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더운 여름이 지나고 쌀쌀한 초겨울이 다가오자 보일러 광고가 부쩍 많아졌다. 사계절이 있는 우리나라는 여름에는 냉방기, 겨울에는 난방기가 계절 필수품이고 이 중에서 난방기 관련 장비는 가난한 사람이나 부자인 사람이나 온돌방 구조라면 모두가 갖추고 있는 필수재이기도 하다.
보일러는 물을 끓여 난방용으로 쓰는 생활장치다. 보일러의 보일은 물을 끓이다, 가열하다라는 뜻이고 보일러는 그런 물을 끓이는 가열 장치를 의미한다. 과거에는 증기기관처럼 물을 끓여 발전기라는 동력원으로 썼지만 우리나라에서는 가정에서 그 뜨거운 물을 활용해 난방과 온수로 쓰고 있다. 난방과 "따뜻한 물"을 쓰기 위한 용도이기 때문에 100도 이상의 "뜨거운 물"은 보일러가 담당하지 않는다, 온탕과 열탕 차이
아무리 보일러를 강하게 최고 온도와 최대 시간으로 틀어도 80도 이상의 물은 만들어지지 않는다. 그 이상이 되면 제품에도 영향을 주지만 주택 바닥의 여러 난방장치 (연결부위, 난방배관, 주택 내부자재 등) 영향을 주기 때문이기도 하고 보일러 물은 식수용이 아니기 때문에 100도 이상으로 가열해 쓸 일도 없다. 80도까지 물 온도를 올릴 수 있기에 난방에 전혀 무리가 없어 100도 이상의 물은 가스 보일러가 아닌 가스렌지를 쓰면 그만이고 그게 더 효율적이고 빠르고 이득이기에 보일러로 100도 이상 물을 뽑겠다는 생각은 버려야 한다.
보일러의 바닥 난방 시스템과 관련한 배관 활용 방식은 1930년대 유럽에서 먼저 만들어졌다. 동을 소재로 한 동파이트가 개발 되면서 건물 내벽에 파이프를 매설 복사열을 이용하는 방식인데 1960년대 우리가 현재 쓰는 폴리에틸렌 소재의 파이프 (호스 형태로 부르는 것) 개발이 되면서 바닥 난방이 본격적으로 시작하게 된다. 바닥 난방, 특히 온돌 구조로 난방을 하는 유일한 나라가 우리나라이다 보니 자연스럽게 유럽의 바닥 난방 기술이 도입되게 되었고 우리 실생활에 딱 맞춤인 난방 시스템이라 거의 김치 수준으로 우리나라의 고유 문화처럼 정착하게 된다.
뜨근한 온돌방을 써보면 상당히 좋다는 걸 알 수 있는데 해외에서 온돌 문화가 대세가 아닌 이유는 간단하다. 목조주택이 더 많기 때문이다. 잔디밭 있는 미국 주택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화려하고 큰 목조 주택은 아직도 유럽과 미주 지역에서 대표적인 주택 형태로 사용되고 있는데 온돌을 적용하기 힘들다, 하중 때문이다. 한중일 문화를 봐도 마찬가지, 일본 여행을 하면 고풍스런 2층 주택이 많고 중국 역시 2층 이상 중국 스타일의 가옥이 많다. 일본이나 중국이나 주택에 목재 사용률이 더 높은 건 서양과 비슷하다. 반면 우리는 단층이 거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2층짜리 한옥을 보기 힘든 이유다. 목재가 아닌 흙을 집 만들기에 쓰기 때문이다. (중국도 흙집은 단층이거나 저층이 많다)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유일하게 온돌을 쓴다고 하는 이유이기도 하고 실제로도 온돌을 쭉 쓴 문화권이 한반도와 한반도 북쪽이 (만주) 전부라서 한민족만의 난방 시스템이라고 해도 무방하다. (고대 유럽권 이야기는 의미없다) 위에 설명한 유럽의 바닥 난방 역시 1930년대 들어서야 기틀이 잡히는데 중국, 일본을 통해 한국의 온돌 문화를 접하고 아이디어를 얻어 만들었다고 보는 시각이 많다. 구들장, 아궁이 개념 자체가 없다보니 흙이나 벽돌로 지은 건물이어도 서양권이 바닥 난방을 잘 안 하는 이유다.
최근 경동 보일러의 광고가 눈에 많이 띄는데 광고를 보고 또 봐도 질리지가 않는다. 무엇보다 아이들과 지구 환경을 테마로 삼았다는 것이 특징이라 할 수 있어 기존에는 대부분의 보일러 회사들이 자사 제품의 효율 성능이나 가스비 절감 등의 소비자를 위한 제품 홍보가 절대적이었다면 경동의 광고는 자사 브랜드 이미지를 구축하는 기업 광고, 브랜드 광고로 마케팅 포지션을 바꿨다. 근데 그게 꽤 유쾌하고 즐겁다.
아이들이 아이들의 시선으로 유쾌하게 말하는 것도 즐겁지만 (조잘조잘) 보일러 하나로도 지구를 지킬 수 있다는 메세지는 소비자에게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온다. 특히 광고를 볼 때 아이들이 있다면 아이들은 엄마, 아빠에게 "우리 집도 경동 보일러야?, 우리집도 콘덴싱이야?"라고 물을 확률이 높은데 이런 간접적인 효과가 이어지면 결국 어느샌가 마음속에 경동이라는 브랜드가 자리 잡기 때문에 소비 선택의 기준으로 확장될 수 있다.
무엇보다 경동 보일러를 만드는 사람들은 지구를 지킨다는 포맷이 자사 직원과 그 가족들에게 자부심을 줄 수 있다. 좋은 직장에 다니는 착한 사람들이라는 이미지를 줄 수 있어 제품과 소비자를 위한 광고에서 더 나아가 애사심을 키울 수도 있는 꽤 잘 만든 광고라 할 수 있다.
이쯤에서 멈추었다면 이 글을 쓰지 않았을 것이다. 경동은 다시 아이들을 동원해 지구를 지키는 친구 아빠 이야기로 후속작을 만든다. 지구를 지키는 수퍼맨 같은 친구 아빠 이야기를 들려주자 한 아이의 아빠가 "아빠도 하는거다"라고 말한다. 아이는 천역덕스럽게 "아빠도 콘덴싱 만들어?"라고 묻는데 아빠의 대답은 "아빠는 콘덴싱 쓰잖아"라고 말하고 미소를 짓는다.
기존에는 만드는 사람에게 포커스를 맞추고 좋은 제품이라는 걸 홍보했다면 후속편은 그걸 쓰기만 해도 만든 사람과 똑같을 수 있다는 걸로 자부심을 연결 시킨다. 콘덴싱을 만들지 않는 수 많은 아빠들과 그런 아빠를 둔 아이들에게 콘덴싱 제품을 쓰는 것만으로도 똑같이 지구를 지킬 수 있다는 메세지를 던짐으로 사고 쓰는 것으로 다른 아빠들에게 꿀리지 않을 수 있음을 말해준다.
콘덴싱의 개념은 그렇게 어렵지 않다. 예전에는 이해하려면 여러 복잡한 설명을 해야 했지만 최근에는 경유차의 배기가스 정화장치 및 그와 관련한 화재 소식이 심심치 않게 나와 설명하기 편하다. 배기가스를 그대로 내보내면 낭비되는 열 효율과 오염물질이 문제가 된다. (참고로 자동차의 에너지 효율은 20% 정도로 매우 낮다, 100이 유입되면 20 정도만 에너지로 쓰이고 나머지 80%는 허공으로 날라간다는 뜻이다)
배기구로 나가는 경유차의 배기가스를 다시 촉매제와 함께 순환시켜 다시 엔진에서 쓰이도록 하고 불완전 연소를 완전 연소에 조금이라도 가깝게 다시 태운다는 것이 중요한데 이 때 활용되는 배기가스는 차가운 공기가 아닌 이미 뜨거운 열을 가지고 있어 재활용 할 때 큰 보탬이 된다.
콘덴싱 역시 비슷한 개념이다. 보일러의 배기구로 나가는 배기가스를 다시 재순환 시켜 열을 활용하면 쓰여지는 에너지가 재활용 비율 만큼 줄어들기 때문에 가스비를 아낄 수 있다. 또 자동차의 사례와 마찬가지로 불완전 요소를 제거하는 측면도 있어 오염물질을 기존보다 줄일 수 있는 것도 사실,
거꾸로 타는 보일러, 네 번 태우는 보일러 등 기존에도 가스비 절감에 대한 여러가지 제품이 있었는데 열을 쉽게 내보내지 않고 재활용 한다거나 한 번 태우고 남은 열과 가스를 다시 여러 번 태운다는 건 크게 보면 콘덴싱이 하는 것과 비슷하다고 할 수 있다. 참고로 콘덴싱은 특정 회사의 브랜드나 기술이 아니라서 모든 보일러 회사에서 취급한다
현재 우리나라 보일러 시장 점유율 1위는 경동(나비엔), 2위는 린나이, 3위는 귀뚜라미, 4위는 대성(쎌틱), 5위는 대우로 그 외 롯데(기공) 정도가 국내 시장을 차지하고 있다. 보일러는 본인이 선택하고 구매한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 보면 건축을 하지 않는 이상, 새집(아파트)에 이미 건설사가 설치하는 경우가 더 많다. 전셋집의 경우도 월세집의 경우도 이미 설치가 되어 있어 내가 주관적으로 설치하는 경우는 드물다.
그럼에도 이런 보일러 광고를 꾸준히 하는 건 보일러 교체 시에는 건물주나 세입자의 입김에 따라 설치되는 확률이 매우 높기 때문, 처음 설치는 타인에 의해 결정된다고 해도 재구매 할 때는 본인 의중에 따라 결정되는 비율이 높아 보일러 제품 역시 인지도가 중요하다.
대중적인 인지도와 활용도 측면에서 경동이 가장 많이 쓰이기도 하고 수출도 많이 되는 편인데 경동 제품은 자동차로 따지면 소나타급이라 볼 수 있다. 부품 호완성과 교체 방법 등이 간단하다 보니 "설치"하는 분들에게 인기가 좋아 많이 깔린 브랜드라 할 수 있다. (현대차가 성공한 이유 중 하나는 고객/운전자 편의도 있지만 정비 편리성이다) 최근에는 이런 브랜드 이미지와 콘덴싱 인기에 힘 입어 "소비자"의 선택에 따라 설치되는 경우도 많지만 그래도 아직은 "설치"하는 분의 선호에 따른 결과치가 높기에 그만큼 설치 간편, 사용 간편, 수리 간편이 중요한 요소라 할 수 있다.
린나이는 가스 전문회사로 가스렌지 하면 누구나 이 회사를 떠올린다. 가스기기는 가스 전문회사라는 인식이 있는데 틀린 말은 아니다. 가스렌지로 고생하는 사람은 극히 드물기 때문, 값이 비싸서 그렇지 내구성이 좋은 편이라 최근들어 선택 받는 비율이 높다. 국내 타사 제품들 설치 후 AS 문제로 고생하는 분들이 많다보니 수리가 아닌 판매 목적으로 할 경우 린나이는 설치자와 소비자 모두를 만족하는 유일한 메이커라 할 수 있다, 다만 값이 비싼 것이 흠
귀뚜라미는 우리에게 꽤 익숙한 보일러 회사로서 경동 보다 한 수 위라는 평가를 받았고 많은 주부들이 선택한 익숙한 브랜드지만 귀뚜라미의 전성시대는 가스가 아닌 "기름" 시절이 아니었나 싶다. 기름보일러는 지금도 나 역시 귀뚜라미를 우선적으로 추천하겠지만 가스보일러로 넘어오면 귀뚜라미의 기술력이 그대로 녹아 들었다고 보긴 힘들다. 연탄보일러와 기름보일러는 가스보일러와 분명 다른 기술력의 차이가 존재하는데 무탈하게 쓰면 참 고마운 브랜드지만 한 번 맛탱이 가면 답이 없어 애를 먹는 경우가 많다.
경동은 잦은 수리가 단점이라도 고치면 일단 얼마 정도는 문제가 없는데 귀뚜라미는 경우에 따라 고쳐도 답이 안 나온다는게 함정, 독보적인 존재였으나 3위로 추락한 건 다 이유가 있다. 물론 다양한 제품군이 있어 최신형의 제품을 쓰면 큰 차이는 없다. 국내 보일러 기술력은 예전에는 큰 차이가 있었지만 지금은 차이가 없는 건 사실이다, 다만 귀뚜라미라는 브랜드가 고수하는 고유 기술이 몇 개 있는데 이런 쪽이 고장나면 타사에서 느끼지 못하는 빡침이 있는 건 사실이고 이게 또 비싸서 수리비로 멘붕 오는 경우가 종종 있다. 주부들의 인기를 얻어 1위, 2위를 왔다갔다 하던 회사가 비싸다는 린나이에도 밀린 건 귀뚜라미가 해결해야 할 숙제
대성, 대우, 롯데..는 논외로 하자, 아마 원룸 등에 혼자 사는 분들이 사용법에 익숙치 않아 난감해 하는 경우 이 브랜드일 확률이 높다. 주부 보다는 업자들(건축주, 판매점, 설치기사)에 의해 결정되는 브랜드다 보니 소비자에게는 큰 인기가 없지만 사실 은근 알짜인 경우도 많다. 용케 대우 브랜드와 롯데 브랜드를 아직도 볼 수 있는 이유다.
국민이 선택한 좋은 광고상까지 받은 "콘덴싱이 옳았다" 아빠 편
친구 아빠를 부러워 하는 아이에게 콘덴싱 만드는 것과 쓰는 건 같다라는 메세지를 남긴 친구 아빠 편
보일러댁에 아버님 놔두려야 겠어요 우스개 유행어가 있었는데 그 주인공 역시 경동보일러, 따뜻함과 효심을 적절히 조합한 광고인데 아마 이 광고 덕분에 경동 이미지가 확 올라가지 않았나 싶다. 수퍼맨 아빠처럼 보일러에 대해 다시금 생각하게 되고 신경쓰게 만든 명작이라 할 수 있겠다.
아버님댁에 보일러 놔드려야 겠어요
제품은 광고 이미지와 브랜드 인지도로 고르기도 하지만 상황과 여건에 맞는 올바른 선택법이 사실 더 중요하다, 개인적으로 보일러는 린나이 - 귀뚜라미 - 경동 - 롯데 - 대성 - 대우로 서열을 매기고 싶지만 각자 기준과 사용 스타일이 다른 법, 도심에서 사느냐, 아파트에 사느냐, 단독주택이냐 저층이냐 고층이냐, 2층이냐 3층이냐 지하방이냐, 외진 곳이나 산골이냐에 따라 선택해야 하는 보일러가 다르다고 본다.
산골이라면 난 귀뚜라미 선택, 아파트라면 대성, 가정 단독주택이면 린나이, 연립이나 빌라면 경동, 원룸이나 오피스텔이면 롯데 정도로 해도 큰 무리가 없다. 사용자의 형태와 규모, 조건이 다르다는 걸 알 수 있는데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멀쩡한 것도 쉽게 고장나기 때문에 자기 생활 조건에 맞는 보일러와 브랜드를 고르는 것도 필요한 센스다. 나만의 서열도 이렇게 상황과 조건에 따라 달라지니 어느 회사의 어느 브랜드가 꼭 최고로 좋고 우수하다고 할 수 없다, 그건 알아두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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