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대의 짬밥과 계급 상관성
미필자인지 군필자인지 가려내는 용도 혹은 군대 계급과 관련해 에피소드로 종종 화자 되는 것 중 하나가 "자네가 주임원사인가?"라는 썰이 있다. 갓 전입 온 소위가 행보관에게 인사차 건넨 말을 의미하는데 계급만 놓고 보면 아무 문제없는 당연한 대화로 보이지만 군 생활을 해 본 사람들은 이게 얼마나 황당한 대화인지 안다. 군대에서는 비공식적으로 계급보다 무서운 짬밥이라는 것이 분명히 존재하기 때문이다.
일부는 그래도 군대는 계급 사회이기 때문에 계급이 최우선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으나 그건 어디까지나 하나는 알고 둘은 모르는 이야기, 짬밥이라는 건 (경력) 공직 사회나 민간 사회나 상호 쌍방 관계에 있어 특정 구간 이상으로 벌어지면 짬대우, 경력 우대를 해주는 것이 국룰이기 때문에 짬밥이 계급에 무조건 밀린다고 생각한다면 오산이다. 경력이 (짬) 비슷하거나 그 차이가 두 단계 직급 이상 벌어지지 않는다면 그 말도 틀리다고 할 순 없으나 짬의 차이가 직급을 따질 때 두 단계 이상 벌어질 정도의 연차나 연식이 있다면 짬은 "절대" 무시할 수 없다. 사회라고 해서 다르진 않다.
고졸 사원이 4년 정도 지나면 보통 대졸자 처우를 해준다. 고졸자의 회사 경력 4년을 대졸자의 학력 4년과 같은 선상에서 4년이라는 시간을 두고 기준점을 잡아 주는 것이다. 짬밥과 계급, 경력과 학력이라는 서로 다른 기준을 놓고 우열을 따질 때 맞물리는 순간이라는 뜻이다. 물론 고졸 사원이 해당 회사에서 꾸준히 근무해 2년 만근을 채운다면 전문대졸자와 같은 처우를 주는 것이 보통이다. 이때 "처우"를 동일하게 해 준다는 것이지 4년제 졸업자와 동등한 입사 기준을 적용한다는 건 아니니 착각하지는 말자. (그래서 승진 속도는 다르다)
대졸자 입장에서는 고졸자의 단순 근무 회사 경력 4년이 대학 4년의 수준과 같다고 보지는 않을 것이다. 대졸자는 고졸자에 대해 4년이라는 짬밥은 인정하나 그게 자신과 같은 출발선이라고는 인정하지 않는다. 반면 고졸자의 경우에는 자신이 이 회사에 대해 4년 근무했기 때문에 이제 막 입사한 어리버리 초짜와 같은 선상에 놓거나 그보다 낮은 직급의 부하로 인식되는 걸 이해하지 못한다. 4년이나 고참인 자가 이제 며칠 근무하지도 않은 신입에게 허리를 숙여야 하니 말이다.
하지만 여기서 주의해야 할 것은 그 짬도 짬 나름이라는 것이다. 학력이라는 건 경력과 대치가 되고 경력 역시 학력과 견주어 상호 인정이 될 수 있는 여지가 많은데 현장에서 배운 기술력과 학교에서 배운 학습력에 있어서 그 주기가 비슷하다면 그 "력"이 그 "력"과 큰 차이가 나지 않는다고 보기 때문에 쌤쌤이 되는 건 어디 가나 비슷하다. 그러나 그 력과 다른 력의 우열 관계를 따질 때 격차가 매우 크다면 당연히 그 격차 수준만큼 대우를 해주고 인정해주는 것이 사회생활이 단면이다. 공직 사회도 마찬가지.
고졸 출신 4년차와 대졸 출신 1년 차의 경우라면 업력과 학력이라는 공력이 비슷해 둘 사이에 미묘한 신경전이 있을 수 있으나 고졸 출신 15년 차와 대졸 출신 1년 차의 경우라면 절대 같은 선상에 놓고 볼 수 없다는 뜻이다. 학력이 아무리 우세하다고 해도 경력이 "압도적으로" 높다면, 그 경력이 절대 우위에 있다면 늦게 들어온 사람의 경우 학력이 어찌 되든 상관없이 직접적인 명령, 지휘 체계에 있는 상사나 상관이 되지 않는 이상 학력으로 경력을 누를 순 없다. 즉 "이력"에서 밀린다.
학력 VS 경력 = 이력
영화 "삼진그룹 영어토익반"을 보면 그 예를 더욱 확실히 알 수 있다. 주인공 이자영은 고졸에 사원이지만 그를 따르는 후배 최동수는 대리다. 직급만 놓고 보면 이자영은 사원, 최동수는 대리다. 하지만 최대리는 이자영에게 늘 "선배님"이라고 부른다. 최동수가 대리 직급을 달았음에도 이자영에게 선배님이라고 꼬박꼬박 호칭하는 걸 보면 입사 후배라는 걸 알 수 있고 입사 후배가 대리로 바로 올라간 걸 보면 그는 대졸 사원이었다가 이자영보다 먼저 대리를 달았다는 걸 유추할 수 있다. 즉 대졸 사원으로 입사한 최동수가 학력은 물론 직급까지 높지만 먼저 입사한 이자영의 경력을 무시할 수 없기 때문에 선배님이라고 부른 것.
최대리가 이자영에게 선배님이라는 호칭을 쓸 때마다 주위 상사는 최대리에게 대리가 사원에게 선배님이라고 한다고 혼을 내지만 최대리는 둘이 있을 때 무조건 이자영에게 "선배님" 호칭을 붙인다. 결국 삼진그룹에서 대리 직급을 단 남녀 직원은 다 이자영보다 짬이 적다는 걸 알 수 있다. 이는 대리 직급을 단 남녀 직원은 모두 대졸자라는 뜻도 된다. 영화에서는 고졸 여사원들이 상당히 많이 나오는데 그중에는 대리 직급을 단 고졸 선배가 안 나오기에 여사원이라 해도 대리는 모두 대졸자라는 걸 알 수 있다. (상황을 보면 나올 순 있으나 결혼, 임신 등의 이유로 일찍 퇴사하는 비율이 높아 자연스럽게 이런 구도가 생긴 걸로 보인다. 이건 지금도 똑같지만)
군대에서 주임원사와 갓 임관한 소위의 관계가 그렇다. 물론 여기에는 절대적 관계 구도인 "계급"이라는 구조가 확실하게 깔려 있어 민간 사회의 직급을 가지고 군 계급으로 환산해 단편적으로 대입하기 어렵지만 그렇다고 해서 크게 달라지는 건 없다. 하사와 중사, 조금 더 나가 상사까지는 소위가 어느 정도 맞먹는 것 까지는 뭐라고 하진 않지만 원사 정도 되면 소위라고 해서 계급만 믿고 계급으로 밀고 나갈 수 없다. 이자영과 최동수의 서열과는 차원이 다른 (입사 연도) 원사와 소위의 임관 연도 차이는 아버지와 아들 나이와 비슷하기 때문에 아들이 아버지에게 하대하는 것과 다르지 않게 된다. 원사가 군인이 되어 이미 짬밥을 먹을 때 그 소위는 분유를 먹고 있었다는 뜻이다.
무엇보다 일반 공무원처럼 계급이 9급에서 1급으로 단일 체계를 이룬다면 몰라도 부사관과 장교라는 이원화 체계로 간부 사회가 형성된 것이 군대이기 때문에 병 그리고 부사관, 사병 전체 집단을 대표하는 부사관 최고 계급인 원사는 일반적인 부사관 계급 중 하나라고 단순하게 생각하면 안된다. 장교 아래 부사관 중 하나라고 볼 수 없다는 것이다. 원사는 병과 부사관을 "대표"하는 최고 계급이라 (혹은 병을 "대표"하는 최고 계급) 원사와 달리 아무것도 대표하지 않는 장교 최하위 계급 소위는 계급 만으로 따지기 어렵다. 그래서도 안된다. 그래서 병사들도 심리적으로는 행보관이나 주임원사를 더 높게 여긴다.
짬밥은 이력으로 누를 수 없을 때만 인정
계급만 놓고 보면 소위가 원사보다 높지만 상징성과 대표성을 놓고 보면 한 쪽은 부사관 이하 전체 집단을 대표하는 우두머리이고 한쪽은 장교 이상에 해당하는 그 집단의 쫄이기 때문에 장교라고 해도 부사관인 "원사"는 함부로 할 수 없다. 소위는 원사에게 직책이 있다면 직책과 함께 "님"을 붙여줘야 하고 직책 없이 직급만 있다면 직급에 "님"을 붙여 존대해야 하는 것이다. 계급으로만 따질 수 없는 대표성을 가진 직급이 바로 원사이기 때문이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원사가 소위에게 반말을 하거나 마찬가지로 하대할 순 없다. 부사관 최고위 직급이라고 해도 그건 부사관과 병을 대표할 때이지 계급 체계로 보면 소위보다 아랫사람이고 지휘관은 아니어도 지휘자에 해당하는 것이 소위이기 때문에 소위를 따라야 할 명분과 책임이 있다. 결국 상호 존칭하고 상호 존대하는 사이가 되어야 하지 원사가 소위를 함부로 깐다면 이 역시 하극상에 해당되며 징계 처분 대상이 된다.
계급만 놓고 따진다면 계급이 높은 사람이 서열이 높은 것이 당연히 맞지만 특정 계급을 놓고 말하는 경우, 특히 그 특정 계급이 원사인 경우라면 예외성이 매우 높기 때문에 반드시 계급 논리에 따라야 한다고 우기기 어렵다. 계급이 우선이라고 하는 사람의 주장이 완전 맞다고 할 순 없지만 그렇다고 틀리다고 할 수 없는 것도 같은 이치인데 그게 특정 계급에 한정된 이야기라면 그 논리는 달라질 수 있음을 알아야 한다. 다른 계급 간의 문제라면 계급 우선이 어느 정도 맞지만 특정 계급이라면 (원사나 준위) 결국 짬밥이라는 건 학력과 경력을 합쳐 누를 수 없는 경지에 이른 경우라면 계급장만 믿고 무조건 누를 수 없다. 최소 동급이거나 그 이상 "예우"해줘야 하는 것이다. 최대리가 이자영에게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이자영은 최동수에게 최대리 님이라고 깍듯이 대하고 최대리는 이자영에게 선배님이라고 깍듯이 대한 것처럼)
실제 군사법원 판결을 보더라도 이는 지금까지도 어느 정도 통용되고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수 십년전 과거도 아니고 최근에 벌어진 (2021년) 사건을 보면 이제 막 다른 부대에서 전입 온 중위가 행보관 상사에게 하대는 물론 정신적, 언어적으로 얼차려를 준 사례가 있었다. 행보관은 참다못해 폭행으로 되갚았는데 당연히 행보관은 상관을 폭행한 죄로 하극상 처분을 받아 징계 처분되었다. (당연히 옷도 벗었다) 장교가 부사관에게 말을 놓는 건 별 일이 아니고 또 잘못된 부분에 있어 행동이 아닌 말로 혼을 낸 것만 보면 장교인 중위가 징계를 받을 일이 없어 보이지만 원인 제공을 한 장교 역시 옷을 벗었다. 부대 운영과 관련해 개인감정이 상한 장교가 행보관을 먼저 건드렸기 때문. (계급장만 믿고 시비를 걸었던 것) 결국 장교도 징계는 없었지만 자연스럽게 옷을 벗었다. 짬 낮은 장교는 짬 많은 행보관에게 시비를 걸어 옷을 벗었고 계급 낮은 부사관은 계급 높은 장교에게 폭행을 가해 옷을 벗었다. 계급만 놓고 보면 서열이 확실하지만 결과적으로 둘 다 서로 건드려서 좋을 것 없다는 걸 보여준 사례다.
자네가 행보관인가?
사람들이 착각하지 말아야 할 것 중 하나가 바로 우리가 우스개로 아는 말은 "자네가 행보관인가?"가 아닌 "자네가 주임원사인가?"라는 말이라는 점이다. 둘 다 직급이 아닌 직책인데 이게 의외로 차이가 크다. 행보관은 행정보급관의 준말로 소대 이상이면 다 있다. 보통은 중대 병력이 상주하고 그 행정실에 행보관이 있지만 소대 병력이 따로 떨어져 상주하는 경우도 있기 때문에 병력이 상주하는 곳이라면 행보관은 어디에나 있을 수 있다. 다만 이런 경우 위 사건처럼 행보관이 원사가 아닌 상사 아래 계급이 주를 이룬다.
중요한 건 군필자라고 해도 행보관 = 주임원사라는 공식으로 알고 있다는 점인데 사실 둘은 같지 않다. 이게 같다고 착각하게 된 이유는 중대 행보관 대부분이 "원사"이기 때문인데 주임원사라는 직책도 "원사"가 맡고 그 주임원사가 있는 곳은 주임원사가 "행보관" 직책도 겸임하는 경우가 맡기 때문에 이게 행보관이 곧 주임원사이고 주임원사가 행보관을 뜻한다고 착각한다. 하지만 행보관은 상사가 맡는 경우도 흔하다. 행보관 = 주임원사는 물론 행보관 = 원사도 아닌 경우도 아주 흔하다는 것이다.
엄밀히 따지면 행보관은 행정보급관이고 주임원사는 그 "부대" 병과 부사관을 대표하는 최고위 부사관을 의미한다. 그렇기 때문에 주임원사는 행정실이 아닌 주임원사실에 있다. 행보관이 상사 계급인 경우도 있는데 이 때의 행보관은 행정보급관의 역할만 할 뿐 그 행보관이 그 부대 부사관을 대표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원사가 아닌 상사도 행보관이 될 수 있다. 그래서 만약 소위나 중위가 "자네가 행보관인가"라고 했다면 사실 큰 문제가 되진 않는다. 물론 그 상대가 상사가 아닌 원사라면 이마저도 예외가 되진 않겠지만 행보관이 상사라면 행보관은 중대나 소대에서 중대장과 소대장을 지휘자로 모셔야 하는 관계이기 때문에 이 멘트가 문제가 되진 않는다. 다만 "자네"라는 하대가 약간 걸림돌이 되는데 어디에나 똘아이는 항상 있기 마련이라 따박따박 반말하고 삿대질하고 욕설을 하지 않는다면 부사관 입장에서는 넘어갈 소지가 많은 것도 사실.
행보관이라는 직책은 단위 부대 이하에서 중대장 지휘 아래 행정을 담당하는 담당관이고 당연히 중대장과 혹은 중대장의 책임을 위탁 받은 소대장이 그 행정 업무의 최고 선임자가 된다. 그래서 계급이 아닌 직책만 갖고 따졌을 때 중대장, 소대장, 행보관의 셋 서열은 명확하게 나온다. 그래서 중대장실 체계 안에 행정실이 존재한다. 반면 주임원사라는 직책은 행정보급관이 아닌 대대, 연대, 사단의 병력을 대표하는 주임이기 때문에 그 사람의 직책은 사병 대표자로서의 역할이 된다. 이 사람이 행보관이라면 몰라도 행보관이 아닌 주임원사라는 타이틀로 근무하는 자리에 있다면 그 사람을 터치할 수 있는 건 사실상 중대장과 같은 지휘자가 아닌 지휘자에게 명령을 내리는 지휘관들, 대대장과 연대장, 여단장, 사단장 밖에 없다. 행정보급관실은 행정 업무에만 영향을 줄 수 있지만 주임원사실은 해당 부대에서 장교를 제외한 전 병력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차이를 먼저 이해해야 한다.
그렇기에 자네가 행보관인가?와 자네가 주임원사인가?는 이야기가 다르다. 같은 직책이지만 이 경우는 일단 계급이 부사관 계급 중 가장 높은 원사일뿐더러 그 주임원사라는 건 대부분 "중대"에 없다. 혼동하지 말아야 할 것이 중대에는 행보관이 있지 주임원사가 있는 게 아니다. 만약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대 이상이 아닌 중대에 "주임원사"가 있다면 그분은 사단장을 당시 소대장으로 맞이하며 반갑게 맞아줬던 행보관 시절의 부사관일 확률이 매우 높다. 쉽게 말해 짬이 차다 못해 넘쳐 "퇴역"을 앞둔 왕고참 원사가 말년에 좀 편히 쉬기 위해 중대로 보내졌다는 뜻이다. 이 정도 짬이면 군대 통틀어 열 손가락 안에 드는 짬밥이라고 봐야 한다.
주임원사와 행보관은 다르다
원사라는 계급으로 말년에 현역 신분으로 부대 근무를 한다고 하면 대대 이상은 아무래도 신경 쓸 일이 있고 자신의 처신과 상관 없이 부대에서 항상 일이 터질 수 있기 때문에 아무 일이 일어나지 않는 외진 곳의 편안한 중대 하나를 골라 행보관 자리를 맡아 남은 짬을 태우는 경우가 종종 있다. 보통은 직업 보도라 하여 민간으로 나갈 직업 훈련 기간을 주지만 짬이 꽉 차 정년을 맞이할 정도가 된 상태라면 민간으로 진출하는 게 아니라 군대에서는 퇴역, 민간에서는 퇴임 할 나이라는 뜻이기 때문에 그냥 직보반 전입 없이 쉬엄쉬엄 행정 업무 보는 것이 더 나을 때가 있다. 이때를 제외하면 중대에 주임원사라는 직책이 공존하는 건 사실상 불가능하다. 그냥 원사가 행보관을 하는 경우는 맡아도 그 행보관이 행보관이라는 직책보다 주임원사라는 직책으로 연대, 대대가 아닌 말단 중대에서 불린다면 그분은 그냥 인간 화석이라 보면 된다. 이 정도면 대대장이 머리를 먼저 숙인다고 해도 장교 집단이 뭐라고 하진 않는다.
항간에는 소위나 중위, 혹은 대위 정도까지의 장교가 주임원사에게 먼저 경례를 하는 경우도 있다고 하는데 그건 오버쿡, 과잉 충성인 건 맞다. 주임원사라는 분들 대부분이 장교 못지않게 열심히 복무한 분들이라 군 짬밥과 군 계급의 경계를 너무 잘 알기 때문에 그렇기 막무가내로 자신들의 짬을 먼저 티 내지 않는다. 내가 본 주임원사도 마찬가지. 경례는 당연히 주임원사라고 해도 주임원사가 대대장에게 먼저 했고 대대장은 허리를 숙여 인사를 했다. 계급상으로는 원사가 중령에게 경례를, 짬밥으로는 대대장이 원사에게 목례로 답하며 절충한 케이스. 물론 둘이 있어서 그런 것이지 다른 장교 집단이 여럿 있었다면 당연히 원칙대로 주임원사가 먼저 경례를 하고 대대장이 경례로 받아들인다. 당연히 주임원사는 대대장이 경례 손을 내린 뒤 자신도 내렸다.
주임원사는 "주임판사", "주임선생님"의 사용 예시와 같다. 회사에서 쓰이는 사원주임, 주임사원도 같은 뜻이지만 기업에서는 사원과 대리 사이 직급으로 주로 쓰기 때문에 그 주임이 결코 높은 뜻으로 보인다고 생각하지 않으나 주임판사와 판사, 담임선생님과 주임선생님의 차이를 이해하고 있다면 주임원사의 주임은 상당히 중요한 역할이라는 걸 알 수 있다. 연대장, 대대장, 중대장 등 지휘관이나 지휘자를 대신해 그다음 차순위권자가 되는 2인자라는 뜻이다. 그러기 때문에 부대장 역할을 맡는 장교가 아닌 이상 일반 지휘자급의 장교는 당연히 2인자가 아니기에 주임원사 격을 높게 보게 되는 것이다. 작전 체계에서는 중대장 - 소대장이지만 군 행정 체계에서는 부대장 - 주임원사다. 그래서 실제로 군 생활을 해 본 사람들이면 공감하겠지만 소위나 중위 등의 소대장들이 주임원사를 함부로 대하지 않는다. (함부로 못한다는 걸 잘 안다)
짬밥과 계급의 경계 표시는 바로 "돈"
군대는 물론 계급이 존재하는 공직 사회에서도 통용되는 짬밥 서열 체계표가 있다. 아는 사람보다 모르는 사람이 더 많은데 사실 원리를 이해하면 이것보다 정확한 법칙이 따로 없다. 굳이 어렵게 생각할 것도 없이 급여를 얼마 받고 있는지를 보면 된다. 본봉 기준표가 바로 그 기준점이 된다. 계급에 따라 받는 돈이 다른 건 당연하나 짬밥에 따라서도 영향을 받는다는 걸 알 필요성이 있다. 그 계급밥과 짬밥의 합이 바로 군인 "급여", 연봉인 것이다.
우리는 보통 갓 임관한 소위가 중사에게 밀린다는 걸 안다. 실제 부대 생활에서도 눈치가 있는 소위라면 중사라고 해서 쉽게 하대하지 않는다. 중위 정도 되어도 마찬가지. 소위와 중위가 커버할 수 있는 건 비슷한 짬밥인 하사뿐이다. 반면 대위 정도가 되면 중대장을 한다. 당연히 중대에서 제일 계급이 높은 어르신이 된다. 이 때는 중사는 밟고 간다. 문제는 상사인데 대부분은 대위가 상사라 비슷한 급으로 인식하는 게 보통이다. 그래서 대위는 중대장을 맡고 상사가 행보관을 맡기도 한다.
자 이제 아래 군대 계급별 급여 통계표를 보자, 2020년 기준으로 봐도 마찬가지지만 급여 체계를 보면 계급 순으로 급여를 받고 있지 않는 걸 알 수 있다. 병을 제외한 하사관 이상 대장까지 순차적으로 급여가 책정되고 계급에 따라 급여가 많아질 것이라 예상하지만 절대 (전혀) 그렇지 않다. 즉 짬밥 영향을 무시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짬밥과 합쳐진 급여표는 내 위치(장교)가 어디인지 쉽게 가늠 잡기 좋다. 부사관 중 어느 선까지가 내가 컨트롤할 수 있는지를 쉽게 간파할 수 있다는 것이다.
위 표를 보면 알겠지만 하사관 본봉은 3천 3백만원 정도 된다. 하사관 초봉과 비슷한 급여를 받는 건 소위다. 중사는 4천7백만 원을 받는다. 소위가 중사보다 연봉을 1천4백이나 적게 받는다. 수당이나 보너스를 제외한 본봉만 따졌을 때다. 세후가 아닌 세전이다. 실수령액을 따지는 것이 아닌 연봉만 갖고 따지는 것이니 실수령액에 따른 논란은 의미가 없다. (부대마다 직책마다 급여 차액이 크니) 중위의 급여를 보면 본봉 초봉이 3천5백만 원으로 하사관보다 2백만 원 정도 높다는 걸 알 수 있다. 역시 중사에는 한참 못 미친다. 앞서 설명한 소위와 중위, 하사와 중사 서열 관계와 똑같이 떨어진다. 급여를 레벨 포인트로 치환해 마치 캐릭터 지수를 본다고 하면 이해가 더 빠를까
대위 급여는 2020년 기준 5천 5백이다. 소위와 중위 시절에는 하사관과 비슷한 급여를 받았지만 대위가 되면 확 오른다는 걸 알 수 있다. 이때의 급여는 중사 4천7백을 넘는다. 대위가 중사 계급을 밟고 간다는 통설이 맞아떨어진다. 반면 상사의 급여는 6천5백으로 대위보다 1천만 원 더 많다. 상사는 하사의 2배 급여지만 대위는 소위의 2배 급여가 안된다. 상사가 행보관을 하는 걸 보면 대위 짬에서는 상사 짬이 버거울 수 있다. 진급을 앞둔 짬 되는 대위와 이제 막 상사 계급 단 초임 상사라면 몰라도 여기까지는 장교와 부사관 관계라고 해도 어느 정도는 대등한 서열 관계를 갖는다.
원사의 급여는 연봉 8천 4백만원이다. 상당히 높다는 걸 알 수 있다. 소위 3년 치가 원사 1년 치랑 비슷하다. 소위가 주임원사를 보고 자네가 주임원사인가? 했다는 말이 왜 화제가 될 수밖에 없는지 새삼 느끼게 해 준다. 이 급여 차이만큼의 짬밥이 존재하는 것이고 그 짬밥은 보이지 않는 사실상의 계급인 것이다. 그냥 원사가 아닌 주임원사라면 저 원사 급여에 직책에 따른 부과 수당이 상당하기 때문에 연봉은 1억 원대를 넘긴다. 실제로 의전 서열상 합참 주임원사는 "중장"으로 예우하고 육군본부 주임원사는 "소장"으로 예우하는 것만 보더라도 급여 체계와 짬밥 체계는 거의 99% 기준점 삼기 딱 좋다. (예우하는 것과 의전하는 것, 대우하는 건 본질적으로 다르다, 그건 구분하자. 의전과 예우만 중장급, 소장급으로 한다는 것. 하지만 이런 주임원사는 워낙 넘사벽이라 대령 정도는 충분히 커버한다)
군인 아내는 남편 계급따라 아내 서열도 정해진다고 하는데 소령 장교 남편을 둔 부인이 부사관 계급인 원사 남편을 둔 부인을 보고 개무시했다가는 놀랄 수도 있다. 하필 그 분이 합참 주임원사라면 더더욱. 세전 연봉 1억 4천 받는다는 사실과 소령 남편보다 합참주임원사 파워가 훨씬 더 막강하고 영향력을 줄 수 있다는 사실을 안다면 부사관이라고 해서 함부로 대할 수는 없을 것이다. 군인 급여는 그냥 주는 게 아니라 그만큼 부여된 책임과 권한에 따라 주게 되어있다. 계급 놀이를 종종 하는 군인 아내들이 간혹 있는데 군인 급여는 계급에 따라 순차적으로 주는 것이 아니라는 걸 상기할 필요성이 있다.
대한 남아들은 대부분 대위가 맡는 중대장은 몰라도 중령 정도 되는 대대장이 되어야 행보관 원사랑 맞짱 뜰 수 있다고 여긴다. 과연 그럴까? 대위는 연봉이 5천5백이고 소령은 7천8백만 원 정도 된다. 원사의 연봉은 8천4백. 결국 대위와 소령은 원사 계급의 행보관에게 딸린다는 걸 역시 증명했다. 반면 중령은 연봉 1억 원대를 받는다. 부사관 최고위 계급인 원사를 본봉만 따졌을 때 처음으로 앞서는 장교 계급이 바로 중령이다. 군필자들이 대대장 정도 되면 행보관은 주무를 수 있다고 여긴 걸 급여표로 보면 정확히 맞아떨어진다. 주임원사 타이틀이 아닌 그냥 행보관 타이틀을 단 원사를 "자네"라고 해도 장교 집단에서 그나마 탈 나지 않는 건 결국 중령 이상이라는 말이다.
준위도 마찬가지 급여가 원사와 비슷한데 준위 급여를 누를 수 있는 장교 집단 첫 시작점이 바로 중령으로 대대장 위치에 있다. 실제 관계를 보면 준위도 대대장 이상한테는 깍뜻하게 대하는 걸 볼 수 있는데 실제 병사들이 본 간부 사회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걸 알 수 있다. 무엇보다 인터넷에서 흔히 알려져 있는 부사관과 초급 장교 계급 간 서열 구도에서 소위는 하사와 같고 중위는 중사와 같고 대위 소령은 상사와 같고 중령이 원사, 대령 이상이 주임원사와 같다는 계도가 있는데 (상호 간의 짬밥 대우) 급여 통계표로 치환해 보면 중위가 받는 급여는 3천5백만 원으로 중사 4천7백만 원과는 괴리감이 있지만 중위와 중사는 병사와 마찬가지로 의무복무 후 전역하는 계급이면서 장교의 경우 중위 이하는 생도 급여나 장학금(ROTC) 등의 금전 혜택이 있었기 때문에 본봉에서는 오차는 사실상 없다고 봐야 한다. 인터넷에 떠 도는 계도가 사실상 이치에 맞게 떨어진 셈. 대위와 소령은 5천5백만 원에서 7천8백만 원인데 그들이 누를 수 있는 부사관 계급은 상사 6천5백으로 역시 맞게 떨어진다.
민간 사회, 기업에서는 이 룰을 적용할 순 없다. 삼성그룹 부장과 롯데그룹 부장, 중소기업 부장의 연봉을 단순 비교해 둘 중 누가 더 쎈 놈인가 따질 수 없는데 민간 사회는 개인 실력이라는 변수와 성과 체계가 있기 때문에 사람마다 연봉이 다르게 되어 있어 단순 비교가 어렵다. 자리가 아닌 사람에 따라 급여가 다르기 때문에 오직 포트폴리오 작업 실력과 업력을 상징하는 경력을 중시할 수밖에 없다. 일반 공무원이나 경찰 소방 공직 사회도 마찬가지. 군대처럼 사람이 아닌 자리로 승부하는 곳이기 때문에 개인 실력에 따른 변수는 거의 없지만 간부 체계가 이원화되었다고 해도 군대는 원사와 준위가 소위로 진급하지 않는 구조이고 부사관이 장교로 진급하는 구조가 아니기 때문에 기준이 다르다. 일반 공직 사회는 입결 위치가 달라도 직급에 따라 쭉 따라 올라가는 단일 체계이기 때문에 (7급 공무원이 6급을 거쳐 5급 사무관으로 가는 구조, 경찰이 경사에서 경위 경감이 되는 구조) 위 군인 급여표와 동일한 방식으로 대입할 순 없다.
이번 정부에서 육군참모총장과 주임원사단의 기싸움이 있었다는 건 다들 기억할 것이다. 장교가 주임원사에게 반말해도 된다고 해서 말이 많았는데 (주임원사들이 육군참모총장을 제소했다) 국방부 장관은 서열 관계를 재정립하라고 지시하고 넘어갔지만 교통정리가 깔끔하게 되지 않은 것도 분명하다. 서열 관계를 재정립하라고 지시할 게 따로 있을까 싶지만 실제로 "자네가 주임원사인가?"가 현재도 통용되고 있다는 걸 100% 증명한 셈이라 이 말은 우스개 소리가 아니라는 건 확실해졌다. 무엇보다 그 말을 하는 사람들 중 절대 다수도 의무 복무를 하는 징병 장교들 아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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