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이 추억이 되는 순간 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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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리

기억이 추억이 되는 순간 01

by 깨알석사 2014. 5.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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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이 막 끝나가는 시기, 난 6년간 다니던 직장을 그만 두었다. 1년만 다니자고 생각해 별 의미없이 들어갔던 회사에서 돈 모으는 재미를 느끼며 나름 열심히 일했던 곳이다. 세금을 떼고 나면 겨우 돈 백만원 정도가 급여의 전부일 정도로 지금 기준으로 보면 편의점 알바생보다도 적은 월급이었지만 그 때는 그걸로도 당장 먹고 사는데는 지장이 없다고 생각하던 시절이다. 물론 혼자 지냈기 때문에 가능했기도 했다.

군대를 전역하고 나서 바로 취업전선에 뛰어들어갔지만 군대생활 2년 정도가 사회 물정을 모르는 철부지가 될 줄은 몰랐다. 처음 들어간 회사에서 동료이자 선배의 부탁으로 명의를 빌려주게 되었는데 그게 사기의 시작이었던 걸 몰랐고 결국 나는 그 때의 실수로 인해 20대 시절 전부를 남의 돈 갚는 시절로 허무하게 보내야 했다.

여러 회사를 전전긍긍하며 제대로 돈도 못 모으고 내 이름으로 던져진 보지도 못한 빚을 대신 갚아야 하는 억울한 마음이 컸지만 내 명의로 이루어진 대출과 사금융은 어쩔 수 없었다. 영업과 대리운전까지 병행하며 돈을 갚았지만 삶은 많이 힘들었고 정신적으로 많이 힘들었다. 그렇게 20대 시작에 시작한 빚 갚기는 20대 후반이 되어서야 마무리 되었고 결국 난 보지도 못한 내 이름으로 된 남의 빚을 모두 갚았다. 신용도 그 때서야 정상으로 돌아왔다.

그렇게 20대 시절을 온전히 빚 갚는데 쓰자 난 몹시 지쳤다. 몸도 마음도 정신도 많이 지친 상태였다. 당장의 빚이 없으니 이제는 버는게 다 내 돈이지만 너무 오래 눈치보고 돈 없이 살았던지 그동안의 긴장감이 사라진 것도 이 때다. 이제는 조금 쉬고 싶다라는 생각을 그 때 하게 되었다. 그렇게 1년 정도 푹 쉬었던 것 같다.

그러나 모아둔 돈이 없으니 결국 생업을 위해 다시 취업을 해야 했다. 그렇게 찾아 간 곳이 6년간 다닌 그 회사였다. 적은 급여와 보너스조차 없는 사내복지라고는 아예 전무한 그 곳을 선택한 건 당장 쓸 돈이 다 떨어졌기 때문이다. 일단 아르바이트를 한다는 마음으로 시작한 그 회사에서 난 6년 이상 근무한다는 상상조차 하지 않았다. 나는 원래 아르바이트를 주유소나 편의점 같은 곳에서 하지 않는다. 아르바이트든 임시직이든 직장 개념의 기업/회사에서 하는 걸 선호한다. 체계가 갖추어진 조직이 나에게 더 맞기도 하지만 아무 의미없이 시간만 떼우는 알바 보다는 그래도 신분이 임시든 알바든 직장인으로 일하고 싶은 마음이 어려서부터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그 회사에서 막내였다. 늦은 나이가 아니었음에도 나보다 나이가 다 많았다. 그리고 나와 월급 차이도 많지 않았다. 급여가 낮으니 신입이나 경력이나 똑부러지는 직원 보다는 시간 떼우고 돈만 받으려는 그런 사람들이 좀 많았다. 환경에 따라 사람이 달라지는 것처럼 급여 조건에 따라 역시 모이는 사람들 수준이 거기서 거기였다.

들어가자마자 파업이 일어났다. 나는 일을 하러 들어간 직후였고 신입이었기 때문에 그 파업은 나와 별 상관이 없다고 생각했다. 나는 파업에 참여하지 않고 내 일을 그냥 했다. 10명이 해야 할 일을 나를 포함 4명이 하고 6명은 부분 파업을 했다. 회사 전체 규모나 근무자는 많았지만 내 부서가 아웃소싱 파견회사라 10명이 사실상 내 소속회사의 전부라고 할 수 있다. 원청업체에서 급여를 준 것과 파견회사에서 지급한 급여 차이가 크다는 걸 알고 파업을 하게 된 것이다. 나는 들어올 때 급여 수준에 대해 분명 인지를 했고 그 돈을 받고 일하겠냐고 했을 때 그러겠다고 했기 때문에 나는 설령 그게 내가 더 받을 수 있다고 해도 내가 인지하고 근로계약을 한 금액은 따로 있으니 나와 상관이 없다고 생각했다. 

시간이 지나자 원청회사는 소속 회사에 따지고 물었다. 근로조건 계약이 다 되어 있는데 왜 니들 회사 소속 사람들이 이러느냐고 따져 묻는다. 회사와 회사간의 계약(용역)과 파견회사와 해당 소속 직원들간의 문제는 별개인데 그 피해를 왜 원청에 주느냐며 강하게 나왔다. 그 때 팀장님 나에게 두 사람 몫을 해주면 다음에 꼭 보답하겠다고 했다. 굳이 두 사람 몫을 하고 따로 보상 받겠다는 것을 난 거절했다. 대신 시간이 되고 체력이 되면 내가 알아서 더 열심히 하겠다고 했다. 

파업이 지속되자 소속 회사는 결국 급여를 10만원씩 올려줬다. 원청에서는 180만원 정도를 준 걸로 되어 있는데 그걸 150만원 정도로 계산해 직원에게 주었고 30만원은 파견회사가 대신 챙긴 것이다. 파견회사라는게 원래 그런 계약조건에서 급여 떼먹기를 한다는 걸 알기에 나는 그런가보다 했는데 오래 다닌 분들은 180만원으로 계약했음 180만원을 다 달라고 한 것이 파업의 이유였다. (사실 그렇게 하면 소속회사는 먹고 살 이윤이 없다) 나는 신입이니 110만원 정도 였고 그마저 세금 떼면 겨우 100만원 간당간당 했지만 내가 180만원을 받을 수 있다는 것에 연연하지는 않았다. 나와 계약한 금액도 아니고 용역대금이 내 월급이 될 순 없는 법, 짧은 지식으로나마 연간 단위로 전체 용역계약을 몇 억씩 한다는 걸 알게 되었는데 그걸 사람 수대로 나누니 평균 180만원이라 해서 그걸 급여로 다 줘야 한다는 건 당시 내 생각에는 억지라고 봤다. 어차피 나야 110만원으로 알고 왔으니 그게 싫거나 마음이 바뀌면 그만두면 그만이다.

사람의 마음이라는게 그렇다. 파업을 끝나고 정상적인 근무 교대 형태가 돌아가자 파견회사의 본사에서는 이상한 분위기가 흐른다. 위에서는 파업에 참여했던 사람을 탐탐치 않게 여겼고 그래도 근무는 제대로 한 나머지 4명에 대해서는 호의적이었다. 우리회사의 우리 사업장이라면 몰라도 용역계약을 통한 다른 회사의 다른 사업장에 파견 나간 직원들이 원청회사 일터에서 파업을 했으니 회사 입장에서도 꽤 곤욕을 치뤘던 것 같다. 나는 신입이라 신경을 안쓴다고 생각했는데 어디가든 그만두기 전까지는 내 몫은 내가 알아서 하자라는게 내 신조다 보니 나를 좋게 본 부분이 없진 않다. 터무니없는 근무조건과 급여가 문제인 건 맞지만 그걸 알고 들어온 건 어디까지나 내 선택이고 우리들 선택이라고 생각한다. 더 웃긴 건 파업 종료 후 급여가 오르자 6명은 자신들 덕분에 나머지 4명의 급여도 올랐다며 일정부분 토해서 6명에게 분배하거나 밥을 사라는 일이 잦았다. 생색내기도 이런 생색내기가 없다.


본사에서 한달에 한 번 간부가 방문을 한다. 우리를 책임지는 현장 관리자와 이야기를 나누고 원청회사 직원들과 이야기를 하다가 돌아가는게 전부, 가끔은 회식하라고 회식비를 주고 가기도 한다. 본사에서 오는 분은 인상도 좋았고 여러가지로 노력하는 사람이었는데 주변에서 들리는 평가도 매우 좋았다. 오로지 능력과 실력으로 승진했다며 저 간부도 파견직원 출신이라고 했다.

파업기간에 세 사람 몫을 했다며 나를 자주 챙겨주었다. 챙겨준게 별거는 없고 잊지 않고 날 꼭 찾아와 토닥토닥 칭찬 정도가 전부지만 날 꼭 보고갔다. 내가 후출이면 오후 출근시간까지 기다렸다가 보고 가기도 하셨다. 파업 후 분위기가 다시 정상으로 돌아오고 난 6개월 뒤 한 사람이 그만 두었다. 그리고 대신 새로운 사람이 들어왔다. 당연히 난 막내를 면했다. 그 때부터였던 것 같다.

밑에 사람이 있으니 챙겨야 할 일이 많고 알려주고 가르쳐주어야 하는 업무가 생겼다. 이전에는 내가 알아서 내 몫만 하면 되었지만 밑에 식구가 있으면 밑의 사람도 챙겨야 하는게 당연한 일, 군대 후임 생겼을 때랑 똑같다.

새로 온 막내가 새 업무에 금방 적응했다. 원래 잘 하기도 했지만 사람들은 내가 잘 가르쳐서 그런거라고 했다. 현장 관리자는 군대에서 막내가 들어오면 최고참과 신참이 붙어지내는 것처럼 자주 붙어 근무를 했는데 이거 어떻게 알았어? 이걸 너가 어떻게 알아? 이런 말을 할 때마다 그 직원은 내가 알려주었다고 자주 말하다보니 현장 관리자도 나를 더 주목하게 되었던 것 같다.

그렇게 6개월이 지난 시점에 예상하지 못한 급여가 약간 올랐다. 아무래도 현장 관리자가 본사에 말을 한 것 같다. 5만원 더 올라 이제 115만원이다.

몇 달 뒤 또 직원 하나가 그만 두었다. 파업을 했던 6명은 내가 입사를 막 하자마자 뭐하러 이런데를 왔냐 그만두는게 낫다라는 식으로 첫날부터 사직을 권유했다. 자신들은 1년안에 모두 그만둘거라는 말도 자주 했다. 그러다보니 그만두는 사람이 생겨도 별 감흥이 없다. 떠날 사람은 어차피 떠날거라는 건 파업 때 이미 결정이 난 상태라고 봐야 한다.

새로운 직원이 들어오면 관리자는 나에게 지도 및 교육을 맡겼다. 아르바이트로 들어오는 임시직에게도 나에게 직무교육 업무가 추가되었다. 나는 내가 하던 일을 알려주고 몇 가지 팁과 주의사항을 알려주었다. 요령이라는 건 없었다. 그냥 시키면 시키는대로 내가 할 일이 다 끝나면 다른 사람 좀 도와주다보면 쉬는 쉬간도 알아서 챙겨주니 그게 요령이라는 뻔한 말을 한게 전부다. 

어느 날, 원청에서 파견회사에게 연락이 갔다. 업장에서 고객의 소리가 접수되었는데 그 고객의 소리에 적힌 민원의 해당 직원이 나였다. 칭찬과 함께 백화점 상품권 5만원이 나왔다. 할 일을 했을 뿐이라며 감사하다고 했다. 그 후 나에게도 원청 사내 전상망(인트라넷)에 접속할 수 있는 아이디가 발급 되었다. 10명 중 팀장(관리자)과 나 딱 둘만 아이디를 가졌다.

두 세달이 지난 후 급여가 올랐다. 5만원 올라 120만원. 알고보니 나만 올랐다. 팀장은 비밀을 지키라고 했다. 특별 대우가 아니라 일을 잘해서 그만큼 보상한다는 본사의 방침이라 했다. 

내가 일하는 원청회사 업장에서는 이달의 우수사원을 뽑아 시상했다. 백화점 상품권 5만원이 전부지만 인사고과에 반영되는 만큼 뽑히면 그래도 좋다. 1년도 안되어 이달의 우수사원에 뽑혔다. 결국 난 1년만 하고 그만두겠다는 생각을 접고 조금 더 다니기로 한다.

1년이 지나고 2년차가 되었을 때 난 이달의 우수사원에 6번 뽑혔다. 특별히 노력한다고 해서 되는 것도 아니고 내가 속한 파견회사 본사에서 챙겨주는 것도 아니고 업장의 원청회사에서 직접 주는거라 추천자와 결제자가 정하게 되어 있다. 원청직원이라면 혜택이 많지만(다양한..) 파견회사 직원의 경우에는 똑같이 뽑혀도 5만원 상품권이 전부라 이걸 노리고 열심히 하는 파견직원은 없다. 아마 그래서 내가 더 두각을 냈을지도 모르지만 결과적으로 원청직원과도 경쟁을 하는 구조라 노력한다고 해서 되는 건 아니다. (내가 잘났다는 건 아니다)

2년차 연말, 이달의 우수사원이 아닌 올해의 최우수사원 시상식이 호텔에서 열렸다. 이달의 우수사원은 그래도 절반 정도는 파견직들이 가졌지만 올해의 최우수사원은 원청직원이 대부분이고 파견직은 극소수다. 그 해 난 올해의 최우수사원상을 받았다. 감사패와 함께 50만원 상금을 받았다 (파견직이 아닌 원청직이었다면 상금이 더 컸을거다)

상금 50만원으로 난 부서 사람들과 함께 당일치기 스키장을 찾아가 놀 수 있게 해주었다. 식비와 교통비, 스키 사용료를 모두 내줬다. 그 쯤 급여는 많이 올라서 150만원 정도 (상금 50만원이 내 기준에서는 적지 않았다) 

어느 날 팀장이 새 직원을 뽑는데 급한 일이 생겨 대신 내가 면접을 진행하게 되었다. 내가 괜찮은 것 같다고 하니 팀장은 바로 OK를 내렸다. 처음으로 내가 뽑은 사람이 같이 일하게 된 것이다. 몇 달 후 그 직원이 이달의 우수사원이 되었다. 직원들간에는 내가 잘 뽑아서 그런 것 같다라는 말이 나왔다. 그 후 팀장은 나에게 면접을 전부 맡겼다.

급여는 180만원까지 올랐다. 원청에서 주는 급여의 최고 상한선이니 받을 수 있는 급여는 다 받는 셈이다. 여기까지 대략 2년 넘게 걸린 것 같다. 석달에 한 번씩 5만원이나 10만원 정도 급여가 따로 올랐다. 직원들 분위기도 좋고 원청에서도 반응이 좋다며 그만큼 챙겨준 것이다. 나는 앞으로도 원청과 관계가 좋아야 하고 또 직원 내부간에도 환경이 좋아야 한다고 주장하며 내 월급을 올려주지 말고 나 대신 1만원씩이라도 팀장과 나를 제외한 나머지 사람들에게 더 올려달라고 이야기를 했다. 본사는 고민도 없이 그렇게 해주었다. 물론 내 월급은 그대로 올려주었다.

내가 막 입사했을 때가 110만원 세후 100만원 내외, 이제는 막내가 막 입사하고 받는 금액이 130만원대다. 물론 아직 많이 부족하다. 급여가 좀 더 높으면 더 좋은 사람이 올거라고 이야기를 했다. 물론 그 때의 파업과 달리 난 먼저 실적과 원청의 평가를 보고 판단해 달라 했다. 돈을 먼저 요구하기 보다는 앞으로 우리 하는 일을 보고 알아서 올리든 말든 결정하라는 말이었다.


전자결제 권한을 획득한 나는 자잘한 일부터 큰 일까지 결제서류를 올렸다. 원청회사 중간직원들은 귀찮아 했지만 간부들은 반응이 좋았다. 개선되는 일이 많아졌고 다양한 시너지가 생겼다. 원청과 본사는 매년 연말에 용역 재계약을 맺었다. 한달에 한 두번 오는 그 간부와 원청 이사간 결제를 형식적으로 하고 서류를 받아가는게 전부였다. 

3년차가 되었을 때 간부 대신 본사(우리회사/파견회사) 사장이 직접 왔다. 처음 계약 맺고 5년만에 재방문이라고 한다. 나도 그 때 본사 사장을 처음 봤다. 원청 사장은 하루에 한 번 봤고 실제 내 회사 사장으로 여겼지만 엄밀히 따지면 내가 속한 회사의 사장이니 우리 사장이다. 간부 대신 사장이 직접 온 이유는 원청 사장이 불러서다.

3년간 우리 부서가 많은 일을 했고 고객들 반응도 좋고 원청 직원들간에도 우리 부서 파견직 대우를 더 해주어야 한다는 이야기가 매 회의 때마다 나와 이번에 격려차 협상을 직접 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사장은 자네가 00 인가라며 처음으로 날 불렀다. 인사를 드리니 자네 덕분이야라는 말이 나온다. 협상을 통해 용역대금이 많이 인상되었다고 한다. 직원들 급여가 막내 기준 150만원으로 바로 수직상승했다. 이제는 갓 입사하면 150만원부터 시작인거다. 나는 200만원을 돌파했다. 

대충 계산해 보니 3년 동안 알게 모르게 급여가 9번 인상되었다. 본사가 따로 나만 올려준 횟수다. 4년차가 되었을 때 230만원 정도가 되고 5년차가 되니 260만원, 6년차가 되니 280만원까지 올랐다. 물론 본사에서 따로 쓰라고 20만원을 계좌로 챙겨주었기에 실제 급여는 세후 300만원이 되었다. 

자랑 아닌 자랑 같은 이 이야기를 쓴 것은 그 때서야 난 이제 그만둘 때가 되었다는 걸 느꼈다. 막내는 이제 입사하면 180만원으로 시작한다. 짬이 되고 요령이 생기니 의욕도 많이 줄었다. 알아서 잘하는 직원들 덕분에 창고에서 노닥거리는 시간이 많아졌다. 이건 아닌 것 같았다. 원래 휴가라는게 없던 곳인데 연말이 되면 25일 정도, 거의 한달짜리 휴가를 받기도 했다. 가장 일을 잘하는 직원에게 나 없이도 잘 할 수 있지라는 말을 건넸다. 내 눈빛이 이상한 걸 감지했는지 자신 없다 했지만 제대로 된 회사라면 시스템이 알아서 돌아가는 법, 시스템을 잘 구축했다면 그 다음부터는 자전거 바퀴처럼 알아서 굴러가는게 정상이다. 그만두더라도 문제 생기면 전화하라고 했다. 그리고 6년차가 끝나고 7년차로 접어들 무렵 난 그렇게 회사를 그만두었다.

그리고 여행을 떠났다. 한달 정도는 여행을 하고 싶었다. 하고 싶었던 여행과 목적지가 있기도 했다. 매월 100만원씩 꼬박 1년을 모아도 1200만원, 안 쓰고 6년간 모으면 7천 2백만원이다. 난 기숙사 생활을 하며 회사에서 세 끼를 해결했고 출퇴근은 통근버스를 이용했다. 6년간 8천을 모았다. 연봉 3천인 사람도 1년에 빚 없이 천 만원 모으기 힘든게 요즘이지만 악착같이 모았다. 퇴사할 때 퇴직금까지 합쳐 8천 정도가 수중에 있었다. 그렇게 난 미련없이 6년간 머문 회사를 그만 두었다. 그만 둘 때 직원들이 송별회를 해주었다. 그 때 직원들은 나에게 전설로 남는구나라며 나를 치켜세웠다. 그리고 3일 뒤....

난 먼 여행을 떠났다. 한 번도 가지 못했던 곳, 그러나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갈 수 있던 곳, 우리나라에서 꼭 가보고 싶었던 곳을 향해 터미널로 갔다. 그리고 도착하고 난 뒤 처음 본 바다 앞에서 난 자유를 느꼈다. 얽매였던 것의 자유가 아닌 나 자신만을 위한 여행과 자유 그 자체를 말이다.

그렇게 난 여행을 떠나 새 여정을 시작했고....우연히....어느 여자를 알게된다. 그렇게 그녀와의 기억이 거기서부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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