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것이 알고싶다 - 위험한 사랑, 소녀를 사랑한 남자 (로미오와 줄리엣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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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성교육

그것이 알고싶다 - 위험한 사랑, 소녀를 사랑한 남자 (로미오와 줄리엣법)

by 깨알석사 2015. 1.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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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11월 신문기사

 

15세 여중생과 수개월 동안 성폭행하고 임신까지 시킨 40대 남자가 대법원에서 무죄 판결을 받았다. 대법원은 두 사람의 관계가 ‘사랑’이었다고 판단했다. 연예기획사를 운영하는 조모(45) 씨는 지난 2011년 8월 아들이 입원해 있는 서울 강서구의 한 병원에서 A(당시15세) 양을 만났다. 조 씨는 A양에게 ‘연예인을 시켜주겠다’며 접근해 전화번호를 알아냈다. 조 씨는 A 양을 자신의 차량으로 데려가 처음 성관계를 맺고 이듬해 5월까지 상습적으로 성폭행했다. 결국 A양은 임신까지 하게 됐다. 조씨는 A 양을 집에서 가출하도록 종용해 자신의 집에서 한달 가량 동거하면서 계속 성관계를 가졌다. 조 씨는 A 양이 성폭행을 당했다고 경찰에 신고해 재판에 넘겨졌다.

 

 

조 씨는 “나이 차는 많지만 순수한 사랑이었다”고 주장했으나 1ㆍ2심 재판부는 조 씨에게 징역 12년과 9년을 각각 선고했다.

그러나 대법원의 판단은 달랐다. 대법원 3부(주심 김신)은 24일 아동ㆍ청소년성보호법상 강간 등 혐의로 기소된 조씨에 대한 상고심에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서울고등법원으로 돌려보냈다. 대법원은 A 양의 진술을 믿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조 씨가 다른 사건으로 수감돼 있는 동안 A 양이 거의 매일 조 씨를 면회한 점, A 양이 카카오톡으로 ‘사랑한다’, ‘보고싶다’는 내용의 문자메시지를 많게는 하루에 수백건 씩 보낸 점 등이 무죄 판단의 주요 근거가 됐다.

 

 

재판부는 “피고인은 공소사실 전부를 부인하고 있고, 직접증거로는 피해자의 진술이 유일하다”며 “공소사실에 대해 합리적 의심이 사라지도록 증명할 증거가 없다”고 판시했다. 재판부는 또 “임신중절 비용이 걱정돼 피고인을 계속 만날 수 밖에 없었다는 피해자의 진술도 납득하기 어렵다”고 덧붙였다.

 

위 신문기사가 이번 그것이 알고싶다 - 위험한 사랑, 소녀를 사랑한 남자편의 실제 이야기다. 이 방송은 사실 기존에 그것이 알고싶다에서 보여준 보도탐구, 수사관 뺨치는 날카로운 잡입 폭로, 사회적 파장을 불러 일으킬만한 숨겨진 이야기를 다루는것과 다른 개념으로 이미 공개된 하나의 사건을 가지고 다룬 이야기다. 보는 이에 따라 관점이 다르겠지만 성폭행과 관련한 사건 자체가 유명인이 아닌 이상 화자되는 것 자체가 드문 세상이 오늘날이다. 이 소재가 화제가 된 것은 대법원의 무죄 선고다. 여중생이 성폭행을 당했고 심지어 임신을 했다. 그리고 직접 고소를 했는데 남자는 사랑하는 사이라고 주장한다. 그리고 대법원에서의 판결은 무죄!. 아마도 10여개 넘는 사회단체에서 법원에 이의제기를 한 것으로 알고 있다.

 

 

이 소재를 특별히 다루는 건 내가 본 시점과 다른 사람들의 시점에 차이가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이것은 어느 한면에서만 봐서도 안되고 누구의 편도 들어줄 수 없는 굉장히 복잡한 요소가 포함된 내용이다. 그것이 알고싶다 방송에서 개인적 기준으로는 베스트 10 으로 뽑고 싶을 정도로 소장가치가 있는 방송이다. 

 

 

 

 

어린 학생들과 성관계를 맺는 교사, 직접 가르치고 담당하는 제자와 잠자리를 하는 교사들의 뉴스가 종종 나온다. 외국에서는 그 빈도수가 많지만 우리와는 거리감이 먼 남의 이야기로만 치부한 것이 사실, 하지만 우리 사회에서도 이런 뉴스는 가뭄에 콩 나오듯 종종 터진다. 초등학교에서 담임 선생님과 초등학생이 관계를 맺었다는 뉴스도 있을 정도이니 세상 참 많이 변했다. 일부는 처벌을 받았지만 다수는 처벌을 받지 않았다. 사랑하는 사이, 좋아서 관계를 맺었다고 하면 처벌할 수 없다는 맹점이 있기 때문이다. 위 이미지에도 살짝 흐릿하게 나온 "자기결정권" 대법원에서는 이 자기결정권을 존중해야 한다는 것이 원론이기 때문에 그에 반하는 처벌은 할 수 없다. 자기결정권이라는 말은 해석 그대로 상대가 누구든, 서로 원해서 관계를 갖는다면 그 결정을 존중해야 한다는 뜻이다.

 

 

 

 

여선생과 중학생 남자아이가 관계를 가졌다가 적발되어 학생의 부모가 고소하였지만 무죄!, 남교사와 여학생이 관계를 가졌지만 역시 무죄! 이번 그것이 알고싶다 소재처럼 15세 여중생이 30살이나 더 많은 남자와 잠자리를 가진 상황에서 성폭행으로 고소까지 했음에도 대법원은 무죄 판결을 내렸다. 단면만 보면 무죄를 때린 판사들이 한참 잘못해도 크게 잘못한 것 같지만 그 이면에는 우리가 알아두어야 할 몇가지가 더 있다는 걸 말하기 위해 쓰게 되었다.

 

 

소년 또는 소녀와 성년의 성관계는 3가지 관점에서 볼 수 있다. 인간적인 부분으로는 사랑이라는 관점, 아동복지적 시각으로 보는 성폭행이라는 관점, 그리고 기계적이고 단순한 법리적 판단으로 보는 윤리적, 도덕적 관점이다. 어디에 포커스를 맞추느냐에 따라 죄가 있고 없고 죄가 성립이 되고 안되고가 갈린다. 물론 모든 상황이 다르고 대상자가 전부 다르기 때문에 모든 경우의 수가 동일할 수 없다. 이 말은 누구는 정말 유죄가 맞지만 누구는 유죄가 아닐수도 있다는 것이다. 미리 설명하지만 이번 그것이 알고싶다편에서의 성폭행은 대법원이 무죄를 선고했지만 이 경우는 남자가 성폭행범으로 규정되는게 맞다.

 

 

우리나라는 행복추구권과 자기결정권을 법적으로 보호하기 때문에 일정 나이가 되면 그 법의 보호를 받아 자유를 누릴 수 있는 권리가 생긴다. 그것이 우리네 기준으로는 미성년자라고 해도 미성년자와 성년, 청소년과 소년, 소녀, 청년, 노년, 초년의 기준이 다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기준을 정확히 인지하지 못하는데 이번 기회에 알아두었으면 좋겠다. 아동복지, 청소년복지, 또는 관련 법령은 절대적 기준이 아니다. 단지 사회 시스템에 맞춘 사회적 약속, 규약일 뿐이다. 우리가 말하는 근본적인 연령 기준(조상님들이 애초에 이렇게 부른 이유)은 태아 (0세), 영아 (1~3세), 유아 (4~7세), 소년 (8세~16세), 청년 (17세~22세)다. 여기서 성년은 미성년자 (19세)와 성년 (20세) 으로 나누기도 하지만 실제 우리가 성년이라는 말 자체를 쓰는 이유는 신체가 완숙한 "성인"을 지칭하는 용어가 아닌 "기혼자"를 뜻하는 것으로 원래 의미의 성년은 결혼을 해야만 얻을 수 있는 신분이다. 나이가 30대여도 미혼자라면 성년이 아닌 것이다. 원래 우리나라는 결혼을 한 사람만이 "어른"이 될 수 있다. 그래서 남자도 연령을 기준으로 댕기머리를 하느냐 상투를 트느냐가 아니라 결혼유무로 머리모양이 바뀐다. 유아에서 소년으로 넘어가면 이 두 대상을 묶어 유소년이라고 표현한다 (유소년 축구단처럼), 소년과 청년이 나이대를 합쳐 부르면 청소년이 된다. 그러나 언제부터인가 복지학이 자리잡으면서 소년과 청년 사이에 청소년이라는 별도의 집단으로 규정되기 시작했다. 유아가 있고 소년이 있으면 그 두 부류를 합쳐 유소년, 소년과 청년을 합쳐 청소년이 되는데 소년은 유아의 나이로 후퇴하고 청년은 성인 어른으로 규정되기 시작하면서 13~19세는 청소년이라는 이상한 법칙이 생겼다. 소년과 청년을 합쳐 청소년이 되려면 청소년은 8세부터 22세까지가 정답이다.

 

 

한자로 된 이 연령표기 자체가 연령이 아니라 생애주기에 맞춰 만들어진 연령(X), 연령대(0) 인데도 이것을 연령대가 아닌 연령으로 규정하면서 청소년=미성년자=소년=연소자 식으로 묶여버렸다. 이 상황에서 아동복지(사회복지)와 법률적 해석(형법, 청소년 관련법)이 서로 다르게 얽히고 섥히면서 어떤 범죄는 처벌이 안되고 어떤 범죄는 처벌이 되고 성생활은 합법인데 술과 담배는 불법인 꼬인 세상이 되게 된 것이다. 여자에게 청년이라고 부르면 난리가 나는데, 청년은 남자가 아닌 젊은 사람이라는 뜻이고 소년은 남자아이가 아니라 어린 아이라는 뜻으로 남녀가 속한 "나이대" "연령대"를 부르는 말이다. 그래서 또 한번 꼬이면서 웃기게 된게 (청년/소년)은 남자로 인식하면서 청소년은 남자, 여자를 모두 지칭한다. 이건 또 정석대로 쓴다. ㅡ.,ㅡ'' 청소년 여자, 청소년 남자 (모두 올바른 표현), 남자는 물론 여자에게 중년이라고 쓰는 것과 같다. (중년 부인, 중년의 아줌마 = 중년대의 여자)

 

 

우리나라는 13세가 넘으면 상대가 누구이든 상관없이 서로 원해서 잠자리를 할 경우 법적으로 처벌하지 않는다. 중학교 1학년생이 또래와 관계를 가지든 성인과 관계를 가지든 상관이 없다는 것이다. 원조교제가 처벌 받는건 "원조"라는 성의 매매 댓가가 물품거래와 같이 상거래 형태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처벌이 되는 것이지 순수하게 사랑하는 감정이라면 처벌하지 못한다. 외국의 경우에는 우리나라와 달리 보통 16세 이상부터 자기결정권을 보호해 준다. 성이 개방된 서양권보다 폐쇄적인 우리나라는 유독 성에 관해서는 외국보다 더 빠른 시기에 자기결정권을 보장해 주는 것으로 담배, 주류, 도박, 복권 등에서 미성년자는 결정권이 없고 구매나 취급 자체가 불법이지만 성관계 만큼은 13세가 넘으면 합법으로 인정해주는 다소 모순된 점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소녀가 아저씨를 만났고 아저씨의 강압에 의해 성폭행을 당했다. 이후 임신이 되어 출산까지 했으나 그제서야 정신을 차리고 뒤늦게 성폭행 신고를 했다. 이것이 소녀의 주장!. 아저씨는 소녀를 만나 서로 사랑하는 감정이 생겼고 나중에 잠자리를 합의하에 했으며 단순한 성폭행이라면 초기에 신고를 하거나 피해자로서 어떤 대응을 했어야 하는데 관계를 갖고 난 뒤에도 계속 만남을 가졌고 함께 집에서 동거 생활을 했으며 심지어 교도소에 있는 순간에도 빠짐없이 면회를 찾아오고 사랑한다는 편지를 남겼다. 어떻게 성폭행인가? 라는 것이 아저씨의 주장이다. 1심과 2심은 과정보다는 이 두 대상(15세 여중생과 45세 남자)에 포커스를 맞추어 1심, 2심 모두 유죄판결을 내린 것이고 대법원은 두 사람의 관계(연령무관)와 그 과정(연애로 볼 것이냐 피의자의 강압에 의한 불가피한 행동으로 볼 것이냐)에 포커스를 두어 지금까지 있었던 펙트!. 이 부분만을 법리적 해석한 것이 대법원의 무죄 판결이다. 추상적인 개념, 도덕적이고 윤리적인 개념보다는 법이라는 것 자체가 실체가 있는 사실과 객관적인 증거자료가 더 중시되는 사회이기 때문에 이 두 사람의 과정에서 엿볼 수 있는 행위나 행태는 성폭행을 논할 피해자와 피의자의 신분보다는 연인에 가깝다고 보는게 대법원이 하고자 하는 말일 것이다. 이 법이 양면성이 있어서 기계적인 판단이 중요할 때가 있고 기계적인 판단은 보조이고 판사의 윤리적 판단이 중심이 되는 경우가 중요할 때가 있는데 이 사안은 기계적인 판단이 앞선 경우다. 법전이 없는 상황에서 "어르신" 기준으로 풀이를 하면 답이 쉽게 나오는데 법전을 앞에두고 이것이 옳다 아니다를 판단한다면 논란이 많을 수 밖에 없다. 특히 법을 잘 안다는 법조계 사람들이라면 반박, 재반박, 재재반박 등 자신만의 논리로 뭐든지 바꿀 수 있는 요소가 많은 사례가 이번 경우다.

 

 

실제로 그래서 이 판결에 법조계 사람들 내부에서도 의견 갈림이 많다. 이것을 법전을 앞에 두고 말하기 때문이다. 법이 아니라 남녀, 인류학, 인간의 본질에 중점을 두고 보면 답은 간단하면서 정해져 있다. 그래서 법 테두리 안에서만 생각하는 것과 법 밖에서 생각하는 것은 차이가 크다.

 

 

다른 판결에서는 사랑하는 사이라고 주장해도 그 "연령"에만 포커스를 두어 유죄로 판결한 경우도 있었다. (아래 이미지 참고) 앞서 깨알이 태아, 영아, 유아, 소년, 청년, 성년의 과정을 말했듯이 남녀가 사랑을 전제로 잠자리를 하는데 한쪽이 미성년자에 해당하는 경우라면, 또는 양쪽 모두가 미성년자인 경우라면 "연령"이 기준이 되야 하는것이 맞다. (물론 한쪽이든 양쪽이든 강압적인 관계는 모두 처벌 대상감이다. 사랑이라는 전제가 아닌 것은 미성년자끼리라도 모두 범죄다)

 

 

외국에는 일명 로미오와 줄리엣 법이라는 것이 있어서 청소년들의 합의 성관계는 범죄로 보지 않지만 연령 차이가 벌어지는 경우라면 무조건 범죄로 본다는 것이 로미오와 줄리엣 법의 핵심이다. 로미오와 줄리엣이 아름다운 연인들의 이야기이고 운명적인 사랑 이야기로만 생각하지만 이들의 연령은 로미오와 줄리엣 모두 10대 청소년이다. 그래서 로미오와 줄리엣 법이다. 유아는 유아 또래에서 좋아하는 감정을 느끼고 소년은 소년 또래에서 (소년은 남자를 말하는게 아니다. 소년은 작은 나이, 연생이 어리다라는 뜻으로 남녀공용어다, 청년도 마찬가지 원래 남녀공용어이다.) 청년은 청년 또래에서 사랑의 감정을 느끼기 마련이다. 노년에 황혼재혼을 하는 이유도 노년이 되면 노년의 이성이 눈에 보이지 연령이 벌어지면 이성적 감정이 생기기 어렵다. 연령이 벌어질수록 이성의 관점에서 멀어지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잠자리를 갖는다면 굳이 해석할 필요없이 대부분의 경우 (일부는 아니겠지만) 그건 "욕정" 때문이다. 사랑이 아닌 욕정, 욕구만이 있기 때문에 사랑을 전제로 하지 않는 범죄 행위가 성립되는 것이다.

 

 

그것이 알고싶다편에서는 처음에 소녀의 입장에서 이야기를 풀었다. 그리고 중반부터는 남자의 입장에서 이야기를 풀었다. 초반의 소녀 이야기에서는 우리가 일상적으로 받아들일만한 당연한 이야기, 성폭행을 근거로 하는 소녀의 주장과 그것의 당위성, 진실성을 보여줌으로서 이 소녀가 얼마나 억울한 일을 당하고 있는지를 여실히 보여주었고 남자는 아주 못된 놈으로 그려진다. 중반에 남자의 입장에서 이야기가 풀어지자 이번에는 남자가 제시하는 객관적인 자료나 증거들 (법원에서 무죄 판결이 나오게 된 결정적인 사안들이기도 하다) 이 나옴으로서 앞서 초반에 나온 이 소녀가 정말 그 소녀가 맞는 것인지, 이 남자가 '누명'을 쓰고 있는건 아닌지에 대한 생각을 갖게 한다. 아무런 이해 정보없이 이 단면적인 사실만 나열한 체 보면 초반만 보면 명백한 성폭행에 남자는 아주 못된 쓰레기이고 중반부터 보면 이 남자는 억울한 누명을 쓰고 소녀와 그 부모가 노린 속임수에 빠진것으로 볼 수 있다. 두 사람의 관점에서 각각 제시한 이 방송은 그래서 베스트다. 제3자의 시각에서 처음부터 다루지 않고 피해자라고 할 수 있는 소녀를 우선으로 풀어쓰고 나중에 피의자라고 할 수 있는 사람 입장에서는 그 사람이 피해자라는 입장으로 소녀가 피의자가 될 수 있다라는 시각을 객관적으로 양쪽 모두 제시함으로 판별하기 좋게 보여주었다.

 

 

여기서 그것이 알고싶다의 힘이 발휘하는 건 이 부분이다. 일반적으로 피해자와 피의자로 구분지어 이미 기정사실화 한체로 양분하여 보여주는게 대부분이지만 이쪽이 피해자이고 저쪽이 피의자라면, 반대로 이쪽이 피의자이고 저쪽이 피해자일수 있다라는 것도 보여줌으로서 마치 한편의 심리 영화를 보여주듯이 정신을 쏙 빼놓는다. 바로 대법원의 판결이 나오게 된 이유, 결국 법원은 저쪽(남자)이라고 하는 사람이 오히려 피해자 (성폭행범이라고 고발 당한 것) 일수도 있고, 법에서 원하는 확실한 증거, 성폭행범이라는 증거가 부족하기 때문에 설령 그것이 문제가 있어 보인다고 해도 무죄의 취지로 판결을 한 것이다라는걸 설명해 주는 것이다. 성폭행의 관계로 볼 증거보다는 연인사이로 볼 소지가 더 많다는 것 

 

 

하지만 여기서 근본적인 문제로 들어가 이것이 정말로 이대로 끝나야 하는 것인지에 대한 의구심이 남게 되는데 법리적 해석과 윤리적 해석, 연인사이에서의 일반적인 사례로 볼 수 있느냐의 논란을 학구적으로 풀어줌으로 그 답을 나름대로 제시해 주게 된다. 같은 방송을 보더라도 모든 사람들이 똑같은 생각을 하지 않는다,  법조계 사람들조차 대법원의 판결에 의문점을 갖듯이 법리적 해석으로만 본다면 남자가 무죄가 될 소지가 많지만 윤리적 해석으로 본다면 유죄이고 연인사이라는 인류학적 해석으로 본다면 이 사람은 유죄다. 여기서 자신이 이 3가지 관점에서 어느쪽에 서서 보느냐에 따라 답은 달라진다. 나는 법리적, 윤리적이 아닌 인류학적 해석으로 본다. 당연히 그래서 유죄다. 참고로 방송에 나오는 사람들은 법리적 해석(변호사 등의 법조인)과 윤리적 해석(성상담사와 관련 학문 학자)만 나온다. 내가 말한 인류학적 해석은 어린 여자와 성인 남자의 경우의 수만 해당하며 어린 남자와 성인 여자는 제외되는 것으로 이 방송에 나온 어린 여자와 성인 남자의 관계는 강압이든, 본인들 합의에 의한 자유와 상관없이 "죄"를 묻는다면 "죄"가 있다고 본다는 것으로 어린 남자와 성인 여자는 제외라고 말했듯이 반대의 경우라면 오히려 합의에 의한 경우라면 "죄"가 없다고 본다.

 

 

남자는 15세가 넘어가면 성인 남자와 차이가 없다. 생식기는 물론 생식능력 자체도 동일할 뿐더러 더 우세한 인자를 가진 상태다. 남자의 경우 연령을 따질 필요가 없다. 반대로 여자는 복잡하다. 여자는 몸 자체가 복잡하고 단순하지 않다. 발달과정도 그렇지만 발달이 된 완숙된 몸 상태에서도 분화와 발전이 뒤따르는게 여자 몸이다. 남자는 무슨 짓을 해도 상관이 없다라는 뜻이 아니라 남자의 몸은 무슨 짓을 하더라도 변함이 없지만 여자의 몸은 연령과 상관없이 단순하게 볼 수 없다는 것으로 성인 여자라고 해도 죄가 있냐 없냐를 따져야 할 판에 여자의 연령이 15세라면 그것은 진실된 사랑 따위는 접어두고 "문제"로 보아야 하는게 인류학적 관점이다. 신체, 성장발달 과정과 자동차 연식같은 연령이 아닌 몸의 상태를 기준으로 한다는 것이다. 1심과 2심이 유죄를 판결했다고 하지만 그것은 도덕적 윤리적 학자 관점에서 보았을 것이다. 대법원은 법리적 관점에서 본 것이다. 윤리적으로 보면 당연히 유죄다. 다만 이들도 인류학적 유죄는 아니라는게 글을 논지다. 민사나 행정소송이 아닌 형사소송에서 어린 여자의 "성"과 관련한 부분에서는 그 상황에 따라 조금씩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무죄 취지의 판결은 내려서는 안된다. 로미오와 줄리엣 법처럼 연령이 벌어진 상태에서 대부분 여자가 나이가 어린 경우가 대부분인데 이것은 아무리 "사랑"이 전제가 된다해도 그건 사랑보다는 욕정으로 볼 수밖에 없다. 사랑이 꼭 성관계를 전제로 해야 할수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아동 성학대 순응 신드롬 또는 순응 신드롬이라는 것이 있다. 미국의 올랜트 서미트가 연구한 결과로 성적학대를 받은 아이들의 심리상태를 연구하다가 동일한 패턴이 있음을 발견, 성학대를 받은 경우에는 이런 패턴이 대부분 등장한다는 내용이다. 이런 학대를 받은 아이들이 겪는 동일한 패턴의 5단계 심리변화를 말하는데

 

 

첫번째가 비밀유지 - 아무한테 말하지 않는다 (강압에 의한 협박, 공포, 죄책감, 자신감 상실, 무서움으로 인한 자의적 타의적 비밀유지)

두번째가 무기력 - 그 상태에서 벗어날 수 없어서 무력화 되고 벗어나려 하지만 쉽게 벗어나지 못해 자포자기한다.

세번째가 완전한 순응 - 벗어날 수 없다라는 확신이 들면 고분고분 상대방의 반응에 순응하고 복종한다.

네번째가 폭로 - 우연한 기회에 비밀유지가 깨지고 상대방에게 처벌을 가할 수 있는 상황이 되면 그동안의 과정과 사건을 모두 폭로한다.

 

 

그것이 알고싶다에 나온 소녀를 보자 이 순응 신드롬을 대입해 보면 이 소녀는 초기에 성폭행 신고를 하지 않고 발설하지 않는다. 임신을 하고 출산을 하고 나서야 성폭행을 당했다고 말한다. 비밀유지 1단계가 이루어졌다는 뜻이다. 두번째 무기력, 이 소녀는 남자가 하라는데로 하고 시키는데로만 했다.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이루어졌고 자신이 의지를 제대로 표현할 수 없었다. 2단계 역시 이루어졌다. 세번째 완전한 순응. 이 역시 소녀는 남자의 집에 함께 동거하며 그 남자의 자녀와 함께 주거를 했다. 남자의 자녀는 불과 이 소녀보다 두 살 어리다. 완전한 순응까지 이루어진 단계다. 네번째 폭로. 결국 부모님이 사실을 인지하고 경찰에 신고, 경찰의 수사가 본격적으로 이루어지자 남자는 구속당한다. (방송에도 나오지만 이미 다른 범죄로 구속중이었다) 네번째 폭로는 완전한 순응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에 반드시 "우연한 기회"에 발생하게 되는데 이 소녀 역시 자의적으로 폭로한 것이 아니라 부모님과 경찰(형사)의 개입이 본격적으로 이루어지면서 자신을 믿어줄 우군이 생겼다고 생각한 순간 폭로 단계로 접어든 것이다.

 

 

결국 이 소녀는 순응 신드롬에서 말한 동일한 패턴이 실제로 이 소녀에게서도 나타났다. 예외없이 똑같이 말이다. 순응 신드롬은 성학대(성폭행) 아동에게서 보여지는 것으로 이 패턴 자체가 성폭행을 증명하는 주관적인 증거가 된다. (객관적인 증거는 될 수 없어서 법적인 증거로서는 부족하다) 하지만 아쉬운 점이 있다면 이 패턴(순응 신드롬)은 사건이 발생하고 난 뒤부터 생기는 것으로 그 이전에 어떤 사람이든지 자신들의 주관적인 사고방식과 판단으로 이런 사건사고를 미연에 방지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저 남자에게 10명의 15세 소녀가 있었다고 가정한다면 이런 똑같은 일이 발생할 확률이 몇명이나 될까. 그 10명의 여중생들 사고방식과 정신연령에 따라 다르겠지만 10명 모두 이런일이 없을 수도 있고 10명 모두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굳이 앞뒤 손바닥을 뒤집어 본다면 5 대 5 는 절대 아니다. 1~2명은 나올 수 있어도 과반수 이상은 이 일에서 본인 스스로 미연에 방지했을 수 있다는게 지론이고 내가 생각하는 지금의 여중생들 정신연령 수준이다. 방송에도 나오지만 이 소녀는 키스만 해도 아이가 생기는 줄 알았다라고 법관 앞에서 표현했다. 법원은 중학생 수준으로서 보기 어려운 판단력이라고 판단했다.(그래서 소녀의 증언은 신뢰성을 잃는다) 이것과 같다. "일반적인 사례"에서는 사실 의외로 이런 일이 이처럼 쉽게 생기기 어렵다. 물론 범죄라는 것이 예고를 하고 쉽고 어렵고가 어디있느냐고 하겠지만 그래도 최소한의 기준은 있기 마련이다.

 

 

이 프로를 보면서 느낀 건 대법원의 판결과 메인 방송사의 주요 시사고발에서 다루는 것이 일반적인 우리들의 당연한 이야기라고 보여질 수 있다는 것이다. 때로는 멍청한 사람이 멍청한 사람들과 멍청한 일을 멍청하게 벌였을 수도 있다. 그것을 보편적인 것으로 보여주면 그렇게 볼 소지는 많다. 이 방송을 토대로 여기에 등장하는 남자는 쓰레기가 맞다. 성폭행범이 아니라 정신개조 자체가 필요한 "비정상인"이다. 성폭행범이라고 규정한다면 그건 빙산의 일각이고 이 사람은 사회와 단절해야 하는 부류에 가깝다. 이런 사람이 아무리 잘난체를 하고 계획적으로 접근을 한다고 해도 정상적인 경우라면 빠지기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사람에게 빠진다는 건 본인들의 과실도 분명히 있어 보인다. 물론 예외는 있다. 미성년자가 괜히 미성년자로 규정하는게 아니듯, 아무리 정신이 멀쩡하고 성숙된 뇌를 가지고 있어도 미성년자의 한계는 존재한다. 본인들이 생각한 참이 거짓이 될 수 있고 거짓이 참이 될 수 있는게 미성년자의 시기다. 마음만 먹으면 비정상적인 일도 정상적으로 만들 수 있고 정상적인 일로 보이게 할 수도 있다. 그래서 모든 청소년들은 사춘기라는 이름하에 멀쩡한 부모와 싸우고 집을 나가고 하지 말라는 짓만 골라서 하고 문 잠그고 사색하면서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려고 한다. 뇌가 아직 다 자라지 않고 자라는 중에서 발생하는 성장통이기 때문이다. 그런 관점에서 소녀는 15세 나이의 미성숙한 상태에서 정신적, 육체적으로 고통을 당한 피해자다. 일반 여자라면 이 일이 발생할 확률이 더 적었겠지만 미성년자였기에 확률적으로 발생 가능성이 높았고 그 이전에 이런 과정과 남자에 대한 학문적 지식이 없었기 때문에 가정교육과 성교육이 밑받침이 되지 못한 사례라고도 봐야 한다.

 

 

이 방송을 보고 굉장히 아쉬웠다. 소녀의 주변 환경에 1차적인 문제(가정교육/가정환경/성교육)가 있었고 2차적으로 1차적인 문제와 부수적인 문제(순응 신드롬과 같은 피해 아동의 동일한 패턴)를 인지하지 못한 법관들 때문이다. 결국 이 방송을 보면 법관들의 무죄 취지로 말한 기준들, 객관적인 증거자료와 두 사람간의 오고간 서신, 행동, 과정이 일반적인 연인 사이에 가깝다고 말한 그 증거들 자체가 역설적으로 이 소녀가 피해자라는 걸 증명한다는 꼴이 되는데 이것이 피해의 증거라고 미처 생각하지 못한 법관들의 실수가 결국 뉴스감으로 등장하게 되지 않았나 싶다. 아주~ 아주~ 넓게 본다면 무조건 소녀는 성폭행 피해자다라고 말하기보다는 소녀도 일부의 잘못이 있고 (연예인 시켜준다고 꼬셔서 말도 많고 탈도 많다는 걸 애나 어른이나 요즘에는 대부분은 인지하고 있다. 막상 본인한테 그런일이 닥치면 허황된 꿈에 인지하고 있던 사실을 순간적으로 잃어버릴 뿐) 남자의 잘못은 치명적이며 법관의 잘못은 1.2심과 다른 기계적인 판결을 했다는 원론적인 실수다. 그것을 일반적인 관점으로 줄여 본다면 소녀는 잘잘못을 따질 필요없는 피해자일 뿐이고 남자는 쓰레기, 법관은 있을 수 있고 있을 법한 소임을 다한 판결이라고도 볼 수 있을 것이다.

 

 

 

 

 

 

 

 

 

 

 

순응 신드롬은 5단계다. 앞서 설명을 할 때도 4단계밖에 쓰지 않았다. 이미지에도 5단계 설명 이미지가 없다. 그것이 알고싶다 방송에서도 5단계 자료는 나오지 않았다. 마지막에 사회자가 구두로 전했을 뿐이다. 순응 신드롬의 5단계는 [철회]다. 신뢰하고 믿을만한 어른들을 만났을 때 4단계 폭로 단계로 들어가는데 그 폭로 단계에서 자신은 물론 가족, 친구, 지인들 모두에게 피해가 올 수 있다. 그것을 인지한 순간 5단계로 접어 들어간다. 그것이 바로 철회. 모든것을 없던 일로 덮어버린다는 것이다. 방송은 여기에서 끝이나고 추가 설명이 없다. 그래서 나름 5단계에 대한 설명을 자의적으로 해석해 덧붙인다. 4단계에서 부수적으로 추가되어 예외적인 [철회]단계가 있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순응 신드롬 자체가 5단계로 이루어졌다는 건 무얼 의미하는 것일까? 그것은 아마 1단계로부터 시작해 5단계로 끝나는 것이 거의 대부분 보편적인 단계라는 뜻이 될 것이다. 결국 4단계 폭로에서 그 폭로와 함께 처벌로 모든 것이 마무리 되길 원하겠지만 실제로는 5단계까지 가서야 끝난다는 것이다. 결국 피해자, 피해아동은 영원한 피해자가 될 수 밖에 없다. 그것이 아동 성학대의 결말이다. 처벌을 원하지만 결국 처벌의 잣대는 피해자에게 돌아간다는게 사회 시스템이라는 것이다. 그것이 여자이고 더 나아가 여자 아이라면 더 할 나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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