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척이다, 질척거리다와 성적수치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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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언어유희

질척이다, 질척거리다와 성적수치심

by 깨알석사 2022. 11.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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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척거림

국정감사장에서 윤창현 국회의원과 전현희 국민권익위원장 간 성적 수치심 논란이 있었다. "질척거리다"는 표현 때문인데 이걸 들은 상대방은 성적 수치심을 느꼈다며 사과할 것을 요구했다. 논란의 발단 과정은 질의 과정에서 나왔다. 윤의원이 전위원장의 태도를 문제 삼으며 짧게 "네, 아니요"로만 해달라는 대로 해주세요, 시간도 없는데 왜 이렇게 질척거리십니까? 좀 깔끔하게 하십시다"라고 했고 나중에 전위원장은 "질척거린다는 표현을 쓰셨는데요, 굉장한 성적 수치심을 느끼고 있습니다. 발언을 취소하시고 사과를 부탁드립니다"라고 했다. 이에 윤의원은 성적인 의미가 아니다 깔끔함의 반대말로 썼다고 항변했다. 국감장에서는 전위원장과 당적을 같이 했던 의원들의 항의도 나왔다.

이후 일주일 뒤 문화체육관광부 국감장에서 이 단어는 다시 등장한다. 배현진 의원이 국립국어원장에게 "질척거리다" 우리말에 외설적 의미가 있느냐 물은 것이다. 이에 국립국어원장은 질척거리다는 "질다"라는 형용사에서 나온 말로 습기가 많다는 뜻이라 답했다. 습하다는 뜻일 뿐 그 외 다른 의미는 없다는 뜻이다. 누군가 억지로 다른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 이상 외설적 표현과는 무척 거리가 있다.

질척거리다의 사전 풀이는 '진흙이나 반죽 따위가 물기가 매우 많아 차지고 진 느낌이 들다'이다. 조금 더 쉽게 풀이하면 무언가 물기가 많아 끈끈한 정도일 때 "질척"이라는 표현을 쓴다. 끈끈하거나 끈적거리기 때문에 무언가 손에 달라붙어 잘 떨어지지 않는데 그런 경우와 대비해 누군가 달라붙거나 떨어지지 않고 매달려 있는 경우에도 사용하게 된다. 또는 정신적으로 꾸준히 신경을 쓰게 만들거나 정신을 사납게 하는 등으로 물리적 상황뿐 아니라 정신적 상황에서도 계속 달라붙어 떨어지지 않는 경우도 해당한다. 물론 윤의원이 말한 것처럼 깔끔함의 반대말로도 쓰일 수 있다. 깔끔하게 떨어지지 않는 상태가 끈적거렸을 때의 결과물과 같기 때문이다.

질다 묽다 되다

우리는 평소 일상에서 질다와 묽다 되다라는 표현을 의외로 많이 쓴다. 일단 우리가 늘 먹는 "밥" 상태가 이런 질감과 연관된 경우가 많고 또 밀가루처럼 분식을 많이 먹기도 해서 "반죽"을 활용한 음식이 많다 보니 반죽과 관련한 이런 질감 표현력이 생각보다 많다. 누구나 예외 없이 쌀을 먹는 식문화권에 살면 듣고 쓰고 말할 수밖에 없는 표현인데 평생을 따지면 셀 수 없을 정도로 꽤 익숙하게 쓰는 표현이라 못 알아듣는 경우는 없다. 예를 들면 밥을 지을 때 이런 표현이 있다.

"오늘 밥이 질게 되었네", "반죽이 너무 묽잖아", "반죽이 너무 되다 물을 더 넣어" 등이다. 특히 밥의 경우 진밥 꼬들밥, 찰밥, 된밥처럼 질다 되다가 상당히 자주 쓰이는데 밥을 잘 지었다면 몰라도 밥 짓기에 실패했다면 무조건 질거나 되거나 둘 중 하나가 되기에 밥을 먹는 우리 입장에서는 이 표현이 일상 용어가 될수 밖에 없다. 밥이 매우 끈적일 정도로 "질척"이거나 반대로 밥이 너무 딱딱해서 생쌀을 먹는 것 같은 된밥을 표현하기 때문이다.

이 중에서 진밥은 약간 죽처럼 질거나 아니면 수분기가 좀 많아 끈적임이 많은 상태라 사실 먹는 데는 지장이 없다. 다만 식감 자체가 질기 때문에 그 맛과 식감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 있을 뿐인데 엄밀히 따지면 식사하는 데는 전혀 지장이 없기 때문에 진밥의 경우는 실패라고 단언하기는 힘들다. 반면 된밥의 경우는 생쌀과 비슷한 수준이기 때문에 이건 완벽한 실패가 된다. 그냥은 못 먹고 물을 더 붓고 다시 밥을 짓거나 아님 그 상태에서 물을 더 붓고 죽으로 치환시켜 먹는 수밖에 없다. 진밥은 먹어도 된밥은 먹지 못한다. 식성과 상관없이 삼킴의 문제이기 때문에 진밥은 참아도 된밥은 모두가 못 참는다.

묽다와 되다 역시 "물", 습기가 많은 것이 묽다이고 물기가 너무 적은 것이 되다이다. 묽다와 되다를 간혹 헷갈려하는 사람이 많은데 반죽이 묽다고 하는 경우 물을 더 넣으라는 건지 반죽가루를 더 넣으라고 하는 건지 잘 모르는 경우가 있다. (요리에 관심이 없다면 충분히 모를 수 있다) 이때 이를 쉽게 구분하는 방법은 간단하다. "물"이 많아서 "묽"이다. "묽"이라는 단어 안에 "물+ㄱ"이 들어가 있으니 물이 많다는 뜻으로 눈치껏 구분할 수 있다. 반대로 되다는 되직하다인데 물기가 없어 단단하거나 굳은 경우라 물이 없음을 의미한다고 정리하면 된다.

"되다"의 경우도 어렵지 않게 요령을 알면 구분하기 쉽다. 이때는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다 아는 한식의 대표주자 "된장"을 연결하면 된다. 실제로 된장이라는 말은 되직한 장. 되다+장이 합쳐진 말로 장이 되직해서 붙은 말이다. 된장에 고춧가루가 들어가면 고추장이고 된장을 담글 때 부은 물이 간장이 되고, 그 간장을 건지고 남은 메주가 된장이 된다. 결국 장이라는 걸 담글 때 물기(습기)를 걷어낸 장이 묽장(묽다), 즉 간장인 것이고 물기를 걷어내고 남은 장이 바로 된장(되다) 이름 그대로 된장이 된다. 된장을 항아리(옹기)에서 푸거나 시중에서 파는 시판 된장을 숟가락으로 풀 때 상당히 뭉쳐 있는 걸 알 수 있는데 그게 바로 되다(된) 상태라고 생각하면 된다. 반면 조청이나 꿀, 시럽처럼 끈끈하게 쭉쭉 늘어져 흐르는 게 묽다(묽은)이다.

반죽을 할때 누군가 묽다와 되다라고 표현하면 어떤 상태인지 순간 모를 수 있다. 어쩌다 반죽을 하거나 어쩌다 반죽을 만지는 경우인데 이때 두 단어를 구분하는 요령을 알면 이 단어를 나중에도 쉽게 구분해 알아들을 수 있다. 단어 속에 있는 낱말을 잘 연상해 물과 된장을 생각해서 물을 더 넣을지 가루를 더 풀지 요령으로 눈치껏 조절할 수 있는 것이다. (묽다 = 물이 많아요, 되다 = 된장처럼 너무 되직해요)

질척이다는 깔끔하지 못하다는 표현이 맞다

국감장에서 벌어진 윤의원과 전위원장의 이 논란은 전현희 위원장의 무지에서 비롯된 실수라고 보는 게 정확하다. 이건 습자지라는 표현을 썼다고 사과하라는 것과 같고 고추잠자리라는 표현을 썼다고 사과하라는 것과 같다. 그 정도로 황당한 경우이고 어처구니없는 상황이다. TV 보지 마, 밤에 자지 마라는 말을 했을 때 성적 수치심 따위를 들먹이며 "사과하세욧!" 외치는 수준과 같을 정도다. 질척이다는 깔끔하지 못한 태도나 상태를 의미하기도 하기 때문에 이런 상황에서 쓴다고 해서 문제 될 것이 없다. 더군다나 윤의원의 문장에서 질척이다 앞뒤로 붙은 문장은 그 의미를 더욱 정확하게 하는데 "시간이 없는데 왜 이렇게 질척이십니까, 깔끔하게 합시다"라는 표현을 썼다.

더 나아가 이 문장은 오해의 소지가 전혀 없는 문장으로 질척이다 앞 문장에서는 시간이 없는데 왜 질척이냐고 했기에 질척이다가 의미하는 정확한 의미로 떨어진다. 시간도 없는데 질척거리니 시간 낭비가 되고 계속 질질 끄는 것이 딱 질척거리는 상태이기 때문. 또한 질척이다 바로 뒤 문장도 중요한데 그는 항의가 들어왔을 때 항변의 주 내용으로 깔끔하게의 반댓말로 썼다고 했는데 이건 변명이 아니라 실제로 질척이다는 표현을 썼을 때 문장 다음에 "왜 이렇게 질척이십니까? 깔끔하게 합시다"라고 했기 때문에 질의자 입장에서 답변자의 답변이 깔끔하지 못하고 시간을 낭비하니 질척거리지 말라고 한 내용과 정확히 일치한다.

질척인다라는 건 깔끔하지 못한 상태와 연결되는데 사람 관계에서의 의미로 따진다면 "귀찮게 한다"라는 뜻과도 연결된다. "너 왜 자꾸 질척거려?" "너 왜 자꾸 귀찮게 해?"와 같은 의미다. 행동이 아닌 말도 마찬가지. "너 왜 말이 질척거리냐"는 질게 된 밥처럼  대답이 뭔가 딱 떨어지지 않고 계속 다른 말이 묻어나면서 깔끔하지 못하고 지저분하게 덕지덕지 다른 문장이 걸리적거리는 상황을 의미하는데 말이 깔끔하게 떨어지지 않고 주제와 상관없거나 필요 이상의 말이 덧붙이면서 정리가 안될 때 쓰이게 된다. 고로 국감장에서 의원이 질척거리다고 충고를 한 것 자체는 깔끔하지 못하고 질척이는 상태에 대해 앞과 뒤 문장에서 왜 질척이며 무엇이 질척거리는 것인지 정확히 표현하고 있기 때문에 이 문장에서의 "질척"이다는 실제 질척거림과 상관없이 이 단어가 쓰일 때의 예시로 적절하다 할 수 있다.

봇물 터지다의 외설적 표현

'질척거리다' 논란은 '봇물 터지다' 상황과 다르지 않다. 실제 이런 황당한 사례가 종종 있는데 대다수는 다행스럽게도(?) 이런 반응에 어이없어한다. 자기가 뜻을 모르면서 정확히 뜻을 알고 쓰는 사람에게 도리어 화를 내고 심지어 따져 물으며 사과를 요구하기 때문이다. (위 국감장 상황처럼) 봇물 터지다의 어원이 여성의 신체를 가리키거나 여성의 신체를 속되게 표현하는 말로 생각한 경우인데 "보"라는 단어를 몰라 생긴 무지의 또 다른 예시가 "봇물 터지다"이다. 대들보, 보자기, 가위바위보, 보슬보슬, 보풀라기, 보리 등의 말과 표현은 어떻게 잘 쓰고 있는지 궁금할 정도.

한 명의 실수라기에는 생각보다 사례가 너무 많다.

질척거린다는 단어 어디에도 성인지 감수성을 건드릴 뜻은 없다

일부 국어학자는 이 논란과 관련해 이 단어에 성적 수치심을 느낄 만한 요소는 전혀 없다고 단언했다. 그런 용례도 없고 이런 말을 듣고 성적 수치심을 느꼈다는 걸 이해하기 어렵다고 했다. 나 역시 전적으로 공감한다. 이건 밥이 질다, 되다, 반죽이 묽다와 되다, 되직하다 질퍽거리다와 다르지 않는 의태어 중 하나다. "잣"을 보고 "잣 같은데?" 하면 안 된다고 하는 것과도 다르지 않다.

딸만 있는 집에서 오랜만에 아버지가 가족을 대신해 밥을 지었는데 밥이 질게 되어 아버지가 가족을 보며 "어, 밥이 질게 되었네, 그냥 먹자"라고 했을 때  큰 딸이 아빠를 보며 "엄마랑 여동생도 있는데 어떻게 그런 표현을 쓸 수 있어요? 그 말 취소하고 사과하세요!"라고 한다면?, 아빠가 "밥이 왜 이렇게 질척거리냐, 밥이 왜 이렇게 푸석거리냐" 할 때 사과하요, 취소하세요! 한다면? (이건 봇물보다 한 수위다. 왜냐면 봇물은 상대적으로 덜 쓰이지만 질척거리다의 개념은 우리 일상에서 매우 자주 쓰이기 때문)

 

범죄자가 형사에 의해 순순히 따라 끌려가면 그냥 끌려가는거다. 그러나 반항하면서 억지로 끌려가면 우리는 그 사람을 보고 "질질 끌려갔다"라고 한다. 질질 끌려갔다고 할 때의 그 "질질"도 질척과 다르지 않는데 끈질기게 버티거나 매달리는 모습이기 때문인데 이렇게 끈질기게 버티거나 매달리는 상태를 우리는 "질척"이라고 한다.

어린아이들, 부모와 자식도 자주 즐겨하는 쌀보리 게임을 하면서 야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다. "봇물 터지듯 사람들이 몰려왔다"를 듣고 얼굴을 붉히는 사람도 없다. 질퍽거린다고 할 때도 그걸 이상하거나 다르게 생각하는 사람이 없다. 그걸 다르게 생각하거나 이상하게 생각한다면, 특히 여성의 특정 신체 부위라고 자의적으로 판단해 해석한다면 그 사람이 이상한 거다. 더 나아가 사과를 요구한다면 당황스러울 뿐이다.

황당과 당황

발언의 주체인 윤의원은 전위원장의 항의에 대해 "'깔끔하다'의 반대말로 사용했다"라고 분명히 말했다. 그리고 그 이전 문장에서 이미 깔끔하게 합시다라고 덧붙였던 상황이다. 그리고 윤의원은 정무위원장에게도 전혀 성적인 의미가 아닌데 위원장이 만약 그 부분에 대해 문제 삼는다면 오해 소지가 있었던 부분에 대해서 유감의 말씀을 전한다고 말했다. 여기서의 유감은 심심한 유감의 뜻이 아닌 기분이 상했다는 뜻으로 쓰인 듯 하지만 윤의원이 전위원장의 항의를 들었을 때 황당해하지 않고 오히려 당황한 걸 보면 (워낙 심각하게 항의하니 본인도 순간적으로 이상하게 쓰였구나 생각한 듯) 심심한 유감의 뜻으로도 쓰였을 확률이 높다.

윤의원이 이 상황에 대해 해명과 함께 나름의 사과를 한 셈인데, 이게 앞에 충분히 문장에서 상황이 설명이 되었고 또 본인도 깔끔하다의 반댓말이라고 반박까지 재차 했기 때문에 사실 이 상황에서 정말 이게 봇물과 같은 상황이라는 걸 인지했다면 조용히 대꾸할 게 아니라 어이없어하고 황당해하면서 이 단어에 대해 정확히 "설교"를 했어야 한다. 아무리 국감장이었어도 상대가 정식으로 사과를 요청하는 상황이고 이 상황은 국회 기록에도 남는 경우이기 때문에 의원 쪽에서는 이 단어 사용에 대한 엉뚱한 해석에 대해 기가 차다는 듯이 어이없어해야 하는데 그런 것보다는 수습하려는 모습을 보였기 때문에 순간적으로 당황해 무마하고 말았던 것으로 보인다. 요즘 같은 상황에서는 성인지라는 단어와 부딪히면 골치 아픈 경우가 더 많기 때문. 그러나 조금만 더 생각해보면 정말 보기 드문 황당한 상황이다.

끝까지 질척

이건 심각한 사회 현상을 대변하는 또 다른 상황 전개의 한 장면일 수 있다. 단어의 뜻을 잘못 이해하거나 오해하는 수준을 넘는다. 이런 상황 자체가 국감장에서 최고위직 인사에게서 일어났다는 건 상당히 치명적인데 성희롱, 성추행에 있어 성인지 감수성과 성적 수치심에 대한 주관적 감정은 상당히 중요한 잣대가 된다. 분명 제3자가 봤을 때도 아무 문제없는데 상대방이 "난 성희롱을 당했고 상처받았다"라고 주장하면 성희롱으로 귀결되기 때문에 이런 상황이 실제로 벌어질 수 있고 억울한 일이 생길 수 있다는 걸 반증하게 된다. 성희롱과 성추행의 증거는 대부분 당한 쪽의 증언이 대부분이 될 수밖에 없다. 그렇기 때문에 명백한 증거물이나 목격자, 자료화면 등이 있지 않으면 행위를 증명할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상대방이 불쾌감을 느끼고 상대방이 성적 수치심을 느꼈다면 그게 곧 성추행이고 성희롱이라고 결정짓게 된다.

성폭력의 범주에는 성폭행과 성추행, 성희롱 등 다양한 형태가 존재하는데 성폭행과 달리 성추행과 성희롱은 객관적인 사실보다는 주관적인 사실이나 감정에 의해 결정되는 요소이기 때문에 사실상 상대방이 "불쾌감"을 느꼈다면 그게 곧 성희롱이 되고 성추행이 된다. 성희롱과 성추행의 성립 조건 자체가 그렇다. 그런데 바로 국감장에서 벌어진 이 성적 수치심에 대한 논란은 아무것도 아닌 말을 오히려 이상하게 받아들여 성적 수치심에 따른 성희롱으로 받았들였다는 걸 직접적으로 보여준 예시이기 때문에 상당히 중요한 대목이 될 수밖에 없다.

봇물이라는 단어를 직장에서 썼다고 고소할지 말지를 묻는 지식인 질문처럼 엉뚱한 사람을 성추행범, 성희롱자로 규정짓게 만드는데 위 사례처럼 말도 안되는 표현 가지고도 엉뚱한 가해자와 사람이 실제로 나올 수 있다는 걸 이번 사례가 확실히 증명한 것이다. 이는 실제 피해를 입은 성추행 피해자와 성희롱 피해자에게도 치명적인 문제를 만든다. 실제 성희롱과 성추행을 당했음에도 이런 역사례가 있었기 때문에 그걸 받아들이는 사람들이 인색하게 된다. 엉뚱한 사람을 억울하게 만드는 것 아니냐고 오히려 역가해자 취급을 할 수 있다. 결과적으로 실제 추행과 희롱을 당한 사람도 피해 구제를 못 받게 되고 반대로 말도 안 되는 상황에서 엉뚱한 가해자로 몰릴 수 있는 사람이 늘어날 수 있다는 점에서 양쪽 모두에게 피해를 가중시킨다.

전위원장이 개인적으로 찾아가 문제를 제기했다면 모를까, 그녀는 공식 석상에서 성희롱(성적 수치심)에 대해 직접적으로 언급했기 때문에 그녀의 주장이 맞다면 윤의원은 성희롱 가해자가 되어야 한다. 하지만 그 표현은 누구나 쓸 수 있고 무엇보다 앞뒤 정황상 정확히 쓴 표현이기 때문에 국어학자의 표현대로 전위원장이 뜻 자체를 모르고 혼자서 오해한 걸로 볼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그러나 이미 물은 엎질러졌고 상황은 그대로 전파를 탔다. 더군다나 민주당 의원들도 사전을 들먹이며 성희롱 주장에 올라탔다. 그렇기 때문에 국감장에서 윤창현 의원은 분명히 성희롱 가해자다. 전위원장의 실수였고 본인이 착각해 생긴 오해였다면 끝나는 일이지만 결과적으로 윤의원은 성희롱 가해자로 기억될 수밖에 없다.

결국 우리나라에서는 봇물과 질척은 절대 금기어다. 쓰면 성희롱이 되고 쓰면 범죄자가 될 수 있다. 무심코 써서도 안되고 앞뒤 문장에서 충분히 설명하고 덧붙인다고 해도 절대 쓰면 안된다. 이제부터는 "사어"다. 쓰면 당신은 죄인이다. 조금 더 깊게 들어가면 질다라는 표현도 절대 쓰면 안 된다. "밥이 죽처럼 되었네" 순화해야 한다. 누군가 당신에게 "질척 좀 거리지 마" 따진다면 그 자리에서 성희롱으로 역고발하면 된다. 상사가 업무처리가 늦다면서 "업무를 왜 이렇게 질척거려" 따진다면 그 상사를 고발해야 한다. 우리나라는 성인지 감수성에 대해 민감하고 성적 수치심과 관련한 부분에서는 엄격한 잣대를 들이는 분위기가 조성되었기 때문에 누군가 성적 수치심이라는 단어를 들고 대든다면 앞뒤 상황 따지지 말고 사과하고 잘못을 빌자.

질척거리다의 완벽한 예시

누군가, 혹은 어린 자녀가 "질척거리다", "질척"에 대해 묻는다면 사실 이 사례만큼 정확하게 설명하는 예시가 없다. 국감장에서 벌어진 이 상황이 바로 질척거린다의 대표적인 예시이고 이게 바로 "질척거리다"이다. 깔끔하게 하자는 말에 토를 달다 못해 끝까지 질척이며 사과까지 요구하는 이 상황. 이게 바로 질척거리다가 된다. "질척거리는 게 뭐야?, 어 제거 지금 질척거리는거야!" 이 때는 저 국감장 자료를 보여주면 된다.

총각무 보고 놀랄 것 같다. "습자지 같은 지식에 무식이 봇물 터지듯 뿜는다"라고 하면 당신은 상당히 위험한 발언을 한 것이 될 수 있다는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 비 오는 날 흙바닥이 질척 질척거리는 경험이 누군가는 없는 것 같다. 갯벌에서 질척 질척거리며 걷는다는 게 어떤 건지 모를 수도..질척거리다의 수치심은 세종대왕과 우리나라 국어학자들이 뒷목 잡고 뿜을 듯 싶은 황당한 언어풀이가 아닐까 싶다. (혹시 수지침을 말하려고 했던 건 아닐까)

카카오 "쪼개기 상장 표현 동의 못해..밖에 씨 뿌린 것"

홍은택 카카오 각자대표는 19일 카카오 최근 주가 하락이 쪼개기 상장 때문이라는 지적과 관련해 “쪼개기 상장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홍 대표는 이날 기자회견에서 ‘쪼개기 상장 지적에 어떻게 생각하는지’ 묻는 말에 “쪼개기 상장이라는 말에는 개인적으로 동의하지 않고 있다”며 이같이 말했다. 카카오는 이날 경기도 성남 판교 카카오 아지트에서 ‘서비스 먹통 사태’와 관련한 기자회견을 열었다. 홍 대표는 쪼개기 상장 관련 질문에 “모빌리티, 페이, 게임즈는 카카오의 주력회사가 아니었다”며 “서비스를 키워야 할 맹아가 있을 때 밖에 씨를 뿌려 벤처 방식으로 빠르게 성장시키는 길을 걸어온 것”이라고 답했다.

 

카카오 화재로 인한 전국 먹통 사고 뒤 기자회견에서 나온 기사 일부. 앞뒤 맥락을 보면 전혀 문제 없는 표현이지만 누군가는 밖에 씨 뿌리고 다닌 것에 대한 표현에 있어 성적 수치심을 느끼지 않을까.. 카카오 너도 말 조심해야겠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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