급을 못하고 군복을 벗어야 했던 것도 박정희의 장기 집권을 반대하다 결국 물러나게 된 것이고 그가 해외로 겉돌게 된 것도 그런 이유다. 당연히 재건 회의 참석 여부와 상관 없이 그는 민주 인사를 탄압하거나 독재를 추종한 적이 없다. 오히려 박정희의 신망을 받던 후배로 되려 독재에 반대하다 쫒겨난 분이다. 여야, 좌우 이념을 떠나 지금도 한 군인으로서 존경 받아야 할 분이고 죽는 그 날까지 가장 멋지게 결말을 낸 분으로서 그는 현충원 안장 때 장군 묘역이 아닌 같이 고생했던 병사, 사병 묘역을 선택하여 사명 묘역에 묻힌 유일한 장군이다. 살아 계실 때도 존경 받는 장군이라는 걸 알았지만 그의 죽음에 있어 현충원 안장 사병 묘역 소식을 듣고 솔직히 난 소름 끼치게 놀랐다. 우리나라 별이 다 똥별이 아니라는 걸 처음으로 느꼈기 때문이다.

사성장군으로 그 어떤 위치에 올랐어도 이 만한 분과 대적할 명성을 가진 장군이 없고 똥별에 대한 말이 많고 탈이 많아도 이 분에 대해서는 나이가 많든 적든, 이 사람을 원래 알았든 나중에 알았든 대부분의 대한 남아들이 추종하고 따르는 편인데 그게 그나마 유일한 흠이라 해도 그건 당시 군인 신분에서 일시적 정권 이양을 위한 재건 모임일 뿐, 당연히 그가 참여했을 때의 재건 회의는 새 정부가 수립하면 정권을 이양하고 군부는 다시 군인으로 돌아간다고 했던 시기였기 때문에 그것이 흠이 될 수 없다. 

두 번째로 김원봉이 노덕술 때문에 북한으로 갔다는 식의 뉘앙스, 역시 잘못된 부분이다. 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김원봉이 북한으로 월북한 이유 중 하나가 노덕술이라는 일제 경찰에 의해 수모, 고문, 굴욕을 당해서라고 하는데 그건 면밀하게 봐야 하는 부분으로 그 노덕술이라는 자가 김원봉에게 어떻게, 무엇을, 얼마나 수치를 주었는지 그것부터 따져야 한다. 아래는 4년 전 (2015년) 동아일보의 칼럼인데 김원봉과 노덕술에 관한 부분으로 김원봉의 월북에 노덕술이 얼마나 영향을 끼쳤는지 가늠할 수 있는 글 중 하나다.

http://news.donga.com/more29/3/all/20151021/74287002/1 (한국사 자습서는 더 위험하다)

하나같이 노덕술 때문에 김원봉이 북한에 갔고 또 노덕술이 김원봉에게 고문을 했다는 식으로 일제 친일파와 엮어 김원봉 이야기를 각색하는데 노덕술 때문에 김원봉의 월북이 어느 정도 물타기가 되는 건 분명 하기에 이 점도 사실 깊게 따져 봐야 할 부분이다. 이번 논쟁으로 인해 김원봉에 대한 정보가 쏟아지면서 그의 월북 경위에 여러 기사도 노덕술과 관련해 엮어 나오고 있기 때문에 자칫 앞뒤 사정을 모르면 정말로 노덕술 때문에 월북한 걸로 오해하기 쉽다. 

위 칼럼이 아니어도 상식적으로 우리는 이 문제에 대해 접근할 필요성이 있다. 기초적인 사고 방식만 있어도 "노덕술이 고문 경찰관인 것은 분명하나 설마 김원봉 같은 당대의 정치 거물을 고문까지 했겠냐" 하는 칼럼 글쓴이의 사고처럼 당연히 그런 합리적인 의심을 먼저 하는 것이 상식에 맞을 것이다. 나 역시 가장 먼저 그 생각이 났기 때문이고 노덕술이 아무리 악질 친일 경찰이어도 해방 이후 김원봉의 위세를 모를 일이 없기 때문에 함부로 대하는 것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정말로 고문까지 했다면 확실한 범죄 혐의가 있어야 할 것이고 그것이 아닌 임의로 벌인 고문이라면 노덕술 역시 아무리 이승만이 호위를 해주어도 그런 행위를 했다면 자리를 보존하기는 어렵다. 인터넷 여러 백과사전에는 노덕술이 김원봉을 고문한 것을 기정사실화 하여 사전에 기재한 상황이다. 아무리 김구, 이승만과 대립하던 당사자라 해도 김원봉이라는 이름이 갖는 상징성을 무시할 수 없는데 고문까지 했다는 건 납득하기 어렵다. 그 고문이라는 것이 반드시 흔적을 남기기 마련인데 그런 것을 주변인이 모를 수 없다. 사람들은 유관순처럼 형무소에 갇혀 고문이라도 당한 것처럼 생각하지만 김원봉은 조사 및 단순 구금을 당했을 뿐이다. 아래는 정관용의 시사 자키에 언급된 관련 고문 내용, 역시 근거가 없는 불확실한 이야기라고 설명한다.

◇ 정관용> 그리고 귀국한 후에 악질 친일 경찰 노덕술한테 무슨 수모를 당했다는 얘기는 뭡니까?

◆ 심용환> 그런 얘기가 거의 전설처럼 내려오고는 있는데 뺨을 맞았다. 그래서 그것 때문에 며칠간 괴로워하다가 월북을 결심하게 됐다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있는데 사실 입증된 얘기는 전혀 아니고요. 여러 기록들이 있기는 하지만 노덕술한테 직접, 친인 경찰 노덕술한테 고문을 받았거나 했던 역사적 근거는 없습니다. 다만 여러 회고를 보고 상황을 봤을 때 친일파들 때문에 너무 힘들어하고 힘들었다는 것 정도만 우리가 추정할 수 있고 실제로 북한에 남게 되는 건 이제 어떻게 보면 판단인 거죠. 그러니까 더 이상 어떤 중재가 힘들고 나는 결국 북한에서 뭔가 해 보겠다라는 정치적 의지와 결단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 성공회대학 심용환 외래교수

백범 김구 선생보다 현상금이 곱절로 높고 지금 환율로 따지면 세계 2위 수준의 현상금이 김원봉에게 걸렸는데 백범 김구 선생와 비슷하게 대접 받던 김원봉에게 노덕술이 함부로 대했다? 그것도 해방 이후? 글쎄..물론 없는 이야기는 아니고 증언이 있고 회고록과 같은 당시 이야기가 있으니 그게 아예 없었다고 할 순 없지만 김원봉의 입지를 정확히 알고 있다면 여기서의 모욕, 수치는 "체포" 당했다는 그 자체, 더 나아가 그게 하필 친일파 출신 경찰에게 체포 당했다는 것이 그 수치의 모욕의 전부라 할 수 있겠다. 무엇보다 체포 직후 수도경찰청장이 노덕술에게 크게 화를 낸 것도 분명하고 수갑을 차고 데리고 온 것 자체를 문제 삼았는데 정중히 모시지 않고 범죄자처럼 제압하여 체포 했다는 자체가 그에게는 큰 수치감이 되었을 것이라 보는 게 더 합리적인 접근이라 할 수 있다. 수갑을 채웠다는 이유로 수도경찰청장이 화들짝 놀라 노덕술에게 고함을 쳤다는 항목만 보더라도 김원봉에게 고문은 커녕 조사를 하더라도 어느 정도 대우는 해줘야 한다는 걸 말하는데 그가 맞았다거나 다쳤다거나 하는 기록 자체가 없지만 주위 사람들이 그런 걸 놓칠 수가 없기 때문에 본인이 말하지 않아도 몸에 난 상처나 멍을 볼 수 밖에 없다. 그러나 고문과 관련한 실체 증언은 아예 없다는 점, 무엇보다 수감 생활을 하지 않았다는 점, 체포만 당하고 조사만 받았다는 점을 보면 그 일은 괘씸한 일 중 하나 일 뿐, 김원봉이 이 일로 월북을 하게 된 계기가 될 수 없다.

오히려 그가 월북한 것은 당시 시대상을 보면 충분히 알 수 있는데 그는 해방 후 민전(민족전선)에서 박헌영, 백남운, 허헌, 여운형과 함께 활동을 했다. 좌익 단체였고 사회주의 이념을 갖던 단체였으니 미군정과 상반되는 입장에 있었다고 볼 수 있는데 (쉽게 말해 소련을 지지하는 세력인 셈) 같이 활동한 여운형은 암살 당하고 남은 셋은 월북을 한 상태였기 때문에 남은 건 김원봉 혼자였다. 누구나 이쯤 되면 고민을 할 수 밖에 없는데 거취에 대한 답은 의외로 쉽게 두 가지로 정리가 된다. 남한에 계속 남아 민전 활동을 하거나 아님 이념 활동이 조금 더 수월한 북한 지역으로 가거나 둘 중 하나다. 이 때 남한에 잔류하는 경우 여운형과 같이 암살 당할 것이 뻔하다. 일제 시대에는 일본군을 피해 살았으나 지금은 미군정을 피해 살아야 하는 신세가 되었으니 민족 해방을 벌였던 그는 북한 지역이 아무래도 더 맞을 수 밖에 없다. (분명한 건 이념 선택도 스스로 자초한 일이다) 

친일 경찰이 여전히 미군정 산하에서 득실거리며 생존하는 것도 못마땅 한 상황에서 대구 10.1 사건의 배후 세력으로 자꾸 지목을 당해 감시를 받고 있었고 그 사건으로 인해 노덕술에게 체포까지 당한 수모를 겪었으니 그에게는 남한의 정세와 근거지가 마음에 들 수가 없다. (대구 10.1 사건은 박정희의 형이 좌익 활동을 하다 처형 당한 그 사건이다, 박정희가 남로당에 가입하게 된 계기이기도 하다) 더군다나 같이 활동하던 동지들이 암살 당하거나 도망가는 신세가 되었는데 해방이 되어도 변한 건 없고 자기 입지만 점점 줄어드니 결국 더 입지가 줄어들기 전에 북한에 가서 자기 입지를 다시 다지는 것도 그에게는 분명 괜찮은 선택이 될 수 있다. 그러니까 받아 줄 만한 환경이 북한에 더 있었고 (소련과 중국을 등지고 사회주의 이념을 확립) 공산국가를 남한에 세우려고 노력 하기 보다는 이미 공산 세력이 자리를 잡은 북한에 가서 활동하는 것이 그에게는 더 탁월한 선택이 될 수 밖에 없다. 더군다나 북한에 터를 잡은 지도자는 김일성이니 그를 받아 줄 확률은 매우 컸다. 무엇보다 독립 투사라는 동지애가 있어 올라가면 여기보다 더 크고 안락한 고위직을 맡을 확률도 매우 크다. 당시 조건과 환경만 보면 북한으로 안 가는 것이 더 이상한 것이다. 

노덕술 때문에 갔다고 볼 수 없고 노덕술이 그에게 큰 영향을 준 것이라 단정하기도 힘들다. 일개 형사 하나 때문에 월북을 했다면 그건 "밀양의 김원봉이오" 했던 그 김원봉이 절대 될 수 없다. 그런 것에 삐져 결심을 할 만큼 소심한 사내도 아니고 그런 형사 하나의 일개 친일자에게 복수심을 갈 사람도 아니다. 예전 같았으면 상대도 안되는 순사 나부랭이가 미군정 위세를 업고 까부는 것이 못마땅할 뿐이고 그게 친일파 경찰 출신이니 더욱 짜증이 났을 뿐인데 김원봉이 노덕술에게 체포 된 이후 다른 증언을 보면 그는 체포 된 사실 자체에 대해 수치스러움과 모욕을 느꼈지 노덕술 때문에 화가 난 것이 아니다. 기분이 나쁜 것과 화가 난 건 분명 다르다. 단지 그 체포도 노덕술이 행하다 보니 친일 세력에 대한 모멸감이 합쳐진 것인데 결국 그는 그 한 사람을 보고 남한의 친일파 척결이 안되고 미군정이 친일파를 재등용하여 써 먹는 것에 대해 회의감이 들었다고 봐야 할 것이다. 떡 본 김에 제사 지낸다고 남한 상황이 마음에 들지 않고 오히려 자신을 압박하는 상황에서 북한에서 그에게 호의적으로 대하고 오라는 시그널을 보냈다면 민전 활동을 하고 사회주의 혁명 운동을 한 그로서는 남한에 남을 이유가 없는 것이다.

김원봉에 대해 명확하게 정리를 하자면 그는 "위대한 영웅"이자 독립 투사가 맞다. 이번 현충일 추념사를 통해 처음 알았거나 그동안 영화에서 간간히 이름만 들어 봤던 사람에게 다시 한 번 깔끔하게 정리를 한다면 그는 우리나라 독립 운동에 있어 굉장히 중요한 인물 중 한 명이라는 건 분명하다. 많은 독립 운동가, 독립 투사들이 그의 업적을 기려 컨텐츠화 되고 국민들의 기억 속에 영원히 남아 추앙 받고 있지만 김원봉은 상대적으로 알려지거나 기억되지 않는다. 위 사진만 보면 누구라도 "김구"라고 연상이 되지만 아래 영화 "암살"의 조승우가 연기한 저 인물은 같은 영화 속 스틸컷 임에도 그 누구도 "김원봉"이라 연상하지 않는다. 애초에 영화에서 비중이 크지도 않을 뿐더러 역할도 흐름의 보조 역할만 할 뿐 중요 캐릭터가 아니다. 

독립 운동가를 서열로 나누어 누가 더 잘하고 누가 덜 잘했느냐 따지는 것이 우스운 건 안다. 다 위대한 분이고 대단한 용자이며 나라와 민족을 위해 싸운 선열들인데 중요한 건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대적으로 덜 알려지거나 대중의 기억 속에 묻힌 영웅들이 존재한다는 점이다. 그 점에 있어 김원봉은 가장 소외된 영웅 중 하나라 할 수 있는데 영화 속 현상금 이야기처럼 김구 보다 현상금이 더 높았던 그는 일제 독립 투쟁 역사의 중심 인물이자 상당히 많은 영향력을 끼친 인물로 스타의 스타라는 말처럼 영웅들의 영웅이라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다.

영화 속 대사에서 가장 짧고도 명확하게 그를 대변하는 말이 바로 "나 밀양의 김원봉이오" 이다. 이 말 자체가 그가 얼마나 큰 위세를 갖고 있었는지를 말하는 대표적인 예라 할 수 있는데 우리나라 근대사의 영웅 일지에서 내가 가장 좋아했던 분이기도 하고 또 가장 멋있다고 느낀 나름의 존경심까지 갖고 있던 분이 이 분이기 때문에 이 분에 대한 독립 운동은 논할 가치도 없이 최고 중 최고라 할 수 있는 건 분명하다. 

많은 사람들은 유관순 이름 뒤에 반드시 "열사"를 붙여 말한다. 안중근 이름 뒤에는 역시 "의사"라는 호칭을 붙여 유관순 열사, 안중근 의사로 부른다. 의사와 열사, 의와 열...그렇다 김원봉이 조직한 것이 의열단이고 그 의열단의 의와 열이 현재의 의사와 열사를 의미한다. 안중근의 의사와 유관순의 열사를 두고 의사와 열사 구분하는 이유와 방법은 알지만 그 의사와 열사가 어디에 근거하여 만들어진 단어인지는 거의 잘 모르는데 (의)(열)단이라는 이름 자체가 의사와 열사들을 말하기 때문에 의열단이 있고 난 뒤 의사와 열사가 있었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게 바로 조직화 된 독립군들이며 그게 바로 우리가 아는 대부분의 무력 항쟁의 중요 사건들의 커멘더 센터, 사령부가 된다.

김원봉이라는 사람은 결국 최초로 의열단이라는 이름을 만들고 그 의열단이 유지하고 운영할 수 있게 만든 독립군의 우두머리다. 백범 김구와 더불어 더 높은 현상금이 걸린 것도 그래서다. 결국 그의 행적과 더불어 조선 독립 의열단들의 행적이 우리 독립 역사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상당하기 때문에 김원봉의 행적 자체가 우리나라 독립 운동사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당시 일본이 잡으려고 혈안이 된 독립 운동가 중 지명수배 1순위, 반드시 잡아야 할 1급 수배자가 바로 김원봉인 것이다. 무력 투쟁에 있어 최선봉은 항상 의열단이 있었고 의열단은 독립 운동 단체 조직으로 우리가 알고 있는 그 분들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영화 밀정에서 공유가 맡았던 역할도 역시 의열단원), 독립 투사가 큰 거사를 앞두고 동지들과 함께 마지막 사진을 찍는 경우가 많은데 그런 사람들이 다 의열단원으로 우리는 거기서 쓰인 의열을 따 의사와 열사로 나누어 예우하게 된 것이다.

김원봉을 독립 운동 관련 역사적 관점에서, 제1의 독립 투사로 모시는 것도 바로 의열단 창설에 큰 역할을 했고 그 유지와 활동에 있어서도 지대한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결국 의사와 열사들의 활동에 있어 많은 영향을 끼쳤고 그 운동이 이어지게 만든 무력 항쟁의 아버지 같은 존재인 셈이다. 물론 그는 같은 무력 항쟁 활동을 한 김좌진 장군과 달리 노선이 달랐다. 김구 선생과 김좌진 장군은 우익, 김원봉과 여운형은 일찍이 좌익 노선을 타면서 같은 독립 운동가 사이에서도 이념으로 갈린다, 당시에는 좌익이나 우익이나 노리는 공통의 적이 일본이니 큰 문제가 없지만 일본이 물러 간 뒤 일본이 아닌 좌익과 우익 자체가 대립하는 상황에서는 서로 죽이고 죽여야 하는 서로 적이 될 수 밖에 없는 것이 문제가 되고 그 상황에서 해방을 맞았으니 지지하는 이념 노선에 따라 생과 사가 달라지게 된다. 해방 후에도 암살이 만연한 것도 그래서고 좌익의 여운형, 우익의 김구 선생을 비롯 많은 애국지사가 운명을 달리한 것도 그래서다.  

영화 암살 뿐 아니라 영화 밀정에서도 김원봉은 아주 잠깐 등장한다. 암살에서는 조승우가 역할을 했고 밀정에서는 이병헌이 가상의 인물로 다르게 역할을 했다. 물론 이름도, 캐릭터도 다르게 나왔지만 이병헌이 김원봉을 롤모델로 한 캐릭터라는 건 모두가 아는 사실, 숨기고 싶어도 숨길 수 없는 아우라, 독립 투쟁의 투사 대장을 그렸다면 그는 누가 봐도 김원봉이다. 둘 다 영화에서는 비중이 크지 않은 특별 출연이다. 오히려 어떤 점에서 이런 영화 속 비중은 상기하는 점이 크다. 매우 크다. 독립 투사들의 무력 항쟁에 있어 분명 "김원봉"은 절대로 빠지지 않고 반드시 등장한다는 점이며 그 투사들의 중심에 그가 있다는 걸 두 영화에서 이미 충분히 볼 수 있다는 것인데 밀정에서 송강호가 이병헌을 보고 거의 지리는 수준으로 놀라는 것도 바로 그런 이유, 투쟁 세력의 지도자 급을 만난다는 것이 원래 쉽지 않지만 그 중에서도 만나기 힘든 것이 바로 김원봉, 그가 잡히거나 죽으면 독립 투사들의 투쟁도 크게 달라질 수 있을 만큼 무척 중요한 인물이다. 우리나라 독립 운동가들에 있어 그를 빼놓고 이야기 할 수 없다는 것이다.

반대로 그가 영화에서 메인이 되지 못하거나 항상 뒷방 노인 신세처럼 짧고 굵게 등장하는 건 바로 그가 당시에서는 꽤 중요한 인물이지만 광복 후에는 남한과 대적하는 북한의 수장이 되어 한국전쟁의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기 때문이다. 일제시대 독립 운동가들의 희생과 노력에 대해 말을 할 때 김원봉은 분명 영화처럼 빼놓을 순 없는 분이지만 영화에 나오는 비중, 역할 크기가 딱 그 만큼이다. 언급만 하되 그 사람을 중심, 주인공으로 내세울 순 없다. 바로 이게 어떤 면에서는 70년 가까이 국민들이 바라 본 김원봉의 모습이고 김원봉의 지위다. 그를 영웅으로서 잊지는 않되 그렇다고 그를 기리지는 않는 모습, 그가 위대한 지도자로서, 또 무력 항쟁의 중심 인물로서 수 많은 하위 조직의 다른 독립 운동가 보다 뛰어난 업적을 가졌다고 볼 수 있어도 상대적으로 그 아래에서 활동했던 다른 분들이 더 추앙 받고 오히려 그분들이 모시던 김원봉은 국민에게서 푸대접을 받는 건 국민들이 김원봉을 어떻게 바라보고 판단했는지에 대한 국민 태도가 된다. 영화 속 비중처럼, 등장은 하되 주인공은 될 수 없는 숙명을 가진 캐릭터가 김원봉인 것이다.

그를 순국선열의 지위로 놓고 보면 빠지지 않는 위대한 독립 운동가지만 그를 순국선열이 아닌 호국영령들의 지위와 맞물려 따지고 보면 북한 정권을 세운 자이고 오늘 날 북한이 있는데 힘을 보탠 인물이기 때문에 그의 업적에서 무조건 독립 운동 관련해 순국선열만 놓고 따질 순 없다. 북한 정권 당시 파워가 있든 없든 일단 서열 3위, 독립 투쟁의 아버지라 할 수 있는 김원봉이 북한에 있고 북한 정권을 수립하는데 일조 했다는 그 자체, 김원봉이 김일성과 함께 했다는 그 사실 만으로 많은 사람들, 특히 북한 지역 사람들에게는 든든한 힘이 되고 북한 정권의 실체를 돈독히 하는데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쳤을 수 밖에 없다. 오늘 날 정치 판에서 인기가 있거나 유명한 거물을 영입해 대중들에게 당의 이미지와 브랜드를 키워 나가는 요즘 날의 모습처럼 거물이라고 인식된 사람이 어느 쪽에 있느냐에 따라 다른데 김일성에게 무력 항쟁의 중심이었던 김원봉을, 그것도 백범 김구 선생보다 한 끗발 더 나갔다는 김원봉이 북한에 머물게 된다는 사실 자체 만으로 남한의 남로당 조직(공산세력)과 북한의 세력에게는 분명 큰 정신적 힘이 될 수 밖에 없다. 그 피해는 결국 남한 사람과 대한민국이 모두 겪게 되는 건 당연하다. 그가 실제로 총과 칼을 들거나 권력자로서 남한을 침략하고 혼란에 빠트리는데 직접적인 연관성이 없다고 해도 그가 북한에 갔다는 사실 만으로 판세가 다를 수 있는 것이 바로 김원봉의 입지였고 당시에는 충분히 그럴 수 있기 때문에 그가 어디에 소속을 두고 활동 했느냐 만으로도 정권의 힘에 기여하는 부분이 분명 존재하기에 그의 북한 정권 기여는 쉽게 없다고 말할 수 없는 것이다. 

북한 중요 대사가 남한으로 귀순을 하고 북한 주요 권력자가 남한으로 넘어오는 경우 그 자체가 우리 쪽에서는 상대 진영이 무너지고 있다는 뜻이 되면서 우리 국민에게는 하나의 메세지가 충분히 된다. 탈북자가 많아지는 것도 하나의 신호가 되지만 주요 권력자들이 이탈을 하게 되면 반대 쪽 대중들은 자신들의 생각과 판단이 옳다고 여기게 되고 자신의 진영을 더욱 공고하게 다지기 마련인데 김원봉의 북한 선택지는 남한에게는 결과적으로 손실, 북한에게는 득이 되는 상황이기 때문에 그가 선택한 결정 자체가 군사 개입과 상관 없이 보이지 않는 나비 효과를 불러 일으켰다고 말 할 수 있는 것이다. 

영화 밀정에서 이병헌이 김원봉 역할을 맡았지만 메인 포스터에서는 이병헌이 없다. 물론 시나리오 상 포스터까지 나올 배역 비중이 아니었던 것도 있지만 김원봉이 등장하는 영화는 모두 김원봉이 메인이 아니다. 그의 휘하에 있거나 그가 조력했던 다른 인물이 주인공이다. 당시의 관점에서, 당시의 시점만 놓고 본다면 그는 우리나라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유치원생도 알만한 인물이 되어야 하지만 그 사람의 평가는 그 사람이 죽는 그 순간까지 이어져 종합적으로 봐야 하기 때문에 그 업적이 사망할 때까지 흠이 없다면 몰라도 흠이 있고 그 흠이 크다면 그는 추앙 받아야 할 인물이 될 수 없다. 잘 알려지지 않아 사람들의 기억 속에 잊혀진 영웅이 아니라 잘 알려져도 잊혀질 수 밖에 없는 과거의 영웅이 될 뿐이다. 그는 결과적으로 추앙 받을 수 없는, 현대 관점에서 비난의 대상이 되는 선택을 함으로 인해 자기 스스로 무덤을 팠다. 그를 일제 시대 독립 운동사의 역사적 인물로서 가치는 존중하고 높이 사지만 다른 독립 운동가와 격을 같이 할 수 없음을 분명하다. 그의 활동에 한국전쟁 시기가 맞물리기 때문이다. 그것도 우리의 "적"으로 말이다. 

김원봉의 역사적 평가에서 하나 알아야 할 건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노동당에 가입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우리가 주적이라는 표현에 있어 북한의 노동당원(공산당원)은 반드시 척결해야 하는 주적에 해당 하지만 그는 죽는 날까지 당원으로 가입한 이력이 없다. 다만 그는 북한 정부의 수괴 중 하나로 정부 요원이라는 건 변함이 없는데 주적은 당원 뿐 아니라 괴뢰 정부원도 포함이 되기 때문에 결국 그는 주적이라는 타이틀에서 벗어날 수 없다.

그의 행적 중 월북 사실만 갖고 논란을 따지기 어려운 건 맞다. 독립 운동가들이 모두 남한에만 상주한 것도 아니고 여러가지 사유로 원래 자신의 고향인 이북으로 향한 분도 있기 때문에 북한에 있거나 북한에 넘어간 분이라 하여 모두 매도할 순 없다. 그러나 그 이후 그 지역에서 어떤 일과 행위를 했느냐가 중요한데 나라를 되찾았다는 것 하나로 만족하며 원래의 삶으로 돌아갔다면 몰라도 나라를 되찾고 난 후 남북이 갈리는데 또 다른 역할을 했다면 그는 논쟁에서 자유로울 수 없게 된다. 더욱 그는 월북 당시 남한에 가족을 두고 넘어갔기에 그 월북이 순수한 월북이라 할 수 없다. 당연히 빨갱이 집안은 한국전 당시 보도 연맹 등을 통해 무참히 살해 당했기 때문에 그가 남한에 두고 온 가족도 끔찍한 살해를 당한다. 

이건 그가 북한 정권에 얼마나 기대를 하고 기여를 했는지를 볼 수 있는 대목인데 상식적인 경우라면 사전에 충분히 가족을 데리고 넘어갈 수 있다. 휴전선이 아닌 38선이 있던 당시는 다른 루트, 경로를 통해 충분히 가족 안전은 보장하면서 자기 목적은 달성할 수 있었다. 무엇보다 그는 한국전 자체를 반대했던 인물이다. 북한에 있으면서 김일성의 남침 계획을 알았을 때 그는 반대를 했던 인물인데 가족이 남한에 있어 더욱 그런 것도 있지만 그걸 알면서도 가족을 데리고 오지 않았다. 한국전이 발발하고 전쟁의 양상이 북한에게 불리하게 작용될 때, 그는 탈북하지 않았다. 원래 한국전쟁을 반대했던 인물이고 김일성과 그 부분에 있어 대치하던 사람이 전쟁의 양상 과정에 있어 북한이 압도적으로 불리하게 진행이 되었다면, 예상과 달리 미군과 UN이 합동하여 한반도에 진출 했다면 김원봉의 입장에서는 남한으로 돌아가야 하는 것이 상식이지만 그는 끝내 북한에 남아 북한 정부와 함께 했다. 끝까지 남한 정부와 인연을 맺을 생각이 없었다는 뜻이다. 

전쟁 상황에 어떻게 흘러가는지 본인도 분명 알았을 것이고 결국 UN이 나섰다면 원하는 목적을 달성할 수 없음을 전쟁 개시 첫 1년 만에 알았을텐데 그는 끝내 북한을 버리지 않았다. 김일성이 뒤로 피난을 가도 같이 갔고 북한이 남침을 해도 수수방관 했다는 뜻이다. 무엇보다 민족과 자주독립을 위해 가족을 버리는 건 이해할 수 있고 그 조차 위대하다고 보는 것이 보통이지만 단순 노선 경쟁과 사회적 이념 갈등으로 가족을 버린다는 건 이해의 수준을 넘는다. 대부분 이런 경우 탈북이든 탈남이든 다 비난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그가 가족을 중국이라도 보낸 뒤 북한행을 택했다면 그나마 인간미를 조금이라도 느끼겠지만 일제도 아닌 남북 이념 때문에 무참히 몰살 당할 걸 알면서 북한으로 갔다는 건 진정한 영웅의 행동이라고 여길 수 없다. 그런 분을 분단 상황에서 인정해야 하는 건 무리수다.

김원봉에 대한 시선은 김일성과 크게 다르지 않다. 민족 해방이 되기 이전까지는 둘 다 같은 부류다. 조선 땅에서 일제로부터 굴욕과 설움을 받는 한민족을 위해 싸운 독립 투사이고 애국지사다. 그러나 해방 이후 김일성은 민족의 원흉이 되었고 수 많은 한민족에게 고통과 슬픔을 안겼다. 심지어 나라를 반으로 갈라 세계에서 유일한 분단 국가로 자리하게 만든 장본인이다. 과거 우리 민족과 백성을 위해 노력하고 싸운 것은 칭찬 받아야 하지만 그걸 뒤엎을 만한 나쁜 짓, 못된 짓이 더 많다면 그는 진정한 영웅이 될 수 없다. 매국노와 다름 없고 친일파 보다 더 나쁘다. 통일이 되고 나라가 분열 없이 고통 없는 하나의 국가가 되어도 역사적 인물 평가 만큼은 자유로울 수 없다. 수 많은 이산 가족을 양산하고 피눈물 흘리며 개죽음 당하게 만든 것이 바로 김일성 독립 투사다. 일제가 식민지로 군림할 때도 그런 민족 대학살은 없었으나 오히려 그가 나라의 주인이 되겠다고 나서면서 한반도에서는 많은 대학살이 벌어지고 생지옥이 펼쳐졌다. 논란의 여지가 없는 것이다.

김원봉도 그 점에 있어 차이는 있을지 몰라도 김일성과 노선을 같이 했고 결국 한국전쟁의 회오리 속에서 그 맥을 같이 했다는 건 어쩔 수 없는 사실이다. 남과 북은 모두 독립 운동가들이 해방 이후 정권 수립에 노력을 기했다. 남한도 북한도 모두 독립 운동가들이 새 정부 수립에 큰 역할을 했고 국민들은 모두 그걸 당연시 했다. 일본이 물러가고 우리 나라를 되찾는 과정에서 국민이 중심이 되는 민주주의가 실현 된다면 그 중심에는 나라를 되찾는데 큰 기여와 공로를 한 독립 운동가들이 가장 먼저 나서는 것도 당연한 이치다. 

남한에는 김구와 이승만이, 북한에는 김일성이 가장 먼저 자리를 잡고 정권 수립을 했을 뿐, 결국 독립 운동가들이 정권 창출에 그대로 이어진 건 남북이 다르지 않다. 그래서 김원봉이 월북을 결심하고 북한 정부에 활동하게 된 것도 그 연장선이라 볼 수 있는데 북한에서 북한 사람들이 "인민 영웅"으로 그를 재해석 하고 모신다면 아무 문제가 없으나 김원봉을 남한에서 남한 사람들이 "순국선열"로 재해석 하고 모신다는 건 오늘 날의 대한민국이 김일성도 독립유공자로 받들어 모시고 순국선열 중 한 사람으로 대접해야 한다는 것과 같다. 현충원에 모셔야 하는 선열이라고 말이다. 김일성에 대한 이념 논란이 남한에 없다면 김원봉에 대한 논란도 있을 수 없다. 그 둘은 같다. 김원봉은 스스로 김일성의 동지가 되기를 선택했고 그건 사실이다. 그리고 단지 북한 정권 수립 및 정부 요원으로서 역할을 했다고 그를 선열의 대상에서 밀어내는 건 아니다. "한국전쟁"이 어떤 전쟁이고 어떤 고통과 아픔이 있었는지를 안다면 그가 직접 연루가 되거나 연관되지 않았어도, 심지어 남침 계획에 반대했어도 결국 북한 노선을 따랐다면 그의 과거 독립 운동 투쟁사는 다 까먹고도 모자르다. 김일성을 그 누구도 독립운동가, 독립 투사로 보지 않는 것처럼 말이다.

민주당 대변인의 말처럼, 또는 무지랭이 역사학자들이 하는 말처럼 그는 단지 노선을 유지하기 위해, 혹은 암살을 피해 북으로 향했을 수도 있다. 또 그는 한국전 자체를 반대하고 김일성의 무력 남침을 반대했기 때문에 그런 것이 사회주의 독립 운동가였어도 문제가 안된다는 논거로 활용될 수 있다. 북한 정권에서 높은 서열로 위치 했다고 해도 실제로 그가 벌인 일이나 계획이 대학살과 직접적인 관계는 없기 때문에 단순 참여 만으로 그의 과거 공적마저 잊혀져야 하는 건 아니라고 충분히 말할 수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분명 존재 자체가 북한 인민과 대중들에게 큰 힘이 되었고 남한의 남로당원에게도 큰 힘이 되었다고 볼 수 밖에 없다. 또 그는 한국전쟁이 벌어지는 시기에 북한에서 훈장을 받았다. 우리가 친일파를 논할 때 일제에게서 훈장, 작위를 받았냐 안 받았냐 그 사실만 갖고도 많이 기준을 나누는데 북한에서 훈장을 받은 사람을 남한의 유공자로 모실 이유는 사실상 없다고 봐야 한다. 결국 그가 빠져 나갈 구멍은 없다. 영웅으로서 끝까지 후대 대접을 받는 건 그들의 행실이 일관되고 자유를 찾아 갈망하는 사람들의 앞에 서서 나섰기 때문인데 그는 민족 대학살을 방치하고 방관한 인물이지 위대한 독립 업적만 추려 치켜 세워야 할 대상은 아직 아물지 않은 상처가 있기 때문에 쉽게 이루어질 수 없다. 민족 분열과 분단의 책임에 있어 자신은 절대로 책임이 없다고 자신하거나 말한다 해도 그의 행적 자체는 뭘 변명해도 소용이 없는 것이다. 현실은 한반도가 갈렸고 세계 유일 분단 국가로 지금까지 유지되고 있기 때문이다.

참고로 김원봉의 행적 관련해 1954년 휴전 직후 북한 간첩단 체포 뉴스를 보면 알려진 것과 달리 김원봉이 직접 지휘하여 간첩단을 남한에 파견할 걸로 나온다. 간첩단의 목적이 대한민국의 경제를 혼란 시키고 선거를 방해하는 공작을 한 것으로 나온다. 

https://bit.ly/2WSCdHQ (1954년 1월 26일 경향신문 보도 - 어마어마한 간첩단 체포, 김원봉이 직접 지휘)

하지만 당시 한자까지 동일한 김원봉이 따로 있었고 그 사람 역시 비슷한 시기 숙청 당한 인물이기 때문에 오히려 김원봉이 노동당원으로 가입하지 않고 끝까지 군소정당원으로 남아 있었다는 점을 비춰보면 여기에 나오는 김원봉은 독립 투사 김원봉이 아닐 확률이 더 크다. 애초에 남침 계획을 반대하고 남조선과 무력 전쟁을 벌이는 것에 회의감을 갖던 그가 간첩단을 구성해 운영할 일도 없거니와 그가 가졌던 모든 북한 권력 자리는 사실 이런 것과 거리가 멀다. 그 때나 지금이나 크게 작용하기 힘든 중심 권력에서 약간 밀린 자리로 그가 주체적으로 대남 공작을 할 자리가 아니었기 때문에 여기서의 김원봉은 다른 김원봉이라 봐야 하고 이 기사로 인해 김원봉이 실제 대남 공작도 했다고 단언하면 곤란하다. 악당으로 몰아 부칠 순 있어도 아닌 것과 그런 것은 구분해야 한다.

역사학자 전우용, 김원봉 훈장 못 받을 이유 뭐냐

https://news.v.daum.net/v/20190607113718427

우연히 재미있는 기사를 하나 보게 된다. 학자께서 황장엽도 받은 훈장을 김원봉은 왜 못 받냐고 따졌다는 내용인데 훈장 못 받을 이유가 없다라는 객관적인 증거나 무언가 다른 사료가 있는 줄 알고 봤다고 솔직히 많이 놀랐다. 

역사학자 전우용씨는 주체사상을 정립한 황장엽도 받은 훈장을 김원봉이 못 받을 이유가 무엇이냐고 되물었다. 전씨는 지난 6일 밤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황장엽은 주체사상을 정립하여 김일성 세습 독재체제 수립에 결정적 역할을 했고, 북한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까지 지냈다”며 “그는 독립운동에 전혀 기여한 바 없었으나, 북한 정권의 숙청을 피하여 월남하는 데 성공한 공적으로 2010년 이명박 정부로부터 ‘국민훈장 무궁화장’을 받았다”고 밝혔다.

이래서 미래 청소년들이 더 유심히 봐야 하고 많이 알아야 한다. 북한 인사인 황장엽도 남한에서 훈장을 받는데 왜 김원봉은 안되냐는 논리, 황장엽은 독립 운동에 전혀 기여를 하지 않았음에도 "이명박 정부"로부터 국민훈장 무구화장을 받았는데 김원봉은 왜 난되냐는 논리, 연도에 친절하게 이명박 정부를 붙인 의도까지 알겠으나 그게 그 주장의 근거로 이야기를 하다니 뒷골이....너무 땡긴다. 너무 어이 없어서 말이다. 학자 분이 역사는 잘 알아도 기초적인 훈장 상식은 전무하다는 소리인데, 비교할 걸 비교하고 동일시 할 건 동일시 해야지 국민훈장과 건국훈장을 구분하지 못하는 것 같다.

국민훈장은 국민 누구나 조건이 되면 받을 수 있는 말 그대로 국민훈장으로 건국훈장과 동일시 한다는 것 자체가 너무 놀랐다. 건국훈장은 "누구나 받을 수 없는" 제한된 조건의 훈장이고 국민훈장은 "누구나 받을 수 있는"제한된 조건의 훈장인데 이걸 동일시 한다. 더욱 국민훈장은 훈장 받는다고 해서 유공자가 되지 않는다. 당연히 독립 운동에 기여한 것이 없으니 황장엽 비서는 국민훈장이 나간 것이고 그 훈장은 김원봉에게도 여론 공감만 되면 얼마든지 줄 수 있는 훈장으로 그게 단순 논리의 근거라면 김원봉도 충분히 국민훈장 대상은 될 수 있다. 하지만 그것도 실제로 어려운 것이 남한 국적, 대한민국 국적을 가진 우리나라 국민이어야 하는 기본 절차가 필요한데 대한민국 임정 요원인 건 맞지만 이후 정식 수립된 임시가 빠진 대한민국 공식 정부의 국민은 아닌 조선인민민주주의공화국 사람이기 때문에 당연히 포상 조건이 안된다. 

물론 사회적 합의에 따라 대한민국 임시정부 요원이었다는 이유만 가지고 국민훈장을 추서하겠다면 그것까지는 말릴 생각도 없고 문제 삼을 생각이 없다. 스포츠 스타나 국가 브랜드에 이바지한 경우에도 받을 수 있는 것이 국민훈장이고 공직자가 받는 근정훈장도 공직자의 자리가 3부 요인에 해당 하거나 국가 발전에 이바지 한 경우 근정훈장과 동시에 국민훈장을 받을 수 있다. 어떤 식으로든 훈장을 주고 포상 하겠다고 하여 거기까지 남발한다고 해서 크게 달라질 건 없는데 무궁화, 모란, 동백, 목련 등 등급 차이가 있긴 하지만 국민훈장 자체만 놓고 보면 대표적으로 이 상을 받은 수훈자가 석해균 선장, 김연아 선수, 문대성 선수, 롯데 신동빈 회장, 양승태 대법원장, 이국종 교수, 정몽구 현대차 회장 등이 있다. 세월호 조사위 위원장이었던 이석태 변호사도 세월호 조사 관련 국민훈장을 받았다. 물론 이들은 절대로 건국훈장은 받을 수 없는 분들이다.

훈장이라는 것이 무궁화대훈장을 빼고 (대통령만 받는 훈장) 건국훈장, 국민훈장, 무공훈장, 근정훈장, 보국훈장, 산업훈장, 새마을훈장, 체육훈장, 문화훈장 등등이 있는데 이 중 건국훈장과 무공훈장, 보국훈장 세 가지가 독립유공자 및 국가유공자가 되고 나머지는 그냥 상훈법에 근거한 훈장 수훈이 된다. 훈장 자체로 국가유공자나 독립유공자가 되는 건 이 세 가지 훈장에서만 가능하다. 그게 아닌 다른 훈장은 유공자 관련법이나 보훈법 적용을 따로 받지 않는다는 것이다. 건국훈장은 쉽사리 줄 수 있는 것도 아닐 뿐더러 황장엽이 독립 운동을 과거에 했다고 해도 건국훈장까지 주어 가면서 그를 대접할 이유는 없다. 그 역시 북한 정권의 고위직에 해당한 인물이니 독립 운동을 했어도 건국훈장 제외자다. 워낙 파급력 있는 지도자의 탈북이라 상대 북한을 자극하기 위해서라도 국민훈장을 주는 건 누구라도 생각할 수 있는 일이고 그건 너무 자연스러운 일인데 황장엽 비서가 국민훈장 받았으니 김원봉은 건국훈장 받아야 한다는 논리는 사실상 무논리에 가깝다. 더군다나 당사자 본인이 직접 "건국훈장"을 받을 만한 분이 북한에는 없다, 아예 없다. 김일성이 독립 투사 동지들 대부분을 일찍이 숙청했다는 걸 간과했다. 북한에서의 독립 운동은 오직 김일성만 존재한다.

훈장의 격이 없다고 하지만 무궁화대훈장을 시작으로 나열 된 순서가 사실상의 훈장 격이 되는데 건국훈장과 무공훈장 사이 국민훈장이 있기는 해도 그 국민훈장과 건국훈장은 절대 같을 수 없고 동일하게 보지도 않는다. 건국훈장 받은 분들과 국민훈장 받은 사람들 내역만 보더라도 차이를 충분히 알 수 있는데 둘 다 최고의 훈장인 건 맞지만 건국(창업)과 유지(수성)는 다를 수 밖에 없다. 애초에 보훈 규칙에는 북한 정권을 수립하는데 일조한 사람은 건국훈장 및 독립유공자 대상이 안된다는 기준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식이 가능하다면 애초에 피아 식별도 안되고 좋은 놈, 나쁜 놈 구분이 안되니 보훈 시스템 자체가 제대로 나갈 수 없다. 이건 뭐 이런 논리에 부연 설명을 하는 것 자체가 부끄럽지만 그래도 혹시 혹해서 설득 당하는 사람이 있을까 싶어 참견을 했다.

수출 잘해서 수출 탑 트로피 받은 기업인이라면 얼마든지 산업훈장 받을 수 있다. 체육 선수가 금메달 여럿 따고 국가 브랜드 위상 높이면 체육훈장 받을 수 있다. 공무원이 큰 성과를 안내도 정년 퇴직을 하게 되면 근정훈장 받을 수 있다. 공무원 생활 30년 이상 하고 나온 분들 집엔 다 근정훈장 있다. 게임 잘 만들고 성공해도 문화훈장 받을 수 있다. 황장엽 비서 같은 분이 월남해서 북한을 비판하는 입장이 된다면 충분히 국민훈장 줄 수 있다. 근데 단순 상훈법에 근거만 두지 않고 보훈법에 연결된 건국/무공/보국 세 훈장은 열심히 한다고 주는 것이 아니고 조건이 된다고 다 주는 것이 아니다. 누구는 같은 상황인데 국민훈장 받았으니 나도 국민훈장 주라 이건 되지만 저 사람은 국민훈장 받았으니 난 건국훈장 달라 이건 당연히 씨알도 안 먹히는 말이다. 훈장이라고 해서 다 같은 훈장이 아니다.

단순하게 보면 역사학자가 하는 말이니 꽤 논리적으로 받아들일 분도 있겠지만 저런 식으로 아이들마저 설득 당하면 굉장히 곤란해진다. 건국훈장이 딜의 대상이 되는 것도 우습지만 재벌 회장도 받고 스포츠 스타도 받고 연예인도 받는 훈장을 김원봉은 왜 못 받냐는 것 밖에 안되니 내가 뒷골이 안 땡길 수가 없다. 국민훈장은 백 개를 받아도 유공자가 되지 못하지만 건국훈장은 하나만 받아도 본인 뿐 아니라 손자녀 삼대가 보훈대상자가 되어 보훈처의 관리를 받는다. 훈장의 격을 무시해도 수준이 있는 것이지 국민훈장 받은 북한 사람이 있으니 김원봉의 북한 활동은 훈장 받는데 문제가 없다는 인식은 상당히 위험하다. 그 훈장이 그 훈장이 아니다.

결론만 내면 이렇다. 그는 위대한 영웅이었다. 영웅이다가 아니라 영웅이었다. 일제 시대 일본이 한반도를 식민지 삼으며 노략질을 하고 만행을 저지를 때 그는 그 누구보다 위대하고 멋진 영웅이었다. "나 밀양의 김원봉이오" 이 한 마디가 많은 독립 운동가, 애국지사에게 큰 힘이 될 정도로 그는 잊혀져서는 안되는 영웅이었다. 다만 그의 무력 투쟁은 일본처럼 칼과 총으로 대적할 때만 빛을 발휘 했다. 총과 칼이 없어진 해방 이후에는 그는 사상을 전파하는 지도자가 아닌 이제는 쓸모 없어진 과거의 인물이었다. 

1인자가 될 수 없는 숙명, 북한에서도 김일성 밑에서 결국 보조자 역할을 해야 했던 것처럼 그는 남한에서도 자리 잡기 애매한 상황이었다. 총과 칼이 더 이상 필요치 않는 새로운 세상이 열린 상황에서 그동안 총과 칼로 무장하고 무력 투쟁을 한 투사는 설 자리가 없다. 의열단 자체가 무력 항쟁 중심 조직이었기 때문에 무력이 필요치 않은 상황이라면 무력 중심의 세력은 뒷방으로 밀릴 수 밖에 없다. 그런 그가 결국 총과 칼을 앞세운 김일성을 택한 것도 그나마 자기가 설 자리는 저 쪽이라 판단하는데 일조를 한 셈이지만 중요한 건 그 총과 칼이 결국 우리 민족끼리 향하는 결과를 낳게 되었다는 점이다. 물론 그 자신도 그 총과 칼이 우리 민족끼리 향하는 걸 반대했고 원치 않았으나 그러기에는 자기 세력이 너무 약했고 힘을 못 썼다. 사회주의 노선은 따르되 무력 남침은 하지 않으려면 결국 김원봉은 김일성을 잡아야 하는 결론이 나오는데 이는 역설적으로 그가 김일성에게 반란으로 몰려 간첩으로 처형 당하는 계기가 될 수 밖에 없고 실제로 그는 그런 이유로 처형이 된다.

문재인 대통령은 대통령이 되기 이전 당 대표 시절 광복절을 맞아 페이스북에 이런 글을 올린 적이 있다. "광복 70주년을 맞아 약산 김원봉 선생에게 마음속으로나마 최고급의 독립유공자 훈장을 달아 드리고 술 한 잔을 바치고 싶다", 워딩만 놓고 보면 최고의 최고, 탑 오브 탑 예우와 훈장을 드려야 할 분이라는 말이 되는데 내가 쭉 썼던 독립 투사 김원봉에 대한 관점에서 보면 나 역시 스타들의 스타, 투사들의 투사라 평하기 때문에 그것이 무얼 말하려 하고 무슨 의미인지 충분히 공감이 된다. 최고의 존엄성으로 모셔야 할 분, 추앙 받아야 할 분이 오히려 추악한 상황에 놓인 것에 대한 안타까움이 분명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마음 속으로 가지고 있어야 할 "아쉬움"과 "미안함" 때문이지 한 편에 자리 잡은 "실망감"에 대한 부분마저 무시할 수 없기 때문에 당 대표 시절 했던 말처럼 "마음속으로나마" 하는 것이 최선, 그걸 마음속이 아닌 현실에서 다른 사람 의견 다 무시하고 자기 마음속에 있는 걸 마음대로 하려 한다면 당연히 지탄의 대상이 될 수 밖에 없다. 

상황이 안되니 마음이라도 그렇게 하겠다는 표현이라는 것도 알지만 (반대로 상황이 되면 이렇게 제대로 예우하겠다는 것도) 순국선열은 누구 한 사람의 생각, 마음으로 정해지는 것도 아니고 단순하게 한 면만 보고 판단할 수 없다. 오히려 김원봉이 우리나라 역사에서 차지하는 의미는 다르게 해석될 수 있는데 현충일에서 언급 되더라도 위대한 영웅이 아닌 시작과 끝이 다른 사람의 한 나쁜 예시로 드는 것이 더 정확한 언급이라 할 수 있겠다. 아이들에게 이런 사람이 있었다는 영웅담이 아니라 아무리 좋은 일을 해도 끝에 가서 나쁜 짓을 하면 아무 소용 없다는 결론, 영웅이 끝에 가서 사람들을 죽이는 나쁜 자리에 있게 되면 그 영웅의 자리가 어떻게 되는지에 대한 사례로 오히려 김원봉을 끄집어 낼 순 있다는 것이다. 한 인간으로, 한민족의 한 사람으로, 독립 투사 중 위대한 영웅으로 그의 파란만장한 인생이 아쉽고 쓸쓸하고 한 편으로는 미안한 것도 있지만 그가 독립군으로 이룬 공적보다 그가 북한에 몸 담고 있으면서 생긴 북한의 만행과 민족 분열의 책임이 그걸 뛰어 넘기 때문에 그의 공적은 화려 했으나 초라하게 묻힐 수 밖에 없는 태생적 환경은 어쩔 수 없는 것이다.

원래 착했던 사람이 나중에 가서 변절해 나쁜 악인이 되는 경우가 있다. 반대로 원래 악당이었는데 점점 시간이 지나 선인이 되는 경우가 있다. 영화나 드라마에서도 종종 나오는 스토리 구성이다. 주인공이 원래 나빴는데 점점 깨우쳐 가면서 좋은 사람이 된다는 건 지금도 자주 애용되는 소재다, 당신이라면 둘 중 어떤 사람이 더 낫다고 보는가, 분명 둘 다 공, 과가 모두 있고 비중도 똑같다. 단지 출발과 끝이 다를 뿐이다. 하지만 이 문제의 정답은 의외로 간단하다, 

많은 사람들은 시작 보다는 결론, 결말, 결과를 더 따질 수 밖에 없고 그게 한 사람의 인생, 한 사람의 이야기라면 마지막에 어떤 모습이었고 어떤 모습으로 기억되는지를 더 중요시 할 수 밖에 없다. 처음 좋은 사람이었다가 나중에 나쁜 사람이 된 경우, 처음에는 나쁜 사람이었는데 나중에는 좋은 사람이 된 경우, 당연 사람들은 후자를 택한다. 개과천선이라는 말이 그래서 있다. 성과가 매우 좋고 나쁜 놈 많이 잡은 착한 경찰이 나중에 나쁜 짓을 하면 더욱 욕을 먹는 것도 그래서고 선한 얼굴로, 선한 자리로 남을 속이는 사기꾼을 그래서 더 싫어 한다. 

결국 사람은 누구나 원래 나쁜 놈이었던 친일파가 나중에 잘못을 뉘우치고 깨우쳐 좋은 일을 한 경우 그 사람에 대해 맹목적으로 비난하지 않는다. 물론 그렇다고 처음 행동이 다 용서가 되는 것이 아니지만 상대적으로 그걸 뒤집을 만한 후일담이 있다면 어느 정도 가려서 뗄 거 떼고 그 사람을 보게 되는 것이다. 김원봉은 분명 공, 과를 모두 가진 존재지만 그 공이 앞에 있냐 뒤에 있냐가 그 사람을 가르는 또 하나의 기준이 될 수 있다. 분명 박정희는 친일파라 할 수 있고 쿠테타를 일으킨 정치 군인으로 비난의 대상이 되지만 그가 여전히 일부 사람들에게 존경 받는 건 그가 대통령이 되고 난 뒤 우리나라 경제와 국가 발전이 눈에 띄게 좋아졌기 때문이다. 그것이 오히려 독재였기에 가능하다고 보는 사람도 있는데 결과적으로 박정희 때문에 잘 먹고 살게 되고 지금도 국가 발전의 토대가 되었다고 믿는 사람이 많다면 결국 그는 악인 보다는 선인으로 기억될 수 밖에 없다. 마지막의 모습이 사람들에게 얼마나 좋은 이미지를 주고 좋은 일을 했느냐가 바로 박정희 사례에서 볼 수 있는데 (사람들이 이중적으로 갈린 이유) 김원봉의 경우는 되려 나중에 좋지 않은 선택을 했기 때문에 더욱 자비를 베풀 수 없는 상황이 된다. 박정희의 공적만 보면 안되는 것처럼 김원봉의 공적만 보면 안되는 것도 같다. 물론 둘 다 무조건적인 비난의 대상이 될 수 없는 것도 같다. 분명 국민들, 대중들, 인민들에게 영향을 크게 준 공, 그리고 과가 분명 있기 때문이다.

간단하다. 

1번, 원래 좋은 사람이었는데 계속 좋은 사람으로 남아 기억 되는가

2번, 원래 좋은 사람이었는데 나중에 변절해 악당이 되어 악인으로 기억 되는가

3번, 원래 나쁜 사람이었는데 나중에 착해져서 착한 사람으로 기억 되는가

4번, 원래 나쁜 사람인데 죽을 때도 나쁜 짓 계속 하다 끝까지 나쁜 놈으로 기억 되는가

여기서 사람은 무조건 1번 택하고 그 다음 순서로 3번 택하게 되어 있다. 마치 어릴 적 보았던 동화책 이야기처럼 나쁜 악인들이 마무리 할 때 다 좋은 사람이 되는 해피 엔딩으로 그려 마무리 하는 것처럼 사람은 끝에 가서 개과천선 하면 그 사람을 그나마 좋게 본다. 끝까지 악당 짓 하다 엔딩을 맞으면 끝까지 벌 받고 고통 받는 걸로 동화는 그려지게 되어 있다. 더욱 중요한 건 위에서 1 - 3 - 2 - 4 순서가 아니라 1 - 3 - 4 -2 순이라는 것이다. 처음부터 나쁜 놈은 끝에 가서 나쁜 놈이 되어도 그게 당연하니 오히려 더 나쁘게 볼 것도 없지만 2번처럼 원래 착했던 사람이 나쁜 악당이 되면 그건 두 배로 더 나쁘게 본다. 천사의 얼굴을 한 악마가 바로 2번이다. 원래 나빴고 끝에도 나빴던 그냥 원래 나쁜 악당보다 더 나쁘게 보는 것이 바로 원래 착했는데 나중에 나쁜 사람이 된 경우다. 

김원봉은 어디에 속하는가. 원래 나쁜 악인이었다는 3번과 4번은 분명 아니다. 그렇다면 1번과 2번인데 순국선열 자리만 놓고 보면 1번이지만 호국영령과 연관 지어 보면 그는 2번이 될 수 밖에 없다. 현충원에 안장 되어진 수 많은 호국영령에게 큰 잘못을 저지르고 죄값을 치러야 할 당사자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그건 변할 수 없고 바꿀 수 없고 권력자가 아무리 뭐라고 해도 달라질 수 없다. 결국 단순 논리의 접근만으로 그는 아직 우리 기억 속에서 영웅으로 대접 받아야 할 사람은 아니다. 독립 운동의 중심 인물인 것도 사실이지만 북한 괴뢰 정권의 수장 중 하나였다는 것도 사실이기 때문이다. 나라를 지키겠다고 나선 한국전쟁 참전 용사 할아버지들을 무시하고 국군 장병을 무시할 수 있다면, 지금도 최전방 철책선에서 24시간 나라를 지키는 군인들을 아무 생각 없이 무시할 수 있다면 김원봉에 대해 대놓고 민족의 영웅, 국민적 영웅이라 추앙해도 된다. 하지만 단 한 번이라도 참전 용사 할아버지들이 눈에 밟히고 태극기 휘날리며 영화 속 국군들이 눈에 밟힌다면, 포화 속으로의 어린 학도병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있다면 김원봉에 대한 민족 영웅에 대한 호칭은 잠시 보류하는 것이 옳다. 어린 나이에 끌려 모진 수모를 겪었던 위안부 할머니들에 대한 미안함이 크다면 어린 나이에 연필 대신 총을 잡은 학도병에게도 미안함을 가져야 한다. 어린 것들에게 모진 수모를 겪게 만든 당시 어른들이 누구였는지를 상기해야 한다는 것이다. 

친일과 빨갱이는 분명 90년대만 해도 역사 책에만 있는 단어였다. 가끔 뉴스에 등장 해도 과거에 대한 일이지 현재 진행형으로 말하지 않았다. 지금의 50대, 40대, 30대 후반은 반공 교육을 받았어도 그것이 현실의 이야기라 생각지 않았다. 그런데 어느 순간 야당 한 쪽은 토착왜구 친일세력으로, 다른 여당 한 쪽은 빨갱이 집단으로 양분 되었다. 분명 친일과 빨갱이 논란은 중간에 사라지고 KPOP과 K드라마처럼 세계적인 국가로 발 돋음 하며 대한민국이 성장을 했는데 일 순간 다시 과거로 회귀하면서 논쟁이 붙는다. 월남전쟁 조차 경험하지 않은 세대가 지금 한국 경제를 이끄는 중심 세대이고 나라를 이끄는 세대인데 뉴스를 틀면 자연스럽게 빨갱이 관련 뉴스가 쏟아진다. 그것도 북한이 아닌 국내 정치 판에서 말이다. 20대, 30대, 40대가 중심이 되는 건전한 사회가 되어야 하는데 노령 인구가 많아지고 노령 국가가 되면서 그들이 당시 젊었던 시절로 다시 사회 분위기를 만든다. 한 쪽은 친일파로 한 쪽은 빨갱이로, 보수와 진보라는 이름으로 말이다, 유튜브에서 50대 이상 사용자가 폭증 했다는 뉴스가 심심치 않게 등장하는데 이념 전쟁과 색깔 논쟁으로 이득을 보는 놈은 따로 있고 그 덕에 엄한 사람들만 색칠 놀이에 빠져 세상을 파란색과 빨간색으로 양분 시킨다. 어른들의 색칠 놀이는 내가 어릴 때 이후 사라진 줄 알았는데 정작 지금 다시 재활용 되는 걸 보면 지역 감정 만큼 정치 판에서 쏠쏠한 재미를 뽑기에 색칠 놀이 만한 것이 없는가 보다. 내가 분명 학창 시절을 보낼 땐 "야당" "여당"이라는 단어만 존재했다. 좌파, 우파, 좌익, 우익이라는 단어는 국회에서 볼 수 없었고 빨갱이 친일파 역시 거리감이 있었다. 여야가 항상 만나면 싸운다거나 여야 정치권이라는 이름으로 여와 야만 있었지 그 나머지 다른 이름은 없었다.

내가 보기에는 지금 50대, 60대, 70대가 다 사라져야 우리나라가 살 만해질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지 않고서는 40대, 30대, 20대, 10대도 쉽게 물이 들 것 같고 색깔 정치의 희생양이 될 것 같다. 더 나아가 이들 마저 나중에 색깔을 나눠 스스로 벽을 쌓고 싸울 것 같다. 되지도 않는 주장으로 꼬투리만 잡으려는 자한당, 지난 정부에서 사람들이 얼마나 정신적 고통을 받았는지 모르고 제대로 된 반성의 시간도 갖지 않는 불한당. 또 되지도 않는 말빨과 허세로 사회주의에 기반한 소득주도성장을 포장하는 여당과 민주의 이름을 퇴색 시키는 민주 꼬라지들, 둘 다 똑같고 둘 다 다르지 않다. 절대 재생 불가능할 것 같던 자한당이 거의 회복 단계에 온 것 같은데 이건 자한당이 잘 한 것이 아니라 민주당이 못해서다. 노무현 대통령에 대해 실망한 사람들이 곧바로 이명박 대통령을 뽑은 것처럼 결국 이 정부에도 실망한 사람이 크면 사람은 다시 안정적인 보수 집단을 찾게 되어 있다. 다음 정권도 민주당에서 지도자가 나올 것이라 믿었던 나는 최근 들어 자한당이 정권을 다시 잡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오히려 더 하게 되는데 지금 민주당과 청와대가 하는 걸 보면 그래도 과거 정권이 낫다라는 생각이 솔직히 더 든다. 차라리 보훈 역사에 무지하고 무신경 했던 그들이 더 낫다는 것이다. 챙겨 주는 척 이렇게 후벼 파는 정권은 처음 본다.

역대 있을 수 없는 유관순 열사의 중복 서훈, 입맛에 따라 서훈의 등급을 올리고 여론 몰이에 따라 인기 투표처럼 독립 운동가들을 인기 서열로 나눈다. 그 때부터 솔직히 새 정부도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그 근거가 대중의 애국심을 고취 시켰기 때문인데 안중근과 안창호, 윤봉길 의사를 바라보는 국민들의 애국심은 그것과 같지 않다고 여기는 것 같다. 1등급이 아니었다는 이유로 결국 1등급을 주었는데 애초에 의사와 열사를 나눈 이유를 모르쇠 한다는 뜻이고 그것에 대한 여론은 결국 영화, 드라마에 의해 얼마든지 대중의 선호도에 따라 수훈자의 등급과 품격도 바뀔 수 있다는 걸 보여준 예로 이건 옳은 방향이 아닌 잘못된 방향이라는 걸 분명 알아야 한다. 1등 만능주의는 보훈 역사에서도 다르지 않다는 걸 보여준 사건이다. 1등만 기억하는 더러운 세상이라는 유행어가 새삼 생각난다.

누구는 처음부터 잘못된 등급이라 하지만 그것이 정말이라면 2등급 수훈과 3등급 수훈 자체가 의미가 없다. 독립 운동에 1등과 4등이 어디 있겠나, 그럼에도 희생의 정도와 공헌의 가치가 분명 다르고 기준이 있을 수 밖에 없다. 한국전쟁 당시 같은 군인이어도 최전방에서 싸운 돌격대와 제주도 끝 후방에서 장군들 공관 취사병의 참전 희생도를 같게 볼 수 없는 것처럼 건국 수훈자의 등급을 나누는 건 모든 국가가 하는 방법이고 그건 나름의 기준으로 분명하게 나누게 되어 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보훈처의 심사(재심사)가 아닌 청와대의 일방적인 수훈이라는 것, 권력자의 요구에 의해 이루어진 등급이었다는 점에서 보훈 심사의 정당성을 훼손한 일이기도 하다. 유관순에 대한 이중 서훈은 보훈처와 광복회, 보훈자들이 나섰다면 모양새가 그나마 낫겠으나 대통령의 일방적인 명령과 권고로 상훈이 결정된 것인 만큼 이 역시 결코 옳은 행동이라 할 수 없다. 대통령의 제왕적 권리가 늘 문제가 되는 것처럼 각 정부 부처 일에 하나 하나 다 개입하고 간섭하면 부처는 권력자의 입만 볼 뿐 스스로 일을 할 수가 없다.

김원봉은 영웅이었으나 끝이 좋지 못한 영웅이다. 우리에게는 악당의 편에 섰던 사람이고 현충원에 계신 참전용사 할아버지들이 희생 당한 과정에서 상대 적군 쪽에 있던 사람이다. 그 사람이 직접 총과 칼을 들고 싸우지 않았다고 해도, 설령 그 사람이 북한에 가지 않았다고 해도 결과는 달라지지 않고 한국전의 비극은 그대로 진행 되었다고 말할 순 있겠으나 그게 변명이 되거나 해명 거리가 되진 않는다. 민족 대학살의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고 그것이 지금까지 이어지고 분단이 되었다는 사실에 더욱 용서가 되지 못한다. 

만약 통일이 되고 남북이 단일 국가가 되어 통일 한국이 된다면, 그 때는 북한의 인민 영웅과 남한의 국가유공자가 병합되는 과정에서 역설적인 문제가 나올 수 밖에 없다. 둘 다 영웅으로 대접해야 하는 역사의 모순이 생기는 것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통일을 안 할 수 없고 그건 어차피 우리가 부딪혀야 하는 문제이고 해결해야 하는 문제다. 각자의 기준에서 영웅으로 대접 했다면 통합된 통일 한국에서 상처를 치유하는 단계로 모두 인정하고 예우하는 것이 어쩔 수 없는 운명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 때라면 김원봉의 "독립유공자" 서훈, 건국훈장 수훈자 지위는 충분히 논할 가치가 있다. 좌우 개념이 없고 빨갱이와 파랭이 개념이 사라진 세상이라면 그것을 통일 조국에서도 걸고 넘어가는 것이 온당하다고 볼 수 없어 그 때는 독립 운동만이 부각될 수 밖에 없는데 통일 된 한국이라면 대통령의 추념사도 문제가 없고 그것이 화합과 통합의 계기가 될 수 있는 분명한 메세지가 된다고 본다. 아니 오히려 통일 한국이라면 김원봉의 서훈 추진은 분명 화합과 통합의 계기로 충분히 삼을 수 있다. 그것만큼 좋은 국민적 화합 아이템도 없다. 북과 남이 갈라지기 이전의 공통 독립 운동가였고 투사였으며 남북이 갈라지고 다시 통일 되는 과정에서 남과 북을 이어주는 역할이 될 수 있기에 오히려 그 때는 문재인 대통령이 추구하는 방향이 옳은 결정이 될 수 있다. 그리고 그 때의 상황이라면 현충원에 안장 되어진 호국영령들, 한국전 희생 전몰장병과 순직자들 모두 기꺼이 받들어 죽어서라도 환호하고 기뻐해 줄 것이다. 그 발언 자체가 통일이 되는 순간의 현충일 추념사로 쓰였다면 호국영령들은 모독, 모욕으로 생각지 않을 뿐더러 만세를 외치며 그들의 죽음이 결코 헛되지 않았음에 후손들에게 감사의 통곡을 할 지 모른다. 

그러나. 지금은 아니다. 타이밍이 절대 아니다. 통일이 되기 전까지, 김원봉은 과거 위대한 독립 투사, 독립운동가였을 뿐, 그렇다고 그게 독립유공자 지위까지 확보될 순 없다. 그게 가능하다면 대한민국이 필요 없고 대한민국 국군이 필요 없고 대한민국이 생존해야 할 이유가 없다. 그게 안되고 지금까지 등록을 거부한 것이 바로 대한민국이 정상 국가라는 걸 증명하는 것인데 아직 통일이 되지 않은 분단 상태에서 그런 식의 접근은 누가 봐도 화를 불러 오는 불씨가 되고 또 하나의 분열을 일으킬 뿐이다. 지금 정치권처럼 말이다.

김원봉을 잊지는 말자, 그는 존중 받아야 할 역사적 위인이고 독립 운동사에 절대 빠져서는 안되는 의열단의 단장이다. 그러나 그건 통일이 되는 날까지 보류하자, 그는 한민족에게 판도라의 상자와 같은 존재가 되어 버렸다. 다만 그게 언제가 되든 내가 아닌 후대에 통일이 이루어진다면 김원봉을 잊지 않도록 아이들에게 가르쳐 주되 반드시 그의 후일 처세에 대해서도 꼭 알려주어야 한다. 통일이 된다면 용서할 수 있지만 통일이 되기 이전까지는 기억하되 예우를 해서는 안되는 마음속에만 간직해야 하는 위인이라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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