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에도 어려운 사람이 많은데 왜 해외 기아/난민을 도와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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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사회복지

우리나라에도 어려운 사람이 많은데 왜 해외 기아/난민을 도와야 할까?

by 깨알석사 2016. 5.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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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원봉사를 하는 사람에게 이런 질문을 한 적이 있다. 왜 자원봉사를 하느냐고? 뻔한 질문에 뻔한 대답이지만 이유는 여러가지 어떤 분이 나에게 이런 질문을 했다. 점심을 함께 먹는데 나를 테스트(?) 하겠다며 질문에 답을 해보라는 거다.

질문자는 지역에서 유명한 분이었고 법조계에 있는 사람이었다. 쉽게 말해 전직 판사다. 당시에는 꽤 큰 중견 로펌의 대표 변호사, 우리나라에도 못 살고 못 먹고 힘들게 사는 사람이 많고 돈이 없어서 굶주리는 사람이 많은데 왜 해외로 나가서 사람들을 돕느냐고? 그 이유를 아느냐고? 나에게 물었다. 나는 표정관리를 철저히 하고 (당황한게 아니라 질문의 의도를 알았기에...)

짤막하게 답변했다. 그거야 같은 돈으로 우리나라 사람을 돕는것과 그 나라 사람을 돕는것에 차이가 크니까요, 

여기서 한 사람을 도울 수 있는 돈으로 더 어려운 나라의 기아/난민에게 가면 10명 이상도 도울 수 있으니 복지의 관점에서 더 효율적 이라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내 말을 들은 그 분은 매우 흡족해 했다. (눈치가...자기가 예상한 답과 달랐던 것 같다. 그리고 이 답은 예상범위에 없었던 눈치...) 

하지만! 내가 질문의 의도를 알았다고 한 것처럼 원래 내 답은 이게 아니다. 단지 그 사람에 맞춰 말했을 뿐이다. 그 사람은 "돈"을 좋아하는 전직 판사라는 걸 나는 알았기 때문에 돈이라는 것이 얼마나 가치가 있고 효율적인지 상황에 따라 다를 수 있다는 걸 되돌려 설명했을 뿐이다. 그래서 나의 깔맞춤 답변은 그 사람에게 만족한 답이 될 수 밖에..(국민은 개돼지, 돈은 수단)

그 사람은 나에게 어려울 수도(?) 있는 이 물음을 가지고 나를 평가하려고 했지만 난 그 사람이 좋아하는 것(?)에 맞춰 표현했을 뿐, 한 명을 도울 수 있는 걸 여려명, 수십명을 도울 수 있기에 해외 기아 난민을 돕는다는 건 사실 맞는 말이라고 하기 어렵다.

앞으로도 살아가면서 누군가에게 질문을 받거나 아니면 이런 의구심을 가질 수 있다. 우리나라에도 분명 어려운 사람이 있고 방송에서도 그런 사람들이 여전히 자주 나온다.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 말이다.

우리나라에도 많은데 왜 우리나라 사람은 돕지 않고 엉뚱한 해외 사람들을 돕느냐....

단 한번이라도 고민한 적이 없다면 당황스러울 수 있고 애매할 수 있다. 간혹 봉사의 정체성에 대해 혼란스러움을 느낄 수 있다. 여기서 다른 사람의 의견을 듣기 전에, 한번은 자신 스스로 자신만의 답을 찾아보는 것도 하나의 현명한 방법이다.지금부터는 비정상회담 방송내용과 내 의견을 덧붙여 살펴보자.

물론 비정상회담에서 다루는 주제는 난민, 그래서 기아나 환경문제가 아닌 "난민"에 한정해서 다루기 때문에 차이가 좀 있다. 그래도 큰 개념에서는 포스팅 제목이 말하는 것과 큰 차이는 없다.

이미지 중간 중간에 덧붙이는 말을 붙이는게 평소 스타일이지만 오늘은 그냥 쭉 이미지로 나갔다. 이야기 자체가 진지하고 중요하기도 하지만 난민 관련 피해범죄와 관련해 덧붙일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조금만 고개를 돌리면 말도 안되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것에 놀라울 뿐이다. 아동과 여성의 피해는 깊게 생각하지 않아도 가장 먼저 대두되는 피해자가 될 확률이 높다.

나는 처음에 그 전직 판사를 제외하고는 그 누구에게도 우리나라 사람이 아닌 해외 외국인을 돕는 것이 더 나은 방법이냐? 우리나라 사람도 힘들고 어려운 사람이 있는데 왜 외국인을 돕는 것이냐는 질문을 받아 본적이 없다. 다만 아주 뜻하지 않은 계기로 어려운 사람들을 모습을 보게 되었고 방송과 같은 매체를 통해 해외 다른 나라 사람들의 고통스러운 모습을 보면서 이 질문 자체를 나에게 한 경험이 있을 뿐이다. (예전 그 전직 판사가 좋은 분이었다면 이게 원래 내 답변)

내가 말하는 의견이 정답은 될 수 없지만 여러 답 중에 하나의 답은 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우리나라에 어려운 사람을 있는데 그들이 아닌 다른 나라 사람을 돕는 이유

자국민과 외국인 기아/난민/생계곤란자에 대한 상황과 차이를 보면 된다. 우리에게는 그들을 돌봐줄 사람과 기관이 있고 다른 나라 사람에게는 없다. 우리는 동사무소, 기업봉사, 자원봉사, 관공서, 경찰, 시민단체, 심지어 학교의 학생까지 참여의 손길이 잦다

연탄이며 쌀이며 옷, 기본적인 생활용품, 생활비 보조 등, 정말로 하루 벌어서 하루를 사는 사람이라면 기초생활보호대상자로 국가적인 지원도 어느정도 가능하다. 이런 민관 시스템이 있는것과 없는 것은 차이가 크다. 해외의 경우에는 UN 산하기구 내지 국제구호단체가 전부다. 그들 자국내에는 구호 시스템이 따로 없다. 결국 우리나라는 내가 아니어도 돌봐줄 사람이 아주 많다는 것이 첫번째 차이다.

그래서 아무리 어렵다고 해도 미국 땅의 미국인 생계곤란자 내지 궁핍한 삶을 사는 사람에게는 적극적인 구호조치를 하지 않는다. 그들에게는 미국과 미국시민이라는 시스템이 우리처럼 있기 때문이다. 같은 해외, 외국인이라도 상황이 다르다.

국제기구, 난민기구, 국제연합에서 나서서 도와주는 경우는 모두 국가기반, 국가시설, 국가 시스템 자체가 무너진 경우다. 우리나라는 내가 아니어도 도와줄 사람이 있지만 (있을 수 있지만) 그들은 백업 시스템이 없다. 도와주지 않으면 그걸로 끝이다.

우리나라에서 정말 배가 너무 고프고 5일 이상을 굶었다고 치자...이 사람이 아무리 초라하고 거지 같아도 그 사실을 알면 분명히 밥을 주는 식당 주인, 밥값을 건네주는 시민, 쉼터로 안내해주는 관공서 직원(경찰포함)이 나타나기 마련이다. 하지만 연예인들이 활동하는 그런 해외 기아/난민캠프가 있는 국가는 그런거 없다. 굶어 죽으면 그런가보다 하고 넘어간다.

그 국가의 국민들 내부가 서로 도와줄 처지가 안되고 그들의 국가가 구난/구호/구제를 할 여건이 안되기 때문에 많은 아이들이 뼈만 앙상 하게 남아서 눈과 입에 파리가 달라 붙은체로 살 뿐이고, 주위에 독수리가 대기하고 있을 뿐이다.

우리에게는 백업 시스템이 있고 대부분의 국가도 백업 시스템이 있다. 여기서의 백업은 경제적 상황은 물론 시민의식이다. 하지만 당장 구원의 손길이 필요한 기아/난민 해외의 경우에는 그런 의식 자체가 없고 정부의 활동도 부재다.

일주일을 굶은 사람이 지나가는 사람에게 빵이나 밥을 사달라고 하면 도와줄 확률이 높은게 우리나라 상황, 반대로 우리가 말하는 해외 구호지역은 죽은 시체가 되어도 나몰라라 하는 상황이기 때문에 이 질문에 대한 답이 될 수 있다.

그 외에도 답은 또 있다. 하지만 그건 본인들이 한번 생각해 봤음 좋겠다. 

요즘 강남역 추모가 화제이던데 난 패미니들을 좋아하지 않는다. 패미니들은 남녀차별의 주범이자 여성의 인권을 추락시키는 원인이다. 남자들은 여자인 어머니에게 태어나고 자녀는 여자인 아내를 통해 낳게 된다. 자기 핏줄에 여자가 없는 사람은 존재할 수가 없다. 그래서 무의식으로 대부분의 남자는 여자에 대한 인권도 중요하게 여긴다.

우리나라는 일본 징용자(대부분 남자)에 대해서는 관대하다. 문제의식은 갖지만 심각하지 않다. 반대로 일본 위안부(여자)에게는 남녀가 모두 이를 간다. 물론 그 둘이 같은 비교대상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아니라고도 할 수 없다. 가해자가 동일하기 때문이다.

남자가 폭행을 당하는 것과 여자가 폭행을 당하는 건 여자뿐만 아니라 남자도 심각하게 받아들인다. 더 나쁘게 본다. 그게 남자다. 정신적인 문제가 있는 범죄자가 문제지 그 사람이 남자고 피해자가 여자라고 해서, 이분법으로 구분하는 건 어리석은 짓

전쟁이 터지거나 지진, 쓰나미 같은 재난이 생기면 제일 먼저 챙기는 건 아이들, 그 다음이 아내를 포함한 여자, 그 다음이 부모다.

이건 남자들 사고방식의 대부분이며 무의식의 공식이다. 혼자 사는 여자에게 남자는 두려움의 대상일 수도 있지만 또 반대로 옆에 남자가 있다면 그 상황에서 그 두려움을 해소시켜주는 것도 남자의 존재고 그것보다 듬직한 것도 없다. 

세상에는 좋은 남자와 나쁜 남자가 있을 뿐이고 여자도 마찬가지. 이걸 구분하지 않고 남자 VS 여자로 단순하게 보는 패미니들이 그 범죄자보다 더 나쁘다. 좋은 남자들조차 여자에 대한 인식을 무너지게 만드는 원인 제공자들이다.

말미에 엉뚱한 샛길로 이야기가 빠졌는데 결국 강남역 사건처럼 기아/난민을 도우는 일은 크게 다르지 않다. 

범죄가 기아/난민이라고 볼 때 혼자 사는 사람, 힘이 없는 사람은 그 피해에 노출되기 쉽고 표적이 되기 쉽다. 가족이 항상 옆에 있고 누군가 옆에 있다면 상황이 다르다. 해외 구호지역의 사람들은 범죄 우발지역에서 혼자 사는 사람(여자/고아/아이들), 힘이 없는 약한 사람(여자/아이/방어가 안되고 뺏기기만 하는 사람)인 셈이고 우리나라는 가족이 있고 친인척이 있는 사람들과 같은 이치다. 도와줄 가족(민/관/기구/기업)이 여럿있는 사람(우리나라)과 도와줄 사람이 아무도 없는 외톨이(해외 구호지역)라면 누굴 먼저 도와야 할까? 그게 바로 내가 이 포스팅의 제목과 연관지어 말하고자 하는 여러 답 중의 하나다.  

단순히 더 어려운 사람을 돕는다는 것도 일리있는 말이지만 왜 더 어려운지도 염두해 볼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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