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일 선물
먹고 싶은 게 뭐냐고 묻는다
생일에는 미역국이지 답했다
함께 먹는 것은 무엇이든지 좋다는 걸
그녀는 모르는 것 같다
받고 싶은 게 뭐냐고 묻는다
백석의 시집이라 답했다
이 세상에서 내가 받은 최고의 선물은
당신이라는 걸 그녀는 모르는 것 같다
하고 싶은 게 뭐냐고 묻는다
손잡고 해변을 걷는 것이라고 답했다
함께라면 뭐든지 좋다는 걸
그녀는 모르는 것 같다
그러고 보니 당신은 참 바보 같다
그러나 그렇게 물어주는 당신이
나는 참 좋다
2021 서울지하철 시민창작시 선정작품
가슴에 남은 시 한 편
날씨 흐린 어느 날, 지하철을 타려고 플랫폼에 서 있을 때였다. 추락방지 안전문 유리벽 공간에 시 하나가 적혀 있는 걸 발견한다. 평소에는 신경도 쓰지 않던 공간이었는데 그날은 그냥 시선이 절로 갔다. 제목은 "생일 선물", 천천히 한 글자 한 글자 읽어 내려간다. 마음 한 켠 작은 울림이 느껴졌다. 곧 지하철이 도착한다는 멜로디가 역내에 울리자 나도 모르게 스마트폰을 들어 시를 찍는다. 그리고 도착한 지하철에 올라 방금 전 찍어 두었던 시를 다시 꺼내어 천천히 다시 읽어본다.
화려한 조명과 분주하게 움직이는 사람들의 틈새 속에서 바쁘게만 살았던 자신을 돌아보며 시를 찾아 읽어 본적이 언제였던가 스스로에게 되물어보지만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그래도 이렇게 가끔이라도 살짝 시선만 돌리면 시를 만날 수 있게 사람들이 노력해주고 있다는 것에 참으로 고맙고 감사하다.
예전에는 지하철, 전철을 타면 다들 책 읽기 바빴다. 어르신들은 책 대신 신문을 보기도 했다. 그리곤 그 신문을 다음 사람을 위해 갖고 내리지 않고 선반 위에 올려두곤 했다. 지하철 의자에 앉아 시도 많이 읽었고 소설도 많이 읽었다. 삭막한 도시에서 지하철 공간은 유일하게 도서관, 독서실이 되는 공간이기도 했다.
하지만 요즘엔 책 읽는 사람을 보기 힘들다. 다들 스마트폰 하기 바쁘다. 나조차도 다르지 않다. 그래서 삭막한 도시가 더 삭막하게 느껴질 때도 많다. 종이에서 강화유리로 바뀌었을 뿐 열심히 읽는다고는 하지만 사실 문자를 읽는 게 아니라 영상을 보기 바쁘다. 종이 책이 주는 감성보다는 전자기기가 주는 감정에만 치우쳐 독서 형태의 모습만 비슷할 뿐 전혀 다른 세상이 되었다.
서울이라는 거대한 도시에서 나고 자라 이제는 삭막함조차 일상이고 그마저도 익숙함이 되었지만 그래도 이렇게 가끔 감성에 젖는 문자와 접할 수 있고 만날 수 있다는 게 언제나 신난다.
[교육/언어유희] - 한국 말 중 외국인들이 가장 어렵다고 하는 한국어 표현 "먹다"
[교육/언어유희] - 사건 VS 사고 차이점과 구분 (참사, 추모, 근조)
'교육 > 언어유희' 카테고리의 다른 글
세기말의 아이콘 강남 압구정동 오렌지족 뜻과 유래 (2) | 2024.03.27 |
---|---|
한국전쟁에서 암호로 쓰인 제주도 사투리 (0) | 2023.08.05 |
큰 밧줄을 왜 동아줄이라 부를까? (동아 뜻) (1) | 2023.07.26 |
한국 말 중 외국인들이 가장 어렵다고 하는 한국어 표현 "먹다" (1) | 2023.05.29 |
LA 로스엔젤레스를 대한민국 나성특별시로 부르는 이유 (0) | 2023.04.06 |
채장아찌는 정말 인천 사투리일까? (0) | 2023.02.12 |
허파와 폐는 같다? (+계란과 달걀) (0) | 2022.12.27 |
아름답다의 어원과 알밤 (밤톨) (1) | 2022.12.21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