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곡 계모 아동 학대 사건을 모티브로 한 영화 - 어린 의뢰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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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예술/영화리뷰

칠곡 계모 아동 학대 사건을 모티브로 한 영화 - 어린 의뢰인

by 깨알석사 2019. 6.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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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 뜻 그대로 어린 아이 혹은 어린 사람을 일컫는 말이다. 나이가 어린 미숙한 사람이라는 뜻으로 쓰이지만 사실 따지고 보면 어린이는 지금에서야 어린 사람으로 생각을 하지 과거에는 어린 "사람"이라는 인식이 그렇게 높지 않았다. 지금은 성인과 동일한 하나의 인격체로 보지만 알고 보면 어린이도 하나의 인격체, 사람으로 인식하고 대접하게 된 것은 그렇게 오래 되지 않았다. 그저 부모(나)에게 종속된 하나의 소유물일 뿐, 인격체와 거리가 멀었다.

우리나라의 경우 독립운동가이자 사회운동가였던 소파 방정환 선생이 (오늘 날 진정한 초통령!) 어린이 날을 만들고 어린이에 대한 사회적 인식을 많이 개선 시키고 나서야 오늘 날의 어린이 인식이 크게 발전 되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많이 어린이는 누군가에게 속해진 소유물이라는 그런 인식이 아직까지 아예 없는 건 아니다. 아이는 그 아이의 부모에 종속된 소유물이라는 인식이 아예 사라진 건 아닌데 그래서 "내 자식 내 마음대로 하는데 왜 남이 뭐라고 하느냐" 따지는 경우가 지금도 종종 있다. 내 아이는 내 소유물이고 내 것이라는 인식이 크게 자리 잡은 경우다. 사회적 인식과 아동에 대한 권리가 발달이 되어도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부모들이) 생각하는 범위이기도 하다.

직계 존/비속이라는 가족 구성 요건에서 존속과 비속은 모두 단일 공동체 및 단일 인격체로 생각하는 경우가 있다. 이게 가문,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정의, 선의가 바탕이 된다면 딱히 문제는 없다. 하지만 이게 정의에 반하는, 폭력이나 학대, 방임, 방치 등 범죄에 가깝거나 범죄에 해당하는 행위의 기반 바탕으로 존/비속을 이용하려 한다면 타인에 의한, 타인에 대한 범죄 보다 더 무서운 경우가 된다. 누구나 일상에서 겪는 가족 관계의 문제, 가족 일상의 잡음 수준으로 인식을 하지 맹목적인 타인의 공격, 타인의 방해, 타인의 범죄로 가해자나 주변 사람들이 쉽게 인지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내 가족, 내 아이, 내 부모라는 이름으로 내 마음대로 하려고 하는 경우인데 모두가 윈윈이 되고 모두가 좋은 결과가 얻게 되는 선의의 방향이라면 몰라도 악의가 바탕이 되는 경우라면 쉽게 드러나지도 않고 드러나도 구제가 쉽지 않은 것이 바로 직계 존/비속에 행해지는 가족 범죄다. 일반적인 인식에서는 나의 직계 가족을 나와 다른 타인으로 보지 않지만 이게 범죄로 이어질 때도 타인으로 보지 않는다는 것이 문제, 타인에 대한 폭행, 폭력, 구타가 당연히 범죄가 되는 것처럼 가족 테두리 안에서도 다른 가족에게 동일한 형태의 일들이 벌어지면 범죄로 봐야 하는데 가족끼리는 타인이 아니다라는 인식이 있으면서 타인에 의해 벌어지는 범죄, 타인에 대해 벌어지는 범죄로 보지 않는 것이다. 대표적인 것이 바로 부모의 아동 학대다.

오늘은 2013년 벌어졌던 칠곡 계모 아동 학대 사건을 모티브로 한 "어린 의뢰인"이라는 영화와 함께 그것과 관련한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이 영화는 각색을 했지만 상당 부분 실제 벌어졌던 칠곡 계모 아동 학대 사건을 모티브로 하여 대부분의 뼈대를 사건 줄거리 그대로 차용했다. 실제로 있었던 이야기를 바탕으로 하였기 때문에 와 닿는 감정이 많이 다를 수 밖에 없는데 아동 학대와 관련한 처벌 특별법이라는 것이 (아동학대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별법) 만들어진 계기가 바로 이 사건이기도 하다. 아동 학대에 관한 처벌 특별법은 이 사건 다음 해 2014년 바로 만들어져 즉각 시행 되었다. 그만큼 논란과 파장이 컸던 사건이다. 

일단 영화의 모티브가 된 칠곡 계모 사건에 대한 간단한 개요를 먼저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상당 부분 영화와 실제 사건의 흐름이 비슷하게 나가고 주요 줄기가 같기 때문에 실제 사건을 먼저 이해하고 보는 것도 도움이 된다. "SBS 그것이 알고 싶다"에서 이미 2번이나 다루었으며 당시에서 큰 화제가 되었던 사건이다. 아래 내용은 "그것이 알고 싶다"에서 직접 다루었던 해당 사건의 주요 전개다.

2013년 8월 

- 칠곡의 한 가정에는 계모(새 엄마)와 함께 사는 12세 언니, 8세 동생 자매가 있었다. 8월의 어느 날 병원 응급실에 8세 여아가 복통을 호소하다 쓰러졌다며 실려왔다, 하지만 응급실에 온 아이는 이미 숨진 상태였다. 아이의 장례를 치르는 과정에서 장례 절차 도움을 받기 위해 평소 아이들을 주기적으로 상담했던 아동센터에 자문을 얻게 되는데 이 과정에서 아동센터 사회복지사는 아이가 갑자기 병으로 죽었다는 말에 의심을 품고 경찰에 신고를 하게 된다. 경찰은 부검을 통해 아이가 병이 아닌 내부 장기 파열이 주된 사망 원인이라는 걸 알게 되고 그 과정에서 수 많은 멍 자국을 인지하게 된다. (추가적으로 턱, 머리에는 다쳐서 꿰맨 상처가 있었고 팔의 관절은 기형이 된 상태였다)

단순 아동 사망 사건으로 보지 않은 경찰은 이내 본격적인 수사에 들어가게 되는데 이 때 죽은 아이의 12세 언니가 자백을 하게 된다. 자기 물건을 갖고 놀지 못하게 하다 주먹과 발로 찼더니 동생이 죽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경찰은 이를 믿지 않았다. 이미 주변에서는 아이들이 부모에게서 학대를 당하고 있었다는 진술이 나오기 시작했고 계모가 있기 이전 아이들을 대신 데리고 살았던 아이들의 고모 역시 큰 조카의 진술은 계모에 의한 거짓 진술이라고 주장했다. 무엇보다 이 사건 자체가 아이가 아동센터 복지사의 신고로 이루어졌다는 점에서 아동센터에서는 이미 학대 신고 및 증거가 확보된 상황이었는데 아이들이 아동 보호 시설(기관)인 지역 아동 센터와 연결 되었다는 것 자체가 부모에 의한 학대가 꾸준했음을 말하고 있었다. 매번 신고가 들어오고 아동보호시설과 경찰이 나섰지만 그 때마다 아이는 다치거나 멍들거나 상처를 입은 것이 부모가 아닌 자해의 결과라고 주장해 학대 신고가 늘 무산되었던 상황이었다. 다친 경우 이런 아이의 자백이 물증 없는 경우 심증만 있기 때문에 추가 조사가 어렵지만 사망이 된 경우라면 부검을 통해 정확한 외부 진단 (의료 전문가 개입)이 강제적으로 가능하니 결국 실체가 드러나게 된 것이다. 

수사 과정에서 계모는 아이들을 대상으로 목 조르기, 밥 굶기기, 구타, 청양 고추 강제로 먹이기, 배설물 묻은 휴지 먹이기, 잠 안 재우기 등 일반적인 고문에 가까운 만행을 아이들에게 저질렀는데 8세 여아가 내부 장기 파열로 사망한 직접적 사인을 보면 알 수 있듯 계모가 8세 여아를 상대로 수 없이 발로 밟아 사망(살해)하게 만들었다고 최종 결론을 짓게 된다. 물론 12세 언니의 자백은 계모와 친부의 협박에 의한 허위 자백 진술로 밝혀 졌다. 8세 여아를 발로 밟아 죽여 놓고 그걸 12세 여아가 한 것이라 누명을 씌운 것도 놀랍지만 그걸 부모가 먼저 주장한 것이 아니라 아이가 먼저 진술하게 만들어 나중에 아이의 자백, 말이 맞다고 인정한 것이 더 충격이었던 사건이다. 

일반적인 경우 친모나 친부 쪽 다른 가족(친척)이 있는 경우 교류만 있다면 학대에 대한 정보를 모를 수가 없는데 이 아이들의 경우 계모가 있기 이전 고모네가 먼저 데리고 키웠던 경우라 고모와 아이들은 사이가 돈독했다. 그러나 결국 이는 계모 입장에서 상당한 위협 요소가 될 수 밖에 없는데 고모네와 거리를 두게 만들어야 했기 때문에 아이들과 고모와의 거리를 벌리게 만든다. 아이들이 상담하는 지역 아동 센터를 활용, 고종사촌 (고모네 아들, 고등학생)에게 두 자매가 모두 성폭행을 당했다고 주장하게 만든 것, 결과적으로 고모네가 학을 떼게 만든다. 진실이 어찌 되었든 고모네가 개입하기 어렵게 만든 것이다. (가까이 할수록 고모 입장에서는 자기 자식도 위태로울 수 있는 것이다) 실제로 계모는 고모네 아이들이 자기네 아이들을 수시로 성폭행 했다고 소문을 퍼트렸다.

고모가 잘 키우고 있던 아이들을 먼저 나서서 데리고 간 것은 아이들 양육 문제로 돈을 뜯어내기 위한 술책이었다. 고종사촌의 성폭행 주장 역시 합의금을 받기 위한 목적이었다, (영화에서도 아이들 이름으로 나오는 양육비에 대한 부분이 거론된다) 아이는 결국 동생의 죽음이 계모에 의한 것이라는 것이 밝혀지면서 그동안 협박과 강압에 의해 허위 자백을 하던 것을 멈추고 용기를 내어 판사님에게 직접 편지를 쓰게 되는데 주요 내용은 "그 아줌마를 사형 시켜 주세요"였다. 판사에게 보낸 편지에서 "날 세탁기에 넣고 돌렸다"는 문장이 눈에 띈다.  

그 와중에도 정신 못 차린 계모는 구속 직후 아이에게 편지를 쓰게 되는데 "엄마가 만나서 꼭 안아주고 많이 사랑해줄게"라는 말로 아이에게 편지를 보낸다 (소름), 아래는 해당 관련 뉴스 기사

https://news.v.daum.net/v/20140409030305613 (마음에도 없는 편지 쓴 계모, 엄마가 많이 사랑해줄게)

검찰은 계모에게 20년, 친부에게는 7년을 구형한다. 하지만 1심에서는 계모에게 10년, 친부에게는 3년이 선고 된다. 검찰은 이에 항소했고 2심에서는 큰 딸을 (12세) 세탁기에 넣고 돌린 혐의를 추가했다. 2심은 1심과 같게 선고했으나 추가된 혐의를 인정 계모에게는 9년, 친부에게는 3년을 선고하게 된다. 계모는 작은 딸 사망으로 10년, 큰 딸 학대로 추가 9년 합 19년 선고를 받게 된 것이다. (아버지는 작은 딸 사망 관련 3년, 큰 딸 관련 3년 합 6년) 큰 딸을 세탁기에 넣고 학대한 것까지 추가 혐의를 받아 19년이지 8세 작은 딸의 사망 관련해서는 결국 10년 형을 받게 된다. 이후 최종 확정 판결에서는 계모가 15년, 친부는 4년형으로 최종 확정된다. (생각보다 형량이 세지 않은 결과)

이 사건 이후 2016년 벌어진 아동 학대 사건 중 비슷한 사건이 있었는데 이 때 계모가 받은 최종 형량이 징역 10년, 친부도 동일하게 징역 10년이었다. 감금 당한 아이가 화장실 창을 통해 밖으로 탈출, 집 외벽 가스 배관을(?) 타고 도망쳐 수퍼마켓 주인의 도움으로 알려진 사건인데 11살 여자 아이임에도 먹질 못해 5세 아이와 체격이 같아 놀라움을 주었던 사건이다. 물론 당시에는 아동 학대 처벌 특별법이 없었기 때문에 일반 형법으로 선고가 되었다는 점이 이런 차이를 불렀는데 그 때 만약 아동 학대 처벌 특별법이 있었다면 칠곡 계모는 최고 무기징역까지 내려지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

수퍼에서 절도를 한 아이는 배고파서 훔쳤다고 말하며 도와 달라고 부탁한다. 아이가 살려고 발버둥 친 사건이다.

영화로 돌아와 "어린 의뢰인" 이야기를 보면 맥락은 같게 흐른다. 엄마 없이 혼자서 남동생 밥도 챙겨주고 엄마 노릇까지 하던 누나(아이)는 아빠가 어느 날 데리고 온 계모와 함께 새로운 생활을 하게 된다. 초반에는 잘 챙겨주고 행복한 가정이 되는 것 같았으니 이내 계모의 실체가 드러나면서 아이들은 수시로 맞고 학대 당하는 신세가 된다.

자신은 물론 어린 남동생도 무차별 폭행과 학대에 시달리자 경찰에 도움을 청하는 아이, 하지만 경찰은 별거 아닌 듯 무심히 넘겨 버린다. 심지어 경찰은 부모에게서 조금 혼났다고 부모를 신고까지 하는 행태를 지적하며 요즘 아이들에 대한 태도를 간접적으로 돌려 깐다. 아이는 어려운 상황이 생기면 경찰에게 부탁하라고 배웠는데 경찰이 들어주지 않는다며 하소연 한다. 이 때 경찰 연락을 받고 온 지역 아동 센터 직원이 개입하게 되고 늘 상 있었던 일인 것처럼 대하게 되는데....(해당 아이들이 해당 센터에 자주 신고가 되고 부모에 의해 무마 되었던 상황임)

그래도 남동생과 버티던 상황에서 어느 날 계모의 폭행에 의해 남동생이 사망하게 된다. 이 때 아이는 계모에 의해 남동생은 자기가 실수로 죽였다고 자백하게 된다. 칠곡 사건과 같다. 형사미성년자 제도로 인해 13세 미만 아이는 죄를 지어도 처벌 받지 않는다는 점을 악용, 아이가 죄를 지었다고 자백해 동생을 살인했다고 해도 처벌 받지 않게 됨으로 계모는 합법적으로 범죄 혐의에서 벗어날 수 있고 아이는 처벌 및 전과가 생기지 않음으로 결국 완벽한 범죄 은폐가 가능한 것이다.

어린 동생을 지켜주지 못한 것에 대한 미안함과 이제는 동생 없이 지내야 하는 생각에 아이는 더 괴로워 한다.

범죄가 발생했고 가해자로 자백을 해서 연행(수사)은 되지만 처벌은 되지 않는다. 13세가 넘었다면 이 정도 범죄의 경우 소년교도소라도 (소년원과 다름) 가겠지만 아이는 그 이전 아래 연령으로 아예 면책 대상이 된다. 계모가 이걸 악용하여 아이에게 동생을 자기가 죽였다고 자백하게 만든다.

아이의 진술만이 있는 상황에서 설령 아이가 누명을 쓰고 거짓 자백을 했다고 해도 계모가 진짜 나쁜 X 이라는 걸 증명하는 건 사실상 없다. 때린 건 인정하지만 일회성이라 주장하면 그만이고 설령 맞아 죽었어도 죽일 의도가 없는 실수라면 결국 과실치사이기 때문에 살인죄와 다르게 볼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실수로 죽였냐, 알고 죽였냐인데 전개를 보면 죽일 생각까지는 없었다 해도 이 정도면 죽을 수도 있다라는 걸 분명 인식할 수 있고 또 일반 성인 대상 범죄와 다르게 봐야 하는 부분이 있어 가중 처벌이 필요한데 결과적으로 계모를 크게 벌하는데는 어려움이 있다.

이 때 동생의 인형이 법정에 등장하게 되면서 작은 반전을 만든다. "나 혼자 산다"의 곰 인형처럼 녹음/녹화가 되는 인형이었는데 우연히 여기에는 학대 당하는 아이들의 모습과 상황이 그대로 녹화 되어 있었던 것, 결국 실제 학대 과정을 보게 되면서 계모는 발악을 하게 되고 법정은 나쁜 X에 대한 형을 집행한다. 

영화는 다음 영화 기준 10점 만점에 8.9점으로 흥행에는 실패했다. 이렇다 할 큰 파장을 일으키지는 못했는데 상업적인 요소로만 보면 이미 줄거리 파악이 가능하고 이야기 흐름을 추리할 수 있기 때문에 사회적 관심을 크게 일으킨 사건 치고는 많이 미약한 성적을 냈다. 무엇보다 실화를 모티브를 한 사건 치고는 너무 드라마 위주로 나가고 연출 면에서도 크게 몰입이 되는 건 아니라서 각색을 조금 더 하더라도 영화 요소를 더 많이 넣었어야 하는데 그런 거 없이 너무 내용 만으로 전개를 하다 보니 흥행 요소는 거의 다 전무한 상황이 되었다.

오히려 먼저 방송에서 다루었던 "그것이 알고 싶다" TV 영상을 보는 것이 더 몰입감이 생기는데 다큐를 영화화 하면서 다큐도 아니고 영화도 아닌 애매한 포지션으로 만들다 보니 오히려 본질에 대한 탐구가 떨어진 케이스가 아닌가 싶다. 영화가 말하는 의미, 의도만 놓고 보면 8점, 9점대를 받을 수 밖에 없는데 저 평가 점수가 오로지 영화 자체의 평점이라 보기에는 무리수인 것도 그렇다. "어린 의뢰인" 영화 자체의 관객들이 준 절대적 평가 점수라고 보기 보다는 그냥 영화 메세지 때문에 준 점수라고 봐야 하는데 이동휘 개인에게는 좋은 필모그라피가 될 순 있겠으나 대놓고 말하면 미스 캐스팅도 한 몫 했다고 봐야 한다. 더 나아가 "도가니" + "변호인"을 조합한 이 영화는 초반에 나온 그대로 사회복지사가 주인공이 되었으면 그나마 이야기 흐름 개입에 도움이 되지만 변호사를 주인공으로 한 법정 영화로 끌고 가려 했기 때문에 개연성이 부족한 것도 있다. 초반 같이 활동한 동료 복지사의 지위에서 둘이 같이 해쳐 나가며 풀어가는 구조라면 그나마 이야기 구성력이라도 흡입력이 있지 기승전 변호사, 기승전 법정이 되면 나쁜 X의 응징은 관객의 기대치를 항상 충족하기 어렵기 때문에 큰 흥미를 돋우기에는 어렵다. (더군다나 실제 사건 형량도 만족스럽지 않기 때문에)

영화에서 의외로 히든 키맨 역할을 한 여자 아이의 학교 친구, 생김새는 부잣집 도련님처럼 아주 못되게 굴 것 같은데 첫 등장 이후 끝나는 장면 내내 확실한 키맨 역할을 한다. 엄마 손을 잡고 스스로 법원에 찾아오는 것까지 감안한다면 이 영화의 진짜 주인공은 바로 이 녀석이다. 이런 친구가 학교에 있다면 10명의 경찰, 복지사, 이웃이 있는 것과 같다고 볼 수 있다. 이런 캐릭터 수준이면 대부분 학폭의 가해자, 왕따를 시키는 나쁜 녀석 역할을 하기 마련인데 어른인 내가 봐도 대단하다고 느낄 만큼 멋지게 나오는 녀석이 바로 요 녀석이다.  

주인공의 누나네 집이 잠시 아이가 머물게 되는데 이 때 장면을 보면서 위탁 가정의 소중함과 중요성도 새삼 깨닫게 된다. 주변 환경에 따라 사람이 얼마든지 바뀔 수 있고 달라질 수 있음을 우리는 잘 알고 있는데 많은 걸 바라지 않고 그냥 딱 보통의 집 가정 수준만 유지 되어도 아이에게는 충분히 좋은 환경이 될 수 있다. 오히려 그런 평범함이 가장 큰 무기가 되는데 좋은 집이 아니어도 진심으로 맞아 주고 챙겨주는 사람들이라면 그게 최고의 선물이자 환경이라 생각이 든다.

내 주관적인 평가는 10점 만점에 7점, 수우미양가에서 "미"로 보통 수준의 평을 내리고 싶다. 영화 자체만 보면 너무 노골적인 실화 사건을 상업화 시킨 케이스라 아주 좋다고 할 순 없으나 담고 있는 메세지나 영화가 주려는 의미는 충분히 되새겨 보고 인지해야 하는 소재이기 때문에 영화적 요소가 부족하다 하더라도 그 의미마저 퇴색 될 순 없다. 누구나 한 번은 꼭 봐야 한다고 말하고 싶지만 그게 "추천"의 의미는 아닌데 우리 사회에서 아동 학대에 대한 관심이 많다고 해도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가정사"라는 이유로 무관심하거나 방치하는 경우가 의외로 많기 때문에 경각심 차원에서 접근하는 것이 어떨까 싶다.

영화에서는 아랫집 이웃과 주변 이웃이 종종 출연하는데 분명 아이가 심하게 "학대"를 받고 있다는 걸 인지하고 있음에도 나서지 않는다. 남의 일이라는 걸 떠나 훈육의 경계를 모호하게 여긴 상황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이건 훈육과 거리가 멀다는 걸 이웃 스스로가 알고 있는데 아랫집 아주머니가 아이에게 뜬금없이 "너 괜찮니?" 라고 물을 정도라면 이건 "범죄"라고 생각하는 게 맞고 "이 집 또 이러네" 이런 말이 나올 정도면 "상습"이라는 것이기 때문에 아동 기관에라도 알려주는 것이 맞다.

이제는 아동 학대를 할 경우 가중 처벌을 받게 되는데 일반 폭행, 구타와 달리 아동 학대의 경우는 무조건 가중 처벌이 된다. 특히 아동이 학대로 사망한 경우 과실치사라고 해도 살인죄와 같게 보며 사형만 선고하지 않을 뿐 최고 무기징역까지 선고가 가능한 것이 이 아동 학대 범죄 처벌이다. 여기에 "상습"이 인정되면 형량이 50% 가중되며 더 나아가 부모가 아닌 아동 보호 시설에서의 시설 보호자가 이 범죄를 저지른 경우 역시 악질로 보아 50% 형량을 가중하게 된다. 

이 영화를 보면 일본 영화 "너는 착한 아이"가 연상되는 분도 있을 수 있다. 일본 소설 "너는 착한 아이야"를 원작으로 한 에피소드 영화인데 아동 학대에 대한 부분을 다루지만 조금 더 포괄적으로 관점을 달리 해 보여준다. 아동 학대를 당한 아이가 엄마가 되었을 때의 양육 상황을 보여준 영화인데 무의식과 의식이 교차하면서 아이에게 학대를 되물림 하는 과정을 보여준 영화다. "어린 의뢰인"의 계모처럼 학대를 하는 것이 아닌 일반적인 양육 상황에서의 친모 훈계, 훈육인데 이게 학대를 경험한 엄마의 경우 그 훈육이 사실상 학대와 다르지 않다는 걸 보여준 영화다.

아동 관련 카테고리에서 훈육, 사랑의 매와 관련한 이야기를 여러 번 썼지만 사랑의 매는 분명 필요한 존재이고 도구다. 사람은 고등 지적 동물이기 때문에 폭력과 연관되는 "매"가 필요 없다고 하지만 오히려 그건 역설적으로 고등 동물이기 때문에 필요한 조치라고 봐야 한다. 그 누구도 고등학생만 되어도 부모에게서 맹목적인 매질 당하는 일은 거의 없다. 결국 "사랑의 매"라는 건 신체적, 정신적으로 미성숙한 어린 아이에게만 적용 되고, 적용 될 수 밖에 없다는 것인데 그 사랑의 매가 나쁘다, 무식하다 주장하지만 오히려 더 큰 댓가를 치러야 하는 것이 사회다. 사회에서는 매가 아닌 교도소라는 격리 조치로 사회 구성원으로서의 자격 박탈은 물론 자유마저 뺏어 버린다, 사랑의 매가 무식하다면 교도소 제도와 사형, 무기징역은 천 배 무식한 행위라고 똑같이 주장해야 한다. 훈계하는 것과 처벌 하는 건 구분해야 하는데 그럼에도 매질 훈계는 나쁘다면 하고 사람 목숨까지 끊는 사형제는 물론 남은 평생을 인신 구속하는 종신형 역시 철폐되어야 한다. (결국 잘못을 했을 때만 처벌이 아닌 훈계/훈육 된다는 점에서 구타/폭행/폭력과 구분되는 것이 사랑의 매다)

사소한 걸 방치하고 대수롭지 않게 여기다가 일이 크게 확산되고 벌어지는 것처럼, 하인리히의 법칙(1 : 29 : 300의 법칙)과 마찬가지로 처음 잡을 수 있는 걸 방치하면 일이 더 커져 걷잡을 수 없는 상황이 되는 결과는 훈육에서도 동일하게 적용된다고 봐야 한다. 매 한 번 잡고 호되게 혼내면 정신을 차릴 수 있음에도 매=폭력이라는 생각으로 자신은 짐승과 다르다고 규정하고 구분부터 하는 것이 오히려 잘못된 사회악의 단면이라 할 수도 있다. 문제는 훈육의 신체적 처벌과 일반 폭행(폭력/구타)의 신체적 가해를 구분하지 못한다는 것인데 처벌을 목적으로 하는 것과 가해를 목적으로 하는 건 완전 다름에도 결과(행동)가 같다고 하여 하나는 보고 둘은 보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일본 영화 "너는 착한 아이"가 중요한 포커스가 되는데 담뱃불에 지진 흉터를 가진 엄마가 본인 의지와 달리 학대 유형이 되는 훈육을 하는 것도 학대와 훈육의 경계 모호성을 갖는 부모라면 도움이 될 수 있다. 칠곡의 계모처럼 대놓고 학대를 하는 그냥 나쁜 X이 있고 자신의 어릴 적 학대 경험으로 자신도 모르게 아이를 학대하게 되는 피해자가 가해자가 되는 또 다른 사례가 바로 이 경우이기 때문이다.

이웃 나라 일본에서도 아동 학대는 심각한 사회 문제가 되곤 하는데 아동 학대는 그 아동의 문제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 아이가 자라 성인이 되고 사회 구성원이 되면서 생기는 2차 문제까지 고려해야 하는 포괄적 관점이 필요한 문제다. 더군다나 그 아이가 여아라면 누군가의 엄마가 되는데 아동 학대 가해자의 80%가 부모라는 통계에서 그 중 엄마의 위치가 무시할 수 없는 가해자의 역할로 나오기 때문에 학대에 관한 관점은 좁게 가질 것이 아니라 넓게 가지고 거시적으로 봐야 하는 것이다.

https://lady.khan.co.kr/khlady.html?mode=view&code=4&artid=201603281713021 (레이디경향, 해당 감독 인터뷰)

단순히 아동 학대 가해자를 처벌하고 응징하는 것에 중점을 두고 접근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그 아이의 성장 과정과 성숙 과정에서 제대로 된 어른이 될 수 있는 체계와 지원이 더 절실하다는 걸 알아야 하는데 그 과정에서 이런 아이들이 어른이 되면 훈육조차 학대로 변질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훈육을 하기에 앞서 반드시 스스로에게 자문자답하는 시간이 필요한 것이 바로 어릴 때의 학대 경험자다. 

무조건 매를 맞고 혼났다고 해서 학대라고 규정할 순 없다. 선진 외국에서도 아이가 잘못하면 매질을 하고 아이에게 매질, 손찌검을 할 수 없는 아동 보호가 철저한 국가에서도 (특히 미국) 아이가 잘못하면 매질을 하는 경우는 의외로 많다. 그리고 그걸 문제 삼지 않는다. 사회도 결국 매질(태형)을 안 할 뿐 그 보다 더 한 인신 구속과 자유 박탈이 되기 때문에 정당한 훈육과 훈계의 목적이라면 오히려 합리적인 훈육 방식이지 폭력이라고 단정할 수 없는 것이다. (대부분의 성인도 어릴 때 부모에게 혼나고 맞은 걸 맹목적인 폭력, 일방적인 가해라고 생각하지 않는 것과 같다)

아동 학대에 대한 현대적 관점은 학대를 하는 부모가 되지 않거나 아이를 학대하지 말라는 것이 아니다. 아무리 막아도 범죄는 늘 일어나는 것처럼 학대도 아이가 존재하는 한 무조건 나오게 되어 있다. 중요한 건 그런 사람들에 대한 접근이 아닌 주변인들의 관심인데 두 영화 모두 주변인들이 얼마나 방치하고 모르쇠 했느냐에 따라 결과가 나온다. 한국의 "어린 의뢰인"와 일본의 "너는 좋은 아이" 관점이 다른 것처럼 둘 다 다른 듯 해도 같은 부분이 많은데 결국 주변에서 어떻게 케어하고 접근하고 상황을 캐치해 문제를 직접 해결하게 도와주냐에 따라 결과는 달라지게 되어 있다.

아이를 때리지 마세요! 100번 설명하고 주장하는 것 보다 아이를 때리는 걸 목격했다면 신고하세요!가 훨씬 더 중요하고 예방 효과가 더 크다는 것이다. 주변에서 모른 체 하고 아무도 간섭을 하지 않고 들어도 못 들은 척, 봐도 못 본 척하기 때문에 그런 학대도 지속이 되고 가능한 것이지 훈육의 수준을 넘는 학대가 지속, 상습적으로 벌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단 한 사람이라도 누군가 관심과 경계를 갖고 접근한다면 그런 월권 행위는 보류 되거나 주춤하게 되어 있다. 아무리 자기 자식 문제이고 내 문제라고 해도 타인이 개입하거나 개입하려고 하면 심리적으로 위축 되고 주춤 하게 되는 것이 사람 심리다. 아동 학대는 나쁜 것이다의 인식 접근보다 아동 학대는 나쁘니 주위에 있다면 신고하세요가 더 많이 캠페인으로 활용되는 것도 그런 이유다. 아동 학대는 정작 부모의 문제 보다는 주변 이웃의 방치 여하에 따라 얼마든지 사태가 더 심각하게 발전되거나 악화될 수 있는 것이고 부모의 방임, 방치도 문제지만 이웃의 무관심, 방조, 방치가 더 나쁜 상태를 초래한다는 걸 모두가 인식해야 한다.

영화에 보면 판사는 여판사, 검사는 여검사가 나온다. 판사는 판사고 검사는 검사지 남판사, 남검사는 안 하면서 여판사, 여검사로 따로 지칭한 걸 따지진 말자, 직업 구성에 있어 성별이 따로 붙는 건 여성 차별이 아니라 여성 대우로 봐야 하는 인식도 필요하다. 여자라서 차별하기 위해 붙는 성별이 아니라 여자라서 구분하기 위해 붙는 성별이라는 것도 훈육과 폭력이 다른 것과 마찬가지 개념인데 그걸 논하는 자리는 아니니 일단 그 문제는 패스하고 본론으로 넘어와 아동 학대 관련해 이런 형태의 사법 구성은 되도록 지양했으면 하는 생각이 있다.

아동 문제이니 여검사와 여판사가 해야 하고, 가족 문제이니 여자가 판단하는 것이 더 옳다고 보는 것이 바로 이런 무의식적 접근인데 당연히 이런 경우 상황 몰입도가 달라 질 수 밖에 없어 법전에 따른 정확한 선고, 판결을 한다고 해도 어느 정도는 판사, 검사 개인의 사상과 생각이 들어갈 수 밖에 없다. 엄마라는 지위를 가질 수 있는 건 여자 만이 가능한 상황에서 엄마의 입장이 된다면 "나도 엄마의 한 사람으로서" 마음을 가질 수 밖에 없고 결국 더욱 가혹하게 처벌해야 한다고 생각할 수 밖에 없다. 물론 이게 100% 나쁜 년/놈에게만 적용 된다면야 상관이 없지만 때로는 억울한 누명을 쓰거나 잘못된 선입견으로 오판을 할 수 있는 계기가 되기 때문에 넓고 크게 보면 좋은 방향이 될 수 없다. 제3자의 시선에서 주관적인 생각은 최대한 배제하고 객관적인 실체로만 보고 따져야 하는 것이 법조인의 숙명이자 운명일 것이다. (여자에게 디테일한 접근은 강점이지만 반대로 과몰입이 되면 치명적 단점이 될 수 있다)

결국 아동(소년) 문제와 관련해 늘 가정법원에 일을 맡기고 그 가정법원에서는 여판사가 주 임무를 맡게 되는데 오히려 객관적인 시선에서 판결을 하려면 남자가 하는 것이 더 나을지 모른다. 다만 사건 흐름에 있어 공감대가 있냐 없냐 역시 상당한 역할을 하기에 무조건 남자가 맡아야 한다는 것이 아닌 자녀가 있는 법조인, 특히 손자녀가 있는 어른 판사가 하는 것이 낫다고 보는데 30~40대 연령이라면 남자도 배제하고 되도록 50~60대 나이의 경력 있고 나이 있는 손자녀가 있는 연륜 있는 판사가 맡아야 하는 것이 가장 적절하지 않나 하는 개인 생각을 해본다. 물론 그러기 위해서는 지금보다 더 많은 여검사와 여판사가 나와야 하고 또 그들이 중간에 그만두지 않고 계속 법원과 검찰에 근무할 수 있는 여건이 조성되어야 할 것이다. 연륜과 나이가 많은 여판사가 많지 않은 상황에서 결국 남판사가 하는 것이 더 낫다는 생각인데 연륜과 경험이 많은 여판사가 많다면 이 말은 굳이 의미가 없겠지만 아동 문제는 꼭 미혼, 비혼, 무자녀 상관 없이 여검사, 여판사가 맡아야 한다는 법조계 내부 인식도 고쳐야 한다.

일반 형사 재판도 비슷하겠지만 아동 문제, 가족 문제, 아동 학대, 청소년 문제, 아청법 관련한 아동, 청소년 폭행, 성폭행, 학교 폭력 등은 되도록이면 연륜 있는 남녀 판사, 자녀가 이미 성인이 된 경우 혹은 자녀가 결혼해 손자녀가 있는 남녀 판사가 맡아 연륜(경력) + 공감대(부모 마음)를 형성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어떨까 싶다. 아버지, 어머니일 때의 생각과 할머니, 할아버지일 때의 생각이 같을 순 없는 법, 결국 이런 아동 학대, 아동/청소년 성폭행 문제는 되도록 젊은 판사, 검사가 아닌 나이가 많은 검사와 판사에게 맡겨 형벌과 구제 방법에 대한 진지한 결과가 만들어졌으면 좋겠다. 

아래는 칠곡 계모 아동 학대 사건을 다루었던 "그것이 알고 싶다" 해당 회차, 로그인 없이 다시보기가 가능하다. 영화와 별개로 이 영화의 모티브가 된 칠곡 사건을 알고 싶다면 해당 방송 시청이 큰 도움이 된다. 919회가 처음으로 다루었던 방송이고 이후 940회에 추가로 한 번 더 다루면서 두 번 방영했다.  

https://programs.sbs.co.kr/culture/unansweredquestions/vod/55075/22000089021 (919회)_

https://programs.sbs.co.kr/culture/unansweredquestions/vod/55075/22000103688 (940회)

영화에서 유선(계모 역할)이 아이를 무차별적으로 학대하고 구타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연기라는 걸 알고 보면서도 움찔움찔 몸이 떨린다. 세상에서 제일 듣기 좋은 소리가 아이들 노는 소리, 새소리, 할머니 노랫가락 소리라고 하는데 그 소리에 대한 정겨움을 아는 사람이라면 아이가 피범벅이 되어 매질 당하며 내는 신음 소리가 영화 보는 내내 가슴을 후벼 팔지도 모른다. 선입견을 갖게 되면 안되지만 이래서 계모는 다들 어릴 때부터 동화 속 이야기부터 시작해 예나 지금이나 부정적으로 보는 것 같다. 그래서 "모" 만큼이나 엄마 뜻이 들어가는 또 다른 혈연 관계이자 엄마 역할이 가능한 "이모" "고모"의 소중함도 새삼 느낀다. (대부분 실제 아동 범죄를 보면 이모, 고모들이 개입하는 것과 하지 않는 것의 차이도 크다, 그들조차 방치, 방조하면 구제가 현실적으로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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