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신작을 소개하는 방송TV에서 처음 이 영화의 존재를 알게 되었다. 생계가 어려운 사람들의 이야기였고 정부의 사회 복지 서비스망에 기대를 품지만 도움을 제대로 받지 못해 어려운 사람들끼리 서로 다독이며 살아간다는 대략적인 내용이었다.
주인공은 심장이 약해 일을 할 수 없는 노년의 남자였고 그에게 남은 유일한 수입이자 희망은 국가의 복지지원 뿐이다. 생업에 종사할 수 없는 남자가 정부에서 주는 수당을 받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내용과 마찬가지로 정부 수당을 원하는 또 다른 미혼모 가정과 만나는 이야기를 다루었는데 생각보다 여운이 깊다.
영화 소개를 보고 내용 자체가 단조로워서 특별히 보고 싶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는데 황금종려상을 받았다는 내용을 알고는 생각이 좀 달라졌다. 평점은 믿을 수 없어도 국제적인 상을 받은 영화는 그래도 기본 이상은 하는 법, 나중에라도 꼭 한번 잊지말고 받아야겠다고 생각했는데 드디어 이번에 이 영화를 보게 되었다. (안 봤으면 오지게 후회했을 영화다)
국내 관객들의 평점은 8점대, 전문가 평점 역시 8점대로 아주 후한 평가를 받았다. 일반인과 전문가 모두에게 8점대라는 점수를 동시에 받는 걸 거의 본 적이 없는데 이 영화의 힘과 저력을 그대로 보여주는 제대로 된 평점이라고 본다.
화려한 스킬이나 연출, 세계적인 최고의 인기 스타가 나오지 않아도 영화 자체의 흡입력이 굉장하다. 다른 나라의 사회 시스템과 복지망 이야기라고 해도 전 세계 사람들이라면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들로 구성되어 있고 시스템이 달라도 사람 살아가는 이야기는 다 비슷하기 때문에 이질적인 감정도 크지 않다. 오히려 공감이 더 된다.
정부 사회복지망의 민간위탁 문제는 이 영화에서도 잘 드러난다. 상담을 위한 전화를 걸었지만 1시간 30분이나 통화음과 안내 멘트만을 듣고 기다려야 하는 현실이 우리와 크게 다르지 않고 다른 담당자나 부서로의 전화 이동 연결은 역시 여기서도 마찬가지다. (돌리고 돌려 다른 사람과 연결해도 결국 제대로 된 답을 못 찾는 건 똑같지만)
처음에 주인공이 찾아 간 노동부처의 사무실 장면은 암 유발 그 자체다. 호박 고구마 100개를 먹은 것보다 더 갑갑했다. 심장 질환으로 근로능력을 상실한 사람에게 질병수당을 지급해야 하는데 수당을 지급하는 업무를 관장하는 심사관은 그에게 노동력이 있다고 보고 질병수당을 거부한다.
질병수당이 안되어 결국 실업수당을 받으려고 했더니 몸이 아파 구직자 활동이 불가능하다. 구직자 활동을 해야 실업수당이 나오는 만큼 취업을 위한 활동이 필수인데 아픈 사람에게 취업은 쉬운 일이 아니다. 당연히 그런 몸 상태에서는 실업수당이 아닌 질병수당을 받아야 하는데 실업수당 담당자는 질병수당을 받으라고 권유하고 질병수당 담당자는 실업수당을 받으라 권유하는 꼴이라 제3자인 내 관점에서도 주인공의 입장처럼 답답 그 자체였다.
큰 소란을 피운 것도 아니고 로봇처럼 형식적인 업무만 해대는 노동부서의 사람들에게 쓴소리 한번 했다가 보안직원들에게 쫒겨나기 쉽상이고 마음을 추스려 다시 찾아간 곳에서는 여전히 앞뒤 꽉 막힌 공무 집행자들의 모습에 주인공의 인내심은 한계치까지 올라간다. 그러다 우연히 만나게 된 또 다른 가족,
길을 몰라 해매다가 겨우 몇 분 늦었다는 이유로 수당제제를 당하고 당장 먹고 살 걱정부터 해야 하는 위급상황임에도 규정과 조항을 들어 매몰차게 박대한다. 사회복지 시스템이 왜 있어야 하고 누구를 위해 만들어졌으며 본질적으로 왜 가동되야 하는지를 모두 잃어버린체 공무를 수행하는 자들은 서로 밥벌이 수단으로만 생각하며 일을 보고 있었다. 그런 모습에 나는 영화를 보는내내 화가 치밀었다.
어려움에 빠지고 생계 위협을 받는 사람들을 도우라고 만든 사회망이 전혀 그런 사람들을 보호(케어)하지 못하고 있었고 오히려 귀찮은 존재로까지 여기는 모습에 불편함 감정은 가득 쌓여만 갔다.
그래도 웃음을 잃지 않고 희망을 잃지 않고 행복을 추구하며 열심히 살아보려고 하는 이들의 모습이 너무 좋았다. 영화를 보다보면 우리 대한민국 현실도 크게 다르지 않다고 본다. 농민을 위해 농협이 존재하지만 농협은 농민 보다는 증권, 부동산, 은행놀이에 더 치중하고 빠져 본질을 잃어가는 모습처럼 우리네 모습과 영화 속 이야기와 크게 다르지 않다.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 만든 재단은 어려운 사람을 돕는 일은 뒷전이고 오히려 그 재단에 일하는 사람들의 인건비와 근무지로 활용되는 일도 꽤 잦은데 수백억원의 재단기금에서 정작 꼭 써야 할 곳은 몇억만 쓰고 매년 수십억원의 인건비로 재단기금을 축내는 꼴과 크게 다르지 않아 감정이입은 충분하다.
영화를 보기 전에 <나, 다니엘 블레이크> 라는 영화 제목이 주는 의미와 뜻을 전혀 이해하지 못했지만 영화를 다 보고 나서는 이것보다 더 적절하고 잘 만든 작명이 따로 없다. 나라는 존재, 사회 구성원으로서의 나, 나라는 사람이 이 세상에 살고 있고 존재하고 있음을 단적으로 표현한 제목인데 꽤 눈물겨운 표현이면서도 멋진 제목이다.
중간 중간 나오는 다른 이웃들의 모습, 평범하면서도 익숙한 모습들 속에서 들여다 보지 않으면 전혀 알 수 없는 생계 곤란자들의 삶은 눈물겹다. 그게 인생을 포기한 사람들이 아닌 희망을 갖고 손을 내민 사람들의 모습이라 더 아프다. 이 영화를 보면서 눈물샘이 터질 것 같은 느낌이 들어 절대 울지 않으리라 맹세했지만 그 다짐은 오래가지 못하고 휴지를 찾아 펑펑 울면서 영화를 봤다.
울다가 웃으면 똥구녕에 털 난다고 하는데 그런거 신경 쓸 따위도 필요없이 그저 그들이 살아가는 모습과 감정에 이입되어 나도 그들의 한 일부분이 될 뿐이다. 내가 만약 저렇다면? 내가 만약 저 상황이라면, 내가 도움을 요청했지만 그 누구 하나 도움을 주지 않는다면...끔찍한 세상이다.
음식을 나누어주는 자원봉사단체와 그 곳에서 봉사하는 분들의 모습은 기존의 장면과 상당히 대조적이다. 무엇이 중요하고 무엇이 본질인지 한번에 보여준다. 다독여주고 토닥여주고 쓰담쓰담 해주는 그들의 모습이 노동부서가 아닌 허름한 식량 창고라는 것에 울분이 쌓인다.
괜찮아 힘내~, 잘 될꺼야, 기운내...노동부서에서 듣지 못한 말을 여기서는 쉽게 듣지만 쉽게 듣고 말한다고 해서 형식적인 대화는 절대 아니다. 진심이 느껴지고 마음이 느껴진다. 끼니를 걱정해야 하는 삶, 하루 종일 굻어서 식량구호품을 받았음에도 그 자리에서 몰래 까먹다가 들켜 우는 장면, "너무 배가 고파서 먹었다"는 여자의 한 마디에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훔친 것도 아니고 먹으라도 담아준 장바구니속 캔을 당장 까먹을 정도로 배가 너무 고팠다는 상황이 너무 슬프다.
영화를 본 사람들 중에 고위 공직자들은 이 영화를 다른 공무원들과 함께 보기도 했다는 기사 내용이 몇 개 보인다. 공무원들이 봐야 할 필요성이 있다하여 단체 관람을 상급자가 추천한 경우다. 누가봐도 이건 일반인 보다는 사회 시스템의 축을 담당하고 있는 공무원 집단이 꼭 봐야 할 부분이 크다. 나 역시 이 영화는 공무원이거나 공무원이 되려는 사람이라면 꼭 봐야 한다는 생각이 간절했는데 사회복지망이 잘 되어있든 잘 되어있지 않든 상관없이 인간의 본질과 내면을 담은 사회 시스템과 복지망의 목적과 방향에 대한 고찰로서도 충분하기 때문에 공직자에게는 필수 관람 영화로 추천하고 싶다.
아파서 일을 못하는 사람에게 질병수당과 실업수당을 다 주지는 못해도 둘 중 하나는 확실하게 보장이 되고 지원이 되야 하는데 여기서도 안되고 저기서도 안되는 말도 안되는 상황, 그리고 누가봐도 형편이 어렵고 누가봐도 지원이 절실한데도 매몰차게 신경을 쓰지 않고 오로지 업무 프로세스에 의한 규정에 따라 움직이는 공무 집단의 행태는 많은 것을 보고 느끼게 해준다.
사람과 사람이 아닌 사람과 로봇의 대화라고 해도 다르지 않을 정도, 주인공 다니엘의 인간 존립과 존재를 말하는 영화지만 한 편으로는 복지망의 존립과 존재 자체도 함께 버무려 잘 표현해내고 있다. 이게 선진국인 영국의 이야기라는게 더 놀랍지만 우리나라로 대입해도 크게 다르지 않다는 감정이 든다는 것도 놀라운 광경이다.
마지막 후반부에는 그래도 희망을 잃지 않고 용기를 잃지 않고 나의 존재와 인간다움을 표출하는 자에게는 도움의 손길이 존재한다는 것도 잊지 않고 잘 보여준다. 그래도 사람이 살아가는 세상이 전부 각박한 것은 아니고 모두가 다 병맛으로 근무를 하는게 아니라 구제, 구난, 구호도 존재한다는 걸 끝까지 보여주지만 마지막 엔딩의 전혀 예상하지 못한 결말은 충격 그 자체다. 정말 말도 안돼!! 라며 땅을 치며 원통함을 느꼈다.
영화는 10점 만점에 10점, 수우미양가에서 "수", 에누리 없고 특별히 뭘 따지고 넘어가면서 영화의 단면을 분석할 필요도 없다. 그냥 있는 그대로, <나 다니엘 블레이크>라는 제목처럼 인간이 인간답게 살면서 인간으로서 대접받고 인간으로 최소한의 삶을 살아가는 모습을 우리 모두가 함께 이룩해야 한다는 진리만을 깨달을 뿐이다.
울지 않으려고 했지만 울었고 슬퍼하지 않으려고 했지만 너무 슬펐다. 영국이라는 잘 사는 나라의 문제가 아니라 사람의 문제라고 본다, 점점 각박해지는 사회생활 속에서 희생과 봉사는 말 그대로 "자원봉사"밖에 없는 실정이다.
남자가 가져야 하는 덕목 중에서 7가지 항목이라는게 있다. [용기] [명예] [성실] [충성] [의무이행] [존중] [헌신적인 봉사] 이 7가지가 남자라면 가져야 할 덕목으로 꼽는다. 여기에 나온 주인공은 7가지를 모두 갖추었지만 인정 받지 못했고 이 영화에 나온 다른 남자들은 이 덕목을 갖추지 못했음에도 잘 먹고 잘 산다. 그게 아쉽다.
존중 받지 못하는 사회, 명예롭지 못한 사회, 성실이 인정받지 못하는 사회, 충성과 의무, 봉사만을 강요하는 사회의 단면을 본 것 같아 마음이 불편하다 못해 아프다. 청소년에게 추천하는 영화, 공직자라면 꼭 봐야 할 영화, 사회복지망과 연계된 삶, 혹은 사회복지망을 전담하는 복지 서비스 담당자들이 꼭 봤으면 하는 영화, 그리고 인간 존중과 인간의 본질을 새롭게 이해하고 깨닫고 싶은 사람에게 꼭 추천하는 영화다, 기립박수 받을 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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