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더 더 스킨 네티즌 평점 5점대, 관람객 평점 7점대로 호불호가 확 갈리는 영화다. 예술적 작품, 조금은 난해하지만 철학적인 의미로 받아들이는 사람이라면 7~8점대, SF 호러물이나 외계인 침공, 조금은 야하고 섹시한 것을 기대했다면 평점이 5점 이하로 나올 영화다. 포스터 자체가 7월, 그녀가 벗는다로 나와있고 여주인공이 스칼렛 요한슨이기 때문에 얼마나 벗길래 그녀가 벗는다라는 표어를 쓸까 의구심을 만들기 충분한 떡밥이다. 그것이 껍질을 벗는다는 개념과 언더 더 스킨의 제목과 연관성이 있어서 그 따위 표현을 썼다고 말을 한다면 말장난의 천재...그런 심도 있는 표현이라기 보다는 낚시용 멘트라는 건 인정하자. 상업 영화를 두고 흥행을 따지지 않을 수 없으니 말이다.
책이 원작이라는 언더 더 스킨, 책의 기본 설정은 같고 영화의 내용은 다르게 각색 되어 있다고 한다. 책에서도 호불호가 갈려서 흥미로웠다라는 평은 있어도 재미 만큼은 호불호가 아닌 공통된 의견으로 재미라는 요소는 크게 작용하지 않는다가 대체적이다. 대놓고 스포일러 짓 하는 깨알로서 이 영화를 안 봤으면 당연히 보고 와서 다시 찾아오길 바란다. 내용 알면 재미없는 건 어쩔 수 없다.
위는 책 표지, 아래는 외국에서 먼저 나온 영화 포스터, 우리나라는 확실히 낚시빨인게 티가 난다. 이 포스터가 더 낫다, 주요 내용은 지구에 사는 외계인이 인간을 먹이로 삼아 잡아 먹는다는 것이 큰 틀이다. 그 과정에서 겪는 외계인의 감정 변화, 정체성에 대한 혼란을 담고 있다. 그 과정에서 흥미로운 점을 못 느끼면 재미없는 것이 되는 것이고 흥미로웠다면 재미있는 영화가 될 뿐이다. 웃고 떠들고 부수고 단순하게 보는 영화라면 상관없지만 뭔가 찜찜하고 골 때리고 생각을 해야 하는 영화는 무조건 2번 이상 다시 봐야 의문점이 풀리기 마련이다. 뭔가 하려고 하는 말이 있는데 뭔지 모른다면 2번 이상 보고, 뭔가 하려고 하는 말이 있는데 그 따위 것은 궁금하지 않다. 재미를 달라고 하면 다시 볼 필요는 없을 것이다. 약 빨고 만든 영화라는 부제를 달면 의미 전달이 조금 더 쉬울 듯 한데 이건 부정적일까? 긍정적 표현일까? 일단 별 4개는 주고 들어간다. 그럼 무슨 의미인지 알 것이다.
부릉~ 바이크 등장
아가씨 한명을 들춰 엎고 트럭 짐칸으로 들여 보낸다. 영화에 반전도 없고 특별한 내용도 없어서 초반부터 썰을 풀어도 상관이 없지않나 싶다. 나름의 스포일러이기 때문에 한번 더 강조하지만 영화 보고 글을 보는게 나을 것이다.
본격적인 영화의 시작,
누군가 이 여자의 옷을 벗기기 시작한다.
잡아먹으려고 하나보다..나쁜 외계인...
어라? 인간이네..외계인이 아닌가?
어라? 여자네...뭐하는 거지? 여기서 의문점이 하나씩 든다. 영화에서 이 초반의 옷 벗기는 장면들 만큼은 전혀 섹시하지 않고 야하지도 않고 몰입하게 만든 연출이다. 여자가 여자 옷을 벗기는 모습을 보면 뭐 하는 겨? 라는 질문만 계속 쌓여서 몰입하게 만든다. 이런 사소한 장면을 이렇게 만들어 표현할 수도 있구나 싶다.
이 장면을 이렇게 길게 잡는 건 이유가 있다. 나중에 밝힌다. 밝은 "구"형들이 움직인다. 우주선인가 보다. 이 영화 갓 시작즈음에 우주가 나오는데 외계인이라는 설정을 이런 간접적 형태로 표현한다. 대놓고 저 외계인이에요! 라는 건 없다.
요한슨이 타고 다니면서 본격적으로 활동할 파트너 트럭, 저 남자는 같은 외계인이지만 요한슨과 위치가 다르다. 저 남자는 일종의 관리자다. 지구에 있는 외계인들을 관리/감독하는 관리자로서 본인이 담당하는 외계인들을 대상으로 업무지원을 하는 외계인이다. 먹이감 처리는 물론이고 외계인들을 감시/감독하는 업무는 나중에 계속 나온다.
화장끼 없는 얼굴이 매력적이다
영화 장면이 굉장히 단조롭다. 자동차 내부 장면이 많고 장소의 변화도 많지 않다.
그녀가 할 일은 길을 묻는 척 하면서 남자들을 트럭에 태워 본부로 데리고 가 잡아 먹는 것!
한 놈 걸리고
반가워! 하이! 경복궁 어떻게 가니?
사람 찾아 다니는 게 전부
하이! 남대문 시장 가려면 어디로 가요?
동석하는 남자들
하이! 홈플러스 어디에 있죠?
먹이감을 데리고 본부에 왔을 때의 상황
남자가 옷을 벗고
요한슨을 따라가면 자연스럽게 언더 더 스킨(?)되어 죽는다. - 이 장면은 제목과 관련이 깊다. 초반에 우리는 이 공간이 지금과 같은 흑색이 아닌 밝은 흰색이었다는 걸 알 수 있다. 요한슨이 여자의 옷을 벗기던 그 공간 말이다. 흑과 백의 대조가 무슨 의미를 담고 있다고는 할 수 없지만 영화 전체가 요소 요소 철학적 해석이 필요한 구석이 많고 무엇보다 꿈보다 해몽이라고 영화를 보는 사람마다 다르게 해석할 수 있는 부분이 많기 때문에 이런 대조적인 연출 만으로도 다양한 해석은 가능하다. 사람들은 외계인과 먹잇감 지구인만 보게 되지만 이 영화의 스토리는 그런 뻔한 내용과는 거리가 조금 있다.
해변가에서 발견한 지구인들
그리고 갑자기 앞에 나타난 서퍼
그런데 갑자기 들리는 외마디 비명, 남자가 갑자기 물로 뛰어 들어간다.
물에는 아내로 보이는 여자가 허우적대고 있고
여자 앞에는 개가 허우적댄다. 개가 원래 물 헤엄을 치고 있던 장면이 있었는데 개가 물에 빠져 깊은 바다로 흘러가자 아내가 구하려고 달려갔지만 아내마저 물에 빠진 상황
이 장면이 왜 나오고 왜 필요한가 의구심이 든다면, 당신은 약을 좀 더 빨고 와야 한다. *^^* 약을 먹고 살짝 공허한 상태이어야 약 빨고 만든 이들의 의미를 찾아낼 수 있다. 원작의 책과 영화의 골격은 같지만 내용에 차이가 있듯이 외계인이 먹거리 부족으로 지구에 온 것은 아니다. 영상 초반에 보여지는 간접적인 외계 형태의 구조물들, 그리고 하늘로 다시금 사라지는 구형들을 보면 외계인들의 정착지는 따로 있다고 봐야 한다. 이것이 식량을 구하러 온 선봉대인지, 인간이 식량으로 적합한지를 임상 실험하는 연구자들인지, 아니면 외계 사회에서 퇴출 되거나 반출된 반역자, 범죄자 외계인인지는 알 수는 없다.
다만 그런 해석의 범위를 남겨 놓았기 때문에 어떤 식으로든 해석이 가능하다. 나는 지구로 유배된 외계인의 설정으로 처음 이해하고 보게 되었다. 유배지에서 먹거리는 알아서 챙겨 먹어야 하기 때문이다. 외계인이 지구인을 식량으로 본격적으로 삼는다면 이런 식의 납치로 먹거리를 해결하지는 않을 것이다. 지구 침공, 정복만이 살길이다. 꿈보다 해몽이라고 해석은 각자 알아서 하길 바란다. 다만 정황상 그렇다는 것 뿐...
개는 사라지고 아내도 사라지고 남편도 사라지고, 그들을 구하러 간 서퍼도 구하지 못하고 숨만 헐떡이며 해변가로 밀려 올라온다. 요한슨은 여자다, 여자 지구인의 몸을 가지고 있다. 초반에 등장한 옷의 주인도 여자다. 그 여자는 마지막에 요한슨과 눈을 마주쳤을 때 눈물을 보였다. 우리가 흑색 방에서 남자들이 기 빨리는(?) 과정을 보았는데 여자가 나온 흰색 방에서는 그런 게 없다. 그리고 심지어 살아있는 상태에서 눈물까지 보였다.
그 여자는 요한슨과 같은 외계인이다. 외계인에게도 남녀의 성별 구분이 있는지는 알 수 없으나 이 마저도 소설이나 영화에서 남긴 다양한 반찬이라 먹기 나름이고 해석하기 나름이다. 우리들은 단순히 영상에서 보여주는 걸 전부라 믿기 때문에 남자와 여자 외계인으로 보기 쉽지만 개인적인 견해로는 남자 외계인(관리자)과 여자 외계인(요한슨)이기 보다는 지배 계급 외계인은 남자로 피지배 계급의 외계인은 나약한 여자로 설정하지 않았나 싶다.
요한슨은 마지막에 감정의 변화를 느껴 관리자로부터 도망가고 결국 죽는다. 영화의 결론은 항상 초반에 정답이 숨어 있는 경우가 많은데 초반의 옷 벗긴 여자 역시 감정의 혼란을 느껴 요한슨처럼 도망가다 잡힌 피지배 외계인이 아니었나 싶다. 그래서 그 여자는 먹잇감 남자들처럼 스스로 옷도 벗지 않고 옷만 그대로 "전해준다" 마치 전임자가 새로운 이임자에게 임무를 전해주듯이 말이다.
요한슨이 굳이 남이 입던 옷을 입을 필요도 없고 여자의 옷을 벗길 필요도 없음에도 그 장면을 초반에 넣고 길게 롱샷으로 잡은 건 또 다른 요한슨의 모습, 결론에 나올 미래의 요한슨의 모습, 그리고 계속 반복될 일을 보여주는 것이 아닌가 싶다. 옷이 필요했으면 관리자 외계인이 사다 주면 그만인데 그게 아니기 때문에 등장했으리라 본다. 누워있던 여자는 눈물을 흘리면서 그 다음은 보여주지 않는데 결국 먹잇감을 찾고 데리고 와서 빨간 팥죽 형태의 식량을 만드는 "노동자" 계급의 피지배 외계인들이 노동 과정에서 겪는 외계인과 지구인의 차이, 그리고 지구에 살면서, 지구인과 접촉하면서 그들과 동화 되기 시작하다가 도망가는 일이 일상적이라는 걸 의미하는 게 아닌가 싶다. 요한슨을 보고 눈물을 흘리면서 무언으로 "너도 곧 나처럼 될 꺼야, 그리고 나처럼 슬퍼 할 꺼야"라고 말하는 건 아닐까?
죽지 않은 서퍼를 돌로 머리를 쳐서 다운(?) 시키는 요한슨, 먹잇감이 오늘은 쉽게 잡혔다. 부부가 남긴 아기만이 외롭게 운다. 불쌍해..아기..요한슨은 지금까지 관리자의 지시대로, 그리고 주어진 임무대로 충실히 수행 중이다. 길거리에서 납치 대상을 물색하며 간간히 개인 시간을 갖던 요한슨에게 정신을 잃은 남자는 또 다른 먹잇감 일 뿐이다. 조금 전까지 친밀하게 대화를 나누던 장면과 얼마 지나지 않아 돌로 머리를 쳐 버리는 상황을 보여주면서 "공과 사"를 구분하는 요한슨의 내면을 보여주는 장면이다. 너네들은 먹잇감 일 뿐이야! 라고 말이다. 이 영화는 대조적인 게 많다. 관리자 계급으로 보이는 외계인과 그 관리자의 손에서 벗어날 수 없는 피지배 계급의 외계인, 그리고 먹잇감은 모두 "남자"다. 일종의 먹잇감을 가져오는 노동은 외계인이긴 하지만 "여자"다. 초반의 백색 공간의 눈물 흘린 여자도 외계인이 맞다는 설정이 성립되면 결국 노동자 계급은 여자, 그들을 지배하는 건 남자가 된다.
외계인의 관계에서는 인간 껍데기 안의 내면만 보면 남녀의 성비 기준이 없을 수도 있어서 지배 계급/피지배 계급의 이념이 담겨있고, 외계인의 관계에서 보여지는 그대로의 겉모습, 관리자 외계인은 남자, 지배를 받는 쪽은 여자, 남자가 여자를 지배하고 이것이 다시 지구인들과의 관계에서는 비록 외계인이지만 여자에게 끌려 다니는 초라한 남자(지구인)로 바뀌어 나온다. 먹거리를 처리하는 같은 공간임에도 흑백 공간과 백색 공간이 대조를 이루듯이 말이다.
그날 밤 외계인 남자가 나타나 뒷수습을 한다. 아기를 데리고 가나 했지만 방치한다. 식량으로서의 가치는 물론 인간은 식량 그 이하도 이상도 아닌 무가치의 존재다. 성인 남자 만을 대상으로 한다는 무언의 전제도 깔려있다. 왜 그런가는 요한슨이 어떤 모습인가를 보면 알 수 있다. 남자 모습의 외계인이라고 해서 굳이 인간 먹거리를 구하기 어렵지는 않을 것이다. 다만 여자가 남자를 유혹하기 쉽고 집으로 데리고 오기 쉽다라는 지구에서의 경험인지, 아니면 지구에서 먹거리를 구하는 외계인은 반드시 여자의 모습을 해야 하는지도 알 수는 없다. 하지만 제목에서 스킨(피부/껍질)이라는 단어가 사용되듯이 인간의 외피를 쓰면서 먹거리를 구하는데는 남자보다는 여자의 모습이 좋고 지배하는 관계에서도 관리자가 남자의 모습일 때가 좋기 때문에 그런 관계가 성립되지 않았나 싶다. 역시 꿈보다 해몽이라고 왜 관리자는 남자이어야 하나라는 의구심을 들게 만들지도..
엄마, 아빠를 졸지에 잃은 아기....
이번에는 과감하게 술집에 도전, 술집에서 남자가 다가와 수작을 부린다.
어디서 개수작이야? 할줄 알았던 요한슨이 쉽게 응하자 남자는 요한슨을 따라간다.
뒷걸음질 치며 유혹하는 요한슨
점점 언더 더 스킨(?)되는 남자
빨려가면서도 모르는 남자
물질 속에 갇힌 남자를 향해 다시 정방향으로 되돌아 오는 요한슨, 이 알수 없는 액체 같은 물질 속에 갇힌 남자와 그 위를 걷는 요한슨
무슨 상황인지 모르는 남자. 곧 죽는다
이것으로 오늘 하루 일당은 끝내는 요한슨
하루도 빠지지 않고 남자를 유혹하러 다닌다, 오로지 이것만이 유일한 삶이자 역할
남자들을 데리고 본부로 쭉쭉~ 쭉쭉~
이 문에 들어서면 흑색 방이다.
관리자가 요한슨을 점검한다.
눈동자를 쳐다보는 외계인 관리자, 이 부분도 나름 비중 있다. 초반의 여자 외계인이 그랬듯이 요한슨에게도 어떤 변화가 있는지 눈동자를 확인하는 것이다. 외피는 잘 붙어있는지 눈은 잘 움직이는자, 입술은 정상인지, 그리고 정신(?)은 멀쩡한지, 지구인에게 동화가 되었는지를 말이다. 이들의 식량이 지구인이라는 건 식사를 잘 하지 못하면 인간의 모습을 유지하기 어렵다는 뜻도 될 것이다.
여전히 작업 중인 요한슨
얼굴을 후드티로 감춘 의문의 남자 포착
얼굴이 흉칙하게 생긴 남자의 탑승
남자의 외모와 상관없이 아랑곳 하지 않고 그를 여전히 유혹
그 유혹에 당황하면서도 기분 좋은 남자
오늘 남자는 계 탔다.
아주 잠깐이지만 외계인의 형체가 살짝 나온다
똑같은 일, 반복적인 행위, 그래서 영화를 보는 사람들이 중반까지 흥미를 못 느낀다. 뭔 말을 하는 거지? 무슨 내용이지?
이번에도 언더 더 스킨 중, 요한슨은 항상 뒷걸음질 치며 유혹한다. 별 대수롭지 않지만 그래도 나름의 의미가 있는 이 공간과 장면들, 어두움, 흑색, 범죄, 악, 초반의 백색 방과 대조를 이룬다. 굉장히 포커스를 많이 잡는다. 이쯤 되면 영화를 보는 남자들은 매번 이런 식인가? 라는 점에서 회의감이 든다. ㅋ 외계인의 유혹이 이 정도가 다야? 포스터 탓이 크다. 국내 영화 포스터에 나왔던 씬이 여기서 나온다.
거울을 보고 자신의 외모를 보게 된다.
오토바이 또 등장, 먹이가 왔으니 뒷수습 하러 와야지
하지만 도망가는 먹잇감
초조한 요한슨, 도망치게 해준 요한슨은 이내 걱정이 앞선다.
남자 외계인에게 결국 잡힌 먹잇감, 도망가지 못하고 결국 먹힌다.
요한슨은 얼굴이 이상하게 생긴 사람을 만나게 되면서 변화를 겪는다. 지금까지 보았던 남자 지구인의 모습과도 다르지만 그게 요한슨에게 취한 액션도 지금까지와의 남자와는 달랐기 때문이다. 이때 비로서 지구인이 뭐지? 이들은 어떤 생명체지라는 의구심이 들면서 식량으로 치부하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그 남자를 놓아주지만 관리자가 괜히 관리자인가. 곧바로 찾아내 예정대로 처리한다. 그 길로 요한슨도 남자를 데리고 오는 "노동"에서 도망가고 관리자에게서 도망간다. 갑자기 등장한 안개를 보고 말이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아무것도 찾을 수 없는 안갯 속에 있으면서 그 관리자가 어쩌면 자신을 찾지 못할 수도 있지 않을까? 라는 생각과 함께, 지구인과 함께 섞여 어울려 살 수도 있을 것 같다라는 생각마저 가지게 된다. 물론 내 생각이다.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아. 관리자도 못 찾을 꼬야! 그래 결심했어 도망가자!
지구인처럼 지구인들이 먹는 음식에 도전!, 이것을 먹고 살 수 있다면 지구인처럼 살 수 있고 더 이상 남자를 유혹하는 노동 따위는 하지 않아도 될 뿐더러 지구인들을 잡아 먹지 않아도 된다라는 믿음으로 시식
입술...참 곱다...뽀뽀를 부르는 입술..ㅡ.ㅡ
제대로 토하는 요한슨...역시 지구인을 먹어야 하나...
그렇게 방황하다가 만난 버스 승객남
그가 도와주자 따라간다. 길거리에서 남자만 유혹하던 요한슨에게 마트는 신기한 세상
모든 것이 낯설지만 신기하다.
텔레비젼을 처음 보는지 무척 신기해 한다.
완전 몰입해서 보는 요한슨, 표정이 정말 신기한 물건을 본 아이처럼 연기한다.
이미지라 그렇지 강아지가 새로운 물건을 보듯이 고개를 아주 미세하게 움직이면서 텔레비젼 속 사람 모습과 대사에 따라 반응을 한다. 이런 게 연기다.
개그 콘서트...ㅋㅋ
라디오를 켜는 남자
커피까지 대접해준다. 무척 잘해준다, 한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모든 것이 새로운 요한슨
자신의 벗은 몸을 처음 보는 요한슨, 이게 내 몸이구나. 이게 지구인으로 사는 내 모습이구나 하며 신기해 한다. 뒷태가 보고 싶지만 여의치 않다. 도망간 사실을 알게 된 관리자, 자세히 보면 오토바이가 4대, 관리자가 여려 명 있다는 것은 할당된 외계인 여자들이 더 있다는 뜻이 된다. 남자 외계인은 오토바이를 여자 외계인은 트럭을 몰고 다니는데 이것도 꿈보다 해몽이라고 해석하기 나름이지만 내 마음대로 해석한다면 오토바이라는 게 화면에도 빨리 달리는 장면만, 요한슨의 트럭은 완전 천천히 다니는 서행 수준으로 나온다. 오토바이나 트럭이나 같은 자동차의 범위이지만 구조와 형식이 다르듯, 인간(자동차)도 남자(오토바이) 여자(트럭)가 있고 구조와 형식이 다르다.
이건 중요한 포인트는 아니지만 굳이 탈 것의 대상이 오토바이어야 하는지 트럭(밴)이어야 하는지는 원작자나 각본을 쓴 사람만 알 것이다. 승용차로 나와도 되고 둘 다 승용차 타고 다녀도 상관없다. 실제 도망간 먹잇감을 잡았을 때는 오토바이로 찾아가 잡지만 트렁크에 싣고 떠나면서 남자 외계인이 승용차를 몰고 간다. 요한슨이나 관리자 외계인이나 둘 다 승용차를 쓰지 않고 남자는 오토바이, 여자는 트럭으로 설정한 것 자체가 남자의 빠름, 성급함, 여자의 느림, 느긋함도 가지지 않나 싶다. 물론 나만의 해석
물 웅덩이를 보고 남자가 요한슨을 번쩍 들어 넘어가 준다.
보면 외계인과 어울리지 않는 쓸데없는 장면 같지만 요한슨의 정신 상태를 흔들 수 있는 포인트들이다. 인간은 무엇인가? 여자는 무엇인가? 남자는 무엇인가? 왜 나를 보호해 주는가? (물에 닿지 않게 해주는 것). 그것이 무엇인지 모른다면 외계인의 세상에는 그런 게 없다는 뜻이 될 수도 있다. 타인에 대한 배려, 동정 따위는 없고 먹고 자는 동물적 본능만이 존재할 수도 있는 것이다. 이런 지구인들의 모습을 새롭게 알게 되면서 "나도 지구인이 되고 싶다"라고 생각하게 된다.
아파하는 요한슨, 이유는 간단하다. 인간의 피를 먹지 않고 버티면 힘들어 하는 드라큘라처럼, 남자를 유혹하는 업무가 전부가 아니다. 요한슨도 유혹의 대상들이 껍질만 남기고 외계 물질에 흡수되어 영양분 공급을 해줘야 하는데 요한슨은 인간을 먹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도망가고 난 뒤부터는 말이다.
다시 컨디션이 돌아왔고, 그 사이 정이 들어버린 요한슨과 남자, 그리고 저녁, 어쩌다 눈이 맞은 둘은 급 진지한 분위기를 갖는다. 거기는 안돼요~....안돼요~...돼요...돼요...남자의 무엇이 자신의 몸 안으로 들어오려 하자...남자를 밀치고 놀라는 요한슨, 자신의 몸 속으로 무언가 들어오자 너무 놀랐던 것이다. 그리고 그곳을 본다. 뭐지? 여긴 뭐지? 여자의 몸을 하고 있지만 여자에 대해서는 전혀 몰랐던 것.
그리고 일어나 고민에 빠진다. 마음의 준비는 물론 무엇이 어떻게 되고 있는지 알 수 없는 요한슨 입장에서는 외계인의 신분을 숨기고 지구인으로만 살고 싶지만 여자의 몸으로 살면서 남자와 이런 관계를 맺어야 한다면, 그리고 자신의 몸 상태를 고려했을 때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르는 상태에서 지속할 수 없다고 판단하는 것이다. 심쿵 하는 남자...고갱님 많이 당황하셨어요? 결국 그 남자에게서 떠난 버린 요한슨, 숲 속을 헤맨다
산속에서 제일 무서운 것이 사람 만나는 것이라는데 갑자기 남자가 등장한다.
힘들어하는 요한슨을 보고 등산객 쉼터를 알려주는 남자
잠깐 쉬고 있는 요한슨에게 쉼터를 알려주었던 남자가 그 사이 찾아와 덮친다, 사내들이란...도망가다가 발견한 트럭, 요한슨도 트럭을 몰았었다. 하지만 키가 없네...젠장...와따빡!
트럭에서 도망가는 요한슨, 남자가 쫒아 온다
결국 그 남자에게 잡히고
힘없이 약한 요한슨은 남자에게 이끌려 하늘만 보는데,,,이것이 지구의 풍경인가?
근데 놀라는 남자..
와따빡!!! 껍질이 벗겨졌다.
외계인으로서 식량 공급, 영양분 섭취를 제 때 하지 못해 스킨(껍질)이 벗겨지기 시작한다.
그러길래 왜 도망갔어..그냥 하던 반복적인 일상을 즐겨야지!
한번 벗겨지자 자신이 쭉 벗겨낸다. 말 그대로 언더 더 스킨이다.
인간의 모습을 하고 있지만 초점도 없고 눈동자도 없다.
껍질 속 지구인 요한슨을 바라보는 외계인, 이게 나인가 내가 나인가? 나는 왜 이러고 있는 걸까? 나는 지구인으로 살 수 없는 운명인가? 나는 도망가서 살 수 없나....고민
뒤에서 누군가 다가오는데
괴생물체에 기름을 붓는 트럭 기사, 그리고 라이터로 불을 붙힌다.
홀랑 타는 요한슨
걸어가면서 탄다
마지막 장면에 나오는 관리자. 이 외계인 남자의 뒷모습 장면을 보면서, 처음 초반의 장면이 처음 연상 되었었다. 저 남자는 무슨 생각으로 저렇게 저 위치에 서서 골 때리고 있을까라고 말이다. 그리곤 저 애도 똑같은 실수(?)를 저질렀구나. 또 하나의 외계인이 지구인이 되고자 헛바람이 들어서 결국 죽음을 자초했구나 하지 않았을까 싶다.
각종 소개 글에는 아름다운 로라라는 여자의 탈을 쓰고 요한슨이 나온다고 하는데 영화 어느 구석탱이에 그런 내용이 있는지 알 길이 없다. 로라라는 말도 못 들었고 그 여자의 탈을 쓰는 장면도 안 나온다. 혹 초반 영상 장면을 보고 하는 말이라면 탈을 쓰는 게 아니라 의상만 벗겨서 자기가 입을 뿐이다. 탈을 쓴 것이라면 옷을 벗기고 요한슨이 그 여자 옷을 입으면 안된다, 벗은 체로 그 여자도 벗기고 껍데기 탈을 써야지 옷에 구두까지 단단히 조여 메고 신은 체로 그 여자를 내려보면서 눈물을 발견하는데 탈을 쓴다고 설명하면...이건 뭔 소리...ㅡ.,ㅡ;;
이 영화의 중심축이 얼굴이 흉칙한 남자의 등장과 그것을 계기로 심경의 변화를 겪는 과정에서 그 사람의 얼굴이 다른 지구인들과 다름을 알고 그 얼굴이 정상적이지 않다는 사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과 섞여 살 수 있다는 사실에 자신도 혹시 지구인들과 다른 모습이어도 섞여 살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갖게 되는 것이 사건의 발단이다.
처음으로 먹잇감을 순수하게 보내준 사실과 그것이 발각될 것이 두려워 하던 찰나에 아주 우연히 만나게 된 처음 본 안개를 보고, 그리고 그 안개를 통해 외계인 세상에서 벗어나 지구인의 세상으로 섞여 들어갈 수 있는 기존의 삶과 단절이 가능할지 모른다는 계기를 안개가 부여해 준다. 그 남자의 얼굴을 보고 피부라는 껍데기(스킨)가 중요한 게 아니라는 의식이 자리 잡게 된 것이다.
워낙 다양한 해석이 가능해서 나는 대체적으로 이따위 개념을 갖고 봤다고 지금까지 떠들었지만 스킨이라는 껍데기, 피부라는 것이 또 다른 인종차별, 흑색과 백색, 백인과 흑인의 갈등(소설과 달리 영화는 골격만 같고 다르게 설정한 것이 이런 부분 때문이지 않나 싶다), 백색 공간과 흑색 공간으로 나오는 외계인 먹이 방, 남자와 여자(외계인), 여자와 남자(지구인)도 같은 인간이면서 껍데기 스킨이 다름이 가장 뚜렷한 차별점이고 관리자(사냥꾼 관리)로서의 지배 계급과 노동자(먹이 수급)로서의 피지배 계급에서도 같은 사람이면서도 서로 다른 차별을 의미하지 않나 싶다.
언더 더 스킨이라는 제목 자체가 내포한 영화가 전하는 메세지는 피부 아래, 껍데기 말고 내면은 모두 같다라는 것이고 껍데기(외모나 생김새)를 보고 판단하지 말자는 뜻도 가능 할 거다, 언더 더 스킨, 지구인과 외계인이라는 설정으로 나오지만 인간 사회에서 차별은 가장 심각한 사회 문제인데 껍질 아래를 들여다보면 결국 모두 다 같다는 말
흉칙한 남자를 잡아 먹지 않은 것도 흉칙해서가 아니라, 또는 흉칙하다는 것을 그제서야 깨닫고 먹잇감으로 부적합하다고 생각한 것도 아닐 것이다. (관리자가 다시 잡아갔으니) 그 흉칙한 스킨 때문에 자신의 정체성에 혼란을 겪게 된 계기가 되었을 뿐이다. 우리들은 그 껍데기에 왜 집착하는가? 피부색이며 피부의 모양이며 남자와 여자, 인종, 사회 계급에 대한 풍자를 외계인과 지구인, 그리고 먹고 먹히는 관계로 보여주지 않았나 싶다. 약 빨고 만든 영화라서 약 먹고 보는 것과 약 안 먹고 보는 것의 해석 차이는 많다. 참고하자.
참고로 이 흉칙하게 생긴 분은 분장이 아니라 실제 얼굴이다. 유튜브에서도 뉴스 인터뷰 장면이 있다. 뉴스 앵커와 화상 중계 인터뷰도 하시더라. 배우들 대부분도 일반인이고 차량 씬은 영화 스탭이 아니라 자동차에 설치된 고정식 카메라로 요한슨이 마음대로 다니면서 실제로 찍은 영상이라고 한다. 몰카로 찍고 나중에 그 분들께 동의를 구해서 편집했다고 한다.
길거리에서 길을 묻는 장면, 답변해 주는 장면들도 모두 실제라는 말 그래서 요한슨이 자동차 몰고 다니는 장면, 축구팬들한테 휩싸여 오도가도 못하던 장면들이 실제 요한슨 혼자 운전하면서 겪은 상황들이다. (양아치들 장면은 설정이 아닌가 싶다. 길거리에서 길을 묻거나 동석한 경우, 상대 남자의 동의를 얻지 못한 편집본도 꽤 있지 않나 싶고) 아마도 실제 먹이 사냥을 다닌다는 점을 요한슨은 물론 영화 속 분위기에 녹아들게 하기 위한 감독의 묘안이 아니었나 생각이 든다. 복잡하고 생각 좀 하고 싶다면 이 영화를 추천, 스칼렛 요한슨 벗은 몸 보려고 본다면 비추천 (캡쳐 올린 사진이 전부임, 이미 보신 거임), 재미와 감동, 흥미를 찾는다면 완전 비추천.
깨알은 참고로 재미있게 본 영화만 게시물 작성함..ㅡ.,ㅡ;;;;; (실은....나 외계인임)
[문화예술/영화리뷰] - 주식 공부하는데 도움 되는 한국 영화 - 돈(Money)
[문화예술/영화리뷰] - 대한민국 금융 재난 위기의 기록 - 국가부도의 날 (Default) / 1997
[사랑/부부생활] - 매번 속고 다니는 아내 VS 매사 의심하는 아내 - 둘 중 고른다면?
[문화예술/영화리뷰] - 기자와 기레기, 언론의 역할을 정확히 보여준 영화 - 더 포스트 (The Post)
[금융/재무설계] - 당신이 20대 청춘이고 내 집 갖기를 원한다면 준비해야 할 필수 설계 - 청년우대 청약통장
[문화예술/영화리뷰] - 부성애와 가장의 책임을 영상화 시킨 남자들의 영화 - 샷 콜러 (Shot Caller)
'문화예술 > 영화리뷰' 카테고리의 다른 글
깨알리뷰 : 아델라인 - 멈춰진 시간 (0) | 2016.02.13 |
---|---|
크리미널 액티비티 (Criminal Activities, 2015) / Elmo - Lifetime (0) | 2016.02.04 |
리얼과 적나라함의 줄타기 - 내부자들 (0) | 2016.01.13 |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 예고편 (0) | 2015.01.20 |
옹녀뎐 (스포일러) (0) | 2015.01.15 |
감성충만 연출, 요즘 어른들 전용 영화는 이렇게 나온다 (0) | 2015.01.12 |
인터스텔라 영화의 최고 명대사 (0) | 2015.01.10 |
낙원추방 (Rakuen Tsuihou -Expelled From Paradise) (0) | 2014.12.25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