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뭐래도 난 강추한다, 잔재미가 풍부한 한국형 누아르 - VIP (브이아이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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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예술/영화리뷰

누가 뭐래도 난 강추한다, 잔재미가 풍부한 한국형 누아르 - VIP (브이아이피)

by 깨알석사 2017. 10.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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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다 보고 나면 제목이 왜 VIP인지 충분히 알 수 있는 한국 영화 "브이아이피". 단어 자체가 중요한 사람을 뜻하는 단순한 단어이지만 남한에서는 대통령을 뜻하는 용어로 많이 쓰이고 혹은 북에서 온 고위직 인물을 뜻하는 업계(?) 용어이기도 하다. 영화 제목이기도 한 이번 VIP는 북에서 온 인물을 뜻한다. 

영화는 장동건과 박희순, 김명민, 이종석 등 화려한 주연 퍼레이드를 펼친다, 병맛 시나리오가 아닌 이상 이런 조합이라면 꿀재미는 기본으로 깔고 간다고 넘겨 짚어도 좋을 만하다. 국정원(장동건)과 경찰(김명민), 검찰, 미국 CIA, 북한 보위부(박희순) 등 우리가 인식하는 기침 좀 하는 권력기관들이 총출동 한다.

북에서 온 탈북자가 주요 사건의 용의자가 된다는 출발선상에서 그 인물이 국정원의 보호를 받는 중요 인물이라는 사실이 밝혀지고 결국 국정원과 경찰의 대립이 발생한다, 거기에 북한 고위직 계좌 정보를 입수하기 위해 접촉한 미 중앙정보부 CIA와 북쪽에서도 같은 강력사건 처리를 위해 뒤쫒아 온 북한 보위부가 하나의 중심 인물에 개떼 같이 몰리면서 교통정리가 전혀 안되는 복잡한 상황이 만들어 진다.

브이아이피 영화의 각본을 직접 쓰고 감독까지 맡은 인물은 박훈정으로 혈투, 악마를 보았다, 대호, 부당거래, 신세계라는 걸쭉한 영화를 직접 쓴 인물이다. 이정재와 황정민의 신세계, 그리고 조선의 마지막 호랑이 "대호"는 직접 감독까지 맡아 연출력까지 어느정도 실력을 보여줬다. 전작들의 작품 세계와 시나리오 집필 실력을 보면 실망감 보다는 기대감이 클 수 밖에 없다. 비록 이 영화에서는 잔인한 장면과 주요 피해자가 여자라는 점 때문에 여성계의 반발로 좋은 평가를 받지는 못했지만 극의 흐름이나 전개 자체는 흠 잡을 곳이 없다. 전작의 스타일이 어느정도 그대로 이어질 수 밖에 없기 때문에 신세계, 부당거래, 악마를 보았다를 재밌게 본 사람이라면 큰 실망은 하지 않을 평타 이상의 영화다.

요즘에는 작품 활동이 예전보다는 많이 줄어든 장동건이 극의 전체 흐름을 잡아 이끌어주는 캐릭터를 맡고 있다. 태풍에서 워낙 강렬한 인상을 남겼던 장동건 그의 눈빛 하나 만큼은 예전 그대로의 모습이었다. 국정원 간부 요원으로서 자신들이 관리를 하고 있는 탈북자가 희대의 살인마라는 걸 알지만 조직이 살고 자기가 살려면 그를 어쩔 수 없이 VIP로 보호해야 하다보니 상대적으로 극을 이끌어가는 중심 역할이 된다. 영화의 시작과 끝 역시 장동건의 장면으로 채워진다. 김명민과 이종석의 수사 과정이 영화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지만 그건 장동건이 맡은 국정원 직원의 정신력이 폭발하는 계기의 장치가 될 뿐이다. 원래 영화의 엔딩은 다른 캐릭터의 장면으로 찍었다고 알려져 있는데 난 장동건으로 마무리 짓는게 더 좋았다고 본다.

희대의 연쇄 살인마라는 강력 범죄를 다루다보니 잔인한 장면이 초반에 좀 나오지만 영화 자체가 캐릭터들의 인물 구도 경쟁과 설전이 주된 줄기고 감정 싸움이 가지라서 엄청 난폭하지는 않다. 다만 내 생각도 그랬고 주변에서 이 영화를 봤던 모든 사람들이 가장 먼저 한 이야기가 "욕"이었다는 점은 다시한번 곱씹어 보게 되는데 굳이 그렇게까지 욕설을 난무하게 대사처리를 해야 했는가 하는 아쉬움은 있다. (욕이 하도 많아서 듣기 불편했다는 주위 평이 의외로 많다) 감정기복과 기분을 전달하기 위해 비속어나 욕을 쓰는 건 상관없지만 너무 많이 쓰다보니 거슬리는 점은 분명 있다. 감독의 전작인 신세계는 깡패 이야기니 그렇다쳐도 격이 다른 캐릭터 구성임에도 격 없는 양아치 스타일의 재구성은 맛있는 매운맛을 강조하려다 텁텁한 매운 맛만 증가시킨 꼴이 될 수 있다.

남북한 양쪽에서 동일하게 잔인한 범죄 행위를 저지르는 VIP 이종석, 초반에는 귀공자 스타일의 곱상한 외모라서 너무 언발란스 하지 않는가하는 의구심도 들었지만 극에 집중할수록 그만의 똘기 감성을 충분히 볼 수 있던지라 결과적으로 만족스러웠던 인물이다. 생김새나 외형만 보고 겁을 주는 사람이 있지만 진정한 무서움은 이런 게 아닌가 싶다. 우리나라에서도 고위직에 있는 사람들의 자녀나 재벌 가문의 자녀들이 큰 사회적 문제를 일으키는 경우도 심심치 않게 많은데 범죄를 저질러도 뒷배경 덕분에 아무렇지 않게 떵떵거리고 사는 건 남한이나 북한이나 똑같은 것 같다.

국정원과 경찰의 대립, 장동건과 김명민의 대립이 우선시 되다보니 북한에서 VIP를 잡기 위해 쫒아 온 보위부 박희순의 분량이 적을 수 밖에 없다. 캐릭터의 비중으로 보나 전개상의 중요도로 보나 꿀릴 게 없지만 박희순이 보여주기에는 캐릭터 분량이 너무 적었고 또 제대로 보여줄 만한 게 없어서 아쉬움이 가장 컸던 대목이기도 하다. 가성비로 따진다면 생각보다 충분히 활용하지 못했다고 볼 수 있는데 단편이 아닌 시리즈나 드라마 형식이었다면 남한의 김명민과 같은 캐릭터이고 또 남한에서도 활동을 하는 역할이라 김명민 보다 많거나 거의 비슷한 분량이 될 수 있을텐데 거물급 주인공이 많다보니 어쩔 수 없이 지분 싸움에서 밀린 형국이다. 북한군이지만 일반적인 군인 보다는 경찰 임무를 수행하는 캐릭터인데 (북한은 군인과 경찰이 같다, 사회주의 국가인 중국이나 러시아도 마찬가지지만) 다른 사람의 눈치를 보지 않고 자신이 맡은 임무를 수행하는 강직한 스타일의 인물이지만 이종석이 북이 아닌 남에 있다보니 남한의 장동건, 김명민, 이종석과 동 떨어져 분량 확보가 아쉬울 수 밖에 없는 인물이다. 이종석을 제외한 나머지 세 인물 중에서도 유일하게 죽은 것으로 나오니 혹여라도 후속작이 나오더라도 다시 등장하기란 어려워 보인다 (물론 총 맞고 바다에 던져진 게 전부라 살아 돌아올 수 있는 여건은 충분)

김명민은 폭력경찰로 조직에서 한직으로 밀려나지만 희대의 살인사건 해결을 위해 다시 팀을 맡게 되고 실력 만큼은 베테랑인지라 곧 진범을 찾게 된다. 그러나 찾은 진범이 국정원과 CIA, 북한 보위부가 모두 노리는 인물이라는게 함정 아닌 함정이다.

영화는 사건의 범인이 누구인지 처음부터 알려준다. 애초에 희대의 연쇄 살인마를 추적하고 검거하는 수사극이 아니라 이 범인이 국가적인 VIP 대접을 받으면서 뭘 해도 다 용서가 되고 어디에 잡혀도 다 풀려나는 풀기 어려운 난제 같은 숙제를 던져주는게 진짜 목적이기 때문이다. 범인을 알아도 체포 할 수 없고 또 다른 범죄를 저질러도 막을 수 없다는게 범인의 정체보다 더 무서움이 크다.

영화는 여혐논쟁에 빠지면서 관객몰이에는 실패했다, 100만 관객을 넘기긴 했지만 300만 이상은 넘어야 손익분기점이 된다고 알려져 있기에 사실상 흥행은 실패했다. 주요 피해자가 항상 여자이어야 하고 또 여자만이 피해를 본다는 기본 발상과 잔인한 피해 상황 때문에 개봉하자마자 여혐논쟁에 빠졌는데 사실 이 정도의 극 흐름과 전개만 보고 여혐 논쟁에 빠져야 한다는 건 오지랖의 발동이 아닌가 싶다. 영화는 물론 사회에서도 피해자는 여성이라는 인식이 강한 건 분명하지만 특정 대상을 노리고 만든 것도 아니고 여성을 특정화 한 것도 아니어서 이 영화가 왜 여혐논쟁에 빠져야 했는지 의구심이 강하게 들 수 밖에 없다. (대부분의 영화가 국적을 떠나 범죄 관련 피해자에서 잔인함을 강조할 때는 남자 보다는 여자를 쓸 수 밖에 없다, 참고로 실제 범죄 피해자는 여자가 다수가 아니라 남녀가 비슷하다)

생각보다 저조한 흥행 성적과 여혐논쟁으로 평점에서도 손해가 많이 난 듯한 모양새인데 다음 영화 기준 일반인 6점대, 전문가 5점대로 전체적인 점수가 낮게 나왔다. 김명민과 장동건, 이종석, 박희순을 등장 시키기도 이렇게 낮은 점수가 나왔다는 건 영화가 정말 재미 없거나 문제가 있어야 하는데 영화 외적인 요소로 영화 자체의 평가가 왜곡된 작품이 아닌가 싶다. 나는 10점 만점에 9점, 수우미양가에서 "수" 기대 이상의 작품으로 평가한다.

말끔하게 정장을 차려 입었지만 피가 난자한 장동건, 그리고 그와 나란히 앞쪽에 서서 음흉한 미소를 짓는 이종석, 이종석 뒤로 양쪽에서 무표정으로 바라보는 김명민과 박희순, 단순한 포스터지만 영화 속 이야기를 그대로 투영하고 있다. 내가 10점 만점에서 9점대, 수우미양가에서 "수" 수준의 높은 평가를 한 이유는 시나리오 자체의 완벽함이다. 북에서 생긴 강력 범죄 자체만으로도 골치 아플 이야기가 남쪽에서도 똑같이 생기고 또 범인의 배경이 북한 고위직과 연결 되면서 국정원과 CIA, 인터폴 등이 등장하는 이런 구도는 쉽게 구상하고 그려나갈 수 있는 포지션은 아니다. 미드나 일드처럼 드라마로 만들어 10부작 정도의 미니시리즈로 만들었다면, 아이리스처럼 첩보 수사물 형식으로 조금 더 대작 형태로 만들었다면 더 좋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은 영화를 다 보고나니 밀물처럼 밀려든다. 감독이 영화화 하기 전에 책으로 출판을 먼저 하려고 했다고도 하는데 책으로 나왔으면 더 좋았을 내용이고 아마 짤리거나 편집된 내용 없이 감독이 원래 생각한 시나리오 전체가 들어갔을거라고 예상된다. 배우들의 연기나 스토리 자체도 좋았고 VIP를 색다르게 구성해 접근한 발상도 무척 마음에 들었기에 연출력 보다는 시나리오가 더 마음에 든 영화이기도 하다. 영화는 연기력 검증을 받은 조연 배우들도 많이 등장하는데 이들의 연기를 보는 것도 하나의 재미다.


VIP가 어린 애송이라는게 특이했고 그걸 북한과 남한의 정세와 이어가는 것도 신선했지만 꼬인 실타래를 풀어도 기분 나쁘게 되는 묘한 감정은 숨길 수가 없다, 해피엔딩을 기대했지만 김명민이 혼수상태가 되고 박희순이 반대 세력에 의해 제거되면서 결말에 대한 환상은 산산히 조각났고 VIP는 또 그렇게 미꾸라지처럼 빠져나가고 마는데 사회에서 통용되는 "보호자"라는 의미를 되새겨 보게 된다. 음지의 신세계 새 버전을 보는 착각마저 드는 쓸씁한 뒷맛이 강한 중독성 있는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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