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 멋쟁이
90년대 X세대를 대변하는 대명사 중 하나가 오렌지족이다. 잘난 부모님 덕에 유흥과 과소비를 일삼던 일부 젊은이들을 지칭하던 단어였다. 오렌지는 수입, 낑깡은 국산 금귤을 지칭하기에 기본적으로 유학파이냐 국내파로도 구분하기도 했다. 당시 등급을 나눠 수입 외제차를 직접 구매하거나 아빠차를 굴리면 오렌지족, 차는 있지만 남의 걸 빌린 경우라면 낑깡족이라 했었다. 무엇보다 이들의 최소 기본 아이템은 자동차였다. 자신을 뽐내기 쉽고 부를 자랑하기 가장 쉬운 방법이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그때도 고급차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오렌지족은 자동차와 미제식 패션으로 구분하고 X세대는 패션 하나만으로 구분하는 경우도 있다. 90년대에는 누구나 X세대였지만 오렌지족은 누구나가 아닌 일부만 해당한다.
그렇다고 해서 오렌지족이 X세대를 대표하는 건 아니다. 강남 압구정동에 한정하여 그곳에서 유흥과 향락을 즐기던 유학생에 한정한 경우가 많았고 또 그들의 행위는 당시 비판적이었고 지탄의 대상이었다. Y세대, X세대, MZ세대와 다른 특정인들만을 대상으로 한 지칭이다. 무엇보다 이들은 과소비는 물론 금지품목 수입, 마약 등 불법도 서슴치 않았기 때문에 부류가 다르다. 양주, 양담배처럼 서구식 문물이 최고라고 믿고 그것이 전부라고 생각했던 부류이기도 하다.
패션과 문화를 선도한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부모 잘 만나 놀고 마시며 시간을 허비하는 사람들이었다. 단지 돈 없는 사람들에게는 그들의 모습이 신선했고 부러움의 대상이 되어 화자가 되었을 뿐이다. 패션도 굳이 세부적으로 구분한다면 오렌지족은 미제, 미국식이고 X세대는 일제, 일본식이 주류였다. (미니 카세트, 뽕 앞머리, 나팔바지 등) 그래서 오렌지족은 미국에서 본 듯한 스타일 느낌이 나고 X세대는 일본에서 본 듯한 스타일 느낌이 난다. 오렌지족은 쾌락주의적 가치관이 핵심이라면 X세대는 자기중심적 가치관이 핵심으로 근본이 다르다.
KBS 보도 자료에 따르면 오렌지족은 수입 오렌지처럼 나긋나긋하고 향기로우며 품위 있어 보여서 오렌지족 스스로 붙였다고 설명한다. 그러나 이는 여러 가설 중 하나일 뿐 정설은 아니다. 디지털강남문화대전 백과사전 정보에 따르면 오렌지족은 경제성장의 혜택을 받고 자란 서울 강남 지역에 자리를 잡은 상류층 2세, 또는 부를 바탕으로 해외여행이나 유학경험이 있는 유학생 부류를 의미한다고 설명한다. 이들은 많은 부를 가진 부모 덕택에 씀씀이에 구애받지 않고 향락적 소비문화에 익숙했다. 건설적 소비, 생산적 소비와는 거리가 멀었다. 오로지 유흥소비와 사치소비가 이들의 소비 형태였다.
오렌지족은 기성세대의 가치를 부정하고 자기주장을 확실하게 드러낸다는 점에서 X세대와 비슷한 느낌을 주지만 그건 반항기 있는 당시 문화에서는 모두가 갖고 있던 기질이었다. 새로운 문화를 받아들이고, 기존 기성세대의 문화와 다른 가치를 갖고 새로운 가치관을 찾아가는 것이 당시 X세대의 정의라면 오렌지족의 가치관은 가치관이 정립되지 않은 제멋대로의 행태일 뿐 가치를 부여하기 힘든 부류다. 부자 상류층의 2세, 3세여도 과소비를 일삼지 않고 새로운 가치관을 정립해 당시 문화를 선도했다면 오렌지족이 아닌 이들도 그냥 X세대다.
디지털강남문화대전(백과사전) 에서는 오렌지족의 명칭 유래에 대해 두 가지 가설을 정설처럼 내세운다. 강남 압구정동 카페에서 남자가 마음에 드는 여자를 발견하면 오렌지 주스를 한잔 건네 주었다는 것에서 착안된 명칭이라는 것과 고가의 외제차를 타고 다니며 거리에서 여성들을 유혹할 때 이들이 오렌지를 들고 있었다고 해서 오렌지족이라 부르게 되었다는 것이다.
수입산과 미국 유학
오렌지족의 경우 몇 가지 특이사항이 존재한다. 특히 유학생들인 경우가 다반사였는데 사실상 오렌지족이라 불린 사람들 대다수는 해외 대학에 다니거나 졸업한 경우가 대부분을 차지했었다. 유학 생활 중 귀국한 흔히 말하는 외국물 좀 먹은 부유층 자녀들이 오렌지족의 기본 컨셉인 것인데 당시 수입산 과일이 흔치 않았던 시기이기도 해서 수입산 오렌지와 맞물려 오렌지족의 명칭 유래가 유학에서 유래한 것이라 알고 있는 분도 꽤 있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일단 사람들이 기본적으로 많이 찾는 나무위키에서도 이와 유사한 설명을 하고 있는데 어원에 관해서는 크게 세 가지 설이 유력하다고 설명한다. 첫 번째는 오렌지가 수입산이라는 점에서 착안되었다는 것. 두번째는 한인이 많이 사는 캘리포니아에 있는 LA와 붙어있는 오렌지 카운티에 유학생들이 많아서 이런 이름이 붙었다는 것. 세 번째는 마음에 드는 이성에게 오렌지나 오렌지주스를 주며 헌팅을 했다는 설로 앞서 세 번째는 강남문화대전에서 이야기한 내용과 같게 설명했다. 이중 가장 유력하고 진실에 가깝다고 한 건 오렌지 카운티의 유학생들이 많아서라고 설명한다.
나무위키에서는 그것이 왜 정설인지에 대해서는 직접 설명하지 않았지만 사실 이 오렌지족 명칭은 나무위키의 설명이 맞다. 애초에 이 명칭은 오렌지족이었던 사람들은 그 유래를 잘 알고 있다. 오렌지라는 특정 집단 명칭은 상류층 자제들끼리만 어울리며 자신들끼리 사용하던 은어였기 때문이다. 일반 사람들이 이들의 행태를 보고 붙인 말이 아니다. 고로 첫 번째 수입산 오렌지와 세 번째 오렌지 주스는 유래가 아니다. 오렌지 카운티는 우리가 생각하는 거 이상으로 잘 사는 최고급 부유층 집단 거주지다. 지금도 마찬가지. 미국 캘리포니아, 그중에서도 LA 베버리힐즈 만큼이나 상당한 부촌이 바로 오렌지 카운티에 있다. 일반 유학생이 아닌 상류층 유학생인 경우 이들은 예외없이 이곳 오렌지 카운티에 터를 잡는다.
이것이 왜 이들의 은어가 되고 오렌지족의 유래가 되었는지 해외파 상류층 자녀들의 대화식으로 풀면 이렇다.
머스크 정 - 재는 어디 있었대?
제니퍼 리 - 오렌지에 있었다는데 (여기서의 오렌지는 오렌지 카운트)
제니 박 - 아, 재도 오렌지야?
이것이 방학이나 졸업 후 국내로 귀국한 뒤에도 똑같이 적용이 된다. 유학생끼리 어울리고 유학생 출신끼리 만났을 때 (이들 자체가 당시 상류층 자제들이니) 재는 뉴욕? 보스톤? 어디서 공부하고 어디서 지냈는지 물었을 때 "오렌지"로 누군다 대신 알려주거나 본인이 대답하면 LA 근교의 오렌지 카운티에 있었다는 걸 바로 알아 들었던 것이다. 즉 오렌지족의 오렌지는 오렌지 카운티에서 유학 생활을 했다는 걸 증명하는 동시에 상류층임을 상징하는 은어였던 것이다.
이것이 상황을 모르는 일반 국내인들에게는 낯선 용어일 수밖에 없다. 상류층 자녀 중 누군가 일반인 친구에게 소래를 할때 습관처럼 잰 오렌지야! 하면 일반 친구는 그게 무슨 의미이고 뜻인지 모른다. 그냥 앞서 가설처럼 수입(유학)과 연동해 상상하거나 엉뚱한 근거로 잘못 해석해 (오렌지 주스로 꼬셨다는 것) 그렇게 부르는구나 착각하기 쉽다. 90년대 유학생끼리, 특히 상류집안 자녀들끼리는 이게 쉽게 통용이 되었는데 외국 상황, 오렌지 카운티 존재를 잘 모르던 사람들 입장에서는 그냥 자기들끼리 오렌지라 부르니 저런 애들을 오렌지로 부른다고 착각하기 쉬웠던 것이다. KBS 유튜브에서 기자가 했던 자기들 스스로 지칭하고 만들었다는 부분은 바로 이 부분에 해당한다. 다만 당시 90년대 기자는 이것이 어떤 특정 가치관이나 문화를 가진 자들이 스스로 붙였다고 설명했지만 그건 아니고 그냥 자기들끼리 출신지, 유학지, 소재지를 따져 묻게 되면서 붙은 아명일 뿐이다. 영화 공공의 적에서 이정재가 맡은 빌런 역할이 당시 오렌지족이었던 박한상 패륜아 사건을 일부 모티브로 한 건 잘 알려진 사실.
한 번도 안 가본 사람은 있어도 한 번만 가본 사람은 없다는 오렌지 카운티, 2024년 지금도 LA 근교에서 경계를 두고 비싼 고급주택, 최고급 주택단지를 찾는다면 여전히 오렌지 카운티가 압도적으로 많다. 일단 여긴 부촌 이미지가 상당히 강하다. 무엇보다 아시아인이 절반 넘게 거주를 하고 있어 문화 차이가 크지 않으면서도 배경과 시설, 분위기는 찐 미국이기 때문에 돈 많은 한국사람, 돈 많은 교포 한인들도 많은 편이다. 물론 여행지로서도 탁월한 경치와 시설을 자랑하기에 꾸준히 찾는 관광객도 많아 상업 시설 역시 상당히 좋은 편에 속한다.
흔히 고급주택단지하면 연상되는 이미지가 있는데 도심에 있는 부촌과 달리 여긴 대단지 혹은 대규모 고급주택이 바닷가와 인접해 있고 상업지와 철저히 구분되어 있기 때문에 사생활 보호 및 관리에 상당히 유리한 편에 속한다. 도심지가 아닌 외곽에 있는데 LA 도심보다 더 부촌 이미지가 강한 것도 이런 배경에 근거한다. 강남 생활에 익숙한 상류층에게는 또 다른 미국 강남인 것, 이것이 오렌지족들이 한국에 만들어진 이유이기도 하다.
고급차 때문인지 여자를 유혹하는 수단으로 차를 활용해 이중 일부는 야타족이라 부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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