빵순이들의 성지 인천 연수구 함박마을 (러시아타운 / 고려인마을)
본문 바로가기
식탐/맛집탐구

빵순이들의 성지 인천 연수구 함박마을 (러시아타운 / 고려인마을)

by 깨알석사 2022. 5. 30.
728x90
반응형

인천의 다문화

인천은 항구도시답게 다문화가 일찍이 자리 잡고 있다. 대표적으로 "화교"를 들 수 있는데 익히 아는 여러 지역의 차이나타운 중 가장 많이 알려진 차이나타운이 이곳에 있는 것도 그런 이유다. 조계지의 일본인 거류지가 있었던 것도 마찬가지. 서울 연희동에도 화교들이 많이 있고 잘 알려진 유명 중식당들이 지금도 존재하는데 서울 "연희동 중식당"으로 검색하면 나오는 집들의 중화요리, 중국집들 대부분이 여전히 화교들이 운영하는 화상 가게들만 나올 정도로 화교들이 여전히 많이 산다.

* 화교는 중국 국적의 외국인 신분으로 우리나라에 사는 사람이며 귀화를 하지 않는 이상 중국 국적을 갖고 산다. 우리나라에 살고 우리나라 말을 쓰고 우리와 같은 외모로 구분이 어렵지만 주민등록증이 없다. 대신 영주권이 있어 국내 생활은 자유롭게 할 수 있다. 참고로 한족이나 조선족과 달리 화교에서 말하는 중국 국적은 대륙 중국이 아닌 대만을 의미한다. 이연복 셰프가 대만 대사관에서 근무한 것도 그런 이유. 화상은 화교가 운영하는 가게(점포)를 의미. 화교인 중 선조가 중국 대륙에 고향이 있다고 하는 경우는 국공내전 이전 살던 걸 의미하지 중국이 공산화된 이후 넘어와 정착한 경우는 거의 없다. 일단 화교 사회가 대만을 중심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공산화된 중국 본토인과 어울릴 일 자체가 없기 때문.

화교들이 밀집하여 사는 곳의 공통점은 "학교", 즉 화교학교가 존재한다는 점이다. 어디 가나 자녀 교육에 대한 갈망은 늘 존재하기 때문에 자기네 나라의 문화와 언어를 가르칠 수 있는 교육기관의 역할은 매우 크다. 그렇기 때문에 학교가 들어서고 나면 그 주변에 몰려 살려는 습성이 존재한다. 인천의 차이나타운과 서울 연희동에 화교가 여전히 거주하는 건 그 지역에 화교 학교가 있기 때문이다. (두 지역 모두 지금도 있다) 앞서 화교에 대한 짤막한 설명을 했는데 화교학교는 기본적으로 대만과 관련이 깊기 때문에 중국(대륙) 한족 부모나 조선족 부모는 자녀를 화교 학교에 보내지 않는다. 사상이나 이념 자체가 달라 화교는 대부분 대만 국적자나 대만인 부모가 자녀를 보내는 경우가 거의 전부다. 그렇기 때문에 "중국" 학교라고 해서 다른 시선을 보낼 이유는 없다. 화교가 우리나라 사람들과 서슴없이 잘 지내고 융합될 수 있었던 것도 근본이 대만인이거나 대만 국적자이기 때문이다.

이런 인천에 최근 또 다른 다문화 바람이 불고 있다. 이름하여 차이나타운에 대적하는 러시아 타운, 인천 연수구에 있는 함박마을의 별칭이다. 정식 명칭에 대한 정립이 아직 굳지는 않았지만 원래 명칭은 고려인 마을로 중앙아시아와 러시아 지역에 거주하는 고려인들이 정착하는 지역인데 차이나타운에 비해 이곳은 상업지, 관광지가 아닌 거주지이기 때문에 차이나타운에 비해서는 규모나 시설이 그렇게 크게 자리 잡고 있지는 않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러시아 분위기가 나지 않는 건 아니다. 오히려 차이나타운에 비해 여기가 더 외국 문화를 느끼기 쉽다. 오죽하면 연수구청 알림판과 경고문까지 러시아말이 쓰일 정도다. 관청에서 동네 현수막이나 쓰레기 배출 알림판 등 사소한 부분마저 외국어로 표기하고 있다면 그 지역에 정말 많은 외국인들이 거주하고 있다는 뜻이고 그만큼 그 나라 사람들의 문화가 녹아든 여러 시설이 존재할 수밖에 없다.

주민 70%가 러시아 말을 쓰는 곳

실제로 함박마을 거주자 1만 명 중 미등록 거주자까지 포함하면 약 7천 명이 고려인 또는 중앙아시아, 러시아 사람들로 알려져 있다. 공식 기록에 의하면 약 6천 명 정도의 외국인이 사는 것으로 집계가 되는데 함박마을 거주자 10명 중 6명, 비공식적으로는 10명 중 7명이 외국인들로 구성된 마을이라는 점에서 구청 알림판이 왜 러시아어로 표기되었는지를 짐작할 수 있게 한다. 그만큼 그 사람들의 실생활이 그대로 녹아든 문화가 있을 수밖에 없는 곳이 바로 여기다.

장소는 연수구 초입에 있다. 선학동을 기점으로 가천대학교 방향으로 가면 가천대학교 바로 건너편이 바로 함박마을이다. 위 지도를 보면 가운데 비어져 있는 공간이 나오는데 문학산으로 그 문학산 바로 아래 위치하고 있다. 문학산을 중심으로 바로 위 북쪽에는 문학경기장이 위치하고 남쪽 산기슭에는 함박마을이 존재한다. 함박마을을 두고 코끼리 모양이라는 사람도 있고 밀짚모자 형태라는 사람도 있는데 실제로 딱 그 모양이다. 산 아래 오목하게 들어간 (도로명 함박로) 저 거주지 전체가 함박마을이다. 초입은 인천 연수동 우체국 바로 앞으로 양쪽으로 샛길이 많이 있지만 차가 다니는 중심 도로는 연수동 우체국 바로 앞길이다. 함박마을을 갈 때 잘 못 찾겠으면 연수동 우체국을 검색해 찾아가도 된다. 선학동 먹거리타운 빼면 저 지도에서 유일하게 산 아래 위치하고 있는 건 함박마을뿐이다.

함박마을의 시작

지도를 보면 동네 구획이 굉장히 잘 조성되어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산 아래 달동네가 아닌 인위적으로 토지를 조성한 계획 마을이라는 뜻이다. 일반적으로 산 아래 마을은 달동네이거나 아주 부자 동네이거나 둘 중 하나다. 입지 자체가 프라이버시 보호가 잘 되고 몰려 살기 좋기 때문에 극과 극인 경우가 많은데 이곳의 땅을 보면 여긴 달동네와 거리가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실제로 이곳은 원래 연수구와 연수동이 만들어질 때 "부촌"으로 만들 계획으로 조성되었다. 그래서 가로 세로로 길쭉길쭉 잘 만들어졌고 고급 전원주택 자리가 들어서기 딱 좋다는 걸 직감적으로 느낄 수 있다. 중앙에 공원이 있는 것도 그런 이유. 하지만 개발 과정에서 투자 문제가 생겨 고급 주택 단지 사업은 난항을 겪게 된다. 결국 급전이 필요한 개발업자들에 의해 빌라와 상가건물이 들어섰고 그 결과 원룸과 상가주택이 많이 들어서면서 그 조건에 맞는 세입자들이 많아져 고급 이미지와는 동떨어진 상황이 만들어져 버린다.

입지만 보면 고급 주택이 들어서도 시원찮을 땅에 마구잡이식 주택과 상가들이 들어서면서 연수구에서는 보기 드문 슬럼가 느낌을 갖게 되었다. 실제로 나중에 슬럼가가 되기도 했다. 연수구 하면 인천 사람들에게 일산 느낌이 나는 아파트 밀집 지역이라는 이미지가 있는데 유일하게 여긴 아파트가 없고 모두 상가주택이거나 다세대주택이거나 빌라 밖에 없다. 간혹 고급 주택 단지 조성을 믿고 초기에 자리를 잡은 단독주택들이 있기는 하나 주변에 묻혀 그저 그런 단독 주택이 되었다. 무엇보다 이곳은 투자 계획에 차질이 생기면서 급전을 노린 다세대 주택과 원룸 건축이 성행하게 되는데 그게 나중에 독이 되었다. 세입자를 빨리 받고 급전을 빨리 회전시키려고 보증금이 낮거나 없는 형태가 많아졌는데 이게 결국 단기 거주자들 유입시키는 약빨로 작용하면서 보증금조차 구하기 어려운 단기 주거자들의 집단 주거지가 되어 버린 것이다.

함박마을보다 먼저 알려진 이름 "연수 4단지"

이 지역은 개인적으로도 인연이 꽤 있다. 잘 아는 지인이 바로 이 함박마을 담당 택배기사 출신이었고 또 다른 지인이 바로 이 마을 건너편 아파트에 산다. (지금도 산다) 둘 다 함박마을에는 도가 튼 사람들로 20년 넘게 함박마을을 지켜본 사람들이다. 최근에 함박마을에 놀러 가서 러시아 음식과 중앙아시아 음식을 먹는 식탐 여행을 한 것도 이들 때문이다.

지금도 통용되지만 원래 이 마을은 함박마을이 아닌 "연수4단지"라는 이름으로 더 알려져 있던 곳이다. 처음에 나도 함박마을에 러시아 음식점들이 많아졌다는 이야기를 듣고 새로 만들어진 연수구의 마을 단지인 줄 알았다. 학창 시절을 인천에서 보내다 타지로 옮긴 나는 오래간만에 이들을 만나러 갔다가 러시아 음식 먹으러 가자는 말에 따라갔었는데 이들을 따라 함박마을이라는 곳 입구에 들어서자 나도 모르게 나온 말은 "여기 연수4단지잖아?"였다. 사실 요즘에야 함박마을이라고 하지 예전에는 인천 사람, 특히 연수구 사람들이면 모두 연수 4단지라고 불렀다. (그리고 연수 4단지는 지명을 아는 사람에겐 여러 가지 의미로 꽤 알려진 곳이다)

연수 4단지는 연수구 사람들에게 별로 인식이 좋지는 않다. 앞서 설명한 대로 일단 독립된 단지 구성에 그 안에 거주 형태가 바로 건너편 아파트 입주자들과 상당히 거리감이 있었다. 아파트 밀집 지역은 아파트 상가 빼면 먹거리 놀거리가 부족해 상업단지로 나가게 되어 있는데 여긴 바로 앞에 아파트가 밀집되어 있어도 아파트 입주민들이 건너 놀지 않았다. 길을 배회하면서 분위기를 보면 일단 쎄한 느낌이 든 것은 물론이고 마주치는 사람들이 연수구 아파트촌에서는 보기 드문 사람들이 많아 보였기 때문에 더더욱 그랬는지 모른다.

실제로 "함박마을"이라는 단어만 구글에 검색하면 나오는 첫 번째 연관 검색어가 "함박마을 범죄"다(!!) 아래는 오늘 구글에 함박마을을 검색했을 때 나온 관련 검색어인데 (2022년 5월 기준) 요즘에야 긍정적인 연관 검색어가 차츰 많아지고 있지만 여전히 부정적인 연관 검색어도 많다는 걸 의미한다. 물론 그렇다고 착각하지 말아야 할 것은 연수구에서 벌어지는 범죄는 다 함박마을에서 벌어지는 건 아니다. 오히려 단지별로 나누어보면 함박마을 비율은 낮다. 다만 강력범죄만 놓고 본다면 논란이 될 만한 사건이 유독 높기 때문에 이곳과 관련해 범죄 연관 검색어가 뜬다고 봐야 한다. 거기다 수십 년 전부터 지역 주민, 이웃 길 건너 동네 주민들에게 여러 가지로 안 좋은 이미지의 주택 단지였기 때문에 범죄가 (이미지) 늘 붙어 다닐 뿐, 그게 공포심을 갖거나 두려움을 갖고 살 정도의 단지는 아니라는 걸 분명히 짚고 넘어간다. 사실 이곳 강력범죄도 미추홀구(남구)와 남동구 강력 사건에 비하면 크게 와닿는 것도 아니다.

초중고 시절을 인천에서 보냈고 연수구에 상당히 많은 친구들이 살고 (지금도 살고) 학생 시절 아르바이트를 연수구에서 꽤 많이 했던 나로서도 이 지역은 어느 정도는 잘 알고 있는데 사실 동네 질로 따진다면 송도유원지가 있는 옥련동 유흥가 주변 거주지와 별반 차이는 없다. 오히려 과거 청천동이나 효성동, 송림동과 다르지 않고 신현동, 석남동, 가정동, 십정동이 조금 더 낫다는 정도지 기반 시설 자체가 연수구 초입이라 사실 동네 자체는 굉장히 평범하다. 청천동과 효성동도 아파트가 새로 들어서면서 낙후된 이미지를 벗었고 (서울에서도 찾아온다는 그 동네 유명 맛집도 재개발에 사라진 건 너무 아쉽지만) 신현동과 석남동은 청라지구와 맞물려 번화가 이미지가 되었고 십정동은 아파트 대단지와 중앙공원이 만들어지면서 이제는 살고 싶다는 동네 이미지를 줄 정도로 확연한 변화를 가지고 왔다. 거기에 가정동은 가정오거리 자체가 사라지면서 완전 신도시가 되었다는 점에서 사실 함박마을도 시대 변화에 따라 추세에 맞춰 상당히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

함박마을의 오해

이들 동네만큼은 아니지만 그래도 직접 가보니 상당한 변화를 느낄 수 있었는데 위 연관 검색어에 "함박마을 맛집"과 "함박마을 도시재생"이 같이 뜬 것도 더불어 주목해야 한다고 말하고 싶다. 그러니까 "함박마을 범죄"는 과거 연수4단지 시절의 느낌 때문에 여전히 뜨는 것이지만 그것을 상쇄하는 단어들이 치고 올라온다는 건 상당히 주목할 필요성이 있다. 연수4단지가 주었던 부정적인 이미지가 외국인들이 많이 사는 이태원 같은 느낌을 주는 신박한 단지로 바뀌고 있다고 말이다. 이태원의 햄버거 가게 살인 사건도 영화로 만들어지고 꽤 많이 알려져 있지만 그 누구도 이태원을 외국인 집단 거주지거나 범죄 마을이라 해서 두려워하지 않는다. 함박마을도 사실 딱 그 선이다. 그리고 그 범죄라는 것도 찾아보면 전부 국내인들이지 외국인 관련 범죄는 거의 없다.

애초에 이곳은 보증금이 없는 것으로 유명하다고 했다. 그 때문에 많은 외지인들이 몰려왔는데 그래서 연수구 이미지에 안 맞는 사람들이 꽤 많이 거주한 것도 사실이다. 방문 당시에도 부동산 가게를 찾아 정보를 보니 지금도 여전히 무보증이 대세였다. 그렇다고 월세가 비싼 것도 아니다. 인천 사람들이면 잘 알겠지만 인천의 어느 낙후된 지역이라고 해도 무보증 집을 찾기는 굉장히 어렵다. 무보증 집은 인천에 사실 없다고 봐야 한다. 설령 있다고 해도 무보증이라면 월세가 비싼 법인데 함박마을은 그렇지 않다. 그 때문에 외지인 입장에서 단기로 머물거나 잠깐 살기에는 이곳만큼 좋은 곳도 없다. 물론 장기로 지낸다고 해도 무보증에 내는 월세가 원룸이 많은 주안이나 구월동 지역에 비해 오히려 낮기 때문에 가성비는 인천에서 손에 꼽힌다. 지인들도 모두 그 점에는 공감했다.

다만 이게 약이자 독인데 그 때문에 일반 거주지와 느낌이 다른 사람이 많이 살 수밖에 없다. 연수 4단지 분위기가 나빴던 것도 이것과 관련이 큰데 일단 당시에도 (지금도 그렇다고는 한다) 술집 등에 다니는 아가씨들이 많이 살았고 남자도 유흥 관련된 접대부들이 많이 산 걸로 유명했다. 잠만 잘 곳이 필요한 사람들의 목적에 맞게 딱 살기 좋았던 지역인 것. 그래서 여긴 낮에도 차가 많아 주차하기 힘든 곳으로 유명한데 낮에 사람들이 집에 있고 (자고) 밤에 집이 비는 경우가 많아 택배 했던 지인도 학을 띄었다고 말을 했었다. 택배 자체가 정차를 수시로 해야 하는데 좁은 골목에 차는 많고 집집마다 사람은 다 있는데 낮에 자느라 문을 안 열어주니 미치는 줄 알았다고 한다. 지금이야 쿠팡처럼 문 앞에 택배를 놓고 가도 되지만 사실 그런 문화가 자리 잡은 건 얼마 안 되었고 무조건 건네주거나 슈퍼 등에 맡겨야 했었다. 아파트도 경비실에 택배를 맡겼던 것처럼 집에 사람이 없으면 택배 기사가 힘들었던 시절이었다.

거기에 무보증에 저렴한 월세는 단기 거주를 양산했기 때문에 태생적으로 전입 신고율이 비공식적으로 매우 적었다. 어차피 잠깐 있다 갈 곳이기 때문에 동사무소에 전입 신고를 하지 않고 그냥 돈만 내고 산다는 것인데 애초에 무보증 집들이 몰려 있다는 건 여기에 정착해 살 생각이 없다는 걸 의미하기도 한다. 이게 결국 이웃에 누가 사는지 전혀 알 수 없을뿐더러 공기관에서도 누가 사는지 전혀 알 수 없기 때문에 무법천지가 될 소지가 높았다. 연수 4단지 이미지가 별로 안 좋았던 것도 다 이런 이유. 반면 연수4단지가 의외로 방이 잘 나가고 세입자 받기가 수월한 것도 바로 이 때문이어서 사람들은 늘 복작복작 몰려들었다. 다만 그 유출입 되는 사람들이 평범해 보이지 않아서가 문제. 결국 단점이 장점이 되고 장점이 단점이 되는 것인데 무보증 방이 많다 보니 가족보다는 단독 거주나 유흥업소 숙소 형태의 방들이 많아질 수밖에 없고 방에 대한 터치가 별로 없는 지역이다 보니 자연스럽게 불법체류자도 많아지면서 동네가 슬럼가 느낌을 주기에 충분했다.

반전의 역사를 쓴 고려인들

함박마을과 관련해 기사나 블로그 등을 살펴보면 가장 빨리 나온 변화의 시점이 2017년 언저리라는 걸 알 수 있다. 연수 4단지의 기존 이미지 대신 전혀 다른 분위기가 느낌을 주는 함박마을로의 재탄생을 의미하는데 이때 중요한 것이 바로 고려인들의 등장이다. 불과 5년 전까지만 해도 여전히 연수 4단지의 이미지는 내가 알던 20년 전의 이미지와 하나도 달라진 것이 없었지만 2017년 즈음에 고려인들이 이 지역에 몰리면서 뜻하지 않은 변화의 시대를 맞게 되었다.

당시 정부는 외국에 있는 고려인들을 초청하거나 특별 귀화시키는 형태로 유입시키는 정책을 펼치고 있었는데 그 중심에는 강제로 이주당한 고려인들, 특히 그중에서 독립유공자들의 후손을 데려오는데 중점을 두고 보훈정책을 펼쳐나가고 있었다. 박근혜 정부는 독립유공자 발굴 사업에 있어 대부분 속하는 고려인 후손들을 지원하는 정책을 펴고 있었는데 이때 나온 것이 바로 특별 귀화, 한국에 정착하여 살게 해 준다는 것이었다.

이때 이들이 살 만한 장소를 알아봐야 하는데 집단 거주지를 만들기는 어렵고 정착금을 지원하는 형태로 하여 귀화 지원을 펼치게 된다. 하지만 이들 입장에서는 소득이 높은 대한민국의 정착은 힘이 들 수밖에 없고 풍족하게 지원하는 것이 아닌 최소한의 생활만 보장하는 단기 지원이 대세가 될 수밖에 없기에 결국 저렴하게 지낼 수 있는 공간을 찾아갈 수밖에 없게 된다. 독립유공자의 후손이라면 연금 지원이라도 하겠지만 고려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생계 보장까지 해줄 순 없다. 결국 고려인들은 귀화를 한 뒤에는 스스로 알아서 살아야 한다. 이에 고려인들이 많이 거주하는 광주 지역과 외국인 노동자들이 많이 사는 안산 지역이 대표적인 거주지가 되었는데 남동공단과 송도신도시 개발로 인한 단기 숙소로 연수 4단지가 각광을 받고 외국인들에게 많이 알려지면서 "무보증 월세방"의 소문은 이들에게도 들리게 된다. "가자 연수4단지로!"

고려인 마을의 탄생

이렇게 고려인들이 하나 둘 정착하면서 다른 도시와 달리 살기 좋다는 소문이 이들에게 나기 시작한다. 일단 뒤에는 산이 있고 등산로가 전부다. 앞에는 연수구의 대표 이미지인 아파트촌이 있고 새로 계획된 지역구라 길과 인프라가 잘 만들어져 있다. 보통은 슬럼가와 번화가가 구분되어 있고 그 경계도 확연하게 나뉘지만 여긴 겉으로 봐도 잘 모르고 안으로 들어가도 평범한 상가 밀집 지역에 지나지 않는다. 연수구 초입의 유일한 상가 지역이라 단지 앞 건물은 "빌딩"이 있어 깔끔한 느낌을 준다. 주변 친구나 지인을 통해 사전에 "선입견"이나 "편견"을 갖고 들어가지 않는 이상 그냥 평범한 동네로 보이기 때문에 거주자 입장에서는 연수구에서 이만한 동네도 없다. 

나도 학창 시절 친구들 때문에 안 좋은 이미지를 갖고 봐서 그렇지 놀러 갈 때마다(?) 딱히 슬럼가다운 느낌은 크게 받지는 않았다. (선입견이 이래서 무섭다) 오히려 구월동 카페촌 혹은 구월동 먹자골목으로 불렀던 (구월동 수협사거리) 동네보다는 더 낫다는 느낌을 받았다. 반면 연수 4단지는 겉으로 보면 같은 연수구의 청학동 주택단지와 비슷한 수준인데 거주비는 상당히 저렴하고 또 초입에 있어 인천 중심지로 나가거나 남동공단, 남동 IC 고속도로 등으로 진출하기 편하기 때문에 바로 이웃하는 선학동 사는 것과 거의 차이가 없다. 일단 보증금이 없거나 적은 게 가장 큰 장점이 될 수밖에 없다. 이는 돈 없는 사람에게는 천국과도 같은 곳. 월세는 벌어서 내면 되니 말이다.

결국 고려인들이 조금씩 이곳에 오게 되면서 분위기는 반전이 된다. 기존에는 유흥 접대부나 불법체류자 외국인들, 정체를 알 수 없는 미전입 신고자들이 단기로 머물기로 유명한 지역이었는데 고려인들이 오면서 이들은 이곳을 "정착지"로 꾸미기 시작했다. 단기 거주가 아닌 장기 거주지로 선택했다는 것이다. 이는 결국 자리 바뀜에 큰 획을 긋게 된다. 접대부나 불체자가 빠진 자리에 가족이 들어오고 불법체류자가 아닌 영주권 내지 귀화자가 들어오면서 같은 외국인이어도 외국인 부류의 분위기도 달라지게 된다. 없던 아이들이 보이기 시작하고 안 보이던 학생들이 보이기 시작하면서 동네 분위기가 예전과는 달라지게 된다. 이게 무보증의 반전, 보증금이 싼 집의 단점이 최대 장점의 역전으로 이루어진 것이다. 5년 만에 기하급수적으로 고려인들과 그들이 쓰는 러시아말이 통용되는 중앙아시아와 러시아 사람들이 몰리면서 동네 분위기를 확 바꿔 놓았다.

실제로 함박마을에 가면 중앙에 공용주차장이 있고 그 주차장 위에는 공원이 있다. 이 공원도 예전에는 말 많고 탈 많은 공원이었다. 부모가 모두 밤에 일을 나가거나 늦게 들어오는 집이 많아 늦은 저녁에도 아이들이 죄다 여기에 몰려 있으면서 노는 것으로 유명했는데 집이 밥을 줄 사람이 없으니 애들이 여기서 시간을 보내는 일이 많았다. 우범지대로 알려진 것도 이 공원 때문이다. 그런데 지금 여길 가보면 깜짝 놀랄 정도로 분위기가 반전이 되었다. 낮에 가도 여긴 담배 피우는 청소년을 쉽게 만나 볼 수 있던 곳이었는데 지금은 유모차가 절반이고 유치원생이거나 초등학생 정도 되는 아이들이 공원을 점령하고 재미있게 놀고 있다. 나는 함박마을을 올해만 5번 방문했는데 (음식이 의외로 맛있음) 공원을 가보면 항상 아기들 노는 풍경이 보인다. 불량 청소년 대신 까르르까르르 웃고 노는 애기들이 정말 많다. 

지금은 뒤편에 아주 큰 유치원이 있다. 공립 유치원으로 알고 있는데 규모도 상당하고 정부와 지자체(연수구)에서 지원을 많이 한 것으로 알고 있다. 이 말은 즉, 이 마을에 유딩들이 엄청 많다는 뜻이다. 불량 청소년은 온데간데없고 초등학생조차 별로 구경하기 힘들었던 곳인데 (가족단위 구성 집이 별로 없으니) 지금은 길가다 보면 유모차는 1대 이상은 꼭 보게 되고 초등학생부터 중학생 이상 아이들도 심심치 않게 찾아볼 수 있다. 무엇보다 공원에 가면 자녀를 데리고 나온 부모들이 상당히 많아졌다. 재미있는 건 열에 아홉은 모두 러시아말을 쓴다는 것.

한국말보다 러시아말이 더 많이 쓰이는 곳

함박마을은 함 씨와 박 씨가 살아서 만들어진 동네 이름이라고 알려져 있다. 그러나 인천광역시 공식 홈페이지의 지명 유래 설명을 보면 (문화재과 담당) 꼭 그렇진 않다고 한다. 단지 설에 지나지 않는데 함 씨와 박 씨가 살았다는 근거는 없고 구전만 있으며 전문가들은 오히려 이 함박이 함지박 등의 모양이나 함(한) 박(밭) 한자 말의 변화에 의한 큰 밭이 있는 동네라는 뜻에서 생긴 함박이 아닌가 하는 쪽으로 해석을 하고 있다고 한다. 함박웃음 역시 크게 웃다는 뜻처럼 함박이 크다는 것과 연관 지어 보는 편인데 다른 지역에 쓰인 함박 지명도 대체로 큰 밭에서 유래했다는 것이다. 

지금은 연수 4단지라는 지명보다는 함박마을이라는 지명으로 불리는데 원래 함박마을로 처음부터 만들어졌지만 마을 자체가 고급 단지에서 벗어나면서 그냥 연수 4단지로 불렀던 곳이 이곳이다. 지금은 분위기가 바뀌고 동네 입구에 큰 바위로 함박마을이라는 지명을 홍보하면서 함박마을로 굳어가고 있다. 타지에서 온 맛집 탐방 목적의 관광객은 이 함박마을 바위 표시에서 기념촬영을 종종 찍는다고도 한다. (사실 이것만큼 확실한 방문 인증도 없다) - 도로에서 함박마을 들어가려고 동네 길목을 쳐다보면 함박마을이라는 큰 바위를 보게 된다. 그리로 들어가도 되지만 조금 더 가서 중앙로를 타고 들어가는 것이 보통이다.

러시아 마을이 생겼다는 말에 지인이 불러 처음 이곳을 작년에 갔었다. 그때나 지금이나 확실히 느끼는 건 정말 여긴 러시아 말을 많이 쓴다. 많이 쓴다는 것보다 그냥 러시아 마을이 맞다. 동네를 쭉 다니다 보면 한국말은 나만 쓰고 우리 일행만 쓴다는 걸 느낄 정도로 지나가는 사람이 다 러시아말만 쓴다. 전화하는 동네 아저씨도 외모만 보면 한국인 같은데 고려인이라 그런지 러시아말이다. 중학생으로 보이는 남녀 아이들 무리가 모여 있는 걸 우연히 지나갔는데 전부 러시아말을 쓰고 있었다. 공원에서도 정말로 코 흘리는 코흘리개 꼬꼬마도 러시아말을 쓰고 있었고 초등학생으로 보이는 무리들도 모두 러시아말을 쓰고 있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한국말을 건네면 한국말을 한다. 아이들은 모두 한국 초등학교와 중학교를 다녀서 그런지 모두 한국어로 질문하면 한국어로 대답을 해준다.

지인의 말에 의하면 자기가 사는 아파트 바로 앞에 일반 초등학교가 있는데 (함박마을 바로 건너편 10분 거리) 거기에 함박마을 아이들이 거의 다닌다고 한다. 다른 곳과 달리 여긴 외국인 학교 그런 건 없고 모두 한국 일반 초중고를 다니는데 초등학교의 경우 학교 정원의 5할 (50%) 정도가 고려인이거나 러시아어를 쓰는 아이들일 정도로 외국인 학교화 되었다고 한다. 실제로 그 이야기를 듣고 관련 정보를 찾아봤다. 인천교육청 및 연수구청 교육 현황을 찾아본 결과  (나이스 교육망) 함박마을 건너편에 있는 문남초등학교의 39%가 외국인 아이들이라는 자료를 찾아볼 수 있었다. 이 정도면 그 학교에 다니는 우리나라 아이들도 마음만 먹으면 러시아말은 같이 배울 수 있을 것 같다.

빵돌이와 빵순이들의 성지

중앙아시아를 비롯해 러시아, 타지키스탄, 우즈베키스탄, 카자흐스탄, 키르기스스탄, 위구르 사람들이 사는 걸로 보인다. 최근 러시아와 전쟁 중인 우크라이나인도 사는 걸로 보이는데 점포에 따라 러시아 전쟁 반대, 혹은 우크라이나 응원 문구를 볼 수 있을 정도로 러시아 분쟁 관련 소식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뉴스를 찾아보니 인천 경찰도 러시아인과 우크라이나인들 간의 싸움이 있지 않을까 특별 순찰을 하고 있다고 하는데 정작 함박마을에 사는 러시아인들은 지금의 러시아 행태에 반대를 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라 두 세력이 맞붙는 불상사는 아직까지 없다는 뉴스를 볼 수 있었다.

이들이 사는 지역 모두 주식이 "빵"이다. 유럽과 마찬가지로 밥 대신 빵을 먹는다. 고려인들도 빵을 주식으로 삼는 것 같았다. 이들 지역 자체가 쌀농사가 아닌 밀 농사가 주력이다 보니 자연스럽게 빵을 먹는 것 같았다. 그래서일까 빵이 정말 맛있다. 우리나라 제빵사들이 아무리 빵을 잘 만든다고 하지만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빵만 먹는 이들에게는 빵에 진심일 수밖에 없다. 빵을 먹으면 그게 느껴진다. 레표시카라고 불리는 빵도 그들 나라에서 먹는 것처럼 실제 화덕에서 만들어 먹는다. 우리가 사서 먹은 것도 다 그 화덕에서 나온다. 여긴 장사를 위해 가게를 한다기보다 동네 사람들이 원래 주식으로 먹기 위해 만들어 파는 가게가 대부분이다 보니 음식 자체가 장사용이 아닌 일반 식사용이 많다. 현지에서 먹는 그대로의 음식이라는 뜻이다.

5명의 일행 중 빵을 거의 먹지 않는 사람이 있다. 1년에 자기 돈으로 빵을 사 먹은 적이 많으면 1번(!!)이라고 할 정도로 빵을 안 먹는 사람이 있는데 이 사람도 빵을 돈 주고 싸갔다. 처음에는 다른 일행이 산 걸 끝까지 안 먹겠다고 하다 조금 뜯어먹었는데 담백하고 맛있다며 포장해갔다. 간식이나 주전부리가 아닌 주식용이다 보니 빵이 달고 짜고 없이 그냥 담백한데 먹다 보면 심심한 것이 은근 중독성이 있다. 우리가 쌀밥에 진심인 것처럼 이들도 빵에는 진심인 것 같다. 일행들이 말하길 여긴 빵 사러 온다고 한다. 종류도 많고 맛도 다양해 빵 고르는 재미가 있다. 무엇보다 가격이 후덜덜....비싼 게 아니라 이게 맞아? 할 정도로 가격도 싸다. 얼굴 만한 빵이 3천 원이 안된다. 만 원어치 빵 사면 남자 5명이 먹어도 배가 부를 정도다.

보이는 가게마다 맛있어 보여 한 달에 한번 꼴로 찾아가 가게를 탐방했는데 여긴 고기도 진심이다. 원래 빵과 고기를 주식으로 먹다 보니 고기만 가득해 오히려 무서워요 소리가 난다. 우리나라 말로 만두, 이들 말로는 만티라는 만두를 먹었는데 한 입 먹고 안에 고기 들어간 양을 보면서 우와 소리가 절로 나왔다. 일행 중 한 명은 고기 나올 때마다 무섭다고 호들갑을 떨 정도다. 중앙아시아인만큼 중국과 가깝기에 중국 음식과 비슷한 게 많다. 만티도 그렇고 샤슐릭도 그렇고 (양꼬치), 우리나라 냉면과 국수를 섞은 국시나 베쉬바르막이라 불렀던 노른(노린)도 중국 음식에 무난한 식성이라면 다 맛있게 먹을 수 있다. 

일행 중 하나는 비린내에 민감하고 냄새와 향에 민감한 편인데 여기 와서 음식 가리는 걸 못 봤다. 다 맛있고 다 좋았다고 했다. 나 역시 마찬가지. 평범하게 느껴진 건 있어도 맛이 없다고 느껴진 건 없다. 다만 여기 사람들이 다 그런가 모르겠으나 식성에 따라서는 매우 짜다고 느낄 수 있다. 고기도 마찬가지 양념이 세다. 그래서 빵과 같이 먹어야 하는지도 모르겠다. 하긴 우리나라도 반찬이 주로 짜고 양념이 강한데 담백한 쌀밥과 같이 먹는 목적이라 그렇게 된 것과 일맥상통한다고 해야 할지도. 5명 중 3명은 무난하다 했고 1명은 짜다 했고 1명은 매우 짜다 했다. 그래서 덜 짜고 맛있게 먹으려면 주문할 때 "한국 사람이 좋아하는 걸 추천해 달라"고 해야 한다. 그럼 알아서 추천해 준다.

물론 아무거나 막 시키면 대부분의 점원이 커트를 잘해준다. 6개월 동안 다섯 가게를 갔었는데 다섯 가게 모두 특정 음식은 한국 사람이 먹기 힘들다며 주문 커트를 했다. 자기들은 잘 먹지만 한국인 입맛에 맞지 않을 거라며 그래도 먹겠다면 주문하겠지만 결코 권하지는 않는다며 알아서 조절해 준다. 다섯 가게의 점원이나 사장 모두 친절하게 알아서 너무 현지 음식이다 싶으면 조절해 다 주문을 받았다. 옆 테이블 외국인이 워낙 맛있게 먹길래 그걸로 같이 달라고 한 적도 있는데 후회할 수 있다고 했으나 끝내 궁금해 주문을 한 적이 있다. 결론은 처음 접하는 외국 음식이라면 식당 점원이 하라는 대로 하는 게 장땡이고 진리다. 손님 입맛, 특히 한국인 입맛에 맞게 조리된 식당 메뉴가 아닌 이들이 일상에서 먹는 집밥이라는 개념이라는 걸 염두하고 먹어야 한다. 이들도 딱히 한국 입맛에 맞게 조리를 바꾸거나 다르게 할 생각은 없어 보인다. 여기 식당 자체가 외지인보다 현지인들 상대로 하는 곳이니 그럴 수밖에..(더군다나 여긴 정말 외국인이 많다. 가게 입장에서 봐도 현지 입맛에 맞게 하는 게 답이다) 오히려 유학 경험이 있거나 이들 나라 본토 맛을 안다면 여긴 천국이다.

삼각형 모양의 삼사라는 이 녀석은 양고기가 가득 들어있는데 개인적으로 추천한다. 이건 식당이 아닌 마켓에서도 살 수 있어 슈퍼에서 사는 걸 추천한다. 이곳 슈퍼들은 모두 현지인들을 상대하는 슈퍼로 음식(빵)도 팔고 요구르트도 파는데 이게 몽골이나 중앙아시아에서 먹는 요구르트구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들 정도로 우리나라 요구르트랑은 차이가 있다. 요플레처럼 단맛은 없고 신맛이 감돈다. 찐득하게 만들어 파는 게 있고 물에 희석해 파는 게 있는데 소금을 넣어 먹는 문화가 있어 생각보다 짜게 느낄 수 있다. 특히 물에 희석해 파는 건 소금물인가? 싶을 정도로 짜지만 먹을만하다.

양꼬치와 소꼬치가 있는데 양꼬치는 중식이나 양꼬치 전문점에서 먹는 것보다 백번 낫다고 본다. 양꼬치에 입맛이 들려 최근에 양꼬치 전문점을 많이 갔었는데 연수구의 함박마을에서 양꼬치를 먹고 난 뒤로는 양꼬치 전문점을 갈 생각을 아예 접었다. 가격도 차이가 나지만 양도 그렇고 맛도 그렇고 양꼬치를 먹을 거면 이걸 안 먹는 게 여러모로 손해다. 가게마다 차이는 있는데 고려인이 운영하는 쪽은 정말 저 꼬치가 창(칼) 수준으로 자칫하면 배 찌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크다. 반면 코쟁이 느낌 나는 우즈베키스탄이나 러시아 사람 가게로 가면 꼬치가 쇠꼬챙이 수준인데 처음엔 그것도 꽤 크다고 생각했다가 나중에 검객이 쓰는 검 수준에 꽂힌 양꼬치를 본 뒤로는 다 젓가락으로 보일 뿐, 고기양도 충분하고 값도 적당하다. 현지에서 먹는다는 이미지를 찾아 그대로 올려봤는데 실제로도 저것과 똑같다. 그대로 나온다.

한국어는 안 통한다고 하는데 최근 들어 한국인들이 많이 놀러 와서 그런지 점원들이 모두 한국말을 썼다. 웬만한 대화는 다 통하고 차림새만 봐도 한국인인 줄 아는지 주문을 한국어로 묻는 경우도 많다. 참 메뉴판은 다 한국어가 병행되어 쓰여 있다. 러시아 말과 한국어는 기본이고 한국인들이 영어를 할 줄 안다는 말을 들었지만 가게 일부는 영어 메뉴판도 병행해서 주기도 한다. 러시아어 + 한국어 메뉴판이거나 영어 + 한국어 메뉴판 등이 기본 제공된다. 제일 좋은 건 대부분의 메뉴판에 음식 사진이 있어 한눈에 알아보기 쉽고 메뉴 밑에는 음식 재료와 함께 맛에 대한 정보도 제공되어 이들 나라 음식에 대해 1도 모르는 사람이라도 메뉴판만 보면 다 골라 시켜 먹을 수 있다. 그 덕에 메뉴판을 책 보듯이 탐구해야 하는 건 어쩔 수 없다. 그걸 아는지 메뉴판을 주면 눈치 보지 말고 천천히 보라고 한다.

유럽여행러, 유로푸드성애자, 중앙아시아푸드에 꽂힌 사람에게는 강추. 유학생이거나 유학 경험이 있거나 이태원 같은 퓨전이나 가공된 상업용 음식 말고 서래마을과 같은 가정식을 먹고 싶다면 여길 강추한다. 물론 빵돌이와 빵순이라면 무조건 한 번 이상은 방문하라고 권장하고 싶다. 또한 중앙아시아답게 종교 때문에 무슬림이 많다. 그 말은 여기 고기는 할랄푸드도 많다는 걸 의미한다. 정육점도 있는데 할랄푸드 전문 정육점이다. 할랄푸드 전문 정육점이 있을 정도면 정말 많은 외국인과 무슬림이 산다는 뜻이다. 개인적으로 할랄고기를 사보고 싶었으나 정육점에는 한국어 표기가 일절 없고 주인도 내가 들어오면 어쩌나 하는 표정으로 약간 숨길래 나도 용기를 내진 못했다. 느낌상 정육점은 정말 현지인들만 상대하는 느낌.

연수구에는 송도 신도시가 있다. 연수구 초입에 함박마을이 있고 연수구 끝에 송도신도시가 있다. 예전에는 송도신도시에서 맛집 탐구를 많이 했었는데 함박마을의 고려인 마을, 일명 러시아 타운이 있다는 걸 안 뒤에 여기 음식 탐방을 주로 하고 있다. 솔직히 다 맛있다. 송도신도시에서 놀고 밥은 함박마을 가서 먹는 경우의 수가 많아졌다. 일단 가격적인 이점도 있고 맛도 좋고 여러 가지 음식을 하나씩 점령하는 재미도 큰데 이게 또 워낙 다양해 다 먹어보려는 욕심에 자주 찾는다. 베이커리처럼 예쁘게 꾸민 빵 가게도 좋았고 슈퍼도 좋았고 먹었던 음식이 다 잘 맞아서 신기하고 좋았다. 국시라고 불리던 국수는 정말 배워서 써먹고 싶을 정도로 우리 일행 모두 박수를 쳤다. 국시가 아닌 현지에서 먹는 면 요리도 상당히 많은데 면 요리만큼은 확실히 백점 만점에 백점. 뭘 먹을까 고민된다면 일단 면 요리는 꼭 시키자. 면만큼은 실패가 없다.

참고로 면을 파는 집에서는 젓가락이 없을 수도 있다. 이들이 젓가락 문화를 쓰는 나라가 아닌 만큼 포크가 기본이다. 그러나 고려인이 운영하는 경우에는 한국 사람의 입장에 맞게 젓가락을 구비해 놓고 우리나라 식당과 같은 시스템으로 수저통을 배치하기도 한다. 이럴 때는 여러 메뉴를 시킬 경우 숟가락, 젓가락, 나이프(칼), 포크 4개를 다 써야 한다. 메뉴를 봐도 잘 모르는 경우 옆 테이블 음식을 살짝 보자. 그가 한국인이든 현지인이든 같은 걸 시키면 무난하다. 그게 여러 테이블에 공통적으로 올라간 경우라면 더더욱 좋다. 참고로 여긴 몽골 식당도 있다.

정세균 전 총리가 위원장이 된 도시재생특별위원회라는 것이 있다. 연수구도시개발계획도 포함되어 있는데 국토부와 연수구가 공동으로 도시재생뉴딜사업지로 함박마을을 선정했다. 연수구 자체는 물론 중앙정부에서도 이 마을을 지원하고 있다는 것이다. 총 지원금은 240억 원으로 수년에 걸쳐 집행하는데 아직 절반도 집행되지 않은 걸로 나온다. 다시 말해 아직 더 개발할 여력이 남아있고 지원금이 남아있다는 것으로 환경 개선 작업에 상당한 노력을 할 것으로 보인다. 더군다나 고려인과 러시아계, 중앙아시아계 사람들이 모여사는 특화, 특성 마을로 더 밀어준다면 100억 가까이 더 투자되는 과정에서 관광특구로 발전할 가능성도 높다. 물론 다른 곳과 달리 여긴 상업지구가 아닌 주거지구이기 때문에 거주지 개선에 더 투입이 되겠지만 거주자와 거주지 개선이 곧 연수4단지의 변화를 의미하기에 연수구 주민 입장에서도 상당히 좋은 재생사업이 아닌가 싶다. 연수구 내에 슬럼가 이미지를 갖는 동네가 사라지거나 바뀌는 것이니 말이다.

유명 브랜드 커피숍도 들어와 있는데 이 작은 단지에 커피숍 매장이 있다는 건 그만큼 수요가 된다고 볼 수 있다. 동네에 대형 커피숍이 들어올 이유가 없는데 여긴 들어왔다. 그만큼 장사할 만한 수요 창출이 되었다는 것인데 매번 갈 때마다 커피숍에 사람이 늘 북적인다. 절반 이상은 러시아 여자들로 보이는데 장모님의 나라답게 외모들이 출중한 건 부정하기 힘들다. 참고로 아디다스에도 진심인 문화를 갖는 만큼 아디다스 옷도 많이 팔았는데 딱 봐도 짭 냄새가 나는 것들이 많다. 길거리 노상에서 파는 경우도 많다. 길거리 노상에서 진품을 파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되지만 늘 손님은 있는 편.

과거 우범지대라는 오명 때문인지 여기는 특별 순찰 강화지역으로 분류가 되어 있다. 인천의 다른 지역과 달리 곳곳에 경찰에서 붙인 안내 문구도 보인다. 기본적으로 연수구 관할 연수경찰서(담당 지구대) 순찰이 있고 기동대가 배치되어 있으며 관광경찰도 존재한다고 한다. 낮에는 우범지대라는 느낌을 전혀 받을 수 없고 일부러 저녁에도 놀러 가 봤는데 저녁이라고 해서 특별히 더 위험하거나 무섭다는 느낌은 받지 못했다. 다만 낮과 달리 아이들이 없고 안 보이던 네온과 야시시한 옷을 입은 아가씨들이 많이 보인다. 지인 말로는 유흥업소 접대부들이 여전히 무보증 방에 많이 산다고 하는데 그걸 증명하는지 여긴 동네 안에 택시 전용 탑승장이 있다. 택시가 항시 들어와 메인 거리에 정차하고 있는데 친절하게 바닥에 택시 승차장이 적혀 있을 정도로 택시를 고정적으로 이용하는 사람도 꽤 있다는 건 지인 말이 상당수 맞는 말이라는 뜻이 된다. 그들만큼 택시를 고정적으로 쓰는 사람도 없으니.

러시아 마을, 러시아 타운이라고 하나 실제로는 러시아 사람보다는 러시아 말을 쓰는 사람들이 사는 곳이라고 해야 정확하다고 할 수 있다. 고려인도 러시아말을 쓰고 우크라이나, 우즈베키스탄도 다 러시아말을 쓰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고려인도 러시아 쪽이 있고 우즈베키스탄 쪽 사람이 있고 카자흐스탄 쪽이 있고 다 다르다. 각 나라에 흩어져 사는 고려인들이 모인 경우도 있고 외국인도 각 나라에 살다 러시아어가 통한다는 이유로 모인 경우가 많다. 결국 외형적으로는 러시아어 때문에 러시아 사람들이 사는 것으로 오해하나 실제로는 러시아말이 통하는 5개 국가의 사람들이 모여 사는 것으로 음식도 비슷한 듯하면서도 차이가 많다. 현지인들도 가만히 보면 가는 식당만 가고 약간 부류가 나뉜다. 같은 음식인데 부르는 이름이 약간 다르거나 아예 다른 경우도 있다. 또 같은 음식 이름인데 음식 내용이 약간 다른 경우도 있다. 한국어가 통하고 한국어만 쓰는데 한 동네에 한국인과(한국) 재일교포 3세(일본), 재중교포(중국/조선족) 3세, 재미교포 3세(미국), 한국어를 쓰는 외국인(베트남 등)이 운영하는 한식당들이 모여 있다고 하면 그 느낌이 올까.

정리

식당은 따로 추천하지 않는다. 블로그나 러시아 정보에 소개된 함박마을 음식점들. 함박마을 맛집 등으로 나온 음식점들은 믿고 가도 된다. 따로 평을 하거나 할 필요 없이 다 기본 이상이다. 러시아 음식, 중앙아시아 음식을 아는 사람과 가면 좋지만 아무것도 몰라도 그냥 가벼운 마음에 놀러 가서 먹는 것도 무리가 가지 않는다. 연수구 주민이라면 개인적으로 주말에 가족과 외식 개념으로 놀라가는 것도 추천한다. 연수구에 사는 지인 2명은 격주로 자주 간다고 하는데 도장깨기 하듯이 식당과 메뉴를 다 탐방하고 있다고 한다. 물론 늘 후회 없고 만족한다고. 저녁에 러시아 맥주나 보드카를 먹어 보려 했지만 차 운전 때문에 주류는 먹어보진 못했다. 당연히 보드카는 쉽게 구경할 수 있다.

개인적으로 강력 추천은 슈퍼에서 파는 "햄버거", 그리고 각 가게의 양꼬치, 그리고 공원 입구에 있는 케밥집, 함박로 중앙에 있는 베이커리 가게, 슈퍼는 4곳이 있는데 (실제로는 더 많다) 슈퍼는 보이는 족족 다 들어가길 바란다. 가게마다 특색이 있고 수입품이 다르다. 그리고 메인 거리만 보면 안 되고 함박마을 전체를 구경한다는 생각으로 골목골목을 다 가되 상가가 있을 법한 좌우 가로 골목을 집중적으로 파면 의외로 숨겨진 빵집들이 있다. 여긴 정말 한국인들도 잘 안 가는 곳이라 이런 곳은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일종의 "난"과 같은 주식 빵을 화덕에서 직접 만들어 파는 가게도 있는데 거기도 좋고 삼사만 파는 가게도 있는데 여기도 진심인 곳이다. (근데 여기 주인들 다 식당 손님으로 만났다. 밥은 안 해 먹고 사 먹는 듯)

예전 연수 4단지만 생각해서 여길 보면 안 된다. 고려인 독립유공자의 후손이 살고 있고 (이건 뉴스로 직접 확인했다) 고려인 거주자 단체가 형성되면서 마을 개선 사업과 운동을 열심히 하고 있는 것으로 나온다. 어디 가나 똑같지만 여기도 고려인 엄마들이 합심해서 동네를 꾸미고 있다. (바자회 등) 일단 자신들도 자녀를 키우고 정착해 살아야 하기 때문에 도시재생환경개선에 크게 노력을 안 할 수가 없다. 과거 무보증에 전입 없이 몰래 숨어 지내다 사는 사람들이나 사는 이미지와는 이제 거리가 있다. 공용 주차장도 있고 주차도 크게 문제가 없어 시간 보내기 좋다. 길거리든 식당이든 슈퍼든 나만 조용히 있으면 세상 모두가 러시아말을 쓰고 주고받는다. 근데 신기하게 내가 한국어를 하면 다 알아듣고 부족해도 어눌한 발음으로 한국어로 대답은 해준다. 같은 한국인데 여기 물가는 딴 세상 같다는 생각이 든다. 현지인들 생활에 맞췄는지 값이 저렴한 편이다. 높게 받으려고 하면 자연스럽게 현지인들도 높은 가격을 내야 하니 가격이 쉽게 오를 것 같진 않다. 고기가 땡기면 무조건 여기다.

함박마을에서 편의점에 갔는데 아르바이트생이 날 째려본다. 보통은 계산대에 서서 바로 주문을 하지만 장소가 장소인지라 혹시 한국말 모를까 봐 나도 선뜻 주문을 못했다. 그럼 보통은 알바가 뭐 필요하세요? 묻는데 그 알바생도 아무 말 없이 날 쳐다본다. 근데 이게 뭐랄까 서로 쫄았다는 느낌이랄까. 나중에 내가 주문했는데 서로 웃으면서 빵 터졌다. 알고 보니 알바가 편의점 아르바이트한 지 얼마 되지 않은 한국인이었다. 내가 고려인인 줄 알고 러시아말 쓸까 봐 졸아서 쳐다본 거고 (못 알아들은 경험이 많은 듯) 나도 이곳 편의점이면 러시아말을 쓰는 여기 고려인 청년을 쓰지 않을까 싶어 쫄아서 쳐다봤던 것인데 둘 다 한국인, 내가 한국말하자 안심하는 그의 표정과 그 알바생이 한국말하자 안도하는 내 표정에 서로 빵 터져 웃었다. 이게 영어라면 어찌해보는데 러시아말이니 서로 눈치게임을 할 수밖에..ㅋ

[식탐/맛집탐구] - 당일도축? 인천 십정동 축산물시장 (십정동 도살장/도축장)

[금융/부자노트] - 재산과 자산의 뜻과 차이

[식탐/음식탐구] - 햇반, 오뚜기밥 데우지 않고 그냥 먹어도 될까?

[교육/언어유희] - 비번, 비번 근무자 뜻 (주번, 당번, 당직, 숙직, 일직)

[수송/블랙박스] - 블랙아이스 사고, 1차로 정주행 중 실선 구간에 진입했다면

[금융/증권투자] - [주식투자] 당신이 장기투자자라면 알아야 할 자산운용회사 - 블랙록/BlackRock

[교육/전통역사] - 풍수 인테리어로 호랑이 그림은 좋다?

[식탐/맛집탐구] - 골목식당에서 자주 언급되는 식당 원가 계산 문제와 인식

728x90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