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공진과 강감찬 덕분에 큰 위기를 벗어난 고려와 고려의 현종, 고려의 현종 목을 노리고 온 거란군에게 명문을 주며 회군을 할 것을 요청하고 그것이 받아들여 거란이 회군을 하자 회군하는 거란군 일부를 쫒아가 다시 기습 공격하여 포로로 잡혀 끌려간 백성 3천여명을 찾기도 한다. 죄송합니다~하고 사죄를 올리며 군사를 되돌려 거란으로 돌아갈 것을 먼저 요구한 고려는 그들이 회군하자 곧바로 역공을 취하는데 보통은 상상하기 힘든 일로 고려가 절대 만만치 않은 상대라는 것을 확실하게 보여준다.
조선시대 몽진(피난길)에 오른 굴욕적인 임금은 선조와 인조, 하지만 고려의 현종과는 차이가 있다.
고려의 현종은 전략적인 이유로 회피하기 위한 하나의 술책이었지만 조선의 선조, 인조는 말 그대로 피난길
고려시대 현종은 개경에서 출발해 전라도 나주까지 피난길에 오르게 되는데 그 과정에서 왕권을 미처 다지지 못하고 정변에 의해 왕위에 오른지 얼마 되지 않은 상태에서 피난길에 오르게 된 만큼 지방에서 제대로 된 대접이나 왕으로서의 권한을 누리지 못했다. 심지어 도적이 피난행렬을 습격하기도 하고 신하와, 환관, 궁녀들까지도 중간에 피난 행렬에서 벗어나 도망가는 상황, 먹는 것 조차 제대로 챙기지 못하는 수준이었다. 또한 지방에 영향을 미치지 못하는 상황이라 지방 관리들에게 무시를 당하거나 마찬가지로 관리로부터 습격을 당하기도 한다.
왕의 권위가 실추된 상황에서 몽진은 또 다른 기회이기도 했는데 환궁을 하게 되고 왕으로 다시금 정상적인 활동을 할 수 있게 된다면 충신과 간신을 가려낼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실제 진짜 친구는 내가 어려워봐야 안다고 하는 것처럼 왕이 위태로운 상황에서 끝까지 남는 충신과 배신하는 간신배는 이런 상황에서 확연히 드러나기 마련이다. 아마도 강감찬 장군이 본격적으로 역사 속 인물로 등장하게 된 것도 바로 왕의 몽진에서 충신으로 인정 받았기 때문으로 보인다.
지방의 관아들이 돕기는 커녕 배신, 배반이 만연했던 왕의 피난길에 공주 절도사 김은부는 달랐는데 끼니조차 거른 왕을 위해 정성을 다해 모시고 후에 현종은 공주 절도사 김은부를 잊지 않고 다시 찾게 되는 인연을 맺는다. 역시 사람은 어려울 때 도와주는 사람은 절대 잊지 않는 법
거란이 회군했다는 소식에 다시 개경으로 돌아가는 현종, 현종은 돌아가는 길에 일부러 여러지역을 두루 살피며 민심도 살피면서 돌아가는 고행을 시작하는데 그 과정에서 피난길에 큰 도움을 줬던 공주 절도사 김은부를 다시 찾게 된다.
궁으로 돌아가는 길에 공주 절도사 김은부를 다시 찾은 현종은 김은부에게 또 한번의 신세를 지게 되는데 이 때 김은부의 딸이 시중을 들기 위해 들어온다. 아버님이 폐하의 시중을 들라고 하셨습니다라는 말에 당치도 않은 말이라고 화들짝 놀라는 현종, 여기서의 시중은 A부터 Z까지 왕의 침소까지 책임지라는 뜻이기 때문이다. 제 아무리 왕이라고 해도 자신의 딸을 유희의 수단으로 제공하는 아버지는 없기 때문이다. 그만큼 피난길에 지친 왕을 위해 모든 걸 받치겠다는 충신의 마음이라고 볼 수도 있다(?)...당시로서는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그런 마음을 헤아렸는지 현종은 그 딸을 몽진길에 부인으로 맞이한다. (귀하디 귀한 가문의 집안 처자를 상대로 아무리 신하의 뜻이 그렇다고 해도 쉽게 받아들이기는 힘든 법. 그렇게 시중을 들 바에는 차라리 내 부인이 되는게 낫겠소라는 나름의 선택)
태조 왕건의 후손이자 천추태후의 조카인 현종은 어릴 때부터 위험한 상황을 많이 겪고 어려움이 많았는데 그만큼 다른 왕과는 다르게 왕의 자리에 오르기까지 부침이 많았다. 왕이 되자마자 피난길에 오른 것도 그 중에 하나, 그런 현종은 자신이 왕위에 오르게 된 것도 정변으로 오르게 된 것을 인정하며 신하와 백성들에게 허리를 낮추었는데 나도 이만큼 고생했고 알만큼 알아~하고 무시하는게 아니라 이만큼 고생했으니 나도 그대들을 충분히 이해한다라는 마음으로 자신의 부족한 면을 보충해 달라고 도움을 청하는 왕이 된다.
백성과 맞절을 하며(??) 나의 부족한 것을 힘써 도와주고 면전에서만 순종하지 않도록 해달라는 당부
왕으로서 보여주기 힘든 모습을 현종은 보여주었다. 정변으로 왕위에 오른 임금치고는 좀 다르다.
왕의 후손으로 태어나 곱게 만 자란 왕이 뭘 알아? 그냥 신하들이 다 하는거지~
이게 아니라 나도 알만큼 다 알고 경험할 만큼 겪어 봤으니 당신들도 일을 제대로 하시오 라고 말한 현종
몽진 피난길에서 겪은 충신과 간신배들에 대한 확실한 경험을 쌓은 현종은 공신에게는 충분한 포상을
그리고 배신자와 간신배들에게는 엄중한 처벌을 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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