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객 성별이 꼭 중요한 잣대가 되는 건 아니지만 남자 보다는 여자가 보면 더 크게 와 닿고 여러 생각의 확장이 가능한 것이 이 영화가 아닌가 싶다. 여자의 입장에서 여자의 생각으로 여자를 말했다라고 할 수 있는 영화 속 이야기는 여자의 삶을 전혀 다른 시점에서 그려 낸 수작 중 수작이라고 할 수 있겠다.
1972년생 영국 작가 "폴라 호킨스"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 <걸 온 더 트레인> 레이첼과 메건, 애나라는 세 여자의 캐릭터가 주요 인물로 나오는 영화다. 매일 똑같은 시간에 통근열차를 타는 레이첼의 독백으로 시작하는 이 영화는 영화를 보더라도 한 편의 책을 읽는 것처럼 말로 풀어서 보여주는 게 더 많다.
영화를 보다보면 이렇게 여자들의 생각과 감정을 깊이 있게 다룰 수 있나 하는 의문이 들 수 있는데 원작자인 폴라 호킨스 역시 같은 여자로서 여자들만의 깊은 내면을 서슴없이 통찰력있게 다룬다. 근래 본 영화 중에 가장 수준 높은 영화라고 치켜 세우고 싶을 정도로 세밀하게 표현하는 감정의 연출력이 돋보인다.
추리/미스터리/스릴러 장르를 띄고 있는데 이런 식으로도 긴장감을 유발 할 수 있다는 것에 무척 놀랐다. 제목 부터가 무척 마음에 든다. 영화는 초중반까지 별 다른 이벤트 없이 이야기를 쫙 풀어 놓는다, 핵심적인 인물이라고 할 수 있는 레이첼의 이야기부터 시작해 메건으로 넘어가고 메건에서 다시 애나로 넘어가면서 세 여자의 이야기를 하나씩 보여준다. 서로 맞물려 있는 관계라는 건 알지만 본격적인 이야기가 시작되기 전까지는 어떤 식으로 이어졌는지 알 수는 없다.
매일 통근열차에서 행복한 남의 가정집을 지켜보는 레이첼, 그리고 그녀가 지켜보던 집에 살던 메건의 실종, 메건이 실종된 날의 기억은 모두 사라지고 피범벅이 되어 자신의 집에서 깨어난 레이첼의 이야기가 시작되면서 이야기는 빠르게 전개된다.
영화는 친절하게 실종된 메건과 관련된 용의자와 증거들을 수시로 보여준다. 누가 범인이고 누가 왜 이런 일을 저질렀는지에 대한 용의점에 대한 것도 낱낱이 보여준다, 메건의 삶을 훔쳐보던 레이첼이 메건이 실종되던 날 피투성이가 되는 것에서부터 이 미스터리한 사건은 시작되지만 왜 자신이 피투성이가 되었는지를 전혀 기억하지 못하는 레이첼은 자신 스스로가 그 실종사건과 연관되어 있음을 직감한다.
세 여자는 사건이 생기기 이전부터 연결고리가 있었다, 애나가 살던 집은 원래 레이첼의 집이었고 애나의 남편은 레이첼의 전 남편이다. 바람을 피운 남편이 그녀를 버리고 애나와 함께 레이첼의 집에 살게 되었고 그녀가 행복한 삶의 모델로 삼는 매건의 집은 원래 그녀의 이웃이었다.
매일 자신이 살던 집과 이웃이었던 집을 통근열차에서 지켜보던 레이첼은 메건에게 다른 남자가 생겼음을 알게 된다. 그녀 자신이 남편에게 버림 받았고 남편의 외도에 의해 가정이 깨진 상태라서 자신이 행복한 가정의 롤모델로 삼던 매건의 행태는 그녀에게 충격 그 자체였다. 자신에게 아픔을 준 가장 싫은 요소들이 매건의 집에서도 보였기 때문이다.
남편이 자신에게 했던 못된 짓을 자신이 동경하던 집의 매건도 하면 안된다고 여긴다. 그런 찰나에 매건이 실종되는 사건이 발생하고 레이첼은 기억을 잃은 채 피투성이가 되어 집에서 깨어난다. 그녀가 자신의 전 남편처럼 바람피는 걸 보고 화가 난 레이첼이 그녀에게 어떤 짓을 했을지도 모르는 상황이다.
영화는 추리 고민의 스트레스를 덜어주는 친절한 가이드 메뉴얼 마냥 사건 실마리가 되는 정황들을 보여준다. 그대로 따라가 생각해도 의심의 여지가 없을 만큼 각자 뚜렷한 동기들이 존재한다. 매건의 남편은 폭력적인 성향이라는 사실이 새롭게 등장하고 실종된 매건의 남편은 가장 유력한 용의선상에 오른다.
하지만 그녀에게 다른 남자가 있었다는 걸 안 레이첼은 그녀의 남편에게 이 사실을 알려주지만 상황은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다. 레이첼 그녀의 행적 자체도 의심투성이기 때문이다.
경찰은 매건의 남편을 의심하고 애나는 남편의 전 부인이였던 레이첼이 자신의 집과 이웃집에서 자주 서성거리자 그녀가 범인이라고 의심한다. 레이첼은 이 알 수 없는 실종사건에서 피투성이로 깨어났던 자기 스스로를 의심하지만 끝내 자신이 어떤 짓을 저질렀는지 기억해 내지 못하고 힘들어한다.
애나의 끊임없는 의심에 그녀의 남편이자 레이첼의 전 남편은 레이첼이 그런 사람이 아니라며 레이첼을 옹호한다. 전 부인을 더 챙기는 그런 남편의 모습에 더 화가 난 애나 역시 레이첼이 범인이라는 증거를 찾기 위해 노력한다. 그러던 중 실종된 매건이 발견된다. 숲 속에서 사체로 발견이 되고 실종사건은 곧 살인사건으로 전환된다.
세 여자의 각자 이야기가 전개되면 될수록 그녀들 모두에게 아픔이 있다는 것도 무척 흥미롭다. 사건 자체와는 관련이 없지만 세 여자에게는 보이지 않는 공통점도 존재한다. 서로를 미워할 이유가 없지만 서로를 미워해야 할 이유가 생기면서 서로 관계가 이어진다.
세 여자의 내면을 과감없이 보여준다, 보는 사람도 마치 그 고통을 느낄 수 있을 만큼 세밀하다, 심지어 같은 여자가 아니어도 공감력이 뒷받침된다. 한 편으로는 안쓰럽고 위로 해주고 싶지만 또 다른 한 편에서는 목소리를 높여 꾸짖고 싶게 만든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의 정점이 "남자"가 있다고 말하지만 그게 비현실적이거나 변명거리로 들리지 않는다.
영화를 보는 중간에는 사건의 실마리를 풀기 위해 집중하게 된다. 후반에 가서 매건을 죽인 범인이 누구인지 정체가 서서히 드러나면서 머리속이 복잡해 지지만 영화를 다 보고 나면 뭔가 후련하면서도 찜찜하다. 이야기의 전개가 찜찜한게 아니라 이런 상황을 만든 후반부의 주요 인물이라 할 수 있는 범인의 정체, 그리고 그 범인의 행동과 반응이 찜찜할 뿐이다.
세 여자는 서로를 미워해야 할 이유가 없어 보이지만 깊이 파고들수록 서로를 미워해야 할 당위성이 존재한다. 그러나 조금 더 깊게 파고들면 오히려 세 여자는 적이 아닌 친구다. 모두 같은 아픔과 고통속에 살아가는 하나의 공동체다.
영화는 소소한 반전을 보여준다. 실종 사건이 벌어지고 나서부터가 작은 반전들의 연속이다. 이 사람이 범인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 찰나에 다른 유력한 용의자가 나오고 다시 그 용의자가 범인이라고 확정하게 되면 이내 다른 유력한 단서와 용의자를 다시 보여준다. 추리물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도 실종 직후 쉽게 범인을 단정하기 어렵다.
남자와 여자가 느끼는 감상평이나 소감이 많이 다를 것 같다. 여성작가에 의해 씌여진 원작이다보니 당연히 여자의 내면을 깊게 파고들어 세부적으로 잘 보여주지만 그 스킬이 복잡하지 않고 단조롭지도 않다. 감정 표현이 잦은 드라마틱한 소재는 역시 남자 보다는 여자가 집필한 것이 훨씬 공감력이 높은 것도 방송 드라마의 현실인데 큰 그림의 굵직한 이야기는 남자가 강점이어도 이런 인간 내면의 공감력을 끌어내는 건 여자가 훨씬 리드미컬하다.
미스테리한 사건을 두고 이야기를 풀어나간다는 주요 항목을 알고 봐서 그런지 처음에는 약간 진부한 이야기를 한번에 쏟아놓고 하나씩 주워 담으며 이야기를 풀어나가는게 약간 지루하게 느껴졌다. 굳이 이런 것들이 필요할까 하는 불필요한 장면이나 대사, 감정씬들이 많았지만 영화를 다보고 나니 그건 잘못된 생각이었다.
왜 하나씩 까면서 이야기를 하지 않고 한번에 쏟아 놓은 다음에 줍는 형태로 이야기를 했는지 영화를 다 보고 나서야 확실히 알았다. 그리고 그건 꽤 멋진 기획력이다.
영화는 10점 만점에 10점, 수우미양가에서 "수" 라고 평하고 싶다. 딱히 흠 잡을 만한 곳도 없고 부족하다고 느낀 부분도 없다. 영화평점을 볼 수 있는 다른 곳에서도 거의 8점대 이상의 높은 점수로 평을 하고 있다. 결말에 가서 실종된 날의 매건 이야기와 레이첼과 애나의 만남 장면은 생각의 끝을 볼 수 없을 정도로 많은 파편을 나에게 던져준다.
실제로는 한 여자만이 살해를 당했지만 따지고 보면 연관된 모든 여자들이 다 피해자다. 또 다른 식으로 세 여자가 서로 연결되어 있을 것이라고는 예상하지 못했지만 모든 것이 다 드러나고 밝혀지면서도 그게 전부야? 라고 깍아내릴 생각은 들지 않는다.
애나와 매건은 어떤 연결고리가 있을까 싶었는데 애나의 아기를 돌봐주는 유모가 매건이다. 유모를 갑자기 그만두게 된 것이 약간 걸리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매건의 실종 사건에서 애나를 의심할 만한 포인트는 찾지 못했다.
그런데 이게 참 재밌다. 결과적으로 보면 이 세 여자들은 모두 아기와 연관이 깊다. 레이첼은 임신이 안되어서 아이를 갖지 못하게 되었고 결국 그 일로 인해 알콜 중독자가 된다. 애나는 아기를 낳고 매건은 임신을 한다.
레이첼은 아이를 갖지 못해 결국 남편과 헤어지게 되고 애나는 아이 때문에 남편과 다툼이 잦다. (레이첼이 애나의 아기를 노린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매건에게는 아직 아기가 없지만 따로 만나는 남자와 알 수 없는 묘령의 관계를 가지면서 임신한 아이의 아빠가 누구인지 애매하게 그려진다. 물론 매건에게는 아이와 관련된 뼈아픈 과거가 따로 있다.
편견과 선입견을 갖고 보면 마치 페미들이나 메갈(?)들이 주장하는 것과 흡사 비슷한 설정으로 흘러가지만 이건 많이 다르다. 앞뒤 객관적인 논리도 없이 비약해서 파고드는게 페미들이라면 이 경우는 모든 것에 정당성이 있다.
그리고 그 이야기에는 남녀를 따로 구분할 필요도 없고 설령 구분한다고 해도 남자들에게서조차 공감력을 충분히 받을 만한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다. 그래서 보기에 따라 세 여자의 입장만 나오는 영화를 보고 남자들은 불편 할만도 한 내용이지만 전혀 불편하지 않다. 솔직히 범인이 누군인지 까고 이야기하면 이 영화를 이야기하는 재미와 세 여자의 감정에 대한 것도 더 흥미롭게 다룰 수 있을 것 같은데 그게 안되니 뱅뱅 돌려 말하는게 참 어렵다.
소설 원작을 먼저 본 사람들에게도 평이 좋지만 영화를 보고 나서 책으로 봐도 좋을 작품이다.
XX.....아기가 뭐라고...아이가 없어도 문제, 아이가 생겨도 문제, 여자에게 출산과 육아는 뗄 수 없는 문제이기도 하다. 이걸 남녀 입장에서 서술했고 이걸 스릴러로 만든 작품성이 더 놀랍다.
알콜중독에 쩌들어 사는 레이첼의 삶은 비참하지만 위로해주고 싶고 바람핀 매건은 용납할 수 없지만 그렇다고 용서를 못할 건 아니다. 애나 역시 남의 가정을 깨고 본 부인을 쫒아내어 안방을 차지했지만 세 여자 모두 같은 아픔을 가진 약자들 뿐이다. 남편 둘과 바람피는 대상으로 지목된 정신과 상담의사로 모두 세 명의 남자와 그들과 연결되어 있는 세 명의 여자가 등장하는 것이 주 포인트인데 인간관계에서 사람 하나 잘못 만나면 개박살 난다는 교훈을 절실히 보여준다. 어떤 면에서는 같은 아픔과 상처를 가진 여자들의 복수라고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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