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추석, 기름진 음식을 많이 먹어서인가 아랫배가 니글니글 한 느낌이 들어 안 마시던 커피 음료를 하나 사 먹었다. 원래 커피를 즐겨 마시지 않기 때문에 편의점에서 눈에 들어오는 아무거나 집고 계산을 했는데 집에 와서 보니 빙그레 제품. 커피는 자판기 커피나 커피믹스 정도만 가끔 마시기 때문에 커피에 대해서는 잘 모르는 편이다. 그래서 커피믹스 맛에 길들어진 나는 동서(동서식품) 커피가 유일한 내 취향이다.
작은 생수병 만한 사이즈의 PT에 담긴 커피 음료를 마시면서 뒤의 성분표시를 보게 되었다. 빙그레가 유제품이 강한 기업이긴 해도 커피까지 파는 줄 몰랐기 때문이다. 유제품을 기반으로 한 음료도 충분히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커피는 완전 별개의 시장이기 때문에 빙그레가 만든 커피는 어떤 커피인가 커피 마시며 본 것이다.
직업병이랄까,,,생소한 제품이거나 원래 알던 것과 다른 경우에는 꼼꼼이 보는 편이다. 특히 주식 투자를 하면서 생긴 버릇이 제품 정보를 꼼꼼히 보는 것인데 이번에도 나의 버릇은 어딜가지 않았다. 그런데 뜻밖의 사실에 촉이 발동했다. 당연히 제조 - 빙그레, 유통 및 판매 - 빙그레로 표시 되어 있을 줄 알았는데 제조가 삼양패키징?, 유통 및 판매가 빙그레였다.
나는 두 가지 사실에 흠칫 놀랐다. 빙그레가 판매만 담당하고 제조는 다른 곳에서 하여 납품한다는 사실에 일단 한 번 놀랐고, 그 납품하는 곳이 삼양패키징이라는 패키징(포장) 회사라는 사실에 두 번 놀랐다. 물론 상당수의 식음료 회사들은 직접 생산도 하지만 중소기업 등에서 원료나 완제품을 납품 받아 판매만 하는 걸 잘 알기 때문에 빙그레가 만들지 않고 판매만 하는 것은 엄밀히 말해 그리 놀랄 일은 아니나 제조가 삼양패키징이면 중소기업이라 보기 어렵고 일단 회사 자체가 식음료를 직접 생산하는 회사가 아니었기 때문에 일단 의아함이 컸다. (굳이 원재료를 납품하는 원액 기업이 따로 있다면 그 회사가 빙그레로 납품하면 되니)
무엇보다 삼양패키징은 식음료 전문기업이 아니라 포장 전문 기업이다. 커피를 전문으로 하는 식음료 기업에서 만들어 납품 받는다면 충분히 이해할 수 있으나 삼양패키징은 커피 전문 기업도 아니고 식음료 전문 기업도 아니었기 때문에 의아할 수 밖에 없는 건 당연. 삼양패키징이라는 회사 이름, 기업명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이 회사는 패키징 (포장재) 전문 기업이다. 그 포장재의 주력 상품이 PT병이다. 음료수가 담기는 페트병이 바로 이 회사의 주력 생산품. 근데 지금 돌아가는 상황을 보면 빈 페트병만 음료 회사에 납품하는 것이 아니라 이제는 아예 그 페트병에 음료까지 담아 완제품을 납품한다??
삼양패키징 홈페이지에서도 메인 화면에 나오는 생산품은 여전히 위 사진처럼 페트병이다. 하지만 내가 먹던 커피 음료의 제조 표시는 분명 삼양패키징으로 되어 있다. 결국 표시가 정확하다면 삼양패키징이 음료도 만든다고 생각할 수 밖에 없다. 빙그레가 여기에 제조를 맡긴 것도 의아했지만 이 회사가 음료를 제조해 납품한다는 사실이 더 놀라웠다.
그래서 삼양패키징에 어떤 변화가 있는지 알아 봤다. 그리고 바로 눈에 띈 신문 기사 하나, 6개월 전인 3월에 나온 한국경제신문의 삼양패키징 관련 기사였다. 제목부터가 확 눈길을 끈다.
https://www.hankyung.com/finance/article/2021030303271 음료업계 TSMC"…재평가 받는 삼양패키징
일단 기사를 보기 전 제목만 보고서도 딱 감이 왔다. 아마 다른 분들도 같은 생각일 것이다. TSMC..전 세계 반도체를 OEM 주문 받아 생산만 전문으로 한다는 대만 반도체 회사, 삼성도 어찌 할 수 없다는 반도체 파운드리 전문 회사다. TSMC와 비교하는 제목을 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저것이 무얼 의미하는지 제목만 보고 이미 눈치를 챌 수 있었기 때문이다. 식음료업계에서도 TSMC처럼 대규모 파운드리 형식의 회사가 있었다는 걸 말이다.
기사를 보니 삼양패키징은 원래 내가 알던 페트병 전문 생산 기업이 맞았다. 다만 얼마전까지만 말이다. 하지만 국내 최초로 도입한 무균충전공법 (아셉틱) 수요가 팬데믹 상황과 맞물려 (외주의 본격화) 주문이 늘어나면서 회사의 주수입이 이제는 음료 생산이 되었다. 페트병의 기본 재료가 되는 유가 (석유에서 뽑으니) 영향에 원자재 단가 불안정, 거기에 페트병이 갖는 낮은 마진율로 인해 호실적을 기대하기 어려웠지만 식음료 생산 공급 실적이 뒷받침 해주면서 삼양패키징의 이익을 식음료 생산이 견인했다. 근데 그게 생각보다 꽤 크다.
TSMC 딱지는 허세가 아니었다. 충분히 그렇게 볼 가치가 있어 보였다. 확실히 식음료의 오더 생산량과 이익은 매년 늘고 있었다. 현재 영업 상태도 좋지만 앞으로의 영업 상황도 좋다는 뜻이다. 그래서 삼양패키징의 기본 체력을 바로 확인해 봤다. 일단 3년치 매출액과 3년치 영업이익, 그리고 ROE, EPS, BPS 값부터 봤다. 이것만큼 확실한 물증이 없으니 말이다. 결론부터 말하면 "아름답다"로 귀결된다. 매출은 늘어나는 것이 지표 상으로도 확인이 되고 (추정치까지 포함), 영업이익 역시 꾸준히 증가하고 있었다. 거기에 ROE, EPS, BPS 값 역시 깔끔하게 상승 곡선을 그리며 받쳐주고 있었다.
주가는 어떨까? 역시 꾼들은 이 녀석을 일찍이 알아봤다. 1년 동안 움직인 주가를 보더라도....(아뿔싸...이걸 놓치다니..) 1년 전 1만 9천원대 하던 삼양패키징 주가는 현재 (9월 28일 기준) 3만 3천원 최고점을 찍고 살짝 내려온 딱 3만원이다. 그러나 PBR은 1.3배, PER는 11배로 그리 높은 상황은 아니다. 무엇보다 무균충전공법만 놓고 봤을 때 동종업계로는 유일하게 동원시스템즈가 있는데 주가 상황과 다른 지표를 삼양패키징과 비교하면 투자자 입장에서는 삼양패키징이 앞선다. (물론 동원시스템즈도 좋지만 단지 삼양패키징의 경쟁사로 따져 본다면 아직은 삼양이다)
동원시스템즈는 일단 PER 31배, PBR 3.3배로 오버슈팅 구간이다. 매출은 3년간 큰 변화가 없었고 영업이익은 다소 상승했지만 다른 지표에서는 약간 실망감을 주었다. ROE, EPS, BPS 값 모두 두각을 보이진 않았다. 반면 삼양패키징은 대부분 우상향 포지션을 그려내고 있다. PBR이 3배 이상 정도 나와야 그래도 꼴값(?)은 한다고 보기 때문에 PBR만 놓고 본다면 가치 투자자 입장에서는 아직도 저평가 구간이다. 단지 재무적, 정량 평가만 갖고 따지는 것이 아니라 실적이 우상향 된다는 전제로 지표를 분석해 보면 6만원대는 가야 꼴값은 어느 정도 하는 것이고 그 이상 7~8만원대 나와야 주식 시장에서 제대로 된 값어치의 평가를 받는다고 볼 수 있기에 내년, 내후년 전망마저 좋다고 한다면 확실히 좋은 녀석인 건 맞다.
아셉틱 점유율 70%
한국경제신문에서 인용한 이베스트증권 리서치 보고서를 보면 삼양패키징의 아셉틱 점유율은 66%라고 나오는데 5호기 생산 라인을 증설, 완료할 예정이기 때문에 이 점유율은 약 70%대로 올라서지 않을까 추정한다.
아셉틱이라는 생소한 단어가 등장하는데 이 아셉틱에 대한 정보는 증권사 리포트에도 어느 정도 나와 있지만 삼양패키징 기업 홈페이지에서도 잘 설명되어 있다. 아래 이미지를 보면 더 쉽게 이해할 수 있는데 간단하게 먼저 설명 정리를 해 보면 아셉틱은 무균충전시스템을 의미하는 것으로 음료가 지닌 영양소의 파괴가 적다는 것과, 음료의 향과 맛을 오랜 시간 보존할 수 있다는 장점이 가장 큰 것으로 보인다. 거기에 은근 부각되는 것이 이 공법을 쓰면 기존의 페트병보다 두께를 더 얇게 만들 수 있어 친환경적이고 기업 입장에서도 단가를 줄일 수 있어 기업 이익 극대화에 도움이 된다는 걸 알 수 있다.
향후 전망은?
경쟁사가 추가적으로 출현할 기회는 당분간 국내에는 없다고 볼 수 밖에 없다. 동원시스템즈는 현재 이 공법 시스템을 활용한 라인을 2개 운영 중인데 동원은 페트병만 하는 것이 아니라 병, 캔까지 포함해 다양한 포장재를 만들기 때문에 페트병 라인만 따로 늘리는 건 쉽지 않아 보인다.
더군다나 동원시스템즈는 알루미늄박 사업도 하고 있는데 캔을 활용한 2차전지 (2차 전지용 캔과 2차 전지에 들어가는 알루미늄박) 사업에도 진출한 상황이라 계산기를 두드려 보면 당분간은 2차전지에 조금 더 주력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거기에 생산 규모와 시스템 특성상 중소기업에서는 진입하기 어렵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동원과 삼양 두 개 회사만이 이 시장에서 사실상 독점 생산할 수 밖에 없다고 봐야 하는데 현재 삼양패키징이 아셉틱 생산 분야에서는 70% 점유율을 보이고 있기 때문에 당분간 이 비율은 지속되지 않을까 추측 되어진다.
아셉틱 시스템을 통한 생산 현황을 보면 커피와 차 음료에 주력하고 있는데 이 공법 자체가 일반 탄산 음료와 달리 커피와 차 등 "향"이 있는 음료에 강점이 있는 것 같다. 탄산 음료나 직접 생산 방식 회사 (코카콜라나 롯데 등) 외에는 대부분 차나 커피 등은 이 방식을 쓸 것으로 예상 되는데 직접 생산 보다는 삼양패키징에 외주를 주는 것이 단가 면에서나 운영, 무엇보다 관리 측면에서 더 우월할 수 밖에 없기 때문에 어차피 삼양그룹이 기존의 식음료 회사들과 경쟁 관계도 아니기에 결국 삼양패키징에 외주를 주는 경우가 더 늘어나지 않을까 싶다. 이미 빙그레가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회사 홈페이지 사업 소개를 보면 페트병 용기 제조와 더불어 음료 OEM 생산이 같이 게재되어 있다. 국내 페트병 시장 점유율 1위를 기반으로 아셉틱 생산 분야에서도 현재 1위를 기록 중인데 마진율이 기존 페트병 보다 4배 이상 높으면서 향후 아셉틱 시스템 음료 시장 자체가 두 자리 이상 증가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에 삼양패키징의 이익률은 더 높으면 높아졌지 떨어지지는 않을 것으로 판단이 된다.
삼양패키징이 하는 음료 OEM 방식은 기아자동차와 동희오토와의 관계로 해석 되어진다. 동희오토가 모닝이라는 자동차를 전적으로 맡아 직접 조립 생산하고 기아차에 납품하면 기아는 그걸 기아 브랜드를 달아 팔기만 하는데 기존의 삼양패키징이 차대만 납품한 케이스라면 이제는 엔진과 바퀴까지 달아 완제품 차량을 공급하는 시스템으로 바뀌었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물론 그 엔진 (음료 원액) 제품은 누구의 것이고 어디서 왔느냐를 궁금해 할 수 있다. 삼양패키징이 음료 원액까지 개발하거나 생산해서 충전 후 완제품으로 출고까지 하는가에 대한 근본적인 호기심. 그러나 아셉틱 시스템 자체가 "충전"을 의미하는 것이기 때문에 충전에 쓰이는 원액은 원액 전문 회사에서 따로 납품 받아 패키징화 한 뒤 출고하지 않을까 판단된다.
물론 삼양패키징 사업 분야에는 분명 음료 충전만 한다고 되어 있지 않고 음료 배합도 한다고 나와 있으며 OEM 뿐만 아니라 ODM 등의 직접 개발도 한다고 명시되어 있다. 특화된 상품, 별도의 원액(기밀성을 갖는) 공정이 필요하지 않는 이상은 음료 원액까지 책임지고 생산 납품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 본다. 물론 이건 조금 더 확인이 필요한 부분이다. 다만 충전 사업 만으로도 상당한 메리트가 있기 때문에 ODM 방식의 출고 제품이 많지 않다면 큰 의미는 없지 않나 싶다.
증권사 리포트는 1년 구간에 약 5개 정도 발간이 된 상태, 거의 대부분 전망을 상당히 좋게 보고 있다. 향후 메이저 증권사들의 분석 리포트나 전망 리포트가 더 많이 나온다면 주가 상승에 탄력이 붙지 않을까 싶다. (난 지난 추석 끝나고 바로 매수를 해 놓은 상태) 앞으로 이 회사는 페트병 만드는 화학 회사가 아니라 음료 만드는 식품 회사로 판단하고 분석해야 할 것이다.
참고로 삼양패키징은 "삼양사"로 잘 알려진 삼양그룹 계열 회사다. 흔히 사람들은 삼양라면을 만드는 삼양식품과 같은 계열사로 알고 있는데 삼양사와 삼양식품은 별개의 회사로 이름만 같을 뿐 다른 회사다. 계열사도 아니고 아무 관계도 아니다. 삼양패키징이 페트병을 생산하는 것처럼 삼양사의 원래 주종목은 "화학"이다. 플라스틱, 합성수지 같은 제품을 만든다. 물론 삼양사에서도 식품 사업은 따로 한다. 주부들이 잘 아는 "큐원"이 바로 삼양사의 식품 브랜드이다. CJ 제일제당의 백설 설탕과 함께 쌍두마차를 달리는 것이 큐원의 설탕, 커피숍 같은 곳에서 주는 작은 설탕류를 보면 큐원이 종종 보인다. 그리고 혜리가 나오는 숙취해소제 상쾌한 역시 삼양사의 제품이다.
일전에 삼양사 취업 면접 때 삼양사에 지원한 사람이 면접관에게 반 평생 삼양라면만 먹어서 삼양라면에는 자신 있다고 했다가 탈락했다는 전설 아닌 전설이 있다. 삼양사와 삼양식품을 헷갈린 것도 모자라 기본적으로 자기가 취업하고자 하는 회사의 기초 정보도 확인 안 했다는 사실이니 탈락해도 할 말이 없지만...
아무튼, 많은 주식 투자 고수들이 이런 말을 한다. 주식 투자는 멀리서 찾고 힘들게 찾는 것이 아니라고. 자기 주변에서 자기가 자주 쓰거나 자주 사용하는 제품들을 보고 그 회사 주식을 사라고 하는 말을 종종 한다. 워렌버핏 할아버지도 같은 말을 했다. 나 역시 이번 기회에 아주 우연히 커피를 마시다가 이 회사의 새로움 모습을 알게 되었다. 만약 내가 남들처럼 그냥 커피만 마셨거나 빙그레 커피라는 것만 알고 그냥 넘어 갔다면 난 삼양패키징에 대해 조금 더 자세히 알지 못했을 것이다. 한 발 더 나아가 삼양패키징이 원래 뭘 하는 회사인지 알고 있지 않았다면 그저 또 하나의 식품 제조 회사이거나 삼양식품, 혹은 삼양사의 자회사겠거니 하고 넘어갔을지 모른다.
삼양패키징을 먼저 알고 있었기 때문에 호기심을 더 자극한 건 있다. (이젠 이런 걸 만든다고? 하면서 자극했으니) 하지만 사람들 안목이 다 똑같을 순 없다. 그렇지만 그건 충분히 노력으로 극복할 수 있다. 평소 귀동냥으로 듣고 눈치 코치로 본 종목들이 많으면 많을수록 당장은 아니어도 나중에 도움은 된다. 누군 그냥 커피를 마시지만 누군 그 커피를 마시면서 5개의 회사 투자 분석을 한다. 여러분들도 이 글이 도움이 되었다면, 그리고 앞으로도 성공 투자를 하고 싶다면 삼양패키징는 물론 언급한 빙그레, 삼양사, 삼양식품, 동원시스템즈에 대해서도 얼추 귀동냥을 했다. 원래 주식투자는 이렇게 관심 종목을 늘려나가는 법이다. 이 글을 보는 모든 분들이 성공 투자하길 빌며..........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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