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원하는 것만 기억한다! - 살인자의 기억법 : 새로운 기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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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예술/영화리뷰

내가 원하는 것만 기억한다! - 살인자의 기억법 : 새로운 기억

by 깨알석사 2017. 11.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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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라는 건 굉장히 심오하면서도 신비롭고 까면 깔수록 알면 알수록 경이로운 대상이 된다. 분명 이것도 하나의 장기일텐데 생각을 하고 사고라는 인지 능력을 만들고 키우며 동물적 본능과 인간의 이성을 논리적으로 구축해 나간다. 눈에 보이는 것과 눈에 보이지 않는 걸 구분하지만 때로는 그 경계를 허물면서 전혀 예상할 수 없는 신이 아니고서는 불가능한 창조적인 것들도 만들어내고 감정은 물론 실질적인 내 몸을 지배하는 가장 강력한 무기이자 방어체계로 그 자체가 살아 있는 또 다른 생명체 같다. 살아 숨쉬는 것들의 뇌라는 건 우주보다 더 우주적인 공간이기도 하다. 

사람은 실제 체험한 것과 체험하지 않는 것은 아주 큰 차이가 있다고 하지만 따지고 보면 이것도 "생각"하기 나름이다. 가상의 공간을 체험하는 VR처럼 실제 존재하지 않더라도 눈 속임이나 뇌 속임을 통해 실제 현실에 있는 것처럼 착각하게 만드는 건 요즘 같은 시대에 놀랍지도 않을 일 중 하나인데 이런 가상현실 체험이 자연스럽고 익숙한 현실이라는 걸 받아들이고 있다면 굳이 그런 장치를 쓰지 않더라도 내 뇌의 컨트롤 만으로도 얼마든지 가상 체험은 가능하다는 해석도 가능해진다. 예나 지금이나 이런 착각과 혼동, 생각, 속임 등으로 가상 현실을 체험하는 건 어렵지 않은데 대표적인 것이 잠에서 꾸는 "꿈"이다.

10년 전 가봤던 여행지나 어릴 적 수학여행지에 대한 기억이 어떨까? 생생한 부분도 있지만 대부분 잊혀진 부분이 많다. 무엇보다 감흥이라는게 바로 어제의 그것처럼 느껴지는게 드물다. 머리속에 대충 그려지는 풍경이 있지만 실제 체험을 했어도 체험하지 않았을 때보다 약간 체감적으로 느껴질 뿐 절대적이지도 않다. 세계 여행을 직접 보고 듣고 체험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세계 여행지를 탐방하는 TV의 전문 여행 방송이나 다큐 등을 통해서도 충분히 간접 체험이 가능한데 뇌가 어떻게 받아들이냐에 따라 차이가 있을 수도 있고 미약할 수도 있다. 마치 원효대사의 해골 바가지 이야기와 같은 맥락이라고도 할 수 있는데 생각하기에 따라서 실제 가보지 않아도 실행하지 않아도 보는 것만으로 또는 머리속에 그려가는 것만으로도 실제 체험과 비슷한 감흥은 얼마든지 만들어 낼 수 있는 것이다.

거짓말을 잘 하는 사람들의 특징은 말을 잘하거나 조리있게 하는게 전부가 아니다. 기억력이 좋다. 거짓말을 했으니 그걸 기억해야 거짓말이 들통나지 않기 때문이라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다르다. 거짓된 말과 그 상황을 진실로 받아들여 외움으로 기억을 왜곡하는 것이고 그걸 실제(진짜)라고 믿으면서 기억하는 패턴이 뇌에 각인되면 그 거짓말을 그 사람에게 거짓이 아닌 사실이기 때문에 들통이 날 수가 없다. 거짓말은 또 다른 거짓말을 부르게 되는데 그런 과정이 반복되면 결국 전체 거짓이 하나의 사실로 바뀌는 과정이 들어가고 그 사람에게는 그게 진실이고 참이기 때문에 실제 체험하거나 실행하지 않았어도 실제로 경험했던 기억이 되면서 거짓말이 더 자연스럽게 이루어지게 되어 있다. 보통은 거짓말은 오래 가면 들통나기 마련이고 앞뒤 상황이 어긋나면서 틀어지기 마련이지만 그 사람의 머리속에서 그게 실제가 되면 앞뒤 상황도 가상이라 할지라도 실제가 되버리기에 틀어지는 일은 없다. 내가 실제로 보고 느끼고 만진 것에 대해 목격담을 내놓는 것이 아무렇지 않은 것처럼 자연스럽게 뇌의 기억을 편법으로 이용하는 경우다.


이번에 본 살인자의 기억법은 꽤 충격적인 영화 중 하나였다. 기대만큼 사람들의 엄청난 반응이 나온 건 아니지만 일단 연쇄 살인자가 치매를 앓게 되면서 기억을 잃어간다는 설정, 그리고 사라지는 기억을 되살리기 위해 노력하는 과정에서 잊혀졌던 것들과 새로 구성되는 참회의 거짓 기억이 충돌하는 과정은 놀라움 그 자체다. 이런 설정 자체가 가능하다는 걸 생각하기가 쉽지 않은데 기억을 가지고 이런 기억속의 세상을 탐구하는 세상을 그려냈다는 점에 일단 박수를 보내고 싶다.

영화의 골격은 간단하다, 과거 연쇄 살인을 저질렀던 사람이 치매를 겪게 되고 기억을 점점 잃어간다. 17년 전에 마지막 범죄를 저지르고 지금까지 아무 짓도 하지 않던 그는 최근 동네에 연쇄 살인 범죄가 생기면서 신경이 날카로워진다. 최근 벌어지는 범죄의 주요 대상이 젊은 여성들인데 그에게는 성년이 된 예쁜 딸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다 우연한 교통사고로 한 젊은이를 알게 되고 눈빛만으로도 직감적으로 이 젊은이가 최근에 벌어지는 범죄의 살인마라는 걸 눈치챈다. 문제는 끼리끼리라고 젊은이 역시 주인공의 살인마 눈빛을 알아챘다는 것이다. 

딸을 위해 또 최근 벌어지는 자신과 무관한 범죄를 막기 위해 그는 그 젊은이를 경찰에 신고하지만 역설적이게도 그 젊은이는 경찰이었고 그렇게 일은 꼬인다. 딸에게 접근한 남자는 연인 사이가 되면서 주인공을 더 압박하게 되고 결국 주인공은 자신과 딸을 위해 그 젊은이를 제거하려 하고 그렇게 17년 동안 끊어졌던 살인 범죄를 다시 하려고 한다. 겉만 보면 살인마와 살인마의 싸움, 살인마가 살인마를 죽이는 경쟁 구도라고도 볼 수 있는데 왜곡된 기억과 망상, 허상, 상상이 곁들어 지면서 영화는 끊임없는 반전과 진실을 탐구한다. 끝까지 보지 않고서는 실체 자체를 알 수 없다.

영화는 꽤 단순하면서도 복잡하다. 가끔은 무언가 설명이 되지 않거나 어긋나는 장면들, 혹은 앞뒤가 논리적으로 딱 떨어지지 않는 애매한 부분이 있는데 큰 변수가 아니라고 생각해 쉽게 넘기지만 결과적으로 이런 디테일한 것들이 미스난 것 자체가 허상과 망상에 대한 것들이라 영화를 다 보고 나면 다 이해될 수 있는 부분들이다. 영화의 3분의 2는 실제라고 믿는 것들이 전부지만 뒤로 가면 갈수록 모든 걸 믿을 수 없다는 전제가 깔리기 때문에 결국 앞뒤가 약간 맞지 않거나 뒤틀린 모든 것들이 왜 그랬고 가능했는지 설명이 된다. 영화의 초중반 3분의 2가 실제가 아닌 허구가 되는 순간, 그리고 허구라고 느낀 마지막 3분의 1이 정작 실제로 바뀌는 순간 17년동안 멈추었다는 범죄의 행각과 주인공이 쏟아낸 모든 기억과 말은 다 믿을 수 없다는 확신이 들면서 무엇이 실체이고 진실인지 알아챌 수 있게 된다.

치매로 인해 잃어버린 기억을 되살려 곱씹어 본다는 것도 신선하지만 뜻하지 않은 사고로 인해 기억을 아예 잃어버렸던 것들이 오히려 치매를 통해 되살리는 과정에서 드러나는 점은 과히 획기적이라고도 할 수 있다. 결국은 치매가 늑대를 순한 양으로 만든게 아니라 늑대의 부활이 되는 단초가 되는 것이다.

원작은 알쓸신잡으로 더 대중적인 인지도를 얻었던 소설가 김영하의 동명 소설이다.

두 남자에게는 각자 어린 시절의 고통스러운 기억과 그로인한 범죄의 씨앗이 만들어졌다는 공통점이 있지만 어디가 진짜고 무엇이 진실이고 누가 참인지 거짓인지 모른다면 보여지는 그 자체가 모두 사실로 받아들여지게 될 수 밖에 없다. 그러나 참과 거짓이 구분되는 순간에는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알게 되고 그 때부터 진짜 경악스러운 민낯이 드러나게 된다.

영화는 다음영화 기준 일반인 평점 7점대, 전문가 평점 5점대로 크게 반향을 일으킨 수준은 아니다. 마지막 결말에 가서야 반전이라 할 수 있는 뒤엎기 기술이 등장해 나름의 소름 돋는 구도를 만들지만 상당 부분은 처음부터 두 살인마의 대결이 줄다리기 하는 팽팽한 기싸움이 전부라서 자칫 진부하거나 지루하게 느껴질 수 있는 부분도 분명 있다. 처음부터 두 사내가 정체를 드러내고 서로를 잡아 먹으려고 싸움을 하는 형태다 보니 결말이 어떤 식으로 나오든 둘 중에 하나가 이기거나 둘 다 모두 지는 (사라지는) 뻔한 스토리가 될 수 있는데 그런 결말을 염두해 두고 두 사람의 신경전이나 대결만을 다루었다면 영화가 망작이 되어도 되었겠지만 결말은 그것과 전혀 다르게 나가고 나왔기 때문에 결말 하나 만으로도 이 영화는 충분히 값어치를 했다고도 볼 수 있다.


개인적인 점수로는 10점 만점에서 8점, 수우미양가에서 "우" 정도로 보고 있는데 스토리 자체가 범죄물이라고 하지만 화려한 액션이나 빠른 전개 보다는 천천히 훑어가면서 기억을 소생시키고 되살리는 과정에서 하나씩 점검하는 방식이다보니 보는 이에 따라 진부하다고 느낄 순 있겠지만 내용 자체가 그런 흐름이 될 수 밖에 없고 텍스트(원작)와 약간 다르게 변형된 것도 있지만 텍스트(소설)는 문장으로 보고 이해하고 해석하는 시간이 충분한 반면에 빠르게 보여주는 영상에서는 해석하는 시간적 여유나 분석하는 타이밍을 빠르게 가질 수 없다보니 아쉬움이 큰 것은 어쩔 수가 없다, 영화나 스토리의 문제라기 보다는 이런 내용을 영화화 하면 어쩔 수 없는 부작용이라고 보는게 더 현실적인 답이라고 할 것이다.

이런 스토리를 만들어 낸다는 것이 가장 놀랍고 이걸 매끄럽게 이어나가면서 전혀 뒤틀림 없이 깔끔하게 정리했다는 것이 더 놀랍다. 수녀가 된 누나의 정체와 17년 전에 마지막으로 행했던 범죄의 내용, 그리고 딸에 대한 숨겨진 이야기가 드러나면서 결국 살인자는 나이가 들고 치매가 생기면서 나름의 참회를 하려고 했던 것 같은데 의도하지 않은 여러가지 일로 인해 (17년 전의 교통사고와 딸의 남자친구와 생긴 교통사고) 참회하려는 자아와 본능에 따라 움직이는 자아가 충돌, 결국 본능은 본능대로 일어나고 참회는 연속된 상황에서 그 상황에 맞게 이루어지면서 수습하는 모양새라 결국 주인공의 머리속에는 참회된 진실(허구라고 해도)만이 남게 되어 모든게 자기가 원하는 뜻대로 정리될 수 밖에 없다. 마지막 결말이 그걸 확실하게 말해주는데 진짜라고 믿었던 건 허상, 망상이었고 허상, 망상, 상상이라고 여겼던 것이 진짜라는 이야기라서 이런게 바로 보이지 않는 공포의 엄습이 아닌가 싶다. 간만에 소름 끼쳤던 영화

남길과 설현의 데이트 장면 속 환한 미소가 어쩌면 이 영화의 모든 걸 말해주는 제대로 된 진실이 아닐런지

살인자의 기업법이라는 꽤 특이한 제목의 이 영화, 별로 대수롭지 않을 이 제목 자체가 사실 굉장한 스포일러가 될 수도 있다. 이 사람만의 특이한 기억법이 사실 이 모든 걸 만들었다고 봐야 하는데 그가 기억하는 그만의 기억법으로 세상을 본다면 그가 믿고 싶어하고 그가 믿는 것만 존재하기에 그의 기억은 기억도 아니고 추억도 아니고 빛이 바랬지만 여전히 날카로운 그의 망상과 자기만의 살인 공식을 해석하는 진행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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