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초등학교 저학년 시절 여깡패(?)와 관련된 추억이 있다. 이것도 추억이라면 추억이라 할 수 있는데 당시 어린 나이였던 나에게는 당시에는 꽤 큰 충격이자 공포였던 사건이다. 때는 방과 후 집으로 가기 위해 운동장을 가로 질러 정문을 향해 가던 중이었다. 아직 학교 안이었고 운동장 중앙을 이제 막 통과해 정문을 코 앞에 두고 있었다. 기억에 없지만 당시 단짝이었던 친구와 함께 걸어가고 있었는데 앞에서 깻잎머리를 하고 있는 누나 두 명이 우리쪽을 향해 걸어오고 있었다. 성인은 아니었고 지금으로 따지면 비행 청소년이라 할 수 있는데 지금이야 하는 짓이나 외모만 봐도 대강 부류 탐지가 되지만 3학년 올라가고 나이 앞자리가 두 자릿수로 올라가는 미성숙한 나로서는 쉽게 구분하기는 힘들었다.
야, 너 이리로 와봐~
그 누나가 나와 내 친구를 불렀다. 그리고는 배가 고파서 요 앞 분식점에서 떡볶이 좀 사먹으려고 하는데 돈 있음 꺼내보라고 했다. 돈 내놓으라는 말에 어린 나이에도 "앗! 나쁜 사람이다"라는 걸 직감 했지만 꼼짝할 수 없었다. 이런 경험이 처음이기도 했고 두 누나가 인상을 너무 더럽게 찡그리며 껌을 깨짝깨짝 씹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순간 내 친구가 도망을 갔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돈 없어요 그러면서 바로 뒤돌아 뛰어를 했다. 순간 나 혼자 두고 간 것에 배신감이 들었지만 나도 도망갈까봐 그 누나들은 내 뒷덜미를 잡았고 난 멘붕에 빠졌다.
돈 없는데요....
나의 주늑든 말에 누나들은 헛웃음지며 그 유명한 멘트를 날렸다.
뒤져서 돈 나오면 10원에 한대 씩 맞는거다, 맞기 전에 알아서 꺼내 봐
그렇다. 나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뒤져서 나오면 10원에 한 대를 처음 당해봤다. 그것도 초딩 3년차에 말이다. 한층 쫄아 있던 나는 덜덜 떨면서 정말 없어요를 반복해 답했고 누나들은 이 녀석 안되겠네~하며 내 주머니를 뒤질 요령이었다. (실제로 가진 돈이 100원도 없었다) 돈은 없었지만 혹시라도 돈 없다고 때릴까봐 있어도 무섭, 없어도 무섭 그 자체였다.
그 순간 도망간 줄 알았던 녀석의 목소리가 뒷통수에서 들린다. 그렇다, 도망간 녀석은 날 버리지 않았다. 바로 학교 건물로 들어가 교무실에 "운동장에 어떤 사람들이 겁 주면서 돈 뺏어요"라고 말했고 학교가 막 끝날 때라 선생님들이 모두 있던 시간대였기에 남자 선생님들이 즉각적으로 출동해 운동장에 달려왔던 것이다.
몽둥이까지 들고 뛰어 오는 남자 선생님들을 보며 여깡패 누님들은 엄마야 하고 도망을 쳤고 선생님들은 모두 정문 끝까지 쫒아갔다. 물론 잡지는 못했다. 워낙 멀리서 뛰어 오는 걸 누님들이 봤고 운동장 중앙에 선생님이 왔을 때 누님들은 이미 정문을 나갔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학교 앞에 기찻길이 있어 수시로 오는 기차 때문에 기차 오는 타이밍이 절묘하면 영화나 드라마처럼 기차가 다 지나길 그냥 쳐다보며 기다릴 수 밖에 없다. 기차가 다 지나고 나면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건 그 때도 똑같다.
난 그 순간 긴장이 풀리면서 엉엉 울었다. 그 이후 학교에는 나쁜 형과 누나가 나타날 수 있으니 용돈을 많이 가지고 다니지 말고 2인 이상 함께 다니며 이상한 사람을 보면 반드시 학교로 돌아와 신고하라고 했다. 당시에는 비행 청소년 하면 학교를 다니지 않는 남자(형)를 주로 생각하기에 모두가 여학생의 비행에 대해 의아해 했는데 그래서 여깡패가 출현했다라는 소문은 나의 사건 덕분에 꽤 오래 이어져 갔다.
오늘은 이와 관련한 범죄 용어에 대해 알아보기로 한다. 절도와 강도의 차이처럼 강취와 갈취, 절취 등도 비슷하면서도 다른 말이 있다. 일단 강도와 절도에 대해 초간단 정리를 하면 절도는 물건 주인 몰래 훔치는 행위고 강도는 물건 주인이 있어도 겁을 주어 뺏는 경우다.
갈취라는 건 대부분 어느정도 알고 있다. 남의 물건을 뺏어 가진다는 의미 그 자체는 많이 안다. 그러나 강취와 갈취는 다르고 절취 역시 다르다. 나의 어릴 적 경험과 빗대어 사례를 구분해 보면 다음과 같다.
갈취는 물건이나 돈을 빼앗는 것 자체는 같지만 뺏기는 사람이 협박이나 툭툭 치는 식의 신체 접촉(폭행)을 당하여 겁을 먹고 스스로 내어줄 때 쓰는 말이다.
강취는 강도가 하는 행위와 같은데 뺏기는 사람이 겁을 먹고 스스로 내어준게 아니라 집이나 물건을 직접 뒤져서 빼앗는 경우에 해당한다. 똑같이 빼앗기는 것은 같지만 겁을 먹은 내가 먼저 내어주냐 강제로 직접 빼앗느냐의 차이라 할 수 있다.
돈 내놔!
돈 없어요!
뒤져서 나오면 10원에 한 대씩 맞는다!
상황 1 : 때리지 마세요, 여기 있어요, 가져 가세요라고 하고 건네주자 돈 받고 가버림
상황 2 : 싫어요 뺏지 마세요, 하면서 버티다 결국 상대가 뒤져서 내 돈을 뺏어서 가버림
강도를 당했다고 해서 무조건 강취 당했다고 볼 수 없는게 영화나 드라마를 보면 외진 곳에서 강도를 만나 목숨만 살려주세요 하고 스스로 지갑을 꺼내어 먼저 건네주는 경우가 있다. 때로는 협박과 겁을 주면서 총이나 칼로 위협을 하며 돈을 달라고 하는데 결국 내가 내 손으로 꺼내어 건네주면 그건 강도라 해도 강취가 아닌 갈취에 해당한다.
반대로 끝까지 핸드백이나 가방을 부여 잡고 버티면서 질질 끌려가다 결국 엄청 두들겨 맞고 가방을 "뺏기면" 강취가 된다. 물론 갈취와 강취는 그래서 처벌도 다르다.
갈취는 공갈(협박)에 의해 스스로 내어준 것이라 공갈죄 행위에 해당하고 강취는 공갈, 협박 및 폭행 등 다양한 요인과 함께 결국 끝까지 뺏기지 않으려고 하는 걸 강제로 빼앗는거라 강도죄에 해당한다. 전자는 공갈범이 되고 후자는 강도범이 된다.
그럼 절취라는 건 뭘까? 절도와 강도의 차이처럼 절취 역시 같다. 절도는 몰래 훔치는 행위, 강도는 강제로 빼앗는 행위라 절도는 사람을 대상으로 하지 않고 물건 자체를 훔치지만 (무기도 불필요), 강도는 사람을 대상으로 강제로 뺏는거라 수위가 다르다.
절취는 절도 행위를 말하는 것으로 몰래 가져가면 그 자체가 절취 (절도범), 달라고 해서 겁 주고 건네 받으면 갈취 (공갈범), 달라고 했는데 주지 않아서 강제로 뺏으면 강취가 (강도범) 된다. 그래서 죄명도 다르고 처벌도 다르다. 그러니까 나중에 꼭 잡아서 처벌 받게 하거나 억울하다면 잡아도 상황에 따라 처벌 기준과 내용이 달라지기에 갈취 보다는 강취가 되도록 유도하는게 나을 수도 있다. 직접 내어주는 것 보다는 상대가 스스로 뒤져서 직접 훔쳐가게 말이다. 물론 사람 목숨이 돈보다 중요하기에 어느정도 상황을 보고 충분히 유도할 수 있다는 판단이라면 말이다.
돈 내놔!
돈 없어요!
뒤져서 나오면 10원에 한대 씩 맞는다!
협박과 폭행 등으로 무서워서 내가 스스로 건네준다 (갈취, 공갈범)
협박과 폭행에도 주지 않았더니 결국 강제로 뺏는다 (강취, 강도범)
뺏기고 정신이 없는 사이 뒤에서 다른 누군가가 몰래 떨어진 내 물건을 가져간다 (절취, 절도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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