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의 한 학자가 영국 국립도서관에서 이란어로 된 책 한권을 보다가 뜻밖의 사실을 발견한다. 학자가 보던 책은 쿠쉬나메라는 책으로 이란의 전설적인 영웅 페레이둔이 자하크를 무찌르고 나라를 되찾는다는 대서사시, 7세기 무렵에 관한 이야기이며 11세기 이란샤 이븐 압달 하이르가 구전으로 전해지던 것을 문서로 최초 기록한 책이다.
1998년도에는 현대 이란어로 재편찬 되었다. 쿠쉬나메에는 페르시아 왕자가 중국 인근의 나라인 바실라라는 나라에 망명을 하고 거기서 부인을 맞게 된다는 이야기가 적혀 있었는데 바실라라는 나라가 어디인지 지금까지 정확히 알려지지 않은 상태였으나 바실라의 바는 좋다라는 뜻의 "바"로 결국 실제 나라 이름은 뒤에 두 글자 실라, 즉 중국 주변에 있는 나라인 실라(신라)라는 추측이 이란 학자에 의해 제기된다.
우리가 알고 있는 상식에서 중국 주변에 실라 혹은 신라라고 쓰는 국가명을 가진 나라는 딱 하나, 바로 한반도의 고구려, 백제, 신라의 그 신라다. 정말 페르시아 (현재의 이란) 왕자가 망명한 실라라는 나라가 우리의 선조 국가인 신라가 맞는지 그에 대한 이야기를 살펴 본다.
쿠쉬나메에 적혀 있는 바실라와 페르시아 왕자의 인연은 다음과 같다.
아무리 페르시아 왕자라고 해도 멸망을 코 앞에 두고 망명길에 오른 왕자일 뿐이고 더군다나 중국도 아닌 중동 지역이다보니 자신의 딸인 파라랑 공주를 왕자에게 결혼시키려고 마음조차 없던 바실라의 왕, 서른 명의 여인을 한꺼번에 세워두고 그 중에서 진짜 파라랑 공주를 찾으면 결혼을 승락하겠다는 말을 하게 된다.
서른 명중에 어떻게 딱 맞췄을까? 아마도 다른 29명은 고개를 숙이고 파라랑 공주는 살짝 고개를 들었겠징? 파라랑 공주가 왕자를 더 마음에 들어했을지도..원래 남자는 중동 남자가 잘 생김..
페르시아 왕자와 바실라의 공주 사이에서 태어난 페레이둔이 나라를 되찾고 전설적인 영웅이 된다는 내용의 쿠쉬나메에는 영웅이자 주인공인 페레이둔의 부모 이야기가 나오는데 정황만 보면 어머니는 신라의 공주인 셈
바실라가 신라라고 해석하는 이유는 일단 나라 이름, 더 좋은 뜻의 바를 제외하면 발음 자체가 신라(실라) 그리고 쿠쉬나메를 비롯한 11세기 이전부터 기록된 이란의 여러 고서적에 등장하는 바실라의 나라에 대한 묘사가 우리가 아는 신라와 거의 흡사했으며 바실라가 중국 주변에 있다는 점도 중요한 포인트다. 바실라라는 국가는 중국의 왼쪽 서남 아시아 지역 인접 국가라고 생각했던 것이 중국의 오른쪽 동북아 지역일 것이라고는 미처 예상하지 못했던 것이다.
우리나라 유물을 통해서도 잘 아는 사실은 신라는 금이 많았고 위로는 대륙(육지) 주변은 바다인 곳도 신라
이란 학자는 또 다른 근거로 페르시아와 신라의 공통된 문물을 예로 들었는데 그것이 바로 운동종목인 격구, 페르시아 왕자가 고향에서 자주 하던 말을 타고 하는 공놀이 격구, 지금 시대의 폴로와 같은 운동인데 격구(폴로 포함)는 페르시아에서 시작된 놀이 운동으로 이미 학문적으로 그 사실이 검증된 상태다. 이런 격구가 중국을 통해 우리에게 전파되었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아브틴 왕자에 의해 직접 전해졌을 것이라는 추측도 가능해진다.
우리나라 신라의 기록에는 김유신과 김춘추가 격구와 유사한 축국을 한 기록이 있고 매우 성행했으며 발해, 고려, 조선에 이르기까지 큰 인기를 누린 스포츠라고 볼 수 있다. 우리나라 한반도에서 격구는 어느곳을 통해 들어왔는지(중국인지 페르시아인지..) 정확히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출현 시기는 기록에 의해 확인이 되는데 바로 신라다. 신라시대부터 격구(축국)가 등장한다. 이 격구가 페르시아 운동이고 쿠쉬나메 이야기 속의 바실라가 신라라면 신라시대부터 격구가 전해 내려오는 우리 역사를 보더라도 우연이라고 단정하기 어려운 것도 사실이다.
격구는 왕도 직접 즐기고 신라시대 부터 조선시대까지 고급 스포츠로 인식되었다. 실제 우리나라 역사 드라마에서도 궁중 행사나 왕의 운동놀이를 하는 장면으로 격구가 종종 등장하는데 격구장이 따로 있을 정도다.
또한 신라의 수도 경주에서는 우리나라 민족의 얼굴이라고 보기에는 힘든 인물 석상들이 있는데 자세히 보면 페르시아 사람들과 흡사하다는 걸 알 수 있다. 지금 비교해 봐도 한반도 신라인이라기 보다는 중동 사람에 가깝다
경주에서 새 두마리가 나무를 보고 마주선 입수쌍조문 문양은 전형적인 페르시아 문양과 일치한다.
이란에서 출토된 유리잔과 경주 천마총에서 나온 유리잔, 색만 다르지 기법이나 모양이 쌍둥이다. 신라와 이란(페르시아)가 유물만 놓고 보더라도 인연은 있었다는 건 확실해 보인다. 우리나라에 서양인, 특히 페르시아나 중동(아프리카 인접) 사람 이야기가 기록에 몇 등장하는데 유럽과 몽골(징기스칸) 관련 이야기에서도 유물과 관련해 유럽 정복시 한반도인이 개입되었다는 내용도 있다. (기록이 아닌 유물을 보고 추정/내가 보기에는 이건 우리가 공격한게 아니라 몽골인, 또는 원나라에 징병된 한반도인이라고 보는게...)
만약 바실라가 신라라면 바실라의 타이후르 왕은 누구일까? 일부 학자는 바실라가 신라라는 전제로 타이후르 왕이 헌강왕이라고 주장하기도 하지만 이건 아니라고 보는게 대부분이다. 참고로 타이후르는 페르시아식 이름이다. 헌강왕이라고 주장하는 이유는 바로 "처용" 때문, 신라시대 때 신라인 여성과 결혼한 페르시아 남자로 실제 우리 기록에 남아있는 인물이다. 처용이 기록된 시기의 왕이 바로 헌강왕, 넓은 이마에 짙은 눈썹, 큰 코(코쟁이는 예나 지금이나..)와 긴 팔을 가진 남자라고 전형적인 중동 스타일의 서양인으로 묘사되어 있다. 하지만 처용의 기록과 아브틴 왕자의 기록을 비교해 보면 차이가 확실히 존재 할 뿐더러 무엇보다 등장 시기가 맞지 않다.
처용이라는 이름은 예전에 썰전에서 전원책 변호사와 유시민 작가도 언급을 한적이 있다. 앞서 경주에서 봤던 인물 석상도 우리는 처용을 보고 만든 것이라고 보고 있는데 (쿠쉬나메 기록을 몰랐고 아직 검증이 안되서 알려지지 않았기에) 처용이 페르시아인 중 유일하다고 봤었고 그 출신지도 이란이 아닌 다른 나라로 알고 있기에 이란의 기록인 쿠쉬나메를 제외한 우리쪽 기록만 놓고 보면 쿠쉬나메에 등장하는 인물과 처용이 왕자라고 혼동할 수 있는 요지는 분명 있다. (썰전 유시민 작가가 국회의원 당시 방문한 나라에도 신라섬인가 하는게 있었다는 말을 한 부분이 있다)
하지만 결혼한 부분만 놓고 보면 차이가 크다. 왕자는 왕의 딸과 결혼했지만 처용은 신라인 여성과 결혼했다고만 나와 있기 때문에 처용의 아내가 공주라면 그냥 신라인 여성이라고 적혀 있을 이유가 없고 대부분 실제로 일반 신라인 여자와 결혼을 하게 해주었을 것이라는 게 학자들의 인식이다. 각각 인물들이 신라와 인연을 맺은 시기도 다른 점이 있다. 기록만으로도 왕자는 7세기, 처용은 8세기로 처용은 왕자가 신라에 온 이후에 온 또 다른 페르시아인이라고 보고 있다.
삼국유사와 쿠쉬나메의 약간 다른 기록, 왕의 환대를 받은 건 같으나 한쪽은 공주와 결혼, 한쪽은 신라 여인과 혼인이라고만 적혀 있다. 헌강왕의 딸이고 공주라면 삼국유사에 그렇게 적혀 있을리가 없기에 다른 인물로 본다. 아직까지 쿠쉬나메에 나오는 바실라 왕이 누구인지는 정확히 추측할 수 없으나 그나마 가장 근접한 인물로는 태종무열왕 정도로 예상은 되고 있지만 아직 그마저도 정확히 알아낼 방법은 부족한 형편이다.
일부에서는 쿠쉬나메 책 자체가 당시에 이슬람 제국에게 나라를 빼앗긴 페르시아인들의 염원이 만들어낸 허구에 불과하다는 주장도 있으며 이슬람 제국으로 부터 페르시아를 다시 되찾아줄 영웅을 탄생시키고자 하는 마음에서 만든 영웅 설화라는 주장도 있다. 하지만 이후 많은 학자들은 쿠쉬나메 기록이 단순한 설화라고 보기 보다는 사실적인 기록을 담은 역사로 보고 있고 기록에 나오는 상당수가 사실에 근거하고 있기 때문에 바실라의 존재는 실제로 존재하고 있다고 믿는 쪽이 더 많은 상황이다. (우리나라 사람 중에서도 신비한TV 서프라이즈에 나온 이야기라서 더 믿을 수 없다고 하는 사람들도 있겠지...ㅋㅋ...외계인, 유령 소재 아니면 그래도 믿을만함)
한국과 이란 학자들이 현재도 쿠쉬나메를 가지고 공동연구를 하고 있다고 함, 참고로 이란은 무슬림(이슬람)이지만 절대로 주변 국가 이슬람과 단순 비교 하는걸 싫어하는데 이유는 간단하다. 이슬람이 중동 지역에 뿌리를 내렸고 이란도 이슬람교를 믿지만 이란 땅의 주인은 원래 페르시아 (영화 300에서 나온 그 상대국), 페르시아를 침략해 이슬람 제국을 세웠지만 이란 만큼은 페르시아인의 후예라고 보기 때문에 다른 이슬람하고 엮이는 거 싫어한다. 페르시아를 침략해 이슬람이 전파되어 종교는 같지만 민족이 다르다고 생각하기 때문, 더군다나 과거 자신들을 침략해 반멸망 시켰던 주체들인지라 종교까지 틀렸으면 진작에 사단 났을 지역이다. (실제 민족 구성에도 차이가 있음. 우리도 이란인만을 페르시아인이라고 따로 부르기도 함.)
아직은 조금 더 구체적인 증거와 자료가 부족해 확정되지 못하다보니 논란은 계속되고 있지만 쿠쉬나메에 대한 이야기는 동화나, 소설, 연극 등으로 만들어져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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