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이 추억이 되는 순간 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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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리

기억이 추억이 되는 순간 02

by 깨알석사 2014. 6.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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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가 내 자취방에 놀러 온 날이었다. 같이 밥 맛있고 먹고 뒹굴뒹굴 놀던 중 최근 보고 있는 드라마 이야기가 잠깐 나왔다. 모니터를 주시하던 그녀는 요즘 부쩍 즐겨 본다는 미드 하나를 골라 나와 함께 시청하길 바랬다. 그렇게 우리는 침대에 나란히 엎드려 턱에 손 받침을 하고 미드를 보게 되었다.

그 미드가 워킹데드라는 좀비 드라마였다. 1편까지는 그럭저럭 재밌게 봤는데 이후에는 약간 몰입감이 떨어지더니 집중이 안된다. 반면 그녀는 아주 재밌다며 울트라 초집중을 하고 있다. 좀비 관련 작품 중에는 28일 후나 28주 후 같은 영화를 너무 재미있게 봤는데 워킹데드는 장편 드라마라 그런지 약간 늘어지는 감이 내 스타일과는 약간 거리가 있었다. 좀비라는게 계속 보면 식상함이 있는지라 이런 장르는 영화처럼 한 두시간에 결말이 나는게 좋긴 한데 그녀는 이게 더 재밌다며 푹 빠져 본다.

그 때였다. 순간의 호기심이 작동했다. 사랑하는 가족이나 연인이 등장할 때 보면 꼭 이들 중 누군가 갑자기 좀비가 되면서 일행이나 가족 본인이 좀비가 되기 전에 사랑하는 사람을 직접 죽여야 하는 등의 미묘한 심리 장면을 끌어내기 마련인데 역시 그런 장면이 나오자 나에 대한 사랑도 확인할 겸 뜬금없는 호기심이 생긴 것이다. 내가 만약 저 미드나 영화 속 이야기처럼 좀비가 된다면 나를 바로 킬할 것인지 아니면 묶어두고 살려둘 것인지에 대한 원초적인 질문, 살려주면 그 자체로 목숨보다 나를 더 사랑하는구나 하고 만족하는 거고 죽인다면 그 자체로 어쩔 수 없는 상황을 이해해 그런가 보다 하고 넘어가겠지만 그래도 사람의 마음이라는게 사랑과 목숨이 붙는다면 어떤게 더 우선순위가 될지 그게 나의 이야기라면 어떤 선택이 될지 쓸데없는 것에 의미 부여를 해보고 싶어한다.

있잖아. 내가 저 사람처럼 갑자기 같이 도망가다 물려서 좀비가 되었다고 치면 날 어떻게 할꺼야? 

듣는 둥 마는 둥 하던 그녀는 돌연 응? 이러면서 반응을 보이다 반대로 나에게 똑같은 질문을 했다. 오빠는?

순간 당황...다시 나에게 질문을 돌린 그녀는 턱을 괴고 엎드린 체로 마냥 재밌게 워킹데드를 보고 있었다. 뭐 답이야 어차피 둘 중 하나고 대체로 답은 나와 있다고 보여지지만 사실 이 문제는 아름다운 답이 나올 순 없다고 봤다. 사랑하기에 아무리 좀비라고 해도 죽이지 않고 살려둔다고 하면 평생 묶어두고 사육하는 것처럼 가두고 지켜봐야 하고 혹시나 모를 탈출로 인해 나까지 좀비가 될 확률이 있기에 어차피 같이 공존하기는 힘들다. 

과감하게 죽이는 것이 옳다면야 바로 총을 드는게 현실적일 수 밖에 없다. 물론 그 좀비가 된 가족이나 연인이 살아도 산 것이 아니기 때문에 차라리 알아보지도 못하는 껍데기밖에 안되는 좀비를 가두는게 더 서로에게 고통스럽고 부질없는 짓이라 영화나 미드에서 나오는 것처럼 오히려 깔끔하게 총을 겨누는게 더 정상적인 사고방식이라 생각은 들지만 쉽게 말로 나오지 않는다. 살리고 묶어두어도 이해되고 그 자리에서 죽여도 이해는 되지만 그래도 그 좀비가 나라면 상대는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한 건 어쩔 수 없는 궁금증이다.  

내가 먼저 물었잖아, 너는 어떻게 할건데?

사실 나는 살려주고 묶어둔다라고 하고 싶었지만 동물 사육과 다름 없는, 하지만 언제든지 케이지를 벗어나면 내 목숨을 위협하는 존재라 내가 사랑하는 가족이나 연연이 아닌 이제는 전혀 다른 괴물일 뿐이라 연인에 대한 의미는 더 이상 없다고 생각이 들어 총을 들 확률이 높다고 할 생각이었다. 어쩔 수 없는 환경이고 어떻게 해 볼 상황이 안되기 때문에 이해해 줄거라 믿었기 때문이다. 내가 아무리 사랑하는 가족이나 연인이어도 좀비가 되면 총을 드는게 나쁜 행동은 아니라는 생각이었다.

그녀가 말했다.

그럴 일 없어...

엉? 순간 이게 무슨 말인가 싶었다. 그러니까 좀비라는 건 상상속의 캐릭터이고 현실에는 없는 가상의 존재이니 애초에 그런 일은 있을 수 없고 괜히 말도 안되는 경우를 들며 서로 감정 확인한다고 하면서 부스럼이나 만드는거 아니냐라는 생각에 그럴 일은 없다라고 말을 한 것이 아닌가 처음 받아 들였다.

그러니까..그런 일은 없겠지만 만약이라는게 있잖아, 만약에 내가 좀비가 된다면 말이야

그러자 그녀는 답했다.

그럴 일 없다니까...

아니 내 말은 만약에 말이야, 영화처럼 미드처럼 내가 좀비가 된다면 죽이냐 살리냐 이 양자 선택에서 뭘 선택하겠냐고?

나의 질문이 다시 이어지자 약간은 귀찮은 듯 하지만 앙탈스럽게 그녀가 다시 말했다.

그럴 일 없어용~

나는 긴 한숨을 쉬며 다시 물었다.

무슨 말인지 이해는 하지만 내 말은 만약에 이런 경우 어떻게 하겠냐는 이런 질문이나 문제 많잖아, 살다보면 이런 경우 A와 B라는 걸 선택해야 하는데 어떤 걸 선택해야 하느냐에 대한 끊임없는 경우가 많잖아, 답이 어떤 것이든 난 기분 상하지 않고 개의치 않으니 그냥 둘 중에 하나를 고른다면 어떻게 하겠냐고

그렇게 다시 또 도돌이표 질문과 답이 오가는 사이 그녀가 다시 말했다.

그럴 일 없다니까....

내가 지켜줄꺼야....

?

순간 정적이 흘렀다. 그녀는 여전히 모니터에 눈을 응시하고 고개짓 없이 미드에 빠져 있지만 순간 툭 던진 한 마디가 나의 뇌리를 강하게 스쳤다. 추가 된 그 한 문장이 날 순간 당황케 했다. 이게 뭔소리야라고 말이다.

뭘 지켜, 내가 지키면 지켜주지 날 어떻게 지켜, 그래 좋아, 지켰는데 결국 지키지 못해 내가 좀비가 되었다면 어떻게 하겠냐고?

나는 포기하지 않고 다시 물었다. 이 정도면 별거 아닌 것에 집착한 꼴이지만 오히려 별거 아닌 말에 제대로 답을 하지 않는게 사실은 더 살짝 짜증났다.

오빠! 그럴 일 없어, 내가 오빠 좀비 되지 않게 지킨다니까, 그러니까 살리는 둥 죽이는 둥 의미가 없어

그렇다. 그녀는 내 질문을 이해하지 못한 것이 아니었다. 나는 말을 어렵게 한 것도 아니고 대단한 질문도 아닌데 왜 제대로 된 답을 하지 않는지 이해를 못 했지만 그녀의 답은 내 질문에 대한 본질, 논리보다 앞서서 무력화 시킨 논리였다.

모니터와 그녀를 교차해 가며 몇 분간 계속 지켜봤다. 침을 몇 번 삼켜가며 방금 들은 말을 되새겨 본다. 좀비가 되면 어떻게 하겠냐는 나의 단순한 질문은 그녀에게는 단순한게 아니었던 것 같다. 단순한 사랑의 테스트라 여겼지만 내가 너무 그걸 간과하고 가볍게 여겨 질문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그녀는 나를 끝까지 지킨다고 했다. 저런 상황에서는 누가 누굴 지키고 말고 없이 자기 스스로 자기도 지키도 가족 연인도 지켜야 한다고 했다. 그러다가 다른 가족, 애인이 좀비가 될 정도면 그 전에 자기가 좀비가 되고 만다고 했다. 좀비가 된 걸 보고 죽이느니 그 전에 먼저 좀비가 되겠다는 것이고 그 좀비가 되겠다는게 다른 사람이 좀비 되는 꼴을 보기 싫어서가 아니라 다른 사람 한 명이라도 좀비 되는 걸 막기 위한 대신 희생하겠다는 의미였다.

지키되 지키지 못할 것 같으면 대신 좀비가 되고 날 살리겠다는 이야기였다. 내 질문은 어떤 경우의 답이든 살려도 좀비로 살리는거고 죽여도 좀비로 죽이는거지만 그녀의 답은 살리면 정말 살리는거고 죽는 건 없다, 자기 스스로 그걸 보거나 인지할 수 없기 때문이다. 결국 남는 건 죽거나 살거나가 아니라 살거나 뿐이다.

한동안 질문이 없자 이상함을 느꼈는지 고개를 돌려 날 본다. 

내가 제대로 답 안해서 삐졌어?

그러고는 코찡끗 살짝 미소를 지으며 말한다.

현실이든 상상이든 그럴 일 정말 없어, 난 오빠 꼭 지켜줄꺼야, 좀비되게 하지 않을꺼야, 오빠도 그럴꺼라 믿어, 그럼 우린 둘 다 사는거 맞지?


나보다 7살이나 어린 그녀지만 나보다 7살 더 어른스러운 대답에 내 무지함을 깨닫는다. 그리고 나를 생각하는 사랑의 감정을 쉽게 여기지 않는다는 것에 새삼 놀랐고 감사했다. 

이 때였다. 이 때까지는 아직 그냥저냥 남들 다 하는 연애였고 남들 다 있는 남친, 여친 관계라고 생각했지만 이 날 워킹데드를 보면서 주고 받았던 이 말에 난 사실 마음에 큰 변화가 일어났다. 누군가를 보고 결혼하고 싶다라는 생각을 드는 순간이 있다고 하는데 그런게 처음이었다. 이 여자라면 결혼해도 좋을 것 같다라는 생각을 이 날, 이 때 처음하게 되었다. 

끝까지 포기하지 말자가 나의 신조였는데 나도 모르게 쉽게 포기했다는 사실에 부끄러웠던 날이었고 별거 아니지만 인생의 깨달음을 얻은 것 같아 기분이 좋았다. 

우리 좀 있다 치즈케이크 먹을까?

워킹데드에 푹 빠져 있던 그녀가 전과 달리 고개를 바로 돌린다. 그리곤 눈을 동그랗게 뜨며 말한다.

쪼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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