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 가문
한 다리 건너 아는 사람과 대화하는 중 4대 독자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자신이 4대 독자라는 거다. 처음에는 그런가 보다 하고 말았는데 대화를 하다 보니 어째 뭔가 이상타... 증조부와 조부(할아버지)까지는 그렇다 쳐도 작은 아버지가 계신 상황... 이건 뭥미?...ㅡ..ㅡ;;; 아버지가 3대 독자였던 건 맞는데 완전 늦둥이 동생이 태어나는 바람에 나이 들어서 독자 타이틀을 벗어던지게 되었던 것
이것을 몇대조 후손~ 하는 것처럼 이해했는지 아버지가 한 때 잠시(?) 3대 독자였다는 걸 알고 나서 자신이 4대 독자라고 했던 것이다.
이게 군대 때문에 (과거 병역 면제의 기준이 되기도 했지만 지금은 폐지됨) 남자들은 몇대 독자에 대한 걸 대부분 곁다리식으로 듣고 안다. 하지만 정확한 포인트를 잘 모른다.
일단 일반적으로 많이 알려진 것처럼 3대 독자~5대 독자는 그 집안의 장자로 삼을 남자(사내)가 딱 1명뿐인 경우를 말한다. 이걸 보통 단순하게 자신의 직계가족만 생각하고 별거 아닌 것처럼 생각한다. 특히 남자친구나 결혼할 애인이 독자라면 무슨 사대가문의 장자로 인식하는데 그것과는 조금 다르다. (독자는 애지중지 막내둥이처럼 보살피는 개념이고 장자는 어른으로 우대한다는 개념. 물론 독자는 곧 장자이기도하다.)
보통 형제 없는 외동아들에, 아버지도 형제가 없고 할아버지도 형제가 없는 경우인데 단순히 [아들 1명]이 포커스가 아니다.
"아들 1명"이 핵심이 아니라 "남자 1명"이 더 정확한 포인트다.
형식상 촌수(나의 여자 형제나 고모처럼 여자들과의 촌수)는 다른 사람과 똑같이 사촌, 육촌처럼 계산이 가능하나 사실상 촌수 자체가 1촌만 존재하는 경우가 바로 독자다. 나와 "성씨"를 같이 쓰는 남자가 할아버지, 아버지, 또는 나 밖에 없다는 뜻으로 집안에 가족 사람수는 많을 수 있어도 나와 같은 성을 쓰는 남자는 많아야 3명 이내라는 뜻이 된다. 만약 할아버지가 없고 아버지마저 일찍 돌아가셨다면 사실상 그 아들이 쓰는 성씨를 쓰는 건 이 사람밖에 없게 된다. (그 흔하디 흔한 사촌형제도 없다는 뜻. 오로지 족보상 직계 1촌 관계만 존재한다.)
아니 무슨 독자가 벼슬이야? 자기가 5대 독자라고 하는데 그거 뭐 대단한 거야?
잘 몰랐는데 요즘 이걸 모르는 사람들이 꽤 있다. 혹여나 해서 인터넷 마실 좀 해 봤더니 실제 대부분 정확하게 설명하고 있지는 않았다. 그냥 외동아들에만 포커스를 두고 설명하는 게 대부분...(그게 틀린 이야기는 아니지만 요즘 같은 시대 외동, 외동아들이 별거냐 하는 것처럼 그런 설명은 아무런 도움이 안 된다)
할아버지가 외동, 아버지도 외동, 손자도 외동인 경우가 맞지만 더 정확하게 말하면 그 집안의 "남자"가 많아야 최대 3명, 최소 1명만 존재한다는 뜻으로 대체로 대부분의 사람들은 친척을 포함 (큰집, 작은집, 시골 할아버지, 할머니집 등등) 나와 혈족관계를 맺고 있는 [남자]들의 수가 꽤 있는 게 보통이다. 우리 집의 경우에도 나를 포함해 나와 같은 항렬(사촌)은 남자가 4명, 아버지 항렬(삼촌)은 3명, 할아버지 1명이니 8명의 남자가 있고 내 사촌 항렬들에서 남자 자손(나에게는 5촌 조카들이 되겠지)이 2명이 있으니 (나머지는 여자들) 남자만 모두 따진다면 10명이 있다. (우리 집안은 여자가 많아서 남자의 4배 정도가 여자 가족수다) - 3촌, 4촌, 5촌만 따져도 10명의 남자가 있으니 평균보다 많은 편.
요즘엔 딸만 있는 집도 많고 자녀도 외동만 가지는 경우가 많아서 남자 가족수가 많이 줄어든 추세지만 그래도 내가 친형제가 없더라도 아버지나 할아버지의 형제 집안이 있을 수 있기에 독자 집안은 흔한 경우가 아니다. 참고로 성씨를 공유하지 않는 외가를 제외한 본가(친가)의 경우 성이 같은데 가문의 대를 잇는 건 성씨가 같은 사람들이어야 하는 것이 일반적이니 당연히 성이 다른 이종사촌과 고종사촌은 (엄마의 여자형제, 아빠의 여자형제) 남자라 해도 우리 집안의 남자가 되진 않는다. (그쪽 성씨를 갖는 그 집안의 남자들이니)
할아버지 외동, 아버지 외동, 우리 아기도 사내 아들 외동이라고 단순하게 볼게 아니라 그 집안(가문) 전체를 통틀어 (외가 제외, 인척 제외, 친척만 포함) 남자는 딱 이 사람들만 있다는 것이 된다. 이 남자가 3명일 수도 있고 1명일 수도 있는데 이 최대 3명의 남자가 모두 사라지면 그 가문은 곧 멸족한다는 게 키포인트다. 더 이상 이 사람이 쓰는 성씨가 이어지지 않는다.
사람은 목숨을 가볍게 여길 때가 있다. 자살하는 것처럼... 근데 이 삶의 연속이라는 게 돌이켜 보면 꽤 무섭다. 인간이 처음 태동해서 뿌리를 내리고 대대로 이어져 내려온 건 팩트다. 왜? 바로 나 자신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아버지, 할아버지, 증조할아버지, 고조할아버지처럼 쭉 올라가면 시작점이 있을 것이고 지금까지 내려온 도착지는 나 자신이다. 이건 사실 단순하면서도 중요한데 단 한 번도 "끊어지지 않고" 지금까지 쭉 이어져 내려왔다는 뜻이다. 수천 년 동안 말이다. 그래야 내가 존재할 수 있기 때문
이런 가문들의 줄기가 누구는 끊어지고 누구는 계속 이어지는데 지금 나를 비롯한 우리 눈에 보이는 모든 사람들은 이 줄기가 계속 이어진 사람들이고 줄기가 끊어져버린 사람들은 잊힌 사람들로 그 혈족과 후손들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여자 형제는 포함하지 않는다. 출가외인이기 때문에 여자는 자신의 성씨를 자녀에게 주지 않는다. 다른 집의 사람이 되는 게 기본이기 때문에 우리 집 사람이 될 수는 없다. (그래서 죽더라도 그 집 귀신이 되어라~ 하지 않던가..) 결국 대를 이어주려면 성씨가 기본적으로 따라가 주어야 하는데 우리 집을 포함해 친척 통틀어 나와 본과 성이 같은 "남자가 딱 한 명"이라고 상상해 봐라.. 얼마나 끔찍한가.. 자칫 사고라도 당하면 그 집안은 진짜 멸족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너무 심각하게 받아들일 필요는 없다. 할아버지가 있고 그 아래 아버지 또는 큰 아버지, 작은 아버지가 있을 수 있듯이 작게 보면 우리 집이 내 가문의 전부라고 볼 수도 있지만 포괄적으로 최소 5대조부터 (고조) 만 계산해도 내가 생각하는 가문은 생각보다 덩치가 크기 때문에 우리집이 아니라 우리 가문의 입장에서는 완전 멸족은 희박하다. (작은 개념의 나와 관련해 직계인 우리 집은 멸족할 수 있어도 방계인 다른 집은 이어질 수 있다. 4대 독자면 5대조 윗대의 방계 가문이 존재할 터.. 그게 없다면 4대 독자가 아니라 5대 독자가 되기 때문) 전주이씨 가문의 특정 집안 하나가 멸족할 순 있어도 전주이씨, 김해김씨 전체가 멸족 당하는 일은 없는 것과 같은 이치.
독자는 가문을 이어주는 줄기를 뜻한다. 이 줄기가 중간에 갈래(형제)가 생겨서 두 개 또는 그 이상 벌어진다면 어떻게든 내 혈족은 이어지게 되어 있다. (사실 내 근거리 촌수의 10촌 이내 우리 가문이 멸족하더라도 그 이상 촌수까지 따지고 간다면 멸족은 되기 어렵다. 4대 독자든 5대 독자든 따지고 들어가면 6대조 이상 거꾸로 윗대 어르신 중에 형제 가문이 반드시 있을 것이고 그 집안이 태초의 가문을 여전히 이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82대 독자 99대 독자라는 게 없고 대부분 3대 독자, 많아야 5대 독자인 것만 보더라도 그 바로 윗대인 선대 가문에서는 형제 가문이 있다는 뜻이 되기에 결국 10촌 이내 어떤 식으로든 혈족 관계의 방계 가문은 반드시 존재하기 마련)
다만. 독자를 따진다는 건 곧 장자를 의미하고 대체로 반가집(양반)에서 많이 중시하는 만큼 본인이 독자라면 장자 가문으로서의 존재는 위험한 건 사실이다. 즉 장자의 자리를 다른 형제 가문에게 넘겨준다는 측면에서 (넘겨주거나 넘겨받는 것조차 모르게 스르륵 넘어가게 된다) 장자의 후손이 끊기면 곧 멸족과 다름없다고 보는 게 일반적이다. 지금도 장남은 출가를 못한다. 민법이 어떻든 상관없이 자고로 장남은 출가 못하고 본적을 승계하며 차남은 출가를 하는 게 관례, 즉 따로 떨어져 나가는 게 차남(방계)이다. 장자 가문은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 차남 가문이 장자 가문이 되는 것, 결국 도돌이표가 되어 줄기는 어떻게든 이어지게 되어 있다. 그래서 지금 우리가 존재하는 것이다. 다만 장자 가문에 속한 사람들이 영원히 사라지고 잊혀진다는 게 독자 가문을 사람들이 따지고 중요하게 여기는 본질이다. (잊혀지기 싫은 건 다 똑같기 때문)
인류 역사상 우리 집의 직계, 나를 기점으로 쭉 올라가면 모든 1촌 사이의 직계 남자들이 모두 한 번도 끊어지지 않고 이어졌을까? 분명 끊어진 경우가 더 많을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입적이라고 하여 양자를 들여 호적에 올리게 된다. 예를 들어 LG 가문(장자)에 사내가 없고 딸만 있어 작은집의 아들이 장자 가문으로 호적을 옮긴 것처럼 말이다. (독자가 있거나 독자 자체가 없어 대가 끊기면 이렇게 대를 이을 양자를 새로 들이게 된다)
물론 전쟁처럼 한순간에 멸족하는 경우도 있다. 또한 맨 먼저 언급한 내 지인의 지인 이야기처럼 그 사람은 4대 독자는 아니지만 독자의 개념에서 벗어난 건 아니다. 작은 아버지가 늦둥이로 태어나 아버지 항렬에서 3대 독자로 끝이 났지만 작은 아버지 (미혼임, 작은 아버지보다는 그냥 삼촌이라고 해야 하겠지..)가 미혼이고 자녀가 없어 결국 형식상의 독자 형식(4대 독자)은 종결되었지만 다시 재시작한 경우이기 때문에 4대 독자는 아니어도 1대 독자로 다시 재셋팅 된 경우다. (이것 역시 도돌이표.. 원래 독자는 독자 가문이 되었다가 사내들이 더 생기면 멈추고 다시 사내가 부족하면 독자 가문이 된다)
독자라는 건 사내 남자의 수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분파, 뿌리를 내려야 하기 때문에 미혼이거나 자녀가 없다면 거기서 거기. 똑같아진다.
오랫동안 좋은 간장을 만든 집에는 "씨간장"이라는 게 있다. 이 씨간장 하나만 있으면 계속 간장을 만들어 낼 수 있다. 물론 씨간장은 계속 줄어들어 소멸된다고 생각하지만 씨간장 자체도 증식이 가능하며 씨간장으로 만든 간장 역시 씨간장으로 만들 수 있어 우리가 말하는 독자 가문과 비슷하다. 씨간장 자체를 조금씩 불려 증식하는 게 장자 가문 (독자들이 있는 집들)이고 씨간장으로 만든 새로운 간장이 방계 가문이다. 물론 간장과 달리 사람(가문)은 다른 가문(간장)의 존재를 모른다는 게 차이점. 그래서 씨간장이 사라지면 모두 사라진 걸로 이해한다.
씨간장을 만들 수 있는 여분이 많은 게 일반적인 우리네 상황이고 씨간장이 딱 한 종지 정도밖에 안 남아 쓰기도 어렵고 간장을 배양하는 것도 귀한 상황이라면 이게 바로 독자 가문이다. 자칫하면 씨간장으로 간장 만들기는커녕 씨간장 자체도 날아갈 수 있다. 결국 그 집의 간장은 사라지는 것. 그것과 똑같다.
독자가 대수여?
생각보다 중요하다. 외동이라고 생각하면 오산. 그 집안 (가문을 통틀어)에 남자는 딱 한 사람, 많아야 2~3명이라는 말이다. 듣기에 따라 무서운 경우다. 남자 자체가 귀한 집이고 자녀대에서 남자 수를 늘린다 해도 그게 쉽지도 않지만 시간(세월)도 많이 걸린다. 위험부담이 굉장히 큰 경우의 수다. 그래서 애지중지 키울 수밖에 없고 귀하게 대할 수 밖에 없다.
대가 끊기면... 모든 게 끝이고 나를 비롯한 나의 모든 선조들의 기억, 추억, 역사, 삶이 모두 기록되지 못하고 사라지기 때문이다. 그리고 3대 독자에서 보통 끝나지 않고 4대 독자, 5대 독자까지 가는 경우가 많아 그만큼 5대 독자라는 표현도 익숙하듯.. 이런 집은 [앞으로도] 남자의 수가 증가할 확률이 적다. DNA의 문제이거나 유전적 문제이거나 가정환경 또는 어떤 연유이든 간에 남자 보기 힘들다는 뜻으로 앞으로도 조심할 수밖에 없는 법... 제사상을 차려주고 싶어도 차릴 사람이 없어지는 무서운 경우다.
그 집에 단순히 아들만 없는 게 아니라 그 사람의 사촌형제, 육촌조카 알고 지내는 8촌까지 남자는 씨가 말라 본인 집에만 남자 한두 명이 전부인 경우가 독자 집안이다. 그래서 군대에도 가지 않고 합법적으로 군 면제를 시켜준 것도 이런 맥락이다. 군대가서 죽으면 그 집안 자체가 사라지는 것과 같기에 국가가 책임을 너무 크게 진다. 차라리 면제 시켜주는 것이 더 합리적일 수 있는 것. 다만 요즘엔 그런 독자 개념을 많이 따지지 않고 오히려 병역 의무 자체에 대한 불합리성만 따지다보니 그런 병역 면제 혜택은 사라지게 되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독자라는 신분으로 산다면 주변 사람들이 위험한 일을 덜 시키고 조심스럽게 대해주는 것도 아직까지는 존재한다.
우리 집안은 대대로 첫 아이가 사내들이 많다. 유전의 힘 같은데 큰 집, 작은 집처럼 아버지와 뿌리를 같이하는 본가는 예외 없이 맏이가 모두 사내들이다, 그 뒤로는 둘째부터 딸 잔치를 벌인다. 집집마다 사내 없는 친척이 없을 정도로 남자는 꼭 있다. 다만 성을 달리하는 가족들, 고모네 (고종사존) 이모네 (이종사촌) 혹은 외가 쪽 사람들을 보면 딸이 맏이이거나 딸만 있는 집이 많다. 다들 시집보내고 나면 제사를 누가 챙겨주냐 고민되기 마련인데 제사를 떠나 고모부나 이모부가 쓰는 성이 더 이상 뿌리내리지 못한다는 게 더 고민거리가 될 수 있다.
간혹 가문이나 성씨에 얽매여 사는 게 요즘 사회에서 무슨 소용 있냐고 쉽게 판단하는 사람도 있지만 내가 어디에서 왔고 누구로부터 생겨났으며 어떤 사람들로 구성되었는지 알아가는 건 중요하다, 학교에서 배우는 역사가 중요하다고 여긴다면 우리 집의 역사가 곧 나라의 역사 한 페이지이고 그것과 이것이 다르지 않다. 모든 집의 역사가 나라의 역사가 된다. 자기네 집 역사도 모르거나 무시하면서 다른 가족들의 역사를 배우려고 노력하는 모습이 더 웃기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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