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 비상등 매너의 유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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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송/자동차

자동차 비상등 매너의 유래

by 깨알석사 2015. 2.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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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서 운전을 하면 외국인들이 가장 신선하게 받아들이고 색다르게 생각하는 것 중 하나가 비상등 문화다. 갑작스러운 추월이나 미안함의 표시, 또는 감사의 표시로 비상등을 2~3회 깜빡여주어 상대방에게 감정 표현을 하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이 이 비상등 매너에 대해 잘 알고 있는데 운전을 하지 않는 사람이어도 비상등 매너에 대해서는 알고 있을 정도로 보편적이다. 

비상등이라는 이름 자체가 비상시에 쓰라고 만든 등인데 왜 매너용으로 쓰게 되었을까? 우리나라에서만 대중적으로 활용되고 있는 비상등 문화, 사전을 찾아봐도, 자동차 정보를 뒤져봐도, 면허 시험장의 규정이나 면허 시험 문제를 찾아봐도 미안함의 표시로 비상등을 켜주라는 말이 없다. 어떤 방식이든 최대한 노력해 찾아보지만 비상등 문화에 대해 기록하거나 그 유래에 대해 언급한 기록물이 없고 그렇게 하라고 안내한 문구 자체가 없다. 사람들이 개인 의견으로 구전상 매너라고 해서 알려주는 내용은 많아도 어디서 배웠고 누구한테 전해 들었는지 아무도 모른다.

독점(?) 공개, 비상등 매너의 유래!

일단 비상등 이름 자체가 비상시에만 쓰라고 만든 것이라 비상시에만 써야 된다. 외국에는 액면 그대로 비상시에만 쓰기 때문에 자동차에 비상등이 켜 있으면 주위 사람들이 배려를 우선하거나 관심을 준다. 위급한 상황에 빠진 사람에 대해 그냥 지나치지 않는 서양 문화에서는 "무슨 일 있으세요? 도움 필요하세요?"를 연발하게 만드는 게 비상등이다. 만약 경찰차가 비상등을 켠 차량을 만나면 즉각 차량에 다가가 어떤 비상사태인지 점검하게 된다. 외국에서는 비상시나 위급한 상황이 아닌데 비상등을 켜다 경찰을 만나면 혼난다. 그에 반해 우리나라는 경찰관 앞에서 비상등을 켜고 있어도 아무런 점검을 받지 못한다. 우리나라는 주차, 정차, 잠깐 볼일을 보거나 누군가를 기다릴 때도 비상등을 켜는 경우가 많아 비상등을 켰다고 해서 위급한 상황이라고 보지 않는다.

간혹 서양물을 많이 먹은 사람들은 그런 우리나라 비상등 문화에 대해 비상등은 반드시 위급한 상황에서 써야 한다고 강조하지만 우리나라 실정에 맞게 바뀌었을 뿐더러 위급하고 긴급한 상황에서는 여전히 원래 의미의 비상등으로 제 역할을 충분히 하고 있기 때문에 큰 문제는 없다. 다만 노상에서 비상등을 켜 외부에게 위험을 알리거나 위급하다는 경고의 메세지 의미는 사라졌기 때문에 그 부분은 우리나라에서는 써 먹기 어렵지만 자동차라는 것이 타인에게 메세지를 보내는 장치가 아닌 이동을 하는 원동기가 본래의 목적이니 비상등 하나를 가지고 다양하게 쓰거나 활용 목적을 넓힌다고 해서, 그것으로 인해 본래 의미와 목적 일부가 소실되었다고 해도 그것을 상쇄할 만큼의 또 다른 의미(매너)가 추가되었으니 퉁 칠만하지 않을까 싶다.

비상등이 원래부터 매너용으로 함께 쓰였다면 이름 자체가 비상등이 되지 않았을 것이다. 당연히 본래 목적이나 만들어진 발상 자체는 이름 액면 그대로 비상시에 쓰라고 만든 차량 전등이다. 자동차라는 것이 서양에서 발전된 것이니 서양의 것들이 그대로 들어온 것이 많고 따라한 것이 대부분인데 비상등 역시 외국에서는 본래의 목적대로 사용하고 있기 때문에 우리나라에서 롤 모델을 삼아 따라했다고 할 수도 없다. 외국의 일부에서는 우리나라처럼 비상등 매너가 있기도 하다라는 의견도 있지만 세계화가 되면서 자동차 문화의 공유 속도가 확산된 일부 사람들의 습관적인 버릇, 예를 들어 한국 유학생이나 한국인이 외국에서 운전할 때 본인도 모르게 비상등으로 미안함의 표시를 하는 것이 한인촌이나 일부 지역에서 쓰일 뿐이지 정작 상대방은 비상등을 보고 이 상황에서 왜 비상등을 켜지? 라고 반문하고 이상한 사람 취급하기 쉽다. 더군다나 세계적인 자동차 기업 다수가 우리나라에 있기 때문에 자동차 문화 확산이 예전보다 더 깊고 빠른데 해외로 진출하는 오너 드라이버들이 많아지면서 생긴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외국에서는 한국 비상등 문화에 대해 모르는 사람이 거의 99.999% 이기 때문에 상대방이 인지하지 못해 활용하지 못할 뿐이지 이런 문화를 인지만 하고 있다고 해도 비상등 매너 문화는 금방 늘어날 것이다.

외국에서는 위급/긴급/비상/위험/도움 요청의 표시로 비상등이 쓰인다고 설명했다. 우리나라는 위급/긴급/비상/위험/도움 요청에 추가적으로 대기/정차/주차/감사/미안/표식/진입/출차/경고 등 거의 대부분의 장소에서 차량 운전 중 사용하는 수신호 목적으로 사용된다. 심지어 외국에서는 상상도 하기 힘든 주행 중에도 비상등을 켜고 달리는 경우가 있다. 응급차가 아닌 일반인이 급하게 가야 하거나 과속을 하고 있거나 일명 떼빙이라고 해서 동호회에서 단체로 주행할 때도 쓰이며 일행 간의 메세지와 일행이라는 표식의 의미로도 주행 중에 사용한다. 외국은 돌발 상황에서만 주행 중에 쓰고 나머지는 모두 차가 정차된 상황에서만 쓴다. 우리나라는 비상시가 아닌데도 사용 쓰임새가 많은 상황에서 그것의 목적이 하나같이 쉽게 구분되는 건 그 상황에서 발생한 경우의 수에 대해서 표식을 하기 때문에 비상등 자체가 일종의 "반응"이라 상대방의 메세지 해독이 충분히 가능하다.


우리나라도 비상등에 있어 사용 원칙에는 순번이 있다. 1순위는 외국과 같다. 외국은 순번 없이 그 목적으로만 쓰지만 우리는 2순위 매너 단계까지 쓰임새가 넓은데 우리나라에서는 비상등 사용에 있어 매너에 대한 부분은 공식적으로 가르치거나 안내하지 않고 있지만 위급/돌발 상황에서의 비상등은 면허 시험 필기는 물론 실기에도 평가할 정도로 중요하게 가르치고 안내한다. 지금은 면허 제도가 많이 바뀌었지만 자동차 면허 시험장에서 코스시험을 볼때 "돌발" "돌발" "돌발" 이라는 심장을 쫄깃하게 만드는 요란한 싸이렌 소리와 멘트, 경광등이 작동되면서 사람의 심장을 그야말로 심쿵하게 만들었었다. 돌발 잡는다는 표현으로 많이 썼는데 돌발 터지고 3초 이내로 비상등을 켜지 않으면 감점이 될 정도로 꽤 중요한 시험 과목이다. (이 경우가 바로 비상 상황, 매너가 아닌 응급 상황을 다른 차에게 알리는 원래 비상등의 사용 목적이다) 돌발 시험 자체가 비상등 작동을 테스트 하는 것이고 비상등을 쓰는 방법을 숙지했는지 시험 보는 것이다.

이 돌발이 코스에서 터지면 큰 상관이 없지만 과속 구간이 끝나는 시점에서 과속 구간 만으로도 정신이 없을 때 터지는 경우가 꽤 있었는데 밖에서 구경하다 보면 돌발에 대처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코미디가 따로 없을 정도로 쏠쏠한 재미가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차량 안에서 돌발 잡고 화이팅 주먹 자세로 "예스"하고 기뻐하는 사람들도 꽤 있었다. 1종 시험을 봤었고 (지금 사람들은 정말 시험을 날로 먹는거다. 나는 S자 후진 시험이 있던 시절에 면허를 땄었다. S자 후진은 정말 최악, 직장 생활하면서 업무용으로 다마스 밴을 타고 다니던 시절이라 돌발이라는 강력한 트라우마가 있어 누군가가 돌발이라는 단어만 내뱉어도 나도 모르게 손이 핸들 사이 계기판 쪽으로 들어갈 것처럼 움찔 거린다. 대부분 자가용은 데쉬보드에 비상등 버튼이 있는 것과 달리 화물차와 다마스는 운전대 기둥 사이에 있어 손을 운전대 사이로 집어 넣어 꼭지(?)를 뽑아주어야 하는데, 개 버릇 남 못 준다고 어린 나이에 돌발에 대한 압박감이 얼마나 컸는지 남들은 비상등을 켜기 위해 자연스럽게 손이 대쉬보드로 향하는데 난 차종 안 가리고 나도 모르게 손이 핸들 사이로 먼저 가다 멈칫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우라질 ㅠ.ㅠ 

지금부터 본론이다. 면허 시험에서도 돌발/위급 상황에서 쓰라고 만든 이 비상등, 누가 이 비상등을 가지고 운전 매너를 만들었고 또 우리는 누구한테 배웠을까? 지금부터 하는 내 말이 추론이거나 신뢰하지 못한다면 굳이 해명하고 싶지 않지만 깨알이 이 역사적인(?) 매너 문화에 대해 알고 있는 사람 중 한명으로서 말하는 것이니 믿지 못하겠으면 그냥 잡담으로 치부해도 상관없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어떤 곳을 통해서도 이 매너가 어떻게 생겼으며 어떻게 발전했고 전달되었는지 그리고 우리는 누구에게 배웠는지에 대해 관계 기관은 물론 인터넷을 뒤져도 알아내지 못할 것이라는 것이다. 한 개인의 머리에서 태어난 것이기 때문이고 그것을 매체(인터넷 포함)에 기록하지 않았기에 그 유래나 목적에 대해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매너라는 것이 계획된 행위로 태어나기도 하지만 우연한 기회에 생기기도 하고 우연한 기회에 확산되기도 하며 계획적으로 탄생해도 그냥 묻혀버릴 수 있는 것이 역사의 한 페이지니 참고하자.

우리나라는 비상등 매너가 없을 때 손을 썼다. 창 밖으로 손을 내밀어 손바닥을 보여주거나 미안한 손짓을 하기도 하고 아예 얼굴을 들이 내밀어 미안하거나 감사하다는 표시를 했었다. 30대 연령 이상에서는 다 기억할 것이다. 차량 밖으로 손을 내밀지 않고 룸미러 쪽(오른손)으로 차 안에서 손을 들어주어 뒷차 운전자에게 보여주기도 했는데 썬팅(틴팅)이 없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으로 지금은 차량 내부에서 손을 들고 미안해 해도 비상등을 켜거나 손을 내밀지 않으면 안 보여 모른다. 예전에는 사람들이 운전을 하면서 목례를 하기도 하고 옆차가 지나갈 때 손짓과 고개짓으로 표시를 하기도 했는데 이 때에도 비상등은 자동차에 달려 있었지만 아무도 비상등을 매너용으로 쓰지 않았고 쓸 생각도 하지 않았다. (설령 쓴다고 해도 상대방이 알아채지 못하기에 누구 한 사람이 나서서 하는 건 불가능하다) 다시 말해 과거 우리나라 차량에도 분명 비상등이 존재했지만 우리는 (아버지 세대들은) 외국처럼 비상시에만 썼지 그걸 수신호 대용으로 절대 쓰지 않았다.

비상등은 우리나라에서도 차량 고장 등 비상시에만 쓰던 문화

비상등에 운전 매너 역할이 부여되면서 새로운 자동차 운전 문화가 시작되었는데 그 비상등 사용 방법의 전환점이 된 효시는 택시다. (정확히는 총알 택시로 유명했던 인천 지역 택시) 우리나라도 외국과 같이 비상 용으로만 비상등을 쓰고 있었는데 나중에 택시가 비상등을 다른 목적으로 쓰기 시작하면서 비상등의 활용 목적이 추가되기 시작했다. 택시라는 것이 어떤가? 갑작스럽게 끼어들고 갑작스럽게 서버린다. 이유는 간단하다. 손님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예나 지금이나 택시의 난폭 운전은 유명하다. 택시의 급감속은 여전히 위험하다. 택시 기사가 길가에서 잠깐 쉬기라도 하면 서 있는 택시를 보고 손님이 올라탄다. 돈벌이도 좋지만 담배 한대 피면서 (예전에는 택시 안에서 기사 혼자, 또는 손님이 있으면 동의를 구하고 흡연이 가능했다) 쉬고 싶은데 손님이 타면 피던 담배도 꺼야 하고 쉬는 시간도 제대로 챙기지 못한다. 택시 기사들이 의외로 힘든 게 쉬는 시간이 불특정하고 쉬더라도 제대로 쉬지 못하는 것인데 비상등이라는 것 자체가 차량 고장을 의미하기도 하니 몇몇의 기사들이 쉬는 용도로 비상등을 켜 놓고 쉬는 시간을 잠깐 즐기기 시작했다. 비상등이 대부분 고장차라는 뜻으로 쓰이던 당시니 잠깐 쉬는 타이밍을 위해 비상등을 일부러 켰던 것. 이러한 사실을 눈 여겨 본 사람이 있었는데 택시 조합에서 택시 면허 시험에 갓 합격한 초보 택시 기사들의 교육 담당자였다.

이 사람은 초보 택시 기사들의 교육을 담당하면서 택시 기사들이 제대로 안전 운전을 한다면 얼마나 좋을까 구상하고 있던 차에 비상등이 새로운 문화 아이콘으로도 쓰일 수 있겠다라는 아이디어에 착안, 이전에는 존재하지 않던 새로운 운전 매너에 대한 것을 본인이 실시하는 합격자 교육 시간에 중점적으로 교육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지금도 그렇지만 예전에도 일반 자가용 운전자들은 손짓, 몸짓, 고개짓, 얼굴 표정으로 감사와 미안함의 표시를 하는데 택시 기사들은 영업을 하다보니 야박하게 굴기도 하고 난폭 운전을 하기도 해서 감사는커녕 미안함의 표시조차 하지 않아 조합 민원 창구에 민원이 종종 들어오던 차, 바쁘더라도 비상등을 2~3회 켜 주어 미안함과 감사함의 표시를 하자는 교육을 실시하게 된 것이다. 애초에 이 분의 목적은 국민 전체의 자동차 운전 매너에 대한 것이 아니라 택기 기사들의 난폭 운전에 대한 미안함을 표시함으로 택시 업계가 받는 비난을 줄이자는 목적과 기사님들의 인성 교육 차원에서 시작했던 것인데 장군 중에 최고는 "운장"이라고 운 때가 맞고 상황이 절묘하게 맞아서 지금처럼 확산된 것이 지금의 비상등 문화다.


택시라는 것이 도로의 왕자라고 표현할 정도로 차도를 보면 보이는 것이 택시다. 시대를 거슬러 올라갈수록 자가용보다 택시가 도로에 더 많을 수 밖에 없었고 택시는 자가용 운전자들에게 경쟁자이자 또 다른 베스트 드라이버 중 하나였다. 그런 택시들이 비상등을 켜기 시작하는데 처음에는 그런 문화를 전혀 인지하지 못하고 있으니 상대방들이 알아채지 못했다. 하지만 시간이 약이라고 그 횟수와 기간이 반복되면서, 사람들이 차츰 알아채기 시작했는데 (눈치가 있음 알 수 밖에 없다) 이것은 우리가 누군가에게 비상등을 배우지 않았어도 앞차가 미안한 행동을 했거나 감사의 표시로 비상등을 켜주면 아 고마워 하는구나~ 아~ 미안해 하는구나 캐치를 하듯 그 빈도수가 늘어나기 시작한 것이다. 무엇보다 도로에서 압도적인 택시가 그것을 먼저 시작했기 때문에 자동차를 운전하는 사람들이 따라하기 좋았다는 것이 중요한데 택시가 아니었고 택시 조합의 교육 담당이 아닌 다른 곳에서(시청, 구청의 일반 행정이나 벌점 등의 운전재교육 현장 등등 일반인 대상) 다른 직무자가 똑같은 발상을 했다면 지금의 비상등 매너는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여기서 한 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은 교육 담당자다. 이 분은 택시 면허 시험에 합격한 초보 택시기사들의 교육 담당자이기 때문에 초보 택시 기사는 이분의 교육을 무조건 받아야 하고 그 분이 하는 교육은 듣기 싫어도 듣게 된다. (택시 합격자는 의무 교육 시간이 있어 교육을 받아야 최종 합격) 기존의 택시 기사들에게 주구장창 말해도 듣지도 않고 효과도 없지만 왜 그런 게 있지 않은가? 초보, 초짜, 신입들은 뭘 하나 알려주고 중요하다고 콕 짚어주면 메모까지 해가며 머리 속에 주입한다는 사실. 기존의 택시 기사들에게 자성의 의미로 아무리 좋게 설명해도 씨알이 먹히지 않았지만 신규 기사부터는 의무 교육 시간을 활용해 마치 그렇게 해야 한다는 식으로 알려주고 초보 기사에게 일종의 "운전 꿀팁"처럼 알려준다면 반응이 달라질 수 밖에 없다. 기사가 손님을 태우기 위해 부득이 정차 할 때는 뒷차 안전을 고려해 비상등을 켜라고 교육하기 시작하면 처음 택시 운전을 시작하는 초보 기사로서는 당연히 습득해서 따라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나 손님 태우기 위해 멈출 거예요~" 라는 메세지를 보내라는 것이다. 실제로 개인 택시는 알려줘도 별 소용이 없었고 배울 기회도 드물었다 (그런 거 없어도 잘 태운다는 인식과 누구에게 배울 단계가 아니라는 자만심) 초기 손님을 태울 때 비상등을 주로 썼던 건 역시 영업용 택시, 그 중에서 갓 택시 자격을 따고 영업에 나선 초보 기사들이 만든 작품인 것이다.

여기서 발판이 된 또 하나의 시점이 버스다. 도로에서 택시와 쌍벽을 이루는 대중교통 버스 기사님 역시 도로에서 보내는 시간이 꽤 많다. 언제부터 인가 택시들이 앞에서 알짱 거릴 때 비상등을 켜고 손님을 태우기 시작했고 갑작스럽게 끼어들어 크락숀을 빵빵 울려 대면 비상등을 2~3회 깜박여 표시를 하기 시작하자 "아~ 저 놈이 미안해 하는 건가? 버스 기사님도 의아해 하고 시간이 지나면서 그게 수신호였다는 걸 눈치 채게 된다. 운전 베테랑들 입장에서 저 방법 좋네" 하기 시작, 초보 택시 기사들이 쓰던 비상등 문화가 다른 기성 택시 기사들에게 전파되기 시작 (전파된 것은 알려준 게 아니라 도로에 있으면서 자주 목격하게 되고 그 횟수가 늘면서 자연스럽게 인지하게 된 것) 했고 택시 업계 전반에서 손님을 갑자기 태우기 위해 세울 때는 비상등을 켜는 게 활성화되자 그 목격 빈도수가 날로 증가, 버스 기사님들이 따라하게 된 것이다.

자가용 입장에서는 주위를 둘러싼 버스와 택시들이 비상등으로 표시를 하기 시작하니 처음에는 무슨 행동인가 알지 못했지만 "미안하다는 건가?" 라는 의구심이 점점 쌓여 "아. 미안해 하는 것 같은데"로 전진, "짜식, 미안해 하는구나"로 확산되었다. 이건 지금도 따로 배우지 않아도 비상등 매너를 접하면 이렇게 눈치를 챌 수 밖에 없다. 그런 날이 지속되면서 우리나라 자가용 문화에도 변화가 생겨 1인 1차량, 1가구 1차량 시대가 도래했고 가전제품처럼 자동차가 필수품이 되면서 가족들이나 친구들이 자가용에 탑승하는 횟수도 증가 아빠에게 배우거나 친구에게 배우거나 아니면 차량 앞유리로 다른 차량의 비상등 매너를 목격하면서 (재는 왜 비상등을 켰다 꺼? 라는 동승자의 질문도 생김) 일반인들에게도 확산되기 시작한 것이다. 

비상등 문화가 발생한 시점은 1990년대 중반부터 이고 2000년 초기에는 택시 업계에서만 쓰이다 2000년 중반부터는 버스와 화물차로 확산, 대중화가 되었다고 봐야 한다. 88년 호돌이 올림픽이 되면서 택시도 부흥을 하기 시작했는데 이 때 늘어난 택시와 택시 문화 만큼 경쟁으로 인한 난폭 운전이 시발점이 되었고 그것을 개선하기 위해 택시 조합의 한 사람이 아이디어를 낸 것이 우연치 않은 기회에 쓰는 사람들의 수가 증가 전 국민이 공유하는 것으로 발전한 것이다. (비상등 매너가 생각보다 오래 된 문화는 아니다) 정권으로 따진다면 전두환/노태우 정권 때 일선 택시(초보기사)에서 시작되어 김대중 대통령 때 본격적으로 보급 (종종 목격), 이후 노무현 정권에서 일반인들도 많이 따라하게 되었다고 보면 된다. (자주 목격)

나는 이 사실을 어떻게 알고 있냐고?  연도까지 기억하는 밀레니엄 새천년 2000년이라는 연도에 향후 노후 보장 차원에서 택시 면허를 따놓자라는 마음에 택시 면허에 응시, 합격을 단번에 하고 교육을 받으면서 바로 그 교육 담당자가 한 이야기를 직접 들었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거나 쉬거나 놀았고 10%도 안되는 사람들이 그나마 경청했는데 (민방위 교육과 비슷) 합격을 한 사람들에게는 의무 교육 시간 자체가 큰 의미가 없었기 때문에 시간만 떼우면 되는 상황이라 교육의 의미가 없어 교육이 제대로 될 상황이 아니었다. 경청하는 사람들이라고 해도 완전 초짜라 택시운전에 대해 걱정이 있는 사람들이 대부분인 것은 당연, 나는 교육 시간에 다들 낙서하고 자는 사람들이 태반인 이 상황에서 굴하지 않고 열의에 찬 모습에 교육하는 그 사람을 보고 나라도 이야기를 들어주어야 하겠다는 마음에 듣기 시작, 그 때 이 사람이 만든 아이디어를 듣게 된 것이다. (그 때는 그 분이 꼭 여러분처럼 초보 기사들이 많이 따라 주어야 이게 효과가 있다고 꼭 실천을 부탁했었다)

영업 차량들의 수신호가 일반 차량들의 수신호로 발전

듣고 보니 좋은 말이고 좋은 의도라 그 때 생각한 것이 택시를 하게 되면 비상등으로 뒷차에게 미안한 표시를 하자라는 생각을 갖게 되었는데 막상 면허를 가지고 보니 투잡 욕심이 생겨 빈 시간에 노는 택시로 영업을 할 수 있다는 어느 택시 업체 부장의 꼬임에 넘어가 택시 알바를 몇 번 하게 되었다. 물론 정식 면허로 정식으로 서류 넣고 택시 회사 차를 운전하는 것이라 운전이나 면허 자체는 불법이 아니지만 (택시 기사 못 구해 노는 차가 꽤 있었다) 정식으로 일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임금이 없는 경우로 영업 자체는 불법이다. (흔히 말하는 하루차라는 것이 이것) 개인 택시처럼 다 갖는 것도 아니고 사납금은 똑같이 있어서 제대로 하면 돈을 벌지만 조금이라도 농땡이치면 사납금은 커녕 자기 돈으로 메꿔야 하는 것으로 결코 좋은 일은 아니다. (지금도 이런 택시 알바는 그 때도 지금도 불법이다, 그러나 생각 외로 만연하다) 기사(노동자) 입장에서는 더더욱 불안한 고용 형태인데 다른 영엽용 택시에게 있는 가스비 보조 역시 다르거나 아예 없기 때문에 조금만 놀아도 손해가 생긴다. 이런 차는 임금 자체가 없어 사납금을 메꾸지 못하면 오히려 돈을 날릴 수 있어 사납금에 목매여 난폭 운전을 하기 쉽다. 과거 불법 영업이 많았던 영엽용 택시에서 난폭 운전이 유독 많았던 것도 그래서다 (이런 차는 데쉬보드 기사 자격증을 보면 자격증 속 사진과 운전 기사가 다르다) 

이런 편법적인 운행은 당시에는 업계에 꽤 있었다. 시간적 여유는 개인 택시처럼 갖지만 금전적으로는 영업용 택시 기사보다 못 가져 갈 수도 있어 하기 나름이었다. 이 부분을 쓴 것은 당시 택시를 운행하면서 비상등 매너를 실천했었는데 왜 택시가 유독 난폭 운전을 해야 했는지, 그런 차가 많았는지에 대해 짚고 넘어 갈 필요성이 있기 때문이다. 애초에 그 난폭 운전과 무리한 승객 태우기 등으로 인해 비상등 매너 교육 필요성을 그 분이 느꼈기 때문이다. 처음 내가 택시를 몰고 나갈 때 상황은 교육 담당자가 말한 현실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본격적으로 쓰이지 않던 시절이라 내 비상등 매너를 이해하는 사람이 드물었으며 그런 일이 흔치 않았기 때문이다. 실제 아이디어를 낸 사람의 이야기도 들었고 그 행동을 실천했음에도 2000년 당시에는 택시 업계에서 아주 많이 쓰지는 않았던 것으로 나중에는 택시 중에 비상등을 켜고 손님을 태우는 차량을 보게 되면 "저 사람은 나 같은 초짜 신입이구나"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신규 면허자들에게만 통용되던 공식이었다. 2000년대만 해도 비상등으로 운전 매너용을 쓰는 사람이 10%도 안되었다고 보면 되고 그 10%도 거의 택시(영업용)라고 보면 된다


그 때 교육장에서 생각했던 것과 택시운전을 하면서 생각했던 것이 만약 나중에 비상등 문화가 확산되고 택시 업계 전체가 비상등을 감사와 미안함의 표시로 쓴다면 저 사람의 아이디어가 얼마나 큰 공을 세웠는지 나중에 꼭 내가 알려 주어야 겠다라는 생각을 가졌었다는 것이다. 물론 나 역시 그것이 택시 업계에 한정 지었지만 그 사람이나 나나 택시는 물론 국민 전체가 비상등으로 매너 표시를 다 같이 할 것이라는 건 예상하지 못한 의외로 결과다. 그래서 지금도 비상등을 "정차" 할 때 많이 쓰는데 차를 세울 때 비상등을 쓰게 된 건 택시가 손님을 태우기 위해 차를 세워야 (정차) 하는 것에서 출발했다고 보면 된다. 차알못 운전자 입장에서는 베테랑(?) 택시 기사들이 사용하니 따라하게 된 것이다.

아주 짧게 택시 알바를 하고 곧 나만의 자동차를 소유한 뒤로 지금까지 단 한번도 빠지지 않고 자가용을 운전하고 있는데 (지금까지 내 차는 차량이 3번 바뀌었다) 그 시기를 뚜렷하게 규명할 수는 없지만 소나타 차종이 소나타3에서 EF소나타로 바뀌면서, 그리고 수동이 오토로, 기계식 카부레타 차량이 전자식 ECU 차량으로 바뀌기 시작하면서 대략 그 시기부터 비상등 문화가 점점 더 확산되고 보편적으로 활성화 되었다고 볼 수 있다. (2000년 이후로 나는 자가용으로 도로 주행시 항시 비상등 문화와 사용 여부를 체크하는 버릇이 있었다, 나름 꽤 괜찮은 아이디어라고 생각했기에..) 2000년 중반이 넘어가고 자동차가 필수품이 되고 고급화 되면서 대중들이 더 많이 쓰기 시작하면서 오늘 날의 모습이 되었다고 보면 된다.

지금도 기억한다. 

인천 남동구 만수동(간석동 경계, 간석 오거리에서 만수동 방면의 간석 사거리 근방)에 있던 인천 택시조합 건물의 교육장, 그 교육장에서 나이가 지긋한 분이 남들이 뭐라하던 택시 업계와 택시 기사님들을 위해 개선하자는 아이디어 차원에서 신입 기사들에게 전파하기 시작한 것이 지금처럼 발전한 것을 보면 매년 느끼지만 참 놀랍다. 2000년 이라고 해소 그렇게 오래되지 않았구나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내가 교육 받을 때가 2000년이고 (물론 당시에도 비상등 매너 사용자가 거의 없었지만) 이전부터 교육했다고 하시는데 1995년에 인천이 직할시에서 광역시로 바뀌었으니 인천직할시라는 말이 아직까지 통용되던 시기이고 그 때는 PC통신에서 이제 막 인터넷으로 넘어가던 시기로 PC통신 (하이텔, 나우누리, 유니텔, 키텔)이 존재하던 시기다. 초딩 동창들의 모임 대표주자 아이러브스쿨이 지금의 카카오톡과 같은 인기를 누리던 시기로서 한메일 이메일이 우리나라 사람 대부분의 메일 주소이기도 했던 시기다. 

그 분이 침 튀겨가며 우리 택시 기사님들이 모범을 보여야 한다며, 자동차 문화를 개선하려고 앞장섰던 택시 조합의 이름 모를 교육 담당자분, 그 분의 공로가 정말로 인정되면 반드시 내가 알리리라 했것만 먹고사는데 바빠 그렇지 못하다 문득 생각이 나서 온갖 자료를 찾아보고 헤쳐봐도 이 분에 대한 의견이나 비상등 매너에 대한 유래, 역사, 과정에 대한 기록 자체가 없다. 우리는 모두가 쓰고 있는데 누구 머리에서 나오고 어떻게 진행되었으며 그 과정은 어떻게 왜 이렇게 되었는지 아무도 모른다.

그 아이디어가 좋다고 생각해 당시에 실천했던 사람 중 한 사람으로 이름은 모르지만 그 분의 존재는 알려야 하지 않을까 싶다. 참고로 덧붙인다면 서울도 아니고 인천 지역 택시가 한 행위가 전국으로 확산된 것에 의구심을 갖는다면 의심은 접어라. 교육 당시에도 내가 이미 갖고 있던 생각이다. 사람은 나서 자라면 서울로 보내야 한다라는 말이 있듯이 저런 아이디어는 사람 많고 자동차 많고 택시 많은 서울에 가서 해야지 지방에서 하면 의미가 있나라고 생각했던 나에게 그 분은 내 머리 속을 보았는지 그 부분에 대해서도 이미 교육장에서 설명을 하셨다.

그 분은 인천이 직할시에서 광역시로 바뀌면서 행정 구역도 넓어지고 서울 땅값 상승으로 인천에서 거주하면서 서울로 출퇴근 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며 구로나 영등포에 가면 인천 택시들이 아예 진을 치고 있을 정도고 당시에도 익히 알던 총알 택시는 서울과 인천을 오가는 택시들을 말하는데 서울에서 인천까지 15분이면 간다고 해서 총알 택시라고 부르던 시절이 있었다. (서울 영등포에서 인천 택시 찾는 건 아주 쉬울 정도고 총알 택시는 보통 인천 택시를 의미했다) 그만큼 서울과 인천의 교통 경계는 사라졌기에 인천에서 시작했어도 서울 택시 기사들도 많이 보게 될 것이라며 언젠가는 서울 택시 기사들도 비상등을 호객용으로 쓰기 시작할 것이라고 단언했다. 인천에서 택시가 선행을 보이면 타 지역 택시들도 "인천에 갔더니 거기 애들은 비상등으로 인사를 하던데"라는 말들이 전파될 것이고 시기는 알 수 없지만 언젠가는 확산되리라 믿는다 하셨다. 우리 초짜들부터 열심히 실천해주면 그 시기는 빨리 당길 수 있다고 당부했었다. (그 말을 들을 때는 그냥 웃고 넘어갔지만 지금 돌이켜 보면 미래 선구자)

인천에서 발상 된 문화 중 짜장면과 뼈다귀 해장국, 쫄면 등이 있다, 짜장면도 전국구, 뼈다귀 해장국과 쫄면도 전국구 음식이다. 자동차의 비상등 매너 역시 전국구로 뻗어 나간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앞으로는 비상등 매너도 인천이 발상지로 추가해줘야 하지 않을까 싶다. 그 분 잘 지내시나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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