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화제가 되고 있는 금수저 이야기.
누군가 수저론을 들고 나와서 금수저를 물고 나온 자녀들과 흙수저를 물고 나온 자녀들을 비교하려고 만든 것 같은데...나는 이 수저론에 나오는 수저를 볼 때마다 조금 다른 생각이 든다.
내가 아주 어릴적 우리 아버지는 수저 만드는 회사에 다니셨다. 지금도 그 회사 존재한다. (상장회사로 주식거래도 가능하다. 그리고 좀 다른 이야기지만 아버지의 추억 때문에 그 회사의 가치나 주가상승과는 상관없이 난 그 회사 주식을 소량 구매해 가지고 있다) 아버지를 따라 아버지 회사 사람들과 캠핑도 가고 아유회라는 것도 따라간 적이 있다. 지금도 나의 어린시절 앨범에는 그 시절 그 회사 분들이 자주 나온다.
아주 꼬맹이 시절, 유리구슬은 동네에서 가지고 노는 아주 좋은 장난감이었다. 문방구에서 팔기도 하지만 보통 유리구슬로 구슬싸움을 해서 뺏는게 진정한 묘미, 뺏는것도 중요하지만 상대방의 구슬을 뽀개버리거나 귀퉁이를 날려버려서 깨진 구슬로 만드는 것도 하나의 포인트.
어릴 때는 보통 구술이라고 많이 쓰고 표현했지만 구술은 말로 하는것 또는 오래된 무술 등을 뜻하고 동그랗게 만든 보석이나 장신구를 구슬이라고 쓴다. 구술과 구슬을 혼돈하는데 구슬이 맞다. 이 구슬치기에서 난 항상 패배자였다. 구슬을 굴려 따먹는 일반적인 것 보다는 말 그대로 구슬치기 이름처럼 부딪혀서 날려버리는 게임을 주로 했는데 내 구슬은 항상 파손되기 쉽상이고 그 파란색 구슬은 반토막이 나는게 일상이었다. 그래도 초반에는 상위권에 있었는데 어떤 녀석이 쇠구슬을 가지고 등장하면서 내 레벨은 한없이 추락했던 것이다..(망할 쇠구슬...ㅠㅠ)
구슬 살 돈도 없고 구슬을 얻기 위해 집에 있는 신문지와 병을 들고 고물상에 가 판 다음에 구슬을 사도 한계가 있는 법...ㅠㅠ
결국 구슬치기 세계에서 마이너리그에서만 활동해야 했는데 어느날 아버지께 비겁한 쇠구슬에 대한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보통 유리구슬 세계에서는 새끼 손가락만한 작은 유리구슬이 있고 (지금 생각해보면 정말 작고 귀엽다) 보통 사이즈로 가장 많이 쓰는 유리구슬, 그 다음이 왕구슬이라고 해서 츄파춥스 사탕알 크기와 비슷한 녀석이 있었는데 구슬 크기도 가치가 있어서 큰 것으로 교환도 하던 시절이다.
여기에 갑자기 등장한 쇠구슬은 작더라도 힘이 쎘고 보통 사이즈 정도만 되면 유리구슬은 다 깨부셨다. 굴리기 구슬을 하더라도 구슬이라는게 부딪히기 마련, 상대가 쇠구슬이면 내 유리구슬은 굴리는 게임에서도 상처 투성이 되었다. (쇠구슬은 그래서 쇠구슬끼리 어울리는데 그 안에 끼지 못하는 것도 상당한 박탈감이 든다 ㅠㅠ)
나의 쇠구슬 애찬론을 듣던 아버지가 쇠구슬이 얼마 정도냐고 묻길래 사탕만하다고 하니 웃으면서 내일 몇개 가져다 주겠다고 하셨다. 난 그 말을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쇠구슬을 가져다 준다고라 ~~!!!!!!!!! 오 마이 갓 !! ^^
아버지의 수저 회사에서는 금속 수저를 다듬기 위해서 쇠구슬이 사용되었다. 지금도 산업현장에 보면 광을 내거나 금속을 다듬을 때 작은 쇠구슬을 많이 사용하는데 아버지 수저회사에도 그게 있었던 것이다.
아버지가 가지고 온 쇠구슬은 사이즈가 다양했다. 그리고 난 우리 동네의 최강자가 되었다. 공급이 원활하니 쇠구슬 판매로 괜찮은 용돈벌이도 했고 친구들 사이에서 제왕의 자리에 군림했다. 들기도 힘든 유리구슬 한 주머니를 가지고 와서 쇠구슬과 교환하자는 요청이 쇄도했다. 난 그렇게 구슬부자가 되었다.
우리집에는 수저를 사 본적이 없다. 아버지가 수저 회사를 다녔기 때문이다. 예전에는 그냥 민무늬 수저를 쓰는 집이 많았는데 우리 집에는 정말 고급스러운 수저가 많았고 진열장에 장식할만한 수저 세트도 많았다. 부자집이나 백화점에서 볼 수 있는 수저세트를 명절 선물로 대신 회사에서 받아 오는 경우도 많아서 수저가 항상 많았는데 민무늬 따위는 본적도 없다. (식당에서 보는게 유일)
돈까스는 구경해 본 적이 없어도 돈까스 써는데 필요한 나이프와 포크는 집에 있었다. 수저 세트에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싱크대 서랍을 열면 서랍장 하나가 모두 수저만 있는데 엄청났다. 수저도 잘 보면 정말 고급지고 예쁜게 엄청 많다.
수저론을 보면서. 우리집은, 우리 부모님은 나에게 어떤 수저를 주었나 생각해 본다.
금수저는 당연히 아니고, 은수저, 동수저도 안된다. 어릴적 과거에는 먹고 살 만한 적도 있었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 평균으로 따진다면 흙수저에 가깝다. 근데 흙수저라는게 있나 ? 뭐 비교하기 위해서 만든 수저론이라는 건 아는데 그래도 금은동 다음에 놋수저나 철수저, 그리고 나무수저 수준으로 나가주어야 그래도 봐줄만하지 저렇게 극단적으로 해놓으면 저건 자녀도 그렇고 부모도 그렇고 씁쓸할 뿐이다.
수저론을 보면 그 기준이 오로지 돈이다. 물론 금수저라는 말 자체가 돈 많은 집에서 태어난 아이들을 지칭할 때 사용하는 것이기에 당연한 결과물이지만 저 수저론을 보면서 마냥 부럽다고 생각하거나 자신을 비교하는 잘못은 저지르지 않았으면 한다. 저 수저론에는 행복의 수치는 포함되어 있지도 않기 때문이다.
어릴적 동네에 잘 사는 집 아이들이 꽤 있었다. 말로만 듣던 계단이 있는 집(친구방에 가려면 거실에서 계단을 이용해야 한다 ㅡ.,ㅡ 보통 외국에서 흔히 보는 그런 집의 내부), 휴대폰은 커녕 집에 무선전화기도 흔치 않던 빨간색 공중전화기가 슈퍼에 있던 시절, 컴퓨터라는 것을 가지고 있는 친구들 집에 놀러가면서, 친구네 집에는 가정부라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에 놀라움을 떨치기 어렵던 시절이 있었다. 친구가 바로 소위 말하는 금수저 물고 나온 아이다.
근데 생각해보면 그 집 아이는 동네에서 나보다 레벨이 낮았다. 구슬치기 세계에서는 내가 제왕이었기 때문이다. (날 초대한 것도 그런 이유...)
아무리 돈이 많고 아무리 잘 살아도 쇠구슬을 부모님이 챙겨주지 않았기 때문인데, 자신의 용돈이 엄청났지만 나의 쇠구슬 공급책(아버지 ㅋㅋ)을 따라오기 힘들었다. 더군다나 쇠구슬은 판매용이 아니었기 때문에 문방구에서 팔지도 않았다. 비공식 루트에서만 거래되는 셈이다.
컴퓨터가 마냥 신기해도 당시에는 별로 게임기 능력조차 별로 없던 것이라 흥미가 되지 못했고 역시 딱지와 구슬이 세상을 지배하는 세상이었기 때문에 금수저 아이는 흙수저를 물고 나온 나를 초딩 졸업 때까지 부러워 했다. (나는 쇠구슬을 그 녀석의 쪼꼬렛또와 교환하는데 종종 사용했다 ^^)
종합선물셋트, 일명 과자셋트라고 해서 네모난 박스에 여러가지 과자를 섞어 파는 선물상자가 있던 시절, 5천냥과 1만냥짜리 두 박스가 항상 경쟁을 했었는데 아버지 회사의 동료분들이 집에 놀러오실 때면 항상 그 종합선물셋트를 사다 주셨지만 쇠구슬을 세계를 맛 본 뒤로는 아버지 회사분들도 과자 대신 쇠구슬을 선물로 갖다 주셨던 기억이 난다 (쇠구슬을 잘만 이용하면 과자셋트보다 과자를 더 많이 먹을 수 있었다..)
사실 땅따먹기, 구슬치기, 비석치기, 말타기, 비행기타기 등은 다 아버지가 알려줬다. 문방구에서 파는 동그란 별딱지 말고 달력으로 만드는 딱지는 아버지가 주는 최고의 선물로 아버지가 준 딱지는 동네에서 모든 딱지를 수거하는데 일등공신이었다.
진정한 금수저는 재산이 아니라 부모가 같이 수저를 들고 식사한 횟수와 같이 어울려 놀아준 횟수가 정답이 아닐까 싶다.
금수저 정도라면 딱지접기, 팽이돌리기, 연날리기, 목욕탕 같이가기 (때밀어주기와 바나나우유 사먹기) 등등처럼 어떤 걸 공유하고 놀았는지의 놀이갯수와 동네나 학교에서 친구들 사이에서 놀이로서 제왕이 되게 만들어준 횟수가 아닐까 싶다. 그런 면에서 난 부모님께 금수저를 주셨다고 생각한다.
아버지는 저녁을 항상 집에서 드셨다. 저녁 7시가 되면 나와 내 여동생은 엄마 손을 꼭 잡고 항상 버스 정거장에서 아버지를 기다렸다. 아버지는 정확하게 항상 같은 시간대의 버스에서 내리셨고 항상 버스 뒷문에서 내려오면 뛰어 달려드는 나를 들어올려 껴안아 주셨다. 아버지 등뒤로 보이는 버스안의 사람들이 우리 가족을 보는것이 항상 부끄러웠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아버지와 마중나온 우리 가족을 행복하게 바라보던 것이라는 걸 다 크고 나서야 알았다.
10번을 졸라야 겨우 한번 성공할까 말까한 통닭치킨...종이봉투에 넣어주는 그 통닭은 아버지의 퇴근길을 기다리는 하나의 재미였고 난 전혀 오늘 통닭 생각이 없었음에도 퇴근길 아버지를 마중가는 어머니가 나에게 "통닭 먹고 싶다고 아빠한테 말해보렴" 이라고 말하는 걸 보고 "난 생각이 전혀 없는데 왜 강제로 시킬까? " 라는 의구심은 성인이 되고 나서야...어머니도 그 때 통닭이 먹고 싶었던 거구나 라는걸 뒤늦게 알게 되었다.
수저론 재밌다. 근데 진짜 수저론이 관심의 대상이 되고 부모와 자식간의 비교 대상이 되는 기준이 된다면 반대로도 생각해보자.
부모에게 금수조를 물려 받지 못했다고 자책하지 말고 내가 부모님께 금수저를 드리면 되는거 아닌가 ? 너무 많이 가진자보다는 조금 덜 가진자들의 집에서 화목한 웃음소리가 더 많다고 하지 않던가? 로또가 당첨된 사람중에는 이혼하게 된 사람도 많고 부부가 맞소송을 하는 경우도 많다는데 애초에 그 로또 당첨금이 없었다면 그런 불행은 생기지도 않았을 터....
결국 수저는 행복의 수치가 아니라 물질적 수치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것이다. 우리집에는 아까 말했듯이 철수저가 엄청 많다. 그 때의 수저가 지금까지도 많이 있다. 수저만 놓고 본다면 아버지는 나에게 철수저와 쇠구슬만을 남겨주셨다. 근데 금수저가 그렇게 부럽진 않다. 있으면 좋겠지만 사람 사는게 살다보니 얻는게 있으면 잃는게 있는 법, 그들의 행복수치가 수저론처럼 비례하지 않는다는 걸 알기에 그렇다.
아마도 많은 사람들이 동수저나 흙수저에 들지 않을까? 그리고 행복한 사람들 수치도 동수저와 흙수저에 제일 많지 않을까?
적금 부어서 부모님과 함께 금은방가서 금수저 하나 맞춰 만들어 드리는건 어떨까 싶다. 금수저를 물려주지 못해 미안해 하는 부모님께 진짜 금수저를 자식이 안겨드린다면 그것도 뭐 나쁘지 않은 듯.....(나는 부모님이 쇠구슬을 주셨으니 나는 부모님께 금구슬을 ?? ㅋㅋ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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