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딩 시절 오토바이에 빠져 배달 알바를 한 적이 있다. 나에게 중국집 배달은 용돈도 벌고 오토바이도 신나게 탈 수 있는 해법으로 결국 그 알바비로 나는 나만의 애마를 마련해 폭주족(?)이 되었다. 그 때 알바를 하면서 굉장히 많은 걸 느꼈는데 먹거리X파일에 나온 중국집 배달그릇의 수거 현장을 보고 옛 추억이 떠올랐다.
나 역시 당시에 이렇게 더러운 그릇은 생전 태어나서 처음 봤다. 물론 설겆이를 해서 깨끗하게 다시 사용하지만 집에서 쓰레기통 취급 받는 그릇을 세척해서 먹는다면 어떨까?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면서 아무리 깨끗하게 설겆이를 해도 쉽게 먹으려고 하지 않을 것이다. 이처럼 자신이 내놓은 더러운 그릇은 결국 언제가는 자신이 다시 먹게 되는데도 그걸 인식하지 못하고 먹은 그릇을 함부로 취급한다.
일주일 정도 알바를 신나게 하면서 배달 오토바이로 싱싱 달리던 어느 주말, 그릇 수거를 위해 방문한 한 아파트에서 놀라운 광경을 목격했다. 그릇이 깔끔하게 설겆이가 되어 있었고 신문지로 먼지가 묻지 않게 포장되어 있었던 것, 사실 더러운 그릇만 보다가 처음 본 거라 흠칫 놀라웠는데 확실히 수거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확실히 깨끗하니까 수거 하기도 편리하고 위생적이었다.
수거를 하고 나서 가게 주인에게 이 사실을 말했더니 종종 그런집이 있는데 많지는 않다며 그런 집은 잘 먹었다는 말도 잘 해준다며 그런집은 서비스 하나라도 더 챙겨준다고 하셨다. 먹거리 X파일에서도 실제 실험을 통해 착한 손님이 되면 대우 받는게 달라지는지 확인을 했는데 내가 경험한 것과 방송에서 보여준 것과는 차이가 없다.
내가 바로 저 배달부로 고딩 알바를 해 봤기에 저 감정과 신기함을 잘 아는데 알바가 끝날 때까지 처음 딱 그 집만 계속 그릇을 세척해서 내놓았고 다른집은 자기네 집 쓰레기까지 같이 내놓은 경우도 가끔 있었다. 물론 입 닦은 휴지는 배달부에게 주는 당연한 선물(?)이다. 배달을 하게 되면 현관문 앞에서 철가방을 열고 그릇을 꺼내주어야 하니 당연히 음식 내용과 주문 내용 확인이 가능하다. 설겆이를 해주는 그 집의 경우 배달표에는 만두가 없는데 철가방에 만두가 항상 들어 있었다. 중국집 사장님이 항상 챙겨주는 서비스 였던 것이다.
배달부와 배달지의 손님이 만나는 건 순식간이다. 그것도 현관 앞에서 하이바와 마스크로 가려져 서로 얼굴 확인도 어렵고 손님도 대부분은 철가방과 내놓은 그릇을 보기 위해 고개를 숙이고 있는 편이라 (원래 서로 눈 안마주치게 된다) 얼굴 보기가 사실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배달부가 그 집 사람을 기억하는건 확실히 신선한 충격을 주었기 때문이다.
나 역시 그 집 사람들 얼굴은 다른 집은 몰라도 기억했다. (지금은 기억 안난다. ㅠ.ㅠ) 젊은 신혼부부로 보였는데 항상 밝은 미소로 반갑게 맞아주었고 돈도 꼭 두손으로 주셨다. 맛있게 드세요라는 말을 원래 배달부가 잘 안하는 편인데 나 역시 알바시절 마찬가지로 그런 멘트 따위는 청나라로 보낸지 꽤 되었지만 그 집에서는 맛있게 드세요라는 말이 자동으로 나왔었다. 좋은 사람은 멘트로 남다른 법, 잘 먹겠습니다. 고맙습니다라는 예상 답변은 여지없이 틀리고, 오토바이 운전 조심해서 들어가세요~ 추우신데 배달 시켜서 죄송해요~, 항상 맛있게 잘 먹고 있습니다. 안전운전 하세요~ 이런 식이다.
한번은 주문이 엄청 밀려 굉장히 늦게 배달이 갔는데 다른 집에서 욕은 욕대로 배달부였던 내가 다 먹고 있는데 이 집만큼은 그런게 없었다. 다른 집은 멍멍 짖는구나 하고 미안함 감정도 솔직히 들지 않았지만 (난 알바를 하는 고딩 배달부였을 뿐이니까..주문이 밀린건 주방문제였다) 이 집은 확실히 나도 미안함이 들었다. 늦어서 죄송합니다~ 라고 시작한 내 말에 주문이 많이 밀려있나 보네요~ 늦을 수도 있죠 하면서 넘어가주시는데 역시 사람이 다른 집은 뭐가 달라도 다른 법이다.
그때 이후로 나는 고딩 졸업하고 나서부터 지금까지 중국집 요리 시켜먹고 설겆이 해서 내놓는다. 뭘 바라고 하는건 아니고 내가 경험했으니...
서비스 군만두는 받은적이 없다. 그런데 이건 있다. 탕수육 소를 시켰는데 조금 크다 싶은 녀석이 온 날이 있었다. 배달이 잘못 왔나 싶기도 했는데 짜장면도 양이 평소보다 많았다. 다음에 기회되면 물어봐야 겠다 싶어 3~4차례 더 시키고 나서 나중에 배달 아저씨게 물어보니...배달하시는 분이 사장님 본인이란다. ㅡ.,ㅡ;;;
깔끔하게 설겆이해서 내놓은 집은 20년 장사하면서 처음 봤단다..헐~ 자주 먹던 단골이기도 해서 서비스로 군만두를 주시려다가 아예 기본 양을 더 주기로 하셨었다는 말에 짜장면과 탕수육은 항상 기본을 시켜도 곱배기로 주셨던 것이 맞았다. 댓가없이 한 행동이지만 서로를 이해하고 서로를 생각하며 하는 행동은 각자가 댓가없는 선의의 행동을 부르는 법,,,
자신의 집 그릇을 소중하게 생각해주어서 감사하다는 말과 함께 다른 집들도 설겆이를 해서 내놓는다면 수거하는 사람 입장이나 식당 입장에서도 위생적인 면이 더 높아지지 않을까 싶다는 의견을 주신 사장님,,참고로 사장님께 물어보니 설겆이를 해놓아도 외부에 있던 그릇이라서 기본 세척은 식당에서 다시 한다고 한다. 물론 세제없이 세척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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