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마토는 과일일까? 채소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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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탐/음식탐구

토마토는 과일일까? 채소일까?

by 깨알석사 2014. 6.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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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 동부 발렌시아 지방의 작은 마을 부뇰에서는 라 토마티나(La Tomatina)라는 토마토 축제가 열린다. 세계에서 가장 짜릿하고 재미있는 토마토 전쟁이 이곳에서 1년에 단 하루 벌어진다. 이 축제를 보기 위해 매년 수만여 명의 관광객이 몰려든다. 라 토마티나 축제는 청년들이 거리에서 집단으로 싸움을 벌이다 근처 야채가게에 있는 토마토를 가져다 서로에게 던진 것에서 유래한다. 축제는 8월 마지막 주 수요일에 열리는데, 축포와 함께 수십 톤의 토마토가 마을 중심에 있는 푸에블로 광장의 축제 마당으로 쏟아진다.

레드푸드의 대표 주자, 토마토. 한 사람이 1년에 약 15kg의 토마토를 먹는다고 한다. 국어사전에 등재된 토마토의 한글 이름은 ‘일년감’으로, 1년을 사는 감이라는 뜻이다. 옛 문헌에는 한자로 ‘일년시(一年枾)’라고 나온다.

토마토가 한국에 소개된 역사는 꽤 길다. 조선시대 실학자 이수광은 《지봉유설(芝峰類說)》에서 토마토를 ‘남만시(南蠻柿)’라고 소개했다. ‘남쪽 오랑캐 땅에서 온 감’이라는 뜻이다. 《지봉유설》이 쓰인 것이 1614년이므로 그전에 이미 토마토가 한국에 들어왔음을 알 수 있다. 토마토는 한글 이름이 낯설 만큼 한국인의 밥상에는 제대로 정착하지 못했다. 정혜경 호서대학교 식품영양학과 교수는 “문헌을 아무리 뒤져도 토마토를 이용한 음식은 찾기 어렵다”며 “감자처럼 구황식물(救荒植物, 기근 등으로 농작물 대신 먹는 식물)로 먹기도 어려워 잘 받아들여지지 않은 것 같다”고 말했다.

토마토는 보양식으로 딱 좋다. 전문가들은 “영양 과잉 시대에 이상적인 보양식으로 토마토가 제격”이라고 말한다. 서양 속담에 “토마토가 빨갛게 익어갈수록 의사 얼굴은 파랗게 변한다”는 말이 있다. 토마토를 먹으면 병원에 갈 일이 없을 만큼 건강하다는 얘기다.

토마토는 특히 남성에게 좋다. 17세기 영국에서 청교도 혁명 후 집권한 크롬웰 정부가 “토마토에 독이 들었다”는 소문을 퍼뜨렸을 정도다. 사람들이 토마토를 정력제로 생각해 너무 많이 먹었기 때문이다. 쾌락을 금기시하는 청교도들이 ‘도덕 사회’를 유지하기 위해 일부러 거짓말을 퍼뜨렸던 것이다. 어쨌든 소문의 진위 여부를 떠나 토마토에는 힘을 내는 데 필요한 비타민과 철분이 풍부하게 들어 있다. 최근 영국에서 토마토 수프를 매일 먹은 남성들의 경우 정액 속 리코펜(lycopene) 수치가 증가해 활동력이 왕성한 ‘슈퍼 정자’가 됐다는 연구 결과가 발표돼 주목을 끌기도 했다.

토마토는 ‘만병통치 자연식품’이라고 불릴 만큼 다이어트와 건강식품으로 으뜸이다. 다양한 비타민과 무기질이 다량으로 함유돼 있다. 특히 무기질 중에서 함량이 높은 칼륨은 혈압을 낮추는 데 매우 효과적이다. 열량이 적고 식이섬유소가 풍부한 것도 토마토의 장점이다. 토마토의 빨간색을 내는 리코펜은 강력한 항암 효과를 지니고 있다. 활성산소를 억제해 암과 노화를 막아준다. 빨간색이 짙을수록 몸에 좋은 리코펜 성분이 증가한다. 리코펜은 열에 강하고 지용성이라 데치거나 기름에 볶아 먹으면 체내 흡수율이 2~3배 높아진다.



그런데 토마토는 과일일까, 채소일까? 1893년 미국 연방대법원은 토마토를 채소로 결론 냈다. 당시 미국의 관세법에 따르면 과일은 수입관세가 없고, 채소는 수입관세가 높았다. 이 문제는 중요한 법적 논란을 낳았다. 당시 채소에만 매겨지고 있던 관세가 토마토에도 매겨지자 한 과일 수입업자가 소송을 제기했던 것이다. 이 소송 사건은 과일 수입업자 닉스와 세관원이었던 헤든의 이름을 따 ‘닉스 대 헤든(Nix vs Hedden)’이라고 부른다. 대법원은 토마토를 디저트로 먹지 않고 요리에 사용하는 점을 근거로 채소라고 규정해 업자에게 패소 판결을 내렸다. 이후 토마토는 채소로 취급됐다. 지금도 스페인 등 지중해 연안의 나라에서는 토마토가 대부분의 요리에 빠지지 않는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상황이 다르다. 과일로 착각하기 쉽다. 토마토를 요리로 활용하기보다는 디저트로 먹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토마토가 과일가게에 진열돼 있거나 토마토주스가 생과일주스 메뉴판에 들어 있는 것을 보면 우리나라에서는 토마토의 정체성이 모호한 듯하다.

박흥규 농촌진흥청 원예특작과장은 “토마토는 과채류에 속하는 채소”라고 잘라 말한다. 과채류(果菜類)는 열매 중에서도 당분 함량이 낮은 채소를 말한다. 토마토는 당도가 매우 낮은데, 당분이 차지하는 비중이 3%에 지나지 않는다. 그는 “나무식물의 열매는 과일이고, 줄기식물의 열매는 채소다”라며 토마토가 채소라는 것은 이론의 여지가 없다고 강조한다.

그런데 여러 분류 기준을 적용할 경우 토마토는 ‘이중 국적자’가 된다. 식물학에서는 토마토를 과일로 분류한다. ‘씨를 가진 자방(子房)이 성숙한 것’이라는 과일의 정의에 맞아떨어지기 때문이다. 원예학적인 분류법에서는 얘기가 180도 달라진다. 원예학에서 토마토는 분명히 채소다. 식품학에서는 당분 함량이 보통 과일의 3분의 1에서 2분의 1 수준이어서 채소에 더 가깝다고 본다.

토마토라는 이름은 멕시코의 말, ‘토마틀(to matl)’에서 나왔다고 한다. ‘속이 꽉 찬 과일(plump fruit)’이라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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