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한 사람에게 내려 준다는 동아줄
동아줄이라는 표현이 있다. 하늘에서 나에게 도움의 손길을 줄 때 쓰는 관용어로 사용되기도 한다. 한국인이라면 전래동화 해님과 달님 이야기를 모르는 사람이 없으니 동아줄이라는 말을 모르는 사람이 없다. 특히나 해님과 달님의 이야기 속에 등장하는 호랑이의 "떡 하나 주면 안 잡아먹지~"가 워낙 유명해 어린아이들도 동아줄이 무엇인지 다 알 정도다.
동화 속 남매는 호랑이를 피해 나무 위로 오르지만 이내 호랑이가 나무를 올라타자 하느님께 딜을 거는 재치를 발휘한다. 오라버니는 나를 도와주려면 동아줄을 내려주고 그렇지 않으면 썩은 동아줄을 내려 달라고 옵션을 거는데 이게 생각하면 할수록 참 묘수다. 어떻게든 일단 동아줄을 내려달라는 뜻이니 동아줄을 내려주지 않는 경우의 수를 원천적으로 차단했다. 동아줄을 내려주는 입장에서는 생각을 많이 하게 하는 협상인 셈. (거부는 거부한다) 다행히 하느님이 멀쩡한 동아줄을 내려주어 남매를 구해준다.
동아줄이 뭐기에 이 아이들은 하느님께 스페셜 오더까지 (특별주문) 요구한 것일까
일상에서는 동아줄 표현을 잘 쓰지 않고 하늘에게 구원할 때 쓰는 관용적인 표현으로 더 많이 쓰기에 동아줄의 실체를 모르는 경우가 더 많다. 대부분 동아줄을 전래동화 속에만 등장하는 밧줄로 알고 마치 잭과 콩나무의 콩나무 줄기 그것과 같은 개념처럼 생각할 수도 있다. 그렇기에 동아줄이 어떤 줄인지 모르는 경우 하늘에서 내려 준 밧줄이거나 하늘과 연결된 통로나 경로 혹은 하느님이 쓰는 실체가 없는 상상의 밧줄로 생각할 수 있다. 동아줄을 설명할 때 열이면 열 모두가 동아줄의 특징이 아닌 해님과 달님의 동화 속에 등장하는 밧줄로만 설명하는 걸 보더라도 사람들이 생각하는 동아줄에 대한 생각을 알 수 있는 대목이기도 하다.
그러나 동아줄은 실제로 존재하는 밧줄이다. 동아줄의 사전 풀이는 굵고 튼튼하게 꼰 줄을 말하는데 어떤 용도가 정해져 있는 줄이 아니라 굵고 튼튼하게 만들어진 꼰 밧줄이면 다 동아줄이라 부른다. 그냥 밧줄이면 끊어질 수 있지만 동아줄은 일반 밧줄보다 더 견고하며 굵고 튼튼한 줄을 의미하기에 끊어지지 않는 밧줄, 절단이 쉽지 않는 밧줄을 표현할 때 쓰는 말이다. 일반적인 밧줄(로프)은 사용 방법이나 사용 범위에 따라 끊어질 확률이 높다. 캠핑이나 화물 적재 등에서도 밧줄이 끊어지는 건 예사. 그러나 동아줄은 다르다. 얇은 실도 여러 개를 꼬면 매우 튼튼해져 쉽게 끊어지지 않는데 밧줄도 하나의 줄이 아닌 여러 줄을 꼰 경우라면 동아줄이 된다.
통상적으로 우리 주위에서 동아줄로 볼 만한 밧줄을 찾는다면 "줄다리기"에 쓰이는 밧줄을 예로 들 수 있다. 줄다리기에 쓰이는 밧줄은 굵고 튼튼하며 끊어질 걱정이 사실상 거의 없는 굉장히 튼튼한 줄이라는 걸 알 수 있는데 줄다리기할 때의 그 줄이 바로 동아줄인 셈이다. 또한 선박을 (해군함정 등) 고정, 정박할 때 쓰는 홋줄 역시 굉장히 두껍고 튼튼한 줄을 쓰는데 엄청난 크기의 배를 선착장에 고정시키는 이 남성 허벅지 굵기 만한 크기의 홋줄도 동아줄에 해당한다.
동아줄의 사전적 풀이처럼 굵기와 튼튼함이 동아줄과 일반 줄을 나누는 기준이 되지만 핵심은 줄을 꼬았는가 아닌가에 달려있다. 그냥 하나의 줄이면 밧줄이지만 여러 줄을 꼬아 만들면 사실상 다 동아줄이 된다. 그만큼 꼬았기 때문에 줄의 굵기가 자연스럽게 굵어지는 건 당연. 손으로 쥘 정도의 밧줄 굵기는 동아줄이 아니고 밧줄 굵기가 허벅지 만큼 커서 팔로 감싸거나 몸으로 둘러쌀 정도의 크기 등이 되어야만 동아줄인 줄 아는 사람도 있지만 손가락 마디 이상의 굵기에 해당하면 굵기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한 가닥의 줄이 아닌 여러 가닥의 줄이 꼬인 형태로 튼튼한 줄이면 동아줄로 보기 때문에 손에 쥘 수 있는 크기의 밧줄이라고 동아줄이 아닌 건 아니다. 예시로 아래 사진처럼 헬스장에서 쉽게 보는 헬스로프 (헬스줄) 역시 동아줄에 해당한다. (당연하지만 이 정도는 사람 힘으로 끊을 수 없고 트럭도 쉽게 견인할 수 있을 정도) 해님과 달님의 남매가 동아줄을 원한 것도 끊어질 걱정이 없는 밧줄이 동아줄이기 때문이다.
근데 왜 하필 이 아이들에게 내려 준 밧줄 이름이 동아줄인 걸까?
동아줄, 여기서 동아는 식물 이름으로 박과 식물을 뜻한다. "동아"라는 박과 식물은 사람 몸통 만큼 크고 성인 남자도 쉽게 들 수 없을 정도로 굉장히 큰 사이즈를 자랑하는데 우리 주위에서 볼 만한 대형 채소 중 압도적으로 가장 큰 식물이기 때문에 사람들은 굵고 튼튼한 줄을 이 동아에 빗대어 동아처럼 굵고 튼튼하게 만들었다고 해서 동아줄이라 부르게 된 것이다. 한국과 중국, 대만 등에서 쉽게 볼 수 있는 박과 식물이다.
동아는 다른 말로 동과라고 부른다. 동아라고 부를 때는 박과 식물이라 동아호박, 동아박이라고 따로 부르는데 동아라는 말이 동아시아의 준말인 "동아신문", "동아건설", "동아연필", "동아대학"처럼 동음이의어가 존재하기 때문에 구분하기 위해 호박, 혹은 박을 붙여 동아줄의 동아, 식물 동아를 말할 땐 동아박, 동아호박으로 구분해 부르기도 한다. 그런 점 때문에(동음이의어) 동과라는 말이 조금 더 많이 사용되기도 하는데 동아시아의 준말인 동아와 동과는 한자말이지만 동아는 순우리말이라 요즘엔 다시 동아라는 말을 더 많이 쓰려고 노력하는 추세다.
동과는 한자이기에 대만과 중국에서도 동과라 부른다. 참고로 동아리 역시 순우리말이지만 동아와 상관은 없다. (한 패를 이룬 사람들의 무리라는 뜻) 순우리말인 동아와 한자말인 동과처럼 같은 걸 두고 다르게 부르는 경우는 의외로 많은데 대표적인 것이 달걀(우리말)과 계란(한자말), 동아리(우리말)와 동호회(한자말)등이 있다. 이런 경우 우리말과 한자말 둘 다 표준어다.
사람들은 동아(식물)을 잘 모른다지만 의외로 한 번 이상은 본 작물이기도 하다. 정작 우리 주변 미디어에서는 자주 많이 노출되는 편인데 워낙 압도적인 크기와 묘한 맛을 자랑하기 때문에 우리 한식 메뉴와 관련해 방송에서도 가끔 볼 수 있다. 방송에서도 동아(식물)와 동과 표현이 중복되어 쓰기 때문에 (달걀과 계란처럼) 그때 본 동과가 동아줄의 "동아"였어! 놀라워하는 분도 있는데 이번 기회에 그 동과가 동아였고 그 동아가 동아줄의 동아라는 걸 아는 기회가 되었으면 한다.
한식대첩에 등장한 동아(동과)를 보면 굵기가 상당한 걸 알 수 있다. 크기만 보더라도 선조들이 왜 굵고 큰 밧줄 이름을 동아줄로 지었는지 쉽게 유추할 수 있다. 동화 속에서만 쓰는 밧줄로 아는 분도 있지만 실제 동아줄은 저 동아를 보고 모양과 크기를 빗대어 만든 밧줄 이름이다. 동아줄이라는 말뜻을 모르면 그냥 그렇게 불렀다보다 하고 아무 생각없이 넘어갈 수 있지만 동아줄의 "동아"가 무얼 의미하는지 안다면 해님과 달님, 해와 달이 된 오누이가 하늘을 향해 왜 동아줄을 요구했는지 금방 이해할 수 있다.
동아의 경우 박과 식물이지만 호박 맛보다는 참외와 무, 그리고 오이 중간 맛으로 알려져 있다. 실제 영상 속 동아를 보면 알겠지만 그 내부가 참외와 판박이로 그냥 큰 참외다. 처음 본 사람들은 거의 다 큰 참외라고 생각할 정도로 속은 참외와 거의 같다. 다만 맛은 무맛에 가깝고 (맛이 없는 게 아니라 총각무, 김장무의 그 "무") 향은 오이향과 비슷하다. 특별히 만들어 먹는 주재료가 되는 음식은 없고 그 맛 때문에 물김치 (나박김치) 등에 무 대용 혹은 무와 함께 넣어 먹기도 한다. 거의 대부분 김치류 속재료로 쓰는 편인데 시원한 맛을 위해 양념김치류 보다는 물김치류에 주로 사용해 먹는다. 당연히 무 대용으로 쓸 수 있기 때문에 시원한 국물 요리를 위해 투척하는 무 대신 이 박(동아)을 쓰기도 한다.
해님과 달님의 표지와 속지 삽화를 보면 거의 대부분 일반 밧줄이 등장하고 그걸 아이들이 잡고 올라가는 형태를 보이는데 사실 이게 아무리 동화 이야기라 해도 어린 아이들 입장에서 밧줄 타고 올라가는 건 쉽지가 않다. 군대에서 밧줄 타기를 해 본 남자라면 100% 비공감이다. 사실 선조들이 지은 동아줄의 이름 의미를 안다면 아이들은 밧줄을 잡고 스스로 올라간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동아줄의 동아를 모른 상태에서 동아줄을 일반 밧줄로 상상했다면 하늘에서 밧줄 하나가 내려 왔을 것이고 아이들은 그걸 잡아 올라가거나 잡고 있는 상태에서 밧줄을 끌어올렸다고 상상할 수밖에 없는데 실상 동화 속에 등장하는 옛날 동아줄은 저 동아(식물) 만큼 큰 밧줄을 의미하기 때문에 아이들이 잡고 오를 필요가 없다. 이때의 동아줄은 동아호박처럼 몸통만 한 항아리 정도의 크기 밧줄이거나 나무 굵기 정도의 밧줄이 정확히 동아줄의 굵기를 의미하기에 아이들이 밧줄을 잡는 게 아니라 그냥 "매달려"있기만 하면 된다.
밥솥만한 굵기의 큰 줄이 하늘에서 내려오면 밧줄을 잡는 게 아니라 밧줄에 매달려 끌어올려졌다는 뜻이다. 그렇기 때문에 해님과 달님의 오라버니가 하늘을 향해 특별히 "동아줄"을 내려달라고 특별 주문을 한 것이고 이 동화 속에 동아줄이 특별히 등장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단순히 굵고 튼튼해서 동아줄을 요청한 것이 아니라 아이들이 (특히 어린 여동생) 고목나무에 매미가 매달리 듯 쉽게 매달려 하늘로 올라갈 수 있는 게 바로 동아줄이기 때문에 남매가 동아줄을 특별 요청한 것으로 볼 수 있는데 그만큼 이 설화를 만든 작자의 깊은 성찰이 엿보이는 대목이라 할 수 있다.
참고로 해님달님은 서양 동화 "빨간망토(빨간모자)"와 계보가 같은 걸로 알려져 있다. 동서양의 문화 차이만 약간 존재할 뿐 이야기 전개 형태가 거의 같다. 늑대와 호랑이라는 차이, 엄마와 할머니라는 차이 등 일부 요소 등의 차이가 있고 스토리에 변화가 약간 있지만 큰 틀은 같다. (손을 확인하는 등) 신레델라(유리구두)와 콩쥐밭쥐(꽃신) 역시 마찬가지. 우리가 알고 있는 우리만의 한국 전래동화 상당수는 동남아 (베트남과 미얀마 등) 국가에서도 접할 수 있고 서양에서도 비슷한 맥락의 이야기를 접할 수 있는데 각각의 지역에서 따로 만들어진 이야기가 아니라 하나의 이야기가 퍼지면서 살이 붙어 각각 지역 특색에 맞게 정착된 것으로 보기도 한다. 해님달님도 마찬가지. 단지 동양에서 서양으로, 서양에서 동양으로 어디서 어디로 퍼졌는지를 모를 뿐.
동아(동과)는 우리에게 이름도 모양도 존재감도 낯선 채소가 되었지만 중국에서는 쉽게 볼 수 있고 자주 먹는 편에 속한다. 특히 대만의 경우 동과차라 해서 차로 즐겨 마시기도 한다. 대만의 유명 파인애플 과자인 "펑리수" 역시 저렴한 상품인 경우 파인애플은 향만 쓰이고 주재료는 바로 이 동아(동과)가 사용된다. 동아에 설탕을 넣고 조려 잼처럼 만든 뒤 파인애플 향을 입히면 펑리수가 되는 것인데 물론 이건 가격을 낮추기 위해 맛만 흉내 낸 2군 펑리수이고 오리지널 펑리수는 100% 파인애플을 쓰기 때문에 맛과 향의 차이는 존재한다. 동아 펑리수는 짝퉁, 가품, 속임수는 아니고 그냥 저렴하게 만든 2군 상품일 뿐이다. 다만 값을 비싸게 받으면서 속재료는 동아를 썼다면 당연히 속여 파는 가짜다. 아래 백종원 쌤의 펑리수는 100% 파인애플로 만든 펑리수로 대만에서 펑리수를 살 때 유독 싸다면 파인애플 향만 입힌 동아로 만든 펑리수일 확률이 매우 높다.
이번 기회에 아이들과 함께 해님과 달님의 동아줄 이야기를 하면서 동아줄이 왜 동아줄로 불렸는지 설명해 주는 것도 괜찮을 듯 싶다. 오늘도 지식 충전 완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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