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위기와 아빠
IMF 아시아 경제 외환위기가 닥친 1998년 교복을 입고 노래를 부르는 청소년 밴드가 TV에 등장한 적이 있었다. 이름은 한스밴드. 당시에 HOT나 젝스키스 등 청소년 연령대의 가수가 아예 없는 건 아니었지만 누가 봐도 어린 티가 팍팍 나는 아이들이 나와 노래를 부르는 경우는 드물었는데 (보아는 2000년에 데뷔해 IMF 직격타를 맞은 당시에는 활동하지 않았다) 심지어 그룹 이름처럼 밴드로 나와 악기 연주를 하면서 노래를 부르는 형태였기 때문에 당시에 없던 비주얼을 자랑하며 이목을 꽤 끌었었다.
한스밴드는 김한샘, 김한나, 김한별 친자매로 구성된 청소년 밴드로 서태지와 아이들, 듀스, 잼, HOT, 젝스키스, 터보, 클론, 유피, DJ DOC, 김현정, 노이즈, 박진영, 김건모, 015B, 룰라, 영턱스클럽, 베이비복스, 쿨 등 이름만 들어도 90년대 가요계가 만만치 않은 시대임을 감안하면 이틈을 비집고 쟁쟁한 경쟁자들이 잔뜩 있던 시기에 데뷔한 셈인데 나름 그 또래 그 아이들이 가졌을 만한 감성을 갖고 데뷔를 하면서 (데뷔곡 - 선생님 사랑해요) 오빠, 언니들에게도 인기를 얻으면서 청소년 밴드로서의 포지션을 나름 잘 구축했었다.
이때 이들이 선생님 사랑해요와 함께 불렀던 곡이 하나 더 있는데 그게 바로 "오락실"이라는 곡이다. 1998년 한스밴드 1집에 실린 곡으로 IMF 시대상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곡인데 당시 또래 집단에서는 IMF가 뭔지도 잘 몰랐고 어른들은 이들 노래를 즐겨 듣는 상황이 아니었기 때문에 당시에는 이게 IMF로 인한 무너진 한국 경제위기를 담은 곡이라는 걸 크게 실감하지 못했었다. 가사를 음미하면 더 슬프지만 곡 자체가 쿵짝쿵짝 템포를 갖는 아기자기한 느낌의 곡이었다 보니 또래들은 더욱 그걸 체감하기 어려웠던 부분도 있었다. (당시 명예퇴직을 진짜 명예퇴직으로 아는 아이들도 많았고 외환위기다 보니 외환 문제 자체를 잘 모르기도 했기에)
그러나 시간이 지나고 세월이 흐르면서 이 곡을 다시 듣게 되면 노래가 만들어지고 불러지게 된 당시가 바로 IMF 외환 경제위기로 우리나라가 엄청 힘들어 하던 시기였다는 걸 알게 되고 또 가사에도 나오는 "뉴스"라는 것이 바로 IMF 당시 일자리를 잃은 아버지들이 방황하는 모습을 담았다는 걸 나중에 알게 되면서 노래가 갖는 반전의 묘미를 절로 실감하게 된다.
무엇보다 딸의 입장에서 아빠도 회사 가기 싫어서 흔히 말하는 땡땡이를 치고 오락실을 간다는 생각으로 아빠도 쉬고 싶겠지라는 어린 아이의 순수한 생각을 가사로 담았다는 점에서 이 노래가 더욱 의미가 있는데 당시에는 그냥 가볍게 들을 수 있는 아빠와 오락실에서 만난 이야기 정도로 다가왔던 반면에 나이가 들고 철이 들면서 이 노래를 다시 듣게 되면 한국의 경제위기는 물론 "아빠"에 대한 딸의 사랑을 가득 담은 애정어린 곡이라는 걸 공감하게 되면서 한국에 불어닥친 IMF를 나름 대표하는 당시 감성과 불우한 현실, 시대상을 담은 곡이라는 걸 알게 된다.
시험을 망쳤어 오 집에가기 싫었어
열받아서 오락실에 들어갔어
어머 이게 누구야 저 대머리 아저씨
내가 제일 사랑하는 우리 아빠
장난이 아닌 걸 또 최고기록을 깼어
처음이란 아빠 말을 믿을 수가 없어
용돈을 주셨어 단 조건이 붙었어
엄마에게 말하지 말랬어
가끔 아빠도 회사에 가기 싫겠지
엄마 잔소리 바가지 돈타령 숨이 막혀
가슴이 아파 무거운 아빠의 얼굴
혹시 내 시험성적 아신건 아닐까
오늘의 뉴스 대낮부터 오락실엔
이 시대의 아빠들이 많다는데
혀끝을 쯧쯧 내차시는 엄마와
내 눈치를 살피는 우리 아빠
늦은 밤중에 아빠의 한숨소리
옆엔 신나게 코 골며 잠꼬대하는 엄마
가슴이 아파 무거운 아빠의 얼굴
혹시 내일도 회사에 가기 싫으실까
아침은 오고 또 엄마의 잔소리
도시락은 아빠 꺼 내 거 두 개
아빠 조금 있다 또 거기서 만나요
오늘 누가 이기나 겨뤄봐요
승부의 세계는 오 너무너무 냉정해
부녀간도 소용없는 오락 한판
아빠 힘내요 난 아빠를 믿어요
아빠 곁엔 제가 있어요
아빨 이해할 수 있어요
아빠를 너무 사랑해요
IMF 아시아 외환위기
1997년 발생한 한국의 외환위기, 흔히 IMF 외환위기로 통칭되는 당시의 경제위기에 대해 대략적으로 알지 이게 왜 어떻게 문제가 되고 발생했는지 아는 사람은 드물다. 그저 우리나라 외환 보유고가 바닥이 나면서 동시에 빚잔치를 벌인 한국의 재벌과 기업들이 빚에 쪼들려 연쇄 부도를 겪게 되고 그로 인해 대량 해고 사태가 벌어지면서 나라도 국민도 어려워졌다는 정도로만 인식된 문제인데 사실 이 IMF 이야기의 근본적인 문제에는 숨어있는 이야기가 따로 있다. 바로 "태국" 그리고 우리에게 요즘 네옴시티와 빈 살만 왕세자 등으로 이슈가 되고 있는 사우디아라비아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이야기의 시작은 우리나라가 88 서울올림픽을 치른 다음 해 1989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89년 당시 사우디 왕자의 집에서 일하던 태국인이 50캐럿짜리 블루다이아몬드를 비롯해 약 269억 원에 해당하는 보석을 훔쳐 태국으로 달아난 사건이 있었다. 이름하야 "왕실 블루다이몬드 도난 사건"이다. 보석 도난 사실을 안 사우디 왕실은 태국 정부에 항의했고 태국은 사건의 심각성을 인지해 곧바로 수사에 착수, 태국인 범인을 찾아 모든 보석을 돌려주게 된다. 그러나 문제는 다시 또 꼬이게 되는데 잘 마무리된 줄 알았던 이 사건은 한참 뒤 태국 여왕이 사우디 왕실이 도난 당해 회수한 줄 알았던 블루다이아몬드가 박힌 목걸이를 하고 나옴으로 인해 사우디 왕실을 경악하게 만든다. (희귀한 보석이라 금방 알아본 것이다)
태국 정부와 태국 경찰이 직접 범인을 잡고 회수까지 해서 사우디아라비아에 돌려준 것이었기에 아무 의심 없이 이들 보석을 잘 회수했다고 여긴 사우디 정부와 왕실은 자신들의 보석이 태국 왕실에 있다는 사실을 알고 곧바로 진품 감정에 들어갔는데 결과는 거의 대부분이 가짜로 판명이 났고 이 사실을 안 사우디 왕실은 극한 빡침과 함께 다음 해인 1990년 보석을 찾기 위해 태국에 있는 사우디아라비아 대사관을 통해 보석을 찾을 것을 명한다. 그러나 여기서 상황은 더욱 심각해지는데 방콕에서 사건 조사를 하던 사우디 외교관 3명이 어찌 된 일인지 모두 태국 현지에서 "암살"당하면서 상황이 더욱 심각한 사태로 바뀌게 된다. 이에 사우디 왕실은 다시 직접 자문관을 보내지만 자문관 역시 태국에서 실종되면서 보석의 행방은커녕 보석을 찾으러 간 사람들이 가는 족족 죽어나가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진다.
보석이 태국 왕실에 있고 사우디 요원들이 모두 암살당하자 범죄조직이나 개인이 벌인 일이 아니라고 직감한 사우디 정부는 즉각적으로 태국 주재 대사를 소환해 사건이 해결되기 전까지 대사를 보내지 않게 된다. 또한 사우디 왕실은 보석은 보석대로 못 찾고 직접 찾으려 해도 찾으러 간 사람들이 모두 죽어 나가자 분노에 치밀어 태국에게 보복 조치를 하게 되는데 사우디인의 태국 방문을 전면 금지함은 물론 태국인에 대한 비자 발급을 중단함과 동시에 사우디에 있는 태국인 노동자 20만 명가량 전부를 추방하게 되는 등 양국 관계가 최악으로 치닫게 된다. 사실상 외교 관계가 이 도난 사건으로 인해 단절된 것이다.
* 추후 밝혀진 내막을 보면 태국 경찰이 범인을 잡고 진품 보석을 압수한 상황에서 태국 경찰 수뇌부가 태국 왕실에 잘 보이기 위해 보석을 모두 바꿔치기해 태국 왕실에 바치고 가품, 짝퉁 보석을 만들어 사우디에 돌려주었는데 이 사실을 모르는 태국 왕실에서 보석을 착용하고 나타나자 이를 사우디가 알게 되었고 이후 사우디가 보석을 찾으려 하자 태국 경찰이 이들을 암살하게 되면서 보석을 못 찾게 된 것이다. 태국 경찰 입장에서는 태국 왕실에 돌려 달라고 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이걸 무마하려면 결국 모르쇠로 일관하면서 사우디 외교관들이 내막을 알 수 없게 조치할 수밖에 없던 것.
그럼에도 불구하고 블루다이아몬드 보석은 끝내 사우디 왕실로 돌아오지 못했다. 결국 태국은 이때부터 사우디와의 외교 관계를 30여 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단절된 상태로 외교 관계를 이어가지 못하게 된다. 사우디 왕실이 워낙 강하게 분노한 사건이기에 해결된 것도 아니어서 외교 관계 복구가 해결될 기미를 보이지 못했다. 문제는 이후부터다. 태국은 당장 사우디에서 외화벌이를 하던 20만 명가량의 태국인 노동자들이 추방당했으니 그에 따른 경제적 손실은 물론이오 이로 인해 생긴 해당 노동자들의 생계 문제가 차츰 쌓이게 된다. 또한 사우디는 사우디인들의 태국 방문도 전면 금지했는데 태국인들의 사우디 진출과 사우디의 태국 진출이 많았던 당시 태국의 중동 관광 수입마저 크게 줄어들면서 경제 상황이 더욱 나빠지게 된다. 워낙 빠르고 급진적으로 이루어진 보복 조치였기 때문에 대응할 틈도 없이 태국은 경제 손실을 겪게 된 것이다.
그로부터 6년 후인 1996년 나름 어떻게든 버티던 태국이 외환 보유고에 문제가 생기면서 외환위기에 빠지게 된다. 고정환율제를 택해 시행하던 태국은 태국 바트(밧) 환율을 고정하는 외환 정책을 갖고 있었는데 경제가 계속 불황에 빠지면서 바트 가치가 계속 하락하고 그에 따른 방어 전략을 위해 외환 보유고를 동원해 힘겹게 버텼지만 결국에는 한계에 이르자 심각한 외환 위기 사태에 빠지게 된다. 그리고 이 위기는 곧 이웃한 동남아 국가에 전이되고 인도네시아를 시작으로 연쇄적으로 외환 위기를 겪게 되면서 그 연쇄 파동은 결국에 동북아시아인 한국에까지 불어 닥치게 된다.
태국 나비효과
물론 태국의 외환위기가 사우디아라비아에 의해 직접적으로 발생했다고 할 순 없다. 다만 석유로 달러를 긁어모으는 사우디 입장과 그 사우디에 단단히 찍힌 태국 상황을 고려해 보면 태국의 내부 문제(불황) 씨앗도 결국 사우디로 인해 생긴 부분이 무시할 수 없는 부분이 있었고 태국은 이때를 기점으로 불황이 심해지면서 경제 위기를 겪게 되었다는 점과 워낙 심하게 빡친 사우디 왕실이 어떻게든 보복하려고 했던 상황이었기 때문에 태국의 위기에는 사우디가 있었다는 걸 완전히 부정하기는 힘들다. 심증은 있지만 확증은 없는 상황인데 결과적으로 태국은 이 도난 사건 이후 6년이 지난 시점에 경제가 폭망 하게 되면서 두 손을 들게 되었기 때문에 정황상 사우디에 의한 다양한 방식의 보복 조치가 태국을 숨 죽이게 만든 것이 아닌가 하는 말들이 꽤 있는 편이다.
태국을 시작으로 이후 IMF 지원을 요청한 외환위기 국가들 다수가 공통적으로 고정환율제를 시행하고 있었고 빚잔치를 벌이던 와중이었기 때문에 우리나라 역시 그 틈에 껴서 그 폭풍을 고스란히 맞을 수밖에 없었는데 하필 우리나라도 이들 국가와 똑같은 공통점을 갖고 있었고 더 나아가 재벌기업들이 모두 빚투자를 통해 왕국을 건설하던 시기였기 때문에 금융으로 인해 발생한 돈 문제가 국제적으로 꼬이게 되자 금융권들이 앞다투어 몸을 사리게 되는 상황을 만든다. 이에 금융권은 기업에 대출한 돈을 급하게 회수하게 되었고 갑작스럽게 돈 흐름이 끊기면서 자금줄이 경색되자 기업의 목줄까지 흔들게 되는 연쇄 작용으로 이어지게 되어 우리나라도 IMF 외환위기에 빠진 것이 아니냐는 추론이 가능한 것도 사실.
실제로 우리나라가 겪은 1997년 당시 한국의 외환위기를 설명하는 모든 문서와 보고서에는 첫 문단에 "태국"이 등장하는데 (심지어 위키에서도 한국 IMF 설명을 태국 상황을 설명하는 것부터 시작) 대부분은 우리나라 자국 문제와 외환 보유 및 환율 방어 문제가 겹치면서 생긴 우리나라 만의 문제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꽤 있지만 우리가 겪은 당시 IMF는 동남아 국가에서 시작한 외환위기가 우리에게까지 이어져 연쇄적으로 일어난 결과물이었기 때문에 사실 우리 자국 문제로 인해 생긴 우리가 잘못해 생긴 문제라기 (기업 빚잔치와 족벌 경영) 보다는 외국 여러 나라의 문제로 인해 생긴 여파로 인해 우리까지 그 피해를 고스란히 받게 된 것이 아닌가 하는 이야기도 꽤 많다.
특히 모든 외환위기의 시작에 있어 태국이 시발점이었다는 점과 태국의 당시 상황과 당시 도난 사건의 진행 과정을 보면 전혀 연관성이 없다고 무시하기 힘든 전개가 벌어졌는데 물론 이와 관련해 조지 소로스의 환투기가 아시아 IMF 외환위기와 경제위기를 불러일으켰다는 말도 존재하는 건 사실이나 조지 소로스의 단독 행위라기보다는 사우디와 태국의 상황과 함께 조지 소로스의 환투기까지 이어져 전반적으로 상황 자체가 고정환율제와 맞물려 호황에서 불황으로 국가 경제가 전환되는 시점의 타이밍까지 맞물린 종합적인 상황이 이런 사태를 만든 게 아닌가 하는 추론이 조금 더 정확하다 볼 수 있겠다. 역설적으로 사우디와 태국의 보석 절도 사건이 없었다면 조지 소로스의 환투기가 아무리 강력했어도 1997년 한국에 외환위기가 왔을까 하는 합리적인 의심도 해 볼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이런 외환위기는 우리만 겪은 건 아니다. 고정환율제를 택한 건 선진국들도 마찬가지였고 영국 역시 고정환율제를 통해 외환 거래를 하고 있었는데 독일이 동독과 서독이 합쳐지면서 경제 부흥을 위해 실시한 정책을 시행하였고 이 때문에 발생한 인플레이션으로 인해 금리 인상이 있었다. 문제는 유럽 통화 정책으로 인해 영국 역시 연동된 정책을 따라 불황에 금리까지 오르게 되자 영국 역시 경제적으로 큰 어려움을 겪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에 조지 소로스가 영국 파운드 공격을 감행해 파운드에 대한 대규모 공매도 전략으로 돈을 벌게 되고 영국은 모든 외환 전략을 써가며 방어했지만 결과적으로 방어에 실패하면서 고정환율제를 포기하게 된다. 영국은 이후 조지 소로스에게 무릎을 꿇게 되고 자존심에 큰 상처를 입게 된다.
이를 두고 아시아의 외환위기도 조지 소로스의 작품이라고 하는 주장도 있으나 조지 소로스는 모든 아시아 국가를 대상으로 (태국 바트, 한국 원, 일본 엔, 중국 위안, 베트남 동, 필리핀 페소, 말레이시아 링깃, 싱가포르 달러, 인도네시아 루피아, 브루나이 달러 등) 환투기를 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조지 소로스에 의한 작품이라고 단정하기는 힘들다. 영국 파운드에 대한 맞춤 일대일 공격과 달리 아시아의 외환위기는 태국 바트를 시작으로 연쇄적으로 일어났기 때문에 조지 소로스의 환투기가 결정적이라고 하기는 힘들다. 다만 조지 소로스 역시 아시아의 외환위기 과정에서 첫 번째 공격 대상으로 태국 바트화를 환투기 공격 대상 1번으로 삼았기 때문에 태국이 외환위기로 무너지는데 일조한 건 분명하다.
그러나 그전에 앞서 이런 환투기가 가능하려면 화폐가치 하락과 불황이 그들 국가에 선행되어야 하는 전제가 깔려야 하기 때문에 이들 환투기 세력들이 놀기 좋게 만든 근본은 따로 있다고 보아야 한다. 태국은 사우디와의 사건 이후 경제 침체에 빠지기 시작했고 부동산 가격은 하락하면서 은행의 담보(부동산) 문제가 생겼다. 경상수지 적자 폭은 계속 증가했고 글로벌 투자자들은 태국 경제 전망을 부정적으로 봤다. 글로벌 전문 리서치 기관들이 태국 경제를 비관적으로 보자 자연스럽게 경제는 더욱 위축되고 투자는 점점 줄어들게 되면서 경제가 악순환되는 순환 고리가 만들어진다. 결국 조지 소로스 등의 국제 외환 투기꾼들은 이 틈을 노려 아시아에서 자국 통화 가치 하락에 가장 많이 노출된 태국을 공격한다. 환투기 세력은 아시아의 모든 국가 중에서 당시 태국이 가장 경제적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봤고 실제로 글로벌 리서치 기관들은 태국을 최약체 국가로 평가했다.
그러나 태국 중앙은행은 이를 충분히 방어했다. 1995년 자국 통화 위기가 발생하자 태국은 이웃한 동남아 국가의 다른 중앙은행에 구조 요청을 했고 말레이사아와 싱가로프 그리고 홍콩이 화답하면서 공동 대응을 했던 것이다. (싱가포르와 홍콩은 금융의 메카 아니던가) 여기에 태국은 자국 은행은 물론 태국의 주재하는 해외 은행 지점 모두에게 바트화 대출을 금지하는 초강수를 두면서 이중환율제를 도입하여 오히려 환투기 세력의 목을 죄어 나갔다. 이때 조지 소로스도 상당한 피해를 보고 손실을 본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니까 영국 파운드화 공격과 달리 조지 소로스의 아시아 공격은 실패했다. 제 아무리 길고 난다는 국제 환투기 세력도 4개의 국가, 4개의 중앙은행과 붙으면 답이 없는 것이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본 러시아 민간군사기업처럼 막강한 화력과 전략을 구사하는 민간군사기업이 하나의 국가와 상대한다면 가능성이 있을지 몰라도 그 민간군사기업이 4개의 국가와 붙어 4개국 연합군과 동시에 전쟁을 하게 된다면 상황은 달라질 수밖에 없다.
물론 이후 방어에 총력전을 펼친 태국 중앙은행은 이후 심각한 내상을 입어 회복에 많은 시간이 필요하게 된다. 문제는 이게 스스로 치료할 수 있는 조건들이 성립되어야 하는데 일단 경제가 받쳐주지 않는 상태에서 회복 기미마저 보이지 않다 보니 결과적으로는 이후 부상에 못 이겨 스스로 괴멸하는 단계로 갔고 그것이 결국 태국의 외환위기를 다시 불러일으켜 주체적인 공격자가 없는 상황에서도 스스로 무너지는 결과로 이어져 버렸다. 태국이 환투기 세력과 잘 싸웠으나 뒷심이 부족해 복구는 못 했다는 뜻이다. 결국 이후 작은 바람에도 대응할 여력이 없어지자 손을 들게 된다. 무기고 곳간은 이미 비었고 채울 새도 없이 내부 상황이 계속 좋지 못하자 결국 전쟁 대상이 없었음에도 총알이 바닥난 것이다.
엉뚱한 외환위기에 울어버린 아빠들
2022년 사우디 왕실 보석절도 사건으로 사실상 단절된 태국과 사우디는 빈 살만 사우디 왕세자가 등장하면서 새로운 양상을 보이게 된다. 양국 관계를 복원한 것이다. 이때도 사우디 정부 관계자는 블루다이아몬드 사건 극복은 양국에 긍정적으로 작용할 것이라는 공식 발언을 하면서 이 보석 사건은 없던 일이 되었다. 도난 사건을 계속 언급하는 것이 양국 외교에 도움이 되지 않을뿐더러 빈 살만 왕세자의 앞으로 활동에 있어서도 아시아 여러 국가의 협조가 절실한 만큼 이제는 의미 없다고 여긴 것이다.
빈 살만 왕세자는 한국 방문 직후 태국을 찾았다. 블루다이아몬드 도난 사건이 있던 1990년 이후 두 나라가 전혀 외교 관계를 하지 않다가 33년이 지난 시점에 사우디 왕세자가 태국을 직접 찾으며 물꼬를 다시 튼 것이다. 태국은 당연히 사우디 왕세자를 환대해주며 극진히 대접했다.
영국 파운드화가 공격당하고 고정환율제 폐지를 하는데 앞서 영국은 금리를 올린 정책을 시행했었다. 그 배경에는 독일의 인플레이션이 있었고 그 인플레이션은 독일 통일로 인한 동독 경제 활성화 때문이었다. 결과만 보면 영국 파운드화 공매도 사건은 (검은 수요일) 독일 통일에서 시작된 것이라 할 수도 있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우리나라가 1997년 겪은 IMF도 기업의 부실 운영과 부채가 주요 원인이지만 그 배경에는 외환 문제가 있었고 (우리도 고정환율제였었다) 그 외환의 파동은 동남아 다른 여러 국가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그 동남아 여러 국가의 외환 위기는 태국이 시작점이었고 태국이 만든 나비효과였다. 그 태국의 경제 불황 단초는 사우디 왕실 보석 사건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고 볼 수 있다.
한스밴드의 오락실 가사를 보면 딸은 아버지가 왜 회사를 가지 않고 짤렸는지를 모른다. 그냥 회사 가기 싫어서 안 가는 줄로 안다. 그 대머리 아빠는 자기가 왜 회사를 짤렸는지 모르고 아빠가 다닌 회사는 자기네 회사가 왜 부도가 났는지 잘 모른다. 나비효과라는 것이 이런 것일까? 사우디의 모랫바람이 우리 아빠를 오락실에 가게 만들었다고 하면 믿을 사람이 과연 있을까 싶다.
그때 "아빠 힘내세요, 우리가 있잖아요" 가사가 붙은 노랫말도 있었다. 아이들이 힘들어하는 아빠를 위로하며 부른 노래였는데 그땐 정말 아빠들이 많이 힘들어했던 것 같다. 그때나 지금이나 변하지 않는 건 역시 자식들이 아빠에게는 큰 힘이 된다는 사실이다. 아무것도 모르고 왜 길거리에 버려져야 했는지 모르는 아빠들. 지금은 꼰대 소리 들으며 뒷방 노인 신세가 된 그때의 아버지들. 아버지는 잘못이 없어요라고 말하며 한스밴드 "오락실" 노랫말을 들려주는 것에 미안함이 덜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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