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생채
겨울이 되면 어김없이 올라오는 반찬 중 하나가 무생채이다. 찬으로 그냥 먹어도 맛있지만 밥에 비벼 먹거나 소면을 삶아 무생채비빔면을 해서 먹어도 맛깔나는 요긴한 찬 중 하나가 바로 이 녀석이다. 싸고 맛있는데 만들기도 쉬워서 대중적으로도 인기가 높다. 물론 맛있는 음식이 많은 요즘 시대에는 소외되어 가는 면도 없진 않으나 그래도 무가 제철을 맞으면 어김없이 올라오는 국민 반찬이다.
단체 급식 체계가 있는 곳에서는 의외로 쉽게 만나볼 수 있다. 학교를 비롯 군대처럼 단체로 식사를 해야 하는 공간에서는 겨울이 되면 특히 무생채는 자주 출몰한다. 저렴한 가격으로 반찬 가짓수를 채울 수 있는 몇 안 되는 찬이기도 하지만 일단 만들기가 쉽고 남아도 보관할 수 있어 다음에도 다시 줄 수 있는 장점이 있기 때문이다. 물론 감기예방을 비롯해 겨울나기에 좋은 식품군으로 통하기에 주는 목적도 크다. 늦가을에 아버지들이 좋은 무를 골라 아이들에게 생무를 깎아서 먹여준 것도 그런 이유. 군대에서 빠짐없이 겨울이 되면 군장병에게 무를 활용한 반찬이 미친 듯이 쏟아지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제철이라 무 반찬이 늘 나오는 것도 있지만 애초에 겨울나기에 무만큼 좋은 식재료도 없기 때문에 몸보신(감기 예방) 차원에서 주는 이유가 더 크다.
김치는 잘 안 먹어도 무생채는 그나마 잘 먹는 편에 속한다. 김치를 밥에 비벼 먹는 사람은 없어도 무생채를 밥에 비벼 먹는 사람은 꽤 되는데 김치는 싫어해도 무생채는 그냥저냥 먹는 사람들이 있는 편이라 김치 대신에 주기 좋은 편에 속한다. 깍두기, 단무지처럼 어린아이들도 즐겨 먹는 무를 활용한 반찬이기 때문에 대체로 배추보다는 인기가 조금 더 많아 겨울나기를 위한 방편으로 배추김치 대신 무생채를 비롯한 무 활용 음식을 자주 쓰기도 한다. 열무김치, 총각무(달랑무), 깍두기, 무말랭이무침 등 무를 재료로 쓴 음식들에 환장하는 사람들이 유독 많은 것도 특징. 짜장면에도 김치가 딸려 나오기도 하지만 여전히 독보적인 존재는 단무지(다꽝)다.
채장아찌
그런데 이 무생채를 두고 다르게 부르는 지역이 있다. 바로 인천이다. 다른 지역에서는 무채김치, 무생채김치, 무생채, 생채, 무채 등으로 부르지만 대체로 "무생채"로 통일되어 표준어처럼 쓰이는 반면 인천에서는 "채장아찌"라는 말로 일부 통용되는데 일종의 인천 사투리로 인식되어 있는 상태다. 인천 사람이면 무조건 알아야 할 것 같은 일종의 밈 현상마저 생겼을 정도인데 무생채와 관련해 인천 연관 검색어를 덧붙이면 아래와 같은 결과물을 볼 수 있을 정도.
인천 채장아찌
실제로 이런 결과가 나올 정도면 채장아찌라는 음식명은 인천에서 꽤 자주 쓰이는 것처럼 보인다. 인천이 고향이거나 인천에 오래 거주한 사람들이라면 일종의 표식처럼 꼭 반드시 알아야 할 용어처럼 굳어진 대표적인 말이 채장아찌라는 것인데 채장아찌를 모르면 인천 사람이 아니라는 뉘앙스마저 느끼게 만들지만 정작 위에 열거된 글들의 반응을 보면 인천 사람인데도 몰랐다거나 처음 알았다는 식의 반응이 8할 이상인 기현상이 벌어진다. 인천 토박이가 아니거나 인천에 오래 거주 않았어도 인천에 사는 경우라면 무생채라는 반찬이 자주 접할 수밖에 없기에 채장아찌라는 말을 어떤 식으로든 한 번은 들어봄직 했어야 하는데 인천에서 수년, 수십 년을 살아도 처음 들어 본 사람이 정작 많다는 것이다.
보통은 다른 지역에서는 자신들이 거주하는 지역의 고유 사투리에 대해 다른 지역과 다르게 표현할 때 우리 지역에서는 이렇게 쓰는 게 "맞아 맞아" 호응하는 식이 많다. 반면 의외로 채장아찌의 경우에는 반응이 "그런가?" "아닌데" "그랬었구나" 하는 식의 반응이 대부분으로 역전 현상이 일어난다. 제목만 보면 인천 사람만 아는 특정 사투리처럼 말하지만 실제로는 인천 사람도 모른다는 게 채장아찌를 접한 인천 사람들 대다수의 의견인 것. 어느 정도냐면 일례로 인천 토박이인데 채장아찌라는 말로 쓰고 있다고 하는 사람이 있지만 반대로 같은 인천 토박이인데 무생채로 쓴다고 하는 사람이 있을 정도로 토박이 이론도 전혀 먹혀 들어가지 않는 게 바로 인천의 채장아찌. 사투리라는데 인천 토박이여도 모르는 사람이 많다는 것이다.
지역 사투리와 관련해 해당 지역에 사는 누군가 예전에는 이렇게 말했다고 하거나 또는 우리는 이렇게 부른다고 하면 "맞아", 또는 "그랬었지"라는 반응이 먼저 나와야 하는데 이 경우에는 오히려 "아니야"가 대체적으로 많다. 인천도 다른 지역과 다름없이 그냥 "무생채"라고 한다는 사람이 오히려 더 많다. 채장아찌로 부르다 어느 순간부터 무생채로 같이 불렀다는 것이 아니라 그냥 처음부터 무생채로 다른 지역과 동일하게 불렀다는 의견이 더 많다는 것이다.
인천 사투리라는데 인천 사람도 모른다?
물론 애초에 인천은 토박이 자체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토박이 통계가 무의미한 지역이라 (서울도 토박이 비율이 5%가 안 된다) 토박이 개념을 모르고 그냥 자신이 인천에서 태어나 자란 걸 두고 토박이라 했을 확률이 매우 크지만 설령 그게 3대 이상 인천에 터를 잡고 쭉 살아온 본토박이라 해도 인천 지역의 특성을 감안하면 인천 시민을 구성하고 있는 대부분의 타 지역 출신 이주민들의 말에 섞여 살아야 하는 환경이기 때문에 고유 사투리 대신 다른 지역에서 유입되어 사용되는 말의 비중이 압도적으로 많을 수밖에 없다.
더군다나 인천은 서울과 경계를 두고 인접한 대도시이다. 행정구역상 인천 계양구에서 서울 강서구는 청계천을 넘어가듯 개천 하나를 두고 10초면 넘어갈 정도로 가깝고 도심지에서 차로 가도 15분이면 인천 부평에서 서울 구로를 갈 수 있을 정도로 사실상 하나의 도시로 자리 잡은 지 오래되었다. 흔히 착각하는 것 중 인천은 서울과 거리가 있고 중간에 부천시가 있다고 알고 있지만 월경지 (경계라인) 기준을 보면 부천 위로는 서울과 인천이 붙어 있다. (아래는 시흥시가 막고 있다) 예전 서울 영등포에서 흔히 볼 수 있었던 심야의 "총알택시"가 있었던 것도 길목에 있는 부천은 5분이면 통과할 수 있었기에 가능했는데 심지어 이들은 톨비 때문에 고속도로(경인고속도로)가 아닌 국도(경인국도)로만 갔음에도 서울 영등포에서 인천 주안까지 20분 주파를 했을 정도로 인프라가 이어져 있다.
이렇게 되면 서울 경기 등의 수도권 말에 밀려 인천 고유 사투리가 사라지거나 잊힌 것처럼 보이나 인천도 수도권에 있기에 사투리의 비중이 크지 않을뿐더러 토박이가 없다시피 한 지역이라 인천 토박이라 채장아찌를 잘 안다는 건 무의미한 논쟁에 지나지 않는다. 그나마 있는 사투리도 서울말과 크게 다르지 않고 있어도 서울 방언, 서울 사투리와 큰 차이가 없으며 일부 충청도 억양이 있을 뿐인데 경기도와 인접한 충청도 인구 유입이 많은 편이라 사투리가 있어도 충청도에 쓰이던 사투리가 유입된 경우가 많다. 특히 음식과 관련해서는 더욱더 그렇다.
자신들이 사는 거주지의 고유어, 방언, 사투리와 연결 지어 대부분은 공감이 많을 수밖에 없지만 인천의 채장아찌의 경우에는 공감보다는 비공감 비율이 상당히 높은 편에 속하는데 예전에는 인천에서 인천 사람들이 무생채를 두고 채장아찌로 불렀으나 지금은 무생채로 더 많이 부르고 쓰인다가 아니라 채장아찌를 아예 모른다는 의견이 상당히 많다. 예전 사투리이기 때문에 보기에 따라 잊힌 말처럼 보이나 실제로는 아예 처음부터 그런 말을 쓴 적이 없다는 식의 의견이 더 많은데 채장아찌의 경우에는 인천 고유의 사투리에 연유한 음식명이라 단언할 수 없다. 인천 사람들 대다수가 모를뿐더러 인천에 오래 거주한 경우라도 (토박이라 해도) 모르거나 처음 듣는다면 당연히 그 지역 사투리라 확정할 수 없는 것이다.
인천의 특징
전라도, 광주, 목포, 군산 등에서는 무생채를 두고 채지(채치, 채찌) 간혹 짠지라고 하는 집도 있을 정도로 인천과 비슷한 말 표현이 있다. 인천의 채장아찌와 관련해 가장 유사한 표현을 갖는 지역인데 목포와 군산 등은 인천과 마찬가지로 개항장이었고 일본 문화가 진출한 공통점을 갖고 있다. 인천의 짜장면과 짬뽕이 그러하듯 이들 지역도 화교가 일찍 진출해 지금도 중식 문화가 발달한 지역인데 인천이 발상지로 알려진 뼈다귀해장국(감자탕)을 비롯해 아귀찜과 아귀탕 역시 물텀벙이라는 표현의 차이만 있을 뿐 발상지 논란이 있는 공통분모를 가진 경우가 상당히 많다.
인천 시민의 출신을 보면 토박이는 거의 없고 상당수는 이주민으로 구성되어 있는 상태로 이 중 다수를 차지하는 건 충청도인과 호남인들이다. 지금도 있는 조계지(청일조계지)처럼 인천은 외래문화가 유입되는 선진 문화의 중심지였고 다양하고 많은 외국 신문물이 유입된 지역인데 작은 어촌 마을일 때와 다르게 지금의 인천으로 성장하는 과정에서는 시작부터가 외국인과 이주민(타 지역)들의 정착지로 성장한 면이 상당히 크기 때문에 인천 고유의 것보다는 외지 문화의 정착으로 인한 인천화 된 문화들이 더 많은 것이 특징이다. 이를 달리 말하면 인천 것이라 여겼던 것들 중에는 타지에서 들어온 것들로 인해 만들어진 것이 더 많다는 뜻이 된다.
인천에서 3대 이상 거주한 본토박이라 할 수 있는 사람들은 정작 "화교" 집단으로 이들은 일제강점기부터 거주하면서 대를 이어 거주한 경우이기 때문에 보통 3대 이상 인천에 거주한 사람들에 해당한다. 인천에서 토박이를 만나는 건 굉장히 어려운 일인데 정작 그 인천 토박이라 할 수 있는 다수의 사람들은 중국 화교들인 셈. 실제로 주변에 토박이라 하는 사람들을 만나게 되면 언제부터 거주했는지 묻게 되는데 토박이의 개념을 잘못 알고 있어서인지 보통은 아버지부터 자신까지 쭉 여기서 살았다고 하면서 토박이로 말하는 경우가 왕왕 있다. (그게 토박이면 전국은 다 토박이 천지다) 4대조, 5대조까지는 아니어도 못해도 3대는 인천을 고향으로 두고 있는 사람을 본토박이라 할 수 있겠으나 그런 경우는 극히 드물고 오히려 화교에서는 3대 이상의 본토박이 비율이 압도적으로 많은 편이다. 그래서 인천에서는 오히려 인천 향토 문화와 역사와 관련해 보고 들은 게 많은 화교에게 묻는 게 더 정확할 때도 많다. 전쟁통에도 자신들의 주거지를 찾아 꿋꿋하게 정착한 것이 이들이기 때문이다.
인천의 음식을 보면 음식명은 달라도 음식 그 자체가 비슷한 경우가 유독 많고 특히 충청도식과 전라도식이 많은 편인데 당연히 이주민의 다수를 차지하는 지역이 이들 지역이면 이들 토속 음식이나 그 지역 사람들의 입맛에 맞게 변형되어 발전하는 음식들이 생겨날 수밖에 없다. (인천에 향우회관이 많은 것도 특징. 실제로 충청향우회와 호남향우회가 가장 크다) 육회의 경우 경상도는 뭉티기, 전라도는 생고기라 하는데 충청도는 육사시미라 부르지만 서울 경기, 인천 등의 수도권은 그냥 육회로 부른다. 당연히 수도권 말씨가 표준어처럼 쓰이니 지금은 전국 어디서든 육회가 통일된 말로 쓰이지만 육회 다음으로 인천에서 생고기(전라도), 육사시미(충청도)가 그나마 쓰이는 것도 이들 지역 세력이 인천의 주요 거주층을 구성하는 요인이 되기 때문이다.
발효무김치와(채장아찌) VS 겉절이무김치(무생채)
채장아찌를 두고 인천 방언(사투리)이라 놀랐다는 반응이지만 정작 이는 인천의 사투리가 아니다. 채치(채찌)를 쓰는 전라도 사람들에 의해 전파된 또 다른 외지어이고 이들이 많이 상경해 거주하는 비율이 높다면 당연히 그들 말이 자연스럽게 퍼져 나갈 수 있는 환경이 될 수밖에 없다. 또한 채치(채찌)는 줄인 말 그대로 채 썬 무로 만든 짠지 형태를 의미하기 때문에 채장아찌라는 음식명이 갖는 개념과 정확히 일치한다. 반면 무생채와는 상당히 다른 개념의 음식인데 무생채와 채장아찌가 전혀 다름에도 이걸 인식하지 못하고 그냥 무생채=채장아찌라는 인식만 갖고 인천에서는 이걸 같은 음식으로 보았기 때문에 생긴 착각일 뿐 사실 무생채를 뜻하는 인천 사투리가 채장아찌는 아니다.
서로 다른 음식임에도 이걸 하나로 퉁쳐서 같다고 본 이유는 인천 자체가 각기 다른 세력들이 모인 짬뽕도시의 특징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각기 다른 방식과 형태로 만든 음식이지만 겉으로 보면 같은 음식처럼 보이기에 서로가 부르기 편한 방식대로 불렀을 뿐인데 이게 한쪽은 채장아찌, 한쪽은 무생채로 다르게 불렀을 뿐이다. 문제는 다른 음식임에도 그냥 구별 없이 자기들이 불렀던 방식으로 정해서 부르다 보니 다른 지역 사람들이 만든 것도 그냥 채장아찌, 또는 무생채로 묶여서 퉁치게 되었다는 것이다.
채장아찌는 전라도의 채치와 마찬가지로 김칫소(김치양념) 개념으로 김치처럼 익혀 두고 오래 먹는 발효김치류에 해당하지만 무생채는 생무를 채 썰어 그대로 양념만 해서 먹는 "겉절이"에 해당하기 때문에 그 차이가 분명히 나는 서로 다른 음식에 해당한다. 우리가 김치와 겉절이를 다르게 인식하는 것처럼 채장아찌(채치)와 무생채 역시 서로 다른 종류의 음식이다. 채장아찌라 하는 것을 보면 실제로 액젓이 들어가고 김치와 마찬가지로 풀이 들어가면서 양념이 강한 것이 특징인데 배추김치를 담글 때 넣는 김칫소를 반찬으로 만든 것이기 때문에 김치양념을 활용한 무김치에 해당하지만 무생채는 생무를 채 썰어 양념만 하고 풀죽 없이 곧바로 먹는 겉절이이기 때문에 무김치 중 하위 개념의 약식 버전인 무겉절이나 무무침에 해당하지 무김치라고 할 순 없다. 확연히 구별해서 나눈다면 채장아찌는 무김치 (김치처럼 오래 두고 묵혀 두는 음식), 무생채는 무무침 혹은 무겉절이다 (나물처럼 무쳐 먹는 음식)
김칫소로 만들어 익혀(발효) 먹는 무김치와 양념만 해서 생무를 먹는 무겉절이는 전혀 다름에도 모양새와 재료가 비슷하니 인천에서는 각기 다른 여러 부류가 어울려 모이면서 자기들이 부르는 방식으로 표현할 수밖에 없다. 이걸 두고 인천에서 한쪽은 무생채 (경기/서울)라 하고 한쪽은 채장아찌라(전라/충청) 서로 다르게 불렀을 뿐이다. 당연히 이들 모두가 지금의 인천 사람을 구성하는 구성원들이 되었기에 이들이 쓰는 말이 인천 지역말처럼 굳어졌지만 인천에 토박이가 거의 없던 상황을 고려하면 인천에서 따로 부르는 말이 무엇이라고 단정할 수 없어 결국엔 이들이 쓰는 말이 인천 말로 정착되어 사용될 수밖에 없던 것이다.
인천의 사투리는 대부분 외지어와 외래어
위 채장아찌와 관련한 글에서 처음 게시자가 같은 인천 사람인 상대방이 채장아찌 말고도 앞사라를 듣고도 무슨 말인지 모른다는 표현이 있는데 이 중 앞사라(일본식 표현, 앞접시로 순화해서 사용 중)가 인천에서 통용되어 시작된 말이라는 걸 보더라도 일본어와 중국어 영향을 은근 많이 받은 경우가 많다. 청나라와 일본 조계지가 있을 정도이고 러시아 공사관이 서울에서 폐쇄되고 난 뒤 인천에 옮겨 (월미도 입구 쪽) 자리를 잡았을 정도로 개항장의 역할을 톡톡히 했는데 인천에서만 통용되어 전파되었다는 대걸레 "마포" (마포걸레) 역시 인천에서 학창 시절을 보낸 사람이라면 모두가 다 아는 당연한 말이지만 사실상 인천에서만 통용되는 말로 (사투리처럼 쓰임) 일본어 못포, 중국어 마푸, 영어 마프에 유래를 둔 외래어이지 인천 고유의 사투리에 해당하진 않는다. 지역 사투리가 아닌 그 지역에 유입되어 쓰인 외래어가 널리 퍼진 경우다.
인천은 토박이 비율이 매우 적어 타 지역 문화 유입이 상당히 발달하고 정착하기 쉬운 상태였는데 전 국민이 다 아는 "인천상륙작전"이 시행된 지역으로 상당수의 거주지와 생활권이 무너져 처음부터 다시 시작한 도시가 바로 인천이다. 대도시가 되면서 토박이 비율이 적어진 것이 아니라 일제시대를 시작으로 (개항) 우리와 생김새가 비슷한 청나라(중국), 일본의 외국인은 물론 지방 외지인 유입이 증가하면서 인천이 도시화되는 과정 자체가 외지인들로 세워진 도시였으면서 한국전쟁을 거치는 과정에서 생활터전이 폭삭 사라지는 과정까지 겪게 되었는데 이로 인해 인천의 고유한 것들 자체가 상당히 소실된 경우가 많았다.
일제시대는 물론 한국전쟁 중에도 인천에 살던 원주민들이 피난길을 떠난 뒤 돌아온 비율이 높지 않았고 (타지에 정착한 경우도 있지만 몰살당하거나 사망한 경우도 많았다) 반대로 다른 지방에서 상경해 유입된 비율은 상당히 높아지면서 인천에 새로 터를 잡은 사람들이 많았는데 인천에 유독 "실향민"이 많이 거주한 것도 이런 배경에 한몫을 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특히 이북 출신이거나 경기도 사람이지만 경기북부 미수복 실향민이 많은데 인천공항이 건설되는 과정에서 영종도 주민들 중 실향민 비율이 꽤 높았던 것도 마찬가지다. 인천공항 고속도로에서 볼 수 있는 신불 IC의 그 신불 역시 과거 신불도라는 섬으로 있을 당시 실향민들이 주로 거주했던 섬으로 알려졌을 만큼 인천은 내륙은 물론 여러 섬에서 고향(이북)과 가까운 곳에 정착해 사는 비율이 높았기 때문에 의외로 이북에 고향을 둔 사람들이 정착한 경우도 상당히 많은 편에 속한다. (백령도와 대청도, 강화도도 마찬가지)
어떤 면에서 보면 인천은 외지인들이 세운 이태원의 도시버전이라 할 수도 있는데 소위 말하는 마계인천이라는 용어가 등장하게 된 것도 여러 지역에서 서로 다른 문화를 가진 이질적인 사람들이 모여 만든 도시이기 때문에 고유의 특성보다는 이질적 감성이 더 많은 도시라서 차가운 도시 이미지를 가진 것이라 할 수도 있다. 서울도 토박이보다는 외지인들이 유입되어 만들어진 현대 서울이라는 점에서 비슷한 구조를 갖지만 인천이 갖는 이질적인 것과는 차이가 있다. 서울은 아메리칸드림처럼 종착지로서 이주한 사람들의 정착 비율이 높지만 (외지인들의 토박이화) 인천은 사실상의 서울 위성도시 역할을 하며 서울로 입성하려는 사람들의 길목 역할만 할 뿐 이주민들이 정착하지 않고 다시 이주하는 비율이 만만치 않았기 때문에 이질적인 문화들이 맞붙이 치며 어울리지 못한 측면이 다소 강하다. (현대백화점이 망하고 나갔으며 지금도 인천에는 현대백화점이 없는 상태인데 인천에 있는 모든 백화점 비율과 배치 역사에 대해 알아보면 서울과 인천이 비슷한 환경이면서도 다른 차이가 명확하게 나뉜다)
물론 지금 시점에서 보면 마계인천은 그저 옛 인천의 모습에 견주어 만든 과거 이미지일 뿐 지금은 마계인천이 아닌 매력인천으로 상당히 탈바꿈한 상태이기 때문에 이런 것도 다 과거의 이야기고 인천이 만들어져 가는 과정에서의 옛 모습일 뿐 송도, 청라, 영종 등의 국제도시 기능은 물론 인천공항을 통한 대한민국 관문 역할을 하는 중요 도시이기 때문에 과거의 인천과 현재의 인천은 아주 많이 달라졌다는 것도 상기할 필요성은 있다. 특히 공업도시로서 안정화된 이후, 수도권 광역도시로서 위상을 어느 정도 갖춘 뒤의 인천은 서울과 뚜렷하게 다른 특화된 이미지를 갖는 서울의 위성도시에서 벗어나 독립적인 주체의 대도시로 바뀌었기 때문에 마계인천은 정작 인천을 잘 모르는 사람들이 하는 말이거나 인천의 옛 모습만을 기억하고 있는 사람들의 감성팔이에 지나지 않는다. 사이다, 짜장면, 바지락칼국수, 뼈다귀해장국, 아귀찜, 계란빵, 쫄면 등 인기 많은 음식은 감성팔이들이 말하는 마계인천 없었으면 먹지도 못했다.
인천은 군사도시 역할을 하면서 (최근에야 미군부대가 서울과 함께 평택으로 이전) 국군부대를 비롯 미군부대도 함께 오래 주둔한 지역 중 하나인데 군부대 특성상 여러 지역의 사람들이 모여 단체 생활을 하는 요건을 갖고 있기 때문에 외지인 유입에 또 다른 한 원인이 되기도 한다. 거기에 인천은 부산과 달리 항구도시가 아닌 공업도시로 성장했는데 대표적으로 알려진 남동공단을 비롯해 상당수의 중공업 기지와 공장이 위치하게 되면서 일자리를 찾아 타지에서 오는 비율이 서울만큼 높은 것도 한몫을 차지했다고 볼 수 있다. 공업도시 자체가 외지인 비율이 증가할 수밖에 없다. 원주민 만으로는 공업도시로서의 노동력을 충당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 때문인지 인천의 사투리로 알려진 상당수는 외래어가 오히려 많다. 물론 그래서 오래전부터 쓰인 말보다는 산업화 도시화 되는 과정에서 생긴 유행어에 해당하는 경우이지 정작 사투리라 할 순 없다.
인천에서 실제 토박이 역할을 하는 건 중국인 화교이고 인천을 구성하는 주요 시민들 출신은 타 지역 사람들이면서 그 텃밭을 구성하는 출발지는 이북 실향민들이기 때문에 인천의 고유문화는 이질적이고 다문화 될 수밖에 없는 구조를 갖고 있다. 서로가 다른 문화를 교류하는 과정에서 서로 교차하고 흡수하고 퇴색되고 일부는 부각되고 일부는 소실되는 과정을 겪게 되는데 그 과정에서 인천 고유의 것이라고 할 만한 것들은 그렇게 많지 않다. 다만 지금은 그 과거 시점에서 상당히 진전된 문화 창작과 정착민들의 주거 안정을 통한 고향 개념이 만들어져 가는 과정에 있기 때문에 인천 고유의 문화와 관습은 만들어져 가는 과정에 있는 것이기에 과거에 없다고 앞으로도 없다고 할 수는 없다.
채장아찌를 일부만 아는 이유
인천은 생활권이 생각보다 크고 지역 차이가 존재한다. 서울도 강서와 강동, 강북과 강남의 생활권이 완전 다른 것처럼 서울 사람이어도 강서에서 강동까지 놀러 가는 경우는 흔치 않고 거의 자기 구역 안에서만 지내는 경우가 많은데 인천도 그렇게 크게 다르진 않다. 강화군과 옹진군까지 갖고 있는 곳이 인천이라 생각보다 지역 범위가 큰데 작게 봐도 부평과 계양 사람들 문화권과 생활권이 인천 구도심(동구, 중구) 생활권과 완전 다르며 지역 경계가 확연히 나뉜다. 같은 생활권이 아니다. 송도 사람이 서구나 검단에 생활권을 두지 않는 것처럼 인천도 자치구별로 따로 지내는 광역 도시이기 때문에 같은 인천이어도 특별한 환경에 노출되지 않는 이상 어울리는 게 쉽지 않다. 다른 광역시와 달리 인천은 서울과 함께 수도권에 있는 유일한 광역시이기 때문에 대구, 대전, 광주, 울산, 부산과는 같은 광역시여도 자치구에 따른 이질적 문화 감성이 남다른 편이다.
더군다나 다른 광역시들은 주변 이웃 군이나 같은 도에서 유입되는 비율이 높은 반면 인천은 그러지 못했기에 문화가 섞이고 교류하는 과정의 시간차가 조금 더 필요했다. 감성이 비슷한 경기와 서울에서 이주를 해 온 비율보다는 감성이 다른 더 먼 거리의 지역에서 이주하는 비율이 더 많았기 때문인데 거기에 지금은 교통이 발달하고 편리하게 구성되어 있기 때문에 다소 그런 거리감이 줄어들어 모여 사는 곳이 비슷해 작게 느꼈지만 정작 인천이 관할하는 토지 자체는 매우 큰 편에 해당하기에 어울리기 좋은 조건이 아니었다.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인천은 우리나라에서 제일 큰 행정구역을 갖는 도시로 갯벌의 매립화를 통해 땅이 계속 늘어나고 강화도와 (강화군의 편입) 영종도 등의 공항도시 개발 (역시 갯벌 매립), 송도신도시 (갯벌 매립) 등을 통해 인천 땅 자체가 커지고 있기 때문에 인천 동에서 서로, 북에서 남으로의 구역은 인천이라는 큰 틀 안에서 따로 움직이는 헤쳐 모여 느낌이 강한 도시다.
교통편을 보더라도 인천 안에서 인천끼리 움직이는 지하철조차 역사가 오래되진 않는다. 서울과 이어지는 경인선은 우리나라 최초의 철길이니 당연히 일찍 존재했지만 그 존재 자체가 인천 내부가 아닌 인천과 서울을 잇는 교통편이기 때문에 위성도시로서의 대중교통이 더 발달했지 인천 내부를 오가는 교통편은 취약한 편에 속했다. 주요 버스 노선조차 경인철도를 따라다닐 정도로 사람들도 경인선 주변에 몰려 살았는데 교통편이 좋지 못한 상황에서 다른 구와 교류하는 건 쉽지 않았다. 인천지하철 1호선과 인천지하철 2호선이 건설되면서 이제야 인천 내부가 서울처럼 움직일 수 있는 대중교통망이 생겼지만 기존에는 서울과 인천을 잇는 교통망이 대부분이라 그 주변에 몰려 사는 서울 문화권 거주자와 그 나머지 인천 문화권 거주자의 문화 교류 차이는 존재할 수밖에 없었다.
동인천을 잘 아는 사람은 부평을 전혀 모르고 부평을 잘 아는 사람은 동인천을 전혀 모르는 경우가 많다. 인천을 잘 안다는 인천 출신 모 연예인조차 동인천은 잘 알지만 연수구, 부평구, 서구, 계양구는 잘 모른다. 반면 인천 사람들은 서울은 잘 안다. 그래서 인천에서도 채장아찌보다 무생채가 더 많이 쓰이고 대세인 이유일지 모른다. 채장아찌는 인천의 사투리가 아니며 인천에서도 잘 쓰이지 않는 외지어에서 유입된 다른 지역 사투리 중 하나다. 인천을 대표하는 사투리들이라는 것들이 모두 그런 것처럼 마포(대걸레), 앞사라(앞접시)처럼 그냥 외래어이거나 외지어가 대부분이다. 다른 도시와 달리 인천은 세대의 뿌리가 깊지 않고 이주민들의 도시라 토속적인 언어나 토박이가 쓰는 말의 비율이 현저히 낮다. (거의 없다) 단지 그걸 쓰는 사람이 어디 출신이고 아버지, 할아버지가 어디서 인천으로 왔느냐에 따라 쓰는 말이 다를 뿐이고, 같은 인천에 사는 인천사람이라 하지만 고향이 다르니 당연히 모르거나 다르게 알 수밖에 없다.
내 주위를 보더라도 인천에서 초중고를 나온 친구들을 모두 보면 7명 중 7명 모두가 다른 지역 출신들로 이루어져 있다. 서울이 고향인 나를 비롯해 경기도 1명이 있고 3명은 전라도, 2명은 충청도로 인천을 구성하는 주민 통계와 거의 다르지 않다. 그 친구들의 또 다른 친구들로 엮어 나가도 마찬가지. 특히 인천 사람임에도 인천이 고향이 아닌 경우가 우리 세대에도 꽤 많은데 인천에서 유치원부터 대학까지 다 지낸 누가 봐도 인천을 잘 아는 인천 사람들이지만 정착 출생지는 다른 경우가 많아 주민번호 뒷자리 두 번째 이후 숫자의 폭이 서울만큼 다른 게 인천이라 할 수 있다. 인천에서 태어나 인천에서 노년을 보내는 어르신을 간혹 있지만 그런 어르신들이 있어도 그 부모 세대가 인천 사람이 아닌 경우가 대부분이라 인천을 고향으로 둔 토박이 가족들을 찾는 건 무척 어려운 일이다.
토박이에 대해 관심이 많고 인천 역사에 관심이 많아 토박이에 대해 수소문을 꽤 했음에도 아직까지도 인천 토박이를 단 한 명도 만나지 못했을 정도로 인천에서 원주민 찾는 건 정말 서울에서 김서방 찾는 것만큼 어렵다. 유일하게 만나 본 인천 토박이는 정작 모두 화교였다. 그렇기에 어떻게 보면 지금 초중고를 다니는 인천의 아이들이 진짜 인천을 대표하는 1세대라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물론 이들도 조부모가 인천에 뿌리를 둔 경우는 많지 않지만 그래도 예전에 비하면 부모 세대가 인천 태생의 고향인 경우가 있어 2대 정도까지는 만들어져 가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아직도 인천에 사는 친구들 이야기를 들어보면 그 아이들의 부모가 인천 태생인 비율이 높은 건 아니나 요즘 친구들은 그래도 인천에서 태어나 나고 자란 케이스가 많기 때문에 MZ세대에 해당하는 인천 사람들이 인천 이미지를 만들어가는 중추적인 역할을 하는 세대가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토박이 없는 인천, 토박이 고유문화가 없다시피 한 인천에서 1990년대 태어난 인천이 고향인 사람들. 지금 시점에서 30대 연령 아래에 해당하는 인천이 고향이 사람들이 부모가 되고 조부모가 되는 시점에서 그들 자식들도 모두 인천에서 태어나 자라고 성장하는 시기가 바로 인천이 어떤 도시이고 인천 사람이 어떤 사람들이며 인천의 문화와 감성이 어떤지 명확하게 말할 수 있는 토박이의 출발점이 아닌가 싶다. 그래서 내 고향은 아니지만 지금은 살지 않는 추억 깃든 동네지만 더 기대되는 곳이 바로 인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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