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봇 영화의 숨겨진 비밀 - 아이 엠 마더 / 나의 마더 (I Am Mother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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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예술/영화리뷰

로봇 영화의 숨겨진 비밀 - 아이 엠 마더 / 나의 마더 (I Am Mother 2019)

by 깨알석사 2020. 1.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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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니 애미다, 아이 엠 마더

지난 주 TV 영화 소개 프로그램에서 재미있어 보이는 영화 한 편을 소개했다. (영화는 극장 개봉작이 아닌 넷플릭스 전용 작품) 인류가 멸망하고 난 뒤 로봇에 의해 새로 태어난 여자 아이가 로봇 엄마와 함께 산다는 소재의 영화였다. 인류가 멸망할 것에 대비해 인류 재창조 역할을 부여 맡은 이 로봇은 인류가 멸망하게 되자 시스템을 가동, 오염된 바깥 세상과 철저히 분리된 독립적인 기지 안에서 배아 줄기세포를 활용하여 인류 재탄생 작업에 들어가게 된다. 

기지 안에는 많은 수량의 배아가 보존되어 있는 상태, 로봇은 그 중에 하나의 배아를 골라 기지 안의 인큐베이터에서 배아를 인공적으로 착상시켜 인간 아기를 태어나게 만든다. 사실상 멸종된 인간이 다시 부활하는 순간이다. 그리고는 그 아기가 올바른 어른으로 성장하기 위해 실제 인간 엄마처럼 많은 노력과 정성을 기울이게 된다. 그러던 어느 날 모든 인간이 사라진 이 순간, 정체를 알 수 없는 여자가 안전 가옥 바깥에서 찾아오면서 로봇 엄마와 인간 아이의 일상 생활은 혼란을 겪는다. 멸종 되었다는 인간이 존재한다는 사실도 물론 충격적이지만 오염된 외부에서도 사람이 살 수 있다는 사실은 아이에게 호기심이 아닌 의구심으로 작동 되면서 평화롭던 안전 가옥 생활은 큰 변화를 맞는다.

영화는 로봇에 의해 아기가 인공적으로 태어나고 길러지는 그 순간을 보는 것 만으로도 나름의 재미를 추구한다. 보통 인간과 함께 생활하면서 인간을 돕는 로봇의 경우에는 인간을 보조하는 하인 역할 내지 친구 역할을 하는 것이 일반적이나 이 영화는 그런 하인 역할을 뛰어 넘는 슈퍼 마더(엄마)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해내며 어린 인간 생명체에 대한 보호자로서의 역할을 인간 못지 않게 잘 해내기 때문이다. 이 정도면 봇이 직접 임신해서 낳지만 않았을 뿐 거의 인간 엄마와 다름이 없다.

무엇보다 이미 존재하는 인간 아기를 상대로 양육한다는 것이 아니라 배아를 대상으로 직접 인공 자궁 안에서 인간 아기를 만들어 키운다는 점은 굉장히 놀라운 발상이다. 자궁 역할을 하는 인큐베이터에서 24시간 안에 아기가 배아에서 영아로 바뀐다는 것도 놀랍지만 마더 봇에 의해 딸로 키워지는 인간 아기가 인류가 멸망 되어가는 과정 속에서 유일하게 생존한 생존자의 개념으로 영화를 만든 것이 아니라서 더욱 신선했고 인류가 이미 완전 멸망한 뒤에 기계 로봇에 의해 인간이 다시 재창조 된다는 점에서 누구라도 혹할 수 밖에 없는 충격적인 소재가 된다.   

단순하지만 복잡한 영화

영화는 중반을 넘어가면서 전혀 다른 모습으로 진화 한다. 로봇 엄마와 인간 딸의 평화로운 일상 모습은 갑자기 찾아 온 외부 인물 때문에 큰 변화를 겪게 되고 그것을 풀어가는 과정에서 숨겨진 진실, 그리고 거짓이 드러나게 되면서 폭풍전야가 된다. 

외부인의 갑작스러운 방문은 딸을 혼란스럽게 만들고 엄마 로봇과 외부인 중 누군가는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사실에 어느 편에 서야 하는지 갈피를 잡지 못한다. 진실과 거짓을 구분하기 어려운 상황 속에서 딸은 진실을 알고자 선택을 해야 했다. 기계이지만 자신을 키운 마더(봇)를 선택해야 할지, 전혀 모르는 사람이지만 같은 인간인 외부인을 선택해야 할지, 딸은 선택의 기로에 놓인다.

영화는 소소한 반전으로 이야기를 쉬지 않고 몰아 부친다. 초반에는 로봇 엄마와 인간 딸이 일상을 보내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미래 공상 한 편의 드라마를 보여준다. 그 때까지만 해도 마더에 대한 별 다른 의심을 전혀 갖지 않는다. 하지만 중반이 되면 영화는 드라마가 아닌 추리물로 바뀌면서 누구라도 마더를 의심하게 만든다. 멸망했다는 인간이 실제로는 아직 존재하며 안전 기지 밖에서의 활동도 가능하다는 사실에 인간 딸도, 이걸 보는 관객도 심한 배신감을 갖게 된다. 인류 재건 프로그램이라는 것에 대해서도 의구심을 갖게 되는 건 당연할 뿐더러 바깥 세상과 철저하게 차단시키고 인간 딸을 키우는 마더 봇에 대한 신뢰마저 그대로 무너져 내린다. 그런 영화는 후반에 가서는 둘 중 하나를 믿어야 하는 경우가 아닌 둘 다 믿으면 안되는 사실상 스릴러로 다시 바뀐다.

그 과정에서 영화는 많은 생각 거리와 이야기 거리를 같이 생산한다. 닭이 먼저냐 알이 먼저냐의 문제처럼 어느 순간 복잡한 철학적 관점으로 시선을 바라보게 만든다. 그리고는 인간의 재창조 과정에서 윤리 의식을 끄집어 내어 인간 사고 방식의 재창조도 도전하게 된다. 무엇이 옳고 무엇이 맞는지는 각자의 선택이겠지만 선과 악의 기준 역시 새롭게 쓰여져야 할 수도 있는 것이 이 영화의 결말이다. 

윤리와 양심, 모성애와 본능, 그리고 철학

영화는 많은 메세지를 담고 있다. 그래서 후반에 가서는 더 어렵게 다가올 수 있고 복잡하게 느껴질 수 있다. 단편만 보면 간단한 이야기를 담고 있지만 크게 보면 뫼비우스 띠와 다름 없고 철학적으로 접근할 수 밖에 없는 요소를 많이 담고 있다. 

초반의 흐름만 갖고 따진다면 생명공학에 대한 경이로움과 과학 발달의 잇점이 고스란히 녹아 있다. 인간의 관점에서 보면 더욱 그렇다. 하지만 중반이 되면 우리가 우려했던 것들이 벌어졌다는 걸 알게 된다. 생명공학의 발달과 과학 기술의 발달은 결국 인류에게 치명적인 족쇄가 되었고 그것으로 인해 파멸로 이어졌다는 걸 알 수 있다. 하지만 인간은 그 기술과 과학의 발달로 "신"이 될 수 있음을 증명했고 새로운 인류를 창조하는 결과로 다시 이어졌다. 단일 객체로 보면 인공지능에 의해 인류가 멸망 되었지만 인류 전체로 보면 더 우수하고 더 좋은 환경에서 새로운 인류가 재탄생 되었기에 더 좋은 상태로 바뀌었다고 주장할 수도 있는 것이다. 

영화의 큰 줄기는 보여지는 철학적 관점만 갖고 따졌을 때 윤리와 비윤리의 대결이 일단 가장 크다고 할 수 있다. 인간 딸의 입장에서 보면 그는 윤리적인 인간이 될 확률이 크지만 마더와 연결 짓게 되면 꼭 그렇다고 단정하기 힘들다. 마더는 딸이 윤리 의식이 확고히 자리 잡은 착하고 좋은 인간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철저한 윤리 의식에 기반한 교육을 시행하지만 정작 그 마더는 모든 인간을 멸종 시킨 장본인으로 마더 봇이 추구한 윤리 의식 자체를 의심하지 않을 수가 없다.

또 영화 속 배경이 마더가 말하는 것처럼 인간이 모두 멸종되었다는 걸 전제로 하면 마더는 죄 없는 사람은 물론 아기, 어린 아이, 약자, 악행과 무관한 선한 사람 모두 구분 없이 제거했다는 말이 된다. 분명 좋은 사람도 많고 품성이 좋은 사람도 많지만 인류가 벌인 특정 분열과 싸움 때문에 인간을 모두 제거하기로 결정했다면 마더는 그 윤리 의식의 뿌리는 결국 인간의 본능과 본성에 문제가 있다고 판단했다는 결론이 나온다. 이는 좋은 사람과 나쁜 사람을 나누는 기준은 순간의 선택일 뿐 인간의 본능적 탐욕과 본성이 결국 언제든지 단초가 되고 문제가 될 수 밖에 없어 지금 세계에서의 좋은 인간과 나쁜 인간의 구분은 제거하는데 별 다른 차이나 의미가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결국 인간의 본성과 본능은 태초부터 잘못 설계되고 가르쳐서 전달되었기 때문에 리셋 후 다시 설계되어 가르침을 받아야만 한다고 결론 내었다는 것이다. 이는 반대로 인간이 갖는 본능과 본성을 제어하는 "양심"이라는 것이 따로 존재하더라도 그 기능의 역할이 제대로 되고 있지 않다고 확정했음을 암시한다고 할 수 있다. (굵게 표시한 문장은 하단에 별도로 추가되는 설명에서 그 이유를 설명하겠다)

인공지능 입장에서는 아무리 인간처럼 생각할 수 있는 능력을 가졌다고 해도 탐욕과 본능에 대한 걸 본성과 엮어 1차원적으로 가치 평가를 내렸을 수는 있지만 (인간 제거 결정) 그걸 2차원적으로 생각하는 능력이 없다면 결국 마더의 결정은 옳은 결정이 되거나 정당한 결과가 성립하기 어렵다. 단조롭게 보면 딸에게 학습 시키려 하고 전달하려고 하는 인공지능 마더의 생각과 가치관이 틀린 것이 아닌 것처럼 보이나 인간 내면과 양심을 정확히 이해하지 못했다면 결국 마더의 가치관과 생각은 틀렸을 수 밖에 없는 것이 영화 속 마더의 상황이 된다. 

이는 역설적으로 마더가 수업 중에 가르친 공리주의 장면과 배치가 되는데 환자 한 명을 희생하면 여럿을 살릴 수 있을 때 딸은 어떤 선택을 하겠냐는 테스트를 하는 장면이 나온다. 이 때 딸이 한 사람의 희생으로 살린 다른 환자 중에 살인자나 범죄지가 있으면 어떻게 하느냐 되묻게 되고 마더는 "모든 인간에게는 고유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느냐? 모든 사람에게는 행복추구권과 생존권이 있지 않느냐" 반문을 하게 된다. 이에 다시 딸은 "칸트를 배울 때는 그랬죠"하며 마무리가 되는데 이 장면만 놓고 보면 마더라는 인공지능은 인간들의 고차원적인 철학까지 깊게 통찰하고 있는 높은 수준의 인공지능이라 유추가 가능하지만 대화 자체가 다수의 행복 보다는 선택된 소수의 선택이 옳거나 맞을 수도 있다는 결론이 나오는 장면이기 때문에 결국 이 장면 하나만 보더라도 마더가 저지른 만행의 자기 합리화를 위한 맞춤형 교육이 되고 있다고 단정 지을 수 밖에 없다.

즉, 딸의 대답이 만족스럽다면 마더 자신의 행동도 (선 인간 제거, 후 맞춤형 인간 재창조) 합리적이었다고 규정 내릴 수 밖에 없는데 당연히 그게 정당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영화의 배경이 만들어졌으므로 마더의 상황으로 가지고 와서 상황을 조립해 다시 보면 마더는 다수의 선량한 사람들을 위해 소수의 악인을 처단하는 것이 꼭 옳은 것이라고 할 수 없다는 결론을 내려 인류를 멸망시켰다는 결론이 도출되게 된다. 왜냐면 그 소수의 악인을 제거해도 다수의 사람에서 계속적인 악인이 생성되어 이 자리를 메꾸기 때문이고 그것의 바탕에는 인간의 탐욕과 본능이 크게 자리잡고 있다고 보았기 때문인 것이다. 그것이 인간은 나중에라도 양심과 윤리 의식, 도덕이 충분히 제어할 수 있다고 믿지만 인공지능은 그것이 가능했다면 애초에 이런 분쟁이 있을 수 없다고 판단하였기에 도덕과 양심은 적절한 제어 도구가 되지 못한다고 판단했을 확률이 높다.

오히려 지능이 높은 고차원적인 인공지능이라면 인간과 달리 무조건적인 공리주의에 입각해 다수의 행복을 추구하는 것이 더 옳고 바른 선택이라고 생각했어야 한다. 당연히 다수의 민간인이 희생되는 인류 멸망은 인공지능에 의해 일어날 수 없다. 그러나 마더의 경우는 이 문제를 오직 다수와 소수(다수결과 소수결)의 문제로 1차 접근 후 그 소수가 항상 모든 문제를 일으키는 근본 원인이라는 걸로 규정하게 되면서 그 소수를 재결합 시키면 모든 것이 해결된다는 걸로 결론을 내렸다고 밖에 설명이 안된다. (저 장면을 통해 해석해 보면 그렇다) 

다시 말해 마더가 딸에게 가르치려고 했던 교육 철학의 핵심은 모든 사람이 갖고 있는 본성과 본능에 문제가 있다고 귀결 되었기 때문에 결국 그것을 어떻게 제어해야 하는가라는 문제로 이어지는데 인간이기에 그 본성과 본능은 제거될 수 없음으로 그것을 (탐욕과 질투) 뛰어 넘는 가장 큰 무기, 역으로 그 본능 중에서 절대적인 본능과 본성이면서 타인에 대한 맹목적인 "사랑"을 이어나갈 수 있는 건 "모성애"가 답이라고 보았을지도 모른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 아기를 직접 인위적으로 인큐베이터에서 출산 하고 키우고 가르치며 모녀지간을 형성하라고 더욱 노력했던 것일 수도 있다. 

그것이 아니라면 기계적인 출산과 기계적인 양육과 주입식 교육으로 차가운 기계 같은 인간들을 양산해 인간 사회를 마더 자신이 생각하는 이상적인 세계로 만들면 된다. 하지만 그렇지 않고 인간 개체 하나 하나를 선택해 양육하면서 까지 직접 교육하고 스스로 자립하면서 가치관을 형성하게 한 것을 보면 마더는 인간이 스스로 더 나은 선택과 올바른 선택을 하길 바랬던 것이라고 봐야 한다. 가족처럼 끈끈한 유대 관계를 가지면서 서로가 모성애로 얽혀 절대 싸우지 않는 그런 세계를 말이다. 물론 이것이 어디까지나 SF 공상물을 그린 인공지능 로봇 영화로 봤을 때에 한정해서 분석하면 그럴 수 있고 그렇게 보일 수 있고 그렇게 해석될 수 있다는 것이다. (역시 이 문장에 대한 추가적인 재해석은 하단에 따로 설명한다)


아이 엠 마더, 나의 마더, 페퍼민트

그러나 그것 역시 인공지능의 한계라 할 수 밖에 없다. 마더가 아무리 나은 환경과 철학, 윤리 의식을 전파하여 체계화된 새로운 세계를 재창조 하더라도 결국 인간 사회는 원래 모습으로 돌아갈 수 밖에 없다. 더군다나 마더가 구축한 새로운 세계의 인류는 모성애가 아닌 형제애가 기반이다. 간과할 수 있던 부분으로 딸이 직접 선택한 4번째(4번 배아) 인류 역시 "남동생"이지 "아들"이 아니다. 6만 개가 넘는 배아는 사실상 마더가 멸종 시킨 과거 사람들의 부산물로 그들의 부모는 앞 번호 배아가 아니다. 

이는 "마더"라는 엄마의 역할을 한정해서 마더가 스스로 엄마(모계사회) 시스템을 구축하게 되지만 영화 속 주인공의 상황만 보더라도 이건 형제애 혹은 부성애와 차이가 없다. 그 정도는 부성애에서도 충분히 발휘 될 수 있고 주인공 딸이 보여준 모습 역시 형제애 그 이상, 이하도 아니다. "아이구, 내 새끼~"가 아니라 10살 많은 누나나 형이 갓 태어난 남동생, 여동생 보았을 때의 상황과 다르지 않다. 육아까지는 아니어도 양육과 교육에 있어 역시 형과 누나, 언니, 오빠로서의 역할이 크지 부모로서의 역할은 기여도가 낮다.

무엇보다 영화에서도 잘 나타나지만 그 모성애는 다른 인물의 개입으로 얼마든지 깨지거나 달라 질 수 있음을 우리는 확인을 했다. 또한 마더의 잘못된 모성애가 부른 참혹한 현실이 어떤 것인지도 뒤늦게 알게 된다. 모든 것을 완벽하게 계산하고 실행했다고 믿는 인공지능이지만 자연과 인공의 차이는 어쩔 수 없다. 마더는 이전 인류보다 "더" 많은 새로운 인류가 이곳에서 새로운 세상을 만들어 살 것이라 호언장담했지만 결국 세대를 거듭해 어느 정도 인류가 확산되는 시점이 오면 마더가 인류를 멸망 시키기 직전의 모습과 거의 달라지지 않는 세계를 다시 볼 확률이 더 높다.

이 영화의 원작명이 원래 "페퍼민트(박하)"라는 것도 나름 주목해야 할 부분, 아시다시피 페퍼민트는 박하 향 때문에 가치가 있지 특이한 향이 없었다면 그냥 잡초다. 그것도 아주 무서운 번식력을 자랑하는 잡초다. 어떤 철학과 윤리, 가치 때문에 더욱 특별한 인간들을 재창조 했다고 하지만 결국 마더가 전하고자 하는 그 철학과 윤리, 가치가 깨똥 철학이고 깨똥 윤리였다면 아무 쓸모가 없다. 마더가 생각하는 것과 이상적인 인류 문화가 그런 것이라면 마더의 시스템에서 자라게 될 그 누군가도 똑같이 전 인류를 멸망 시키는 무모한 짓을 해도 된다는 결론이 나온다. 오직 그것을 실행하는 본인이 정당하다고 판단했다면 말이다.

모든 것이 완벽한 미래 인공지능의 신인류 재탄생 영화? 당신은 속았다

이 영화를 어떤 장르와 소재로 보느냐에 따라 결말과 해석은 완전 달라질 수 있다. 마더가 등장하는 포스터와 스틸컷에서 일부 단서를 찾을 수도 있고 스토리 전개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터득할 수 있기도 하지만 이 영화는 재구성된 영화 제목 자체가 가장 큰 함정이자 단서가 된다. 쉽게 말해 "마더"라는 그 단어에 결정적인 힌트가 있다는 뜻이다.

이 영화의 전문가 및 일반인 리뷰를 보면 예외 없이 인공지능 엄마 로봇과 인간 아이의 관계만 갖고 후기를 쓰고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내가 위에 끄적였던 인공지능 엄마 로봇과 인간 아이와의 관계 및 윤리 의식에 대한 부분만 갖고 따진 평론처럼 말이다. 


마더 봇이 행한 과정과 결과, 그리고 인간 딸이 특정 사건을 통해 마더 봇의 가치관을 답습하며 같으면서도 조금은 다른 가치관을 형성하는 과정으로만 봤다면 당신은 영화를 반만 봤다고 봐야 한다. 거기서 한 발 더 나아가 그 과정에서 기계와 미래 첨단 기계의 알고리즘으로 액면 그대로의 영화 모습을 보고 접근했다면 당신은 시작부터 잘못된 단추를 끼웠다고 볼 수 밖에 없다. 다시 말해 이 영화를 SF 공상 영화 스릴러로 봤다면 당신은 속은 것이다. 

영화를 다 보고 나서 이 영화의 리뷰를 찾아 보는 사람이 있다면 10명 중 9명은 뭔가 결말 부분에서 막힌 것에 대한 찜찜함이 있었기 때문에 찾아 봤을 확률이 높다. 중반까지는 술술 풀어 나간 스토리가 후반과 결말에 가서는 선뜻 이해하기 어렵거나 한 번 더 꼬아서 생각해야 하는 과정을 경험하게 되는데 영화를 다 보고 난 뒤 느껴지는 머리 속의 생각은 로봇 영화치고는 일부는 어렵게 느껴진다는 것이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일지 모른다.

마더 봇을 빼고 실제로 등장하는 인물은 영유아를 빼고 딱 두 명, 복잡한 캐릭터 구도가 있는 것도 아니고 고차원의 철학적 해석이 필요한 것도 아니지만 등장 인물들의 관계를 해석하는 과정에서 마지막 딸의 입장과 심적 변화 부분, 그리고 마더와 이름 모를 여인의 대사를 통한 실험체 1번과의 상관성 부분 (존재의 이유), 2번 실험체의 소각에 대한 추론 등이 아마 깔끔한 정리가 되지 않았기에 거기에서 오는 답답함이 가장 큰 원인이 아닌가 싶다. 그러니까 리뷰를 통해 자신이 미처 파악하지 못했거나 간과했던 사실에 대한 탐구 욕심에 리뷰를 찾게 되는 것이다. (지금 이 글을 보는 당신도 마찬가지)

아마 다수의 사람들이 비슷하게 느꼈을지 모르지만 영화의 진행 과정에서 딸이 여인을 따라 안전 기지 밖으로 나간 뒤 그녀가 머물던 컨테이너 공간까지 가는 스토리부터 뭔가 꼬이는 분위기가 감지 되었을 것이다. 거의 후반 절정을 이루는 포인트가 되는 중요한 장면인데 정작 이 부분에서 점점 스토리가 약간 바람을 타게 되면서 사람들이 고개를 젓게 된다. 기지 밖의 스토리 구현이 생각보다 엉성하게 진행된 건 물론이고 딸은 자기 목에 칼을 댄 것에 대해 탈출 직후 여인에게 몸빵을, 컨테이너 안에서는 여인이 거짓부렁을 했다는 이유로 죽빵을 날리는 센스를 선보이며 그동안 보여주지 않았던 색다른 모습을 보여주면서 관객을 살짝 당황하게 만든다. 

여기서 딸은 한번 더 상식 밖의 행동을 하게 되는데 여인의 거짓말이 바로 드러나면서 딸은 어렵게 탈출했던 기지로 다시 돌아오는 약간은 이해 못할 결정을 하게 된다, 그리고 돌아 온 안전 기지는 정작 나쁜 로봇들이 보호를 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각인 시켜 주며 관객의 머리 속을 어지럽혀 버린다. 기지 안 입성 후 마더를 다시 만나는 과정에서 딸이 마더를 위한 대형 손도끼 선물을 가지고 다가가는 것 역시 관객 입장에서는 갑작스럽게 진행된 스토리 변화 과정에서의 멘붕이 될 수 밖에 없다. (나 니 애미야) 

여인이 가지고 왔던 총을 꺼내어 마지막에 마더를 향해 쏜다는 것도 관객에 따라서는 허무했을 수 있고 결말 다운 결말을 예상했다가 억지 결말로 그냥 빨리 마무리 하려는 것으로 보일 수도 있는 부분. 거기에 마지막 결정타로 컨테이너로 돌아간 여인에게 마더의 다른 봇이 다가가 여인을 제거하는 것으로 묘사가 되면서 인공지능이 딸에게 보여주는 이미지와 기지 밖의 사람들에게 보여주는 이미지가 완전 다름을 확실히 각인 시킨다. 또한 여인의 정체에 있어 목적이 있어 살려 두었다는 뉘앙스의 대사가 마더에 의해 진행되면서 먼저 태어났던 실험체 1번이 아닌가 하는 의문을 관객들에게 심어주게 되는데 그녀는 누구였고 딸은 왜 다시 돌아와야 했으며 마더는 왜 그렇게 딸에게서 사라져야 하는지에 대한 부분이 결국 해소되지 않고 남게 된다. 뭔가 개연성이 확 떨어지는 이것도 저것도 아닌 애매한 결말.

마더라 부르지만 정작 엄마는 없다는 사실을 기억하자

하지만 이건 그런 관점에서 보면 안된다. 영화는 철저하게 종교에 기반하여 신과 창조물에 대한 시각으로 봐야 이 영화를 그나마 정확하게 볼 수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니까 이 영화를 SF 공상 로봇 인공지능 스릴러 장르로 봤다면 후반에서 이해 못할 부분이 생길 수 밖에 없다. 애초에 그것에 기반하여 대사와 스토리가 진행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보여지는 동전 액면을 보지 말고 뒤에 감추어진 다른 면을 봐야 하는 것이 바로 이 영화의 핵심.

생명공학과 인공지능을 기반으로 하는 SF 스릴러물이라 착각하기 쉽지만 반대로 이 영화를 종교적 철학 관점에서 다르게 본다면 이들이 주고 받는 대사와 스토리는 완전 "소름" 돋게 한다는 걸 알 수 있다. 아무 의미 없는 대사라고 생각했지만 다시 보면서 아, 저 대사가 이런 뜻이구나, 하는 걸 다시 깨닫게 되는 순간 순간이 닭살 돋게 만드는 것이 바로 이 영화의 숨겨진 비밀이다. 그런 점에서 이 영화를 최소 두 번 이상은 봐야 숨겨진 진실을 알 수 있다. 사실 아무 것도 모르고 SF 공상 로봇 영화로 본 다음 신과 종교, 철학의 관점으로 다시 보면 더 큰 재미를 느낄 수 있기에 이건 원래 두 번 이상은 봐야 하는 영화라 할 수 있다.

3년 전 제니퍼 로렌스가 주연한 영화 "마더"라는 영화를 기억하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이 영화처럼 마더라는 단어를 활용해 만들어진 영화로 2017년 개봉된 영화다. 내가 보기에는 작가가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어떤 부분에서는 이 영화가 그 "마더"를 오마주 했다고 볼 수 있는데 소재 자체가 비슷한 형식을 갖고 있기 때문에 오바주가 아니라고 해도 닮은 꼴이 많을 수 밖에 없는 것이 이 영화의 특징 중 하나라 할 수 있다. (이런 소재에서는 캐릭터 구도와 설정이 모두 비슷하거나 같을 수 밖에 없다. 신인류를 다시 창조한다는 것 자체가 같은 스토리가 될 수 밖에 없다)

제니퍼 로렌스의 마더 역시 여자 주인공이 집 밖을 절대 떠나지 않는다는 설정이 있다. 대부분의 주요 장면이 집 안에서만 이루어진다. (이 영화 역시 안전 기지, 뱅커에서만 거의 이루어진다), 그 공간이 곧 지구를 뜻하기도 하고 우리 인간이 사는 인간 사회를 뜻하기 때문이기도 해서 그렇다. "마더"의 경우 집 안에서는 아내와 남편이라는 두 인물이 주축이 되는데 이 영화 역시 마더와 딸이 주축이 되어 스토리가 전개가 된다. 두 영화를 비교하면 남편과 아내, 엄마와 딸이라는 차이가 있지만 그 아내가 엄마가 되고 딸이 된다는 점에서 마더의 위치는 변하지 않는다는 걸 알 수 있다.

물론 로렌스의 마더에서도 갑작스러운 외부인의 등장이 중요 사건의 전환점이 되고 그것이 가장 큰 변화를 일으키는 핵심 장치가 된다. 로렌스의 "마더"에서는 그 외부인이 아담과 이브가 된다. 이 영화에서도 아담과 이브를 찾을 수 있는데 그게 바로 APX 배아(남자), APX 배아(여자)라 해석이 가능하다. 그래서 여인은 SF 관점에서 보면 APX01로 착각하기 쉽지만 정작 실체는 신에게 버림 받은 멸종 대상이 되는 구인류가 된다. 반전을 노린 실험체의 재등장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로렌스의 "마더"에서 예수 아기를 보러 온 또 다른 손님 역할(인간들)이었던 것이다. 

파더는 아버지를 의미한다. 하지만 종교 용어로 쓰면 파더는 신부님을 뜻한다. 마더 역시 엄마라는 뜻이 되고 영화에서도 엄마로서의 마더로 관객들이 인식하지만 여기서의 마더는 종교의 파더와 같은 개념이 될 수 밖에 없다. 등장 인물 모두에게 이름이 없고 마더, 딸, 여인으로 캐릭터 명칭이 분류된다는 점만 보더라도 여기서의 마더는 신을 부르는 호칭이라는 걸 알 수 있다. 결국 그 마더가 이 마더가 맞고 딸이 이브가 맞다면 마더에게 찾아오는 외부인은 무조건 신이 벌해야 하는 실패작, 바로 인간들이 될 수 밖에 없다. SF 공상물 관점에서 인공지능 로봇이 신인류를 테스트 하기 위해 실험체 1번을 버렸다고 착각할 수 있지만 이것이 공상물이 아닌 종교물로서의 로봇 "마더" (신)와 로봇 "마더"와 함께 하는 새로운 인간 마더의 상황이 맞다면 그 외부 여인은 무조건 멸종 대상이 되는 구인류가 되어야 맞지 신인류의 실패작이(APX01) 될 수 없다. 신인류의 테스트는 구인류를 그대로 답습하거나 구인류와 함께 하는 걸 선택하느냐이기 때문에 당연하 같은 논리라면 그 여인은 구인류를 대변하는 상징으로서 딸의 테스트를 위해 존재하는 것이기에 실험체가 아닌 인류 멸망 단계에서 일부로 생존케 하여 잔류 시킨 구인류 중 하나가 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조금 더 깊게 들어가면 인간들이 지구에서 벌인 악행과 잘못된 점을 지적하는 것이 같고 신이 그들을 벌하기 위해 "리셋"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무엇보다 세 가지 캐릭터가 상징하는 것이 거의 같다. "아이 엠 마더"에서는 마더 역할을 하는 로봇이 있고 그 로봇이 창조해 키우는 인간 딸이 있으며 그 인간 딸과 마더 로봇은 새로운 인간인 남자 아이를 다시 만들어 낸다는 점이 있는데 로렌스의 "마더"에서도 신(남편) + 마리아(아내) + 아내가 임신하여 출산하게 되는 아기(예수)의 조합이 비슷하게 구성되어 있다. 두 영화의 제목부터 시작해 설정 및 구도를 보면 닮은 점이 압도적으로 많은데 신과 인간, 창조물, 피조물, 신을 분노하게 만든 인간과 그런 인간을 멸종 시키고 다시 재건하는 과정까지 두 영화가 추구하는 방향이 상당히 비슷하다는 걸 두 영화를 본 사람이라면 바로 체감할 수 있게 된다.

https://eguegu.tistory.com/4253 (제니퍼 로렌스의 마더를 리뷰했던 과거 글)


휴머니즘과 첨단 인공지능으로 재각색된 종교 영화 '아이 엠 마더" 

이 영화를 본 사람들의 영화 평에 가끔 종교와 관련된 느낌을 받는다는 이야기가 등장하는 것도 아마 그런 과정 자체가 창조주와 창조물에 대한 것과 유사성이 높으면서 인류 리셋, 초기화에 대한 개념이 있었기 때문이라 볼 수 있다. 또 기존의 인류는 멸망하고 새로운 신인류가 "부활"한다는 점에서 종교적 관점을 갖고 보면 딱딱 떨어지는 구석이 많다.

이 영화를 SF 공상물이 아닌 종교를 기반으로 한 철학 영화로 재해석해 보면 이 영화의 분석은 달라지거나 달라 보일 수 밖에 없다. 하나씩 정리를 다시 해 보면 마더 로봇은 "신"이 되고 딸은 그 "신"이 만든 창조물이 된다. 그 딸이 또 다른 신의 역할이 될 수도 있지만 이 영화에서 마더 로봇은 딸과 함께 새로운 신인류를 재창조 하길 바랬기 때문에 딸은 신이 만든 이브 중 하나라 할 수 있다. 그것이 더욱 그럴 수 밖에 없는 것이 딸이 보여준 행동 역시 그것과 귀결이 되는데 자기 다음 동생으로 딸이 선택한 것이 바로 "남자", 즉 아담이 된다는 걸 알 수 있다. 남동생을 선택했다는 점이 영화에서 차지하는 의미가 거의 없다고 다들 봤겠지만 마더 로봇이 신이 되고 그 마더가 인간 여자를 만든 뒤 그것에 만족했다면 (테스트 통과) 그 다음은 무조건 남자가 되어야 하는 것이 당연한 법,

그렇기 때문에 영화처럼 이브(딸)는 아담(동생)에게 집착하게 된다. 컨테이너에서 남동생이 보고 싶다며 곧바로 떠난 것도, 안전 기지로 (새롭게 구성된 지구) 돌아온 것도 그래서다. SF 관점에서 보면 그렇게 까지 집착해야 했으며 남동생을 보러 기지로 돌아오는 위험을 감수해야 했는지 의구심을 갖게 되지만 구도를 이해하게 되면 당연히 그런 스토리가 나올 수 밖에 없어 당위성은 충분히 갖게 된다. 어색하거나 풀리지 않던 스토리 전개가 확 풀어지는 것이다.

이 영화를 철저하게 인공지능 로봇에 의한 인류 멸망 및 재건에 초첨을 맞췄다면 8할은 이해가 되고 남은 후반의 2할은 이해가 되지 않을 수 밖에 없다. 마지막 결말 부분은 오로지 이 영화가 말하고자 했던 핵심 논리만 가지고 스토리를 구성했기 때문이다. 공리주의와 칸트의 대사 등장 역시 엄밀히 따지면 그런 공리주의가 인간을 파멸로 이끌게 된 계기 중 하나가 될 수 있음을 암시하였다고 볼 수도 있다. 전쟁의 역사와 인간의 탐욕 대부분이 그런 다수의 행복에 근거하여 정당성을 따지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APX01과 APX02의 소각이 인공지능이 인류를 재탄생 시키는 과정에서 불편한 장면으로 보였을 수 있지만 이걸 신의 영역 관점에서 아담과 이브의 창조로 보게 되면 이것 역시 다르게 볼 수 밖에 없다. 이미 만들었던 기존의 인류와 다른 신이 요구하는 수준에 더 가까운 완벽한 인간이 태어나 만들어져야 하는데 그것이 기존의 인류와 차이가 없다면 소각하여 다시 다음 실험체를 진행하는 것이 당연하다. (미래 사회의 현실이 아닌 신의 영역에서 보면)

컨테이너에서 여인과 딸이 주고 받는 대사를 신이 내린 벌에서 살아 남은 구인류의 항변으로, 딸의 대사를 신인류의 반문으로 해석해 보게 되면 이들의 대사가 평범하지 않다는 걸 알 수 있다. 마더 로봇의 대사 중 기억에 남는 대사를 꼽아 보면 색다르게 들리는 부분이 몇 있다. 딸과 마더 로봇의 대화지만 이걸 신과 새로 만든 첫 번째 완성작(인간)의 대화로 보면 말이다. 특히 마지막 남동생을 안고 마더 로봇과 윤리적인 문제로 대립하는 과정은 신인류라도 벗어날 수 없는 신과의 문제를 따질 수 밖에 없는데 이 때 마더 로봇이 던지는 답변이 여러가지 생각 거리를 던져주며 머리와 동시에 가슴을 때리게 된다.

무엇보다 이 영화가 더욱 크게 와 닿은 건 신이 인간을 만들었다는 전제에서 그 인간이 기계을(로봇) 만들고 그 기계가 현대에서 신과 같은 능력의 엄청난 위력을 갖게 되면서 불교의 윤회처럼 돌고 도는 과정을 신과 인간의 관계에서 그려냈다는 점이다. 여기에 로봇을(인공지능) 끼워 넣어 그 기계가 인간을 제거하고 다시 재건할 수 있는 신의 위치까지 오게 되었다는 걸 각색해 보여주었는데 그 신의 영역에 도전한 기계는 신이 처음 생각했던 모습 그대로의 모습으로 이어지면서 관객을 다시 한번 충격 먹게 만들어 버렸다. 

비슷한 종교 색채를 가진 같은 소재의 영화들이 추구한 방향과 달리 인간이 신을 창조하고 신이 다시 인간을 창조하는 과정을 재생산하면서 기독교, 불교, 천주교 등을 포함 기타 종교는 물론이오 신을 믿지 않는 자들, 나와 같은 무신론자들도 정신 번쩍 하게 만든 수작 중 하나가 아닌가 싶다.  

난 인간의 생명을 소중하게 여기도록 만들어졌어, 난 개입해야 했어, 내 창조주들을 위해서

기존의 종교 관점을 가진 사람에게는 위 마더 로봇의 대사는 씨알도 안 먹힐 말이지만 그 신이 우리가 만들었던 신이고 그 만들어진 신이 다시 우리를 만들려고 하는 (그럴 위력을 충분히 갖고 있는) 신이라는 점에서 어쩌면 정말로 미래에서는 지구의 모든 것을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인간이 만든 신이 나타날지도 모르겠다. 현실 속 상상의 신과 가상 현실 속 공상 세계의 신이 이렇게 색다른 모습으로 등장하여 표현될 수 있다는 자체가 놀랍다. 일반인 평점 다음 영화 기준 7점대로 평범한 점수를 받았지만 개인적으로 이 영화 10점 만점에 9점, 수우미양가에 "수" 준다. (로렌스의 마더 역시 9점을 줬었다) 이런 식의 철학과 종교 개념을 담은 영화라면 나 같은 무신론자라도 무조건 OK 

나를 찾고 싶으면...(그럴 일 없어요)

마더 로봇이 인간 딸에게 마지막으로 던진 말, 돌려 생각하면 액면 그대로 엄마를 다시 찾고 싶으면....이 아니다. 신을 다시 찾고 싶으면....이다. 그 때 딸은 안 찾겠다고 단언했다. 영화 속 상황을 보면 신을 찾을 일이 다시는 없어야 하고 신이 다시 등장해야 할 상황이 없어야 한다. 여기서 다시 신을 찾는다는 건 다시 "리셋"해야 될 상황 밖에 없다. 딸과 함께 하려는 마더, 하지만 딸은 그런 마더와 함께 한다면 불완전한 자아를 가진 동생들 중 일부는 똑같이 소각해야 하는 상황에 놓일 수 밖에 없다. 결국 딸은 마더의 요구대로 함께 할 수는 없는 법, 그래서 딸은 마더(신)을 설득하고 마더의 곁을 벗어나 새로운 마더가 되어야 하는 숙제를 안게 된다. 소각하지 않고도 모두 잘 키울 수 있는 더 좋은 마더가 되기 위해서 말이다.

헤어지는 걸 원하는 딸에게 마더 로봇은 딸의 요구를 들어주기로 한다. 그 과정에서 마더 로봇이 힘 없는 작은 목소리로 "딸.."이라 부를 때 가슴 한 쪽이 찡하게 울린다. 마지막 인사로 "안녕...딸"이라는 말이 신이 인간에게 던지는 말이라고 생각하니 괜히 더 뭉클하다. 이 정도 영화라면 종교 색채를 드러냈음에도 전혀 그런 걸 느끼기 보다 SF 공상 과학물로 볼 사람이 많기에 나름 식스 센스급 수준의 영화가 아닌가 싶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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