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파와 폐는 같다? (+계란과 달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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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언어유희

허파와 폐는 같다? (+계란과 달걀)

by 깨알석사 2022. 12.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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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어

간혹 허파와 폐를 다르다고 하는 사람을 본다. 폐가 허파이고 허파가 폐라고 하면 그렇지 않다고까지 한다. 그럼 허파는 어디에 있는 것이냐 물으면 대답을 잘 못한다. 반면 폐는 어디에 있냐고 하면 잘 대답한다. 폐렴 및 폐암과 관련해 담뱃갑 경고 문구에도 폐가 자주 등장하고 병원에서 기관지염이나 기관지 계통 질환을 설명할 때 곧잘 나오는 신체 장기이기 때문에 폐는 대부분 잘 안다. 미세먼지, 흡연, 연기 질식 등 숨(숨쉬기)과 관련해서 항상 등장하는 것이 바로 폐이기 때문이다.

일부는 순대에서 간과 허파를 주기 때문에 허파를 돼지에만 있는 부속물, 장기로 아는 경우도 있다. 물론 그 허파가 정확히 어딘지는 모르는 경우도 많지만. 아니면 사람은 머리, 동물은 대가리, 사람은 입, 동물은 주둥이 하는 것처럼 같은 부위를 두고 돼지 폐를 따로 허파라 부르는 줄 아는 경우도 있다. (물론 이 정도면 그나마 폐와 허파가 같다는 건 아니 다행)

그러나 허파와 폐는 한자어인가 우리말인가의 차이일 뿐 같은 말이다. 이는 계란과 달걀과 같은 이치다. 닭의 알, 닭알이라는 발음대로 달걀은 우리말이고 계란은 닭을 뜻하는 "계"와 알을 뜻하는 "란"이 합쳐진 한자어인데 그 둘을 헷갈려하는 경우는 없다. 물론 계란과 달걀의 경우 둘 다 오랫동안 쓰인 말이기 때문에 어떤 것이 표준어이고 둘 중 무얼 써야 하는지는 의미가 없다. 둘 다 표준어이기 때문에 달걀을 한자어인 계란이라 하든 반대로 계란을 우리말인 달걀로 부르든 상관이 없다.

우리말이라고 해서 계란이라는 말을 쓰면 안되고 무조건 달걀이라고 해야 할 이유도 없고 우리말이라고 해서 달걀만 써야 한다고 할 이유도 없다. 그냥 짜장면과 자장면처럼 모두 보편적으로 자주 쓰이는 일상어이기 때문에 한자어와 우리말 차이만 알면 되지 그걸로 표준어를 나뉘거나 강제로 사어를(죽은 단어) 만들 이유는 없다. 이럴 땐 그냥 둘 다 표준어다.

그렇다고 이를 두고 상식이나 무식으로 접근하면 곤란하다. 모를 수 있고 틀릴 수 있다. 문제는 모르면서 아는 척하거나 틀렸는데도 맞다고 우기는 경우다. 처음에 허파와 폐를 다르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간혹 있다고 했는데 사실 이 경우는 근본 없는 자신감에서 나온 잘못된 상식에 근거하는 경우다. 폐가 허파인지 몰라서 (대부분) 다른 줄 아는 경우라면 몰라도 폐와 허파를 설명했는데도 끝까지 다르다고 우기면 이때는 답이 없다. 이때는 무식과 상식으로 접근할 수밖에 없다. 모를 수 있는데 알려고 하지 않는다면, 심지어 정확히 알려주었는데도 제대로 알려하지 않고 오히려 무시하려 한다면 그냥 상대하지 않는 게 상책이다.

기안84가 최근 방송에서 아마존을 보고 지구의 허파라는 관용어를 사용했다. 이때 이 표현을 두고 쌈디와 송민호가 각기 다른 두 의문을 제시했는데 쌈디는 왜 허파라고 부르는지 근본적인 상식으로 접근했지만 (당연히 모를 수 있다) 송민호의 경우에는 허파라는 표현에 대해 의문을 살짝 던지는 장면이 있었다.

기안84가 지구의 허파 아마존이라 하자 그 표현은 지구의 폐가 아니냐고 되묻는다. 쌈디는 아마존이 왜 지구의 허파인지 그 자체를 몰라 묻는 장면이었고 송민호는 기안84가 잘못 말한 것이 아닌가 하는  장면이 방송에 나왔다. 물론 대체적으로 자주 쓰이는 관용어로 아마존을 지구의 허파라고 하기보다는 아마존을 지구의 폐로 부르는 경우가 훨씬 많다. 그런 점에서 송민호는 충분히 표현이 잘못된 게 아닌가 의문을 던질 수 있다. (열 명중 일곱 정도로 아마존의 폐라는 관용어를 더 익숙하게 사용한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허파와 폐가 같기 때문에 이 표현은 틀리지 않는다. 단지 한자어로 표현했으냐 우리말로 했느냐 차이다. 영어로 했느냐 한국어로 했는냐, 안녕이라 했는가 헬로우라고 했는가 차이다. 결국 지구의 허파라는 표현을 두고 지구의 폐가 맞지 않는가 했다면 허파와 폐가 같다는 걸 몰랐다는 것이기 때문에 그것에서 온 "착각"일 뿐, 허파와 폐가 같다는 걸 알았다면 표현의 차이일 뿐 다르게도 쓸 수 있다는 걸 알게 된다.

그럼 왜 같은 말이 아니라는 이런 착각을 자주 할까?

한자어와 우리말의 차이라는 걸 모르기 때문에 표현이 틀렸다고 생각한 것인데 이는 사실 우리말이 대체로 책과 같은 활자보다는 일상에서 더 자주 쓰이기 때문에 책을 많이 접하고 문자를 많이 접하는 사람일수록 (고학력자일수록) 폐라는 말을 더 가깝게 여기고 자주 쓸 수밖에 없다. 책을 쓰고 만드는 사람들 자체가 허파라는 말보다 폐라는 한자어를 더 많이 쓰기 때문에 당연히 아마존이 지구의 허파라는 관용적인 표현도 지구의 폐라는 말로 더 많이 쓰일 수밖에 없고 그런 과정에서 책을 더 많이 더 자주 접하는 사람일수록 이런 한자어에 대해 더 많이 알고 더 자주 쓸 수밖에 없어 마찬가지로 허파라는 걸 아예 머릿속에서 다른 카테고리로 보내 버리는 경우가 의외로 많다. 이 경우 머리 속에서 허파는 음식의 재료라는 것으로만 한정해서 다르게 분류한 경우가 된다.

허파라는 단어를 검색하면 나오는 주요 단어를 보면 알겠지만 "폐"와 달리 순대와 관련된 요리 부속물로 자주 등장하는 걸 알 수 있다. 우리가 흔히 허파라는 단어를 쓸 때는 대부분 돼지 허파, 순대에서 딸려 나오는 간과 허파일 때만 쓴다는 것이다. 물론 "폐"를 검색하면 음식 재료로 일절 등장하지는 않는다. 폐를 음식 재료로 먹는다는 상상 자체를 안한다. 재미있는 건 이 글에서 말하는 것처럼 허파가 폐인가 묻는 질문도 허파라는 검색 분류에 항상 들어간다는 것. 이는 허파라는 돼지 장기를 자주 즐겨 먹긴 하는데 간과 달리 허파는 정확히 어디인지 모르기 때문에 찾다 보니 그게 "폐"라는 걸 알고 진위 여부를 파악하기 위해 찾는 과정에서 만들어진 자동 검색어라 할 수 있다.

의사들이 예외없이 환자 앞에서 허파라는 말 대신에 "폐"라는 단어를 압도적으로 많이 쓰는 것도 그런 이유. 한자에 익숙한 사람일수록 계란이라는 말을 더 자주 쓰는 것과 같다. (반대로 한자 교육이 줄어들면서 달걀 표현이 증가한 것도 마찬가지) 허파가 폐의 다른 우리말 표현이라는 걸 모르는 경우도 있지만 안다고 해도 대체로 같은 의미로 쓰이는 두 단어가 있을 때는 폐로 쓰는 것이 더 있어 보이기 때문에 (영어처럼) 폐라는 말을 더 많이 쓸 수밖에 없는 것이다. 당연히 더 많이 쓰이니 더 많이 알고 설령 비슷한 다른 말이 있어도 이게 맞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유방과 젖가슴 중 유방이 더 많이 책에 등장하는 것처럼, 유두와 젖꼭지 중 유두가 더 많이 책에 등장하는 것처럼 결론은 책에 더 많이 쓰이는 말이 한자어 폐이기 때문이다.

닭똥집을 어감 때문에 다른 말로 닭모래집 혹은 한자어 근위라 하는데 이중 근위는 해부학에서 비롯된 용어다, 똥집(닭의 위)과 관련한 원래 한자어 표현은 따로 있는데 해부학에서 유래한 근위가 원래 한자어 표현보다 더 보편적으로 더 많이 쓰이게 된 것도 폐와 허파의 경우가 비슷하다 할 수 있다. 사낭보다는 근위가 활자, 문자로 더 많이 접할 수 밖에 없고 그 근위는 똥집이라는 속어를 대신해 고상하게 표현할 수 있기 때문에 똥집의 정식 유통명은 당연히 "근위"가 쓰이는데 아직까지는 근위보다는 똥집이 일반 소비자들 입에 더 많이 활용되기 때문에 이 경우는 똥집으로 불릴 확률이 조금 더 높다. (물론 똥집은 우리말이기보다는 그냥 속어다)

최근에는 허파라는 말이 그래도 쓰임새가 많이 늘어난 편에 속한다. 책에서는 여전히 폐가 압도적으로 많이 등장하지만 신문 기사의 경우에는 도심의 허파, 도시의 허파라는 말이 더 자주 등장하면서 무언가 정화되고 깨끗해지는 걸 상정해 개념이 추가된 경우가 많다. 그래서 공기의 질이나 숨과 관련해서 신체 기관 밖의 개념은 허파가 의외로 더 자주 쓰이기도 한다.

심장과 염통도 똑같은 경우다. 심장은 한자어이고 염통은 그 심장을 말하는 우리말인데 심장구이라는 말은 거의 쓰지 않는다. 반대로 염통구이는 잘 쓴다. 심장을 먹는다고 하면 인상부터 쓰지만 염통을 먹는다고 하면 호기심어린 눈으로 맛을 궁금해한다. 그게 심장이라고 해도 일단 염통이라는 단어로 머리에 들어간 뒤 "통역"된 것이라 처음부터 심장으로 듣고 알았을 때보다는 거부감이 덜하다. 똥집처럼 염통은 음식 재료로 자주 접하면서 남들도 자주 먹는 재료로 알고 있기 때문이다. 

신장이라는 신체 기관을 두고 우리는 콩팥이라고도 부른다. 그 생김새 때문인데 콩팥이라고 해도 알아듣고 신장이라고 해도 알아듣지만 신장(키)이라는 말이 따로 있어서인지 이 경우는 콩팥이라는 말도 꽤 혼용해서 쓰인다. 신장은 한자어이고 콩팥은 우리말인데 콩팥은 신장을 말할 때 쓰는 우리말로만 쓰기 때문에 오히려 콩팥이라 했을 때 이해도가 더 높은 편이라 할 수 있다.

참고로 허파의 다른 우리말로는 "부아"도 있다. 노여워하거나 화가 나서 분할 때 부아가 치밀어 오른다. 부아가 올랐다 할 때가 있는데 그 부아가 바로 "폐"이고 "허파"다. 허파에 바람들었다, 허파에 바람났다 역시 부아에 바람 들었다로 다르게 말할 수 있다. 그래서 화가 나고 분해서 아주 크게 노할 때 사람들은 숨과 관련된 가슴을 팍팍 치는 행동을 한다. 폐가 있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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