짜장면의 달걀 (계란후라이) 실종 탐구 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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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탐/주방탐구

짜장면의 달걀 (계란후라이) 실종 탐구 생활

by 깨알석사 2018. 11.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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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서 나고 자라 서울 음식만 먹다가 처음으로 외지 음식을 접한 건 인천이었다. 부모님의 고향 (두 분 모두 충청도) 음식을 제외하고 내가 기억하는 첫 서울 밖 음식은 인천이었다, 서울에서 서울 밖으로 놀러갈 만한 곳은 역시 인천 월미도, 연안부두 등의 바닷가 동네 여행이다.

30~40대 연령의 사람들이 대부분 그렇겠지만 나에게도 어릴 적 최고의 음식은 짜장면 이었다. 나 역시 짜장면은 최고의 사치라고 생각했고 생일이 되야 겨우 먹을 수 있는 음식이었다. 졸업식이나 큰 상을 받은 날은 짜장보다 레벨이 높은 갈비집행이다. 지금과 달리 그 때는 짜장면과 양념갈비가 외식의 양대축이었지만 지금은 먹거리가 많아도 너무 많아 갈비와 짜장은 외식 보다는 이젠 평범한 음식이 되어 버렸다.

내가 인천에서 먹은 짜장면에는 계란후라이가 있었다, 간짜장을 시켜야만 계란후라이가 들어간다고 하지만 원래 우리집은 간짜장을 먹지 않았던 관계로 그 때 인천에서 먹은 계란후라이가 들어간 짜장이 일반 물짜장이라는 건 확실하다. 우리 가족이 간짜장을 먹지 않은 이유는 간단하다. 일반 짜장보다 비싸기 때문이다. 그럴바에 일반짜장 곱배기를 시키는 것이 낫다라고 봤기 때문에 우리집은 간짜장이라는 걸 따로 주문해 먹은 적이 없다. 그래서 난 간짜장은 성인 되고 나서야 처음 먹었다.

짜장에 계란을 올려주는 지역을 보면 인천과 부울경을 가장 먼저 꼽는다. 부울경은 부산/울산/경남을 말한다. 요즘에는 부산쪽, 경남쪽에서만 짜장에 계란이 있다라고 많이들 말하지만 의외로 수도권에서 인천은 유일하게 부산과 마찬가지로 짜장에 계란후라이를 넣어 주던 지역이었다. 수도권은 계란후라이 넣어주는 중국집이 없다라고들 많이 말하지만 실제로 짜장의 계란후라이 관련 글들을 찾아보면 인천 지역 분들의 계란후라이 영접 사례가 상당히 많다.

인천, 부산, 울산, 경남에 한정되어 계란후라이가 존재했다는 걸 보면 지역적 특색이 보인다. 바닷가다. 물론 삼면이 바다인 우리나라에서 이 지역 말고도 항구도시, 바닷가 마을은 엄청 많다. 하지만 다른 바다 마을과 이들 지역의 차이를 짜장면과 연결해서 본다면 또 다른 공통점이 있다. 바로 화교촌의 형성이다. 차이나타운 말이다.

짜장면은 알다시피 인천에서 출발한 인천의 대표 음식이다. 모든 것이 인천에서 시작해 퍼져나갔고 그 역할은 화교들이었다, 인천에서 부천, 서울로 점점 내륙 안쪽으로 진출하면서 서울에도 화교촌이 형성하게 된다. 한 편 부산은 일찍이 일본 화교들의 진출입 경로로 세를 달리하고 있다.

인천의 화교들은 주로 산둥 지방에서 넘어 온 화교들이고, 부산의 화교들은 홍콩, 대만 지역의 화교들이거나 일본에 정착 했다가 한국식 중국요리 분위기가 생기자 다시 한국으로 넘어 와서 정착한 화교들이 많았다. 쌩둥맞게 중식요리인 짜장면에 일본 음식인 다꽝/다꾸앙(단무지)이 필수 반찬으로 들어간 이유다. 

짜장면의 경우 인천에서 퍼져 나갔다고 보는 것이 정설이지만 짜장면의 고명인 계란후라이 영역은 부산에서 퍼져 나간 것이 정설이라고 봐야 한다. 애초에 인천 화교 영향을 많이 받은 서울에서 계란후라이를 넣어주지 않는 것만 보더라도 그러한데 인천에도 계란후라이가 있었기 때문에 서울 중식당에도 그런 문화가 있어야 하지만 서울에 없다는 건 인천도 늦게 그런 고명과 찬이 유입되었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짜장의 영원한 단짝인 짬뽕 역시 그렇다. 짬뽕은 (한신탕면) 찬폰이라는 일본식 중국요리로 일본 화교에 의해 만들어졌다고 익히 알려졌다. 중국에도 없고 일본에도 없는 이 짬뽕은 우리나라 중식에서 짜장과 상당히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데 일본식 중화요리인 야끼만두(군만두), 짬뽕, 단무지(다꾸앙/다꽝)이 우리나라 중국집의 필수로 자리 잡게 된 것은 먼저 틀을 잡은 일본 화교 때문이고 그 일본 화교들이 한국에 왔기 때문이다. 일본과 밀접한 항구 도시는 당연히 부산이다.

지금 서울 사람에게 서울의 차이나타운이 어디냐고 묻는다면 거의 대답을 못한다, 특정된 곳이 따로 없기 때문이다. 그나마 요즘에는 연남동이나 연희동 또는 구로, 대림쪽을 차이나타운이라 말하지만 그건 최근의 일이고 부산, 서울과 달리 표면화된 차이나타운이라는 것이 서울에는 없었다. 그 말은 화교들이 있어도 화교촌으로서의 기능이나 역할이 없었다는 뜻이고 같은 화교들간의 교류나 문화가 적절하게 이어지지 않았다는 걸 의미한다. 부산과 인천에는 계란후라이를 비롯해 상당히 비슷한 체계가 시간적 차이를 두고 거의 비슷하게 형성된 반면 서울 중식에는 그런 문화가 개입하지 않은 이유다.


참고로 연희동, 연남동은 한국 국적의 화교들이 주로 많고 구로동이나 대림동은 중국 국적의 조선족이 주로 많다. 그래서 미묘하지만 차이가 있는데 한국식 중국요리는 연희동/연남동이고 중국식 한국요리는 구로동/대림동이다. 그래서 연희동/연남동 중식은 우리가 평소 먹던 맛이라 입맛에 잘 맞고 구로동/대림동은 한국인 입맛에 안 맞을 수 있다.

서울식 중식이 보편적으로 자리잡고 많이 먹으면서 반찬도 변한다, 김치의 등장이다. 중식은 느끼하다는 인식이 있고 실제로 느끼하게 만드는 집이 많아 김치를 찾는 사람이 많게 된다. (동물성 기름인 돼지기름에서 식물성 기름인 콩기름으로 바꿨어도 여러 요리에 쓰이는 기름의 재사용이 중식의 가장 큰 문제) 역시 역설적이게도 중국요리인 짜장면에 반찬으로 일본 다꾸앙과 (부산) 한국 김치가 (서울) 서로 매치되어 포장되어 딸려 오는 이유다. 그나마 중국집의 김치는 싼마이로 맛이 형편없다로 많이 인식되면서 김치는 최근 거의 주는 집이 없다. 

계란후라이가 사라진 것에 대해 여러가지 의견이 많지만 대체로 가격통제(물가통제) 때문에 사라지게 되었다고 보는 것이 통설이다. 우리나라가 물가 조정을 할 때 쉽게 가격을 올리지 못하게 통제를 하게 되는데 서민들에게 쉽게 영향을 주는 품목들에 대해 가격을 임의대로 올리지 못하게 한 것이 물가통제다. 짜장면은 물가통제 대상이었다.

짜장면은 특별한 날에 먹는다는 말처럼 사실 만만하게 먹는 음식은 아니었다, 그 말은 국수 형태라도 절대로 쉽게 접할 수 없는 나름의 고급 음식이라 할 수 있는데 그런 음식에 녹색의 완두콩과 오이채, 계란후라이까지 올려도 충분히 버틸 수 있는 건 그 만큼 경쟁력이 있기 때문이고 음식값이 그걸 감당하고도 남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밀가루 값, 수도, 전기, 가스값 등 여러 물가가 오르고 땅값이 오르고 가게 월세가 오르면 파는 음식값도 올라야 하는데 정부 통제가 되면 마진이 줄어들어 음식을 팔아도 남는 경우가 없게 된다. 이 때는 답은 두 개로 나뉘게 된다, 메뉴에서 빼거나 재료비를 줄이는 방법이다.

결국 계란값 비중이 크다보니 계란을 줄이게 되고 젓가락으로 골라 빼는 비율이 높은 완두콩도 빼고 오이를 유난히 싫어하는 한국인들이 많다보니 오이채도 빼는 걸 고려할 수 밖에 없다. 그러나 먹던 사람들이 있으니 계란을 찾는 분들 때문에 계란을 다시 넣지만 하나를 통으로 튀겨 주면 계란값에 기름값, 가스값이 들어가니 삶은 물에 그것도 절반 혹은 반의 반만 잘라 삶은 달걀 반쪽내지 반반쪽을 올려주는 걸로 형태가 바뀔 수 밖에 없다.

튀기면 다 맛있다는 말처럼 중국집의 계란후라이는 팬에 굽는 개념이 아니라 기름에 아예 튀긴 방식이라 상당히 맛이 좋지만 삶은 달걀은 짜장(춘장)과 별로 어울리는 조합은 아니었다, 물짜장에 의해 미끄덩 거리는 흰자와 텁텁한 맛만 주어 짜장 맛을 반감시키는 노른자는 골라서 옆 사람 주는 비율이 더 많았다. 계란은 계란인데 후라이가 아닌 삶은 달걀이다보니 예전과 같지 않고 들어간 재료비에 비해 효과도 크지 않았던 것이다.

* 참고로 언어유희에서도 자주 언급했지만 계란과 달걀은 모두 표준어다. 계란은 닭의 알이라는 우리가 이전부터 쓰던 우리 한자어 바탕의 말이고 달걀은 닭알의 발음 그대로의 표기어로 둘 다 표준어고 둘 다 혼용 사용된다.


상대적으로 수도권(인천 포함)은 상당히 많이 개발되고 발전 되면서 물가 감당 폭이 컸다, 똑같은 음식점이라고 해도 서울에서 하는 것과 지방에서 하는 건 유지비, 인건비 등 여러가지로 차이가 클 수 밖에 없다. 유일하게 계란후라이를 주던 인천도 수도권의 개발 아래 있던 지역이니 상대적으로 부산에 비해 물가 감당률이 다르다. 그래서 인천에서도 계란후라이 문화가 사라진다. 계란 대신 메추리알이 들어가게 된 것 역시 물가 때문에 고명을 다른 걸로 대체한 대안이라 할 수 있는데 하나씩 빼거나 (줄이거나) 조금 더 싸면서도 다른 비슷한 걸로 교체하는 건 결국 원가 부담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결국 줄이고 교체하고 빼다 보면 최종점은 역시 핵심 본 재료만 남고 고명과 부재료는 다 빠지게 된다, 그게 지금의 짜장면인 것이다.  

더 이상 짜장면을 물가통제 항목으로 분류하지도 않고 통제 제한 조치 해제 이후 짜장면은 몇 백원에서 몇 천원으로 꽤 많이 올랐지만 더 이상 계란을 넣어주지 않는다. 심지어 간짜장을 시켜도 수도권에서는 계란후라이 볼 수 있는 확률이 거의 0.1% 아래다. 오이채와 완두콩, 계란을 통으로 넣어도 감내할 수 있고 재료비가 문제라면 그 만큼 더 올려도 되지만 이제는 계란, 오이채, 완두콩 없이 그냥 짜장만 주는 것이 당연하게 여기는 사람이 많다보니 편안대로 그냥 오리지널 상태로 주는 경우가 많다. 

값은 당시보다 꽤 올랐는데 부수적으로 들어가는 고명 재료는 다 사라졌으니 판매 입장에서 소비자가 극성스럽게 원하지 않는다면 이제는 이 상태로 주는 것이 훨씬 이득인 건 사실, 물가통제 항목에서 해제 되면서 이제는 원가 이상 남길 수 있는 상황이지만 짜장과 면만 주어도 만족하고 아무 소리 없는 사람들이 많아 굳이 먼저 챙겨줄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는 것도 있다. (그나마 다른 중식당과 차별점을 두기 위해 해주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거의 없다)

짜장면은 알면 알수록 참 신기한 음식이다, 다문화가 만든 끝판왕이라 할 수 있다. 중식이라는 기본 틀에 일본의 단무지와 한국의 김치, 그리고 고춧가루가 혼합되어 있다, 한중일 합작이다. 짜장이라 하는 것의 원재료인 춘장은 원래 충장이라는 말로 여기서 충은 "파"를 말한다. 파를 찍어 먹는 장이 있는데 중국인들이 쓰던 장이 그래서 충장(춘장), 근데 그게 지금은 양파(서양의 파)를 찍어 먹는 장이 되었다. 

어느 중국집이든 배달을 시키면 양파와 양파를 찍어 먹는 춘장을 무조건 따로 준다. 파는 파인데 대파가 아닌 서양에서 온 양파를 찍어 먹는다는 것이 변화의 최상단 꼭지점이다. 근데 이런 짜장면은 한국인이 즐겨 먹는 대표적인 한식이 되었다. 그 누구도 중국집 사장님이 왕서방처럼 하고 있거나 중국말을 하는 화교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다문화가 결합되면 어떤 일이 벌어지고 다문화가 선순환을 일으켜 하나의 문화로 재탄생 하면 어떻게 되는지 제대로 보여준 사례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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