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이나 버스를 타고 출퇴근할 때 깜빡 잠이 들어도, 내릴 정류장이 되면 눈이 저절로 번쩍 뜨이는 경험을 한 적이 있을 것이다. “정류장 놓칠 뻔했네”하면서 내릴 준비 하다 보면 이런 생각이 든다. ‘눈 감고 잠들었는데, 어떻게 내릴 곳을 알고 잠이 깼을까?’
‘목적지에 도착하면 자동으로 잠 깨기’는 잠은 들지만 뇌 전체가 자는 것이 아니라 어떤 부위는 깨어서 ‘불침번’을 서기 때문에 가능하다. 밤에 집에서 이부자리를 깔고 편안하게 자면 5단계 수면을 거친다. 잠이 드는 단계인 1단계를 거쳐, 얕은 수면 단계인 2단계에 이른다.
2단계가 30~45분 이어지고 이어깊은 수면 단계인 3~4단계로 진행해서, 마지막 5단계인 렘(REM)수면 상태에 빠진다. 렘수면 단계에서는 꿈을 꾼다. 그런데 버스나 지하철에서 선잠을 잘 때는 얕은 수면인 2단계 이상 진행하지 못한다. 주변이 시끄럽거나 불편한 자세에서는 3단계 이후로 이어지기 어렵기 때문이다.
얕은 수면 단계에서는 사람의 뇌 일부는 각성 상태를 유지한다. 수면 중 일어날지 모르는 위험에 대해 인체가 대처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차에서 깜빡 잠들 때 꿈을 꾸지 않는 것은 렘수면으로 진입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차 안에 조명이 들어와 있으면 수면 호르몬인 멜라토닌이 분비되지 않아서 숙면을 취할 수 없다. 멜라토닌은 원래 생체리듬상 한밤중 캄캄할 때 분비된다.
똑같이 잠들어도 출근길에는 어지간해 서는 버스 내릴 곳을 놓치지 않지만, 퇴근길 막차를 탔을 때는 종종 내릴 곳을 놓치고 종점까지 가는 것은 밤에 멜라토닌이 나와 깊은 잠에 빠뜨리기 때문이다. 술 마시고 귀가하다 정류장을 지나치는 건, 알코올이 뇌의 정상적인 기능을 마비시켜서 얕은 잠을 자더라도 불침번이 작동하지 않기 때문이다.
쪽잠을 자다 내릴 곳에서 눈이 뜨이는 경험은 초행길보다 매일 다니는 출퇴근길에서 많이 한다. 같은 노선의 버스나 지하철을 타고 같은 목적지를 반복해서 다니면 사람의 뇌는 정류장 이름과 위치, 탑승 후 걸리는 시간 등을 무의식중에 반드시 기억하기 때문에 자동반사적으로 잠에서 깨는 것이다. 매일 다니는 곳에서 잠들면, 잠에 빠지기 직전에 무의식적으로 ‘20분 뒤 시청 앞에서 내려야 된다’고 생각한다.
이런 무의식은 뇌 안에서 ‘자명종’처럼 작동하게 되고, 예정된 시간이 지나면 신호를 보내 사람을 잠에서 깨운다. 이와 함께, 정류장 안내방송 등의 소음은 ‘제때 내려야 한다’는 잠재의식을 갖고 얕게 잠든 사람에게 조건반사를 일으킨다. 이런 불침번과 자명종 기능은 사람의 뇌 중에서 전두엽 어디쯤에서 담당하는 것으로 추정하지만, 정확히 어디인지 모른다.
월간헬스조선 8월호
한진규(서울수면센터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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