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조카가 묻는다, 모아나 봤냐고, 뭐? 뭐하냐구? 나는 말귀를 못 알아듣고 내가 뭐하는지 봤다는 줄 알았다, 그게 뭐야 했더니 스케치북 하나를 건네주며 손가락으로 톡톡 가리킨다. 스케치북 커버 표지에는 웬 말괄량이 아가씨와 거구의 사나이가 등장하는 캐릭터가 나온다, 거기에는 모아나라는 (Moana) 영어가 적혀 있었다, 무슨 만화 제목이 그따위냐 싶던 찰나에 개봉한 영화냐고 물으니 그렇단다,
순간 머리속에 지나쳐가는 날카로운 통찰력, 스케치북 표지로 등장할 정도라면 꽤 유명한 애니라는 뜻이 될터이다, 조카에게 넌 봤냐고 물으니 엄마, 아빠 말 잘 듣고 숙제 밀리지 않고 잘 하면 보여준다 했는데 엄마, 아빠가 바빠서 초반에는 못 보고 지금은 여름 방학 숙제 제대로 안했다고 해서 못 봤다며 심드렁 했다, 눈치가 나랑 같이 보고 싶어하는 모양새다, (아이들 스케치북에도 등장하는 걸 보니 아마도 학교에서 학용품으로 모아나 캐릭터 상품을 쓸 때 영화를 못 본 조카는 아이들과 어울리는게 쉽지 않았던 모양이다, 영화를 봤어야 같이 이야기를 할테니..)
그래도 대강 어떤 장르이고 어떤 스토리인지 알아보기 위해 검색을 해보니, 모아나의 제작진이 주토피아와 겨울왕국 제작진이라고 나온다 (헉!, 이건 무조건 봐야하는거 아니던가..) 디즈니 만화이고 또 전혀 새로운 캐릭터였기 때문에 나 역시 보지 않을 수가 없는 법, 그렇게 하여 난 조카와 함께 개봉한지 반년이 넘은 애니를 케이블TV로 보게 되었다.
모아나가 초반의 아기 때 모습으로 나오는 장면은 내 시선을 강탈했다. 보스 베이비도 참 재미있게 봤는데 심쿵!
어느 특정한 섬의 원주민들인가 싶었는데 가만보니 하와이에서 쉽게 볼 수 있던 하와이 원주민들 이야기다.
귀여운 돼지와 멍청한 닭, 특히 닭은 모험을 같이 떠나면서 좌충우돌 그 자체다
반신반인 (반은 신이고 반은 사람) 마우이의 등장, 약간 정준하 닮음 ㅋㅋㅋ
우리로 따지면 옛날 옛적에~ 은비까비~ 배추도사 무도사랑 비슷한 컨셉이다(?) 고전으로 내려오는 신비롭고 때로는 무섭고 혹은 이야기에서 빠져 나올 수 없는 전설의 고향 같은 짜임새 있는 전설을 잘 풀어낸 이야기인데 영화의 고퀼리티 영상미에 놀랐고 모아나와 마우이의 생생한 캐릭터 모습에 또 놀랐고 마지막으로 원주민들만의 이야기를, 또는 원주민에게만 통할 법한 이런 이야기를 전 세계 모든 사람에게 흥미와 재미를 엮어 보여준다는게 무척 놀라웠다.
디즈니의 56번째 장편 애니메이션이라고 하는데 내가 본 디즈니 만화 중에서 가장 이야기가 재미 있었고 눈을 뗄 수가 없었다, 겨울왕국과 마찬가지로 간드러지는 두 캐릭터의 노래가 들어가 뮤지컬 애니메이션이라고도 하던데 디즈니 만의 색채를 갖는 것 같아서 좋다, 뮤지컬 그 자체는 좋아해도 뮤지컬 영화, 뮤지컬 만화는 별로 좋아하지 않았는데 유일하게 그 편견을 깨준게 디즈니 만화, 디즈니 뮤지컬 만화다
모아나의 사랑스러운 매력에 흠뻑 취해서 봤다, 저런 맹랑한 아가씨라면 한 번 꼭 꼬셔보고 싶다 ㅡ.ㅡ;;;;
디즈니 하면 공주님과 왕자님이 등장하는 뻔하디 뻔한 캐릭터 조합이 많았는데 (이걸로 은근 디즈니를 까는 경우도 많다) 이번에도 역시 비슷하게 나왔으나 공주는 아니었고 추장의 딸 정도로 확연하게 선을 그었다, 무엇보다 대사 자체가 난 공주가 아니다라고 자주 언급을 하던데 기존 캐릭터가 갖는 디즈니 만화에서의 불필요한 편견과 선입견에 대한 걸 염두한 부분 같다, 또한 영화의 핵심이자 주인공들은 모두 원주민으로 폴리네시아인으로 분류되는 사람들이다, 보통 백인, 흑인, 황인의 구분에서 황인에 들어가기는 하지만 이들은 따로 구분해야 한다는 이야기가 있을 정도로 조금은 특별한 구석이 많다,
디즈니가 미국에 있고 또 미국을 대표하는 애니메이션 회사이고 주인공들 역시 미국땅인 하와이 원주민들과 (이들 역시 폴리네시아인) 큰 연관이 있어 미국의 또 다른 미국 이야기라고도 할 수 있으나 폴리네이사인 자체가 아시아와 연관이 깊은데다가 동남아 지역을 비롯 일본(약간 다르지만), 오세아니아, 남미에 이르기까지 같은 뿌리를 지니고 있는 만큼 특정 집단이나 특정 지역의 단순한 전설이나 이야기로 단정 짓기는 어렵다. 바다가 있고 바다를 접하고 있는 모든 지역이라면 공감대가 되는 부분이 큰데 폴리네시아인 대부분이 바다와 어울려 살고 또 항해기술 처럼 바다쪽에 특화된 민족이라 이야기거리가 많을 수 밖에 없다, (어디를 가나 산에 얽힌 이야기보다 바다와 연관된 이야기나 전설이 더 많다)
황인에도 들지만 까무잡잡한 피부색 때문에 흑인과도 많이 비교를 하게 되는데 반신반인으로 등장하는 마우이처럼 실제로 폴리네시아인은 근육질 몸매가 두드러지는 편이지만 흑인하고는 또 다른게 덩치가 커질 뿐 근육맨이 쉽게 되지는 않는다, 힘이 쎄고 근육이 많다는 건 비슷해도 근육질이 도드라지게 나타나는 흑인과 달리 폴리네시아인은 대체로 마우이처럼 살집이 더 커진다고도 하는데 실제로 이런 원주민들을 보면 그런 모습은 쉽게 찾아 볼 수 있다.
전혀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두 캐릭터의 환상 조합, 러브 스토리가 없어도 남녀 케미가 이렇게 좋을 수 있다는 걸 제대로 보여준다, 어린 모아나가 자기네 조상들의 이야기에 관심과 호기심을 갖고 어느새 잃어버린 자기네 고유한 문화와 정체성을 찾아간다는 점도 매력적인 스토리였고 가끔은 엉뚱하고 괴팍하지만 나름 추장의 딸로 사람들을 이끌어 나가야 한다는 책임감과 여성으로서의 어려움을 잘 극복해 나가며 어려운 모험 속에서 결국 뜻한 바를 이루는 과정은 날 매혹시키기에 충분했다.
나 역시 귀엽다고 생각했지만 징글징글하게 무서울 것 같다고 느낀 건 해적들이다. 생김새랑 달리 잔인함 ㅋㅋ
다음영화 기준 일반인 8점대, 전문가 7점대로 역시나 높은 평가를 받았다 (겨울왕국 역시 같은 점수대다) 나는 수우미양가에서 "수" 에누리 없이 10점 만점에 10점, 어디하나 아쉬운 것 없고 어디하나 부족함 없이 전혀 예상하지 못한 스토리와 폴리네시아인들의 특별한 전설 여행, 그리고 점점 더 화려하고 사실감 있게 발전하는 영상미를 보면서 가상 현실이 이젠 정말 무의미해지는 것 같다라는 생각마저 든다.
조카의 스케치북 표지를 보고 알게 된 캐릭터지만 너무 사랑스러웠고 조카와 단 둘이 앉아서 본 모아나는 역대 최고의 만화로 기억될 만큼 아주 좋았던 영화였다. 실사가 가능할지 모르겠으나 기술력과 쌍둥이처럼 닮은 실존 배우만 찾는다면 실사 영화로 다시 나와도 좋을 것 같다. 아이들이 좋아할 만 했고 어른이들이 봐도 좋아할 만한 전 연령대가 즐겁게 볼 수 있는 그야말로 판타스틱한 디즈니 만화 그 자체, 다시 봐도 또 재밌게 볼 애니를 꼽으라면 역시 "모아나"
모아나의 주제곡 "언젠가 떠날거야"는 가수 소향이 불렀다, (1978년생) 가수 소향은 나가수, 불후의 명곡, 복면가왕 등을 통해서도 아는 분이 꽤 많을텐데 CCM (종교음악) 전문 가수에서 뒤늦게 대중에게 알려지면서 절대고음의 강자, 한국의 머라이어 캐리라는 단서를 달고 활동하는 가수다.
가장 아쉬운 건 한국어 더빙판의 모아나 목소리 역이다. 목소리가 아쉽다는게 아니라 난 굉장히 좋은 음성으로 들었고 또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는데 모아나 한국어 성우에 관한 정보가 거의 없다, 심지어 소향이 모아나 성우라고 하는 경우도 있고 또 방송 자료에서도 소향 본인이 모아나 역할을 맡은 소향 입니다라고 말을 하기도 하는데 모아나의 노래 부분만 소향이 맡았고 일반 대사는 김수연이라는 신인 뮤지컬 배우 (혹은 신인 성우) 라는 간단 정보만 나올 뿐 그 이상은 정보는 없다, 사진도 몇 개 나오기는 하지만 그가 동명이인인지 모아나의 성우 목소리 주인공인지 역시 나오지 않기 때문에 확증은 없다
시사회 관련 기자회견에서도 마우이의 목소리 이장원씨와 모아나의 노래를 부른 소향이 주인공으로 참석을 했는데 정작 디즈니에서도 모아나 한국어 목소리 주인공은 배제하고 있는 듯 하다 (아님 본인이 거부했던지) 목소리가 별로였다, 대사가 발번역이다 등 다른 이야기도 있고 모아나와 잘 어울리지 않았다라는 의견도 일부 보이기는 하나 정말로 그런 이유 때문에 나중에 개봉 되고 나서 주연 캐릭터의 목소리 주인공이 배제되었는지 알 길은 없지만 이 정도 파급력의 이 정도 성공작의 목소리 주인공 정보가 이렇게 없어서야 싶나 하는 아쉬움이 크다,
원어로 된 모아나 목소리역은 14세 (2000년생) 하와이 원주민인 아우이 크라발로, 모아나와 함께 등장하는 반신반인 마우이 이름과 꽤 비슷하다 (아우이) 무엇보다 놀라운 건 목소리만 나오지만 실제 모습이 애니 속 모아나랑 상당히 비슷하다, 역시 캐릭터 주인공과 마찬가지로 폴리네시아인으로서 같은 또래이고 같은 여성이라 더 비슷할지도
아직도 안 봤다면 꼭 보시라, 아이들과 함께 보면 더욱 좋다, 이게 애니인지 실사인지 영상 제작 기술이 후덜덜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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