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이 만든 여러가지 제도나 문화, 생활 습관중에 예전과 달리 점점 사라지거나 불필요하게 느껴져 잊혀져 가는 것들이 있다. 남녀간의 만남에서도 그런 개념은 점점 증가하고 있는데 복잡한 것이 싫고 단순하고 합리적이고 효율적인 것을 요구하는 세상이 되다보니 남녀간의 연애와 결혼에도 그런 것들이 생긴다.
예전에는 "애인"이라는 말을 더 많이 썼지만 지금은 "남자친구" "여자친구"라는 표현을 더 많이 쓴다. 그러다보니 부작용으로 "남자사람친구"나 "여자사람친구"라는 신조어까지 나오게 되었는데 그 자체가 본래의 뜻이나 개념을 정확하게 담고 있지 않아 혼동의 여지를 줄이기 위해 또 다른 풀이말을 쓰게 되는 것이다.
성별이 다른 사람과 친구가 되면 그냥 친구라고 해도 되지만 가볍게 여자친구, 남자친구라고도 할 수 있게 된다. 용어의 핵심은 "친구"라는 관계, 두 사람이 어떤 사이인지 알려주는 핵심 단어다. 그런데 이게 사랑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주로 쓰이게 되다보니 그냥 친구와 혼동하게 되어 "오히려" 불필요하게 한번 더 관계를 물어봐야 한다. "사귀는 친구?" 이런식, 결국 복잡하고 단순하면서도 합리적인 걸 추구한다면서 불필요한 시간과 개념을 낭비하는 셈
굳이 설명을 하지 않아도 쉽게 풀이가 되는 명칭 자체가 "사랑하는 사람"이라는 뜻의 애인을 두고 왜 남자친구와 여자친구를 더 많이 쓰는 걸까? 과거와 달리 나이가 어린 사람들의 애정표현이 두드러진 것도 있겠지만 아마도 서양식 표현이 가장 큰 영향을 주었을지도 모른다.
바로 영어식 표현이다. 외래문화, 특히 미국식 영어문화가 많이 유입되면서 우리의 연애방식에도 그런 영향을 끼치게 되는데 애인이라는 우리말과 달리 미국에서는 애인에 대한 정확한 단어가 따로 없다. 당사자에게 허니~라고 부르는게 보통이고 타인에게 소개할 때는 부부가 아니면 그냥 걸프랜드, 보이프랜드이다.
프랜드와 걸프랜드, 보이프랜드 영향으로 우리도 똑같이 친구, 여자친구, 남자친구로 친구와 애인이라는 말 대신 사용하게 되었는데 원래 우리식 문화도 아니고 개념도 달라 혼동이 생길 수 밖에 없다.
난 이게 참 아쉽다. 미성년자의 경우와 성인의 경우만 기준을 달리 해주면 이것만큼 좋은 명칭도 따로 없는데 단순하게 남자친구, 여자친구라고 하는 것은 너무 안일하게 취급하는 명칭이다. 프랜드가 친구라는 우리말 뜻이라고 하지만 친구라는 한자말 역시 본래의 뜻이 있는 만큼 이걸 남녀 관계의 "애정"과 연결짓는다는 것도 살짝 우습다
친구는 근본이 그냥 "친구"다. 꼬꼬마 아이들의 유치원생 사이에서도 만날 수 있고 생길 수 있는 것이 이런 이성친구, 남자친구, 여자친구다. 반면 어린 아이들 세계에서는 "애인"이라는 공식이 통하지 않는다. 애인은 "책임"을 수반하는 성숙된 만남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미성년자가 오히려 애인이라는 말을 쓴다는 것도 그래서 좋지 않다. 그 만남에 책임을 질 수 없고 부부로서 인연을 맺을 확률도 적다. 단순하게 사랑하는 사람이라는 뜻만 가지고 붙여 쓰기에는 그 말이 담고 있는 함축적인 의미를 수행하기 힘들다. 사랑이라는 것에는 보이지 않는 무한한 "책임"이 존재한다는 걸 미성년자는 잘 모르기 때문에 애인이라는 말 자체는 그래서 쉽게 사용할 수도 없지만 반대로 애인이라고 해야 할 대상에게 남친, 여친이라고 부르는 것도 따지고 보면 반대로 둘 사이의 만남에서 생길 수 있는 무한 책임으로부터의 책임회피가 될 수 있다.
동성이든 이성이든 친구 사이에서는 감정의 상처도 생길 수 있고 때로는 절교라는 극단적인 상황도 언제든지 가능하지만 애인 사이에서는 감정의 상처 작은 것 하나도 크다. 그리고 때로는 치명적이다. 애인으로 인식하고 만나는 사람들은 관계가 지속되고 오래 만나는 경향이 있지만 애인보다는 이성친구라는 남친/여친 "친구"개념으로 만나는 사람들은 싫음 말구~ 식으로 만남이 끊어지고 다시 생성되는 경우가 더 많다.
생물학적 나이를 떠나 그 사람이 속한 사회에서 성인으로 대접받고 인정받기 전이라면 "친구" 관계를 바탕으로 서로 교감하고 이성적인 "호기심"을 가지고 만나는 조금은 특별한 사이로서 여자친구, 남자친구라는 호칭 사용은 좋다고 본다. 다만 문제는 성인이 되고 20대 중후반, 심지어 30대 초중후반 전 연령대에서 여자친구와 남자친구를 쉽게 사용한다는 것이다.
말 한마디에 천냥 빚을 갚는다는 선조들의 가르침은 항상 진리다. 표현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상대방을 대하는 마음가짐도 달라진다. 서양의 문화와 달리 동양에서는 어떤 이유로든 "친구"라는 타이틀을 달고 있는 사이에서는 몸을 서로 섞지 않는 법, 물론 스킨쉽도 마찬가지다.
애인은 꼭 미혼자나 결혼을 하지 않은 커플들이 사용하는 말도 아니다. 사랑하는 사람이 있으면 그 둘을 설명하는 관계의 징표다. 부부도 애인 사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렇게 말하면 불륜으로 오해받기 딱 좋음) 애인은 언제든지 평생 함께하는 부부의 시작점을 의미한다. 그래서 꽤 중요하다. 누군가에게 제 남자친구예요~라고 말하는 것보다 제 애인이예요~라고 말하는 건 상당한 느낌 차이가 있다. 남자친구/여자친구라고 소개하면 단순히 "사귀는 사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애인"이라고 소개를 하면 시기는 언제일지 몰라도 둘이 "결혼"을 할 사이라는 뉘앙스를 가진다. 느낌 자체가 진중한 만남, 성숙된 만남, 다른 사람이 개입하기 힘든 깊은 관계를 대변한다고도 할 수 있다.
프랜드라는 영어식 표현이 아니더라도 우리들 만남에서 남녀간의 만남은 친구로 시작될 수 있다. 이성이 만나 호감을 갖고 서로 자주 만나면서 친구와 "같은" 관계를 형성하다가 서로 좋은 감정을 가지고 만나면 그게 연인으로 발전되고 애인이 되는 법, 하지만 요즘은 시작부터 끝까지 결혼식을 올리기 직전까지 그냥 남자친구, 여자친구다.
이런 개념 정리는 왜 필요할까? 호칭과 만남 관계에 있어 얽혀 있는 것들을 한번은 풀어줄 필요성이 있기 때문이다. 컴퓨터를 사용하다 보면 전혀 불편함이 없어도 오랫동안 사용하면 사용할수록 자연스럽게 생기고 쌓이는 오류들이 존재하게 된다. 그런 미비한 오류들은 쌓이는 과정에서 별 다른 문제를 일으키지 않지만 언젠가 큰 문제를 겪게 되면 쌓인것이 모두 발현되어 먹통을 만들어 버린다.
그 때 가장 쉽게 하는 방법이 리셋, 초기화다. 인간 관계, 특히 남녀 사이도 마찬가지. 평소에는 서로 만나고 사랑하는데 전혀 지장이 없지만 오랫동안 만나는 과정에서 서로에 대한 불만과 감정 소모가 생긴다. 특히 관계 형성에서 가장 중요한 "신뢰"와 "믿음"에 의구심을 갖게 되고 이것이 진짜 사랑인지, 저 사람을 정말로 사랑하는지에 대한 믿음이 불신이 되고 그 불신에는 고착 현상이 생긴다. 그러다 큰 다툼이 생기면 결국 쌓인 것이 쏟아지면서 둘 사이가 컴퓨터처럼 먹통이 된다. 여기서의 초기화, 리셋은 컴퓨터와 달리 결국 헤어지고 새로움 만남을 찾는다는 걸 의미한다.
컴퓨터를 잘 다루고 효율적으로 쓰는 사람들은 컴퓨터를 잘 관리한다. 사용하는 과정에서 주기적으로 업데이트를 하고 환경을 바꿔주고 시스템을 효율적으로 쓰기 위해 노력한다. 남녀 사이도 마찬가지. 우리가 친구야? 연인이야? 애인이야? 라는 의문점(컴퓨터의 잔고장)이 들기 전에 미리미리 파티션을 나누어서 개념 정리를 해주고 시스템 관리를 해서 관계를 "업데이트"할 필요성이 인간 세계에도 필요하다.
그게 바로 언약식, 약혼식, 결혼식이다. 많은 사람들이 언약식과 약혼식의 차이를 잘 모른다. 안다고 해도 지금은 거의 대부분의 커플들이 잘 하지 않는다. 요즘 사람들 90% 이상은 여자친구/남자친구 관계에서 한방에 바로 "부부"로 넘어가는 케이스들이다. 어제까지 남친/여친이었던 사람이 결혼식이 끝나면 바로 부부가 되는 셈이다.
남녀 관계의 업데이트, 특히 서로의 관계에 있어 항상 확인하고 싶고 존중받고 싶은 여자들에게는 이런 환경의 업데이트와 호칭의 정리는 중요하다고도 볼 수 있다. 마음가짐이 달라진다. (그래서 더 해줄 필요가 있다) 기존의 애정이 1.0 버전이라면 2.0 버전, 3.0 버전으로 업그레이드 되는 셈, 버전의 최적화는 결혼을 통한 "부부"가 되고 그 버전의 꽃은 새로운 버전의 탄생(2세)이다. 1세대 버전과 2세대 버전의 공존 속에서 1세대 버전의 종료는 역시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 부부로서 한날한시까지 함께 하다가 생을 마감하는 것이 버전의 최종 목적지이자 목표다.
나는 꽁냥이양한테 보통 벽에 똥칠하는 그 날까지 함께하자! 라고 이렇게 말하는데 하고 많은 말 중에 왜 하필 그런 표현이냐고 맨날 타박. 하지만 그게 진리인 걸 어째..
언약은 말 그대로 "말"로 "약속"을 하는 식이다. 공식적인 서류나 친구와 친지, 가족들의 모임을 통하지 않아도 상관없고 "두 사람"이 가장 중요하고 핵심이다. "말"은 서로 "사랑"한다는 걸 표현하고 확인하는 것, 나는 당신을 영원히 사랑합니다. 나는 평생토록 당신과 함께 할 것 입니다 등으로 서로의 사랑을 확인하고 서로가 사랑하는 관계라는 걸 서로에게 확인시켜 주는 자리다. 여기서의 약속은 둘 만의 약속, 다만 이 둘의 약속을 위해 제3자 한명을 세워두고 3자간에 하는 것이 보통이지만 그 제3자는 친한 친구가 될 수도 있고 교회나 성당의 신부님, 목사님, 심지어 절간의 스님도 상관없다. 더 나아가 지나가는 사람에게 "부탁"한다고 해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
물론 그 제3자조차 없이 둘이 해변가나 아름다운 경치를 바라보면 여자의 머리에는 화관을 씌워주고 꽃반지로 대체해도 상관없다. 주인공은 두 사람이고 메인 요리는 두 사람의 애정, 서로가 확인하는 자리인 만큼 두 사람이 사랑을 확인할 수 있는 자리라면 그 어떤 곳이라도 상관 없다.
언약식은 쉽게 할 수 있고 별다른 요건이 필요치 않아 오히려 무시하거나 의미를 크게 두지 않는데 사랑하는 애인끼리 서로 진심을 다해 "정말"로 "사랑"한다는 걸 재확인 한다는 점에서 오히려 꽤 의미가 있고 무엇보다 이 자리가 곧 부부로서의 인연으로 나아가는 뿌리가 될 수 있기 때문에 안하는 것 보다는 하는게 더 좋다. 프로포즈라는 걸 꼭 결혼을 하고 식을 잡기 위한 요식행위로만 생각하는데 언약식을 프로포즈라고 생각해도 무방. 오로지 둘 사이의 사랑만을 확인하는 자리
약혼식은 "혼례"를 "약속"하는 자리인 만큼 두 사람이 주인공이 아니다. 두 집안의 가족이 주인공으로 서로의 부모님과 가족들을 모두 불러서 한 자리에서 둘이 사랑하는 관계라는 걸 눈으로 보여주고 두 집안이 인사를 공식적으로 하는 자리다. 보통 우리나라에서는 이걸 상견례 자리로 퉁치지만 집에 한번 찾아와서 얼굴 한번 보고 상견례 날짜 잡고 바로 결혼식 하는 것 보다는 자녀에게 단순한 "이성친구" 가 아닌 "애인"이 있다는 걸 알았다면 상견례 자리를 약혼식으로 바꾸는 것도 괜찮은 방법이다.
언약식을 통해 서로 사랑을 확인하고 사랑하는 관계라는 걸 확인했다면 그 때부터가 애인이다. 그 이전까지 두리뭉실하게 남친, 여친이었다면 이제부터는 당당하게 다른 사람 앞에서 애인이라고 부르고 소개하는 것이 더 좋다. 다만 미성년자는 성숙된 만남과 깊이의 차이가 있는 만큼 이런 언약식을 했다고 해서 애인이 될 수는 없는 법, 단계를 밟아가면 전진하는 것이 남녀 관계에서 필요하기도 하고 좋은 면도 있지만 그렇다고 미성숙한 존재끼리 단계를 밟는다고 해서 만남이 성숙으로 바뀌는 건 아니다. 사랑에도 "발효"과정이 필요하고 그건 시간이 걸린다.
약혼식의 경우 불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많지만 오히려 난 반대다. 우리식의 상견례와 다르지 않고 상견례 자체가 결혼을 전제로 한 두 집안의 만남과 "약속"이다. 실제 상견계 자리에서 약속의 시발점이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다. 흔히 결혼을 해보지 않아서 결혼 이후 미처 몰랐던 상대 배우자에 대해 실망하는 케이스가 종종 있는데 그 대안으로 많이 생각하는 것이 "동거" 미리 살아보고 장단점을 따져보겠다는 것인데 이걸 우리나라에서는 좋게 보는 사람이 별로 없다.
약혼식은 두 집안의 허락과 승인, 합의, 결제, 암묵적인 인정이라는 별로 달갑지 않는 것들의 거래 장소가 되기도 하는데 이건 어쩔 수 없는 노릇, 하지만 약혼식 없이 이런 거래를 하다가 항상 뒷탈이 난다는 것도 우리나라 예식 문화다. 상견례 이후 갑자기 신혼준비를 해야하고 허겁지겁 준비를 하다보면 둘 사이의 준비도 소홀하지만 상대 집안에 대해서도 소홀하게 되고 나중에 자잘한 문제의 씨앗이 되는 경우도 많다.
약혼식은 결혼을 "전제"로 하는 것이지 "시간"을 정하는 약속 자리가 아니다. 결혼을 두 집안 사람들이 "인정"한다는 걸 보여주고 두 집안이 약속을 한다는 것이 핵심, 그 약혼식을 끝으로 두 사람 당사자가 언제 어떻게, 어떤 방식으로 결혼식을 할 것이며 그게 1년 이후일지 5년 지나서 할지는 두 사람과 집안이 결정할 부분이다.
약혼식을 하면 최소 1년, 길어야 2년 이내에는 결혼을 해야 할 것 같다라는 생각 자체가 오산이다. 시기가 언제일지 모르지만 두 사람의 "조건"과 "요건"이 맞는 시기가 오면 "결혼"을 하겠다는 걸 "미리" 가족에게 알려주는 자리라는 것이 가장 크지 결혼 전에 해야 하는 요식행위가 절대 아니다. 무엇보다 약혼자와는 사실상 동침이 가능하고 집안끼리도 동침을 허락하는 경우가 약혼의 개념에 들어가기 때문에 두 사람에게 쥐어지는 책임의 강도는 더 강하게 된다. 예비 부부로서 최초 인정하는 자리인 만큼 책임질 수 있는 행동과 여건은 둘이 무조건 책임져야 한다는 뜻이다.
환경의 업데이트는 여기서 생긴다. 남자친구와 여자친구로서 서로 호감을 갖고 친구로 지내다 연인이 되면 언약식을 통해 서로의 감정을 재확인하고 애인이 된다고도 할 수 있다. 그 때부터는 친구라는 호칭을 타인에게 소개할 때 쓰지 않는게 좋다. (여친/남친) 약혼식을 하고 나서 애인이라는 표현은 마찬가지로 다른 말로 대체하는 게 좋다.
약혼을 했으니 타인에게 소개할 때는 애인도 상관없지만 "약혼자" 혼인을 약속한 사람으로 소개하는 것이 아무래도 약혼을 한 상대방에 대한 예의다. 나와 함께 평생을 하기로 한 사람이라는 걸 정확하게 알려줄 필요성이 있다. 조급하게 결혼하는 일반적인 상황과 달리 아주 천천히 집도 알아보고 어떻게 지내고 어떻게 부부관계를 유지할 것인지에 대해 서로 상의하고 상담하는 시기이기도 하다. (시간애 구애받지 않고 천천히 확실하게 하나씩 풀어가는게 중요)
우리 사회는 살아가는 과정에서 호칭이 자주 바뀐다. 삼촌이 장가를 가면 큰아빠가 되기도 하고 작은아빠가 되기도 하며 신랑이 남편이 되고 자녀 이름을 붙여 땡칠이아빠~라고 부르기도 한다. 어떤 주어진 환경이 바뀌면 그 환경에 맞는 호칭을 새롭게 불러주는 것이다.
두리뭉실하게 여자친구, 남자친구로 퉁쳐서 결혼식 직전까지 지내다가 부부로 넘어가는 것 보다는 단계를 거쳐 하나씩 서로의 감정과 애정을 확인해 가면 둘 만의 약속을 하나씩 만들어 가는 것이 훨씬 좋다. 결혼식은 언약식이나 약혼식 달리 "약속"이라는 단어가 들어가지 않는다. 그냥 둘의 결합에 관한 가정혼례이자 예식을 뜻한다. 반면 언약식과 약혼식은 두 사람과 두 집안의 "약속"을 전제로 서로간의 신뢰와 믿음에 대한 재확인을 기본으로 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시간을 두고 오류 없이, 잔고장이 쌓이지 않도록 환경과 호칭을 재셋팅하게 된다.
봄, 여름, 가을, 겨울 사계절을 함께 지내는 건 매우 중요하다. 계절의 변화와 환경의 변화는 사랑의 변화와 사랑의 환경과도 같다. 사계절을 결혼 전에 꼭 한번 다 지내봐야 그 사람에 대해 잘 알게 된다. (개인적으로 첫해는 미숙, 두 번째 해는 익숙, 세 번째 해가 되면 서로를 그 누구보다 잘 아는 사이가 된다고 여겨 기본 3년 연애설을 주장하는 사람이 나다. 물론 최소 1년은 연애를 해야겠징)
1년 정도는 서양식대로 보이프랜드, 걸프랜드로 여친, 남친으로 지내다가 1년이 넘어가면 조용한 펜션이나 둘 만의 오븟한 자리를 마련해 언약식을 해보길 권한다. 그리고 그 때 부터는 애인이라는 단어를 상기해야 한다. 단어 자체가 사랑하는 사람이라는 정말 노골적이면서도 리얼한 단어 아니던가. 사용유무는 각자의 판단이지만 최소한 타인에게 소개할 때는 여친, 남친 보다는 애인이 낫다.
그리고 두 사람의 신뢰와 믿음이 견고하고 확실하다고 여길 때가 되면 두 사람의 합의하에 상견례 대신에 약혼식을 상견례 자리처럼 간단하게 식사하는 자리로 대신하고 약혼자에 대한 지위를 서로에게 주는 것으로 환경을 재구성할 필요성도 있다. 물론 요식행위나 겉치레 따위는 하면 안된다. 약혼식에서는 서로간의 집안 인사와 만남, 그리고 앞으로 왕래하는 것에 대한 이야기 정도만 하고 결혼과 관련해서는 두 사람이 앞으로 시간을 충분히 들여 준비해 나간다는 것을 약속하는 자리로 끝맺는 것이 좋다. 기간을 정하거나 예물이나 혼례와 관련한 것을 그 자리에서 정하는 건 미련한 짓.
친구 사이에서 연인으로, 애인에서 약혼자로, 약혼자에서 배우자로 하나씩 환경을 바꾸어주는 그 자체는 서로의 애정과 신뢰에 대한 재확인 과정이기 때문에 절대로 불필요한 과정이라고 단정하기 힘들다. 무엇보다 남녀간 만남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건 "신뢰"다. 이게 깨지면 어떤 부부도 다 끝짱이다. 무슨 일이 있어도 난 그 사람을 믿고 그 사람이 어떤 실수나 잘못을 해도 나만은 믿어준다는 신뢰감을 형성해 주어야 하는 것이 성인 남녀의 만남.
그 신뢰를 재구축하고 재확인해서 안전하게 리셋하고 재부팅하는 과정이라고도 할 수 있다. 무턱대고 동거부터 하는 사람이 꽤 많다. 사랑이라는 단어를 쉽게 쓰면서도 진짜 사랑과 호기심에 대한 걸 구분하지 못하는 사람도 많다. 수첩을 정리하고 노트를 정리하고 집안을 한번 새롭게 꾸미고 대청소를 하듯이, 연인 사이에서도 대청소와 정리가 필요한 법이다. 대청소를 하고 나면 같은 집이어도 느낌이 다르고 기분이 더 좋아지듯이 연인 사이에도 이런 개념 정리는 다른 느낌과 신선한 느낌을 동시에 준다. (물론 이래나 저래나 남자에게는 불필요한 요식행위라고 하겠지만 ㅋ)
네 별자리는 네 옆자리 ㅋㅋㅋㅋㅋㅋㅋ
ㅋㅋㅋㅋㅋㅋㅋㅋㅋ.....남자랑 여자랑 멘트가 바뀐 듯
커플이 되면 여행도 자주 함께 다니는 경우가 많은데 한번쯤은 언약식을 위한 여행을 준비해 보는 것도 괜찮을 듯 싶다. 약혼식은 상견례 자리와 같다고 보고 서로의 마음이 확인 된 상황이라면 오히려 상견례 겸 약혼식을 빨리 해서 두 사람의 예비부부로서의 지위를 얻어 결혼 준비를 하는 것이 더 효율적이라고도 할 수 있다.
결혼식 날짜는 미리 정하지 말고 결혼 준비가 끝나는 시점이 곧 결혼이 된다는 것이 약혼식의 포인트, 약혼식을 하고 1년 뒤에 결혼을 할 수도 있고 5년이나 심지어 10년 지나서 할 수도 있는 법, 그걸로 태클을 걸면 안된다. 약혼식 자체가 약혼자라소 사실상 동거하는 부부와 다름 없기에 둘 사이의 만남에 가족들이 이러쿵 저러쿵은 곤란, 혼인서류에 도장 안 찍어서 불안하다면 그 자체가 잘못된 만남, 도장 찍든 안 찍든 깨질 커플은 어차피 깨지게 되어 있고 만날 사람은 한평생 쭉 함께 하게 되어 있다.
물론 결혼 준비가 다 되었음에도 결혼을 하지 않는 건 그것도 잘못이다. 준비가 다 되었다면 굳이 따로 살 이유가 없고 배우자가 아닌 약혼자로 계속 둘 필요성도 없다. 약혼식은 약혼례로 볼 수도 있고 본례에 대비한 것이 될 수도 있지만 그런 미완성으로 오랫동안 가는 것도 좋은 건 절대 아니다.
부부의 경우 결혼기념일이나 다른 특별한 날, 아니면 둘 만의 시간을 갖고 싶을 때 "서로의 사랑을 확인"하는 자리로 언약식을 결혼 전에 하지 않았다면 지금이라도 언약식을 따로 한번 해보는 것도 괜찮은 방법이 아닐까 싶다. 서로의 감정과 사랑의 깊이를 재확인 하는 것 만큼 즐겁고 신나는 건 없다. 누군가에게 "사랑해요"라는 말을 듣는다면, 특히 그 사람이 나 역시도 마찬가지로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그 감흥은 쵝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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