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정이라는 말이 있다. 잘 쓰지 않는 말 같아도 실생활에서 가끔 들을 수 있다. 대부분 어감이 좋지 않고 실수를 하거나 잘못을 저지를 때 듣는 경우가 많아 부정적 단어로 생각하는 사람도 많다. 예를 들어 가만히 있지 않고 마구 돌아다닐 때 깨방정 떨지마라 하는 경우도 있고 오두방정 떤다라고 하기도 한다, 말 뜻을 잘 몰라도 다그칠 때, 엄마의 잔소리나 선생님들이 훈계를 할 때 사용되기도 하여 행동가짐을 조심히 하고 가만히 있어라 하는 식으로 금방 이해하고 받아 들인다.
행동이 방정스럽다, 입이 방정맞다, 너의 입이 방정해서라는 말로도 가끔 쓰인다. 잘못된 소문을 내어 누군가 마음의 상처를 입히면 소문을 낸 자가 스스로 혹은 주변인이 으이구~ 입이 방정이지, 하고 입을 쉽게 놀린 것에 대해 지적하기도 한다. 아무렇게나 행동하거나 아무렇게 말 할 때 그 형태를 지적할 경우 방정을 많이 쓴다. 딸 가진 엄마들이 특히 자주 썼던 표현인데 딸이 성장하면 행동이 조심스러워야 한다고 생각하는 일이 많아 방정 떨지 말라고 다그치는 일이 많았다. (다 큰 처녀가 그렇게 방정 떨면 시집은 어떻게 가냐..이런 식으로 행동 지적에 많이 사용)
하지만 방정은 다른 반대의 경우에도 쓰인다. 모범상이나 선행상을 받을 때 "위 학생은 품행이 방정하고 다른 사람에게 모범이 되므로" 또는 "위 학생은 품행이 방정하고 학업 성적이 우수하므로" 이런 식으로 칭찬하는 이유를 방정하다로 하여 상을 주기도 한다. 얼핏 들으면 이해하기 애매한 문구지만 방정에 대해 조금 더 깊게 들어가면 잘못 쓰이지 않았다는 걸 알 수 있다.
최근에 해리포터 작가가 비서를 해고한 소식이 토픽으로 소개된 적이 있다. 공금을 사적으로 쓰고 작가에게 온 선물을 유용하는 듯 여러가지 문제가 불거져 해고를 하게 된 내용인데 이 때 기사에 "품행 방정"의 이유로 해고하게 되었다라고 적혀 있다.
https://news.v.daum.net/v/20181108084101182 (해리포터 작가, 비서가 쇼핑에 쓴 돈 반환 소송 관련 뉴스)
이 기사를 보면 댓글에 방정 관련하여 지적하는 분들의 많은 글을 볼 수 있다. 기사 발행 직후에는 베스트 댓글 대부분이 방정 단어 사용에 관한 지적이 대부분이었다. 글 쓰기를 전문으로 하는 기자가 제대로 쓰지 않으니 기레기 소리를 듣는거다라는 말도 심심치 않게 보였다, 지금은 다른 댓글들로 바뀌었지만 그래도 이 기사의 베스트 댓글 1위는 여전히 방정이라는 뜻도 모르고 쓴 것에 대한 지적글이다.
하지만 이는 오히려 잘못된 지적이다. 기자가 쓴 문장에는 아무런 잘못이 없고 문제가 없다. 이미 언급한 것처럼 방정은 부정적으로 쓰이기도 하고 긍정적으로 쓰이기도 하는데 어떻게 표현하느냐에 따라 뜻이 달라지게 되어 있다. 또 방정하다와 방정맞다가 아닌 방정 그대로만 쓸 경우 입방정, 깨방정, 오두방정과 달리 부정적인지 긍정적인지 정확히 담고 있지 않아 그 뒤에 후술되는 문장으로 부정적 표현인지 긍정적 표현인지 유추해야 한다.
보통 방정맞다는 부정, 방정하다는 긍정이지만 방정 자체를 위 사례처럼 대부분 안 좋게 보는 측면이 있는데 방정하다가의 경우에만 긍정인 건 맞으나 방정맞다와 방정하다가 아닌 방정만 쓴다고 해서 부정적인 말이 되는 건 아니다. 한자어로 쓰인 방정인지 우리말 방정인지 아직 알 수 없기 때문이다. 방정만 쓰인 경우 부정과 긍정 둘 중 하나로 선택되게 되는데 문장 전체에 따라 긍정으로 방정이 쓰였는지 부정으로 쓰였는지 알 수 있기 때문에 정작 문제가 안된다.
"품행 방정"의 이유로 해고한다라는 말 뜻 자체가 품행 방정이 문제가 되었다는 걸 의미한다. 이건 방정맞다의 경우다. 반대로 "품행 방정"의 이유로 합격 시킨다라고 했으면 역시 방정이 원인이 되지만 그 방정은 옳고 바름으로 쓰였다는 걸 "합격"이라는 단어로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방정의 이유로~라고만 하면 그 방정이 어떤 형태인지 알 수 없으나 방정의 이유로 탈락, 해지, 해고, 훈계, 감봉이라면 행동이 부질없고 말과 행동이 경망스럽다라는 뜻이고 방정의 이유로 합격, 시상, 칭찬, 승진, 진급이라면 그 행동이 매우 좋다라는 뜻이 된다.
"너는 글씨가 못 배운 사람처럼 왜 그렇게 방정하니"라고 썼다면 방정하다와 방정맞다라는 표현이 아니어도 어떤 경우에 해당하는지 알 수 있다. 반대로 "너는 글씨가 무척 방정해서 보기 좋구나"라고 했다면 역시 방정하다와 방정맞다가 아니어도 어떤 의도로, 칭찬인지 욕인지 구분할 수 있다.
기사가 쓰일 때 품행이 방정하지 못하여 (못하다는 부정 요소) 해고를 한다라고 써도 되지만 풍행 방정의 이유로 해고를 한다고 하면 뒤에 붙는 "해고"로 충분히 "방정하지 못하여 해고한다'와 같은 말이 되기에 틀린 말이 아니게 된다.
방정은 무조건 부정적인 말이다, 방정은 썩 좋은 말이 아니다라는 착각에서 온 잘못된 의식인데 윗사람에게 행동이 방정하시니 보기 좋습니다라고 해도 전혀 잘못된 표현이 아니며, 행동이 옭고 바름직해서 모든이의 모범이 되십니다와 전혀 다르지 않기에 윗사람에게 써도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이와 비슷한 사례의 말이 칠칠이다. 일을 잘 하지 못 할 때 주로 듣게 되고 사용하는 말로 일을 똑부러지게 하는 않는 경우, 실수가 잦거나 일을 제대로 하지 못 하면 일하는 것이 칠칠치 못하다. 칠칠하지 못하다로 많이 쓴다. 그러다보니 이런 칠칠이라는 단어가 들어가면 무조건 일을 못 해서 듣는다고 착각한다. 예전에는 시집 간 며느리와 시어머니 사이에서 자주 듣던 말로 (요즘도 마찬가지) 며느리가 하는 일이 시원치 않을 때 칠칠하지 못하다라고 많이 혼을 냈다.
하지만 칠칠하다는 일을 잘 하는 경우, 야무지게 하는 경우, 단정하고 깨끗하며 일 처리가 반듯한 경우에 사용되는 말로 방정처럼 칠칠이라는 명사만 가지고는 잘 쓰지 않고 칠칠하다, 칠칠맞다, 칠칠하지 못하다, 칠칠맞게 행동한다로 방정과 비슷하게 쓰이지만 칠칠은 "긍정"만 있고 좋은 뜻만 가진 경우라서 하다와 맞다가 모두 쓰여도 다 좋은 뜻이다, 하지만 야무지게 행동하는 칠칠한 것과 경망스럽고 야무지지 못한 것의 방정이 비슷한 쓰임새로 쓰이기도 하고 대체말로도 충분히 쓸 수 있어 방정맞다와 방정하다처럼 칠칠맞다도 부정적으로 생각해 칠칠맞게 행동하면 어떻하니! 라고 다그칠 때도 쓴다. 이는 잘못된 표현으로 칠칠하다와 칠칠맞다는 모두 긍정이라 긍정적일 때만 써야 한다. 칠칠하지 못하여라는 말 자체가 칠칠해야 한다는 걸 표현하는 말로 당연히 칠칠한 것이 좋다라는 뜻이고 칠칠이라는 표현은 야무지게 일을 잘 하는 모든 경우로 못하다라는 부정 표현이 따라 붙지 않는 이상 부정적으로 쓰이지 않는다.
방정은 한자어와 우리말이 동음이의어로 쓰인다. 우리가 아는 방정맞다, 깨방정 떨지마라, 입방정이다, 오두방정은 우리말이 쓰인 경우고 칭찬, 바른 행동에 쓰일 때는 한자어로 쓰인다. 네 방향이 모두 바르다라는 뜻의 한자어 방정은 그 뜻 그대로 정사각형처럼 딱 맞게 틀이 잡힌 안정된 상태를 말한다. 한자어로 쓰인 경우 예외없이 칭찬이다. 하지만 우리말로 쓰인 경우에는 무조건 부정적으로만 쓴다. 한자어와 달리 우리말의 경우 왜 같은 말을 부정적으로 쓰게 되었는지 유래는 정확치 않으나 우리말이 아닌 우리글로 쓸 때는 긍정적 표현에는 한자어로, 부정적일 때는 우리말 그대로 소리말로 적는다. 방정이라는 명사가 어떤 접사(맞다, 하다)와 만나는 가에 따라 말 뜻이 전혀 달라지지만 방정 자체만 쓰지 않고 문장으로 방정이 쓰인 "이유"가 쓰이기 때문에 방정 자체만으로도 좋고 나쁘고 사용이 가능하다.
방정맞다라는 말 뜻으로 거의 쓰이다보니 방정하다도 옳지 않은 행동을 할 때 쓰인다고 착각하는 경우가 많고 위 기사의 댓글 상황이 (연령대가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외래어가 우리말보다 익숙한 어린 사람들의 보편적인 경우라고 볼 수 없어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잘못 알고 쓰고 있다는 걸 추정할 수 있다. 다만 이 착각은 일반적인 경우는 아니고 그 연유가 조금 다르다 할 수 있는데 "품행"이라는 것 자체가 한자어고 품행 방정이라는 단어 역시 한자어로 구성된 조합이기 때문에 품행 방정으로 연결하여 말을 표현 했다면 여기의 방정은 한자어로 쓰인 말이라 보는 사람이 있을 수 있다.
더군다나 [품행 방정]으로 표현하는 경우는 예외 없이 "상장"에서 품행 방정을 이유로 상을 준다라고 알고 있어 품행 방정만 보고 판단하면 무조건 좋은 내용이 후술되어야 한다고 믿는 것도 이런 현상이 생긴 일이라고 봐야 한다. 방정이 품행이라는 단어와 만나 품행 방정으로 쓰인다면 그렇게 쓰이는 것만 보았기 때문에 무조건 좋은 상황에서만 써야 한다고 생각, 착각할 수 있는데 벌을 줄 때는 글이(상장=벌장?) 아닌 말로만 하기 때문에 익숙치 않아서 그렇지 벌로 쓰일 때도 똑같이 쓰일 수 있는 건 당연, 품행 상태를 말하기 때문이다.
보기에 따라 연령에 따라 뉴스에 나온 "품행" 이라는 단어와의 짝궁체 표현이 워낙 긍정 표현으로 익숙해서 방정은 "방정하다"로 해석될 소지가 있고 결국 품행이 방정하여 해고한다라는 (행동이 올바르기에 해고한다?) 말도 안되는 상황이 생기기 때문에 충분히 지적은 나올 수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품행 방정의 "방정"이 한자어로 되었다고 단언할 수 없고 품행과 별개로 뒤의 방정은 우리말 방정이거나 아직 뜻이 결정되지 않은 동음이의어 명사 그대로의 상태라고도 할 수 있는 상황에서 뒤에 해고가 바로 붙기에 결국 우리말 방정의 부정적 방정맞다로 쓰였다는 걸 쉽게 알 수 있다. 때문에 잘못되었다고 말하기도 어렵다. 한자말과 우리말, 한자와 한글의 차이에서 비롯된 문제지만 말 뜻이 정확히 전달하는데 문제가 없고 해고의 사유가 된 방정이 어떤 목적과 방향으로 쓰였는지 충분히 알 수 있기 때문에 기사 문장에 문제가 없다고 보는 것이 맞다.
품행이 방정하여 상을 줌, 품행이 방정맞아 벌을 줌처럼 상과 벌에 대해 방정 역시 하다와 맞다가 붙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여기서의 방정은 품행이 좋다. 품행이 나쁘다를 설명하는 용도로 쓰이고 품행이 어떻다를 의미하는 경우라 방정 자체가 결정 수단이 되지는 않는다. 품행이 [방정하여] 상을 줌과 품행이 [방정맞아] 벌을 줌에 있어 방정과 상, 벌의 관계가 딱 맞아 떨어지는 건 분명 하지만 품행 방정의 이유로 "상을 줌" "벌을 줌"도 가능하고 상과 벌로도 품행의 상태(이유)가 확연히 드러나기에 방정맞다와 방정하다 어떤 걸로 쓰였다는 걸 알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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