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산자 : 대동여지도 - 차승원의 터닝 포인트라고 할 수도 있는 수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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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예술/영화리뷰

고산자 : 대동여지도 - 차승원의 터닝 포인트라고 할 수도 있는 수작

by 깨알석사 2016. 10.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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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산자, 대동여지도. 예고편과 온갖 광고 때문에 개봉 되기 전부터 알고 있던 영화지만 별로 보고 싶다는 생각은 안 들던 영화, 내용이 어찌되었든 다른 주연과 조연이 누가 나오든, 감독이 누구든 시나리오를 누가 썼든 상관없이 메인 주인공이 차승원이라는 것 자체가 반감이(?) 들던 영화다.

삼시세끼에서 가장 내가 좋아하는 배우이지만 영화에서는 항상 부족함을 줬던 배우, 하이힐(이런 영화가 있었는지도 몰랐다), 구르믈 버서난 달처럼, 포화속으로, 시크릿, 아들, 눈에는 눈 이에는 이, 이장과 군수, 국경의 남쪽, 박수칠 때 떠나라, 혈의 누, 귀신이 산다, 선생 김봉두, 광복절특사, 라이터를 켜라, 신라의 달밤, 리베라메 등등 역순으로 초반 영화계에 등장했을 때의 작품은 볼만하고 재미있었지만 워낙 키가 크고 서구적인 마스크의 모델 포스가 그냥 가만히 있어도 나오는 인물인지라 코믹적인 캐릭터의 근대 역할이 아니면 사극풍은 완전 꽝, 진지한 캐릭터나 역할도 개죽쓰기 딱 좋다. 혈의 누 이후 국경의 남쪽이나 포화속으로(캐릭터에 맞게 잔인하기 보다는 그냥 쭉 계속 멋있어 보임) 등에서도 별로 감흥을 못 느꼈다.

몸 좋기로 유명하다보니 무사 같은 칼을 휘두르는 역할은 그나마 봐줄만한데 땅그지 같은 역할이나 고산자 김정호 같은 역할은 누가봐도 매치가 안되는 캐릭터다. 오히려 상대역으로 나왔던 유준상 같은 배우가 김정호 역할에 더 어울리지 않는가하는 의구심부터 영화를 보기 전에 들었던 것도 사실

최민수가 이 역할을 하거나 정우성이 이 역할을 한다거나 원빈이 이 배역을 했다고 생각해봐라, 확실히 어딘가 언발란스(?)한 구석이 존재한다. 차승원이 그렇다. 배우로서는 좋지만 워낙 키가 크고 서구적이라 동양적인 배역과는 거리감부터 생긴다.

리뷰에 앞서 흥행 성적을 봤다. 나온 첫 뉴스가 고산자 - 대동여지도가 망한 이유니 어쩌니 하는 것이 나와서 급당황. 내 생각과 달리 차승원 외적인 이유로 망했다는 원인 분석글과 평론가들의 비평이 있어 나름 다행(?)이라고 여겼다.

일단 점수부터 주자, 10점 만점에 9점, 수우미양가에서 "수"준다. (내 딴에는 반전이다) 폼생폼사 차승원의 연기와 표정에 휘말리지 말고 그냥 무덤덤하게 보자라는 세뇌아닌 세뇌를 해가며 김정호가 저렇게 생겼다!라는 최면을 통해 초반 몰입에 성공, 그렇게 난 영화를 본격적으로 감상했다.

그리고 솔직히 이 한편의 영화로 차승원을 다르게 봤다. 지금까지 단 한번도 차승원이 주연으로 나오든 조연으로 나오든 영화쪽에서만큼은 그를 지지하지 않았지만 (너무 안 어울림 ㅠ.ㅠ) 이번 만큼은 확실히 달랐다. 그만의 캐릭터가 분명 있었고 김정호와 차승원이 절묘하게 섞인 색다른 캐릭터가 무척 마음에 들었다.

물론 주연배우 만큼 스토리 전개도 훌륭했다. 뻔하디 뻔한 누구나 알만한 이야기를 너무 뻔하지 않고 진부하지 않게 끌고 간 건 역시 원작 소설이 바탕이 되었으리라 본다.

유해진의 아재 개그는 항상 재밌어도 차승원표 아재개그는 정말 폭망 수준인데 영화에서 또 차승원식 어설픈 아재 개그를 한다거나 (물론 GPS와 네비게이션 예언 장면 ㅠ.ㅠ) 엉뚱한 행동으로 김정호라는 인물의 분위기를 깨지는 않을까 걱정이 있었지만 우려는 현실이 되지 않았다. 영화 끝나는 그 순간까지 김정호+차승원에 몰입되어 쭉 볼 뿐이다.

영화 사이트에서 찾아본 리뷰중에 유준상의 연기가 최하라는 평이 있었다. 연기 선생이라도 되나보다. 어딜보고??

흥선대원군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고 하는 분도 계시지만 유준상만큼 흥선대원군을 잘 표현한 인물도 없다. 그가 움직일 때와 말할 때마다 천하에 두려움이 없는 가장 무서운 사람이라는 걸 나도 충분히 느꼈다. 단 한번도 유준상을 보면서 어떤 배역이든 무섭다라는 생각을 한 적이 없지만 이번 만큼은 확실히 무섭다는 걸 체감했다.

순실이는 국민 딸로 해야 하지 않을까? ㅋ, 차승원이 맡은 김정호가 전국을 돌아다니면서 겪는 에피소드를 보여줄 것이라고 예상했지만 반대로 집에 돌아와서 남은 작업을 하는 것이 메인 이야기다보니 보면서도 이야기가 진부해질까 조바심도 있었다 (정말 지루하고 재미없을까봐...) 그러나 예상과 달리 시간 가는줄 모르고 재미있게 봤다. 

영화를 보면서 지도에 미친 지도쟁이가 보여줄 수 있는 끝판왕이라는 걸 100% 체감

김정호가 실제로 가까웠다는 신헌으로 나온 공형진 역시 김정호의 든든한 후원자로서 보이지 않는 영화의 중요한 한 축이라고 생각한다. 워낙 코믹 요소를 많이 가지고 있는 배우들이라서 대동여지도 김정호의 품격과 맞지 않을까 노심초사했지만 연기와 진행은 그야말로 깔끔

딱 봐도 김정호는 누구인지 맞추라면 오히려 유준상이 김정호 배역에 더 잘 맞는 스타일이다. 물론 그러나 유준상은 언제나 나에겐 "어사 박문수~" ㅋㅋㅋ...어사 박문수를 대상으로 영화화 한다면 무조건 유준상이 해야 한다고 본다. 중간에 특별출연 형식으로 지도를 만들기 위해 여행 중이던 김정호(차승원)을 만나는 장면도 있다면 금상첨화 ㅋㅋ..두 인물의 등장 시기가 안 맞을려나..아님 말구~

캐리비안의 해적 같은 캐릭터가 더 잘 어울릴 것 같은 장난꾸러기 멋짐 폭발 차승원이 김정호를 하기에는 무리라고 생각하고 이번에도 망작이겠구나 싶어 포기하다시피 봤다가 레알 깜짝 놀라게 만든 건 인정! 단 한번도 차승원의 영화에서 좋은 느낌을 받은 적이 없는데 이 영화를 보면서 차승원을 솔직히 난 새로 봤다. 나이가 더 들어서 그런가, 예전과는 다른 확실히 전에는 없던 그런 것이 이제는 있다. 그리고 김정호 역할도 충분히 멋있고 훌륭하게 해냈다.

지금까지 차승원이 나왔다! 하면 예고편도 안보고 예매포기를 했던 나지만 이제는 그런 선입견을 완전 제거했다. 시나리오만 좋다면 차승원이 주연으로 나오는 사극이나 진중한 배역도 충분히 볼만하다는 느낌이 팍팍 든다.

김정호 개인에 대한 기록이 많지가 않아 모티브를 삼아 가상의 이야기를 담았다고 봐야 하는데 그 과정에서 기존 김정호와 관련된 일화가 거짓이거나 일제에 의해 왜곡되어 있었다는 논란 등이 있으면서 영화를 왜곡된 일제 시선에서 만들고 전국을 탐방해 직접 만든 것이 아님에도 그렇게 보여 좋은 영화가 아니라는 시선들이 있다. 학생들이 영화를 보기 전에 학교 사회과목 선생님들이 우려를 나타내며 부정적으로 묘사했다는 의견도 꽤 보인다.

직접 실측을 했는지 안했는지 자체도 기록에는 남아있지 않지만 그가 대동여지도를 만들었다는 건 확실하다는 건 모두가 공감하는 부분, 그리고 대동여지도가 다른 지도와 다른 점 몇 가지만 따로 추려도 실측을 안 했다기 보다는 일부 했었다는 쪽으로 볼 수도 있는데 너무 전문가(지리학자)들 말만 듣고 한쪽으로 쏠린 듯 하다. 이런 것도 영화 흥행에 부정적인 요소가 되었을 수도 있다. 

물론 나 역시 김정호가 직접 전국을 돌며 만든 지도가 아니라거나 흥선대원군과 관련해 옥사를 했다는 그 논란에 대해 잘 알고 있다. 하지만 그 사람의 입장과 그 사람이 살았던 시대적 배경, 그리고 기존 지도와 대동여지도가 다른 점과 김정호와 관련해 기록된 자료들을 토대로 추정 몇가지를 해 본다면 나는 기존 사람들과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다.

그나마 존재하는 기록과 사용된 명칭을 보면 김정호는 수집/참고/열람이라는 방법을 통해 지도를 완성한 것이 맞다고 본다. 직접 전국 방방곡곡을 모두 돌아다니면서 실측을 한 것이 아니라 기존의 지도를 보완해 편집(김정호도편) 하거나 교정(고산자교간) 했다는 점은 도편이나 교간이라는 명칭에서도 추정이 가능하다.

결국 서적의 명칭만 가지고 추정한다면 그는 기존의 지리지 중에서 수정이나 보완이 필요한 것을 편집해 대동여지도로 완성했다고도 볼 수 있는데 이 부분을 많이 오해하는 것 같다. 결국 김정호가 이룬 업적은 단순한 편집이었단 말인가, 하는 말이 생각보다 많고 김정호가 큰 위인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사람조차 꽤 많다.

하지만 "수집" "참고" "열람"을 하기 위해서는 한양에만 있는 서적만 가지고는 대동여지도와 같은 걸작을 완성할 수 없다는 걸 간과했다. 대동여지도는 지방 지리지도 포함해서 세부 사항이 다른 지도와 달리 잘 표현되어 있는데 이런 부분은 해당 지역에 가서 관련 서적을 찾아 보거나 일정 부분은 직접 탐방/실측해야 하는 부분이 존재한다. 

기존의 어떤 지도에서도 그걸 한꺼번에 다 다룬 지도가 없었기 때문이다. (대동여지도와 같은 지도가 기존에 있었다면 더 쉬웠겠지만 그게 없으니 그걸 만든 것) 결국, 수집과 참고, 열람을 위해서는 직접 그 지역에 가야 한다는 논리가 성립된다. 그가 한양도성 근처에서 움직이지도 않았는데 일본군이 경부선 철도 부설 명목으로 만든 1890년대의 한반도 지리지 "군용비도"와 거의 차이점이 없이 흡사하다는 점은 100% 탐방을 하지 않고 발이 아닌 머리로만 지도를 만든 것이 아니라는 반증도 된다.

쉽게 말해 김정호 본인이 전국을 돌아다니며 무에서 유를 만들고 처음부터 실측을 해가며 지도를 완성했다는 건 나 역시 잘못된 주장이라고 동일하게 본다. 다만 그렇다고 해서 직접 전국을 돌아다니며 탐방을 하지 않았다가 아니라 직접 돌아다니면서 탐방은 하되 땅을 보고 산을 보고 실측해 지도를 만들어 나간 것이 아니라 그 지역의 서적을 찾아 지리 정보를 수집하고 일부 다르거나 잘못된 것은 직접 실측해서 만들었다고 봐야 한다. 한양에서 머리로 만든게 아니라 편집을 하더라도 현장에 나가 돌아다니면서 수집해 만들었다고 봐야 한다. 

영화에서도 이걸 감안해서 장면을 넣은 것 같은데 김정호가 실측한 지도와 다른 이의 지도 정보가 다르자 무엇이 맞냐고 묻는 질문에 이 지역의 정보는 다른 사람이 만든 것이 더 정확하다며 자신의 것은 수정해야 한다는 장면이 나온다. 그 자체만 보더라도 자신이 "수집"한 정보와 다르면 어떤 것이 정확한지 알 수가 없어 직접 탐사를 할 수 밖에 없다. 대동여지도의 완성본이나 영화 속에서의 김정호 성격이나 지도에서도 그의 성격이 보이는데 서로 다른 두 지도가 있을 경우 어느쪽을 선택하느냐가 아니라 어느쪽이 맞는지 직접 확인해 볼 수 밖에 없는게 유일한 답이다.

애초에 김정호라는 인물이 전국을 돌아다니거나 백두산까지 등정했다는 말(소문)이 돌아다닌 것도 그가 실제로 움직였기 때문이지 괜히 뜬 소문이 났을리 없다. 그가 유능한 그 시대의 편집장이라고 해도 주변 인물들이 그를 대단한 사람으로 치켜 세운 건 역시 어느 구석이 맞지 않는다면 직접 탐사를 했었기 때문이라고 본다. 그 점에서 그가 평생을 지도쟁이로 살았다는 점에 포커스를 둔다면 직접 탐사도 분명 일리가 있다.   

옥사도 마찬가지, 분명 괜히 그런 이야기가 나왔다고 생각지는 않는다. 친일파 최남선이 김정호의 존재를 처음 알리고 부각시켰다고 해서 그의 주장에 따른 김정호 일생이 잘못되었다고 하는 것이 현재 논점이지만 그도 분명 초기에는 독립운동을 했던 자로서 당시 명망있고 천재소리 좀 듣던 양반이라는 걸 감안한다면 아주 없는 소리를 만들어 내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본다. 옥사가 아니라 옥살이 수준으로 군사기밀 유출 위험이 있다는 점을 들어 옥살이를 했을 가능성이 있고 옥사는 아니고 이후 풀려나와 다시 지도쟁이로 돌아가면서 옥살이 과정에서 생긴 후유증과 피로누적으로 인한 과로사 내지 병사로 봐야 할 부분이 크다.

최남선이 김정호를 끄집어 낸 것 자체가 조선왕조가 무지하고 잘난 사람을 알아보지 못했을 뿐 아니라 조선의 지도는 이제서야 사람이 일일이 다니면서 만드는 무식한 방법이라고 유도했다는 것이 본론인데 원문을 통해 그 시대적 상황과 그가 원래 뭘 했던 사람인지를 유추해 종합적으로 보면 꼭 그렇다고도 단정하기 힘들다. 김정호로 인해 친일 행적은 물론 민족 자긍심을 일깨워 양쪽 진영에 모두 이득이 가는 이중적인 행동을 한 것이 더 합당하지 않을까 하는 개수작 같은 상상도 한번 해본다. (그래도 친일파는 친일파..)

전국을 돌아다니면서 지도를 만들었다는 말이 언제부터인가 학자들에 의해 김정호의 행적은 거짓이고 친일파가 남긴 기록에 의해 과도하게 부풀려졌다는 말에 오히려 김정호에 대해 다르게 인식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것 같다. "하긴 사람 혼자서 전국을 돌아다니면서 측량 한다는 것 자체가 무리지~"하는 말도 나온다.

하지만 조선시대와 지금 시대의 도로 사정과 환경을 너무 같게 본다는 점도 문제다. 오히려 당시에 교통상황이 좋지 않고 전국을 탐방하고 탐사하면서 여행을 한 다는 것 자체가 더 어렵다고 하지만 정작 반대다. 보이는 건 주요 대로요 그 옆으로는 산과 들 뿐이니 한 눈에 들어오는 경치는 십리에서 이십리까지도 눈 대중으로도 측량이 가능하다.

지금이야 워낙 길도 많고 별별 도로가 많아 높은 곳에 올라가도 길을 알아 볼 수가 없다. 하지만 과거에는 도심지라고 해도 단층 초갓집들이라 언덕만 올라가도 도성 안 고을이 다 보이고 그 주변 산과 들이 다 보인다.

이건 나도 경험했다(?). 조선시대에는 10대 대로라는 것이 있다. 한양과 의주까지 가는 의주대로, 한양에서 함경북도 경흥까지 가는 경흥대로, 한양에서 강화까지 가는 강화대로, 한양에서 수원까지 가는 수원별로, 한양에서 /충남 수영까지 가는 수영별로, 한양에서 통영까지 가는 통영대로, 한양에서 동래까지 가는 영남대로, 한양에서 봉화까지 가는 봉화대로, 한양에서 울진 평해까지 가는 평해대로, 그리고 10대 대로 중에서 가장 길고 유명하다는 한양에서 해남까지 가는 삼남대로다.

한양에서 해남까지 가는 삼남대로는 이름 그대로 3곳의 지방을 갈 수 있는 주요 대로인데 충청도와 경상도, 전라도를 갈 수 있는 대로다. 실상 강원도를 빼고 다 갈 수 있는 길목이 된다. 과거 시험을 보기 위해 한양으로 올라오는 사람들, 유배를 당해 전라도 섬에서 유배 생활을 했던 유명한 사람들, 임금이 파견한 암행어사들이 행선지를 찾아가는 것도 이런 대로가 조선에 있었기 때문이다. 

사실상 이 10개의 대로만 다니면 뻗어나간 줄기의 도로가 지금처럼 많지도 않고 크지도 않아 도로 점령만 맘 먹으면 10년안에 승부를 볼 수 있다. 난 회사에서 휴가를 한달짜리 얻어 도보 여행을 한 적이 있다. 그 때 내가 택한 것이 가장 길고 유명하다는 삼남대로다. 해남 땅끝마을에서 한양도성(수도 서울)까지 18일 걸려 올라왔다. 당시에는 삼남대로 자체를 모르고 그냥 해남 땅끝에서 서울까지 쭉 올라가보자는 마음에 시작했는데 여행을 끝내고 주요 거처를 정리하다보니 그게 "딱" 삼남대로였다. (놀랍게도 100% 똑같은 코스로 내가 올라왔다. 진심 대봑, 물론 오리지널 길은 사라지고 길이 끊겼지만 매일 향하던 목적지는 삼남대로 코스에 있는 도시가 같다)

그 때 느낀 건 김정호라는 인물, 진짜로 대동여지도 생각을 떠올리며 이렇게 김정호가 돌아다녔겠구나 하는 생각도 했었는데 충청도까지 올라왔을 때 들었던 생각은 생각보다 확실히 "우리나라가 작고 좁다"는 것을 느꼈다는 것이다. 절대 불가라고 여겼던 여행은 초반만 힘들지 몸이 행군(?)에 익숙해지면 속도가 제법 잘 났다. 그렇게 삼남대로를 조선시대 사람마냥 (한양에 가서 과거시험을 볼꺼야!! 하는 정신으로 걸었당 ㅋ) 똑같이 걸었는데 할 만 했다.

김정호가 평민으로 경제력이 좋지 않고 여비가 없어 직접 방방곡곡 돌아다니기 더 어려웠다는 주장도 내가 직접 우리나라를 절반 잘라 직접 끝까지 걸어보니 그것도 아니다. 배고플 때는 맛있는 것도 먹었지만 때로는 삼각김밥이나 빵으로 간단하게 끼니를 떼우기도 했다. (이유는 걸어가면서 먹을 수도 있고 경치를 보면서 먹는 게 때론 더 맛있다) 당시 소금 섞은 주먹밥 하나만 있어도 1~2끼는 해결 했을 수 있었다고 보고 해남에서 서울까지 올라올 때 들어간 경비 중 90%가 숙박비고 나머지는 식비뿐이라서 "나그네인데 하룻밤 좀 묵을 수 있겠소?" 라는 우리나라 문화 정서가 분명 익숙하고 존재했다고 믿는다면 여비가 생각보다 많이 들지 않을 수도 있다.

실제로 나도 대부분 농촌 지역을 지나게 되다보니 농촌 지역을 통과할 때 물이나 휴대폰 충전 등을 쉽게 이용했는데 "지나가는 여행자인데 물 한잔 먹을 수 있겠습니까?" 하면 굳이 생수를 사 먹지 않아도 충분히 보급이 가능했고 또 친절하게 감자나 간식거리를 챙겨주는 경우도 심심치 않게 발생해 먹거리는 큰 불편이 없었다. 결국 숲 속이든 움악이든, 주막이든 잠만 잘 수 있다면 생각보다 돈이 안든다

삼남대로 존재를 모르고 떠난 길이지만 해남부터 서울까지 난 정확히 삼남길 코스로 용케도 움직였다. 18일 소요된 것도 이 길만 직선으로 따라 올라 온 것이 아니라 주변으로 뻗은 다른 줄기 도로도 여행했기 때문인데 마음만 먹고 이 길 하나만 따라 올라온다면 10일도 가능하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물론 몸은 개죽음. 발바닥 터짐)

전라도 사람들이 과거 시험을 볼 때 이렇게 왔겠구나 싶었는데 생각보다 멀지 않다. (우리나라 정말 작다..ㅠ.ㅠ)

영화에도 나오지만 김정호에게는 친구가 많았다. 영화에서 흥선대원군 옆을 보좌하던 신헌 인물도 그렇고 추사 김정희도 그와 친분이 있었다는 내용이 있다. 최한기의 경우에는 재력도 있는 양반가문이라 그에게 답사자금이나 후원금은 물론 지방 지리지를 수집/열람/참조할 때 지방 관아에 도움을 주지 않았을까 싶고 애초에 평민이 나라 관청에 속한 지도를 쉽게 열람했다는 것 자체도 이런 친구들의 도움이 컸지 않았나 싶다. 

결국 그의 답사관련 재정 문제는 친구와 그들의 행적 (지도를 같이 만들었다) 을 보면 이것도 어느정도 유추가 가능하다. 조선왕조실록에 기록되지 않았다는 점도 다르게 볼 소지가 있다. 당시 흥선대원권이 주도권을 잡던 시절이라면 고종실록이 쓰였다는 말인데 고종 시절이 어떤 시기였는지를 감안한다면 실록 중에서 주요 사건이 아닌 자잘한(?) 기록은 누락되었을 확률도 크다. 워낙 난세이고 시국이 어지럽던 시절이니 말이다. 궁궐 조직도 어수선하고 흐터러지기 쉬운 상황인데 다른 실록이라면 몰라도 고종실록이라면 사실상 실록의 끝이라 누락된 이야기가 많았을지도 모른다.

기존 기록과 주장은 모두 김정호가 직접 실측을 했다는 걸 부정적으로 판단하고 있다. 하지만 기존 지리서와 대동여지도의 차이는 실측의 정확성, 결국 실측을 병행한 현지답사가 존재했다는 것도 부정하기 힘들다. 실측 부분에서는 유일하게 대동여지도가 전체적으로 완성도가 높기 때문에 누군가 "실측"을 하지 않고서는 이 대동여지도가 나올 수가 없다. 결국 그가 김정호이든 누구이든 누군가는 실측을 했다는 점은 대동여지도에 존재하고 있고 그 대동여지도가 김정호가 만든 것이 맞다면 결국 실측한 당사자는 김정호라는 말이 된다.

물론 모든 것이 다 실측된 것이 아니기에 세부적으로 실측된 부분만 해당하는 이야기다. 산맥의 표현(산줄기의 선 굵기 차이)과 단일곡선, 이중곡선(뱃길)도 대동여지도만의 특징인데 곡선이 하나면 물이지만 배가 갈 수 없고 곡선이 두개면 뱃길이 있어 통행이 가능하다는 식으로 만들었다는 점만 보더라도 직접 가보지 않거나 이용하지 않으면 알 수 없는 것들이라 실측 부분에서는 "어느 수준" "일정 부분" "경우에 따라" 실제 측량을 했다고 봐야 할 소지가 더 크다. 관아, 군사기지, 통신시설도 기호로 모두 표시되어 있는데 이 점은 반대로 그가 다른 서적(관아)을 참고했다는 뜻도 될 수 있다.

결국 김정호는 방방곡곡에 있는 지리지를 탐독하고 정리해서 필사하고 자료를 수집해 정리했으며 경우에 따라서는 직접 돌아다니며 탐사했다고 봐야 한다. 잘 알려지고 정확도가 높은 곳은 기존 지도를 이용하고 잘못되거나 다르다고 생각한 곳은 직접 찾아가 어디가 다른지 비교해 "수정" "보완"했다고 보는 것이 더 정확하지 않을까..(그 점에 있어서는 모든 곳을 다 돌아다녔다고 볼 수 없는게 맞다)

김정호의 축척지도는 가로 8개 세로 12개의 눈금이 표시되어 있어 실제 거리 측량이 가능하다. 한칸이 10리이며 도로 위 10리마다 점을 표시했다. 이게 직선이 아닌 실제 10리라는 점이 매우 상징적이고 큰데 직선은 점 사이가 길고 곡선은 짧게 만들어 영화 속 내용처럼 직선거리로 10리가 아닌 "실제 거리 10"리를 만들었다는 점은 매우 높게 평가해야 한다. 그리고 역시 이 것도 직접 10리를 계산해서 어느 정도는 실측을 해야 나올 수 있는 정확도라 머리로 단순하게 계산할 수 있는 건 아니다. 이 점도 역시 거리 측정에서는 정확도에 따라 실측이 존재했다고 볼 수 있다.

김정호의 대동여지도에는 실제로 독도가 빠져 있다. 영화에서는 그걸 표현했다. 마지막으로 완성하기 위해 우산도를 찾고 독도를 찾는다. 독도 강치가 나오는 것도 그런 이유다. 누구는 이걸 국뽕이라고 비하 하지만 지금 시점에서는 이것만큼 영화의 마지막 씬을 장식할 만한 것도 없다. (그리고 대미를 장식하기에 충분하다)

친일파에 의한 김정호 일대기의 등장 자체가 기존의 조선지도가 엉망, 엉터리라는 걸 증명하기 위함이라는데 분명 기존에 있던 조선의 지도들도 훌륭하고 정확성이 높은 건 명백한 사실이다. 다만 어떻게 그걸 바라보고 해석하느냐에 따라 차이가 생기는데 김정호의 등장은 기존 조선이 가진 지도의 정확성이 매우 낮고 수준이 떨어진다는 걸 까기 위함이 아니라 조금 더 보완하고 수정한다는 개념으로 대동여지도를 만들었다고 봐야 한다.

김정호 스스로도 그렇고 주변 인물들의 기록을 보더라도 김정호는 기존의 지리지 정보를 많이 참조했다는 걸 알 수 있다. 기존 우리 조상들이 대대로 만든 90%의 기존 완성작에 10%의 김정호 업적을 얹고 만든 것이 대동여지도가 아닐까 싶다. 그 정도만 해도 인간으로 하기 힘든 위대한 업적인 건 분명하다.

영화를 보면서 느낀 건 딱 하나, 위대하고 위대하며 위대했던 위대한 사람의 이야기라는 것이다. 한 사람의 미친 재능과 노력으로 수천명이 편안하게 될 수 있다는 건 지금도 통하는 일이다. 차승원도 멋있고 잘 어울렸다. 누군가 추천 여부를 묻는다면 과감하게 꼭 보라고 권하고 싶다. 대동여지도와 김정호의 일대기와 상관없이 인간이 가진 미친 똘끼의 정수가 어떤 결과를 보여주고 세상을 어떻게 바꾸는지를 보라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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