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볼 만한 영화 없냐는 말에 내 취향에 딱 맞는 영화라면서 지인에게 추천 받은 것이 <어카운턴트>, 우리나라 말로 회계사라는 뜻이다. 어카운턴트 외 어카운트는 은행의 계좌나 회계 상의 계정, 네트워크의 계정(사용자 계정)을 뜻하기도 한다. 핫메일(아웃룩)에 접속하면 인터넷 주소창에 어카운트라는 단어가 들어간다.
핵심 줄거리 빼고 대략적인 내용만 언급해 보라는 말에 지인은 자폐증세를 가진 아이가 서번트 증후군처럼 특정 계통에서 우월한 능력을 갖게 되는데 숫자풀이에 능한 이 아이는 성인이 되어 회계사가 된다는 것이 큰 틀로 일단 여기까지만 듣고도 나의 흥미를 끄는데는 성공했다. 변호사의 법정 플레이와 다른 천재적인 능력을 가진 회계사의 증권, 부동산, 채권 투자 플레이를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흥미롭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 예상과 달리 영화는 단순하게 회계사의 천재적인 능력만을 보여주는 영화가 아니었다. 이 회계사는 불법적인 사람들의 회계를 봐주는 댓가로 뒷일을 전문으로 봐주며 결국 불법적인 일을 하는 고객들과 마찰이 생겨 도망자 신세가 된다,
영화는 시작부터 약간 애매한 포지션을 잡고 영상을 보여준다, 시작부터 내막을 알 수 없는 총질이 난무한 사건 현장과 의미를 알 수 없는 대화가 나오며 시작을 알린다. 얼굴도 보여주지 않고 대화 중에 나오는 늙은이는 누굴 뜻하는지도 알려주지 않아 무덤덤하게 넘어가고 이내 자폐 증세를 보이는 아이들과 그 문제로 상담하는 부모님의 장면이 나오면서 하나씩 천천히 풀어가면서 시작하기 보다는 약간 꽈배기처럼 꼬아서 맛보기 식으로 시간대를 뒤죽박죽 섞는다.
영화를 다 보고 나서야 첫 장면을 왜 이렇게 시작했는지 알았다. 그리고 그건 훌륭한 선택이었다. 영화를 보면서 놓쳤던 것들, 내가 간과하고 넘어갔던 부분들, 미처 예상하지 못하고 짐작하지 못했던 여러 장치들은 아무 쓸모도 없을 것 같았던 수 많은 장면에 다 녹아 들어가 있었다.
지나가는 단역에 지나지 않던 사람들의 정체와 등장 인물들 대부분의 진짜 정체가 후반에 갈수록 드러나게 되는데 솔직히 내 예상 범위에서 벗어났던 건 확실하다. 내가 소소한 반전이라고 제목을 달았던 이유이기도 하다.
불법적이고 위험한 일을 하는 고객들만 상대하다보니 회계사 본인도 위험한 상황에 노출 될 수 밖에 없는 법, 범죄집단의 장부를 누구보다 속 깊게 아는 장본인이기도 하기에 불법자금, 지하자금이 흘러가고 움직이는 경로를 아는 사람이 바로 주인공이기도 하다. 그런 위치는 당연히 고객은 물론 정부 당국의 주요 표적이 될 수 밖에 없다.
그래서 이번에는 그나마 안전한 고객을 찾은 것이 상장을 앞두고 있는 유망 기업의 회계 감사, 불법과 거리가 있을 것 갔던 이 회사의 회계 감사에서 그는 생각지도 못한 일에 연루가 되고 사건이 시작된다.
솔직히 난 중반까지 이해를 잘 하지 못했다. 영화를 보면서 이해력이 딸린다고 생각한 적이 드물었는데 이 영화는 조금 이해하기 난해한 장면이 몇 군데 있었다 (물론 영화를 다 보고나서 이해했지만...) 특별히 문제가 될 만한 사건의 개요도 없었고 단순히 기업 회계를 해주는 정상적인 모습만이 간간히 나왔기 때문이다. 이해가 처음으로 안 되었던 부분은 바로 위 사진에 나오는 인물들이다. 잠옷 차림의 남자와 킬러의 대담인데 킬러는 이전에 다른 사건으로 의뢰를 받고 누군가를 협박하는 (공매도 하지말라고 하고 그냥 가는 걸 보고 약간 실소...) 장면이 있어 왜 저러고 다니는지 알고 있었지만 잠옷 차람의 남자가 누구인지 (누구였는지 기억이 안났음) 왜 죽어야 하는지, 주인공의 스토리와 무슨 연관이 있는 것인지 풀지를 못했다.
킬러의 첫 등장 때 의뢰를 받고 찾아간 증권 관련자는 공매도 건으로 찾아왔다고 말을 했기 때문에 이유를 알았지만 잠옷의 남자에게는 왜 죽어야 하는지, 왜 죽이러 왔는지에 대한 설명이 없다.
설령 저 남자가 누군인지 내가 기억했더라도 왜 죽어야 하고 왜 킬러가 찾아왔으며 의뢰자가 누구인지는 당연히 모를 수 밖에 없어 이 장면만으로 해석하기 불가능하다. 참고로 잠옷의 남자는 (영화를 중반 이후 후반 접어들 때 비로서 기억하고 이해했음) 회계 감사를 하기 위해 주인공이 갔던 회사의 회계 담당자로 회계 감사 계약을 위해 회사 방문을 했던 날 미팅을 했던 당사자이다.
한참 후 영화가 진행되면서 킬러가 등장할 때 또 다른 희생자가 나오는 장면이 있는데 미팅 자리에 함께 있던 이 기업의 또 다른 간부(여성)로 그 여자가 죽었을 때 비로서 앞서 잠옷의 남자가 동석했던 회계 담당자라는 걸 알았다. 무슨 일이 어떻게 일어나는지 확실하게 드러내놓고 보여주지 않지만 회계 감사를 한 회사의 회계 담당자(간부)와 주인공을 소개 받아 감사 업무를 의뢰한 또 다른 담당자(간부)가 모두 죽었고 여주인공으로 나온 여직원도 이 회사의 회계 부서 직원이면서 오류를 찾아낸 당사자라 이 회사와 어떤 연결고리가 있고 문제가 터졌다는 걸 그제서야 나는 눈치챘다.
그래도 왜 회계 감사를 하는 회사의 사람들이 킬러가 죽이고 있고 관련된 남은 사람(회계부서의 여직원과 회계 감사를 했던 주인공)들을 제거하려 했는지, 누가 의뢰자인지는 역시 오리무중, 알아내기에는 보여준 장면과 등장 인물들의 개연성이 크게 드러나지 않은 상태라 자칫 무슨 일이고 왜 그런 것인지 알지도 못하고 영화의 흐름에 무작정 따라가기 쉽다. 킬러가 주인공을 쫒는다면 과거의 다른 불법 회계 업무와 사건 때문이라고 착각하기 쉽지만 이 회사의 회계 업무를 봐주는 것과 킬러의 등장, 그리고 이 회사의 사람들이 죽는 것에는 큰 연결점이 없기 때문이다.
킬러가 죽이고 간 여성 임원의 거실에서는 이 회사의 창업자이자 사장인 사람과 함께 찍은 사진이 나온다. 서양의 잘 모르는 배우라 그 얼굴이 그 얼굴, 헷갈릴 수 있어 여기서도 난 오해를 했다. 여성 임원이 아닌 이 사장의 부인이 사망한 것으로 착각했더랬다. 이 사람이 죽는 장면은 나오지 않았지만 결국 그 회사의 회계 담당자들과 주요 인물들, 기업 대표 모두 죽임을 당한다고 착각했었다. 여성 임원을 부인으로 오해한 건 둘이 같이 찍은 사진이 클로즈업 되었기 때문인데 영화 후반에 이 사람의 "여동생" 과 관련한 사망 관련 기자의 질문을 보고서야 왜 둘이 같이 찍은 사진이 그 여성의 집에 있었는지도 나중에야 이해를 했다. (주인공에게 감사 의뢰를 한 여성 임원은 이 사장의 여동생이기도 했던 것)
중반 이후까지 보고 내가 파악한 줄거리는 주인공의 회계 감사를 통해 상당수의 회삿돈이 불법으로 누군가에 의해 유출되어 빼돌려져 있다는 걸 알게 되고 그러자 빼돌렸던 사람이 그 사실이 드러나기 전에 킬러에게 의뢰해 회계와 관련된 사람들 일체를 죽이고 사장까지 노려 회계 부정 사실을 알고 있는 모든 사람들을 죽임으로 인해 자금유출을 은폐하고 덮으려고 한다는 것인데.....(결국 이마저도 영화 다 보고나면 틀린 스토리...ㅠ.ㅠ)
시간대와 상관없이, 회상도 아닌 어느 특정 장면이 순서 없이 중간중간 섞여 있다. 주인공이 교도소에서 만난 어느 노인과의 장면도 마찬가지, 그러나 영화는 결말 부분이 되기 전까지 왜 주인공이 교도소에 가게 되었는지, 왜 이 사람과 만나게 되었고 무슨 일이 있었는지도 설명해주지 않는다. 막판에 가서 다 쏟아붓고 설명을 해주는데 그게 재미가 쏠쏠하다.
FBI도 아니고 지역 경찰도 아니고 국토안보부도 아닌 재무부 국장의 등장, 겉만 보면 총질도 하는 연방경찰로 보이고 수색 장면에서는 FBI 점퍼를 입고 있는 남녀 수사관들과 동행도 하기 때문에 이 사람의 정체도 오묘한 구석이 많다.
퇴임을 몇 개월 남지도 않은 사람이 딱히 상부의 지시가 있다는 식으로 보여주지도 않고 이 회계사를 잡아 어떤 조직을 소탕하겠다는 것도 뚜렷하지 않지만........이마저도 결말에 가면 완전 폭풍 이해, 왜 재무부 소속 사람이 주인공을 찾게 되고 전과 기록이 있는 부하 직원을 협박해 주인공을 찾아 검거하도록 추적하게 만들었는지도 다 이해가 된다.
공직에 절대로 들어갈 수 없는 중범죄 전과자, 그걸 숨기고 공직 생활을 하는 것 자체도 중범죄. 재무부 요원으로 주인공을 추적하게 되는 또 다른 이야기의 축인 이 여성 요원은 영화를 대충 보면 왜 이 사람이 선택되고 국장은 왜 이 사람을 협박까지 하며 선택했는지에 대해 설득력이 약하다고 볼 수 있지만 국장과 요원의 허심탄회한 과거사 밀담으로 확연히 해소된다.
배트맨 영화의 데자뷰 같은 성격이고 실제 국장과 회계사 주인공은 배트맨 영화에서 비슷한 배역으로 연기 호흡을 맞췄다. 이 영화에서도 딱 그 관계, 사회 악당을 처단하는 배트맨과 그를 잡는 경찰이지만 부패경찰을 피해 뒷거래를 통해 협력하는 조력자로 나오는 것과 거의 흡사하며 왜 도우고 왜 협력하고 왜 관계를 형성하는지도 이 영화와 거의 비슷하다. 배트맨 영화 데자뷰 덕인지 국장 캐스팅은 최고인 셈
미모와 키가 안습인 여주인공 캐스팅, 유일하게 아쉬웠던 부분
농장 부부의 회계일을 해주는 장면을 보면 회계사의 비서가 등장한다. 그리고 비서와 따로 이야기를 하는 장면도 있다. 내가 가장 궁금했고 정체를 알고 싶었던 건 007 영화처럼 언제든지 그를 지원하는 백업 시스템, 고객이 의뢰를 하면 접수를 받고 주인공에게 자문과 조언은 물론 각종 시스템으로 전산망 지원을 하는 보조자가 나온다.
똑 부러지는 말투에 똑똑하다는 느낌을 주는 그의 불법활동을 전담하는 비서가 누구인지 궁금했지만 회계사 사무실의 비서가 그 역할을 하겠거니 하고 넘어갔던 것이 가장 큰 불찰....등장 인물의 정체들이 하나씩 드러날 때마다 놀라웠지만 비서가 누구였는지 알았을 때가 제일 충격이 컸다.
킬러의 후반 정체도 사실 핵폭탄급이다. 누군가에게는 뜬금없는 시나리오라고 할 수 있지만 복선은 이미 초반에 다 깔려 있었다. 내가 영화 초반에 이해를 못하고 사건의 흐름을 종잡을 수 없었던 것도 결국 그런 복선을 정확히 짚지 못하고 왜 이런 장면이 있고 왜 이런 이야기가 이 시점에 나오는지를 몰랐기 때문,
돌이켜 보면 그 때 그 자리에 2명이 아닌 3명이었고 3명이라고 착각했을 때는 분명 4명이 있었던 것처럼 놓쳤던 부분, 간과하고 넘겼던 부분, 이해가 안된다고 무시했던 부분들이 결과적으로 결정적인 힌트였던 셈이다.
회계사가 람보 수준으로 총질을 하고 특전 용병급의 팀원을 모두 제거하는 능력을 갖추면서 정부의 수사망을 피한다는 것만 보면 평균 이하의 영화라고 보는 사람도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자폐라는 것이 틀린게 아니라 다르다는 것에 대한 접근, 그리고 그걸 어떤 식으로 활용하고 어떻게 대처하며 평범한 삶 속에서 살아가는지에 대한 메세지는 파격적이라고 할 수 있다.
불법고객들의 뒷거래 회계를 봐주고 번 엄청난 돈 상당수를 "기부"에 쓴다는 것도 정체를 숨기기 위한 속임수라고 단정짓게 만들지만 결국 결말에 가면 그게 자금세탁이나 정체를 숨기기 위한 속임수인지 진짜 기부였는지는 판단하기 나름이고 우와~하게 될 수 밖에 없다. 자폐아가 회계사가 되고 또한 중대급 병력 정도는 거뜬히 해치울 수 있는 대단한 실력의 소유자이면서 사건을 해결해 나가는 것에 의문점을 갖을 사람도 많지만 결코 짜임새가 엉성하지 않고 충분히 공감되며 그 과정도 충분한 설명이 후반에 쫙 펼쳐진다.
어떻게 바라보고 어떻게 인식하느냐의 차이만 있을 뿐 자폐아를 둔 부모님이라면 한번쯤 봐도 좋을 것 같다는 느낌마저 든다. 장애를 가진 아이를 둔 부모, 회계 업무를 하고 있는 회계사, 사회정의를 꿈꾸는 내부공모자들 등 다양한 계층의 다양한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 각자의 시선과 생각에서 보면 각기 다르게 보일 수 있는 영화
10점 만점에 10점, 수우미양가 중에서 수라는 점수를 고민할 것도 없이 주고 싶은 걸작이다. 미국에서는 개봉 당시 박스오피스 1위를 했다지만 관점의 차이인지 국내 개봉에서는 하위권으로 저조한 실적을 보인 건 무척 아쉽다. 결론만 놓고 보면 나쁜 일을 해서 번 큰 돈을 좋은 일에 쓰는 히어로를 다룬 듯한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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