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을 상징하는 음식
한국을 대표하는 음식을 뽑으라고 하면 공통적으로 빠지지 않고 꼭 등장하는 것이 있다. 김치, 불고기, 그리고 비빔밥이다. 해외를 대상으로 하는 한국 홍보에서도 이들 세 음식은 빠지지 않고 등장할 정도로 상징성이 높다. 그 때문에 한국을 찾는 외국인들도 필수적으로 먹어보는 한식이기도 하다. 이 중에서 외국인들에게 가장 선호도가 높은 건 비빔밥이다. 달고 짭조름한 호불호 없는 불고기가 외국인들이 제일 선호하는 한식으로 생각하기 쉽지만 의외로 종교적인 이유, 건강이나 사상, 신념에 따른 채식주의자들도 (비건) 많기 때문에 선택 비율이 압도적으로 높지는 않다. 더군다나 고기와 간장이 메인인 불고기는 비슷한 맛, 비슷한 구성의 다른 나라 음식도 많아 입맛에는 좋을지 몰라도 한국적인 느낌을 강하게 주는 편은 아니다. 애초에 육고기와 간장이 우리나라에만 존재하는 게 아니니 맛의 차이가 독보적이라고 할 순 없다.
반면 김치와 비빔밥은 다르다. 한국이 아니면 이것과 비슷한 맛을 찾기가 쉽지 않다. 독창적이고 고유한 맛이 있다. 비슷한 맛을 내는 고기가 메인 재료가 아니기 때문에 맛의 다양화가 더 깊고 많다. 들어가는 양념이나 주재료의 변화에 따라 수많은 변종으로 확장할 수 있는 음식이기도 해서 불고기와 달리 두 음식은 종류도 많다. 불고기는 조리 방식과 먹는 방법에 따라 몇 가지로만 구분될 뿐 우리가 아는 그 불고기가 단일 형태로 존재하는 경우가 많지만 김치와 비빔밥은 무슨 김치, 무슨 비빔밥이라고 따로 구분할 만큼 획일된 이미지가 없고 다양한 이미지로 존재한다. 종류에 따라 맛의 차이가 커서 종류가 다른 걸 먹으면 카테고리만 같은 음식을 먹었을 뿐 전혀 다른 음식을 먹은 것과 다르지 않다. 그만큼 맛의 색이 많아 즐거움도 많다.
무엇보다 불고기와 달리 김치와 비빔밥은 대중적이면서 서민적이다. 지금도 돈이 없으면 고기 반찬부터 끊게 되는데 불고기는 예나 지금이나 여유가 있어야 먹는 고급 한식이자 잔치 음식이지 일상적인 서민 밥상의 즐겨찾기 음식이라 할 순 없다. 가진 자와 못 가진 자, 있는 자와 없는 자를 구분하는 게 불고기라면 김치와 비빔밥은 그런 구분 없이 모두가 먹을 수 있는 것도 특징. 불고기는 손님에게 대접하는 특별식에 가깝고 김치와 비빔밥은 한국인에게는 일상식에 가깝다. 그만큼 가장 한국답고 한국인의 밥상에 맞는 상징물인 건 김치와 비빔밥이라 할 수 있다. 대표 한식은 비싸고 좋은 재료로 구성된 고급 음식이 아니라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쉽게 즐겨 먹는 소울푸드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비빔밥을 맛있게 먹는 이상한 규칙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어느 순간부터 비빔밥에 이상한 규칙이 하나 붙었다. 비빔밥을 비벼 먹을 때 숟가락이 아닌 젓가락을 사용해야 비빔밥이 맛있다면서 숟가락으로 비비면 음식 맛을 모르는 사람, 젓가락으로 비비면 뭘 좀 아는 사람처럼 각인되어 버렸다는 것이다. 마치 냉면은 평양냉면의 걸레 빤 물처럼 슴슴해야 진정한 냉면이라고 규정짓는 것처럼 말이다. 이는 냉면에 왜 "무"가 들어가고 "식초"를 왜 치며 "얼음"이 들어가는지를 애초에 생각하지도 않고 냉면의 형식을 규정한 것과 다르지 않은데 비빔밥 역시 그 뒷바탕의 맥락을 무시한 범주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엉뚱한 규칙에 사로잡혀 점점 더 이상한 방식으로 먹는 형태와 방식의 고수하는 사람들이 등장하게 된다.
예전에는 분명 다들 숟가락으로 비빔밥을 비벼 먹었다. 그렇게 배운 사람도 있겠지만 그게 더 자연스럽기 때문에 딱히 누구에게 배우지 않아도 다들 그렇게 했다. 그래야만 하는 당위성까지는 몰라도 그게 더 편했고 그게 최선이었고 그게 전부였다. 숟가락 외 다른 걸로 비빈다는 생각 자체를 못 한게 아니라 안 했다. 그런데 언제부터 젓가락으로 비비는 사람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그게 극소수였다가 지금은 꽤 많이 늘었다. 각자의 편의나 취향에 따라 선택한 게 아니라 젓가락으로 비벼야 한다고 당위성이 추가되면서 설득당한 사람들이 늘어난 결과다. 대중적으로 인기를 얻고 또 젊은 사람들에게도 많은 영향을 주었던 tvN의 알쓸신잡에서도 이런 풍경을 볼 수 있는데 아래 클립 영상에서도 알 수 있듯이 젓가락으로 비벼야 정석인 것으로 설명하고 있다. 그만큼 꽤 자주, 많이 방송에서도 비빔밥은 젓가락으로 비벼야 한다고 나온다.
비빔밥 비비는 건 젓가락이 기본이지
위 영상에서도 처음엔 5명 중 2명은 젓가락으로 비비고 3명은 숟가락으로 비볐는데 다섯 중 둘이 젓가락으로 비비는 모습이 나올 정도로 젓가락으로 비빔밥을 비비는 것이 꽤 보편적인 상황인 걸 알 수 있다. 문제는 그다음인데 비빔밥을 비비는 건 젓가락이 기본이지! 유시민 작가의 말처럼 젓가락으로 비비는 것이 특이하게 먹는 게 아니라 이게 맞다는 식으로 비빔밥을 비비는 방식에 있어 숟가락으로 비비는 건 반어적으로 틀렸다고 표현한다. 연령대가 낮은 젊은 층이 아니라 연령대가 있는 층에서 나온 발언이고 앞서 나이가 더 있는 김진애 건축가도 다른 사람도 아닌 시어머니가 젓가락으로 비벼야 한다고 알려줬다 했기 때문에 예전부터 이렇게 먹어야 한다는 뉘앙스로 들릴 수밖에 없어 주 시청자 입장에서는 이들 논리가 맞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젓가락으로 비벼야 하는 당위성에 있어 핵심은 젓가락으로 비벼야 밥알이 뭉게지지 않고 채소와 잘 어우러지면서 양념 맛이 잘 밴다는 것이다. 숟가락으로 비비면 밥알이 뭉개지고 채소가 어그러지면서 이도저도 아닌 쓰레기밥, 거지밥처럼 된다는 것이고 밥이 떡이 져서 고유의 맛을 느낄 수 없다는 것도 주장의 근거로 한 몫한다. 젓가락은 밥알과 양념 사이사이를 파고 들어가 잘 비벼주도록 하는 반면에 숟가락은 밥알과 양념 사이를 뭉탱이로 끌고 들어가 마구 섞기 때문에 양념 맛이 잘 배지 않고 겉돈다는 논리도 있는데 듣고 보면 일리 있는 말처럼 들리고 뭔가 과학적이고 논리적으로 들리는 건 분명하다.
결국 이렇게 설명을 들으면 젓가락으로 비비지 않을 수가 없다. 실제로 위 영상에도 나오지만 젓가락으로 비벼야 하는 주장과 그 당위성에 따라 설득 당한 나머지 셋은 자신들이 틀리게 먹었다는 사실을 알고 고쳐 먹는 모습을 보여준다. 결과적으로 5명 모두 젓가락으로 비비는 모양새가 되었다. 이는 탕수육의 부먹, 찍먹 논쟁과 달리 비빔밥의 젓가락 비빔은 다르다가 아닌 틀리다로 규정되면서 고쳐야 하는 취식 방법 중 하나로 인식된 결과를 잘 보여준 사례이기도 한데 비빔밥 전문점에 가도 마찬가지. 실제로 젓가락으로 비벼 먹는 사람이 더 많을 정도고 어르신들까지 포함해 꽤 다양한 연령층에서 젓가락으로 비비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물론 그 와중에도 꿋꿋하게 숟가락으로 뭉개듯이 밥을 꾹꾹 누르며 마구잡이로 비비는 사람도 있지만 말이다.
그러나 결과부터 말하면 비빔밥의 젓가락 비빔 행위는 잘못된 방식이고 오히려 틀린 방식이다. 비빔밥을 비벼 먹을 때 젓가락을 사용해야 하는 것이 맞다고 주장하나 실제로는 숟가락이 맞고 그것이 올바른 정석이며 젓가락 사용은 오히려 취향에 따른 선택이 아니라 하면 안 되는 금기 행동으로 오히려 우리 한식 예법에 어긋나는 행위에 해당한다. 젓가락 사용이 더 비빔에 효율적이고 더 과학적인 듯 들리지만 그렇지 않고 그 이면에 원래 식사 예법이 있고 음식을 만들어 먹는 조리법과 취식법이 존재하기 때문에 그것에 반하는 다른 행위를 할 경우에는 음식 본연이 갖는 고유의 향과 맛, 그리고 느낌을 간직할 수 없다.
젓가락의 용도
우리는 젓가락이 어떤 용도로 쓰이는지 잘 안다. 무언가를 집어 먹기 위해 사용한다고 알고 있다. 특히 반찬을 집어 먹을 때 사용하는데 이때 젓가락을 다른 용도로 쓰는 경우 잘못된 젓가락 사용법으로 본다. 내가 먹는 내 밥인데도 밥을 숟가락이 아닌 젓가락으로 집어 먹으면 안되고 국그릇에 담긴 국을 먹을 때도 숟가락으로 떠서 먹어야지 젓가락으로 건져 먹고 국물은 사발을 들어마시면 안 된다고 배운다. 젓가락과 숟가락을 동시에 잡고 먹는 것도 금기 중 하나다. 옛부터 어르신들이 밥상머리교육을 할 때 밥 먹는 예절과 관련한 기본 밥상 규칙이기도 하다. 숟가락과 달리 젓가락은 타인과 같이 먹는 음식을 공유하는 용도로 쓰기 때문에 밥 묻히고 국 묻히며 다른 사람도 먹는 반찬을 집으면 안 된다. 이건 예법을 떠나 당연한 이치다.
* 참고로 밥상머리교육은 흔히 착각하는데 식사예절 교육이 아니라 밥상을 매개체로 한 도덕교육으로 공경심과 인내심에 대한 교육이 핵심으로 식사 예절은 밥상 앞이라 자연스럽게 나온 부수적인 교육이지 밥상머리의 핵심이 아니다.
어릴 때 젓가락으로 밥을 먹으면 뭐라고 잔소리 듣는 건 흔했다. 지금은 그런 걸 따지지 않고 깨작깨작 먹지만 않으면 크게 뭐라고 하지 않지만 아직도 많은 어르신들은 젓가락과 숟가락 사용을 구분해 다르게 쓰면 호통을 친다. 찐득한 밥이 젓가락에 묻어나 다른 반찬에 밥풀이 붙기 쉽상이고 그걸 방지하고자 젓가락을 빠는 행동을 하게 되면 침벅벅이 되는 악순환이 되기 때문에 처음부터 밥은 숟가락으로 퍼 먹어야지 젓가락으로 떠서 먹으면 안 된다고 가르쳤다. 젓가락은 무언가를 집는 형태로만 써야지 젓가락에 무언가를 묻히는 행위는 타인을 배려하지 않는 것이기 때문에 심지어 가족 간이어도 금기된 식사법이다. 애초에 비빔밥과 상관없이 우리 식문화에서 젓가락을 저런 용도로 쓴 적도 없거니와 무엇보다 밥을 묻히는데 쓴 적은 더더욱 없다. 그러려면 젓가락을 쪽쪽 빨거나 (금기 행위 추가) 젓가락을 바꿔야 하는데 그런 비효율적인 발상이 가능할까.
혹자는 이를 두고 원래 우리나라는 "독상" 문화라 이런 주장의 근거가 되지 못한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그런 독상 문화는 소수의 양반들이나 가능하지 일반 서민에게는 독상 문화란 게 가능하지 않다. 이게 다 지금처럼 잘 살고 그때는 양반처럼 살고 양반처럼 먹고 살았다고 착각해서인데 옛날 선조들이 사는 집을 소개할 때 의례 등장하는 "한옥" 역시 사실 서민 절대다수는 "초가집"에 살았지 한옥은 우리나라 서민의 대표적인 건축 방식이 아니다. 한국의 멋을 외국인에게 정확히 보여주려면 북촌 한옥마을, 전주 한옥마을, 남산 한옥마을이 아니라 민속촌을 데리고 가서 초가집을 보여주는 게 맞다.
한중일의 젓가락 특징도 마찬가지. 중국은 젓가락으로 밥을 먹고, 일본도 젓가락으로 밥을 먹는다는 주장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이 두 나라는 숟가락 문화 자체가 발달하지 않고 우리가 식문화가 다르다. 중국은 큰 접시에 담긴 요리를 앞 접시에 옮겨개별적으로 먹는 방식을 취한다. 그렇지 않고 우리처럼 둘러앉아 요리(접시)를 공유하는 경우와 앞접시가 따로 없는 경우에는 자기 밥그릇으로 옮겨 먹는다. 이때 자기가 쓰던 젓가락이 아닌 옮기는 숟가락이 따로 있다. 그렇기 때문에 젓가락으로 밥을 먹어도 문제가 없다. 젓가락으로 밥을 먹기 때문에 오히려 이들이 내놓은 대안이 바로 공용 숟가락(국자)이다. 우리의 숟가락 위치와 젓가락 위치가 정반대인 셈.
일본도 마찬가지. 그들은 독상 개념처럼 자기 반찬을 공유하지 않고 먹기 때문에 젓가락으로 밥을 먹어도 상관이 없다. 중국이나 우리처럼 둘러 같이 먹는 경우에도 기본적으로 자신들이 먹는 개인 반찬이 따로 구분되어 있다. 현대화된 요즘 사회에서도 일본 드라마를 보면 우리처럼 하나의 반찬을 공유하기 보다는 식판처럼 구획된 자기 앞에 각자 동일한 소접시의 반찬이 모두 동일하게 여럿 차려진 걸 볼 수 있는데 독상 개념이라 젓가락으로 밥을 먹어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 물론 핵가족화에 따른 식단의 변화에 (우리처럼 하나의 반찬을 공유) 의해 중국이나 일본도 우리처럼 먹는 방식으로 바뀐 부분도 없진 않으나 각자 젓가락으로만 밥을 먹는 풍습까지 바뀌는 건 아니라서 가족 식사가 아니라면 반찬을 각자 구성해 주는 건 변함이 없다.
일본과 중국은 밥그릇의 밥을 먹을 때 숟가락을 쓰지 않기에 당연히 밥그릇을 들고 먹는다. 반면 우리는 숟가락 용도가 따로 있기 때문에 밥그릇을 들고 먹지 않는다. 중국인들이 밥 먹는 모습을 연상하면 흔히 생각하는 입에 밥그릇을 대고 젓가락질을 마구 해대며 먹는 것도 결과적으로 밥그릇을 앞접시 용도로 썼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지 우리와 식사 방식 자체가 다르다. 그 바탕에는 숟가락 문화와 젓가락 사용 방법의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우리 식문화는 젓가락에 무언가 묻히면 안 된다고 본다. 타인과 반찬을 공유하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젓가락을 밥 비비는데 쓴다는 건 우리 식문화에서 있을 수 없다. 비빔밥은 젓가락으로 비벼야 하고 그게 맞다고 설명한다면 그건 예부터 이어진 것이 아니라 최근에 누군가로부터 만들어진 신문화라는 뜻이다.
MIX와 RUB
비빔밥에 대한 근본적인 접근부터 하면 젓가락과 숟가락 중 어떤 것이 더 비빔에 적절한지 알 수 있다. 비빔밥의 이름 그 자체에 대한 접근이다. 비빔밥은 말 그대로 밥을 비볐다는 걸 의미하는데 여기서 "비비다"의 뜻은 문지르다와 상통한다. 볼을 비비다, 입술을 비비다, 손을 비비다 등 우리는 비비다의 뜻을 대략적으로 알고 있다. 서로 다른 둘을 맞대어 문지른다는 걸 말이다. 여기서 중요한 건 우리는 이 비빔밥을 섞어밥으로 부르지 않는다는 것이다. 비빔밥의 형태를 보면 분명 섞어밥이라 불러도 될 법한데 그 누구도 이걸 섞어밥이라 부를 생각을 하지 않고 비빔밥으로만 부른다.
이유는 간단하다. 단순히 섞는 게 아니라 정말로 비비기 때문에 섞어밥이 아닌 비빔밥이 되기 때문이다. 밥과 채소만 있었다면 이걸 섞기만 해도 된다. 좌우, 위아래 위치를 바꾸며 이리저리 왔다 갔다 섞으면 그게 비빔밥처럼 된다. 그런데 여기에 장(장류)이 들어가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된장이나 고추장은 섞는다고 섞이는 게 아니며 간장과 같이 묽은 액체 형태의 장류라 해도 섞기만 한다고 해서 섞이진 않는다. 무언가를 가지고 휘젓는 행위가 섞임의 행위와 같지만 그것이 섞임과 더불어 "묻힘"이 이루어지려면 "비벼야" 한다. 문질러야 한다는 뜻이다.
그래서 숟가락으로 밥을 비빌 때 보면 예외없이 누구나 밥을 "문지른다". 숟가락에 묻은 양념을 밥 여러 곳에 묻혀가며 섞는다. 착각하기 쉽고 혼동하기 쉽지만 밥을 숟가락으로 밥을 섞는 게 우선이 아니라 숟가락으로 여러 양념을 문지르는 게 우선이고 섞는 건 그다음 순서다. 김장할 때 배춧잎 하나에 묻히고 다음 장을 넘겨 또 묻혀가며 김치를 담그는 것처럼 밥도 묻히면 넘기고(섞고) 다시 묻히면 섞고를 반복한다. 젓가락으로 밥알을 뭉개지지 않게 비빈다고 하는데 오히려 반대로 그렇게 하면 양념(장)이 제대로 밥알에 묻지 않기 때문에 맛이 겉돈다. 섞는 시간도 더 오래 걸린다. 그래서 숟가락으로 꽉꽉 눌러 뭉개듯 밥알에 양념을 잘 배게 하여 섞는 게 맞다. 이건 비빔밥을 비벼 보면 (섞어 보면) 안다. 그래서 딱히 따로 배우지 않아도 모두가 숟가락으로 비빈다.
비빔밥을 영어로 소개하라고 하면 고등학생도 예외없이 "믹스 라이스?" 이런다. 대학생이나 사회생활 좀 한 사회인도 크게 다르지 않다. 물론 비빔밥은 영어로 해도 비빔밥 (bibimbap) 이기 때문에 저렇게 표현할 이유가 없지만 일단 잘 모르는 외국인에게 이해하기 쉽게 설명하기 위해 직역하는 경우 라이스 믹스, 믹스 라이스로 표현할 때도 있다. 여기서 중요한 건 믹스의 뜻이다. 믹스는 비비다가 아니라 섞다의 뜻을 가진다. "믹스하다"로 설명하면 무언가를 섞는다고 이해한다. 믹서기를 보더라도 비비는 게 아니라 섞는 주방기구라는 걸 알 수 있다. 콘크리트믹서기(레미콘) 역시 시멘트를 섞는 건설장비를 뜻한다. 근데 정작 비비다는 뜻은 MIX(믹스)가 아니라 RUB(럽)이다. "러빙", "러빙하다"라고 표현하면 비비다 문지르다로 해석할 수 있는데 비빔밥을 직역할 때 럽라이스가 아닌 믹스라이스로 표현하는 사람이 더 많다는 것 자체가 섞다와 비비다의 구분을 잘 못한다는 걸 반증한다.
더 나아가 비빔밥 역시 믹스로 해석한다는 건 비비지 않고 섞는 것에 주안점을 두고 해석했다는 걸 알 수 있다. 언어 이해의 차이일 수 있지만 근본적으로 비비다는 뜻을 정확히 이해하지 못하고 비빔밥의 비빔 행위에 대해 잘 몰라 그냥 섞는다는 표현으로 대체해 표현했을 확률이 높다. 이건 지금도 마찬가지. 비빔밥의 비빔, 비비다 및 문지르다의 음식 형태에 대해 잘 모르기 때문에 그냥 섞다로 인식했을 것이고 그대로 섞다가 고정 인식되면서 정말로 섞다에 중점을 두고 섞는 것에 포커스를 두었을 수도 있다. 그렇다면 젓가락이 등장해도 무리가 되진 않는다. 섞는 과정과 표현에 따라 젓가락도 충분히 섞는 도구로 쓸 수 있기에 음식을 어떻게 보는가에 따라 젓가락으로 섞는다는 것도 무리수가 되진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비빔밥은 섞어밥이 아닌 비빔밥이기 때문에 무조건 비비는 것에 핵심이 있다. 그것이 잘 비벼지려면 잘 문질러져야 하고 그렇게 잘 문질러지려면 넓은 면적으로 숟가락과 밥알을 비벼가며 (비비며) 묻혀 섞어야 한다. 그래서 숟가락 대신 등장한 것이 넓은 면적을 가진 "주걱"이다. 비빔에 최적화된 것이 주걱이고 그다음이 숟가락으로 면적이 있어야 비빔의 효과가 크기 때문에 면적 없는 도구는 비빔에 적절하지 않다. 나뭇가지로 아무리 휘둘러 봐도 묻어나는 건 젓가락 폭만큼의 양념일 뿐, 당연히 오래 섞어야 하고 오래 비벼야 하고 무진장 돌려가며 비벼야 그나마 젓가락으로 비빈 효과가 나온다. 결국 비빔과 섞음. 비빔밥과 섞어밥, 믹스와 럽의 차이를 알고 있어도 뭐가 맞고 뭐가 틀린 지 알 수 있다.
무침도 마찬가지. 손에 양념을 무쳐 채소에 양념을 묻게 하는 무침 방식도 손바닥을 사용해 조물조물 살짝 쥐어가며 무치는 게 보통이다. 이때 비빔밥처럼 섞는 행위도 이어지지만 근본적으로 손가락 다섯 개와 손바닥을 사용해서 골고루 무쳐주는 것이 무침의 핵심이다. 이때 무침 행위가 곧 비빔과 같다. 양념을 비벼주는 것으로 숟가락 대신 손을 쓴다는 게 다르지만 넓은 면적을 활용해 골고루 비벼 준다는 점에서 무침도 비빔 행위의 한 부류로 볼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집에서는 간혹 숟가락이나 주걱 대신 손으로 비빔밥을 비비는 경우도 있다. (비닐장갑을 끼지만 안 끼는 집도 있다, 엄마의 손맛 추가) 원리가 같기 때문이다.
만약 이때 누군가 손가락 다섯과 손바닥이 아닌 검지 손가락 하나만 갖고 무치라고 한다면 어떤 생각이 들까. 손가락 하나로 양푼 이곳 저곳을 휘적이며 열심히 무친다고, 비빈다고 그게 잘 비벼지고 양념이 잘 묻을까 의심이 들 것이다. 누군가 그렇게 하면 더 잘 무쳐지고(비벼지고) 맛나다고 하면 우왕? 하면서 신박하게 생각할지 오잉? 하면서 어이없어할지는 각자 판단에 맡기겠지만 젓가락으로 비비는 것이 정말로 더 맛있게 비벼진다면 그리고 그게 실제로 더 잘 비벼지는 효과를 갖는다면 양푼비빔밥으로 실험을 해 보면 안다. 한 사람은 비닐장갑 낀 손으로 비비고 한 사람은 손가락 하나로 비벼 보는 것이다. 그럼 무엇이 더 효율적이고 더 잘 비벼지는지 알 수 있다.
손으로 비비니 밥이 뭉게질 것이고 쥐었다 폈다 이리저리 주물럭 거리니 젓가락 옹호자들이 말한 것과 같이 쓰레기 거지밥처럼 돼야 한다. 만약 숟가락과 조금 더 비슷한 환경을 위해 숟가락처럼 비벼야 한다면 손가락을 쓰지 않고 기도하듯 (똥침 하듯) 손바닥을 쫙 편채로 이리저리 비빌 수도 있다. 반대로 손가락 하나로 비비는 사람은 주장대로 젓가락처럼 열심히 손가락 하나만 갖고 비비면 된다. 젓가락 옹호론자의 주장대로라면 손가락 하나만 쓸 때가 더 잘 비벼지고 골고루 양념이 묻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결과를 보면 섞이는 건 차이가 없어도 비벼지는 건 차이가 엄청 날 것이다. 섞는 건 문제가 되지 않지만 정작 양념이 골고루 묻지 않아 (비벼지지 않아) 아마 후자가 힘들 것이다. 결과적으로 상상 속으로 그려봐도 후자를 선택한 경우 본인의 선택에 의구심을 갖는 동시 황당하다 못해 어이없어하는 엄마의 눈길과 함께 등짝 스매싱을 맞을지도.
물론 정반대의 상황도 있다. 젓가락 옹호자들이 좋아할 만한 예시다. 바로 짜장면이다. 모두가 짜장면을 비빈다고 하고 실제로 비빔에 해당하고 실제로 비빈다. 이때는 반대로 숟가락이 아닌 젓가락으로 비벼야 정확히 비벼진다. (누구나 아는 상식) 여기서 짜장면은 숟가락이 아닌 젓가락을 써야 하는 정반대의 상황이 벌어지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젓가락으로 비빔밥을 비벼야 하는 것에 대한 당위성은 되지 못한다. 왜냐면 짜장면은 비빔밥과 달리 이름에서 알 수 있듯 밥이 아닌 면이기 때문이다. 짜장면의 경우 숟가락이 아닌 젓가락으로 비비는데 이때는 밥이 아닌 길쭉한 면이기 때문에 숟가락으로 면을 잡을 수 없다. 섞을 순 있어도 숟가락 위로 면이 흘러 면을 길게 늘어트릴 수 없다. 면의 특성상 길게 늘여 뒤적거려야 잘 섞이는데 그렇게 하려면 면을 잡아 올려야 하는데 숟가락은 그게 어렵다.
보통은 젓가락을 나누어 양 손에 쥐고 두 손으로 비빈다. 젓가락을 하나씩 나뉘어 쓰니 면을 들어 올리지는 못하고 뒤집어 섞는 경우다. 숟가락도 가능하지만 젓가락은 두 짝이라 번갈아 뒤엎을 수 있어 숟가락보다 효율이 좋다. 하지만 정작 잘 비비는 사람은 두 손을 쓰지 않고 한 손만 써서 비비는 경우가 많다. 젓가락을 뭉쳐 잡으면 하나를 쓴 것과 다르지 않아 의미가 없지만 면을 잡아 올려 뒤집는다면 면을 더 잘 섞을 수 있기 때문에 이때는 면을 잡아 섞는 게 가능하다. 젓가락 본연의 역할을 충실히 하면서 (집는 역할) 면을 잡아 올릴 수 있기 때문에 손가락 힘만 있으면 이게 더 잘 비벼지고 더 맛있게 비빌 수 있다. 그래서 손 힘이 부족한 어린아이들은 양손으로 비비고 어른이 되면 한 손으로만 젓가락 용도대로 집어 비비는 경우가 많은데 어릴 때부터 양손으로 비비는 게 익숙한 사람도 많기 때문에 어른이 된다고 해서 꼭 한 손으로 비벼 먹는 건 또 아니다.
짜장면의 사례를 보더라도 당연하게도 면은 젓가락으로 비비는 것이 더 낫고 밥은 숟가락으로 비비는 것이 더 낫다. 우리가 쫄면, 비빔국수, 짜파게티, 비빔냉면 등을 이때는 모두 젓가락으로만 비비는 것도 그런 맥락이다. 물론 면의 경우 반찬이 거의 없고 김치류 아니면 단무지 등의 곁들임 찬만 있기 때문에 젓가락에 양념이 묻는 건 큰 문제가 안 된다. 면은 밥과 달리 젓가락 사용 범위가 제한적이고 반찬을 먹기 위한 용도가 아닌 면 자체를 집어 먹는 용도로 쓰기 때문에 면을 비비는 것 자체가 젓가락 사용에 문제가 안 된다. 면은 젓가락으로 먹고 밥은 숟가락으로 먹는 것처럼 비빌 때도 면은 젓가락이 더 효율적이고 밥은 숟가락이 더 효율적인데 이 사실 자체만으로 밥으로 이루어진 비빔밥은 당연히 숟가락 사용이 맞을 수밖에 없다.
미디어가 낳은 잘못된 상식
이런 현상은 위 영상처럼 비빔밥과 관련한 젓가락 비빔에 있어 미디어 노출이 있을 때마다 증가한다. 젓가락으로 비비는 모습이 등장하고 왜 그래야 하는지에 대한 설명이 붙으니 설득 당한 사람 입장에서는 당연히 비빔의 방식을 고치는 것이 당연지사. 방송에서 이와 관련한 내용이 언급되고 노출될수록 비빔밥을 비빌 때 젓가락 사용자의 수가 비례적으로 늘어나는데 자연스럽게 방식을 바꾼 게 아니라 방송에 의해 따라 바꾸는 것이라 자연 발생적인 현상과는 거리가 있고 인위적으로 몇몇에 의해 (주장에 의해) 생긴 현상이라 일부 향토문화 전문가나 음식문화 전문가들은 심한 거부감을 드러내기도 한다. 문제는 정말로 이게 맞다고 "확신"한다는 것이고 이게 마치 원래부터 그랬고 그래야 하는 것처럼 확정되어 가고 있다는 점이다.
물론 잘못 알고 먹고 있거나 틀리게 먹고 있는 경우도 있을 수 있다. 일례로 카레덮밥이 있다. 일본은 덮밥을 먹는 방식이 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그런 문화가 없다. 그래서 우리는 대부분 카레덮밥을 시켜도 카레비빔밥처럼 먹는다. 우리에게는 덮밥 문화는 없어도 비빔밥 문화는 있기 때문이다. 섞지 말고 밥에 카레를 떠서 올려 먹어야 하는데 우리는 그걸 비빈다. 그래서 밥이 카페를 모두 흡수해 밥이 질퍽해지고 카레 맛은 밍밍해진다. 결국 카레를 더 추가해야 하는데 그렇게 추가하면 그걸 또 비빈다. 한국식 카레는 맛도 순한데 밥에 비비니 그 맛이 더 약해질 수밖에 없다. 카레를 맛있게 먹는 방법을 몰라 틀리게 먹은 경우다.
누군가의 바른 가르침에 의해 조금씩 전파되어 수정되고 개선되는 경우도 분명 존재하기에 모든 것이 다 방송에서 인위적으로 전파하였다고 해서 나쁘게 보거나 다르게 볼 이유는 없지만 근본적으로 이 문제는 그것과 전혀 다른 이상한 사람의 이상한 발상에 의한 이상한 규칙에 지나지 않기 때문에 문제인 것이지 본질적으로 올바름의 수정과는 거리가 있다. 즉 한식에 있어 기본적인 상식을 무시한 상인의 상술에 의해 여러 사람이 놀아 난 케이스라 할 수 있는데 평양냉면을 먹는 방식처럼 비빔밥을 젓가락으로 휘저어 먹는 방식 또한 이상하게 규정한 대표적인 사례 중 하나로 방송, 미디어가 낳은 잘못된 한식 문화라 할 수 있다.
음식을 주제로 한 허영만의 백반기행에도 비빔밥은 꽤 많이 나온 음식이다. 지역마다 재료마다 비빔밥의 형태와 맛이 다르니 비빔밥이라는 카테고리 하나만 갖고도 여러 편이 방송되었다. 이때 허영만 화백의 비빔밥을 비비는 모습을 보면 예외없이 숟가락으로 비비는 걸 볼 수 있다. 다른 게스트 역시 대부분 숟가락으로 비비고 그걸 당연시한다. 물론 여기서도 예외적으로 젓가락으로 비빈 적이 나온 경우도 있다. 게스트로 나온 배우가 비빔밥을 유난히 맛있게 만들 수 있다면서 보여준 퍼포먼스가 젓가락으로 비빈 경우였다. 가위로 채소를 더 잘게 자르거나 고추장 비율을 다르게 하거나 참기름 대신 들기름을 쓴다거나 식의 뭔가 다른 방식이 있나 싶었는데 유일한 차이는 그냥 숟가락 대신 젓가락으로 비빈다는 것. 물론 허영만 화백은 호응했지만 이후에도 그걸 따라 젓가락으로 비비는 건 보지 못했다.
음식이 주제인 수요미식회도 마찬가지. 여기서도 비빔밥은 빼놓지 않고 나왔는데 이때 등장한 비빔 장면은 모두 숟가락이 등장했지 젓가락으로 비빈 경우는 없었다. 게스트 출연자도 자료화면으로 나온 경우도, 식당 주인도, 다른 손님도 다 숟가락이었다. 근 10년치 비빔밥과 관련한 방송 자료를 찾아보면 예외 없이 숟가락으로 비비는 것이 보편적이지 젓가락으로 비비는 건 생각보다 적다. 특히 비빔밥을 메인으로 한 다큐나 지역 특색 음식을 소개할 때 나오는 비빔밥 자료를 보면 당연하게 숟가락으로 비비는 것이 정석처럼 나올 뿐 젓가락으로 비비는 장면은 찾아볼 수 없다. 음식을 전문으로 다룬 경우에는 숟가락이 등장했지만 음식이 전문이 아닌 곁다리 예능에서 비빔밥이 나온 경우에는 뜬금없는 젓가락 타당론이 등장하면서 젓가락 비율이 상대적으로 높았다. 알쓸신잡처럼 말이다.
사실 알쓸신잡의 저 장면 중 진주비빔밥을 설명하는 과정에서 육회비빔밥을 설명할 때 우시장이 옆에 있어서라는 것도 본질과는 거리가 있다. 이게 일제시대 이후 근대 진주비빔밥을 설명하는 것이라면 문제가 없지만 애초에 우시장은 살아 있는 소를 매매하는 시장이지 도축시장이 아니다. 혼동하기 쉽고 착각하기 쉬운데 우시장이 있다고 해서 (가축시장) 도축시장이 있다고 생각하면 곤란하다. 살아 있는 소를 끌고 가서 팔고 판 돈으로 막걸리에 김치를 먹고 돌아오는 사람, 그리고 맨 몸으로 가서 살아 있는 소를 사서 남은 돈으로 막걸리에 김치를 먹고 소를 끌고 오는 사람이 있을지언정 우시장이 있다고 해서 소고기가 많다는 건 큰 착각이다. 우시장과 도축시장은 엄연히 다르며 어시장처럼 활어와 선어가 공존하는 것과 달리 우시장은 죽은 소가 아닌 살아 있는 소가 거래되기 때문에 도축과 거리가 멀다. 육회, 육회비빔밥은 우시장이 발달해서가 아니라 그 지역 향토음식 중 마을 잔치 음식이나 제사 음식으로 소를 잡아 쓰는 음식이 많이 쓰였기 때문이지 시장 유무가 절대적이지 않다.
육회에 날계란이 올라가는 것도 마찬가지. 심지어 육회비빔밥 위에도 날계란이 올라가 비벼 먹는 것이 오리지널 전통 육회비빔밥처럼 되어 있는데 배탈 나기 쉬운 날고기에 날계란까지 올려 먹는다는 건 냉장 유통이 원활하지 않은 당시 시대상을 보면 상상도 하기 힘든 식문화로 차라리 육회비빔밥 위에 삶은 계란을 올려 주었다면 그나마 전통이라 우겨도 혹할 만한데 날계란이 꼭 육회에 들어가야 한다는 것도 일제시대 이후 날계란 식문화가 정착된 일본 식문화 영향을 받은 근대 문화지 전통 비빔밥과는 거리가 있다. 이것도 분명 예전에는 날계란 없이 참기름 잔뜩 묻혀 깨가루 묻힌 조미된 생고기가 전부였는데 어느 순간부터 모든 지역이 육회에 날계란을 쓰기 시작했다. 그게 더 그럴싸하고 더 맛있고 싱싱해 보이기 때문인데 사실 이것도 다 방송에서 이런 모습을 정석처럼 설명하고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노른자가 코팅되면서 빛깔이 좋아 보이는 건데 이렇게 달걀 하나 투척하고 더 그럴싸하게 만들면서 가격은 두 배로 올린 건 비밀.
잘 먹지 않던 전어를 가을의 히트작으로 만든 것도 대표적으로 미디어, 방송이 만든 창작물이라는 건 많이 아는 사실이고 정작 봄에는 먹을 만한 살이 없어 국으로 밖에 못 해먹기에 도다리를 국으로 만들어 먹는 것인데 이게 먹을 만하지 않아 국으로라도 만들어 먹음에도 불구하고 이상하게 보양식으로 포장해 봄이 되면 오히려 국으로 꼭 만들어 먹어야 하는 것처럼 만든 것도, 봄만 되면 봄도다리국을 찾게 만든 것도 방송과 미디어가 만든 창작물 중 하나라 할 수 있다.
막장 드라마가 만든 막장 규칙
본질적인 이야기로 들어가 보자. 분명 우리는 옛날부터 양푼비빔밥을 숟가락으로 비볐다. 참기름 둘둘 둘러 가볍게(?) 먹는 열무비빔밥도 분명 숟가락으로만 비볐다. 그럴 수 밖에 없는 것이 양푼비빔밥이나 질기고 거친 (반대로 그만큼 아삭한) 열무비빔밥을 젓가락으로 비비면 손목은 물론 손가락에 쥐 나서 마비 올 수 있다. 젓가락으로 비비는 걸 생각 못 한 게 아니라 안 한 거다. 숟가락으로 비비는 것도 힘들어 플라스틱 밥주걱은 기본이고 큰 나무 주걱을 쓰는 경우도 많았는데 그만큼 밥을 비빈다는 건 생각보다 힘들다. 젓가락을 쓰면 사이사이로 들어가 힘이 덜 들 것 같지만 반대다. 맷돌의 어처구니를 잡듯이 젓가락 두 개를 뭉쳐 잡고 비벼도 손아귀힘이 생각보다 많이 든다.
비빔밥도 장인이 있고 명인이 있는데 마케팅을 우선시하는 식당과 달리 고추장부터 차림새까지 중요하게 여기는 전통식문화 장인들의 비빔밥을 보면 절대로 젓가락을 쓰지 말라는 이야기를 종종 한다. 최근에 젓가락으로 비비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잘못된 사용법을 알고 질타하는 것이다. 젓가락으로 비비는 것이 더 맛 좋다고 알지만 정작 숟가락으로 비벼야 더 맛있고 전통적이며 (비빔밥을 만드는 방식 뿐 아니라 먹는 방식) 무엇보다 더 편하다는 걸 강조한다. 숟가락으로 빡빡 비벼서 밥알이 뭉개지니 젓가락을 쓴다는 건데 오히려 비빔밥은 숟가락으로 빡빡 비벼서 먹는 게 맞고 그래야 잘 "비벼"지기 때문에 비빔밥이 된다고 말한다.
아는 전주 출신 지인도 마찬가지. 40년 넘게 전주 살면서 전주 어르신들이 젓가락으로 비비는 걸 본 적이 없다고 한다. 다 숟가락으로 비비지 젓가락으로 비비진 않는다고 했다. 정작 전주 사람은 전주 비빔밥을 잘 먹지 않는다는 건 비밀 아닌 비밀이지만.. 진주를 뺀 나머지 지역은 대부분 젓가락으로 비빈다는 걸 생소해하는 경우가 많았다. 물론 젓가락으로 비빈다는 그 진주 지역도 미디어의 영향에 의해 만들어진 상술적인 이미지가 더 크고 그 영향에 의해 만들어진 걸 부정할 순 없어 진주만의 고유한 양식이거나 문화라고 할 순 없지만 전주비빔밥과 진주비빔밥은 엄연히 다른 부분이 있는 만큼 진주만의 방식이라 고집한다면 그걸 부정하거나 무시할 이유도 없다. 단지 이게 모든 비빔밥에 적용되는 것 마냥 보편적으로 일률적으로 적용해야 하고 그렇게 믿는 사람이 있다는 게 문제일 뿐이다.
이미 음식을 주제로 한 전문 리포트나 칼럼 등에서도 지적한 바 있지만 사실 비빔밥을 젓가락으로 비벼야 한다고 하는 건 특정인이 만든 자기네 비빔밥이 다르고 특별하다는 걸 의식한 보여주기 일 뿐 그 자체가 정말로 의미가 있다고 볼 순 없다. 누군가 처음 이걸 방송에 소개하고 그걸 본 사람들이 신박하다고 따라하면서 또 그 영향을 받은 연예인들이 다른 방송에 나와서 마치 엄청난 특급 비밀이 있는 것처럼 소개한 것이 오늘날까지 이어진 것이지만 비빔밥을 젓가락으로 비빈다는 건 애초에 전통과도 거리가 멀뿐더러 우리나라 고유 식문화 및 젓가락 사용 식사 예법에도 어긋나는 것이기 때문에 절대로 권장할 만한 행위라고 할 수 없다.
그럼 언제부터 누가 왜 이런 이상한 규칙을 만든 것일까? 비빔밥의 비빔에 있어 젓가락으로 비비는 행위가 등장한 건 2000년대 이후다. IMF 시기가 지난 이후부터 젓가락으로 비비는 사람들이 등장했지 이전에는 없었다. 문제는 이게 모 방송의 드라마에서 비빔밥을 젓가락으로 비벼야 맛있다고 나온 것에서 연유했다는 점인데 전통 식문화 예법을 무시한 드라마 작가의 사견에서 비롯된 것이라 비빔밥의 젓가락 사용 타당성이 그렇게 높다고 할 순 없다. 당시에는 드라마 시청률이 50~70% 이상 나오는 경우도 심심치 않았기 때문에 생각 외로 사회에 미치는 영향이 꽤 컸었는데 모래시계 드라마로 인해 518 민주화운동이 본격적으로 알려졌을 정도로 드라마의 위상이 상당했었다. 젊은이의 양지, 첫사랑, 겨울연가로 인해 아시아의 대스타로 발돋움한 배용준의 사례를 보더라도 드라마가 지금과 달리 엄청난 위력을 가진 여론을 움직이는 권력과 같던 시절이었다. (90년대는 드라마 왕국으로 불리던 시절로 M, 진실, 여명의 눈동자 등 국민적 관심을 받은 히트작이 꽤 많다)
대체로 전문가들이 이 현상에 대해 살펴 본 결과를 보면 IMF 시기에 등장했던 막장스러운 드라마 중 하나가 비빔밥을 젓가락으로 비벼야 한다고 대사를 친 것에 이 현상이 발생했다고 보고 있다. 해당 드라마는 이것 말고도 여럿 다른 음식에 대해 비평하며 이렇다 저렇다 미주알고주알 따지듯이 가르치려는 대사가 몇 있었는데 비빔밥 역시 그중 하나로 등장했다. 우리가 잘 아는 눈사람 모양의 조랭이떡(조롱이떡) 역시 북한 출신이 아니면 잘 모르던 걸 이 드라마를 통해 알려지면서 모두가 알았을 정도로 해당 드라마는 음식을 스토리의 도구로 삼아 이런저런 음식에 대한 이야기도 곁들여 갔는데 중요한 건 이 드라마의 시청률이 60%에 육박했다는 것. 곧 작가의 생각이 곧 대사가 되고 그 대사가 계시가 되면서 사람들이 이게 진짜라고 믿게 된 것이다.
물론 이는 오로지 작가 개인의 창작이나 견해에서 비롯된 건 아닐 것이다. 당시에는 여러 지역의 향토 문화가 전국구 시대로 접어들면서 교류가 왕성했던 초기 시절로 방송의 힘을 얻어 타 지역 문화를 소개하는 경우가 무척 많았는데 이때 진주 쪽에서 젓가락으로 밥을 비비는 식당이 소개되면서 작가가 이를 보고 반영했을 확률이 크다. 깊게 들어가지 않고 단순하게 젓가락으로 비빈다는 것에만 꽂혀 보면 밥알이 뭉게지지 않고 고슬고슬한 상태로 채소와 양념을 맛있게 먹을 수 있다는 논리는 젓가락으로 집을 다른 반찬이 없는 경우 문제가 되지 않기 때문에 당시로서는 획기적이면서 나름 주방 속 과학처럼 느껴졌을 거라는 이야기다.
작가 자신이 새롭게 안 지식을 드라마를 통해 다른 사람들에게 전파하고 싶다는 욕심이 앞선 건 이해하나 그것이 불러 올 파장까지는 고려하지 않은 듯 한데 우리가 비빔밥을 먹는다고 해서 다른 반찬을 놓지 않고 먹지도 않는 건 아니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작가의 고집은 우리 식사법에 맞지 않는 문제를 낳게 된다. 이미 다양한 채소와 반찬과 다름없는 부재료가 있기 때문에 반찬 없이 먹을 수 있고 국만 있으면 훌륭한 한 끼가 되지만 우리는 비빔밥을 먹어도 반찬이나 별도의 요리를 따로 먹는 경우도 많기 때문에 사실 이 방법은 젓가락을 다른 용도로 쓴 것을 넘어 가장 하지 말아야 할 밥알 문지르는데 썼기 때문에 문제 소지가 많다고 볼 수 있다. 밥뿐 아니라 젓가락에 고추장을 덕지덕지 묻어서 지저분해지는데 그걸로 반찬 집어먹게 되면 다른 사람 비유가 상할 수밖에 없다.
정리
정리해 보자. 최근 들어 인기를 얻은 중화비빔밥이 있다. 중국식 비빔밥인데 불향이 있어 기존 비빔밥에 식상한 사람들에게도 색다른 맛을 제공한다. 이때 중화비빔밥을 젓가락으로 비벼 먹는 사람은 없다. 열무비빔밥도, 양푼비빔밥도 똑같다. 그릇의 양이 작아도 다르지 않다. 그릇이 커서 주걱으로 비비고 그릇이 작아 젓가락으로 비빈다고 해도 젓가락 사용의 이유가 성립되진 않는다. 젓가락으로 비빈다는 것도 결국 젓가락 두 짝을 하나로 합쳐 비빈다는 뜻이니 짜장면처럼 젓가락을 나누어 비빔밥을 비비지 않는다. 실상 형태는 숟가락과 다르지 않는데 숟가락보다 면적이 작아 양념이 묻지 않고 문지르기 힘들어 비빌 수 없기에 결과적으로 비효율적이다.
젓가락이 식사의 핵심이 되는 면 식사는 그 행위 자체의 모든 것이 젓가락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비빌 때도 젓가락을 쓰는 게 맞다. 그러나 식사의 핵심이 되는 밥 식사는 그 행위 자체가 숟가락과 젓가락의 사용 범위 경계가 나뉘어지고 용도가 구분되기 때문에 젓가락을 써야 할 곳에 숟가락을 쓰면 안 되고 숟가락을 써야 할 곳에 젓가락을 쓰면 안 된다. 사실 면과 밥의 구분에 따른 젓가락 사용 범주만 잘 이해해도 이 비빔밥 문제는 논쟁을 할 이유가 없다.
비빔밥의 경우 오히려 착각하기도 하는데 밥알을 뭉게는 것도 비빔밥의 특징이다. 비빔밥은 오히려 밥알을 뭉개듯이 해야 맛있고 그렇게 해야 잘 비벼진다. 그게 비빔밥의 특성이다. 엄마들이 집에서 비빔밥을 만들어 줄 때 유독 숟가락으로 뭉개듯이 팍팍 비비는 것도 그렇게 해야 더 맛있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그걸 특성을 무시하고 고슬고슬한 밥을 먹겠다면 그냥 볶음밥을 먹는 게 낫다. 비빔밥은 떡지듯이 밥알이 뭉개져야 그 양념 맛이 더 강하게 배어 맛이 더 좋아지는데 그 식감 때문에 젓가락을 사용한다는 건 독상에서 개인 반찬을 따로 먹는 경우가 아니라면 결코 환영할 수 없는 식사법이다.
가장 큰 문제는 젓가락으로 비비니 외국인들 상당수도 젓가락으로 비빈다고 생각하고 설명을 듣는 비율이 늘어난다는 점이다. 이게 또 나중에 비빔밥을 먹는 모습을 보면 젓가락으로 비빔밥을 떠서 먹는데 가히 아뿔사. 보는 사람 입장에서도 참 난감할 수밖에 없다. 한국인 앞에 두고 쌈을 잘라먹는 것과 다르지 않은데 외국인 스스로도 내색은 하지 않지만 굉장히 불편해하고 잘 못 먹는 경우가 많다. 숟가락으로 비비고 숟가락으로 먹는다고 알려주면 정말 좋아하는데 비빔밥이 정말 맛있다고 뽑은 외국인들을 보면 다수가 숟가락파이고 젓가락으로 비비고 젓가락으로 떠먹은 경우 비빔밥에 대한 평가가 썩 좋지 않다. 먹을 땐 좋아하고 먹고 난 뒤에도 좋아했지만 나중에 다시 먹자고 하면 고민하는 경우가 다반사. 그만큼 젓가락 사용에 대한 잘못된 가르침이 많은 외국인들을 곤란스럽게 만들기도 한다.
고추장 비빔밥이 아닌 모든 비빔 행위를 보면 다 숟가락이다. 청국장, 조림국물, 양념장 등으로 다양하게 비벼 먹는 경우를 보면 다 숟가락만 쓴다. 비빔밥은 젓가락으로 비벼야 한다는 사람도 보면 비빔밥 말고 다른 청국장이나 보리밥 양념장을 먹을 땐 숟가락을 쓰는 경우가 많다. 실제로 젓가락이 더 맛있다가 아니라 비빔밥은 젓가락으로 비벼야 한다는 것에만 집착해 다르게 행동하는 것이다. 물론 이중에는 그럼에도 모든 비빔에 있어 젓가락을 쓰는 사람도 있겠지만
어르신들도 젓가락으로 비비는 경우가 많다는 건 근거가 되지 않는다. 처음 젓가락으로 비빈다고 소개된 식당이 방송에 노출된 지가 30년이고 드라마 작가가 만든 내용도 20년이 넘었다. 당시 40대 중장년들이 해당 드라마의 주 시청자였기 때문에 현재로 보면 다 환갑이 넘었고 어르신 본인들도 방송, 드라마를 보고 따라 하게 된 것이지 원래부터 그렇게 먹은 건 아니다. 오히려 더 나이 든 웃어른들께 밥상머리교육을 철저히 받았던 세대이기 때문에 젓가락으로 밥을 먹는 걸 무례하게 보는 경향이 있다. 단지 더 학식 있고 전문가처럼 보이는 사람들이 방송에 나와 이게 맞다고 하니 그런가 보다 하고 따라한 것이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건 아니지 하면 숟가락으로 열심히 비비는 어르신도 꽤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빔밥의 비빌 때 젓가락을 쓰는 게 맞다고 끝까지 고집한다면 밥알 뭉게지는 게 싫다는 뜻이니 앞으로 밥통, 밥솥에서 주걱 대신 젓가락을 쓰는 것도 그런 사람에게는 합리적인 발상이 될 수 있다고 본다. 전기밥솥에서 밥이 지어지면 밥이 완료되었습니다. 잘 저어주세요~라는 멘트가 나오는데 그때 주걱 대신 열심히 젓가락으로 저어준다면, 그리고 주변에 밥알 뭉개지지 않고 잘 섞는 방법으로 밥솥 주걱 대신 젓가락이라고 외친다면, 그 고집. 인정! 한식 체험장에서 수백 명 분량의 대형 비빔밥을 만들어 먹을 때 주걱 대신 모두가 젓가락을 들고 비여야 한다고 외친다면, 그 고집 인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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