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 사람도 잘 모르는 "서울의 봄" 영화 공수부대(9공수) 이야기 정리
본문 바로가기
국가/자주국방

인천 사람도 잘 모르는 "서울의 봄" 영화 공수부대(9공수) 이야기 정리

by 깨알석사 2024. 2. 28.
728x90
반응형

강철부대

영화 "서울의 봄"이 장안의 화제다. 12.12를 겪은 세대도, 겪지 않은 세대에게도 다시금 당시 상황을 돌이켜보고 무엇이 문제이고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관심이 쏠리면서 천만 관객을 돌파하는 흥행몰이를 하고 있다. 물론 후반 결말은 상상의 나래로 만들어진 가상의 상황이지만 그렇다고 12.12 군사반란의 본질까지 흐려지는 건 아니라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편이다. 그건 단지 극화화는 과정에서 치밀하고 몰입감 있는 긴장감을 만들기 위한 영화적 요소로서의 장치로 봐야 할 것이지 아예 없던 일을 만든 거짓과는 차이가 있다. 

영화에는 주요 병력으로 점령군(반란군)과 진압군 쪽에 공수부대가 등장하는데 1공수, 3공수, 5공수, 7공수, 9공수, 11공수, 13공수 중 수도권에 있는 1공수, 3공수, 5공수, 9공수 4개 공수여단이 등장한다. 수도권에는 이들 4개 공수여단만 있었기 때문에 사실상 수도 서울로 바로 진입할 수 있는 공수부대는 다 출동한 셈인데 이중 9공수여단만 빼고 나머지는 모두 전두환 쪽에 붙어 반란군으로 나오고 9공수만 장태완 수경사 쪽 진압군으로 나온다.

공수부대에 붙은 예하부대명을 보면 눈치채겠지만 우리나라 공수특전여단은 모두 홀수로만 이루어져 있다. 영화에는 반대로 실제와 다른 짝수로 나오는데 각각 실제부대 숫자에 +1을 해서 각각 표기를 했다. 1공수는 2공수로, 3공수는 4공수로, 5공수는 6공수로 나온다 다만 이조차 의도한 지는 모르겠으나 착한 편(?)에 섰던 9공수만 유일하게 원래 부대명보다 숫자가 적은 -1로 8공수가 되어 나온다. 여기서 공수부대는 1, 3, 5, 7이 아닌 1, 3, 5, 9 공수부대가 나오는데 7공수는 전라도에 있는 공수부대로 당시 12.12 사태에 동원되기 힘든 거리에 위치하고 있다. 9공수는 영화처럼 인천에 주둔한 공수부대였기에 1시간 이내 서울 도심 중앙에 도착할 수 있는 공수부대라 수경사를 도와 12.12 군사반란 진압에 동원된다. 9공수는 2024년 지금까지도 인천에 주둔 중이다.

공수부대 VS 특전여단 VS 공수특전여단 VS 특전사

공수부대 이야기를 하기에 앞서 일단 용어부터 정리해 보자. 흔히 공수부대=특전사로 알고 있는데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이 공식이 맞지만 원래 개념과는 거리가 있다. 공수부대가 따로 있고 특수전부대가 따로 있다. 다만 우리는 원 개념의 공수부대가 없고 특전사가 공수부대처럼 낙하산을 타고 주로 침투하기 때문에 비슷하다고 여겨 공수부대 명칭을 같이 붙였다.

공수부대는 이름처럼 병력과 병기, 물자, 화력 전부를 수송기에 태워 하늘로 보내 공중에서 적지로 투하하여 적과 싸우는 부대를 말한다. 일반적으로 보병은 육상 수송부대를 활용해 이동하기 마련인데 공수부대의 경우에는 수송기를 타고 하늘로 떠서 이동한다는 차이점이 있다. 이때 중대나 대대병력이 아닌 연대를 넘는 여단 병력, 사단 병력 전체를 낙하산으로 투하하여 적 진지로 침투한다는 것이 특징이다. 쉽게 말해 낙하산을 전문으로 타고 넘나드는 보병이다. 우리나라는 없지만 미군은 공수부대가 따로 있는데 이들은 원래 개념처럼 낙하산을 타고 침투하는 전문 보병사단이 된다.

반면 특전사는 특수전부대로 공수부대가 타는 낙하산은 침투 방법 중 하나일 뿐 그 자체가 특전사를 대표하지 않는다. 해상 침투 등 하늘은 물론 바다로도 침투 가능한 것이 특전사이고 또 이런 모습 역시 그들을 대표하는 모습 중 하나인데 바다를 통해 육지로 침투한다고 하여 특전사를 해병이라 부르지 않는 것처럼 하늘로 올라가 낙하산을 타고 내려온다고 해서 특전사가 공수부대가 되지는 않는다. 다만 우리나라는 공수부대를 따로 두지 않았기 때문에 공수부대 기능을 특전사에게 투영해 그들에게 공수부대 호칭을 붙였다. 사실상 낙하산을 가장 많이 타는 것이 정작 이들이기 때문이다.

특전사가 공중 침투와 해상 침투를 모두 병행하지만 해상은 해병이 그 임무를 주력으로 맡고 있다. 그래서 현재로서는 공중 침투가 특전사의 몫이 된다. 만약 해병마저 없었다면 공수+특전사+해병을 합쳐 지금의 특전사를 공수특전해병이라 불렀을지도 모른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공수부대, 공수특전여단, 특전여단, 특전사는 모두 같은 말이다. 특전사가 공수부대 역할을 도맡아 한다고 하기는 어렵지만 공수부대라는 말을 붙일 만한 건 특전사 밖에 없기 때문에 공수부대의 출발이 곧 특전사의 출발이 된다. 특전사가 처음에는 공수부대로(공수여단) 불렸기 때문에 특전사가 공수부대라는 걸 아는 분도 있지만 공수부대로 불렸던 시절의 공수부대들은 군사반란 동원과 광주민주화운동 진압에 동원된 흑역사가 꽤 많기 때문에 해외파병 등으로 이미지가 좋고 흑복(대테러복)도 자주 입는 지금의 특전사와 다른 부대로 오인하는 분들도 꽤 있다.

물론 우리나라도 이후 공수부대를 따로 창설해 원래 개념처럼 둘을 분리한 적이 있지만 재정 문제와 운영 문제로 공수사단(공수부대)을 다시 일반 보병사단으로 전환시켰기 때문에 아직까지도 별도의 공수부대는 존재하지 않는다. 현재는 특전사의 공식 명칭이 특임단으로 부르는 부대를 뺀 나머지 모두가 여전히 공수특전여단이 공식 명칭, 부대 이름이기 때문에 때문에 사실상 공수부대 역할을 이들이 하고 있어 현시점에서 특전사 대신 이들을 여전히 공수부대라 해도 틀린 말은 아니다. 참고로 특전사는 정보사, 기무사, 수방사와 같이 사령부를 뜻하는 것으로 특별전사, 특+전사, 특전하사의 줄임말이 아니다. 정보사, 기무사처럼 특전사는 특수전사령부에 속한 군인들에게 붙는 호칭으로 장교(특전장교), 부사관, 병(특전병) 모두 특전사라 부른다. 특전사에 복무하는 하사, 중사, 상사 (원사) 등에만 해당하는 호칭이 아니며 병사라 해서 특전병이라 따로 부를 필요도 없다. 특전병 자체가 부사관으로만 이루어진 전사 집단으로 오해한 명칭에서 유래한 단어인데 특전병도 그냥 특전사다. 특전사의 "사"는 하"사"관이 아닌 "사"령부를 의미한다.

1공수(서울), 3공수(서울), 5공수(인천) vs 9공수(인천)

영화 '서울의 봄'을 보면 수도권 주재 4개 공수여단 중 유일하게 진압군 진영, 소위 착한 편에 9공수(영화에는 8공수로 등장)가 나온다. 전두환과 그 휘하 장군들에 의해 1공수, 3공수, 5공수는 반란군이 되고 9공수만 홀로 떨어져 진압군이 되는데 전두환과 그 일당 세력을 잡을 9공수여단이 가장 먼저 서울 중심부로 출동하게 되면서 전두환을 필두로 한 반란군들 가슴을 쫄리게 만든다.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을 들 수 있는데 일단 3개 공수여단과 1개 공수여단의 대립 관계만 보면 9공수의 등장이 그렇게 중요하게 보이진 않는다. 3대 1이라는 대결 구도 자체가 성립하기 어렵다. 더군다나 상대도 특전사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9공수의 등장은 큰 의미를 갖는데 수장, 대가리만 잡으면 끝나는 이런 워 게임의 특성상 먼저 지휘소를 점령하는 쪽이 승자가 되기 때문에 누가 먼저 출동하고 누가 먼저 진지를 먹느냐가 가장 큰 관건이 되기 때문이다.

그럼 왜 1공수와 3공수, 5공수는 늦게 출동하게 되었는가, 이는 역설적이게도 상황만 보면 쪽수로는 밀리는 상황이었지만 정작 1공수, 3공수, 5공수 지휘관(여단장)들은 모두 전두환과 함께 수경사 경비단에 모여 반란군 지휘소에 있었기 때문에 부대 이동이 수월하지 않았다. 지휘관도 없이 부대가 마음대로 움직일 수는 없는 법, 무슨 예비군들처럼 택시타고 다들 알아서 오라고 하는 것도 아니고 지휘관도 없는데 부대원들이 스스로 짐싸서 출동하는 건 상상하기 어렵다. 서울의 봄 영화에도 그런 장면이 나오는데 나중에야 뒤늦게 1공수, 3공수, 5공수 여단장들이 호들갑을 떨며 자신들의 부대로 복귀하면서 그때서야 부랴부랴 출동을 하는 모습이 나온다.

1공수는 서울, 3공수 역시 서울에 본진을 두고 있는 공수부대였다. (1공수는 행주대교와 함께 김포 병력으로 나오지만 그때도 1공수는 서울 병력이었다, 자세한 건 아래 후술) 5공수만 9공수와 함께 인천에 주둔하고 있었는데 서울에 이미 있는 1공수와 3공수가 있음에도 9공수보다 늦게 출동하게 된 건 처음부터 이들 부대에는 지휘관이 없었고 유일하게 수도권 상비 공수부대 중 9공수에만 지휘관이 있게 되면서 9공수만 출동 가능했던 상황이 된다. 거기에 영화처럼 9공수 지휘관은 육사 출신도 아니고 하나회 멤버도 아니어서 육본의 명령(정확히는 특전사령관의 명령)을 그대로 받게 된다. 반란군의 주축 세력인 하나회와 대척점에 있기도 했지만 상황 자체가 절묘하게도 9공수와 육본(육군본부)에 유리한 상황이 된 것이다.

애초에 반란군 공수부대 지휘관들이 부대가 아닌 반란군 지휘소에 있었던 것도 9공수가 출동할 것이라 예상하지 못했고 정승화 육군참모총장만 체포하면 모두 끝날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에 사실상 공관 점거 병력 정도만 있어도 된다고 여겨 반란군에 합류한 수경사의 헌병들만 갖고 작전을 펼쳤던 것이다. 그러나 예상치 못하게 진압군 측에서 9공수를 반란군을 진압한다는 명목으로 출동을 시키자 사태가 심각하게 돌아가면서 그때야 1공수, 3공수, 5공수 여단장 자신들도 출동해야 한다는 걸 깨닫고 부대로 돌아가고 나서 그제야 출동하느라 늦게 출발하게 된다. 장태완 수경사령관은 서울 도심에서 아군 병력으로 제대로 싸울 수 있는 유일한 전투 병력인 9공수가 출동했다는 소식에 힘이 들어가면서 반란군들을 진압할 요량으로 부대를 재정비한다.

9공수(인천) 회군과 5공수(인천) 진군

1공수, 3공수, 5공수, 9공수 4개 공수여단은 12.12 사태에 휘말리며 아군과 적군, 반란군과 진압군으로 나뉜다. 이중 1공수와 3공수는 서울 병력, 5공수와 9공수는 인천 병력인데 서울 병력은 모두 전두환이 이끄는 반란군 진영에 위치하고 있었다. 문제는 인천에 주둔한 두 공수여단인 9공수와 5공수다. 인천에 공수부대가 딱 둘인데 운명의 장난인지 인천 병력은 한쪽은 진압군, 한 쪽은 반란군이 되었다. 여차하면 인천에서 피바다가 발생되거나 서울과 인천 가운데 있는 부천에서 만나 부천에서도 피를 볼 수도 있는 상황이 된다.

육군참모차장의 판단력 실수로(거짓 신사협정) 인해 유일한 아군 전투병력인 9공수는 경인고속도로를 타고 서울로 오다 부천 IC에서 빠져 회군하게 되는데 영화에도 나오지만 이들 똥별들은 자신들의 안위만 생각했지 공수부대가 처한 상황은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 반란군은 물론 진압군(육본)도 마찬가지다. 그게 바로 9공수의 회군과 5공수의 진군인데 5공수는 9공수가 진압군으로 출동한 걸 알고 제압하기 위해 출동한 것이니 당연히 9공수를 만나면 제압하려 할 것이 뻔하고 9공수 역시 1, 3, 5 공수여단이 모두 군사반란을 일으켰다는 걸 알고 있는 상황이라 인천이든 부천이든 어디선가 맞닥뜨리게 된다면 정황상 교전이 불가피할 수밖에 없다. 

서울 병력인 1공수와 3공수는 어차피 같은 편이기도 했지만 부대 자체가 서쪽 끝과(강서구 끝) 동쪽 끝으로(송파구 끝) 만약 이들도 서로 아군과 적군으로 갈렸다 해도 이들은 만날 일이 없다. 송파구 주민이 종로로 오고 강서구 주민이 종로로 오다 다시 각자 집으로 돌아간다고 했을 때 만날 확률은 제로. 그러나 5공수와 9공수는 상황이 전혀 다르다. 둘 다 인천에서 서울로 오고 가는 동일한 방향인 건 물론이고 부대 자체가 차로 10분 거리 남짓할 정도로 가까이 위치하고 있었다. 인천으로 따지면 동인천역에서 신포시장 정도의 거리, 주안역에서 시민회관 정도 거리고 서울로 따지면 홍대에서 연대 정도, 여의도 국회의사당에서 여의도 KBS별관 정도의 거리가 인천 5공수와 9공수 군부대의 거리였다. 출동하는 길목도, 회군하는 길목도 모두 동일하다. 필연적으로 오가는 길목 자체가 두 공수부대는 만날 확률이 매우 높다.

사실상 9공수는 처음과 달리 시간이 흐르자 상황이 어떻게 흘러가는지 정황 판단을 끝낸 상태였다. 육군참모차장의 회군 명령에도 9공수여단장이 일단 부천에서 대기하겠다는 말을 한 것도 그런 맥락인데 육본은 섣불리 불씨를 만들지 말라고 하면서 무조건 원대 복귀를 명령했다. 정황만 보더라도 9공수 여단장은 1, 3 공수여단은 물론 같은 인천 병력인 5공수여단이라도 잡겠다는 심정으로 혹시 모를 일을 대비해 대기를 요청했으리라 본다. 마찬가지로 5공수여단장 역시 9공수가 서울로 진격한다는 소식에 화들짝 놀라 자신들도 부대를 끌고 진격하겠다고 뒤늦게 출발한 것인데 5공수의 목표는 당연히 9공수였다. 결국 이들은 만나면 무조건 피를 보게 될 운명인 것이다. 특히 9공수는 신사협정에 따라 5공수를 건드리지 않았을지 몰라도 5공수는 신사협정과 상관없이 무조건 9공수를 잡는 것이 명백했기 때문에 9공수의 피해는 불 보듯 뻔한 상황이 된다.

똥별들 때문에 엉뚱한 특전사들만 죽어 나갈 수 있던 상황인데 지금까지의 수경사 헌병대와 해병대(경비병) 교전과는 차원이 다른 대규모 전투가 시가전으로 벌어졌을 확률이 높았기 때문에 이때 만약 두 공수부대가 만났다면 12.12 군사반란과 별도로 대한민국 국군 역사에 큰 오점, 흑역사를 남겼을지도 모른다. 물론 실미도와 함께 인천에서 벌어진 최악의 군참사로 기록되었을지 모른다. (모두 서울로 향했다는 공통점) 그러나 다행인지 불행인지 그 똥별들의 연이은 부실한 전략과 안일한 판단 덕분에 이들은 만나지 않게 된다. 9공수가 원대복귀를 할 때가 되어서야 5공수가 출발을 한 것이다. 육본은 9공수를 너무 빨리 회군시켰고 반란군 진영은 5공수를 너무 늦게 출발시켰던 것인데 그 때문에 두 공수여단은 길목에서 만나지 않고 (최소 경인고속도로에서라도 만났으면 상황이 복잡하게 꼬임) 9공수가 짐을 풀때 5공수는 피해 없이 안전하게 서울로 당당히 반란군으로 입성하게 된다. 이때 9공수가 푼 짐은 아이러니하게도 이후 상황 전개에 따라 사실상 무장해제와 다르지 않게 되지만 말이다.

영화에서는 9공수의 회군에만 아쉬워하고 또 관객들도 다수는 9공수가 활약하지 못한 걸 아쉬워하는데 실상은 명령과 상관없이 무조건 만났으면 교전을 했을 확률이 높은 상황이었던 만큼 시간 차이로 벌어진, 정말 간발의 차이로 벌어진 이 두 공수부대의 상황에 대해 역전의 발판으로 삼지 못한 아쉬움보다는 오히려 엉뚱한 군인들이 피를 보지 않았음에 안도감을 가져야 하는 부분이 되기도 한다. 사람들은 9공수의 진격이 마치 아군이 핵미사일을 가진 것처럼 크게 느끼지만 어차피 9공수 최종 지휘세력도 육본의 똥별들이고 육본은 중구난방 몸보신에 바빠 9공수가 왔어도 그걸 어떻게 활용하고 대응할지 몰라 갈팡질팡했을지 뻔하다.

또한 5공수는 9공수를 도로에서 만났다면 무조건 제압했을 확률이 높은데 9공수만 잡으면 승기를 잡을 수 있었던 상황이고 9공수는 5공수가 출동한 것 자체가 신사협정 위반임을 알 수밖에 없어 역시 제압하려 했을 확률이 높다. 그러나 영화에 너무 몰입한 나머지 사람들이 간과한 것이 있는데 애초에 9공수는 3대대가 모두 충청도로 훈련을 가서 1개 대대만 겨우 왔지 않았던가. 그것도 부대 차량이 모두 훈련에 딸려 나가서 정작 9공수에는 차가 없어 인천 부평 일신동에 있는 군수지원사 차까지 빌려서 와야 하는 상황으로 그 자체가 공수부대원이 아닌 일반 수송부대원들도 다수 포함되었다는 건 기존 전투력이 제대로 발휘하고 어렵다는 뜻이 된다. 1공수, 3공수는 커녕 5공수와도 대대 병력이 4배 차이가 나고 (4분의 1) 공수부대라는 메이커명 때문에 쫄렸던 것이지 그게 실상 1개 대대만 온다는 걸 알았다면 전두환 세력도 그렇게 호들갑까지 떨지는 않았을 것이다.

만약 운명의 장난에 휘말려 5공수와 9공수, 두 인천 병력 간에 교전이 일어났다면 이는 특전사에 있어 치명적인 오점이자 분열의 씨앗이 되었을 것이고 5공수든 9공수든 한쪽이 무조건 해체되어야지 둘을 지금처럼 인천에 계속 주둔시켰다면 특전사의 기강과 운영이 심각하게 위협받았을 것은 뻔하다. 둘이 문제가 없었으니 둘 다 인천에 쭉 잘 지내고 있는 것이지 둘이 12.12사태, 군사반란 당시 붙었었다면 지금 둘 중 하나를 없애거나 둘 다 없애거나 특전사 전부를 없애야 하는 희대의 상황이 벌어졌을지도 모른다.

5공수(인천)와 9공수(인천) 주둔지

위 그림을 보면 12.12 군사반란 당시 좌측 하단 인천 부평에서 9공수가 출동했다 회군을 하고 그 위 5공수는 느낌적으로 부천에서 출동한 듯한 모양새, 그리고 김포에서 1공수가 출동한 걸 알 수 있는데 정확하게 정리하면 1공수가 있는 김포는 부대 창설 당시 김포군(경기도)이었지만 이후 서울 영등포구로 편입되고 다시 강서구로 분구가 되면서 1977년 이미 서울특별시 강서구 시절이었다. 1공수여단은 부대 위치가 서울 강서구로 바뀐 후 2년이 지나 12.12가 벌어졌기 때문에 부대 자체는 이미 서울 병력이었지 김포 병력은 아니다. 다만 김포공항처럼 과거 김포군에 해당한 곳을 여전히 김포로 부르는 경우가 종종 있었는데 1공수 역시 그에 해당하는 경우로 실제로는 서울 강서구 병력이다. 창설 이후 한 번도 부대 이전을 하지 않았는데 부동산 등기상 경기도(김포군), 서울(영등포구), 서울(강서구)로 주소지가 바뀐 희한한 케이스에 해당한다. (그래서 김포시가 서울로 편입하려고 하는 건가?)

부평과 김포 사이에서 출발한 5공수는 앞서 설명대로 9공수와 같이 있던 부대로 부평 병력에 해당한다. 서울 진입할때 성산대교를 넘어간 것으로 나오지만 실제로는 그 아래 수경사가 봉쇄했다는 양화대교를 넘어갔다. 이때 이미 장태완 사령관이 힘을 잃었기 때문에 봉쇄력이 풀렸다. 12.12 군사반란 당시 부대는 산곡동에 위치하고 있었다. 현재 기준으로 보면 부평구 산곡동 롯데마트(원적사거리) 바로 맞은편에 있는 금호아파트 단지, 경남아파트 1~5차 단지, 뉴서울 1차, 한양 8차 아파트가 전두환 반란군에 협조한 5공수 부대 자리다. 현재는 5공수 부대가 다른 곳으로 이전하고 그 터에 아파트가 모두 들어선 상태다. 산곡시장, 부평 롯데마트를 안다면 바로 앞 금호아파트와 그 주변 아파트 전부 (무지개 아파트 제외) 5공수 부대터로 보면 된다. 여기서 조금만 위로 북쪽 올라가면 유명한 영아다방 사거리가 나오고 좌측 서쪽으로 가면 명신여고, 세일고, 인천외고가 있다. 동쪽 우측에는 부평대로로 빠지는 산곡입구사거리로 이어지는데 GM 부평공장(예전 대우자동차 부평공장)이 근처에 있다. 아래 남쪽으로는 백운역 방향이다.

현재는 더 위로 올라가 효성동으로 이전했는데 경인고속도로 서인천 IC 출구 직전 우측 산자락에 위치하고 있다. 가정루원시티, 청라국제도시 사는 주민들이라면 어쩌다 한 번 볼 수도 있는 위치인데 경인고속도로가 아닌 나란히 뻗은 고속도로 옆길 시내길로 효성동에서 가정동 넘어가는 구길(옛길)에 있는 군부대가 여기다. 가정오거리에서 부평 방향 끝라인에 있는 하나아파트에 사는 분들이라면 여길 잘 알 듯싶다. 과거 5공수 시절 부대 별칭이 흑룡부대였는데 하나아파트에서 효성동 쪽으로 가면 흑룡아파트(?)가 나온다. 차 타고 가면 도로에서 부대 정문이 보일 정도인데 두 아파트 사이 거기에 군인 아저씨들이 총 들고 지키고 있다. (위병) 지금 5공수(국제평화지원단)는 거기다. 가정동 한신빌라(한신빌리지)와 청천농장을 안다면 그 너머 효성동 산자락이라 보면 된다.

부대 위치는 군사보안이라 하지만 이들 부대는 이미 다 알려져 있는 부대로 사실 의미가 없다. 지금은 국제평화지원단으로 바뀌어서 UN 활동을 위한 부대이기도 해서 위상만 보면 예비군 부대 위치와 크게 다르지 않다. 심지어 수방사, 9공수, 3공수, 1공수, 33경호대 등 영화에 등장한 부대들은 위치까지 정확히 공개되어 있다. 육군전문특기병 전형평가장소라 수험생처럼 시험 보러 가는 곳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친절하게 약도도 나온다) 물론 부대 위치가 여전히 보안인 곳은 많다. 인천에도 도심지가 아닌 곳에 있는 군부대가 상당수 있는데 인천 사람들은 인천에 군부대가 별로 없거나 아예 없다고 생각하기도 하지만 생각 외로 군부대가 인천에 꽤 있다. 내가 아는 것만 해도 10곳이 넘는다. 지역 특성상 해군과 해병, 심지어 공군도 포함되는 게 인천인데 의외로 군부대 천지다. 단지 잘 숨어있을 뿐, 수도권 공수부대 4개 중 2개(인접한 김포 포함 3개)가 인천 쪽에 괜히 있는 게 아니다.

인천과 부평을 사수하는 찐 인천부대 9공수여단의 국군의 날 행사 모습

9공수는 과거 5공수와 함께 산곡동에 같이 있었다. 백운역 바로 앞에 있는 현대아파트(현대백화점 자리 포함)가 바로 9공수 자리다. 바로 옆이 부평미군기지인데 과거 여기도 미군기지였다가 미군이 베트남 전쟁으로 주한미군을 감축할 때 미군기지 터를 조금 내놓아 공수부대가 차지했다. 흔히 백마장이라 불리는 곳, 부평 신촌이라 불리는 곳에 있는 백운역 앞 현대아파트 1단지~3단지 모두가 9공수자리다. 현대아파트에서 윗쪽으로 올라가면 방금 언급한 5공수 자리가 나온다. 아까 두 공수부대가 부평에서 지근거리에 위치하고 있었다고 설명했는데 백운역 현대아파트 1~3단지가 9공수 자리, 산곡동 금호아파트(한양, 경남, 뉴서울), 산곡남중학교 자리가 5공수 자리다. 둘 다 당시에는 외진 곳에 터를 잡았으나 (미군부대도 가깝고) 이후 도심 개발이 되면서 부대 위치로 적절치 않아 둘 다 산자락을 찾아 옮긴 상태다. 5공수는 효성동 산 아래, 9공수는 장수동 산 아래로 이전했고 그 자리에는 모두 아파트가 들어섰다.

인천 지역 언론에서는 당시 9공수가 장수동에서 출발한 것으로 설명하기도 하는데 실상은 그렇지 않다. 9공수가 부평구에서 남동구로 넘어간 건 80년대 이후로 12.12군사반란은 1979년인 70년대 말 발생한 사건이다. 당시에는 9공수가 백운역 앞, 미군기지 옆에 있었다. 영화에 등장한 9공수는 당시 백운역 앞 현대아파트 자리에 있다가 출동한 것으로 부평역 앞 대로인 부평대로를 통해 경인고속도로 부평 IC로 진입해 서울로 진격을 했었다. 이후 회군 명령을 받고 부천 IC에서 돌아 나왔는데 5공수 역시 부평대로를 통해 경인고속도로를 타고 서울로 진격을 했다. 이웃한 부대라 출동 경로가 크게 다르진 않다. 굳이 예상해 보면 5공수는 부평대로로 가는 길목이 좁아 산곡동 금호아파트 뉴서울아파트, 한양아파트 코스를 타고 산곡입구삼거리를 통해 세림병원(안병원), 부평구청, GM대우 공장 자리를 지나 경인고속도로를 탔을 것이고 9공수는 백운역 앞 도로를 타고 바로 부평역 앞으로 가서 그대로 쭉 부평대로를 타고 고속도로를 탔을 것이라 예상해 본다.

5공수는 동해안경비사령부 예하 유격단이었다가 공수부대가 만들어지면서 인천으로 이주한 부대다. 사람으로 따지면 태생이 강원 삼척 출신이다. 반면 서울의 봄에서 아군 병력으로 지원한 9공수는 인천에서 창설한 인천 태생이다. 지금까지도 9공수는 쭉 인천에 상주하고 있다. 백운역 현대아파트 자리에 있다가 인천 남동구 장수동으로 넘어갔는데 인천대공원 주변 산자락 어딘가로 알고 있음 된다. (그러나 부천역과 중동역 주변이 부대와 더 가깝다는 건 비밀) 백운역 현대아파트에 거주하는 주민들에게는 서울의 봄과 엮어 주변 사람들에게 소소한 이야깃거리가 되는 부분이기도 하다. 물론 그 아파트 자리에 있던 초대 9공수여단장이 영화에서 반란군으로 나오긴 했지만 노태우 전 대통령이었다는 것도 포함해서. (영화에서 정우성을 도우러 출동한 윤흥기 여단장이 바로 그다음 여단장)  9공수가 있던 백운역 주변에는 백운사라는 절(?)도 있는데 본 사람은 없다. 실제로는 백운상사여서 백운사인데 사람들이 단순히 백운사라는 이름을 착각해 사찰로 봤다는 썰도 있다. 항간에는 택시 타고 백운사 가자고 했더니 기사가 용케 알고 데려다줬다는 이야기도 있지만 여긴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너 이 시키,, 철컹철컹)

참고로 9공수가 있던 시절에는 백운역이 없었다. 경인철도에서 지하철(서울지하철 1호선, 당시 국철 1호선)은 1974년 개통했고 12.12 군사반란은 1979년에 일어났다. 백운역은 5년이 지난 1984년에야 생겼는데 백운역 현대아파트는 1985년 완공되어 입주가 시작되었다. 당시에는 인천에서 보기 드문 고급 아파트였고 단지도 컸고 현대백화점이 아파트 정문에 있어 그 위세가 대단했었다. 어느덧 40년 차 구축 아파트가 되어 가는데 미군기지터가 반환되고 공원화되면서 주변 여건도 많이 개선된 만큼 곧 재건축이 되지 않을까 싶다. 위 사진은 일제시대 백운역과 부평역 사이 조병창을 찍은 사진으로 저 자리가 그대로 나중에 부평미군기지가 된다. 아래 기다란 가로선이 바로 경인선(경인철도)이고 우측이 부평역, 좌측이 백운역에 해당한다. 철길 앞에 집들이 모여 있는데 거기가 바로 부평 삼능, 미쯔비시(미쓰비시) 사택촌이다. 사진을 찍은 위치가 인천지하철 동수역 정도로 보면 된다. 끝에 보이는 커다란 산이 바로 부평구 소재 학교 교가에는 꼭 나온다는 계양산이다.

현재 우리나라 공수특전여단은 5공수만 다르게 편제되고 나머지는 모두 그대로 유지 중이다. 5공수는 특전여단에서 국제평화지원단으로 명칭과 운영체계가 바뀌었지만 여전히 특수전사령부 소속으로서 특전사 지위를 유지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특전사 편제상 5공수가 빠지고 1공수, 3공수, 7공수, 9공수, 11공수가 있고 그 외 13특임단, 707특임단, 국평단(예전 5공수)이 주요 병력이 된다. 5공수가 바뀐 국제평화지원단은 해외파병을 위한 전초기지 역할로 특전사는 물론 해외파병을 가는 모든 병력을 재훈련, 교육시키는 곳으로 바뀐 상태다. 그래서 모범적이고 우수한 병력 자원을 받는다고 알려져 있다. 이 정도면 5공수는 흑역사를 두고 이름만 바꾼 게 아니라서 부대갈이 치고는 꽤 잘한 케이스다. 기존 흑룡부대에서 지금은 온누리부대로 별칭도 바뀌었다. 부대 별칭부터가 용맹에서 교회 이름처럼 다정다감하게 바뀌었는데 상징물 역시 흑룡에서 유엔기로 변경되었다.

1공수(서울)는 여전히 서울에 있고 우리나라 특전사의 모체부대가 되는 곳이기도 하다. 모든 처음은 다 여기서 시작했다. 특전사들의 어머니 같은 존재로 가장 먼저 창설된 곳이기도 하다. 한국전쟁 당시 켈로부대, 유격첩보부대를 근간으로 출발했다. 특전부대 중 최선임이라 할 수 있는 부대다. 다만 그 때문에 흑역사는 꽤 많다. 5.16 군사쿠데타에도 동원이 되었고 12.12군사반란에도 마찬가지로 동원이 되었다. 정치군인의 앞잡이로 활용된 셈인데 지휘관이 문제지 부대원이 무슨 잘못이 있으랴. 상징은 독수리. 부대가 김포 출생이지만 서울에 주둔한 만큼 서울 관문인 김포공항과도 관련이 있다. 특전사의 모체답게 정병주 특전사령관도 여기 출신이고 전두환 역시 이곳 공수여단장을 역임했다. 문재인 대통령도 특전사 출신인데 바로 여기 소속으로 어찌 되었든 대통령을 두 명이나 배출한 부대다. 

3공수(경기 이천)는 1공수보다 흑역사가 더 깊다. 12.12군사반란에 동원된 건 영화를 통해서도 알았을 것이고 이후 5.18 광주민주화운동에서 진압군으로 출동한 그 공수부대 중 하나다. 참 멀리서도 내려갔다. 영화에서 정병주 특전사령관을 체포하고 김오랑 소령(중령으로 추대)을 사살한 공수부대 역시 3공수다. (영화에는 4공수로 나옴), 영화만 보면 가장 비열한 놈들로 나온다. 남한산성 자락 거여동과 마천동 일대 송파구에 본진을 두고 있었는데 지금은 부대 자리를 넘기고 경기도 이천으로 이전을 한 상태다. 3공수 자리와 그 주변 구도심을 재개발해 만든 것이 바로 위례신도시. 남한산성 주변에 있어 남한산성 주요 부대 중 하나였는데 그중 국군교도소 역시 여기에 있었던지라 (하필 군교도소가 옮긴 곳도 경기도 이천) 남한산성과 관련해 항상 언급되는 부대 중 하나이기도 하다.

5공수(국제평화지원단/인천)는 이전 설명으로 패스

7공수(전북 익산)는 군사반란, 혁명에 가담한 적은 없다. 다만 부대 위치상 누가 보더라도 광주에서 벌어졌던 광주민주화운동 진압에 투입되었을 부대라는 걸 다 알 수밖에 없는데 역사의 단죄를 벗어나기에는 아직도 시간이 좀 더 필요할 듯싶다. 부대 상징은 천마.

9공수 인천은 5공수와 함께 이미 설명했지만 조금 보충하면, 아래는 9공수 마크로 도깨비(귀성)를 사용하고 있다. 그래서 부대 별칭도 귀성부대다. 특전사 부대 중 유일하게 상징이 동물 형태가 아니라서 의외로 이 마크만 보고 9공수인 걸 판별하기도 한다. 1974년 인천 출생으로(창설) 인천에서 나고 자란 몇 안 되는 인천 지역 군부대다. 공수부대가 동원되었던 5.16 쿠데타는 물론 광주민주화운동에도 출동하지 않았다. 물론 5.16 박정희 쿠데타 때는 있지도 않아서 흑역사가 없었지만 영화처럼 12.12 군사반란에는 휘말렸었다. 그러나 반란군이 아닌 진압군 쪽에 있어서 별다른 흑역사는 없다. 군사 측면이나 학생 운동, 시민운동 진압 측면 어디에도 큰 오점은 없는 유일한 공수부대다. 인천이나 서울 사람 자체가 공수부대에 대한 반응이 없는 것도 있지만 (오히려 전경에 대한 반감이 더 심함) 영화처럼 모든 수도권 공수부대가 나쁜 편에 섰을 때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착한 편에 섰던 점에서 인천 시민은 물론 전 국민에게 밉상 취급은 받지 않는 유일 공수부대이기도 하다. 특전사 중 이 도깨비 마크를 단 특전사를 봤을 경우 반갑게 인사해 주자.

9공수특전여단 마크

더불어 레인보우 식스 게임에 한국인 캐릭터가 나오는데 남은혜라는 특전사 출신 캐릭터가 있다. 게임 설명으로는 9공수여단 출신으로 나온다. 카이스트 졸업 후 5163부대에 있다가(국정원의 이명) 9공수여단으로 간 것으로 나온다. 이후 707로 전입하는데 남은혜의 코드 네임 역시 9공수 마크인 도깨비이다.

11공수, 전남 담양을 근거지로 한 공수부대로 주둔지에서 알 수 있듯 여기도 광주민주화운동 진압에 동원된 흑역사가 있다. 두 자리 숫자라 다른 공수부대보다 눈에 띄고 외우기 쉬울뿐더러 전라도(전남) 부대라 광주시민들에게는 더 안 좋은 시선을 받는 특전사다. 처음에는 강원도 화천에 있었는데 특수전사령부가 개편되면서 전라도로 이전했다. 광주 지역에서는 수도권 부대인 3공수는 물론 같은 전라도 부대인 7공수와 엮어 가장 많은 비난을 받기도 한다. 이 셋이 군사반란과 시민운동 진압 및 학살에 모두 동원되었기 때문이다. 상징은 황금박쥐.

13특임단, 원래 13공수여단이었다가 참수부대(수령님 모가지 따러 왔수다)로 바뀌면서 특임단으로 변경되었다. 경기 포천에 있다가 충북(증평)으로 이전했다. 상징은 흑표. 80년대 초반 일찍 충청도로 이전하기도 했고 그 이전까지 수도권에서는 약 5년 정도 있었는데 어떤 것도 휘말리지 않은 부대이기도 하다. 다만 현재로서는 공수부대에서 특임단으로 바뀌어 가장 깨끗한 공수부대는 9공수만 남는다. 부대장 역시 갑종, 육사, 삼사, 학군 등 다양하게 포진되어 있는데 특전사 예하 부대 중 하나회의 관심 밖에 있어 소용돌이를 피하지 않았나 싶다.

기타

우리나라는 아무리 미신이어도 숫자 "4"에 대한 거부감이 존재하는데 군부대 역시 마찬가지로 숫자 4를 기용하지 않는 것이 불변의 법칙이다. 중대 단위에는 간혹 있기는 하나 대대 이상 부대 단위로 가면 4는 찾아보기 힘들다. 그래서 우리나라는 4사단이 없다. 단위가 십 단위로 커져도 4가 들어가는 사단까지 얄짤 없다. 해병 1사단, 2사단은 물론 보병 1사단(전진), 2사단(노도), 3사단(백골), 5사단(열쇠), 6사단(청성), 7사단(칠성), 8사단(오뚜기), 9사단(백마) 예시처럼 유일하게 4사단만 빠져 있다. (만들지도 않았고 만든 적도 없다)

십 단위로 가도 마찬가지다. 11사단(화랑), 12사단(을지), 15사단(승리), 17사단(번개) 등 14사단은 없으며 21사단(백두산), 22사단(율곡), 23사단(철벽), 25사단(비룡) 역시 중간에 24사단이 없다.  33사단(번개) 다음 넘버가 35사단(충경)인 건 당연하며 당연히 40~49로 이루어진 40번대 사단은 통째로 비어져 있다. 50번대 사단에도 54번은 없고 60번대 사단명, 70번대 사단명 모두 4가 즐어가는 사단명은 존재하지 않는다. 일의 숫자든 십의 숫자든 4는 부대명으로 절대 쓰지 않는 것이 국군의 암묵적인 룰이다.

공수부대(특전여단)를 포함해 일반 보병도 대대명조차 4를 쓰지 않는다. 해병 역시 대대명에는 4가 들어가지 않는다. 11특전대대, 12특전대대, 13특전대대, 15특전대대(특전사), 직할대, 11대대, 12대대, 13대대(해병) 식으로 대대명도 모두 4를 건너뛰고 3 다음 5로 넘어간다. 해병 역시 3대대 다음은 없거나 5대대다. 대부분 대대에는 4대대 대신 직할대 또는 5대대가 그 위치를 대신한다. 생명과 밀접한 관련이 있을수록 이런 경향은 짙은데 일반인들이 사용하는 인천공항에서도 4번 게이트가 없는 것 역시 마찬가지로 목숨이 위태로울 수 있는 극단적인 상황에서는 혹시 모를 뒷말을 우려해 이런 숫자 4에 대한 사용을 적극적으로 기피하는 것이 우리나라의 특징이기도 하다.

우리나라 국군은 상비사단, 정규부대에 4를 쓰지 않는다. 상비사단, 정규부대 예속, 배속된 부대들 중 만약 자신이 속한 부대나 주위에 4대대 출신자가 있다면 상비사단 출신이 아니거나 기간병으로만 이루어진 비정규부대일 확률이 높다. 쉽게 말해 전투부대가 아닌 훈련부대나 예비군 부대일 확률이 높다. 영화 속에는 특전사령관 정병주를 체포하고 김오랑 소령을 사살하는 반란군으로 4공수가 등장하는데 기본적으로 이런 상식을 갖고 있다면 부대명 자체가 실제와는 다르게 나왔다는 걸 사전 가이드가 없어도 직감적으로 알 수 있다. 4공수는 실제 홀수가 아니기도 해서 실제 공수부대 명칭이 아니기도 하지만 불길한 숫자인 4라 더욱 가상의 부대가 된다. 물론 역사적 실제와 실체가 있는 사건을 갖고 만든 실화를 바탕으로 한 만큼 완전 허구가 아닌 명칭만 바꾼 케이스라 일반적인 허구와는 다른 창작 개념의 가상 부대에 가깝다.

고로 만약 누군가 4사단 출신이라고 한다거나 4가 들어가는 사단명(14사단, 24사단, 41사단, 54사단 등), 4가 들어가는 대대명을 출신으로 어필했다면 미필이거나 신의 자손(면제) 일 확률이 매우 높다. 100% 정확하진 않지만 미필감지 용도로 종종 사용되기도 한다. 영화에 4공수가 나와 마무리로 덧붙여 본 이야기다.

정리

무능한 지휘관은 적보다 무섭다.

[건강/건강의료] - 외국에서 양치질 후 물로 거품을 헹구지 않는 이유

[식탐/음식탐구] - 국밥은 한국전쟁 당시 이북에서 넘어와 생긴 음식이다?

[금융/증권투자] - 14년 전 아버지가 사준 삼성SDS 주식 5만원, 장기투자의 승리?

[교육/언어유희] - 큰 밧줄을 왜 동아줄이라 부를까? (동아 뜻)

728x90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