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아두면 쓸모있는 신비로운 인물사전 - 슈바이처와 나이팅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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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인물사전

알아두면 쓸모있는 신비로운 인물사전 - 슈바이처와 나이팅게일

by 깨알석사 2017. 12.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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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버트 슈바이처, 이름에서 느껴지듯이 독일 태생으로 독일과 프랑스 국적을 가진 우리에게는 유명학 의사로 알려져 있다. 어릴 적 위인전 등을 통해 한국 사람들에게는 꽤 인지도가 높은 인물이지만 정작 원래 고향인 독일에서만 조금 인지도가 있을 뿐, 프랑스에서조차 인지도가 상당히 낮다. 비정상회담에서도 이와 관련한 내용이 살짝 언급이 되었는데 각 국의 위인들 이야기가 나왔을 때 슈바이처 박사 이야기가 나왔지만 대부분의 서양인들은 물론 우리와 이웃하고 있는 일본과 중국조차 알버트 슈바이처에 대해 잘 알지 못했다. 콧수염이 인상적인 알버트 슈바이처 박사, 무엇보다 이름 뒤에 붙는 "박사"호칭으로 가장 대중적이면서 박사의 대명사이기도 한 이분이 정작 모국에서도 크게 인지도가 없고 주변 국가는 물론 대부분의 나라에서 잘 모른다는 건 굉장히 역설적이지만 한 편으로는 그만큼 우물 안 개구리처럼, 혹은 누군가 보여주고 가르쳐 준 학습이 전부라고 믿는 것처럼, 우리만 아는 위인들, 우리만 높게 평가한 위인들이 생각보다 우리 주변에 맞다는 방증이 될 수도 있다. (물론 그렇다고 알버트 슈바이처 박사를 펌하하는 건 절대 아니다)

인류의 평화를 위해, 또 소외받고 고통받는 아프리카인들을 위해 의료봉사를 한 슈바이처 박사는 노벨평화상 수상자로서 업적이 뚜렷하게 존재한다. 기금을 모으기 위해 사비는 물론 각종 연주회와 출판, 강연회를 통해 돈을 모았고 그걸로 아프리카에서 진료 사각지대에 놓인 흑인들을 위해 상당 부분의 인생을 바쳤던 분이다. 그 업적의 평가 만큼 UN에서도 노벨평화상 수상자로서 그 공로를 인정했는데 평화상 만큼 뒷말이 꽤 많음에도 (수상자의 적정성) 유일하게 특별한 문제 없이 노벨평화상 수상자로 추대 된 몇 안되는 인물 중 한 명임은 분명하다.

다만 슈바이처 하면 박사라는 말이 항상 자연스럽게 붙는데 철학자, 의사로 더 많이 알려졌지만 실제로는 성직자, 신학자이고 20대 초반에 이미 철학 박사는 물론 신학 박사로서 인정 받았으며 독실한 개신교 신자로서 신학 관련된 업적이 오히려 더 많기도 하다, (목사로서 목회 활동도 했다) 이게 어떤 면에서는 다른 관점을 제시하는데 20대 초반에 철학 박사와 신학 박사가 되었음에도 자신의 소신과 철학적 신념, 의료 봉사를 위해 30대에 의대에 진학, 결국 30대 후반에는 의학 박사마저 자신의 경력에 추가가 된다. 중요한 건 종교적 신념과 종교적인 의미로 의료 봉사를 했느냐와 개인 철학에 기반한 순수한 봉사였느냐인데 그가 걸어온 길을 보면 종교와 상관없이 인류애를 위해 자비를 실천한 사람이라기 보다는 종교적인 이유로 (종교의 가르침에 따라) 의료봉사를 했을 확률이 더 크기 때문에 다르게 보는 시선도 분명 존재한다. 심지어 그가 의학박사가 되는 과정의 제출 논문이 "예수에 대한 정신의학"이라는 주제였다는 걸 보면 상당 부분 종교와 모든 부분이 연결 되는데 의학에서도 예수의 이름이 나오는 것처럼 슈바이처 박사의 다른 개별적인 논문도 상당 부분 예수 생애에 관한 연구, 개신교와 관련한 다양한 종교 연구 논문들이다. 


현재도 많은 종교인들, 종교적인 이유로 해외 다른 국가의 어려운 소외계층과 의료사각지대에서 봉사하는 분들이 많은데 지금이야 일상적인 봉사라고 여기고 있고 그게 엄청 대단하다고 느끼는 감정적인 비율이 좀 줄어들었지만 봉사 자체로서는 대단해도 결국 종교적 가르침을 실천하고 종교적 믿음에 따르기 위한 실행에 기반한 것이라 순수 봉사와 완전 같다고는 할 수 없을 것이다. 오히려 반대로 만약 이슬람 국가(중동지역)에서 어떤 봉사 행위를 한다고 할 때 그들에게 반감이 될 수 있다하여 순수한 인류애와 자기애를 위해 원래 믿던 종교를 버리고 봉사 자체에 역점을 둔다면 그건 완전 다른 이야기가 될 수 있지만 대체로 종교적인 이유로 의료 봉사 행위를 한다면 그건 그 사람의 개인 철학 보다는 종교의 가르침을 따르는 수행에 지나지 않아 순수 봉사와는 약간 다른 점은 분명 있다.

아마도 이런 부분이 위인으로 보는 시각의 차이 같은데 국내의 경우 많은 이들이 희생하고 희생당한 한국전쟁 이후 영웅담과 위인들의 등장이 필요했고 또 아이들 교육자료에 위인전과 같은 영웅적인 스토리와 헌신과 자비의 희생정신이 깃든 내용들이 많이 필요했는데 아마도 노벨평화상 수상자로서의 지위 때문에 국내 출판사에서 70~80년대에 주목하지 않았나 싶고 이 시기 대부분 가까운 일본에서 애니와 학습용으로 위인전 관련 컨텐츠가 많았는데 그 때 같이 유입 되면서 우리나라에서만 크게 부각된 경우가 아닌가 싶다. 

의사로서 의료봉사를 하다보니 남자인 슈바이처 박사와 함께 항상 언급되는 분이 여자인 나이팅게일인데 7080 시대에 일본에서도 나이팅게일 위윈전이 유행하면서 우리쪽으로 넘어온 걸 보면 나이팅게일은 일본 영향이 좀 크다고 보이고 슈바이처는 국내에서 나이팅게일을 다룰 때 남과 여의 구도화, 의사와 간호사의 카테고리에서 나이팅게일과 함께 상대적으로 출판물이 많아지면서 선순환 홍보가 되지 않았나 싶기도 하다. (그 때나 그 이후 90년대까지 일본 만화, 은하철도 999부터 드래곤볼까지 일본 애니를 통한 다양한 컨텐츠 유입은 상당했고 각 출판에 많은 영향을 준 건 사실이다) 지금도 그렇지만 막상 위인이라고 뽑을 만한 인물이 생각보다 많지 않은데 근대, 현대에 살았던 분들의 위인전을 만들다 보면 편집자, 출판자, 출판사의 능력(배급과 홍보)에 따라 위인의 인기 척도와 파급력도 달라질 수 있는 여건이 분명 존재했던 시절이 있었던지라 위인전에 있다고 하여 맹목적으로 신뢰하는 것도 조심스러움이 있다. 

전 세계 국가에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우리(한국사람)만 빼고 슈바이처 박사를 거의 다 모른다는 건 분명 팩트라고 봐야 하는데 우리에게 슈바이처 박사는 어릴 때부터 세종대왕이나 이순신 장군처럼 위대한 인물로 항상 배웠고 가르침을 받았던 위인이라 자국인이 아닌 정작 우리와 전혀 무관한 독일인(프랑스 국적)임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더 잘 안다는 건 알려진 계기와 시점에 무언가 모순이 있었을 수도 있다는 걸 말한다고도 할 수 있다. 일부는 파독광부와 파독간호사 등과 연결지어 (파독간호사는 마침 슈바이처와 같은 의료직이기도 하고) 우리에게 소개된 케이스라고 하는 경우도 있지만 그건 약간 억지스러움이 있다. 파독광부와 간호사와 연관되어 독일 문화가 들어온 건 거의 없다. 문화적인 교류도 아니고 저렴한 인건비 때문에 광부와 간호사가 돈을 벌기 위해 파견 되었을 뿐, 아마도 노벨평화상을 수상한 의사라는 점이 위인 출판에 가장 적절해서 국내 출판계에서 다루게 된 것이 우리에게만 익숙한 위인이 된 계기가 아닌가 싶다.


국내는 물론 해외에서도 위인으로서 뽑은 이유 중 하나인 알버트 슈바이처 박사의 "의사"로서의 업적은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잘알못~이 오히려 더 많은데 의사로서 어떤 의료행위에 대한 의술, 의료기술, 또는 제약 연구 등은 물론 수술적인 치료법에 대한 것도 뚜렷한 업적은 없고 단지 40대 이후 남은 여생을 아프리카 의료봉사에 헌신했다는 점이 가장 크다. 의사가 아닌 의료봉사자로서 다르게 해석하는 경우가 이 때문이기도 하다. 국내에서도 세브란스병원처럼 종교와 관련된 의료시설이 있는데 서양의 의사가 와서 헌신적인 봉사를 한 경우는 거의 없고 전도사나 목사 등 종교인이 의술을 따로 배워 치료하는 형태로 치료소가 병원으로 발전한 케이스를 흔히 볼 수 있는 것처럼 슈바이처 박사도 목사이자 목회자로서 인생의 중반에 의술을 배워 아프리카에 치료소를 운영한 것은 국내의 종교인들이 처음 진입한 방식과 거의 비슷하기 때문에 크게 다르지 않지만 노벨평화상 수상자라는 가장 큰 차이가 있다보니 다 비슷한 헌신과 노력, 희생을 했어도 조금 더 부각되지 않았나 하는 생각도 해본다.  

물론 위인전에 올라도 충분할 만큼 대단한 분이라는 건 변함없고 그가 행한 모든 것이 결국 아프리카 흑인들에게 좋은 영향과 결과를 만들었으면 무엇보다 아프리카 흑인들이 그를 존경하는데 마다하지 않는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다만 모국은 물론 유럽과 대부분의 국가에서 그를 위인으로 생각하거나 기억하지 않는데 수 많은 헌신과 자비를 베푼 여러 사람 중 하나임은 분명 하지만 우리에게는 유독 엄청난 위인으로 받아들여졌다는 사실 자체는 반대로 우리가 누군가의, 혹은 어떤 상업적인 수단에 의해 위인이 되기도 하고 되지 못하기도 하고 추앙 받기도 하고 소외 되기도 한다는 그 사실을 말하고 싶었을 뿐이다. 그나마 우리라도 이런 분을 알게 된 것이 나쁘진 않다고 보지만 왜 우리만 알게 되었냐는 것 역시 썩 좋은 걸 의미하는 건 아니다. (결국 위인은 누가 소개하고 만드냐에 따라 달라진다는 말이니)

독일 태생의 알버트 슈바이처

한국전쟁이 한창이던 1952년 슈바이처 박사는 아프리카에서 민간 의료시설을 운영하고 있었다

what?? 슈바이처 박사는 프랑스 국적자이기도 하다

슈바이처 박사 모르는 사람이 있어??

유럽과 아메리카 모두 슈바이처 박사의 존재 자체를 잘 모름

심지어 처음 들어봤다는 경우가 다반사

우리 입장에서는 슈바이처 박사를 모르는 사람이 과연 있을까 할 정도로 유명한 분이지만

안다고 하는 외국인이 한 명도 없다 ㅡ.ㅡ;;;

중국과 일본에서도 전혀 슈바이처 박사의 존재감을 모른다

의도치 않은 상황에서 알게 된 사실, 슈바이처는 모국을 포함해 어떤 국가에서도 잘 알지 못하지만 유독 한국에서만 아주 유명한 위인이라는 사실, 슈바이처 박사님이 이걸 아셨다면 아프리카가 아닌 한국행을 택했을지도 ㅎ

슈바이처 박사와 함께 나란히 등장하는 쌍두마차, 슈바이처가 의사라면 간호사라는 타이틀로 같이 묶이기도 하는 간호사의 대표 인물 나이팅게일, 조금의 관심이 있다면 역시 이 부분도 약간은 다르게 볼 부분이 많다. 따지고 보면 간디와 테레사 수녀, 심지어 아인슈타인까지 논쟁이 될 만한, 논란이 될 만한 요소요소가 상당한데 위인이라고 뽑은 분들이라고 해서 완전 무결하고 100% 천사 같은 모습만 있는 건 아니다. 역시 나이팅게일도 마찬가지인데 백의의 천사, 간호사의 대모라고 알려져 있지만 순수 간호사 보다는 간호행정가로 보는 시각이 더 많고 현장 실무자로서의 간호사 보다는 행정 관리자로서의 간호행정가로 볼 만한 행적이 더 뚜렷하기에 보는 관점에 따라 다를 수 있다. 물론 나이팅게일도 간호사가 되는 과정을 보면 종교적인 이유가 들어가는데 하느님의 계시로 간호사가 되겠다고 뜻을 밝히자 가족들이 반대했다는 (나이팅게일의 집안은 명문가의 부잣집) 일화 역시 그녀가 종교와 관련해 의료봉사의 길로 들어섰다는 걸 알 수 있다. (종교에 기반했다고 해서 순수하게 보지 않는 건 아니다. 다만 세계적인 위인이라면 종교와 무관하게 또는 다른 종교를 가진 사람들에게 거부감을 들지 않게 종교가 없거나 종교와 무관한 분들이 위인으로 선정되는게 맞을거다) 간호사로서의 윤리와 간호학에 대한 원칙과 소신을 담은 나이팅게일 선서 맹세 역시 첫 줄의 끝 문구가 하느님 앞과 여러분 앞에 선서 합니다로 되어 있는데 무교인은 물론 불교인이나 이슬람교 등 다른 종교를 가진 간호사에게는 이 선서 역시 간호사의 선서에 부적절하게 느껴질 수 있는거다. 


나이팅게일은 천사의 이미지, 간호사 하면 대표되는 인물로 잘 알려져 있지만 그녀가 야전 군병원에서 활동한 시기는 생각보다 짧았고 대부분 그녀가 만들고 제시한 간호통계와 의료통계 등의 행정적인 성과와 업무가 더 많을 뿐더러 간호사라는 걸 만들겠다가 아니라 본인 스스로가 간호사가 되고 싶다고 한 것처럼 이미 간호사(간호원)와 간호학은 이미 존재하고 있었기에 물론 창업보다 수성이라고 그걸 지키고 발전 시킨 것이 더 위대할 수도 있지만 사실상 어려움 없이 지냈고 여러가지 정부 지원에서도 자유로웠던 고위직에 해당하는 간호행정가로서 현장에서도 간호 관리자로 근무했기에 그녀의 헌신과 봉사에 대해 다르게 보는 시각 역시 마찬가지로 똑같다. 물론 나이팅게일은 부잣집에서 남부럽지 않게 자랐고 또 그녀와 함께 수녀님들이 함께 해서 간호 인력과 지원이 든든한 편인데 정부의 관료로서 간호 업무를 담당했기에 기존에 알던 것과는 조금은 다르다. 오히려 간호사와 관련해 이와 상반되는 인물이 하나 있으니 메리 시콜이라는 간호사다.

나이팅게일과 가장 연관성이 높은 사람이 "메리 시콜"이라는 간호사인데 나이팅게일과 동시대 사람이고 같은 간호사이면서 또 나이팅게일과 같은 크림전쟁에서 같은 야전 간호사로 있었다는 공통점이 있다. 그녀는 흑인이고 아프리카 사람인데 간호사 경력을 이미 갖춘 그녀는 어떤 종교적 신념 없이 부상 군인을 위해 의료인이 턱 없이 부족하다는 호소문의 간호사 모집 공고문을 보고 영국에까지 가서 지원을 하지만 간호사 지원자를 다 뽑아도 모자를 판에 그녀는 면접에서 탈락하고 만다. (어릴 적 어머니에게서 약초 등을 활용한 전통치료법을 배웠고 성인이 되고 나서는 군병원에서 현대적인 간호기술을 배운다) 결국 전쟁이 벌어지고 있는 지역의 야전병원과 간호단에도 직접 지원을 하지만 마찬가지로 거절 당하는데 그 간호단이 나이팅게일이 이끄는 나이팅게일 간호단이었다는 건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그녀가 탈락한 유일한 이유는 검은 피부 때문이라고 볼 수 밖에 없는데 간호 인력 모집을 한다고 해놓고 메리 시콜이 지원하자 간호사가 다 모집되어 꽉 찼다고 거절했기에 뒷맛이 씁쓸한 건 분명히 존재한다, 간호사 앞에서도 능력이 있든 없든 흑인은 노예라는 인식과 인종차별은 어쩔 수 없었다는 말이다. 그래서 그녀는 결국 최전방까지 가서 간호사 지원을 하게 되고 결국 끝내 간호사를 하지 못하자 사비를 전액 털어 "간호 치료소"를 직접 만들어 부상자를 받는다. 

최전방에서 응급치료가 얼마나 중요한지 안다면 최전방의 간호 역시 얼마나 중요한지 알텐데 나이팅게일은 후방 야전 군병원에서 근무를 했었고 메리 시콜은 최전방에서 본인이 직접 만든 열악한 치료소에서 직접 치료를 했던 간호사로서 사실상 메리 시콜이 치료해 살아난 사람이 후방의 나이팅게일에게 보내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지 모른다. 결국 그녀는 전쟁이 끝나고 개인 치료소 운영으로 인해 파산하게 된다. 고향으로 돌아온 그녀는 평생 가난과 어려움 속에 살지만 그녀 덕에 살아남은 부상자 군인들의 끊임없는 노력으로 프랑스, 터키, 영국은 그녀에게 훈장을 준다, (위 발견된 초상화 그림에 훈장이 3개 그려져 있는 이유) 같은 전쟁에서 두 간호사를 부른 애칭은 전혀 다른데 나이팅게일은 백의의 천사, 등불을 든 여인이라는 별명을 "타임지"등의 언론 기사를 통해 얻고 대중에게 알려진 반면에 메리 시콜은 부상자들의 "어머니"라는 이름으로 치료 받은 군인들에게 불려졌다고 알려져 있다. 애칭을 부른 대상자가 다르고 또 그 의미가 상당히 남다른데 천사와 어머니의 대결이라지만 언론에 의해 만들어진 애칭과 당사자들이 부른 애칭은 같을 수도 없지만 어머니라고 불리웠다는 사실 만으로도 사실 대적할 만한 이름은 없어 보인다. 

메리 시콜 초상화가 발견되면서 (그마저도 액자의 사진 받침으로 쓰여서 안타까움을 유발) 나이팅게일과 함께 자주 언급이 되는데 SBS에서도 관련 뉴스가 있고 EBS에서도 짤막한 다큐를 다루었을 정도로 나이팅게일에 가려진 위인으로 다시 주목 받고 있다. 흑인 간호사는 안되고 백인 간호사는 된다는 것이 실제로 존재했음을 보여주는 단적인 예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헌신과 봉사의 가치는 변함이 없을거다. 나이팅게일이 헌신적인 간호사로서의 업적을 확실하게 남긴 건 사실이고 그녀로 인해 간호학이 발전한 것도 사실이다. 다만 현장의 실무 간호사로서 직접적으로 "환자"와 "부상자"를 대하는 인간적인 간호사로서의 보살핌에 두 간호사는 차이를 보이는데 같이 활동할 수 있음에도 피부색이 다르다는 이유로 간호사 스스로도 차별이 있었다는 건 두 위인에 대한 시각적인 차이를 분명히 한다. 간호사 이야기를 하다보니 예전에 전국을 들썩였던 전염병 메르스인가 뭐시기가 생각난다. 위험을 감수하고 간호했던 국내 모 병원의 간호사였는데 나중에 다 진정되고 안정된 이후에 국가에서 표창하고 시상하는 장면이 인상적이었다. 값진 희생정신, 누군가 알아준다는 그 자체만으로도 만족하는 자비로운 분들이다.


http://news.sbs.co.kr/news/endPage.do?news_id=N1003572537 (SBS 메리 시콜 카드 뉴스)

http://www.ebs.co.kr/tv/show?prodId=352&lectId=1177795 (EBS 메리 시콜 짤막 다큐)

참고로 나이팅게일은 1900년대 서구의 인물로 많이 생각하는 편이다. 야전병원, 군병원, 야전 군병원이라는 태그와 함께 항상 간호하는 장면이 나오다보니 1900년대 일제 강점기 그 시기 비슷한 1차 세계대전이나 2차 세계대전의 종군 간호사로 생각하기 마련인데 하지만 나이팅게일은 우리나라 조선의 마지막 왕인 고종(26대왕)보다 먼저 태어난 인물, 25대 왕인 철종 보다도 더 오래된 인물이고 24대 왕인 헌종 보다도 더 먼저 태어난 분이다. 23대 왕인 순조 시대 태어난 인물이 나이팅게일, 생각보다 오래 된 위인으로 2020년이면 나이팅게일이 태어난 지 200년째 되는 해가 된다. 그녀는 1차세계대전, 2차세계대전이 아닌 그 보다 훨씬 앞선 러시아와 유럽 연합군이 싸운 크림전쟁에서 활동한 간호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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