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자왕이 없는 상황에서 부흥군에 의해 백제로 돌아온 부여풍
의자왕에 의해 왕권 다툼에 밀려 왜국으로 망명했고 30년만에 고향으로 돌아오게 된 것이다.
"나당 잔적들을 백제 땅에서 몰아내고 저 들의 창검 아래 고통받는 내 백성들의 피눈물을 닦아줄 것이다"
"백제 부흥에 광영이 있으라 !"
백제 부흥군의 지도자였던 복신은 왕족으로 의자왕을 대신해 왕이 될 수 있음에도 부여풍을 불러 들였다. 하지만 이는 복신의 계략. 왕의 자리를 사실 노리던 복신에게 부여풍과 부흥군에 함께 있는 여러 장수는 백제 부흥군이 힘이 필요할 때는 든든한 우군이지만 어느정도 힘이 모이고 안정권에 들게 되면 반대로 왕위 자리를 노릴 때 복신에게는 위협이 될 수도 있다. 더군다나 상황 자체가 백제 부흥군에게 매우 유리하게 돌아가고 있고 백제를 복구 시키는 건 시간 문제나 다름없는 상황. 결국 부흥군의 기세가 한층 달아오르자 함께 부흥군을 이끌던 도침을 살해하고 병권을 장악했다. 나중에는 부여풍마저 제거하고 자신이 백제의 왕 자리를 차지하려고 하지만 부여풍이 낌새를 차리고 실패하며 되려 반격당해 죽고 만다.
이런 백제 부흥군의 뜻밖의 내분으로 백제의 부활은 결국 고지를 코 앞에두고 주춤하게 된다.
사실상의 세계대전이다. 백제 부흥군(백제), 왜나라(일본)가 나당연합군(당나라와 신라)과 싸운 백강전투는 4개국의 나라가 동시에 싸운 것인데 이 백강전투에서 백제 부흥군을 도와 파병을 한 왜나라는 큰 빛을 보지 못했고 나당연합군은 기존의 백제성을 다시 빼앗으면서 백제 부흥군에게는 어려움이 다시 찾아온다.
역시 일본 수군은 백제시대 때부터 꼬라지가....ㅡ..ㅡ;;;
조선시대 이순신 장군에게도 진 이유가 다 있었음. 수군(해군)이 물길을 몰라서 지다니 ....
백강전투에서 패배하자 30년만에 돌아온 백제 부흥군의 왕 부여풍은 도망간다. 더군다나 이 전투에서 백제의 씁쓸한 뒷맛을 느껴야 하는데 다름아닌 당나라군에 의해 포로로 잡혀 갔던 의자왕의 태자 부여융이 당나라군의 장수로 참전하여 백제 부흥군과 맞서 싸운 것이다. 백제 부흥군 입장에서는 태자가 자신들을 버리고 당나라의 장수가 되어 공격하는 꼴이 되었고 태자는 자신의 나라를 위해 싸우는 백성들과 맞서 싸우는 비극적인 모양새가 되는데 이게 백강전투다.
의자왕의 동생이 부여풍(백제 부흥군)이고 의자왕의 아들이 부여융(당나라로 끌려가 백강전투에서 당나라 장수로 참전)이니 삼촌과 조카가 만나 백제 땅에서 싸운 꼴이 되었다.
백제가 나당연합군에 의해 멸망하기 직전 백제의 부흥군을 조직해 백제의 백성을 구하고 백제의 부활을 꿈꾸던 흑치상지
부여풍마저 도망가고 백강전투를 시작으로 부흥군은 기세가 꺽인다. 결국 임존성을 끝까지 지키던 흑치상지에게 투항하라는 회유 서신이 도착한다.
흑치상지 장군의 엇갈린 평가는 바로 이 시점에서 시작한다. 지금까지는 백제를 구한 영웅이지만 당나라 회유 서신을 받고 그만 투항하게 된 것이다.
영웅에서 배신자로 엇갈린 평가가 내려진 건 바로 이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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