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과 사드 문제로 외교 마찰이 불거지면서 우리나라와 중국 사이의 긴장감이 예전 같지 않다. 지금은 긴장감이 최고조이던 시기에 비해 많이 누그러지고 중국 관광객들의 입국도 재개가 된 상태이지만 그 때의 감정 싸움은 양쪽 마음 한 켠에 여전히 자리잡고 있다. 그 때 사드와 중국의 보복 조치 등으로 잠시 관심에서 벗어났지만 우리는 그 시점에 일본과도 마찬가지로 큰 외교적 마찰을 빚고 있었다. 위안부 재협상 문제와 소녀상 문제다. 물론 지금은 강제 징용과 관련한 또 다른 부분으로 경제 보복과 지소미아 협정 파기 등 2차전이 진행 중인 상태다. 당시 소녀상 문제로 한국의 일본 주한대사가 본국으로 돌아가 돌아오지 않고 있다가 대통령이 탄핵된 어지러운 시국을 노려 대통령 권한대행에게 강력한 요청을 다시 하겠다며 85일만에 돌아 온 적이 있다.
중국은 전세계 경제권을 장악하고 성장하는 신흥 강대국이자 러시아를 대신해 미국과 경쟁하는 강자로 급부상하고 있다. 일본 역시 전세계 경제를 주무르는 동아시아의 황태자다. 지리적으로 그런 두 국가 사이 가운데 위치하고 있으면서 또 한 편으로 두 국가 모두에게 외교적으로 보복과 협박, 경제압력 행사 등을 통해 우리는 21세기에 새로운 큰 위기 상황에 놓여 있다. 잘 지내도 모자를 판에 양쪽 모두에게서 공격 받고 있는 모양새다. 일본 위안부와 소녀상 관련 뉴스가 도배를 하다시피 하더니 어느 순간 그 자리를 중국의 사드 보복 문제가 차지했다. 그리고 다시 일본의 강제 징용 배상과 관련해 일본의 반도체 경제 보복이 차지를 했고 이후 지소미아 안보 문제로 확산이 되면서 두 국가와의 신경전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전쟁처럼 실생활에 직접적으로 아직 다가오지는 않지만 상당기간 연일 주요 뉴스로 다룬 걸로 보면 위기가 고조되고 있다는 건 사실로 보인다. 일본과 중국은 시간적 차이만 있을 뿐 한국을 상대로 문화, 관광, 무역까지 제재를 하거나 여론을 선동하는 식으로 하여 총제적인 공세를 벌이고 있다.
오늘은 친구와 적의 구분이 무엇인지에 대해 되새겨 볼 만한 이 두 국가와 관련된 영화를 찾아 보았다. 일본과 중국이 모두 주인공인 영화, 중일전쟁과 관련된 영화다, 더 세부적으로 들어가면 중일전쟁에서 벌어진 만행, 비참한 현실, 부정하고 싶은 말도 안되는 학살에 관한 영화로 난징에서 벌어진 난징 대학살과 관련된 영화다. 우리에게는 일제강점기와 연관된 시절로 결코 남의 이야기가 아닌 우리 이야기와 다름 없는 스토리다.
우선 두 영화에서 먼저 본 것은 2009년에 만들어진 영화 <존 라베 : 난징대학살>이다. 독일과 프랑스, 중국이 합작하여 만든 이 영화는 독일 국적의 감독이 존 라베라는 사람의 일기를 토대로 만든 실화 내용을 담고 있다. 실화 내용의 현실감을 높이기 위해 주연 배우와 주요 인물은 각각 실제 독일인과 일본인, 그리고 중국인들로 구성해 각각의 입장을 대변하게 했다. 곧이어 비슷한 소재를 다룬 2011년에 만들어진 영화 <진링의 13소녀>는 같은 난징이라는 장소의 같은 두 국가의 사람들이 등장하는 같은 소재를 다룬 영화로, “존 라베”는 일기를 통한 실화 그 자체를 다룬 반면 “진링의 13소녀”는 실화와 다름 없는 사실적 근거를 토대로 극화하여 만들어진 실화 같은 영화다.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13명의 중국 소녀들을 일본군으로부터 보호하는 이야기다. <진링의 13소녀>는 이미 리뷰 포스팅을 한 바 있어 별도의 리뷰가 있지만 오늘 다시 끄집어 내어 두 영화 속 중국과 일본 이야기에 중심을 두고 다시 이야기를 해 볼까 한다.
영화 스틸컷 이미지는 모두 <진링의 13소녀> 장면이다.
2009년 만들어진 존 라베 영화의 줄거리는 간단하다. 독일 지멘스의 난징지사장으로 근무하는 존 라베라는 독일 사람이 일본의 난징 침략으로 인해 귀국길에 오르게 되었는데 귀국을 앞둔 어느 날 일본군들의 공습을 받게 된다. 그러나 독일은 일본과 동맹관계로서 2차 세계대전의 양대 축이며 같은 노선을 가진 국가였기에 자신의 수력발전 공장의 대형 독일 국기를 이용해 일본군 공습의 피해를 막는다. 처음에는 자신의 공장에서 일하는 중국인 노동자들과 그 가족들이 살게 되면서 자신의 공장을 중심으로 안전지대를 구축해 나가다가 다른 서방국가 사람들과 함께 정식으로 일본군에게 요청해 무기와 군인이 없는 비무장지대를 만들어 이 보호구역 안에 있는 사람에게는 어떤 나라와 군인이든 괴롭힐 수 없는 안전구역을 만들게 되고 결국 중국인 25만명 이상을 구하게 된다는 이야기다.
재미있는 부분은 존 라베는 나치당에 속한 나치주의자라는 점이다. 또한 일본과 독일은 2차세계대전의 전범국가로서 사실상 전쟁 범죄자로서 지위가 같다. 난징이라는 한정된 장소를 떠나 일본 제국주의자들이나 독일의 나치주의자들은 전범자들로 처벌되어야 하는 건 마찬가지인데, 존 라베라는 사람이 안전지대를 일본군으로부터 허락 받아 만들 수 있었던 것도 두 국가가 공고한 동맹 관계였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역설적으로 독일인 존 라베는 중국인과 마찬가지로 일본군에게서 위협을 받는 상황이 된다.
유럽 땅에서는 나치주의자들에 의해 나치 독일군이 유대인을 잔인하게 학살하고 멸족 시키다시피 하면서 엄청난 만행을 저질렀지만 이런 나치주의가 아시아쪽에서는 일본 제국주의자들로부터 피해를 받지 않도록 지켜주는 이중적인 행태를 보인다. 유럽에서의 독일은 악의 축이 되지만 같은 시기 아시아에서는 선의 축이 되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연출 되는데 독일군으로부터 유대인을 구한 쉰들러라는 사람과 일본군으로부터 중국인을 구한 존 라베라는 사람은 지리적 위치만 다를 뿐 히틀러가 세상을 지배하던 시절 독일 기업가로서 사람들을 구한 동시간대의 인물인 것이다.
존 라베라는 인물이 단지 감정에 치우치거나 눈 앞에 벌어진 처참한 광경 때문에 난징의 중국인들을 구한 건 아니다. 자신만의 나치주의에 근거하여 히틀러에게 도움을 요청하고 안전지대 사람들의 보호를 요구한다. 단순하게 보면 어떻게 해석하고 이해하고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독일은 유대인을 학살하는 주체가 되거나 중국인을 구하는 주체가 되기도 하는데 중국인을 학살하는 주체가 일본군이고 그 일본군은 독일군과 같은 동맹국가의 일원으로서 세계대전에서의 전범 주체는 같다고 볼 수 있으니 존 라베라는 독일인을 별개 주체인 인간, 사람으로 사건을 나눠 보면 영웅이지만 그의 국가와 그가 속한 나치가 벌인 원죄를 따진다면 무엇이 영웅의 실체이고 진리인지는 알 수가 없다.
두 번째로 본 “진링의 13소녀” 역시 난징에서 벌어진 이야기를 담고 있다, 진링은 난징의 옛 이름이다. 존 라베와 마찬가지로 주인공이 서양인이다. 장의사지만 우연한 기회에 성당의 신부님으로 신분이 바뀌면서 한 사람의 인생이 바뀌는 영화다. 배트맨으로도 우리에게 익숙한 크리스찬 베일이 주인공 역할을 맡고 있다. 수녀원에 있던 여학생들이 일본군을 피해 성당으로 숨어 지내게 되고 그 여학생들을 노리는 일본군으로부터 여학생들을 보호하기 위한 힘겨운 싸움을 그려낸 영화다. (우리나라에서도 상황이 크게 다르진 않아 일본군들이 여학생들을 왜 노리는지는 굳이 설명하지 않겠다)
성당이라는 종교시설을 이용해 존 라베처럼 마찬가지로 안전지대를 정하고 성당 시설 내부에서 어린 소녀들이 일본군에게 잡혀가지 않도록 지킨다, 그리고 그 지역의 기생들 역시 몰려 들면서 성당 안에는 성년과 미성년 여자들만이 숨어지내는 공간이 된다. 나이 어린 소녀들은 성당의 성가대로 위장 시키고 성인 여자인 기생들은 지하에 숨어 지내게 된다. 악랄한 군인이어도 국가와 군대라는 조직 체계가 존재하고 있는 한 수녀에게 함부로 대할 수 없는 것처럼 성가대로 위장하면 그나마 안전을 보장 받을 것이라 여겼기 때문이다.
<진링의 13 소녀>는 난징에서 벌어진 학살 보다는 13명의 소녀 제목에서 느껴지듯 여성에게 벌어지는 성 착취 문제를 조금 더 부각시켜 만든 영화다. 여성의 입장에서 성노리개를 찾는 일본군에게 절대적으로 들키면 안되는 극적인 상황을 그려내고 있다. 그러나 성당이라는 안전지대를 무시한 일본군들이 갑자기 성당안으로 들어오면서 일은 꼬이게 되고 하필 미처 숨지 못하고 소녀 일부가 발각 되면서 참혹한 광경이 벌어진다, 우연한 기회에 극적으로 소녀들이 일본군으로부터 벗어나지만 결국 그를 계기로 일본군 간부들의 만찬에 성가대 소녀들이 초청 받으면서 상황은 더 복잡해 지고 결국 기생들이 머리를 자르고 소녀들로 위장해 만찬장에 대신 끌려가는 걸로 이야기가 마무리 된다.
이 영화는 중국 자본과 중국 배우들, 그리고 중국 감독에 의해 만들어진 중국 영화다, 앞서 존 라베는 독일이 주축이 된 서양의 관점에서 본 서양 영화라면 진링의 13소녀는 난징의 피해 당사자인 중국 스스로가 만든 중국 영화다, 난징의 피해와 학살, 참상을 그대로 담고 있지만 중국만의 고유 문화와 사상도 포함된 서양인의 시선을 빌려 만든 동양의 주관된 관점에서 그려내고 만들어졌다. 그래서 두 영화는 같으면서도 많이 다르다. 무엇보다 존 라베는 독일 기업가와 그 주변 서양인들이 핵심이 되어 중국인들을 구한다는 내용이지만 진링의 13소녀는 중국인인 성인들이 중국인인 어린 소녀들을 구하고 그 소녀들을 다시 서양인 장의사가 구출해 성당을 빠져나간다는 이야기로 생존에 있어 누군가의 희생이 절대적이라는 필연적인 장치를 담고 있다.
존 라베의 난징대학살은 자신의 국적과 신분을 적극적으로 활용해 대외적인 언론 공개 압박을 이용, 일본군에게 협상을 통해 안전조치를 얻어낸다. 만행이 대규모로 이루어지지만 역으로 대규모 피해자들이 군집하면서 집단 방패가 되는 모습이다. 상당 부분의 희생자가 나오지만 그 희생이 다른 살아 남는 자들을 위한 방어 수단이라기 보다는 단순 학살에 초첨이 맞춰져 있다. 반면 진링의 13소녀는 그런 협상 조차 통하지 않는 더 극한 상황에서의 모습을 그린다. 극히 제한적인 작은 공간에서 소수의 사람들이 절대적인 힘에 눌려 어떠한 방어도 하지 못하는데 결국 서양인 한 명과 12명의 중국 기생들은 소녀들을 위해 희생이라는 운명적 선택을 하게 된다. 두 영화 속 중국인들 모두 살기 위해 안전지대로 도망친 것 같지만 후자의 경우는 만행과 동시에 타인을 위한 숭고한 희생이라는 점을 중요하게 끌고 나가면서 결론을 달리 한다.
존 라베는 주로 대량학살과 관련해 수 많은 남자들과 포로들이 메인으로 등장한다. 일본군 간부들의 내기에 의해 사람 목숨이 장난감처럼 비유되기도 한다. 말도 안되는 이유로 난징 주민들을 파리처럼 쉽게 죽인다. 우리가 익히 알던 일본군 만행의 잔인함이 그대로 드러나는 부분이다. 영화 장면 역시 난도질 당하는 잔인한 장면과 처참한 학살로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학살과 만행에 초첨이 맞춰진 만큼 끔찍하거나 잔인하다는 느낌이 많아 눈물샘을 자극하진 않는다. 그러나 진링의 13소녀는 잔인함에 대한 감정 보다는 무언가 모를 슬픔이 있다. 특히 같이 숨어 지내던 부류가 극단적으로 둘로 나뉘는데 오히려 탐욕과 물욕에 젖어 살았기에 더욱 이기주의에 빠져 자기 목숨만 중요하게 여길 것이라 생각했던 부류가 타인을 위해 희생하는 과정을 지켜 보고 있자면 어딘가 모를 뭉클함과 애잔함이 있다.
동양의 시선에서 피해 국가인 중국 스스로가 만든 진링의 13소녀는 원래 극적인 요소를 담고 있는 극화라서 눈물 없이는 끝가지 보기 힘들 정도다. 대상 자체가 여성들을 다룬 내용이라 학살 장면은 많지 않지만 충격은 배로 높다. 특히 소녀들을 대신해 기생들이 소녀들로 변장해 만찬장에 끌려가는 이야기로 마무리가 되는 과정 역시 순탄치가 않은데 말이 초정이고 말이 만찬이지 어린 소녀들이 가면 다시는 못 돌아오거나 살아 돌아오더라도 온전한 몸 상태로 돌아오지 않을 걸 알기 때문에 자신들이 대신 상대하는게 낫다며 기생들이 대신 참석하게 되지만 그녀들 모두 옷깃에 유리조각으로 만든 칼을 숨김으로 인해 다시는 돌아오지 못하는 길이라는 걸 보여 준다.
일본군이 여러 아시아 국가에서 벌인 여성들과 관련된 성범죄 중에서 중국이 자국의 위안부 문제보다 난징 대학살에 더 관심을 두고 가슴 아파 하는 건 단순 성노리개로서의 참혹함 정도와 규모가 아예 다르기 때문이다. 우리와는 약간 반대인데 우리는 오히려 위안부 문제를 더 중요하게 여기고 따지는 경우가 많다. 징용이나 학살 보다는 위안부 문제를 먼저 연결하거나 더 비중있게 다룰 때가 많다. 하지만 난징 대학살 과정에서 벌어진 만행을 보면 중국의 입장이 그럴 수 밖에 없는 것도 이해가 되는 것이 특정인들, 특정 성별에 의해서만 벌어진 일이고 덜 중요해서가 아니라 인간이 1회용이 될 수 있다는 것과 인간의 잔인함이 어디까지인가를 가늠하기 힘들 정도로 전쟁 중 일어난 성범죄 수준 자체가 보통 사람들이 생각하는 그것의 차원과는 상당히 차이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진링의 13소녀 영화에도 나오지만 여성의 성기에 죽창을 꽂거나 하는 식으로 일본군들이 성적유희를 즐기고 난 이후의 만행은 일반적인 성범죄의 수준과는 달라도 완전 다르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성범죄 역시 학살 수준으로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돈만 밝히는 장의사가 소녀들의 목숨을 지키기 위해 자신의 목숨을 거는 영웅이 되는 과정과 중국인을 비하하는 독일 기업가가 중국인 수십만명을 구하는 영웅으로 변화하는 과정, 반대로 이전에는 평범한 아버지, 남편, 오빠, 남동생, 아들이라고 할 수 있는 일본군들이 전쟁터에서 벌이는 인간잔혹사를 거치면서 괴물로 변해가는 과정 역시 상반되지만 그 형태는 다름이 없다. 단지 어느 타이밍에 어느 자리에 있고 어느 입장에서 어떤 생각을 갖고 있었냐의 차이만 존재할 뿐이다. 한 평범한 사람이 전혀 다른 사람으로 탈바꿈 되어 가치관과 인생관이 바뀌는 과정은 실화이든 아니든 상관없이 우리에게 많은 교훈을 남긴다. 평범한 사람이 영웅이 되거나 잔인한 괴물로 변하는 건 원래 그 사람의 가치관이나 사상 보다는 시대적 상황과 그 사람이 처한 물리적 충격에 의해 언제든지 누구나 바뀔 수 있다는 것도 확실하게 보여주고 있다.
모두가 “네”라고 말할 때 “아니오”라고 말 할 수 있는 용기를 두 영화에서 느낄 수 있었고 일본군 앞에서도 아랑곳 하지 않고 총구를 무서워 하지 않으면서 끝까지 사람들을 구하고자 포기하지 않는 강인함은 다른 사람의 시선을 빌려 간접 경험을 통해 배운다고 하지만 잔상은 오래 남을 것 같다. 잘난 것과 못난 것의 기준과 가치가 따로 있는게 아니라 생각의 차이에 있음이 고스란히 전달된다.
중일전쟁의 한 단면이라고 하지만 그 통로와 경로에는 조선이라는 땅이 있었고 강제동원과 일제 징집에 의해 일본군으로 끌려간 조선인도 많았던 시절이라 중일전쟁은 단순하게 중국과 일본만의 싸움이라고 볼 수 없다. 또한 두 영화에도 나오지만 일본은 우리나라를 비롯한 침략한 국가의 여성들을 노리개로 삼으며 노략질을 일삼고 야만적인 행위를 서슴없이 동일하게 행했다. 위안부 문제 역시 중국이라고 해서 논외는 아니다. 우리와 같은 피해 국가다. 두 영화 모두 여성에 대한 일본군 만행은 확실하게 묘사되고 있다. 그러나 두 영화를 다 보고나면 혼란이 밀려든다. 친구와 적의 경계는 어디인가 하는 의구심이 밀려온다. 유대인 학살에 앞장 선 독일 나치와 독일 나치인 존 라베만 해도 그들이 주장하는 유대인 학살의 정당성과 난징 대학살의 부당성은 뭘로 따지고 구분해야 하는지 알 수 없다.
시간을 조금 더 거슬러 올라가느냐 시간을 조금만 되돌려 보느냐에 따라 우리의 입장은 많이 달라진다. 우리에게 아픈 역사를 준 것은 일본 못지 않게 중국도 마찬가지다. 우리 입장에서는 대동소이다. 일본이 우리를 몇 십년 동안 식민지배하였다는 이유로 안 좋게 보지만 정작 중국은 우리를 역사 시간을 더해 따지면 천 년 이상 식민 지배를 했다. 객관적으로 보면 일본 보다는 중국이 더 우리를 더 자주 더 많이 괴롭히고 늘 하대했다. 중국의 사드 문제 보복과 일본의 반도체 부품 보복도 보면 사드 문제에서는 우리나라 기업인 롯데가 박살이 나서 중국에서 철수하는 단계까지 갔지만 일본의 경우는 국내외 경제에 크게 영향을 준 건 없다. 자기가 최고라 여기는 중국이라 그런지 자신들은 피해(보복) 당할 일이 없다고 자신해 실제로 우리에게 피해를 일으킬 때가 더 많다.
시계를 다시 현재로 돌려보면 우리는 한미일이라는 공동체 군사동맹을 유지하고 있다. 안보에 있어서는 일본과 우리는 하나다. 그리고 그 반대 진영에는 중국이 있고 중국은 북한과 함께하는 동지 국가다. 그러나 지금, 같은 피해자로서 동지애를 갖고 임시정부와 독립운동을 함께 했던 중국은 우리에게 날선 시선으로 목을 조르려고 하고 있고 한 때 우리를 괴롭혔고 엄청난 학살을 자행했던 야만적인 일본은 지금 우리와 안보에 있어서는 절대 동맹이자 친구가 되어 있다.
과거의 난징이라는 주제를 그 시기에 맞춰 놓고 보면 우리와 중국은 하나이고 같은 피해 국가로서 또, 대한민국 임시정부와 많은 독립투사들이 함께 일본군으로부터 국가와 국민을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 하던 시절이 있었다. 존 라베 영화 한 편만 봤거나 진링의 13소녀 한 편만 봤다면 그 영화 자체가 의미하는 메시지에 집중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존 라베를 통해 독일의(서양의) 두 얼굴을 볼 수 있었고 진링의 13소녀를 통해 중국의 두 얼굴을 볼 수 있었다. 또 서양의 관점과 동양의 관점 역시 포함이 된다. 전자는 서양과 동양의 대립 구도, 후자는 동양권 안에서의 아시아 국가들의 대립 구도와 문제가 된다.
어제의 적이 오늘의 친구가 될 수 있고 오늘의 친구가 내일의 적이 될 수 있다라는 건 여전히 통용되는 법칙인 것 같다. [과거] 있었던 위안부 문제(소녀상)는 한미일 동맹관계에서조차 일본과 대립하는 이유가 되고 [현재] 북핵 문제와 관련해 우리에게 치명적인 안보 위협이 될 수 있는 군사문제로 인해 중국과도 대립하는 관계가 되었다. 주한미군의 필요성과 주한미군의 철수 당위성을 주장하는 것도 그럴 것이다. 미국은 우리에게 친구가 된다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고 미국은 우리를 이용할 뿐 친구는 아니다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공존하는 것처럼 단면만 보면 한국전쟁에서 자유 대한민국을 존속하게 해준 분명 고마운 친구이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사람들은 미국을 더 이상 필요한 친구가 아니라고 여기는 비율이 늘고 있다. 국가, 외교에서의 친분은 철저하게 정이 아닌 비지니스적 마인드에서 파생되는 것이라 그럴지도 모른다.
과거를 잘 정리해야 현재가 순탄하고 현재를 잘 마무리 지어야 아름다운 내일이 있을텐데 과거와 현재의 문제에 발목이 잡힌 우리에게 영화를 보니 더 누가 친구고 누가 적인지는 알 수 없는 혼란감만이 남는다. 어릴 때 부모님이 종종 하던 말, "친구를 잘 사귀어야 한다"라는 말이 문득 떠오른다. 친구를 잘못 사귀면 인생 망치는 건 순식간이기 때문이다. 중국과 일본은 양면성이 있다. 우리는 그 지리적인 위치도 그렇고 이 둘 사이에 늘 끼어 있다. 그리고 늘 순간마다 둘 중 하나를 선택해 친구로 지냈다. 둘 다 친구로 지내는 건 현실적으로 어려울 것 같고 그런 적도 많지 않다. 그렇다면 어떤 쪽 친구를 선택해야 잘 사귄다고 할까...둘 다 사귄 경험만 놓고 보면 둘 다 좋은 친구라 할 순 없지만 친구 하나를 선택하면 남은 하나는 무조건 적이 된다는 한반도 국가의 생태적 환경을 고려한다면 실리를 따질지 명분을 따질지는 미래 세대가 꼭 풀어야 할 숙제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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