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에는 드물지만 예전에는 천방지축마골피라고 해서 성씨를 가지고 놀리는 경우가 있었다. 천씨, 방씨, 지씨, 축씨, 마씨, 골씨, 피씨 성에 대한 이야기인데 우리나라에서 흔치 않고 이 성을 가진 수가 많은 편이 아니라서 더더욱 그렇게 믿는 사람이 많았다.
어른들의 가정교육이 무서운 것이 요즘에도 이걸 아는 아이들이 있다는 것이다. 아무래도 사춘기 청소년 시절에는 절대 아니라고 해도 아니 땐 굴뚝에 연기날까하는 속담처럼 아니라고 백번 말해도 찜찜해 하기 마련이고 그게 아니라면 이런 도시 전설이 생길 일이 없지 않냐고 반문까지 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래나 저래나 아쉬운 대목이다.
딱 잘라 말해 오히려 반대다, 천방지축마골피는 옛 용어로 "귀족"가문이며 양반 가문 중에서도 끝판왕을 날리는 가문들이다. 물론 내가 이런 천방지축마골피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된 것도 우리 외가 때문인데 우리 외가가 이 중에 하나다. (그렇다고 우리집이 잘났다~ 이런 거 절대 아니다. 다만 쓸데없는 오해는 하지 말자는 이야기)
초등학교 시절 반에 피씨가 있었다. 천방지축마골피와 상관없이 피라는 성씨가 워낙 특이한 건 사실, 더군다나 여자 아이였기 때문에 감수성에 상처를 받는 경우가 더 많았는데 하루에 한번 이상 울지 않으면 안 될 정도로 그 여자 아이는 매일 울었다. 학창시절 내내 놀림을 받다보니 적응이 될 법도 한데 졸업하는 그 순간까지 놀림의 대상, 더군다나 내가 초딩 시절에는 천방지축마골피가 꽤 알려진 시절이라 그것까지 덧붙여서 놀림을 당하느리 그 아이는 정신이 없었다.
당시 선생님도 딱히 제재를 하지 않았고 (ㅡ..ㅡ;) 놀리는 아이들을 꾸짖거나 혼내는 경우가 드물어서 의아해 했는데 반 친구중에 하나가 선생님에게 천방지축마골피는 정말로 쌍놈 집안이냐고 물었더니 쌤이 그렇다라고 한방에 말씀하셔서 (이건 빼박) 다음날 그 여자아이의 엄마가 학교로 찾아온 적도 있다. 선생님도 선생님 나름이라 그 시절에는 선생님이라고 해서 다 좋은 분만 있는 건 아니다.
그리고 그 아이의 엄마가 찾아왔다고 하면 요즘에는 학교에서 난리가 났겠구나 싶지만 그 친구 엄마는 선생님에게 줄 선물을 챙겨서 연신 굽신굽신, 아마도 집에서 울고불고 난리 친 딸 아이 때문에 걱정되서 오기는 했는데 예전에는 학부모에게 선생님은 집안 어르신보다 어려운 분이라 함부로 하는 건 드문 케이스, 아마도 우는 딸한테 미안하고 체면을 위해서라도 학교가서 선생님 혼내주겠다고 말만 하고선 인사만 드리고 간 것이 아닌가 싶다. 선생님의 그림자도 밟으면 안된다는 시절이 분명 있었고 친구 엄마는 연신 굽신굽신
막판에 6학년 담임쌤이 울고 있는 그 여자아이에게 (징하게도 나랑 같은 반이 자주되었다) 뭔 일이냐고 물었다가 천방지축마골피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수업 시간에 우리들에게 천방지축마골피는 절대 쌍놈이거나 천민이 아니다라면서 오히려 귀족 가문의 성씨로 우리나라 역사에서 큰 업적을 남긴 집안이거나 권세가문이라는 말을 해주셨는데 이걸 믿는 친구들은 거의 없었다. 이미 퍼질대로 다 퍼진뒤라..
나는 이 여자친구를 한번도 놀리지 않았다. 뭐 나도 사람인지라 우리 외가가 천방지축마골피 중 하나라서 내가 누굴 놀릴 처지가 아니었다. (외가=충주지씨) 괜히 우리 어무이 성을 물어볼까봐 조마조마 했던 것이 더 크다. 어무이께 천방지축마골피 이야기를 했더니 쓸데없는 소리 한다고 혼쭐이 났는데 아무래도 당사자이다 보니 그런 답변이 나온 것이다라고 생각해서 나름 잔머리를 쓴 것이 아부지께 물어보는 전략을 구사했다. (^^;;;)
아부지께서도 할 짓 없는 놈들이 그런 소리를 한다며 그게 정말이면 엄마가 아빠한테 시집을 어떻게 왔겠냐며 말도 안되는 풍문에 신경 쓰지 말라고 하셨다. (우리 본가도 나름 족보가 쫌~있는 집안이다) 아버지 고향에는 종친회 모임도 여전한데 특히 친할머니가 워낙 강경하고 오리지널 조선시대 여인상의 쪽진 머리에 한복 곱게 입고 항상 "비녀"꽂고 다니시는 분이라 큰어머니들이나 우리 어무이나 고모네 고모부나 시집, 장가 올 때 호락호락하지 않았고 나름 다 검증을 통과한 분이라는 설명을 해주셨다. (요즘도 집안 어르신들은 이런 걸 따지는 분이 아직 있기는 하다)
천방지축마골피를 천(무당), 방(목수), 지(지관), 축(소 잡는 백정), 마(말 잡는 백정), 골(뼈를 다루는 백정), 피(가죽을 다루는 백정)이라고 많이 알고 있고 이런 이유로 천민, 상놈 집안이라고도 많이 말하곤 했다. 듣고 보면 우연치고는 풀이가 딱 맞아떨어지는데 천민 중에서도 천민이라는 백정과 연결되고 뜻 풀이도 그럴싸하다 보니 이렇게 굳어진 경우가 많다. (천민중의 천민은 백정이고 천민 중의 천민인 백정보다 더 아래이자 막장 단계는 망나니, 소나 말을 잡는게 아니라 사람을 잡는 망나니는 종 보다도 낮은 완전 끝이다, 임금이 명을 내리면 큰 칼을 들고 덩실덩실 춤을 추다 칼에 물을 뿜고 사람 목을 베어 버리던 그 망나니 말이다. - 어디가서 망나니 짓 하지마라...ㅡ.ㅡ;;)
하지만 이건 한자어로 된 이름에 끼워맞추기식 이야기라 해석하기 나름이다. 오히려 반대로 천방지축마골피를 좋게 바꿀 수도 있는 것이 함정 아닌 함정, 가만 보면 의외로 과거 우리나라에서 꽤 중요하게 여겼거나 대접을 하던 것으로 달리 할 수도 있는데 천(무당), 방(목수), 지(지관) 은 누가봐도 오히려 과거시대 대접받던 사람들이고 임금까지도 묘자리나 수도를 천도할 때 이들의 도움을 무조건 받았던 것을 안다면 그런 소리는 할 수가 없다.
축(소), 마(말), 골(뼈), 피(가죽)도 과거 시대에는 쉽게 가질 수 없고 집안의 큰 재산이 되기도 한 것들이며 소나 말을 쉽게 가질 수 있는 집안도 드물었다. 소와 말은 지금도 대접 받는 동물이다. 뼈나 가죽도 마찬가지, 귀한 장식품이 되기도 하고 가죽은 일반 사람들이 만져보기도 힘든 물품이다. 결국 반대로 귀족들이나 왕실 가문하고 연관된 것들의 나열이라고 다르게 해석해도 될 수 있는게 이런 풀이다.
무엇보다 천방지축이라는 말이 본래 따로 있어 이 말 때문에 생긴 오해로 볼 소지가 크다. 지금도 천방지축은 쓰이는 말인데 사방팔방 미친놈처럼 헤집고 다니는 경우에 천방지축처럼 날뛴다라고 종종 말하곤 한다. 이런 천방지축이 입에 붙은 상황에서 천방지축마골피처럼 천방지축에 이어지는 단어는 뭘로 해도 다 부정적이고 다 안 좋게 보일 수 밖에 없다.
애초에 이런 말이 왜 나왔고 어디서 유래했고 왜 불러지기 시작했는지에 대한 정확한 기록이 없어 여러 학자들에 의해 추정만 할 뿐인데 역사적인 상황을 토대로 정립된 건 역시 조선말기와 일제시대의 상황이다. 모든 사람에게 성씨를 갖도록 한 일제의 명에 의해 사람들이 성을 가지게 되면서 기존의 천민 이상 가지고 있던 성을 모두 써야 했는데 김이박최정처럼 워낙 많고 분파도 많은 가문들은 그 인원 수가 꽤 되기 때문에 집성촌에 살면서 누구네 숟가락 숫자까지 알 정도가 아닌 경우에는 누가 누구인지 잘 모를 수 밖에 없다.
요즘도 명절 때 제대로 대가족이 모이는 경우 누가 누구인지 잘 모르는 일이 생길 수 있는데 특히 아이나 새로 들어온 며느리, 사위 등은 집안 어르신 존함은 물론 어떤 관계인지 알아보는 것도 힘든 일이 생긴다. 하물며 2촌, 4촌, 6촌, 8촌으로 고조부까지 이어진 경우도 얼굴 보고 어울리기가 쉽지 않은 만큼 누가 자신의 가문 사람이라고 하고 다녀도 제대로 확인하기 어려운 것도 당시로서의 한계 (전화가 있어서 집안 어르신께 바로 물어보는 것도 아니고...)
물론 김이박최정이나 천방지축마골피나 고급 양반가문인 건 똑같으나 대체로 김이박최정은 왕실 가문이 많고 천방지축마골피는 일부의 왕실(외가)과 귀족 가문이 대부분인지라 옵션(선택기능)이 주어진 상황에서 성을 선택할 때 기왕외면 왕실 가문쪽을 선택하는 건 당연한 결과다. 어차피 진짜 성도 아니고 족보도 가짜로 만들어서 편입하는 판국에 이왕 할거면 왕실 가문으로 하려는 것이 사람의 심리다.
더군다니 지금도 천방지축마골피는 그 성씨를 쓰는 사람의 수가 김이박최정에 비해 상대적으로 적은 편이고 특히 집성촌이 잘 운영되는 편이라서 어디가서 이 성을 썼다가는 가짜 신분이 들통날 확률이 높은 것도 이 성을 선택하지 않은 이유가 될 수 있다. 너도 나도 쓰는 김이박최정이라면 누가 누구인지 제대로 파악하기 어려우나 천방지축마골피를 썼다가는 재수 없는 경우 제대로 신분이 들통나서 가짜 족보로 산 가짜 집안이라는 망신(개망신)을 당할 확률이 높은 건 지금도 똑같다.
어머니의 경우 이런 예가 확연하다. 어디가서 어머니 성을 누가 알게되면 대뜸 어머니 고향이 충주냐고 묻는 경우가 제일 많고 반대로 외가가 아주 오래전부터 계속 쭉 충주에 있었다라고 하면 역시 그 말에 대뜸 성을 묻는 경우가 많은데 "지"씨라고 하면 아~ 충주시에 지씨들 많제~ 유명하제~하고 답변이 돌아오는 경우가 많다. 그리곤 지씨가 아니어도 주변에 지씨 성을 가진 사람과 지인 관계거나 한다리 건너 다 아는 경우가 워낙 많아 예나 지금이나 충주 어디에 살았고 외할아버지 존함을 묻는 경우가 많다. 말하다 보면 3단계 안에 아는 사람이 꼭 나오게 된다.
초딩시절 내 친구 피씨네도 마찬가지, 지씨보다 더 적은 인구수라 어디가서 만약 피씨로 성을 가지고 살다가 다른 피씨나 피씨를 아는 사람을 만나면 아버지 누꼬? 할아버지 이름이 모꼬? 라는 말을 들을 확률이 100%, 누구네 어디 친인척인지 쉽게 파악이 가능하기 때문에 성을 임의대로 갖는다는 건 무모한 도전이 될 수 있다.
결국 상대적으로 성씨를 쓰는 사람 수가 적고 김이박최정처럼 족보 관리가 철저하지 않은 경우라도 알고 지내는 경우가 워낙 잦은 성씨들이라 자기 성이 아닌데도 함부로 쓰기 애매한 것이 이런 성씨다. 더군다나 천방지축이라는 단어가 이미 사용되고 있어서 누군가에 의해 악의적으로 놀림을 하기 편한 성씨의 조합인데다 무엇보다 시조 대부분이 중국계에 기반을 둔 성씨들이라서 가문에 진입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 지금도 이 성씨들은 중국에 많다.
더군다나 천민들의 유입으로 김이박최정 성씨 사용자가 급증하면서 천방지축마골피쪽 가문들이 김이박최정을 무시하는 경향이 생기기 마련인데 김이박최정에도 분명 진퉁들이 많은 편이라 어디서 감히!! 라는 심리전 싸움이 생기면서 마찬가지로 천방지축마골피라 깔아 뭉기는 족보 싸움, 가문 싸움도 배제할 수는 없는 상황
영조 시대(1700년대 / 고종은 1800년대 출생 임금으로 영조 시대라고 해서 오래된 이야기는 아님) 이미 족보 장사꾼들에 의해 신분 세탁이 성행하고 있었고 족보 장사꾼들이 대거 검거되는 사건도 기록되어 있는데 우리나라 성씨 인구 통계를 보더라도 당시 대부분 김이박최정으로 신분 세탁이 많았을 것이라고 짐작하고 있다.
일제시대에는 왕의 세력 기반이 되고 조정을 좌지우지하는 신하들을 휘어잡아야 하는데 그런 명망 있는 가문들을 잡아 끌어 내리기 위해서는 대대로 위세를 펼치던 이런 가문들을 깍아 내려야 할 필요성이 있고 천방지축마골피 성은 천민 성으로 백정들이 쓰는 성으로 허위 소문을 내어 그들의 명예와 가문에 먹칠을 할 필요성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이러한 사실을 모르면 백정 가문을 따르는 백성은 많지 않기 때문이고 일본 입장에서는 기존 세력이자 마지막 왕의 지지기반인 이런 가문들을 제거하는 것이 우선일 수 밖에 없다. (일종의 조선인들끼리 이간질)
천방지축마골피 성씨에 대한 간단한 정보를 알고 있다면 천방지축마골피가 상놈 집안이 아니라 꽤 명망 높은 권세 가문이라는 걸 알 수 있다. 오히려 쉽게 깔 수 없고 천하게 취급할 성씨는 더더욱 아니다. 천방지축마골피는 대부분 왕실을 도운 공신(공을 세운 신하) 집안이며 문관 보다는 전쟁터에서 공을 세운 무관 집안이 많고 일부는 왕실의 외가로 존재한다. (공을 세운 무관들의 딸들이 왕에게 시집 보내짐)
[허허...누가 누구보다 천민이라고 하는겨...떽히! 요녀석들]
[천씨]
명나라 성으로 중시조 천만리라는 무관이 조선에 파병되어 임진왜란 당시 왜군과 싸워 공을 세우고 우리나라에 귀화해 천씨를 정착시켰다. (아들 천상과 천희도 함께 왜군과 싸웠다) 임진왜란 당시 왜군과 싸운 이순신 장군을 기억한다면 중시조 천만리의 공적도 만만치 않다는 걸 알 수 있다. 의외로 방송 같은 매체에서 천씨 성을 연예인을 종종 보게 되는데 천씨가 희귀성은 아니지만 지금도 많은 편은 아니다. 천씨는 일천(천)과 하늘(천) 두 가지 성씨가 있는데 통계 기록에는 전국에 하늘(천)씨 성이 9천명이 안되는 걸로 집계 되었고 일천(천)씨는 12만명 정도 되는걸로 기록되어 있다. 일천(천)을 사용하는 천씨가 압도적인 상황
본관은 중국 하남성, 우리가 알만한 사람은 천용택(국방장관), 천정배(국회의원), 천명훈(가수), 천정명(배우), 천우희(배우) 등이 있는데 모두 일천(천)씨를 쓰고 있다. 물론 천방지축마골피에서 시작이 되는 "천"씨 하나만 가지고도 어느정도 말이 안된다는 걸 알 수 있는데 천씨에 하늘(천)을 쓰는 경우도 있지만 12만명 가량은 하늘(천)이 아닌 일천(천)을 쓴다는 것 자체가 "천방지축"이라는 한자와 글자 자체가 다르다는 걸 알 수 있다. 천방지축이 천민이라고 하는 천방지축마골피의 시작점이라고도 볼 수 있는데 천방지축의 천은 하늘(천)으로 일천(천)을 쓰는 천씨와는 전혀 다르다.
[방씨]
당나라 성으로 나당동맹(나당연합) 문화사절로 온 방뢰의 134세손 방지가 경주에 와서 정착시킨 성이다. 고려시대에는 태조를 도운 가문이며 고려시대와 조선시대 명망을 쌓은 성씨로서 역시 이순신 장군을 빼놓을 수 없는데 이순신 장군의 장인 어른이 방씨로 이순신의 처갓집이 방씨 가문이다. (당연히 이순신 장군의 아내/처는 방씨), 천방지축마골피를 깐 사람들은 이순신 장군의 사돈집(아내)을 깐 것과 다름 없는데 초딩 6학년 때 담임쌤도 천방지축마골피로 반 친구들이 놀리자 말씀 해주셨던 부분이기도 하다. 이순신 장군의 처갓집이 방씨다 이 녀석들아, 천민이 웬말이냐
개성 방씨의 경우 원나라 공주를 따라 들어온 방두현이 시조로 이 역시 벼슬을 가지고 들어온 사람이다. 클(방)자를 쓰는 개성 방씨의 경우 인구수가 매우 적다, 2000년 무렵에는 800여명이 사는 것으로 조사 되었고 5년 전 인구조사에서 약 200명 정도 늘어 1천명 겨우 존재하는 것으로 파악된다. 고려시대 강감찬 장군의 휘하에서 무공을 떨친 인물도 방씨인 방휴로 방씨 대부분이 자손대대로 가문을 빛낸 인물이 많다. (가문을 빛낸 건 곧 나라를 빛낸 것과 같은 개념) - 임진왜란, 정묘호란, 병자호란 활약
클(방)자를 쓰는 개성 방씨와 같은 태원 방씨는 중국 태원에서 온 성으로 조선시대 귀화한 성이다. 2000년 인구조사에서 겨우 52명이 남아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역시 조선시대 벼슬을 하고 공적을 세운 집안이다.
고려에서 조선으로 넘어가 조선이 새롭게 건국되자 고려에 대한 충절을 지킨 인물로 방순이 있는데 그의 아내가 파평 윤씨 집안이다. (천민이라면 어울리기 힘든 집안) 사위는 조선의 영의정, 외손자는 좌의정을 지냈다. 낙안군수 방호의는 이순신 장군의 선봉으로 노량해전에서 전사했으며 선조가 이순신의 아내인 방씨 부인을 정경부인으로 봉하며서 내린 이순신처 방씨 고신교지는 현재 보물 1564-8호로 지정되어 있다.
홍경래의 난을 진압한 이도 방우정 장군이며 방우정의 동생 방우준의 5대손이 우리가 잘아는 소파 방정환이다. 일제 시대에는 독립유공자를 많이 배출한 집안이기도 하며 유명인으로는 역설적이게 가문 명성과 걸맞지 않는 집안으로 낙인 찍힌 조선일보 방씨 집안이 있고 연예인 중에는 걸스데이 민아가 있다. (본명이 방민아) = 온양방씨
모(방)을 쓰는 경우 중국의 방씨와 한국의 방씨는 같은 집안으로 알려져 있어 중국 방씨 가문 관련 단체와 한국의 방씨종친회는 서로 교류를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모(방)씨가 아닌 방(방)씨는 고구려로 넘어온 성씨로 고구려 때 뿌리를 내렸다. 모(방)이 아닌 방(방)자로 성을 쓰는데 방(방)을 쓰는 집의 대표 인물은 작곡가 방시혁, 배우 고은아(미르 누나/방효진), 가수 미르(엠블랙/방철용), 그리고 성룡(방사룡)이 있다 남양 방씨는 고려의 개국공신 집안
그외 나라(방)을 쓰는 가문도 있는데 당나라에서 유래한 성씨로 조선시대 벼슬을 지낸 가문이다. 2천명 미만이 살아가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지씨]
지씨는 우리집 외가이니 좀 특별대우 ^^;; 일반적으로 못(지)를 쓰는 사람이 많고 슬기(지)를 쓰는 사람이 있는데 어무이 말로는 간혹 땅(지)를 쓰는 사람이 있다고 한다. 족보에 편입해서 짝퉁 신분을 가질 때 한자를 잘 모르던 사람 중 일부가 못(지)를 생각하지 못하고 흔한 땅(지)라고 생각해서 가짜로 족보를 만들고 입적할 때 땅(지)를 썼다고 한다. 물론 여기서 못(지)의 못은 쇠못이 아닌 연못이다.
송나라 성으로 진나라 한나라에서도 활약성이 큰 중국 성이다. 고려시대 사신으로 온 지경에 의해 정착한 성씨다. 고려 정착 후 대부분 높은 관직을 지낸 경우로 1등공신과 2등공신 이력은 기본 탑재다. 고려 시대에만 최상급(수상급) 벼슬만 36번을 차지한 기록이 있다. 고려 말에는 재상을 배출했다. 재상을 지낸 지윤은 딸 셋을 모두 조선 태조 이성계에게 시집 보냈는데 이방우(태조 이성계의 장남, 이방과/정종, 이방원/태종의 맏형)를 첫째 딸 사위로 두었으며 태조 이성계와 사돈 집안을 지냈다. 이후에도 성빈 지씨(둘째 딸), 숙의 지씨(셋째 딸) 등 조선 2대 왕 정종과 결혼을 시켰다.
왕실의 외가로서 지냈으며 세종시대 집현전의 대제학 최만리의 외가이기도 하다. 태조 이성계를 도운 집안인지라 조선시대 지씨 가문의 활약상이 크지만 역설적으로 이성계에 의해 권세를 누리던 지씨들이 숙청 당하면서 일부가 몰락했다. (일부라고 쓰지만 대부분이라고 말한다) 이성계하면 떠오르는 위화도 회군에서 이성계와 함께 요동정벌을 위해 이성계와 함께 출정한 장수도 지씨다. 고려시대 활약성이 크고 조선시대에는 숙청으로 인해 가문에 위기를 맞아 최상급 벼슬은 고려시대보다 한참 떨어진다. 무관 출신이 조선시대에도 압도적으로 많은데 원래 문관보다 무관 가문이기도 했지만 태조 이성계로 인한 숙청 가족사 때문인지 문관 보다는 야지에서 활동하는 무관으로 진출하는 경향이 짙고 고위직과 거리를 일정 수준 두어 가문이 더 이상 위협 당하지 않는 방향을 잡은 것으로도 해석하기도 한다.
충주 지씨 못(지)가 아닌 봉주 지씨 슬기(지)를 쓰는 경우 시조는 지채문, 고려 시대 1등공신 명장으로 고려사에 기록되어 있다. 봉주가 봉산으로 지명이 바뀌면서 봉주 지씨 대신에 봉산 지씨로 쓰는 경우도 종종 있다.
근대 인물로는 종두법(천연두 퇴치)을 만든 지석영(조선 고종), 조선시대만 급제자가 149명으로 벼슬을 지냈고 절반 이상이 모두 무과 출신으로 지씨 집안의 어르신들 기록을 보면 책 보다는 칼을 든 쟁쟁한 기록이 꽤 많다.
아부지 집안이자 나의 성씨 가문은 문과 집안으로 딱히 내세울 만한 기록은 중상위권(?) 벼슬 자체에 오른것이 대부분인데 반해 (아부지 죄송합니더~) 어머니 집안인 지씨쪽은 조선시대 내노라 하는 시절에 외척과 싸운 기록들로 장수들 이야기가 대부분이다. 요즘으로 따지면 전통적인 군인 집안, 물론 판서, 절도사, 도승지, 현감, 군수, 참판, 부사 등 알만한 벼슬은 거이 다 포진되어 있다. 본가쪽은 진사가 왜 이리 많더냐...(아부지 죄송합니더~)
대략 인구수는 16만명 수준, 충주 지씨 외 경주 지씨(시조 지원부, 중시조 지용도) 5천명 수준, 청주 지씨 (시조 지순, 지윤심, 지도관으로 3명의 시조를 각각 모시는 세계가 따로 있다) 1천명 수준, 단양 지씨(시조 지득심) 2천명 수준, 울진 지씨(시조 지서룡, 중시조 지대원, 지무원) 8백명 수준, 광주 지씨(시조 지훤/후백제 견훤의 사위) 1천명 수준, 홍농 지씨(중시조 지시염/중국 명나라 홍농에서 귀화한 지명천 장군의 셋째 아들) 인구수는 알려진 바 없다. 여기에 열거된 지씨 가문은 모두 벼슬을 가졌다.
[축씨]
현재 우리나라에는 축씨 성을 쓰는 사람이 단 한명도 없는 것으로 나온다. 다만 축씨와 비슷한 추씨는 아직 있는데 (추미애?, 추자현?) 추씨 역시 중국성이라는 점에서 축씨가 추씨와 같거나 같은데 나중에 축씨로 바뀌어 천방지축마골피로 쓰여진 것이 아닌가 추정만 하고 있다.
추씨는 송나라 추엽이 고려 시대 들어와 정착한 성씨로 명심보감 편찬자로 알려진 추적이 대표 인물이다. 명나라 개국공신 가문이며 가을(추)를 쓰는 추계 추씨 사람은 5만여명, 추나라(추)는 6백여명이 우리나라에 있는 것으로 조사 되었다. 조선시대 임진왜란 당시 파병되어 공을 세우고 전주에 정착한 것이 전주 추씨다. (추계 추씨에서 분적) 고려시대 문과 집안으로 활약했다.
[마씨]
말(마)를 사용하는 장흥 마씨와 목천 마씨가 있고 삼(마)를 쓰는 영평 마씨와 상곡 마씨가 있다. 장흥 마씨는 은나라 군자인 마완을 시조로 삼으며 백제 개국공신 마려가 득관시조(본관을 획득), 고려 마혁인을 기세조로 한다. 고려사와 조선왕조실록에 마씨가 나오며 신숙주의 숙부가 마씨(마천목) 집안의 사위다. 마천목의 외손녀는 영의정과 결혼을 했고 외증손녀가 연산군의 어머니인 폐비 윤씨다. (외증손녀라 성이 윤씨임)
인구조사에서 4만여명이 있는 것으로 파악되며 은나라가 멸망하고 고조선(이 정도면 토종 성씨라고 해도 될 듯..)으로 넘어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고구려 동명왕의 셋째 아들 온조가 위례성을 도읍으로 정하고 백제를 건국할 때 함께 한 개국공신이 득관시조 마려다.
정유재란 등 나라에 큰 일이 있을 때 큰 보탬이 되었고 고려시대 활약상이 큰 가문이다. 백제 건국과 조선 왕실 (연산군) 과도 핏줄이 이어진 집안이라 만만한 가문은 아니다. 근대 인물 중 알만한 인물로는 마광수 교수, 마해영(프로야구) 등이 있다. (요즘 핫태핫태한 배우 마동석도 떠오르는 사람이 있겠지만 마동석은 가명, 본명은 이씨, 이동석)
영평 마씨 (고려 개국공신 가문), 상곡 마씨 (정유재란 때 명나라 최고 장수 제독으로 군대를 이끌고 와서 왜군을 물리치고 공을 세운 마귀를 중시조로 하는 가문으로 명나라가 청나라에 망하자 조선으로 귀화/이름이 마귀...ㅎㄷㄷ)
[골씨]
조선시대까지 존재했다고 기록되어 있으나 현재는 단 한명도 없는 성씨로 조선시대 역사 기록에만 해도 강화 골씨가 있었고 조선 선조 때는 참봉을 지낸 골귀손의 아들 골인서가 진사시에 급제한 기록이 있다. 어떤 연유인지 모르나 후대가 완전히 끊긴 케이스
[피씨]
초딩 시절 우리반에 있던 피씨는 나에게도 익숙한 성씨, 아버지가 피바다, 동생은 피투성이라고 놀리는 경우가 종종 있었는데 내 어무이가 지씨 였던 관계로 나도 천방지축마골피의 계략에 휘말려 놀림 받지 않기 위해 눈치를 봐야 했던 상황이라 딱히 도와주지는 못했다.
송나라 때 고려로 귀화한 피위종이 시조로 고려사에 관직으로 등용된 기록이 있고 동국여지승람과 목민심서에 등장하는 인물 중에 피원량이 있다. 피원량은 고려의 문신으로 용담현령으로 있을 때 왜구가 쳐들어와 약탈을 하자 방비책을 세워 조정의 도움없이 스스로 물리쳤고 고을을 편안하게 유지한 업적이 기록되어 있다.
인구조사에서 6천여명이 있는 것으로 파악 되었으며 꽤 많은 급제자를 배출 했다. 괴산 피씨는 원나라 피경연이 시조이며 조선의 개국공신 중 한명인 피득천이 있다. 역시 벼슬로 가문을 빛낸 가문이며 주로 문과에서 빛을 발휘했다. 근대 인물로는 수필가 피천득, 유방암으로 가슴 절제를 하고 전역처리 되었다가 소송을 통해 복직한 피우진 중령이 있다. (우리나라 최초의 여군 헬기 조종사/육군소속)
천방지축마골피 성씨를 보면 알겠지만 모두 벼슬을 한 집안이고 당대 내노라 하는 가문들이다. 신분 세탁이나 족보 위조 등으로 만들 수 없는 가문들로 일찍이 벼슬에 진출 했다는 것 자체가 가볍게 볼 집안들이 아니며 대부분 중국에서 넘어온 이미 신분이 어느 정도 높은 사람이 정착한 케이스로 상당 부분 고려시대 정착했다는 걸 알 수 있다.
명망 있는 학자 중에는 족보 논란이 있을 때 중국에서 넘어온 성씨와 다른 성으로 떨어져 나온 성들이라고 하는 것들이(중국에서 대부분 넘어온 천방지축마골피도 그런 예가 됨) 대부분 알고 보면 족보 위조를 했거나 세탁을 한 성씨들의 특징이라고 한 말이 있었는데 본관이나 시조를 정확하게 따지기 어려우니까 중국에 근본이 있다고 하면서 두리뭉실 넘어갔다는 이야기다. 물론 맞는 말이지만 앞과 뒤만 자르면 딱 오해하기 쉬운 대목,
최고 권위자도 이 부분을 지적했는데 그런 점이 많다고 해도 우리나라 실록이나 역사적으로 검증된 기록물에 나오는 경우에는 족보가 없거나 부실해도 그 존재는 100% 인정해야 한다고 하신 말씀이 있다. 국가적인 기록물에도 없거나 존재 자체가 미약한 경우가 문제이지 개인이나 가문 차원에서 가지는 족보 보다 국가 기록물에 관련 사실이 등장한다면 그게 더 정확하다는 이야기다. 결국 천방지축마골피의 성씨들은 국가적인 역사 기록물에도 하나 빠짐없이 모두 상세하게 등장하는 가문이고 인물들이라 천민이거나 신분 세탁을 통한 가짜 족보 집안이 될 수가 없다.
또한 대략 정리한 것만 보더라도 대부분 이런 성씨를 쓰는 사람이 많지 않아서 쉽게 사용하기도 힘들다. 어느 하나 왕실과 연관이 안된 집안이 없고 국난이 생겼을 때 등장하지 않는 가문이 없으며 우리가 잘 아는 위인들과 사돈 등으로 이어진 집안들이라 빼박도 못하는 사실이다.
무엇보다 천방지축마골피가 원래 상놈들 성이거나 족보도 없는 천민이라고 하는 것도 말이 안 맞는 것이 고려사나 조선실록을 보더라도 천방지축마골피이 성씨들이 높은 벼슬 자리에서 활약했다는 걸 누구나 쉽게 확인이 가능하다. 주변에 천방지축마골피가 있다면 무시할 게 아니라 뼈대 있는 가문이라고 생각해야 하는 것이 맞다. 요즘 시대 누가 이런 걸 따지냐고 하겠지만 자신의 뿌리와 가문에 대한 건 사람 사는 곳에서는 다 중요한 법, 오해는 없어야 한다. 참고로 난 이씨...지난 추석 때 조카에게 이순신 장군의 후예라고 장난 쳤다가 삼촌은 경주이씨고 이순신 장군은 덕수이씨잖아!라는 말에 개망신 당한 기억이 난다. (요즘 초딩들 역사를 너무 잘알아.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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