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별을 다루지만 차별하지 않는 영화 - 히든 피겨스 (Hidden Figur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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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예술/영화리뷰

차별을 다루지만 차별하지 않는 영화 - 히든 피겨스 (Hidden Figures)

by 깨알석사 2019. 2.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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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gures, 우리 발음으로는 피겨스, 혹은 피규어스, 수, 몸매, 사람(인물), 체격, 도형 등 다양한 의미로 쓰이는 단어다, 우리가 어떤 캐릭터를 모형으로 만든 것을 두고 피규어라고 하는데 그 피규어와 철자가 같다. (뜻도 같다) Hidden, 히든은 숨겨진, 혹은 잘 알려지지 않은 뜻을 가지며 히든싱어, 히든 챔피언처럼 우리 일상에서도 종종 쓰이는 외래어다. 히든싱어는 잘 알려지지 않은 숨은 실력파 가수, 히든 챔피언은 지금까지 몰랐던 숨은 강자, 알려지지 않은 승자, 영웅이라는 뜻으로 보통 해석한다.

히든 피겨스 역시 이런 맥락으로 이루어진 말이다. 영화 제목으로 쓰인 이 말은 잘 알려지지 않은 숨겨졌던 영웅들, 우리가 잘 몰랐던 사람들 (인물들) 이라는 뜻이며 흑인이라는 이유로 인종 차별을 겪고 여자라는 이유로 성차별이라는 이중고를 겪는 세 여자 이야기를 다룬 영화다. 아직 유색인종에 대한 차별이 있고 백인과 흑인 구역이 존재했으며 서로가 같이 한 공간을 공유하지만 실제로는 공유할 수 없던 일이 일상이었던 당시 미국 배경을 삼아 그들이 어떻게 인종차별과 성차별을 극복했는지 보여주는 논픽션 영화라 할 수 있다.

영화에는 세 명의 여주인공이 등장한다. 첫 번째는 영화 속 이야기의 큰 줄기를 만든 캐서린, 남들보다 똑똑한 수학적 재능을 가진 그녀는 대학원을 마치고 교사로 근무 하던 중 NASA 미항공우주국의 연구부에 근무하게 되면서 우주선 궤도 계산 업무를 담당한다. 하지만 흑인과 여자라는 이유로 남들이 이미 계산한 것을 검수하는 단순 업무만 한다. 두 번째 인물은 도로시, 역시 NASA(나사) 연구 센터 지원부서에서 수치 계산원으로 일반 전산 업무를 담당하고 있다. 탁월한 리더십을 가지고 있지만 흑인, 여자라는 이유로 직장만 나사일 뿐 평범한 계산 업무만 한다. 세 번째 인물은 메리, 수학자로서 마찬가지로 NASA 기술부에 입사한 인물로 우주 공학 엔지니어들과 함께 기술 분야를 담당하지만 흑인과 여자라는 이유로 보조 역할에 지나지 않는 업무를 하고 있다.

일단 이들은 시대 배경 자체가 흑인과 백인이 구별되는 시대였고 여성의 사회 진출이 많지 않던 여러가지 복합적인 요소들이 섞여 있는 시간을 담고 있다. 여기에 엄마라는 역할, 아내의 역할도 해야 하며 심지어 직장에서는 같은 여자이면서도 피부색이 다르다는 이유로 백인 여성들조차 이들을 차별하는 일이 많았는데 이런 모든 걸 이겨내고 견뎌야 하는 세 주인공의 고군분투기를 담은 영화라 할 수 있다. 본인들이 사용할 수 있는 컵이 따로 있고 화장실조차 백인 여성과 흑인 여성이 쓰는 공간이 나뉘어져 바쁜 시간마다 시간을 내어 멀리 떨어진 다른 건물의 화장실을 쓰는 장면은 그 상황 묘사 만으로도 이들의 힘겨운 정신 싸움을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다.

이 영화는 다분히 교훈적 메세지를 충분히 담고 있으며 보고 느끼고 배울 게 많은 영화임은 분명하다. 또 이 영화가 주는 사회적 편견과 시선이 현대에서도 여전히 유효하다는 걸 미국은 잘 알기에 종결된 과거형이 아닌 아직도 여전한 현재진행형의 모습을 담고 있어 누가, 어디서, 언제, 보느냐에 따라 느껴지는 감동과 메세지는 크게 달라질 것 같다.

이걸 남자가 보는 것과 여자가 보는 것, 또 백인인 사람이 보는 것과 흑인인 사람이 보는 것, 또는 미국 사회에서 흑인이 아니어도 같은 유색인종으로 분류되는 다른 남미, 아시아인들의 입장처럼 어느 위치에서 어떤 관점으로 보느냐에 따라 많이 달라질 수 있고 또 영화가 다루는 차별의 경험, 즉 학력, 인종, 성별, 연령, 가정사 등과 엮어 차별을 한 번이라도 경험한 사람이라면 영화가 주는 메세지의 강도는 완전히 다르게 해석될 수 있다.

다만 영화의 큰 맥락 전체를 이해하고 그것이 담고 있는 히든 스토리, 그 자체를 보고 충분히 공감한다면 영화가 갖는 힘의 방향은 바른 방향이 되지만 이걸 하나씩 떼어 장면 하나마다 의미를 붙이고 재해석하며 각자 논리에 따라 이용(?) 당한다면 영화는 또 다른 차별을 부추기는 의도치 않은 방향이 될 수도 있다. 여전히 인종차별, 흑백논란이 없는 사회라고 할 수 없지만 한 편으로는 영화 속 풍경처럼 인종차별과 흑백논란이 극명한 시대도 아니라서 여기서의 모습이 지금도 다른 게 없다라고 판단하고 확정한다면 그 차별에 대한 분노는 여전할 것이고 그 분노에 대한 또 다른 차별을 불러 일으키는 건 뻔하기 때문이다.

똑같은 긍정적 메세지를 담고 있음에도 누군가는 이걸 있는 그대로 긍정적으로 받아 들이는 반면, 누군가는 이걸 부정적으로 받아 들여 자신이 평소 생각한 부정적 편견의 보충제로 쓸 수도 있다. 세 흑인 여성이 자신들에게 주어진 상황과 배경에 순응하지 않고 열심히 극복하는 그 자체를 즐기고 호응하며 박수를 보낸다면 다행이지만, 이 때나 지금이나 다른 게 없다거나 상황 자체는 저 때보다는 낫지만 지금은 또 다른 차별이 있다면서 영화 끝날 때까지 평소의 부정적 편견을 버리지 못 했다면 영화 속 이야기는 오히려 그걸 깨우치는데 도움이 되었다기 보다는 한층 더 다지는데 활용되었다고 볼 수 밖에 없어 그런 사람들에게는 더 부정적인 편견의 수치가 강화 시킨 꼴이 된다. 오늘 리뷰는 그런 점에서 오히려 부정적인 편견을 갖게 되거나 그걸 더 다진 차별주의에 빠진 사람들을 위해 시간을 할애하려고 한다.

히든 피겨스라는 영화에서 가장 두드러지고 잘 표현 되었으며 핵심적인 걸 다룬 장면은 바로 초반의 장면이다, 이 장면 하나가 사실 모든 이야기를 다 담고 있고 심지어 결말까지 다 보여준다고 볼 수 있는데 출근길 고장 난 차 때문에 길에서 시간을 보내던 이 세 사람의 장면은 모든 이야기를 함축해서 보여준 진정한 히든 스토리라 할 수 있다. 

여자라는 건 성차별의 대상이 되지만 사회에서 한 편으로는 차별의 반대, 우대의 상징이 되기도 한다. 길거리에서 차가 고장 난 상태로 여자가 혼자 있으면 지나가는 차량을 대상으로 몇 명이 도와주냐는 실험도 마찬가지, 남자가 운전하는 차량이 고장 났을 때와 여자가 운전하는 차량이 고장 났을 때 (동승자 없이) 과연 누가 몇 명이 도와 주냐는 실험에서 "당연히" 예상한 것처럼 여자가 운전하는 고장 난 차량에 많은 남자 운전자들이 도움을 주기 위해 차를 세웠다. 심지어 그 자리에서 특별히 고쳐주지 못하는 상황임에도 말이다.

무전 여행, 혹은 배낭 여행이라 불리는 경우도 마찬가지, 일본 방송에서 실험한 예를 들면 북부에서 남부로 차를 얻어 타는 것 만으로 여행이 가능한지, 그리고 얼마나 빨리 갈 수 있고 도움을 받을 수 있는지, 남자와 여자 각각 상황을 나누어 실험을 했는데 역시 이번에도 여자가 먼저 여행을 마쳤다. 히치 하이킹을 통해 여행을 해야 하는 조건이 붙었는데 여자가 손을 흔들면 대다수의 사람들이 차를 세워 그를 다음 행선지로 갈 수 있도록 탑승을 시켜 주었고 남자의 경우는 차를 잡는 것 자체가 어려웠다. 도움을 받지 못한 건 아니지만 남자의 경우는 힘겹게 여정을 마친 반면 여자는 남자에 비해 많이 수월했다.

물론 이게 성차별과 관련해 모든 걸 설명하거나 다름을 말하는데 같을 순 없으나 맥락을 따져야 할 필요성은 있다. 그러니까 무조건적인 차별은 없고 상황과 여건에 따라 얼마든지 차별적 요소는 달라질 수 있는 것이다. 그게 단지 성별이 다르다는 이유, 두 실험 모두 단지 남자, 여자냐 차이만 있을 뿐인데 여자가 먼저 수혜를 받은 것처럼 사회는 성차별이라는 이름 속에서도 이중성을 갖고 있으며 그것에 대한 건 때로는 차별이 아닌 배려의 전제 조건이 되기도 한다.

여자라는 이유 만으로, 여자라는 이유 때문에, 단서는 같지만 어떤 상황에서 누구는 그것이 차별의 조건이 되기도 하고 반대로 누구는 그게 우대의 조건이 된다는 것이다. 다시 영화의 첫 도입부 이야기로 돌아가 세 주인공이 고장 난 차 때문에 잠시 길에서 시간을 보내고 있을 때 경찰차가 이들 앞에 나타난다. 경찰은 이들에게 고압적인 자세로 도움은 커녕 이들을 함부로 대한다. 그들이 흑인 그것도 흑인 여자들이기 때문이다. 대화 중 메리가 대꾸를 하자 경찰은 더욱 고압적인 자세로 메리를 쏘아 붙이는데 메리는 마치 흑인 노예 시절의 집주인과 하녀 관계처럼 고개를 숙이며 백인 경찰의 말에 "노 썰"이라며 꿀 먹은 벙어리가 된다. 이들에게는 여자라는 이유 만으로, 여자라는 이유 때문에 붙는 배려는 없다. 인종차별 앞에서는 여자에 대한 배려, 레이디 퍼스트 개념조차 무시되는 것이다.

하지만 잠시 뒤 이들은 이 경찰의 에스코트를 받으며 출근길에 오른다. 심지어 이들은 자기들끼리 차 안에서 상황극을 묘사하며 지금 흑인 여자 셋이 백인 경찰을 추격한다며 하느님이 기적(미라클)을 일으킨 것이라 재치 있는 묘사를 한다. 분명 조금 전까지 차별, 편견이 있었지만 지금은 배려, 우대가 된 것이다. 아주 짧은 시간에 벌어진 상황의 반전이지만 이들 여자 셋이 보여준 건 단순했다. 그게 운이었든 고장 난 차를 바로 고쳤고 이들은 고장 난 차 때문에 지체된 직장에 빨리 가야 하는 당위성을 말했을 뿐이다. 그 백인 경찰이 캐치한 것은 단 두 가지, 그들이 차를 직접 고친 것과 그들의 직장에 대한 정보다. (그들이 차를 고친 것이 의미 없이 나오지만 그렇지 않다)

별거 아닌 에피스도 차원으로 다룬 장면이지만 이 영화에서 경찰은 그들의 직장이 NASA라는 것에 일단 반응을 보인다. 누구나 쉽게 들어갈 수 있는 곳이 아니고 시대적 상황 자체가 소련과 미국의 우주 정복이 민감하던 시대로 이들 우주 전쟁에서 매우 중요한 곳이 바로 그곳이었기 때문이다. 여자 셋, 그것도 흑인 여자들이라면 그들이 여기서 근무를 한다고 해도 업무 영역은 한정될 수 밖에 없고 그렇게 생각할 수 밖에 없다. NASA도 다른 곳과 마찬가지로 식당이 있고 청소를 해야 하고 단순 사무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들이 이곳에 출근을 한다면 그들 이미지에 맞는 하급 업무를 담당할 것이라는 편견은 백인 경찰이 가질 수 밖에 없다. 그러나 이들이 엔지니어, 우주 공학자라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그게 운이든 실력이든 고장 난 차가 눈 앞에서 다시 고쳐진 것도 상황적 묘사와 절묘하게 맞아 떨어진 케이스인데 국가와 국민 전체가 관심을 갖는 우주 탐험에서 엔지니어 역할을 담당하는 사람들이라면 결코 무시할 수는 없는 법, 그들이 흑인, 혹은 여자라고 해도 아무 편견, 차별이 생기기 어렵다. 나사 직원이 아닌 나사 밖의 외부인의 입장에서라면 말이다. 국가 대사와 맞물려 이들을 에스코트 해줄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결국 누군가 편견과 차별 인식이 있을 때 그걸 무력화 시킬 수 있는 건 "실력", 증명할 수 있는 "실력"이라는 뜻이 된다. 그 실력만 확실히 보여주면 그게 운이든 실제 능력이든 차별과 편견은 어느 정도 잠재울 수 있다.

그러니까 이 영화의 도입부에서 고장 난 차가 등장하는 건 뜬금 없는 스토리가 아니다. 출근길 에피소드 하나가 백인 경찰과 흑인 여자라는 또 다른 사회적 편견과 차별을 보여주기 위한 장치로 쓰일 수 있어도 그걸 순식간에 역으로 다르게 보여준다는 건 (에스코트) 여자도, 피부색이 다른 유색인도, 나이가 어려도, 나이가 많아도, 장애가 있어도 실력으로 증명하고 실력으로 뒤쳐지지 않는 걸 보여주면 충분히 차별과 편견을 줄일 수 있다는 복선을 말한다.

영화에는 이들의 배우자, 가족들인 상대 흑인 남성들도 등장한다. 정작 나사 내부에서는 흑인 남자는 등장하지 않는다. NASA 내부에는 흑인도 여자만 나오며 흑인 남성은 NASA 밖의 사회 일상에서 거의 등장한다. 흑인에 대한 인종차별을 조금 더 다루려면 인종차별은 있어도 성차별이 없는 남자, 즉 흑인 남자도 나와야 하지만 그게 없다. 인종차별과 동시에 성차별을 겪는 세 주인공과 함께 인종차별 앞에서는 성차별도 아무 의미 없는 흑인 남자의 보편적인 모습, 청소부나 노무직, 운전직, 경비원 등이 나올 법 한데 그런 게 없다.

오히려 캐서린과 호감을 갖는 역할로 영관급 장교 (중령) 흑인 남성이 나온다. 시대적 배경을 감안하면 꽤 높은 지위고 고급 장교에 해당하기 때문에 오히려 남자는 인종차별, 성차별이 없는 것처럼 일부 그려진다. 물론 주요 장면마다 흑인 남자들이 규탄 시위를 하고 차별 철폐 시위를 하는 장면이 나오기 때문에 그것이 전부 그렇게 나오지는 않아도 보기에 따라서는 여자들 만의 고통처럼 보일 수 있다. 캐서린과 썸을 타는 남자가 단지 스토리 상의 전개에서 주인공의 애정을 보여주기 위한 도입이라면 그것도 나쁘지 않지만 이들 배역의 조합 역시 따지고 보면 히든 스토리로 보아야 한다. 

이것도 다르게 보면 도입부와 비슷하다. 다른 흑인 남성과 달리 (투쟁 시위) 캐서린과 썸을 타는 이 남성은 고급 장교다. 그 정도 지위가 되려면 많은 노력은 물론 실력도 겸비해야 하는 경우다. 흑인과 백인이 사용하는 곳과 흑인과 백인의 물건이 따로 있는 상황에서 흑인 고급 장교 아래 모두 흑인 일반 장교와 부사관, 병으로 다 채울 수 없다. 분명 백인 부하가 있다. 무엇보다 계급 자체가 중령이기 때문에 그 아래 소령 계급 밑의 모든 백인 군인은 이 남자 아래 지위를 갖는다. 사회가 아닌 군대에만 통용된다고 해도 군복을 입은 현역 중령이면 사회에서도 그 군인이 흑인이라는 이유로 무시하기 어렵고 역시 시대 자체가 군인이 대우 받는 시절이기 때문에 흑인이 지휘관이 된다는 건 그렇게 쉽지 않다.

영화의 전반적인 상황 전개, 주요 캐릭터들의 역할 자체가 무조건적인 사회차별, 편견에 대한 도전과 혁파가 아니라 실력으로 무장한 사람들의 객관적인 "인정"을 다루고 있으며 그 사회적 인정, 차별에 대항하는 인정에는 실력이 뒷받침 되고 있다는 사실을 숨겨서(히든) 보여주고 있는 셈이다. 그러니까 수 많은 흑인들이 길거리에서 피켓을 들고 시위를 하며 투쟁을 하고 싸우지만 단순히 그런 주장, 사회적 편견 해소를 위한 갈망을 외치기 보다는 실력 그 자체로 이런 편견과 차별이 쓸모 없다는 걸 증명하는 것이 더 효과적이고 빠르며 더 확실하다는 걸 다르게 보여주고 있다고도 볼 수 있다.

나는 이 영화에서 오히려 성차별적인 건 보지 못했다. 분명 흑인이라는 피부색 하나로 인종차별이라는 메인을 끌고 가면서 주인공이 여자들이기 때문에 성차별로도 보일 수 있는 것들로 만들지만 대부분 자세히 보면 그건 성차별이 아니라 원래 메인인 인종차별에 근거한 것들, 단순 업무를 하는 것도 흑인에 대한 것이 더 크다. 물론 백인 여성들도 남자 직원과 비교하면 성차별적인 요소로 뒤처리 업무 수준을 맡는 수준에 그치지만 그건 주인공과 달리 그 업무에 만족하는 평범한 여직원들일 뿐, 그들 자체가 차별 받는다고 여기지 않는다. 그걸 차별로 인식 했다면 그들도 분명 주인공들처럼 무언가 다른 것이 있어야 하거나 연출 되었을 것이다. 도로시의 경우 백인 여성들과 오히려 부딪히는 장면이 많이 나온다. 인종 차별은 여전해도 성차별은 정작 영화 속 NASA에 없다고 봐야 하는데 성차별이 만연하고 그게 확실하다면 백인 여성들도 주인공과 다른 흑인 여성 직원들과 함께 해야 하지만 반대 쪽에 있다는 것 자체는 결국 피부색이 모든 걸 결정 짓는 상황이라고 해석할 수 밖에 없다. 

캐서린이 연구부에서도 소외를 당하고 하급 업무 배치는 받는 것도 여자가 아닌 흑인이기 때문이지, 성차별이 부서마다 존재했다면 그 부서에서 함께 일하고 같은 선상에서 책상을 배치하는 것도 당연히 이루어지기 어렵다. 캐빈 코스트너와 함께 일하는 캐서린의 경우와 여자들끼리만 근무하는 도로시의 경우가 대조적인 것도 바로 그런 이유, 모든 남자는 캐빈 코스트너와 같은 연구부에, 모든 여자들은 도로시와 같은 지원부서에 있다면, 그런 구조와 배치라면 이미 성차별이 확실히 되고 있다는 걸 증명하지만 캐서린의 경우는 실력과 경력에 따른 차등과 차이는 있어도 성차별로 처음부터 나눈 건 찾아 보기 어렵고 또 도로시의 경우도 남녀 대결이 아닌 여여 대결, 백인 여자와 흑인 여자의 구도이기 때문에 성차별 요소가 없다.

엔지니어를 꿈꾸는 메리의 경우는 조금 다르고 메리는 성차별을 받고 있다고 볼 사람도 있지만 이것도 본질은 다르다. 엔지니어로서 가능성과 실력을 인정한 건 정작 "백인 남성"의 상급자, 그녀에게 엔지니어로서의 가능성을 보고 그녀에게 제대로 된 기술자로 일을 해보라고 추천한 것도 "백인 남성"이다. 성차별이 있었다면 여자가 무슨~, 당연히 이렇게 진행되어야 한다. 그러나 상급자는 남녀 가르지 않고 실력만 보고 제대로 할 수 있음 도전하라고 했으며 조건만 되면 받아 주겠다는 식으로 그녀에게 힘을 주었다. 물론 그녀가 우주 공학 엔지니어로서 결심을 굳히고 도전하는 과정에서 소송을 겪게 되고 그 소송에는 여자는 입학이 안된다는 내용이 나와 그건 성차별 요소라고 하겠지만 이것마저도 다르다. 

엔지니어가 되기 위해서는 지정된 대학 과정 이수가 필요했고 그 대학 과정을 이수하기 위해서는 또 해당 특정 고교의 과목 이수가 필요했다. 문제는 그 학교가 "여자를 입학 시키지 않는다"는 점인데 이게 다르게 봐야 할 것이 "남자고교"와 "여자고교"가 존재하는 상황에서 남고에 여자가 들어가려고 하니 그게 문제가 된 것이지 그게 남녀공학이었다면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러니까 하필 그 대학 과정에서 필요한 이수 코스가 특정 고교인데 그 고교가 하필 또 남자 고등학교이다보니 여자로서는 진입이 불가능한, 처음부터 시도할 수 없는 꿈이 된 것인데 예나 지금이나 남고에는 남자가, 여고에는 여자가 들어가는 것처럼 이 부분은 다르게 봐야 한다. 만약 반대로 여고인데 남학생이 여고가 여자만 받는다는 걸 가지고 차별이라고 해서 자기도 꼭 여고에 들어가겠다고 소송을 건다면 사람들은 어떻게 볼까. 여고라고 해서 남학생을 안 받는 건 차별이다, 그게 맞다 호응을 해야 할까?

모든 고교 과정, 고등학력은 남자만 받는다라고 하면 그건 성차별이다. 모든 대학은 고등학교를 졸업한 졸업생만 가능한데 모든 고등학교는 남자만 받는다고 하면 역시 성차별이다. 하지만 영화에 나오는 주인공 셋 모두 "과학자"이며 수학자다. 대학원과 대학을 졸업한 우수 자원이며 셋 모두 이전에 "교사"라는 공통점도 가지고 있다. 이들 역시 고등학교를 모두 마쳤으며 모든 정규 과정을 밟은 사람들이다. 그 과정에서 여자라는 이유로 차별을 받았다면 그건 성차별이지만 이들이 고등학교를 다니고 졸업하는 것이 문제가 없었다면 결국 여학교나 남학교나 그건 성별에 따른 "구분"이지 "차별"이 아니다. 이건 지금도 여대, 여고가 존재하는 것과 같다.

남학교, 남자 고등학교에서 하는 수업과 과목을 들어야만 이수가 되고 그래야 해당 대학 진학을 통해 엔지니어 자격을 받는 구조라 하필 이게 성차별적인 요소로 쓰였지만 여자들이 공학 진출을 (지금도) 많이 하지 않고 그 때나 지금이나 여고에서 공대를 목표로 하는 수업 과정이나 클래스가 따로 없다. 지금의 과학고처럼 과학, 기술을 전문으로 하는 과학 인재 양성을 하려면 과학고와 같은 특목고, 또는 일반 고교의 심화 과정을 따로 만들어야 하는데 그게 아무래도 여고 보다는 남고에 치중되거나 몰릴 수 밖에 없는 것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다. 지금이야 남녀공학 체제가 많고 과학고도 마찬가지 남녀공학이라 이런 것이 문제가 안되지만 이건 시대 상황에 따른 자연적인 문제이지 성차별이 근간이 된 주요 요소가 되지 않는다. 결국 소송에서 이겨 남고에 입학하는 특례를 적용 받는 걸로 해결이 되는데 이 자체가 그 과목과 코스가 그 "학교"에 있어서고 그 학교가 "남학교"라 그럴 뿐, 성차별로 쭉 이어보기는 어렵다. 

메리가 재판정에서 소송을 통해 자기의 주장을 할 때 그게 타당하다면 분명 고칠 수 있다. 그리고 그건 얼마든지 바꿀 수 있는 것이다. 여자는 입학 불가라는 것으로 본질을 가렸지만 여대에도 남학생이 입학 불가인 것처럼 성별에 따라 만들어진 학교의 설립 기준과 성차별은 구분해야 한다. 여대에도 교환학생이나 어학원, 교육원을 통해 남학생이 들어갈 수 있고 또는 특례 입학 방식으로 특정 과목, 특정 전공 분야의 청강을 통해 학점 이수는 분명 가능하다. 졸업장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학점이 필요한 것이기 때문에 그 학교에서 반드시 이수해야 하는 경우라면 얼마든지 학점 이수만 하는 건 불가능한 것이 아니다. 결국 메리도 그랬던 것처럼 그 고교의 졸업장이 필요한 것이 아니다 (그는 이미 대학을 졸업했다) 그 고교의 과목 이수와 이수증이 필요했을 뿐, 그 소송으로 성차별을 깨거나 (있지도 않았지만) 그 고등학교를 여학생 입학 학교로 만든 것이 아니다. 이수할 수 있게 개별 특례 입학을 허용 받았을 뿐이다. 그러니까 이게 성차별적 요소를 다룬 영화라면 입학 자체가 소송의 본질이 되고 중요한 것이 아니라 남고 여고라는 것 자체가 없어져야 하는 상황이 만들어져야 한다.

내가 초반에 언급한 긍정적인 요소와 부정적인 요소의 차이가 바로 이 점이다. 이건 인종차별이 가장 크고 그 안에서 인종에 따라 편견과 차별이 이루어지는 것이 9할에 가까운데 주인공 모두 여자이고 이들이 흑인 여자이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성차별과도 연관이 되기 쉽다. 정확히 보면 그런 성차별은 연출되는 그 직장(NASA)에서는 거의 없고 영화 전반에도 크게 나오지는 않는다. 차별의 중심이 되는 화장실도 남녀 차별이 아닌 인종 차별, 버스에서 유색인종이 앉는 자리, 좌석을 구분한 것도 남자 따로, 여자 따로가 아닌 백인, 흑인 인종 차별이다. 영화에도 나오지만 직장을 다니지 못하게 하거나 운전을 못 하게 하는 것도 아니다. 성차별을 많이 다루는 것 같지만 실상 성차별은 거의 없고 단지 그들의 피부색에 따른 인종 차별, 인간 차별이 가장 크다. 그래서 이 영화를 인종 차별과 함께 성차별로 엮어 봤거나 성차별을 더 크게 인식해 봤다면 잘 못 본 것이다. 그리고 예나 지금이나 (특히 메리의 소송을 통해) 여자들에게 불리하거나 여자들을 무시하는 건 여전하다고 생각하면 곤란하다. 영화는 그런 방향을 갖지 않기 때문이다.

영화는 다음 영화 기준 일반인 9점대, 전문가 6점대 (반올림하면 7점대) 평가를 받았다. 상당히 좋은 반응과 평가를 받았는데 처음부터 끝까지 어디 흠 잡을 곳 없이 깔끔한 진행과 적절한 묘사, 진부하지 않고 오히려 코믹스럽게 다루면서도 때로는 심각하게 진지할 때는 진지하게 만든 아주 좋은 영화다, 나 역시 평가에 있어 10점 만점에 10점, 수우미양가에서 "수"로 양보 없이 만점을 준다.

여전히 지구촌 사회에 만연한 피부색에 따른 차별과 편견, 사회적 인식을 담고 있다는 점, 그리고 그건 얼마든지 깨 부술 수 있다는 점, 결국 모든 건 자기 하기 나름이라는 교훈을 주었다는 점에서 높이 평가를 한다. 자라나는 아이들, 청소년에게 한 번은 꼭 보라고 추천하고 싶고 되도록이면 사회적 편견과 성차별에 찌들어 고착되고 고립된 사고 방식을 갖는 여성 차별주의자, 여성은 늘 차별 받는다고 피해 망상에 사로잡힌 자들도 꼭 보았으면 하는 영화다. 그게 남자든 여자든 말이다. 

영화는 캐서린의 비중이 크다. 그녀가 수학적 공식을 찾아내어 우주선의 궤도를 계산하는 장면, 사다리에 올라가 칠판에 남들이 풀지 못한 공식을 푸는 모습은 영화 속 명장면이라는 건 분명하다. 소송을 통해 사회와 직접 싸우고 판사 앞에서 당당하게 자기 주장을 하여 여자들의 사회 진출에 획을 그은 메리 역시 중요 인물이다. 반면 도로시의 경우는 두 사람보다 재능적으로 뛰어나거나 거창하지 않다. 이들이 속한 부서 자체만 봐도 캐서린은 연구부(핵심부서), 메리는 기술부(엔지니어 ), 도로시는 단순 계산원들이 있는 지원부서다. 백인, 흑인 가리지 않고 이들이 속한 부서의 동료들 역시 캐서린 쪽은 고급 인력, 메리 쪽 역시 공학 기술인들이다. 반면 도로시 쪽은 다 같은 평범한 계산원들이다. 그게 백인(여성)이어도 마찬가지, 단순 업무 종사자들이다. 하지만 내가 정작 주목한 건 "도로시" 위 메이킹 이미지에서 가운데 있는 넉살 좋아 보이는 저 여성의 역할이다. 

IBM 컴퓨터가 도입되면서 일자리를 잃게 되는 과정, 그리고 다른 흑인 여성들의 일자리 문제도 실상 도로시 이야기에서 다루어진다. 메리의 성차별적 상황, 캐서린의 인종차별적 상황이 극명하게 나오지 않지만 도로시는 묵묵히 역할을 하며 수 많은 흑인 여성들의 리더 다운 모습을 보인다. 특히 회사 밖의 다른 사회 생활에서도 마찬가지, 버스에서 유색인 전용 좌석에 앉아 차별과 평등은 다르다는 걸 아들에게 직접 설명하고 가르치는데 엄마로서, 흑인으로서, 여자로서 조언과 조력을 하는 건 도로시, 진짜 모습은 도로시가 더 많다.

컴퓨터가 계산원들 대신 수치 계산을 하면 일자리가 사라질 것을 미리 예견했고 본인 스스로 프로그래밍을 배워 컴퓨터가 있어도 일자리가 사라지지 않는 방법을 찾았다. 그리고 그걸 동료에게 전파했고 나중에 백인 동료 여직원들에게도 도움을 주는 것으로 나온다. 다른 두 주인공은 각자, 자기 개인 영역에 대한 도전과 용기라면 도로시의 경우는 타인에 대한 영역, 집단에 대한 도전과 용기다. 내가 겪는 불행이 아닌 모두가 겪는 불행에 도전했다는 점, 그녀 역시 프로그래밍이라는 새로은 영역을 개척해 계산원들을 내쫒지 않고 전산실 직원으로 탈바꿈 시켰다는 점에서 여러가지 교훈이 더 많다. 

로봇이 앞으로 우리 일자리를 대신하고 사람은 로봇에게 일자리를 뺏긴다는 말이 많지만 도로시가 보여준 모습을 보면 그게 충분히 해결 가능하고 관점만 다르게 가지면 충분히 해소할 수 있음을 증명 했는데 로봇이 우리 대신 산업 현장에서 제조 생산을 담당한다고 해도 결국 그 로봇은 누군가 만들어야만 탄생이 된다. 그걸 다른 로봇이 만든다고 해도 결국 그 또 다른 로봇도 결국 어디선가는 사람 손에 의해 만들어져야 하는 것, 프로그래밍도 마찬가지, 결국 사람 손이 들어가야 한다. 쉽게 말해 공작기계라 불리우는 공작기계산업, 대부분의 제조 산업이 로봇으로 대체 된다면 그 만큼 사람의 일자리가 줄어든다고 생각하지만 반대로 그 만큼 공작기계 산업은 사람의 손이 더 많이 필요하다는 뜻이 되기에 역설적으로 일자리 총량은 크게 달라지지 않는 다는 것이다. 예전에는 개별 회사가 다 생산을 사람 손에 했다면 이제는 로봇이 그걸 대체한다고 할 경우, 결국 그 생산 노동자가 되는 로봇 만드는 공정은 사람이 되어야 하기 때문에 일자리의 위치만 바뀔 뿐, 생산 방식과 구조만 바뀔 뿐, 다양한 공작기계와 프로그램이 꾸준히 만들어져야 이것도 가능하기에 결국 사람 손이 들어가는 공정은 일부 줄어들어도 완전 소멸되기는 어렵다. 그걸 도로시가 제대로 보여줬다. 

개인이 잘해서, 개인이 능력만 있으면 자기 문제는 얼마 정도 해소는 되는데 그걸 캐서린과 메리가 보여준 것이고 그 외 적인 전체적인 흐름, 나만 잘 되어서는 차별이 해소되기 어렵고 전체가 잘 되고 전체가 실력이 있어야 모든 선입견과 편견, 차별이 해소될 수 있다는 걸 보여준 것이 바로 도로시다. 영화에서 백인 전용 화장실만 있어 화장실 이용을 못해 전전긍긍하던 캐서린의 경우, 실화를 다룬 만큼 상당수는 논픽션이지만 일부는 픽션이 되는데 실제 영화와 달리 백인과 유색인(흑인) 전용 화장실이 나뉘어져 있었다는 걸 근무 할 때 2년 넘게 몰랐다는 사실 자체가 결국 개인이 잘하면 개인 문제는 해소가 되지만 개인이 잘 한다고 모든 선입견과 편견이 사라지는 건 아니라는 걸 반증하기도 한다.

그러니까 영화 속 남자 흑인들의 모습처럼 투쟁, 시위만 해서도 안되며 여주인공처럼 자기 능력과 실력으로 그 한정된 부분만 깨 부셔도 의미가 없다. 둘의 교집합, 실력이 뒷받침 되는 상황에서 투쟁과 시위를 한다면 그것에 동종하는 사람들, 실력 자체가 있으면 인정을 하지 않을 수가 없고 따르지 않을 이유가 없는데 그런 자기 능력을 먼저 보여준 사람이 그런 시위와 투쟁을 통해 편견과 차별을 해소하려고 노력한다면 그 때가 바로 빛을 본다고 난 생각한다. 그 디테일한 교집합 역시 바로 세 여성 주인공 중 한 명인 도로시의 스토리가 해당 된다. 사람들이 찾는 편견과 차별을 없애는 방법, 영화에서 찾는 메세지는 캐서린과 메리가 아닌 도로시를 보고 느껴야 한다는 것이다.

얼마 전 MBC 100분 토론이 주요 화제가 된 적이 있다. 젠더 차별, 성차별, 역차별이라는 주제로 여성 할당제에 관한 이야기인데 모르는 사람은 몰라도 이걸 본 사람들은 멘붕이 꽤 있었던 화제의 방송으로 방송 진행자가 생방에서 오죽하면 자기가 사회를 맡고 이렇게 진행이 안된 적이 처음이라 할 정도로 난장판이 된 토론이기도 하다.

"100분 토론 여성 할당제"로 주요 검색사를 통해 관련 내용을 보면 유튜브는 물론 많은 커뮤니티에서도 논쟁이 꽤 있고 많이 다룬 영역인데 전체 영상을 보고 싶다면 MBC 100분 토론에서 무료 다시보기가 가능하니 한 번 보는 것도 좋다. 

http://www.imbc.com/broad/tv/culture/toron/vod/ (MBC 100분 토론 다시보기)

https://youtu.be/JPtAxtvGKDo (MBC 엠빅 공식 채널에서 간추린 해당 편집본)

평소 나는 이런 성차별에 있어 성차별은 오히려 "존재"해야 한다고 자주 언급을 했다. 물론 앞뒤 맥락을 따져야 하며 그냥 들으면 오해하기 딱 좋은 말이다. 인간 차별은 있으면 안된다. 그러나 남녀 차별은 있어야 한다, 이게 같다고 생각하면 할 말이 없다. 그러나 분명 다르다. 인종 차별이 바로 인간 차별이다. 인간의 종이 다르다는 이유, 피부색이 다르고 인종이 다르다는 이유로 지구촌 사회에서 차별을 한다면 그건 차별이 맞다. 그러나 차별과 구별은 구분해야 하며 차별과 차이도 구분해야 한다. 인간 그 자체는 다르지 않고 다를 수 없다. 인간이라는 말 자체만 따져도 차이라는 것이 있지 않다. 인간은 그냥 인간이다. 그게 피부색, 체형이 다르다는 이유로 차별을 하면 당연히 정당한 구분이 아닌 대우를 달리 하겠다는 뜻이라 있어서는 안된다. 또 다른 대표적인 인간 차별이 "장애인 차별"이다. 생김새가 조금 다르거나 장애가 있어 나와 신체 구조가 다르다는 이유로 차별하는 경우, 인종 차별과 동일하게 취급하는 것이 바로 장애인 차별이다. 실제로 지구촌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두 차별을 가장 해서는 안되는 금기 항목으로 따진다.

반면 남녀 차별은 본질이 다르다, 남자와 여자는 원래 다르다, 생김새도 다르다. 이걸 같은 "인간"으로 묶어 인간 차별로 해석하면 안된다. 인간 차별은 인종 차별이지 남녀 차별은 인간 자체가 아닌 성별에 따른 구분으로 차별이 되지 않는다. 체형 조건 자체가 완전히 다르며 남녀가 모두 같다고 하지만 여자는 남자에게 없는 것이 있다. 모든 인간은 뇌, 머리, 목, 팔, 다리, 성기, 손가락, 발가락 등 신체 구조가 같다. 그래서 인간 자체는 모두 동일하다. 하지만 남녀 성별로 들어가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모양, 생김새가 달라 남자는 있고 여자는 없다는 식으로 말장난을 하지만 정말로 남자는 없고 여자만 있는 장기가 따로 있다면 이야기는 다르다. 모든 인간이 인간의 개념으로 보면 신체 구조가 모두 같다고 볼 수 있지만 남자와 여자로 나누면 남자는 자궁이라는 장기가 아예 없고 여자는 자궁이라는 장기가 따로 있다. 인간의 뼈는 모두 갯수가 같고 형태가 같으며 장기 역시 모두 같다고 하지만 그걸 남녀로 나뉘면 남자는 없고 여자만 있는 게 바로 남녀 차이다. 

그 근본이 다르고 형질이 다르니 차이는 당연히 나온다. 체격이 다르고 힘의 크기도 다르며 생김새도 달라진다. 가꿈을 통해 외형의 변화가 아닌 순수한 모습, 본질 자체가 달라진다. 그러니까 차별이라는 말에서 "차"가 아닌 "별"을 가지고 구별이라는 관점으로 보아야 하는 것이 있고 차별이라는 말에서 반대로 "별"이 아닌 "차"에 근거를 두어 "차이"라는 말로 관점을 보아야 하는 것이 있다는 뜻이다. 성별이라는 말 자체도 성에 따른 구"별"을 말하지 성에 따른 차"별"을 뜻하는 말이 아니다. 성에 따른 구분이 된다는 건 그 자체가 성에 따라 구분되는 역할과 지위, 위치가 있다는 뜻이다. 그렇기 때문에 남녀 차별 자체는 성립되기 어렵다. 근본이 다르고 조건이 다른 경우라 차별이 아닌 차이다.

부부가 이혼을 할 때 부모 어느 쪽이든 양육을 하는 것에 대해 차이가 있을 수 없다. 양육 그 자체로 보면 말이다. 양성 + 육성의 뜻을 가진 양육은 먹여주고 재워주고 키워주기만 하면 된다. 그건 부모 어느 쪽이든 가능하다. 그러나 우리는 대부분 이혼을 할 때 부가 아닌 모, 아버지가 아닌 어머니 쪽에 양육권이 가야 된다는 걸 합리적인 선택이라고 본다. 아버지가 키우는 것 보다는 어머니 밑에서 키우는 것이 더 낫다는 것이다. 실제로 양육에서도 남녀의 차이가 크고 존재한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애는 다 같이 키우는 것이라 하지만 실제로 그게 100% 맞는 말이라고 장담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으리라 본다. 아버지가 장기 출장, 해외 출장을 가도 가정 유지와 자녀 양육에 문제가 없지만 반대로 어머니가 장기 출장, 해외 출장을 가면 그게 꼭 그렇게 동일하게 되지 않는다. 자잘한 문제가 더 생기거나 큰 문제가 생긴다. 기러기 아빠는 있어도 기러기 엄마는 없는 것도 그런 이유, 아이들이 해외 유학을 가면 엄마만 따라 가도 문제가 생기지 않는 것처럼 우리는 남녀 역할이 분명 다르다는 걸 알고 있다. (라푼젤 증후군도 비슷한 맥락)

차별은 같은 부류, 같은 성별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차별, 성별이 다르면 차이다. 형제끼리 비교를 하고 그것에 대해 차등을 두면 차별, 자매끼리 있는 상황에서 자매 간에 차등을 두면 차별이다. 남자들끼리 있는 곳에서 그들 세계에 차이를 두면 그게 차별, 여자들끼리 있는 곳에서 그들 세계에 차이를 두면 그게 차별이다. 대부분 실제로 남녀 성별에 따른 성차별 보다는 같은 동성 간의 문제에서 생기는 인간 차별이 사회 차별의 대부분이다. 그 동급생, 동년배, 동성이라는 기준에서 학력 차이, 가정 형편 차이, 부모 직업 차이, 재력 수준의 차이 등이 차별의 중요 근거가 되며 그런 차이는 당연히 차별로 이어진다. 여자들 대다수가 소수의 여성이 근무하는 경우가 아닌 여직원이 많은 곳에서는 정작 남자 직원들에 의한 성차별 보다는 여성들끼리 벌어지는 암투, 따돌림, 차별이 더 많다. 남자도 마찬가지

개념으로도 그렇고 실제 발현되는 차별적 요소를 보면 인간 차별은 있으면 안되지만 존재한다. 인종 차별과 장애인 차별이 여전하기 때문이다. 반대로 남녀 차별은 필연적이고 차별이 아닌 차이로 오히려 있어야 정상적인 사회 기능과 작동이 가능한데 이걸 부정한다. 그리고 존재하면 안된다고 맹신한다. 이게 오히려 인종 차별과 장애인 차별보다 더 가치 있고 높게 다룬다. 인종 차별과 장애인 차별은 근본적으로 차별하면 안된다는 것이 모든 인류가 공통적으로 생각하는 단일 사상이라 언젠가는 극소수의 사례로 사라지게 할 수 있지만 남녀 차별, 성차별이라는 개념은 애초에 그게 사라질 수 있는 개념이 아니기 때문에 그걸 차이가 아닌 차별로 인식한다면 지구가 멸망하는 그 순간까지 그걸 보기는 어려울 것이다. 모든 인간은 남자와 여자로 나뉘어 태어나는 순간 "차이"가 생기기 때문이다. 그 차이를 차별로 본다면 지구 멸망 그 순간까지 풀 수 없는 난제가 된다.

우리는 여성 대통령, 여성 국무총리, 여성 장관을 일찍이 배출 했다. 과거 역사에서도 여성이 국왕이었던 시절이 있었고 우리도 여왕이 있었다. 군대에서도 여군의 입지가 늘고 있고 공직 사회는 물론 사회 전반에도 여성 진출이 많아졌다. 여전히 남자와 비교해서 같은 급료를 받지 않는다고 하지만 실적을 다루는 분야, 성과를 다루는 분야에서는 그마저도 맞는 말이라 할 수 없다. 영화 속 그들처럼 하기 나름이고 충분히 상급자로 나서는 여성들도 많기 때문이다. 

존경심과 존중은 강제로 주입되는 것이 아니며 그게 특정 성별이라고 해서 생성되지도 않는다. 그건 남녀 상관 없이 그 사람의 인덕, 도덕, 양심, 자질, 능력, 실력에 근거하며 그 사람이 이런 뒷받침 되는 기본 자질과 소양을 갖추었다면 그 사람이 여자든 남자든 그건 중요치 않다. 모든 사람이 이건 똑같다. 문제는 이런 기본 능력과 자질이 동일함에도 정말로 차별을 받느냐인데 남자가 보기에도 여자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그건 꼭 그렇지 않다고 생각할 것이다. 남자가 커피를 타 달라고 하면 성차별이라 하면서도 다른 남자 직원에게 커피를 타 달라고 했다가 거부 당하면 배려가 없다고 투정 부리는 경우처럼 남이 하면 불륜 내가 하면 로맨스인 것도 의외로 많다.

우리 회사는 학력에 따라 직급이 다르게 시작한다. 고졸 사원은 정사원3, 전문대 졸업은 정사원2, 4년제 대학 졸업은 정사원1이다. 당연히 급여 차이도 있다. 직급 출발이 다르니 승진을 해도 차이가 난다. 이것도 보기에 따라 학력 차별이다. 그러나 애초에 정사원을 1~3으로 나눈 이유 자체를 알면 이건 차별이 아니다. 그 사람이 해당 업무와 관련해 교육에 투자한 것에 대한 비율, 그 비율에 맞는 교육 수준과 업무 이해력을 표준화 한 것으로 이것이 고졸은 사원, 전문대졸은 주임, 대졸은 대리로 시작한다는 것이 아님을 알아야 한다. 혹은 고졸은 인턴, 전문대졸은 수습(계약), 대졸은 사원(정)이라는 것도 아니다. 그게 핵심. 사원 직급은 어차피 그 안에서 다 같은 사원이고 선후배 관계도 직급 기준이 아닌 입사일 기준으로 연령까지 감안하면 동기와 다름이 없다.

중요한 건 정사원3에서 1까지 이들 중 주임이나 대리로 승진하는 건 오로지 실력과 업무 성과에 기반한다. 실제로 관리직에 있는 사람들 절반은 정사원3, 고졸 출신이다. 그리고 그들의 반은 여직원이다. 대학 졸업이라는 학력 차별은 정사원에게만 적용되고 정사원은 어차피 평사원으로 업무 기대치 한계가 있다. 결국 진짜 승부는 정사원 딱지를 떼는 보직이 있는 경우다. 단순 근무 연차에 따른 호봉이 기준이 아닌 실력으로 오른 것이라 그들을 무시하는 사람도 없다. 영화 속 주인공처럼 그들이 하급자라 해도 무조건 여자라는 이유로 고졸이라는 이유로 무시하는 상급자가 없고 반대로 상급자가 여자 혹은 고졸 출신이라는 이유로 하대 하는 경우도 없다. 같이 일하다 보면 업무 성과는 물론 실력 차이가 날 수 밖에 없어 알아서 꼬리를 내린다. 그건 너희 회사 경우지 일반화는 아니지 않냐 하면 할 말이 없지만 정말 그게 통용되지 않냐고 반문하고 싶다.

사람의 본디 심리는 다 같다. 일을 잘하면 눈여겨 보게 되고 일을 남들보다 탁월하게 잘 수행하면 후계자로 뽑는다. 그게 알바라고 해도 단순 노동직이나 편의점, 주유소 알바라고 해도 내 회사, 내 일이라고 생각하고 하는 사람과 그냥 다니는 사람은 차원이 다르다. 최근 알바 광고도 알바 리스펙이라는 타이틀로 전문성을 강조하는 형태의 광고가 많은데 (딸기우유핑크를 맞혀 보세요~) 그런 사람에게 성차별은 의미가 없다. 나이도, 학력마저도 말이다. 남들보다 열심히 일하고 남들보다 먼저 출근하고 남들보다 먼저 빨리 일을 끝내면 그게 여자든, 고졸이든, 분명 깨 부술 수 있다는 걸 우리는 안다.

히든 피겨스는 인간 차별, 인종과 장애인에 대한 차별과 같은 본질적인 차별을 통해 우리가 미처 보지 못했거나 발견하지 못한 것들, 차별이라는 선입견에 눈이 가려 본질을 보지 못한 것에 대한 이야기다. 오히려 두드러지게 보여지는 것 같은 성차별은 본질이 아니며 문제가 되지도 않고 영화에서도 다루지 않는다. 오히려 인종 차별을 가지고 장애인 차별과 같은 같은 상황, 분명 할 수 있고 해낼 수 있음에도 처음부터 기회조차 주지 않고 차단하고 차별하는 본질에 대한 탐구가 기반되어야 한다. 그리고 그걸 찾아 내거나 찾을 수 있는 역량을 키워야 한다. 없다면 이 영화를 보고 깨달아야 하는 것이다. 캐서린이, 메리가 도로시가 스스로 인종 차별과 성 차별을 극복한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이들의 상급자인 백인들이 차별을 하지 않아 이들이 성장하게 된다. 차별은 극복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차별을 하는 상대도 뜻을 같이해 오히려 부술 수 있다는 걸 보여 준 사례, 이래서 이 영화는 이 글의 제목처럼 "차별을 다루지만 차별하지 않는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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