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포포타무스
한 여자가 알 수 없는 밀실 구석에 쓰러져 있다. 민소매(나시)에 숏팬츠(돌핀), 거기에 다리에는 무릎 보호대 같은 것이 있고 머리에는 헤어 밴드처럼 보이는 것이 있다. 가벼운 옷차림으로 운동을 하다 잠시 쉬는 것처럼 보이지만 자세히 보면 여자의 무릎과 머리에 있는 흰색 밴드는 모두 붕대다, 그리고 그 붕대에는 피 같은 것들이 묻어 있다.
작은 창으로 겨우 빛줄기 하나 정도 들어오는 어두운 이 공간에 곧바로 한 남자가 등장한다. 그리고 여자에게 경고한다. 도망가지 못하게 인대를 끊어 놨으니 무리하게 일어 날 생각조차 하지 말고 당분간 걸을 수 없으니 도망갈 생각은 아예 꿈도 꾸지 말라는 것. 또 진통제와 피임약을 끼니와 함께 제공할 것이니 잊지 말고 챙겨 먹을 것을 강조한다.
스토리 전개가 시작부터 만만하지 않다. 납치, 감금한 것은 그렇다 해도 도망을 못 가게 인대를 끊어 버려 걷지 못하게 했다는 사실에 남자가 절대 평범한 놈은 아니라는 걸 직감할 수 밖에 없다. 납치와 감금에 있어 그 목적이 금전이라면 몸에 상처를 내지 않는 것이 보통이고 반대로 그 납치와 감금의 주 목적이 납치된 대상 그 자체의 소유라면 그냥 묶어두고 같이 두려는 것이 보통인데 이 남자는 일반적인 사례와 많이 다르다. 그냥 못 걷게, 못 도망가게 다리 인대를 잘랐다. 더군다나 생뚱맞게 피임약을 진통제와 함께 준다고 잘 챙겨 먹으라 시작부터 여자에게 말을 함으로서 관객이 먼저 다양한 스토리 전개를 상상하게 만들어 버린다.
여주인공의 옷차림 역시 과도한 연출, 혹은 눈요기를 위한 장치라기 보다는 남주의 여주 심리를 압박하기 위한 장치로 보이는데 저 상황에서 여자 주인공이 청바지에 후드티 같은 넉넉한 옷을 입고 있었다면 어땠을까, 반대로 저런 돌핀 팬츠와 민소매 티라고 하나 탑브라와 사각 팬티 수준의 옷을 입고 있는 건 천지 차이다. 여주 입장에서는 가뜩이나 불안하고 긴장된 상태인데 피부가 많이 노출되어 있다면 그 불안감은 더 증가 될 수 밖에 없고 남자의 시선에도 신경을 쓸 수 밖에 없다. (근데 여기에 피임약을 준다고 했으니 여주 입장에서는 그 멘트 하나 만으로도 멘붕이 될 수 밖에...)
자신을 이미 겁탈 했느냐고 묻는 여자에게 남자는 월경 때문에 피임약을 주는 것이니 안심하라고 하는 장면에서 2차 충격, "너는 다 계획이 있구나" 하는 기생충 대사가 바로 떠 오를 만큼 납치범은 다른 납치범과 다르게 일반적이지 않았다. 걷지도 일어 서지도 못하는 그녀이기에 생리 주기를 감안해 피임약을 먹게 했던 것, (그것까지 고려했다니..) 그러니까 피임약은 피임을 위해서가 아니라 생리를 일시적으로 못하게 하기 위한 임시 조치였던 셈이다. 그 이야기를 들은 여자는 진통제와 피임약을 먹는다.
남자는 매일 그녀에게 반복된 일상을 제공한다. 먹고 자고 먹고 자고..그렇게 가둔 상태에서 일어서지 말고 걷지 말고 도망가지 말라는 말을 녹음해 잠자는 내내 반복해 들려준다. 그리고는 자신이 여기에 어떻게 왔고 왜 왔는지 모르는 여자에게 남자는 여자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매일 들려준다. 이 역시 일반적인 납치범의 상황과 많이 다르다.
"너 자신을 알라"도 아니고 남자가 남자 자신을 소개하는 게 아니라 여자 본인에 대해 알려주고 있다. 사이코패스 같은 이 납치 감금 상황에서 작은 반전은 바로 여자의 기억 상태, 그러니까 여자는 기억상실증 비슷한 상황에서 과거 자신의 존재를 잊고 있는 상태가 된다. 남자는 여자의 기억을 되찾아 주려고 노력하고 있던 것
반전의 반전 그리고 또 반전
얼마 뒤 무심코 머리를 긁던 여자는 머리에 있는 붕대 안에 상처가 없다는 사실을 눈치 챈다. 손으로 만져보고 거울로 비춰 봐도 아무 상처가 없다. 머리를 심하게 다쳐서 붕대를 감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던 여자는 황당해 한다. 과거 자신에 대한 기억이 전혀 없는 것도 머리를 다쳤기 때문이라 짐작할 수 밖에 없었는데 거기에 붕대가 감겨 있으니 당연히 다쳤구나 짐작만 했지 실제 다쳤는지 알지는 못했던 것.
이내 그 의심은 역시 붕대로 감겨 있는 무릎, 다리에도 쏠리게 된다. 무릎 인대를 끊어 못 걷게 했다는 납치범의 말도 어쩌면 거짓일 수 있겠다 싶은 것, 그러고 보니 남자가 말로만 그런 일이 있었다고 했지 여자는 그 말만 믿고 그 동안 한 번도 일어서 본 적이 없다는 사실에 과감하게 일어서기에 도전한다. 결과적으로 여자는 다리에 이상이 없다는 걸 확인한다.
이후 남자가 없을 때는 일어나 체력을 위해 운동을 하고 남자가 있으면 여전히 일어서지 못하는 행동을 하며 그를 안심 시키는 그녀, 그렇게 시간이 흘러 어느 시점에 남자는 그녀에게 일어났던 사실에 대해 고백한다. 납치범의 정체는 바로 남자친구였던 것. 그리고 기억을 잊은 여자친구를 위해 상황극을 하고 있었다고..
남자친구의 도움으로 잊어버린 기억과 과거 지난 시간에 대해 들은 여주인공은 이후 빠르게 둘 사이가 회복되면서 예전과 같은 관계로 발전하게 된다. 그러나 여기서 한 번 더 상황은 반전이 되는데 (꼬이는데) 같이 잠자리를 한 날 잠든 남자친구를 여전히 납치범으로 착각해 흉기로 해코지를 하게 된다. 피투성이가 된 상태에서 밀실을 도망친 여자 주인공, 드디어 밖으로 탈출해 극적으로 도망가려고 하는 순간 정신이 숏다운(멘붕) 되면서 정신을 잃게 되고 이야기는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게 된다.
알고 보니 둘은 연인이었고 불미스러운 일로 기억을 잃은 그녀와 함께 남자는 다시 회복된 둘 사이의 만남을 거의 완성되었다고 생각할 즈음, 여자는 기억이 왜곡되고 조작되었다고 착각하게 돼 스토리가 꼬이고 (소소한 반전) 이후 탈출을 감행하지만 다시 붙잡히는 상황이 만들어지는데 연출만 보면 남자는 죽었을 것이라 예상했지만 끝에는 여자는 다시 누워 있고 남자는 상황극을 또 하는 것으로 나오면서 소소한 재반전을 그리며 끝난다.
열린 결말 VS 닫힌 결말
대부분 이 영화의 결말에 있어 해석되는 경우는 여자친구를 위해 남자친구가 상황극을 했다는 것으로 종결되는 것이 보통이다. 후반 두 사람이 과거에 있었던 걸 회상하는 장면이 나오면서 여자에게 어떤 상황과 일이 벌어졌는지 영화가 충분히 보여줬기 때문, 연인으로 지내면서 행복했던 과거 장면과 데이트 장면들은 물론 여자에게 벌어졌던 불행한 사건과 그로 인해 남자친구가 벌이게 된 2차 사건, 차를 타고 배를 타고 이곳 멀리 오게 된 과정을 모두 보여주었기 때문에 의심의 여지가 없게 된다.
결국 행복한 결말로 끝날 것 같은 이 영화는 끝내 여자가 남자친구를 믿지 못한다는 것으로 나오면서 남자친구의 희생은 계속 되고 여자친구의 기억 찾기는 반복되어진다 이야기로 결말이 나올 수 밖에 없는데 초반 구성만 보면 남자는 납치범이 될 만한 요소가 충만하지만 후반에서는 왜 그렇게 하고 이래야 했는지에 대한 소명이 되기 때문에 납치범으로 보였던 것이 페이크, 진실은 바로 후반에 모두 담겨 있다고 믿을 수 밖에 없다. 스릴러 인줄 알았으나 알고 보니 불행에 맞서 싸우는 남녀의 러브 영화였던 것
하지만!
영화 초반 구성이 거짓(페이크)이고 후반이 진실이라고 착각하기 쉽지만 반대로 영화 초반이 진실이고 후반이 거짓이라고 볼 소지가 더 큰 것이 이 영화의 묘미다. 그러니까 이 영화는 스릴러가 맞다는 것, 상식적으로 그런 대중적인 결말이라면 다소 헷갈려 열린 결말처럼 보이기는 하나 흥미 부분은 완전 소멸되어지는 것이 보통, 뭐야 알고 보니 남친이 여친 구하려고 노력한거네 하고 끝난다는 것인데 이게 진짜 재미가 있으려면 그 상황을 다시 한 번 더 뒤집어야 하는 것이 극 재미를 위한 필요 조건이 아닌가 싶다.
무엇보다 그럴 수 밖에 없고 그런 장치들이 이미 충분히 노출되어 있고 그럴 수 있다 단정을 넘는 수준의 힌트들이 영화 곳곳에 숨어 있는데 사실 이야기를 전체적으로 종합해 보면 이 영화는 사이코패스 납치범이 벌인 희대의 납치극이라고 보는 것이 더 현실성 있다.
남자친구 모습 VS 납치범 모습
이 영화의 어떤 모습이 진짜인지 보려면 상식 수준에서 납치범과 남자친구 각자의 입장이 되어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 만약 이 상황에서 자신이 남자친구 입장이 되었다면 이런 방법을 택하거나 행하려고 했을까, 무엇보다 중간 중간 행해지는 것들을 보면 일반적으로 "내 머리 속에 지우개"의 정우성과 손혜진처럼 그려지는 것이 보통일 것이다. 아님 "메멘토"처럼 기록을 활용해 기억을 다시 찾는 노력이 필수적일 수 밖에 없는데 좋은 추억만 골라 되살리는 방법이라는 건 따로 없기 때문에 불행과 행복한 과거를 모두 일단 찾기 위해서는 저런 상황극으로 뻘짓을 하기 보다는 둘 사이의 추억이 담긴 물건과 앨범(사진)으로 접근하는 것이 보통일 것이다.
애초에 1만 명, 아니 1억 명의 사람들 중 이런 극단적인 상황 연출로 연인의 기억을 되찾으려고 하는 사람이 과연 존재할까. 오히려 이런 상황 연출로 기억을 되찾으려 한다면 그 남자친구가 이미 사이코패스일 확률이 높다. 일부 기억을 찾는 과정을 보면 최면을 할 때와 비슷한 방법이 있는데 이 때 깊은 내면으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긍정적인 기억을 되살려 함께 들어가는 것이 보통이지 거부감이 들거나 무서워 하는 공포스러운 분위기로 최면 상태로 들어가는 건 없다. 그래서 최면을 할 때 보면 최면술사가 대부분 어릴 때 행복했던 한 순간을 먼저 떠 올리게 하거나, 넓은 들판과 따뜻한 대지에서 편안하게 있는 상태라고 세뇌하는 이유이기도 한데 좋든 싫든 기억을 되찾고 행복한 원래 사이를 구축하려면 결과적으로 행복한 상태에서 기억 찾기를 시작해야지 이런 극단적인 공포 상태에서는 오히려 역효과가 날 수 밖에 없다. 과거 기억을 찾기 위해 최면 할 때 편안하고 안정된 심리를 만들려고 노력하기 마련인데 푹신하고 아늑한 침대 형태 의자에서 괜히 하는 게 아니다.
이 영화가 남녀 애정의 슬픈 결말이라고 단정했다면 영화가 전부 진짜만 보여주었다고 관객조차 결국 착각했다는 말이 된다. 정확히 말해 결론을 그렇게 생각하고 믿는 사람은 영화 속 여주인공과 똑같은 상황이 되었다는 뜻이다. 여자는 분명 (보는 우리도 분명) 남자의 말을 시간이 지남에 따라 믿게 되었다. 하지만 그 과정을 돌이켜 보면 뭔가 맞지 않는 구석이 존재하는데 인대를 끊었다고 했지만 결국 속임수였고 머리를 다친 것으로 포장했지만 결국 머리에는 이상이 없다는 걸 여주인공은 알고 있었다. 그러니까 남자가 자신을 속이고 있다는 건 분명히 인지하고 있었다는 것이고 우리도 그건 분명 인지하고 있었다.
남자는 여자의 소지품을 (가방) 건들지 않고 그대로 보관했다면서 그녀에게 주는데 결국 이는 자신의 소지품으로 남자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고 믿게 만들었다. 면허증 등으로 자신의 신분을 확인한 여자는 들려주는 남자의 말이 진실이라고 착각하게 된 것이다. 하지만 그건 정확히 말해 그녀의 신분에 관한 것일 뿐, 둘 사이를 증명하는 건 하나도 없다. 사진도, 서로가 기념할 만한 기념품도, 선물을 주고 받은 애장품조차 정작 확인될 만한 건 없다.
인대를 끊었다는 말도, 일어서면 안된다는 말도, 걸으면 안된다는 말도 다 거짓이다. 여자는 결과적으로 머리도 안 다쳤고 결국 매일 주는 진통제도 먹을 필요가 없었다. 거기에 우연히 책에서 발견한 문장 "그 남자를 믿지 마라"는 사실상 강력한 무기다. 입만 열면 거짓말만 하는 그 쉐리를 절대 믿지 말라는 누군가의 메세지. 그걸 간과해서 안되고 그 장면을 무시하면 안된다. 실제로는 나쁜 놈이 아닌 착한 남자친구였다는 반전을 위한 요소가 아니라 (납치범처럼 보이게) 실제로 진실이 담긴 메세지일 수도 있는 것이다.
책 속 문구가 여자에게 말한다, 어른이 말할 때는 새겨 듣자.
결국 붕대도 거짓이고 상해를 입힌 것도 거짓이고 약도 거짓이라면 그가 말하는 모든 것이 다 거짓이라는 의심이 우선시 될 수 밖에 없고 그가 하는 연애 스토리 역시 거짓으로 꾸며낸 이야기라고 충분히 의심할 수 있는 상황. 진짜라고 하는 건 증명된 바가 하나 없고 오히려 실체라고 하는 건 정작 자세히 보면 다 그 남자 "입"에서 만 나온 이야기일 뿐, 그 기억에 관한 이야기조차 남자의 기억 속에만 존재하는 이야기다. 결국 레스토랑 회상도 데이트 하는 장면도 다 그가 꾸민 거짓일 수 있는 것이다. 애초에 그는 여자가 자신을 사랑하게 만들겠다는 목적을 분명 밝힌 만큼 이 거짓이 왜 필요한지, 그게 왜 거짓일 수도 있는지에 대한 당위성은 충분한 셈
영화 초반과 중반은 여자의 상황을 제3자 입장에서 봤다면 후반과 결말은 사실상 남자의 "입"을 통해 봤을 뿐이다. 그렇기 때문에 초중반의 연출은 오히려 진실이 될 수 있는 것이고 후반은 거짓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선행성 기억상실증, 뇌 속의 해마 부위가 손상을 입으면 생기는 증상이다. 단기 기억을 장기 기억으로 전환하는 임무를 수행하는 해마는 그래서 손상이 되면 기억에 문제가 생긴다. 혹자는 히포포타무스 영화 제목과 관련하여 해마와 (hippocampus) 연계해 선행성 기억상실증에 걸린 여자친구 이야기라고 생각하기도 하지만 사실상 이 영화는 기억상실증이 아닌 가스라이팅에(gaslighting) 길들여진 여자친구(역할극) 이야기라고 하는 것이 더 맞을지도 모른다. 히포캄푸스처럼 보이나 실제로는 히포포타무스라는 것. 비슷한 단어이기 때문에 역설적으로 꼬아서 제목으로 하마로 정한 것이 아닌가 싶은 것이다. (신기하게도 우리 말 역시 해마와 하마는 비슷한 철자 구성이다) 그게 맞다면 결국 관객도 작가와 감독에게 가스라이팅(길들이기) 당한 셈이 된다.
실제 영화 요소를 보면 이건 전형적인 가스라이팅이다. 무에서 유를 창조하듯 변태 아재가 소녀를 노예로 길들이기 하듯 영화도 전형적인 가스라이팅 전개로 이어져 나갔다. 가스라이팅 정의 자체가 특정 상황을 조작해 스스로의 정체성을 의심하게 하고 타인에게 의존토록 만들어 길들여지는 쪽이 길들이는 쪽에게 지배 당하는 것이 일반적인데 영화 남녀 모습이 딱 그 꼴이다. 결말만 놓고 보더라도, 상황이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 도돌이표가 되는 연출도 결국 이 영화는 가스라이팅을 소재로 한 영화가 될 수 밖에 없다. 길들이기가 실패하면 원점에서 다시 시작하는 것도 똑같다.
누군가에게는 이게 기억을 찾는, 기억을 되찾는 과정으로 보일 수 있지만 누군가의 시선에서는 이게 기억을 찾는 과정을 극단적인 소재로 활용해 상황극을 하는 길들이기 과정으로 보일 수 있다. 가스라이팅 자체가 길들여지는 상대의 정신을 혼탁하게 만들고 피폐하게 만들면서 스스로의 의지력을 잃게 만드는 것이기 때문에 혼자서 아무 것도 못 하고 할 줄 아는 게 없는 것처럼 만들 듯 영화도 못 서고 못 걷게 한 장치부터 이미 가스라이팅의 시작점이라는거다.
영화는 마치 여자가 큰 기억 장애가 있어 과거 기억을 못 찾거나 못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이것도 어떤 면에서는 페이크다. 우리는 일상에서도 술떡이 되면 "필름이 끊기는 현상"에 대해 잘 알고 있다. 어제 어떻게 집에 왔고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아예 기억 못한다. 최근 개봉했던 이시언 주연의 "아내를 죽였다" 사례처럼 알콜중독이 아니더라도 툭하면 기억을 못하는 경우는 생각보다 흔하다. 가끔 연예 뉴스에서 종종 접하는 수면 마취제 사건 역시 비슷, 물론 수면 중이라는 차이는 있지만 약물에 의해 정신을 잃고 기억을 아예 못하는 경우가 분명 존재한다.
개인적으로 회사 출장 중 타사 소속 직원의 비슷한 상황을 직접 목격한 적이 있는데 수면제(성분과 용량에 따라 다르고 처방전이 있어야 하는 약 등) 먹고 전날 저녁 기억을 아예 못 하는 사람을 본 적이 있다. 특이한 건 자기 위해 먹은 수면제가 아닌 일상 복용 약품 중에 수면제가 포함된 약이 있어 수면제 효과를 내는 경우였는데 이게 몽유병처럼 사람이 말하고 걷고 심지어 음식을 먹고 신용카드를 써도 다음날 전혀 기억을 못한다. 출장이라 같이 숙소를 1박해서 썼는데 다음날 이 사람 상태를 알게 되어 정말 엄청 놀랐다. 회식 중 평소에 먹는 약이 있다는 말을 들었고 먹는 모습을 보긴 했지만 이후 약을 먹고 나서도 아무 증상이 없고 일상 행동을 해서 눈치를 못 챘는데 약간 말이 어눌해지고 몸을 가누지 못해 술에 취해 그렇구나 생각했지만 실제로는 수면제에 취해 실제 맨 정신을 잃었던 것이다. 술 먹고 필름 끊겨도 집 잘 찾아오고 대화 하는 것처럼 똑같다.
결론적으로 약물에 의해서도 충분히 기억이 지워지거나 기억을 정지 시킬 수 있는 여지가 충분하다는 것이다. 약에 취해 아예 쩔어 살면 약 효과가 지속되는 순간 내내 기억을 못하고 계속 해마가 손상 되었을 때와 비슷한 행동을 한다는 것인데 이 영화에서 내가 잊지 않고 기억한 장면에도 사실 이와 매우 큰 연관된 장면이 있다. 눈치챈 사람도 있겠지만 여자는 진통제와 피임약이라는 두 약을 주기적으로 끼니와 함께 제공 받고 있었다, 영화가 진행되는 내내, 그녀가 밥을 먹는 경우라면 예외 없이 약이 들어갔다는 것인데 초반에는 약에 대해 언급하고 보여주지만 나중에는 이게 잘 보이지 않아 간과하기 쉬웠던 부분이다.
실제 여자는 인대를 다치지 않았고 머리를 다치지 않아 진통제가 필요 없었다는 결론이 나오기 때문에 그 약이 진통제와 피임약이라고 하는 것 역시 거짓이라 볼 수 있는 여지는 존재한다. 무엇보다 여자는 책의 메세지가 누구의 메세지인지 나중에 알았던 것 같다. 여자는 남자가 납치범이 아닌 남자친구였다는 사실에 점점 호응하며 그를 받아 들이지만 그 이전에 서로 마주 보고 밥을 먹을 때 "다른 사람들"에 대해 언급을 한 적이 있다. 책에 남긴 메세지 때문이다. 납치범이라 굳게 믿고 있을 뿐 이 상황에 처한 사람이 자신이 처음이 아니고 첫 번째 대상자가 아니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하지만 마지막에 가서 여자는 끝내 그 책의 메세지를 남긴 것이........바로 자신, 그나마 온전히 기억을 찾거나 어느 정도 이번 회차(?)처럼 상황에서 잘 벗어날 수 있을 상황에서 과거 자신이 남긴 메세지라는 걸 알았던 것이 아닌가 싶다. 그래서 마지막에 그렇게 남자친구(?)를 후려쳤을지도 모른다. 결국 영화 끝을 보면 다시 상황극이 벌어지는데 다시 이 여정을 시작하는 여자는 또 그 책을 보게 될 것이고 또 혼란스러운 정신 상태에서 남친과 납치범 사이를 오가는 줄타기를 해야 할 지도 모른다.
사람들이, 관객들이 정작 기억하지 못하는 장면, 그녀가 머리 붕대에 만지며 상처가 없다는 걸 거울로 확인한 순간, 자신이 다치지 않았다는 걸 아는 장면이 있다. 이 때 남자는 몰래 지켜 보고 있었고 여자가 눈치챘다는 걸 알고 있었다. 이 때 남자는 인기척을 내며 방으로 들어오고 여자는 다리를 질질 끌며 얼른 벽으로 가서 아무 일이 없던 것처럼 행동한다. 그게 바로 위 장면이다. 이 때 여자는 약간 긴장한 상태에서 남자를 보고...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행동하지만 화면은 다음 장면으로 포커스를 맞추며 보여준다. 이게 팩트
남자가 주머니에서 무언가를 꺼내 여자 앞에서 "흔든다"...말 없이 손짓으로만 병을 흔들며 마치 "약 먹을 시간이야" 하는 것처럼 보이는데 여자는 무척 긴장한 상태다. 이 장면을 기억했다면 영화에서 벌어지는 모든 이야기는 믿으면 안되는 것이 맞다. 여자가 우연히 발견한 책의 메시지처럼..
10점 만점에 8점, 수우미양가 중 우, 흥미로운 소재와 생각할 거리를 제공한다는 점, 결말이 약간 허무하다고 여기는 사람도 있지만 보는 관점에 따라서는 한탄을 짓게 만드는 경우가 될 수 있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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