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쟁에서 암호로 쓰인 제주도 사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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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언어유희

한국전쟁에서 암호로 쓰인 제주도 사투리

by 깨알석사 2023. 8.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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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신거렌 ᄀᆞᆯ암신디 진짜 모르크냐?

하나의 국가에서 단일 민족이 쓰는 말과 글은 하나인 게 보통이다. 말이 다르거나 말이 여럿이면 소통에 문제가 생기기 때문에 근본적으로 말이 통하려면 당연히 서로 쓰는 말이 같아야 하고 소통할 수 있는 언어 수단이 동일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외국어와 다르지 않아 소통이 어렵고 어울리기가 쉽지 않다. 당연히 그런 일이 빈번하면 통일된 문화 체계와 국가 제도를 운영하기 힘들기 때문에 나라 운영이 어렵고 최악의 경우 언어 사용자 구성자 여건에 따라 나라가 쪼개지는 불상사가 생길 수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특정 국가에 속한 해당 국민의 사용 언어는 단일 체계로 이루어진 하나의 언어인 게 상식이다.

물론 같은 국가, 같은 민족, 같은 국민(백성)이라 할지라도 지역 간의 생활 방식 차이와 문화 차이로 인해 발생하는 지역적 언어 차이는 존재한다. 지금과 달리 과거에는 지역 간 이동이 쉽지 않고 사실상 단절된 상태에서 해당 지역에서 태어나 자라고 죽는 생애 전 과정이 그 지역에서만 일어나는 일이 다반사였기 때문에 다른 지역과의 교류 여부에 따라 말의 토착화, 고정화는 심화될 수 있다. 어느 지역에는 없는 것이 다른 지역에서는 존재할 수 있고 생활 방식과 그에 따른 관습의 차이도 발생할 수 있기 때문에 다른 지역과 얼마나 교류를 많이 하고 어울리며 소통하는지 여부에 따라 언어 사용에 따른 차이는 크거나 작을 수 있다. 그러나 하나의 국가 테두리 안에서의 언어 사용에 있어 소통의 근본적인 문제가 생기는 경우는 드물다. 국가라는 개념이 발생한 이후부터 국가 운영에 있어 언어의 통일, 동일성은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같은 하늘 아래 같은 땅이지만 제대로 된 지역 사투리로 말하면 전혀 알아듣지 못하는 곳이 우리나라에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사투리가 심해도 대체로 타 지역 사람과 소통하는데 문제가 없지만 일부 지역의 경우 그 정도가 심해 서로 소통하는 게 어려운 경우도 있는데 바로 제주도 사투리다. 사투리, 방언의 경우 정확한 의미 전달까지는 아니어도 말의 맥락에 따라 넘겨 짚어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 크지만 제주의 경우는 타 지역과 달리 사투리 개념에서 벗어나 알아듣는 말보다 못 알아듣는 말이 더 많다 보니 방언, 사투리로 인식하기보다는 전혀 다른 언어로 인식하는 경우가 많다. 사실상 외국어 수준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

그래서 제주도의 경우 다른 지역과 달리 제주 사투리라는 말 대신 제주어라는 별도의 언어 명칭을 갖고 있다. 실제로 제주도에서는 제주도만의 사투리 보존을 위한 제주어 조례까지 만들어 제주 사투리가 아닌 제주어라는 언어명 지위를 주어 공식적으로 쓴다. 고유한 단어 사용 빈도가 높고 타 지역과는 완전 별개의 문법적 특성이 있기 때문에 일반적인 사투리 개념보다 별도의 언어 취급을 하는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우리나라의 언어가 한국어와 제주어 2개가 되는 건 아니다. 공용어로서의 지위 역시 없다. 제주자치도의 조례에 따른 지역 언어명일 뿐 국가 공식 언어는 아니기 때문에 조례가 있다고 해서, 한국어처럼 별도의 제주어라는 언어 명칭을 갖는다고 해서 지역 방언 개념에서 벗어나는 건 아니다.

참고로 우리나라는 한국어 단일 사용 국가에서 공용어 2개 국가 사용으로 바뀐 상태다. 이렇게 되면 제2외국어의 대명사인 영어가 공용어인가 싶겠지만 한국어와 더불어 대한민국 공식 공용어 지위를 얻은 건 "수어"다. 기존 "수화"가 언어명칭을 받아 "수어"가 되었고 TV에서 뉴스와 스포츠 중계 때는 물론 국가 공식 행사와 대통령 기자회견 등의 주요 방송에서 수어통역자가 같이 나오는 것도 국가 언어로 공식 지정되었기 때문. 제주어 역시 언어 명칭을 받긴 했지만 국가 차원이 아닌 지방자치 차원에서 만들어진 언어명이고 무엇보다 제주어는 제주어의 언어 사용보다는 언어 보존에 초점을 맞춘 명칭이기 때문에 공용어로서의 지위는 갖지 않는다. 다만 제주도 사투리인 제주어는 유네스코에 소멸 위기의 언어 4단계 "아주 심각한 위기에 처한 언어 (critically endangered language)"로 등록되어 있는 상태이기 때문에 미디어 자료에서만 볼 수 있는 날이 얼마 남지 않은 상황이다. 제주자치도가 제주어 보존을 위해 조례를 만든 이유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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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제주어는 고대 한국어에 가깝기 때문에 기존의 사투리 개념과는 다르다는 인식을 주기 위해 만들어진 언어명이기 때문에 제주 사투리와는 구분하는 편이다. 그래서 제주 사투리가 곧 제주어가 되는 건 아니다. 제주어는 본래 말뜻을 알아 듣기 어려운 고유어지만(혼자옵서예 등) 제주 사투리는 눈치껏 알아들을 수 있는 타 지역과 별반 다르지 않은 수준의 말 그대로 표준어가 어느 정도 들어가 희석된 방언이기 때문에 현대 관점에서 제주 사투리와 제주어는 문법적으로 구분하기도 한다. 현대 표준어가 전혀 들어가지 않은 옛 제주말이 제주어, 그렇지 않고 표준어가 바탕이 된 문장에서 일부 고유명사나 형용사 등에만 제주어 일부가 들어가면 제주어가 아닌 제주 사투리로 본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제주어와 달리 제주 사투리는 타 지역 사투리처럼 소통이 상당 부분 가능한 특징이 있다. 제주도 관광이나 여행을 할 때 식당, 시장에서 제주도민과 대화를 해도 소통의 어려움이 없는 것도 그들 상당수가 제주 고유어인 제주어가 아닌 다른 지역의 사투리 개념 수준의 현대화된 제주 사투리를 쓰기 때문이다.

제주 방언으로 군대 암호를?

제주도의 경우 다른 지역과 달리 유달리 사투리가 심해 다른 지역 사람들은 말귀를 알아듣지 못하는 불편함이 클 수밖에 없는데 이를 역으로 잘 활용한 독특한 사례가 있다. 바로 6.25 한국전쟁 당시 북한군의 무전 도청을 막기 위한 방법으로 제주도 사람을 무전병으로 활용한 것이다. 지금도 제주어를 쓰는 경우 못 알아듣는 경우가 빈번한데 당시에는 제주도 사람이 육지(뭍)로 올라와 사는 경우는 더더욱 드물었기 때문에 제주어를 쓰는 사람이 육지에 거의 없다는 걸 응용한 전술이었다. 물론 이 방법에는 치명적인 단점이 존재하는데 북한에서도 똑같이 제주 사람을 활용하면 남한의 무전을 도청할 수 있다는 점이다. 더군다나 제주도는 한국전쟁 이전 이미 제주 4.3 사건 등에서 본 것처럼 빨갱이 주민들이 장악한 섬으로 알려진 상태였다.

그러나 당시에는 이것이 문제가 되지는 않았던 걸로 보인다. 무엇보다 제주도는 남쪽 제일 끝에 위치하고 있기 때문에 제주도민이 내륙에 오는 것도 쉽지 않을 뿐더러 육지에 정착해도 부산이 있는 경상도, 해남이 있는 전라도에 진입하는 게 대부분이라 지금의 북한 지역까지 올라가는 경우는 드물었다. 같은 한반도이니 남한에만 제주도 사람이 있는 게 아니라 북한에도 있지 않겠는가 싶겠지만 남한도 남부 지역에 한정되었지 중부, 서울까지 올라온 경우는 소수였다. 암호문이 아니라 인간 자체가 암호가 되는 케이스이기 때문에 이 무전을 도청하려면 반드시 도청하는 쪽에도 이 사투리를 이해하고 쓸 줄 아는 제주 사람이 필요한데 그 아무리 빨갱이 딱지가 붙었다고 해도 그 사람들이 전부 남한, 국군에만 있고 북한군에는 없다면 결과적으로 제주 빨갱이 논리는 의미가 없는 것이다.

지금도 전라도, 경상도, 충청도, 강원도 사람을 수도권에서 접하는 건 어렵지 않지만 제주 출신을 육지에서 만나는 건 생각보다 쉽지 않다. 일상에서도 제주도 사람을 만나는 게 흔하지 않는데 군대라는 특정 시기에 만난다는 건 더욱 어렵다. 더군다나 그 사람이 군대에 징집되어 있는 상태이어야 하고 특정 지역에 배치가 되어 있어야 하며 그에 맞게 많은 제주 출신 병력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한국전쟁 당시에는 많은 제주도민이 국군으로 참전했다) 더군다나 무전 교육을 받아야 도청, 감청이 가능하기 때문에 이론적으로는 도청이 매우 쉽지만 북한 입장에서는 정작 이걸 실행하는 게 어렵다. 당시로서는 북한의 도청을 막는 가성비 좋은 방법이었던 것이다. 아래는 실제로 제주도민을 활용한 한국전쟁 당시의 무전 사례 (이만갑에서 소개되었다)

아래 클립 영상에서는 실제 육성을 들을 수 있다. 자막으로 보니 그래도 대충 알아 들을 수 있을 것 같지만 자막 없이 귀로만 들으면 정말 무슨 내용인지 알기 어렵다.

제주 사투리를 군대에서 보기 힘든 이유

제주어, 제주 사투리는 그 자체로 뼈아픈 역사와 고통을 갖고 있는 말이기도 하다. 군대에서 제주 사투리를 쓰는 선후임을 보기 힘든 것도 마찬가지인데 여기에는 여러 가지 배경과 상황이 있다. 일단 제주 하면 떠오르는 상징인 "삼다도"를 뜻하는 돌, 바람, 여자만 보더라도 남자 보기가 힘든 지역이 제주도다. 여자가 많다는 건 실제로 그 수가 많다는 게 아니라 상대적으로 남자가 적어 여자가 더 많아 보인다는 걸 의미하는데 육지와 다른 고립된 섬 생활이라는 특징에 (배 타고 나가 어업 하다 죽는 경우 예외 없이 남자) 제주 4.3 사건 등으로 인해 많은 수의 사람들이 학살되면서 남자들의 씨가 말랐다.

제주의 또 다른 상징인 해녀 문화가 발달한 것도 남자가 없으니 대신 남자 몫을 여자가 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인데 한국전쟁 당시 제주 사람을 무전병을 쓴 것도 군대 갈 만한 제주 남자가 애초에 많지 않을 뿐더러 그조차 징병 가능한 경우 거의 대부분 남쪽의 국군으로 징병이 되었기 때문에 북한의 무전 도청을 막는 것이 가능했었던 것이다. 즉 북한에서는 남한이 제주 사람을 활용해 인간 암호기로 쓴다는 걸 알아도 인간병기로 쓸 제주 사람을 (그것도 남자) 북한 지역에서는 찾기가 불가능해 손을 놓고 있어야 했던 것이다.

여기에 광복(해방) 이후 벌어진 4.3 사건 영향으로 제주어를 쓰면 빨갱이 딱지가 붙었기 때문에 제주 밖으로 나가는 경우 제주어는 사실상 금기어가 될 수밖에 없다. 당연히 표준어를 구사하려고 노력하는 빈도가 타지역 대비 압도적으로 높을 수밖에 없고 표준어까지는 아니어도 고유한 제주어를 되도록 쓰지 않기 위해 애를 쓸 수밖에 없다. 이들에게 제주어는 지켜야 하는 고향의 말이 아니라 버려야 하는 말이었고 생존과 직결되는 사안이었다. 특히 제주도 남자는 제주어의 사용이 곧 낙인 효과로 이어지기 때문에 제주어 사용을 줄일 수밖에 없다.

현재도 제주어와 관련해 미디어에 노출되는 경우를 보면 제주어 사용자의 8할은 여자다. (제주 할망 등) 제주어와 관련해 제주어를 구사하는 장면을 보면 남자보다는 여자가 많은데 제주어를 사용해도 큰 상관없는 여자와 달리 제주어가 곧 생존 및 생계가 직결되는 남자의 경우에는 제주어 사용 빈도를 줄일 수밖에 없는 환경적 요소가 어느 정도 영향을 줄 수밖에 없어 사용하는 사람의 수가 여자에 비해 많이 없는 편이다. 결과적으로 전라도나 경상도 육지로 가도 빨갱이 낙인이 찍혀 곤란한 상황이 노출될 확률이 높은 만큼 이들이 택한 제2의 육지는 "일본". 그래서 재일교포 출신지를 보면 제주도가 압도적으로 많은 것도 그런 맥락이라 할 수 있다.

거기에 근본적으로 제주는 섬이다. 섬 출신들이 대부분 그렇지만 섬 출신자들은 본인의 의지와 상관없이 "해군" 및 "해군"으로 착출되는 경우가 많다. 일반적으로 해군, 해병, 공군은 100% 자원 병력으로 알려져 있지만 예외적으로 섬 출신은 지역 특성에 맞게 해군 및 해병으로 입대하는 경향이 많은데 스스로 자원하기보다는 입대 영장 자체가 아예 해군으로 결정되어 나오는 경우가 많다. 섬 출신이면 어차피 어업 활동을 하고 배를 타는 경우가 많기에 어차피 군 전역 이후 상황까지 고로해도 이들이 육군을 가는 것보다는 해군을 가는 것이 입대자는 물론 군대 입장에서도 나쁘지 않고 바다에 대해 잘 아는 병력인 만큼 이들을 굳이 육군에 보낼 이유가 없는 것이다. 한국전쟁 당시에도 국군으로 입대한 제주도 남자는 대부분 해병 아님 해군으로 들어갔다.

실제로 아직까지도 내 주위 섬 출신자들은 모두 해군, 해병 출신이다. 물론 자원은 아니고 본인 의지와 상관없이 그렇게 배치되었다고 한다. 해병에 갈 생각이 없었는데 해병으로 보내져 당황했다는 지인도 있다. (물론 지금은 해병 귀신이 되어 해병이 최고인 줄 안다) 육군에 비해 해군과 공군을 일반 사회에서도 쉽게 접하기 어려운 만큼 그들 다수가 육군이 아닌 다른 곳으로 간다면 그만큼 육지 위주로 돌아가는 포방부 위주의 일반 군대에서는 제주 사람을 접하기 어려울 수밖에 없다. 여기에 농촌과 더불어 어촌 역시 영농후계자, 농민후계자, 어업종사후계자 개념에서 병역특례를 받는 경우가 왕왕 있다. 농어촌 활성화 정책 차원에서의 병역제도인데 귀농, 귀촌, 귀어 대상자가 아닌 원래부터 어업에 종사한 경우가 많아 섬에 사는 경우 군대 대신 후계자 선정으로 방향을 선회하는 경우도 생각보다 많다.

여기에 더 나아가 바다와 밀접한 환경 속에서 생활을 하기 때문에 인천과 부산에 있는 해사고 등의 특목고에 진학하는 비율도 무시할 수 없다. 보고 자란 게 어업과 관련한 일이다 보니 자연스럽게 수산업계로 빠지는 경우가 많은데 이때 특목고로 진학하는 경우 영농후계자와 마찬가지로 군대 대신 배를 타는 병역특례제도로 운영되기 때문에 항해사로 대형 선박에 승선해 군생활 대신 항해를 하는 경우도 있다. 바다가 있는 지역의 특성이기도 한데 이들 지역 제1국민역(준비역) 중 일부는 군대 대신 배를 타는 경우가 타 지역에 비해 높기 때문에 여기서 또 빠지는 인원을 무시할 수 없게 된다.

결국 군대에서 제주 사람을 쉽게 만나기 어려운 건 애초에 제주 남자가 상대적으로 많지도 않을 뿐더러 육군 위주의 우리나라 군대 문화에서 상당수의 제주 남자는 해군 및 해병으로 빠지는데 그마저도 그 수가 많다고 볼 수 없기에 일반적인 상황에서의 군 생활에서 제주도 출신 군 복무 남자를 만나는 건 쉽지 않다. 거기에 영농후계자든 상선근무든 병역특례로 빠지는 비율도 일반 육지 사람에 비해 높기 때문에 해군, 해병이라고 해서 제주 사람을 꼭 만날 수 있다는 것도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다른 지역 사투리를 많이 접하는 군대임에도 불구하고 제주 사투리를 접하기 어렵다. 무엇보다 과거부터 일찍이 제주어 사용을 되도록 자제하고 표준어를 구사하도록 한 아픈 역사에서 비롯된 제주도만의 특징도 한몫을 하기에 설령 제주 사람이라고 해도 일상적인 대화는 표준어를 쓴다면 제주 사투리를 접하는 경우는 더욱 줄어든다.

사투리의 매력

제주 사투리는 우리나라 사투리 중에서 가장 신기하고 희귀한 말이지만 그만큼 아프고 슬픈 역사도 많다. 투박하고 차갑게 들리지만 겉바속촉처럼 겉은 딱딱해도 속은 의외로 부드러운 말이며 정겨움도 물씬 풍기는 토착 문화를 대변하는 언어이기도 하다. 너무 소통이 되지 않아 오해 받기 쉽고 말뜻이 통하지 않아 바보 취급을 받기도 하지만 다른 지역 사투리에는 능청스러움 있다면 제주 사투리에는 보이지 않는 설움이 느껴진다. 물론 지금은 그런 설움을 딛고 재치와 사랑스러움이 녹아드는 면도 없진 않은데 제주어를 사용하고 보존하는 노력의 결실이 꼭 이루어져 제주도에서 만큼은 제주어를 접하는 일이 더욱 많아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사투리는 무식해 보이고 사투리는 못 배운 것처럼 들려 고급되고 세련된 표준어를 쓰려고 노력하는 사람도 많지만 사투리 역시 매력 있는 말로 또 다른 무기가 될 수 있고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는 핵심 매개체로서의 역할도 충분히 할 수 있다. 사투리는 고급과 저급의 차이가 아니고 틀림의 차이도 아니다. 그냥 조금 다를 뿐이고 또 다른 소중한 우리의 유산일 뿐이다. 표준어가 담지 못하는 한과 얼, 그리고 기쁨과 슬픔을 함축적으로 담은 한국어의 바탕이자 근본이라 보아야 할 것이다.

참고로 황산벌에 나온 장면 중 가장 좋아하는 장면이 있는데 계백 장군하면 연상되는 처와 자식들을 죽이는 장면이다. 표준어가 아닌 투박한 사투리로 대사를 하는 장면인데 사투리 때문에 처음엔 웃기다가 나중에는 오히려 사투리 때문에 더 감정이 와닿는 것 같아 눈물을 머금게 만든다. 이 장면이 표준어, 서울말로 나왔으면 이런 노골적인 분노와 고통, 슬픔이 담길 수 있었을까 싶다. 사투리라서 감정 이입이 덜 되는 게 아니라 사투리라서 감정 이입이 더 잘된 연출로 황산벌 영화에서 웃음과 슬픔, 분노와 처절함을 사투리를 통해 동시에 느끼게 하는 명장면 중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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