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값으로 보는 부조금, 축의금 기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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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생활정보

이름 값으로 보는 부조금, 축의금 기준

by 깨알석사 2023. 8.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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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하 없는 축하

누구에게나 경조사는 즐거운 일이다. 내 경조사뿐 아니라 남의 경조사도 즐거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그 즐거움은 때론 스트레스를 불러일으킨다. 서로 돕고 챙기는 관습도 좋지만 그에 따른 경조사 비용 지출이 증가할 수밖에 없어 가계 부담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즐거워야 할 경축 행사가 전혀 즐겁게 느껴지지 않는 경우도 많은데 어느 순간부터 경조사는 즐거운 행사가 아닌 돈 나가는 일로 치부되면서 경조사조차 가진 돈에 따라 즐거움이 비례가 되는 세상으로 비치기도 한다.

아등바등 열심히 모으고 저축해도 경조사가 일시에 몰리면 어쩔 수 없이 축하해야 할 일이 축하하지 못하는 일이 된다. 이런 저런 핑계를 삼아 참석하지 않으려 해도 문제가 해결되진 않는다. 정작 사람은 오지 않더라도 돈은 보내야 하는 세상이 되다 보니 이만저만 손익계산을 하지 않을 수가 없다. 어차피 돈을 보낼 것이라면 밥값이라도 건질 욕심에 참석할 수밖에 없다. 결국 이런 일이 반복되면 인관관계마저 계산을 하게 되는 순간이 온다.

분명 참석에 의미가 있고 얼굴을 맞대어 축하 인사를 주고 받는 것이 가장 핵심일 텐데 놀이동산의 입장료처럼 경조사가 활용되다 보니 축하의 자리는 사람이 아닌 돈이 주인공이 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참석에 의의를 두기보다는 얼마를 내고 입장했는지가 더 관건이고 기왕이면 표값은 내되 방문하지 않으면 그만큼 부대행사 비용이 줄어드니 돈만 보내는 걸 선호할 때도 있다. 결국 그런 풍조가 만연해지면 기계적인 행사 진행에 기계적인 인사치레가 일상화되고 결국 경조사는 축하 없는 축하, 축복 없는 축복, 슬픔 없는 슬픈 자리로 남게 된다.

물론 돈으로 따질 수 없는 관계, 돈이 전부가 아닌 자리도 많다. 돈의 액수가 아니라 참석 그 자체에 본연의 의미를 두고 초대하는 사람도 많고 또 그걸 당연시 여기는 사람도 분명 있다. 여유가 있어 그런 것을 신경 쓰지 않는 사람도 있지만 여유와 상관없이 진정 그 사람이 와서 축하해 주길 바라는 마음에 부조금에 연연하지 않는 사람도 분명 있다. 그러나 모든 사람의 마음이 다 같지는 않을 터, 누군 참석 유무보다는 축의금 액수에 따라 인간관계를 조율하며 상대를 평가하는 잣대로 쓰기도 하기 때문에 여간 신경 쓰이지 않을 수 없다. 성의만 표시하면 된다고 하지만 그 성의가 얼마를 내야 성의가 되는지도 모르는 게 함정. 액수가 곧 인간관계를 조율하는 수단이 될 수 있다는 착각과 믿음이 있기 때문에 최대한의 성의를 보여주기 위한 축의금이 얼마인지가 가장 큰 관건이자 문제다.

넌 이름이 뭐니?

이때 가장 합리적으로 생각해 볼 수 있는 건 바로 "이름"에 대한 값의 정의다. 역설적이게도 누구나 갖고 있는 자신의 이름. 사람의 이름은 내 것이지만 사실 내 것이 아니다. 분명 내가 가진 것이고 나의 것이며 내가 소유한 나의 정체성인데 정작 내 이름은 내가 쓰는 경우가 별로 없다. 이름 자체가 "남"이 쓰라고 만든 것이고, 남이 날 부르라고 만든 것이기 때문에 내 것이지만 나보다 남이 더 많이 쓰는 게 바로 자신의 이름이다. 이때 이름은 곧 나를 대변하고 나의 존재감을 드러내는 타인과의 연결고리이기 때문에 사회적 동물인 인간 사회에서의 이름은 상당히 중요할 수밖에 없다. 어떻게 불려지는가에 따라, 얼마큼 호명되는지에 따라 그 사람의 인생사에 많은 영향을 주기도 한다.

그런 점에서 성명학을 기반으로 아기 이름을 잘 지으려고 노력하려 애쓰는 것도 같은 맥락이라 할 수 있다. 얼굴값처럼 (꼴값) 사람의 인생에는 이름값도 존재하기 때문에 평생 이름이 갖는 상징대로 살아가는 경우도 심심치 않게 있는데 성명, 이름 자체가 인간관계를 맺고 이어주는 매개체가 되고 다른 누군가와 구별 짓는 나의 표식이 되기에 아무렇게 막 짓는 경우는 드물다. 꼴값처럼 이름 역시 이름값대로 살아가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참고로 예쁘고 좋은 이름이라는 게 대부분 그 이름 주인을 중심으로 짓는 경우가 많은데 그런 이름은 정작 좋지 않다. 이름의 특성상 내 것이지만 타인이 쓰는 것이기 때문에 타인들이 생각하고 받아 들이는 느낌과 정서, 어감을 모두 고려해 타인 입장에서 만들어야 좋은 이름이다. 이름 뜻이 아무리 좋아도 발음과 어감, 느낌이 별로면 안 좋은 이름이다. 비싼 돈을 들여 뜻이 좋은 아기 이름을 받아 오는 경우도 많은데 이때 부모가 마음에 들어 하지 않는 경우도 있다. 이 경우 집안 어르신들 내지 부부들 의견 차이로 논쟁을 하거나 싸우기도 하는데 부모가 마음에 들어 하지 않으면 이름을 잘 지었어도 일단 배제하는 게 맞다. 이름을 부르는 타인 중에는 "부모"도 해당되기 때문에 아기 이름에 정감이 가지 않으면 좋은 이름이라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성적인 판단과 기준이 아닌 개인(아빠, 엄마) 주관대로 이름을 짓기 보다는 좋은 뜻과 좋은 기운을 가진 객관적인 지식을(성명학) 바탕으로 잘 지어준 이름을 갖는 게  좋을 수도 있다. 그러나 이름 자체는 분명 자신의 것이지만 타인이 쓰라고 만드는 것이기 때문에 타인의 기운과 영향을 잘 받을 수 있는 듣기 좋은 이름이 우선시되어야 한다. 뜻보다는 발음이나 어감 (정감미) 영향을 더 신경 써서 감정적으로 이름을 짓는 경우도 있는데 (단순히 예쁘다는 이유로) 문제가 되지 않는다. 사실 그건 이름이 착착 감긴다는 뜻이니 문제가 없다. 더군다나 아기의 이름을 처음 부르는 사람이 누구인지를 고려 한다면 (감정 전달) 성명학의 객관적 기준이 절대적이라 할 순 없고 오히려 부모의 주관적인 감정이 먼저라 할 수 있다. 타인이 아이 이름을 호명할 때의 감정과 느낌. 인간관계를 이어주는 매개체로서의 역할 기능에 있어 그 무게감과 상징성을 부모가(이들도 타인) 먼저 체감하고 판별할 수 있기 때문이다.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

타인 입장에서 호명했을 때 느낌이 별로면, 계속 되새겨도 입에 붙지 않으면 좋은 이름이 아니다. 뜻이 좋고 기운이 좋다고 하여 잘 지은 이름이어도 그 이름과 그 사람이 연동(매치)되지 않거나 어울리지 않는다면 좋은 이름이 아니며 그 이름을 들었을 때 그 사람과 잘 어울린다거나 그 사람을 더 부각시키는 이름처럼 느낀다면(주관적) 그게 좋은 이름이다. 이름은 호명되는 사람이 아닌 호명하는 사람 입장에서 생각해야 하기 때문에 이름을 불러봐야 그 진가를 알 수 있다. 글로, 문자로 써서 좋은 이름이 꼭 좋은 게 아니다. 불러 보았을 때도 좋아야 좋은 이름이다. 대부분의 "여자" 이름에 받침이 없거나 하나만 있는 것도 바로 그런 정감과 어감이 주는 감정 표현이 이름에서 느껴지기 때문 (수아, 민희, 혜수, 민아, 소영, 순자 등)

무인도에 혼자 있다면 이름이 필요치 않다. 수 백만명의 거대한 도시에서 살더라도 아무와 연을 맺지 않고 아무와도 인연이 없다면 내 이름은 쓰일 일이 없다. 그 누구도 자신의 이름을 불러주지 않고 사용하지 않는다. 이름은 누군가 불러 주었을 때 가치가 있고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 사용했을 때 값어치가 오른다. 애초에 내 것이지만 남이 쓰게 만든 것이라 남이 사용할수록 이름값이 오르며 남이 부를수록 이름이 빛나게 되어 있다. 결국 이름이라는 건 심리적인 요소가 굉장히 많이 반영되는 사회적 요소로서 그 이름 자체가 갖는 뜻보다는 그 이름이 얼마나 자주 타인에 의해 사용되는지가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물론 범죄 등 나쁜 일이 아닌 좋은 일에 한정되어서 말이다.

사람은 모두 복잡한 길거리 속 군중 안에서도 자신의 이름을 구분해 듣는다. 아무리 시끄럽고 소음이 심해도 누군가 자신의 이름을 부르면 바로 고개를 든다. 오랜만에 만나는 벗과 만날 때 그가 반갑게 손만 흔드는 게 아니라 내 이름을 부르면서 손을 든다면 반가움은 두 배가 되고 설렘은 극에 달한다. 연인 사이도 마찬가지. 서로의 이름을 불러 줄 때 감정이 더 애틋하게 느껴진다. 반대로 이름을 부르는 횟수가 줄어들수록 사랑의 식는 속도가 빨라진다. 부부의 경우 여보, 당신이라는 애칭으로 부르는 경우가 많지만 아내의 이름, 남편의 이름을 부르는 부부도 많은데 넓게 보면 서로의 존재감을 직접적으로 인식시켜 주고 나와 연결되어 있는 걸 매번 증명하는 것이기 때문에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데 도움이 되는 것도 사실이다. 물론 가족호칭은 애칭이기도 하기 때문에 여보, 당신도 나쁘진 않다. 큰엄마, 큰아빠, 삼촌, 이모, 고모 이름을 잘 몰라도, 그들 이름을 매번 부르지 않고 가족 호칭을 써도 그 감정이 사그라들지 않는 것과 같다.

부조금 (축의금, 부의금, 조의금)  기준

경조사에 내는 돈을 보통 축의금과(결혼식이나 환갑, 돌잔치 등) 부의금 (장례식)으로 구분하지만 모두 합쳐 부조금으로 부르는 것이 보통이다. 부조금은 축하할 일과 슬픈 일 모두 해당되며 부조라는 말은 서로 돕는다는 뜻으로 축하 자리와 슬픈 자리 모두 서로가 돕는다는 의미가 있다. 지금도 서로 돕는다는 의미로 쓰이는 상부상조라는 말 뜻에서 그 의미를 찾을 수 있는데 상(부)상(조) = 그래서 부조금이다. 물론 축하할 일에는 축의금, 슬픈 일에는 조의금으로 나뉘어 쓰기도 하지만 반대로 사용하면 큰 실례가 되기 때문에 이때는 그냥 통칭적 의미인 부조금이라 하는 게 더 나을 때도 있다. 참고로 부주금이라는 말도 여전히 쓰이는데 부조의 사투리로 부주금이라 해도 문제 되지 않는다. 삼촌을 제주와 서울 사투리인 "삼춘"이라 한다고 해서 고쳐 부르라 하지 않는 것과 같다.

여기서 앞서 설명한 이름에 대한 개념은 부조금에 있어 좋은 잣대가 되기도 한다. 이름은 대인관계를 대변하는 중요한 도구로서 사회적 동물인 인간의 관계를 매듭짓는 요소가 되며 그 작용 여부와 인식 여부에 따라 상호작용을 한다고 했는데 이름을 단지 나를 부르는 명칭으로만 생각하기 쉽지만 내가 누군가 친하고 잘 지내는지에 대한 관계 측정은 곧 이름의 인식 여부와 부름 정도, 사용감에 따라 감별될 수 있기 때문에 하나의 기준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우리는 친할수록 이름을 부르고 친할수록 이름을 오래 기억한다. 반대로 친하지 않으면 이름을 모르고 친하지 않으면 이름을 잘 부르지 않게 된다. 이름은 상대적인 상호작용에 의해 사용되는 언어 요소이기 때문에 일방적이지 않지만 때로는 일방적일 때도 있다. 바로 이 일방과 양방 교류가 친구를 나누는 기준이 되기도 하는데 부조금에 있어서도 이 기준을 적용해 볼 수 있는 것이다.

의식하지 못하지만 사실 내가 상대를 얼마나 인식하고 있는지, 상대가 나를 얼마나 인식하고 있는지, 내가 호명하는 사람과, 나를 호명하는 사람의 관계는 이름에서 결정되는 경우가 많다. 은연 중 나와 상대의 심리를 모두 반영하는 게 바로 이름이다. 결국 이름이 갖는 속성과 (타인이 주로 사용) 그것이 이어지는 연결점이 곧 친목이 되는데 그 친목이 축의금의 성의 표시 기준이 되기에 결국 성의 표시는 곧 이름값에 대한 대응점이 될 수 있다. 아래의 기준이 정답은 아니지만 나름의 잣대는 될 수 있는데 부조금의 적정 기준을 삼기 애매하다면 이름값에 대응하여 생각해 보고 고민해 보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실제 본인이 해당 상황에서 얼마나 나와 상대의 이름에 대해 심리적으로 반응하고 반영하는지 아래 기준을 보면 조금 더 이해하고 구분짓기 편리할 것이다.

1. 초대한 사람의 이름을 기억하지 못한다. - 3만원

- 학교 동창 친구로부터 청첩장을 받았는데 그 친구 이름이 생소하게 느껴진다. 이름이 기억나지 않으니 당연히 얼굴도 잘 기억나지 않는다. 다른 친구가 "걔 몰라, 2학년 때 같이 00 했던 우리 반 친구였잖아!"라고 하니 그제야 약간 기억이 났다. - 학교 반 친구였다고 하지만, 이름도 가물가물한 친구라면 내 인생을 거쳐간 수많은 사람 중 하나일 뿐, 큰 의미는 없다. 같은 학교, 같은 반이라고 해서 모두가 나와 친구인 건 아니다. 전 직장동료, 사회 친구도 마찬가지. 설령 나는 기억을 못 하고 상대는 날 잘 기억한다고 해도 그건 일방적인 만남일 뿐, 길거리에서 마주쳤어도 잘 알아보지 못했을 정도의 사이라면 새로 만나는 사람과 다르지 않다. 내가 상대의 이름을 기억하지 못한다면 모르는 사람과 다르지 않다. 상대도 나를 보고 내 이름을 바로 기억하지 못할 확률이 높다. 이름을 기억하지 못하니 이름을 부를 일도 없다. (어, 야 오랜만이다 이런 식) 인연에 의미를 두고 축의금은 보편적으로 가장 최하단인 3만 원

2. 초대한 사람의 이름을 기억하지만 최근 3년 이내 교류는 없다 - 5만 원

- 청첩장을 받았고 이름만 보고 누군지 알지만 3년 이내 만난 적이 없고 교류한 적이 없다. - 최근 3년 이내 교류가 없다면 이름을 아는 친구여도 일반적인 친구/지인이라 할 수 없다. 전 직장동료, 사회친구도 마찬가지. 바빠서 만나기 어려웠을 수 있지만 친하면 어떻게든 만나고 어울리게 되어 있고 안부 인사, 메시지라도 주고받는 것이 보통이다. 남녀 애정이 지속되는 기간도 대략 3년으로 3년은 인간이 갖는 거리감의 심리 요소에 있어 경계와 다름없다. 몸이 멀어지면 마음이 멀어진다는 말의 심리적 방어선이 바로 이때로 대부분 인연이 끊어지는 경우가 3년 넘게 연락하지 않을 때가 많다. 생각보다 짧은 기간이지만 반대로 또 생각보다 긴 기간이 3년이다. 내가 상대 이름을 기억하는 만큼 상대도 내 이름을 기억할 확률이 높다. 이름은 기억하지만 이름을 서로 부르지 않는다는 건 변함이 없다. (반갑다, 축하한다) 가장 대중적인 축의금 액수인 5만 원이 적절

3. 초대한 사람의 이름을 기억하고 있으며 최근 3년 이내 만남이 있었다 - 7만 원 (혹은 10만 원)

- 친분과 교류가 있는 관계로 지인 혹은 친구라 할 수 있는 기준. 과거는 물론 현재도 서로가 반갑게 지내고 어울리는 사이로 최근에도 만남이 있던 전 직장동료, 사회친구 등이 포함된다. 부조금은 여유가 있다면 10만 원, 여유가 없다면 7만 원. 서로의 이름을 잘 알고 부르고 지내는 사이로 3만 원과 5만 원의 축의금 기준이 이름을 기억하는가 못하는가, 이름의 존재감을 기준 삼았다면 7만 원과 10만 원은 (7~10만 원이 아님을 주의) 이름의 사용 빈도를 기준 삼은 관계의 깊이를 본다고 할 수 있다. 이름 대신 별명, 애칭, 별칭, 다른 호칭을 쓸 수도 있는 관계로 근본적으로 "호명"할 수 있고 (이름을 부르다) 호명하는 사이라는 것이 핵심이다.

4. 초대한 사람의 이름을 알고 있고 그 가족의 이름도 알고 있다 - 15만 원

- 매우 친한 지인 혹은 친구라 할 수 있는데 이때 상대 부모님 이름은 모르더라도 친구/지인 가족 중 남동생, 여동생, 형, 누나, 언니, 오빠 등 또래 형제 집단의 이름, 또는 자녀 등의 이름까지 추가적으로 알고 있을 정도라면 15만 원 정도 부조금이 적절하다 할 수 있다. 상대의 가족 (직계존속, 직계비속, 방계혈족) 이름도 알고 있다면 친구, 직장동료, 사회친구 사이에서 그 자체가 가족처럼 어울렸다는 뜻이니 이때는 15만원 정도를 시작점으로 보며 상대도 내 가족 중 일부의 이름을 알 확률이 높다. 먼 친인척 간의 부조금 역시 이 금액대가 많은데 이 경우도 친인척처럼 가족처럼 지냈다고 볼 수 있어 가족 범주의 사람들이 내는 부조금과 비슷할 수밖에 없다. 

5. 상대방 부모님이나 형제가 내 이름을 안다 - 20만 원 내지 25만 원 이상

경조사에 있어 상대방의 집안 어르신들이 내 이름을 알고 있다면 가족 행사와 다르지 않다. 보통 상대 집안의 어르신들은 정말로 오랫동안 친분을 유지하며 교류하지 않는 이상 자녀의 친구, 지인 이름을 기억하는 경우가 드물다. 반대로 이름을 기억한다는 건 아들, 딸처럼 생각한다는 것으로 이 정도면 내 존재감 역시 거의 상대방 가족의 일원과 다르지 않다. 그렇기에 보통 이런 경우 상대 가족의 다양한 행사에도 초대되기도 하고 또 집안 살림도 돕는 말 그대로 상부상조하는 막연한 사이라 볼 수 있다. 대부분 자녀 친구 이름을 기억하고 부르는 경우가 많지 않은데 그것이 가능하려면 일단 지인/친구 집에 자주 방문하고 서로 어울려야 한다는 조건이 성립되어야 하기 때문에 친분과 교류가 잦다는 걸 반증하는 예가 된다.

물론 이보다 더 논리적이고 합리적인 예를 들어 조금 더 명확하고 공감가는 부조금 기준을 삼을 순 있다. 그러나 근본적으로 이름은 타인과 나를 이어주는 매개체로 인간관계를 규정짓는 하나의 수단이기 때문에 이름이 갖는 상징성과 개념을 갖고 타인과의 관계를 정립하고 정리하는 것도 분명 충분히 고려해 볼 만하다고 여겨진다. 사람이 사람과 만나 어울리면서 관계를 맺는 가장 기초 단계과 이름 알기이고 (통성명) 인간 관계의 단절 역시 이름이 잊혀지는 순간부터 시작된다는 점에서 사실상 인간관계를 대변하는 호명 (이름 부르기) 만큼 대중 심리의 반영 요소를 그나마 정확하게 구분하는 방법이 또 있을까 싶기도 하다.

부조금 암묵적인 룰과 규칙

부조금에 있어 보통 시작은 3만 원, 5만 원, 7만 원, 10만원, 15만원, 20만원, 25만원으로 넘어가는 것이 보통이다. 50만원이 넘으면 십 단위 (60, 70, 80 등), 100만원이 넘으면 150, 200 등으로 50단위를 쓰기도 한다. 기본적으로 음향오행에 따른 관습에 의해 부조금은 "홀수"로 내는 걸 상식으로 여긴다. 물론 미신적인 이유로 무시하는 경우도 있지만 워낙 오래전부터 관습화 된 암묵적인 룰이라 짝수로 내거나 금기시 되는 액수를 내면 부조를 하고도 욕을 먹을 수 있다는 걸 감안해야 한다. (홀수랍시고 7만원 다음인 9만 원을 내는 경우 - 아홉수에 해당되어 불길하게 봄. 남의 잔치에 재 뿌리는 걸로 의심받음)

1, 3, 5, 7, 9에서 1은 1만 원으로 너무 적은 금액이라 제외되고 9는 아홉수라 제외되어 대부분 3, 5, 7 만원 셋 중 하나를 정해 낸다. 이때 7만 원 다음으로 내는 10만 원은 짝수지만 십의 단위는 꽉 찬 수로 보고 짝수로 보지 않는다. 물론 13, 17이 아닌 15, 20, 25, 혹은 10, 20, 30으로 넘어가는 것도 십의 단위 이상부터는 자릿수가 둘이라 짝수 의미를 크게 부여하진 않으나 40만 원(그럴 일은 없지만 44만원 등)은 우리가 흔히 "4"를 부정한 숫자로 보는 것과 마찬가지로 불길하게 보기 때문에 예외적으로 40만원 금액대는 부조금으로 사용하지 않는 보이지 않는 규칙이 존재한다. 이런 건 미신이라 여겨 무시하려 하는 경우도 있는데 일상에서 엘리베이터에 4층이 없고 F층이 대신 있으며 공항에 4번 게이트가 없는 것처럼 생각보다 이런 걸 많이 따진다는 것도 염두할 필요성이 있다.

의외로 40대, 50대 연령인 사람인 경우도 홀수로 내야 한다는 걸 모르는 경우가 있는데 이는 가족의례에서 가정교육이나 사회경험에 의해 습득해야 하는 부분이기 때문에 보고 배우거나 누가 직접적으로 가르쳐주지 않으면 모를 수 있다. 다만 그렇다고 해서 그것이 방패막이되진 않는다. 사회초년생이라면 더더욱 열에 아홉은 부조금을 할 때 금액을 얼마 해야 하는지 묻고 조언을 듣게 되는데 이때 부조 경험이 있는 사람이 대부분 "홀수"로 내는 걸 알려주기도 하고 애초에 금액이 3, 5, 7, 10으로 고착화되어 이 금액으로 내는 걸 상식으로 여기기 때문에 여기서 크게 벗어나는 경우는 없다. 사회초년생이면 모를 수 있고 넘어갈 수 있지만 나이가 중년을 넘어섰음에도 이런 걸 모른다면 좋은 소리는 듣지 못하는 건 분명한 사실.

절이나 산에 가면 축복을 빌거나 가족의 안녕을 위해 돌탑을 쌓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이때도 예외 없이 무조건 홀수로 탑을 쌓게 되어 있다. 간혹 짝수로 돌탑을 쌓는 사람도 있는데 이러면 돌탑 쌓는 것에 의미가 없게 된다. 실제로 우리나라 국보 문화재인 여러 석탑을 보면 (다보탑, 석가탑 등) 이 역시 모두 홀수로 만들어져 있다. 음력으로 설날 (1.1), 삼짇날 (3.3), 단오(5.5), 칠석(7.7), 중앙절(9,9) 옛 명절 모두가 홀수로 지금까지 이어져 내려오는 것도 같은 맥락이며 대부분 길한 날은 홀수, 부정한 날은 짝수로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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