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랜은 게임에서 자주 쓰는 말이지만 혈맹을 뜻한다. 혈연으로 맺어진 집단을 의미한다. 영화 제목으로 쓰인 클랜은 한 가족이 저지르는 만행에 있어 가족이라는 힘이 얼마나 크고 중요하게 적용되는지 단적으로 보여준다. 영화는 실화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실화가 아니었으면 막장을 소재로 한 뻔한 이야기로 치부될 수 있지만 이 영화의 핵심은 단연코 "실화"라는 점이 매우 크다. 이보다 더 한 소재의 영화가 많이 있지만 대부분은 픽션이고 상상이다. 그러나 이 영화는 실제 사건을 바탕으로 했기에 타격감이 다르다. 아무 생각 없이 보다가도 "실화"라는 단어에 꽂히면 쉽게 볼 수 없다.
영화는 아르헨티나에서 실제로 벌어진 이야기를 담고 있다. 군사독재 정권이 막 무너지고 문민정부가 새롭게 들어서는 1980년대 초반 아르헨티나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겉으로는 너무나도 평범하고 착한 사람들이지만 실제로는 납치, 고문, 살인 등을 통해 돈을 뜯어내는 방식으로 생계를 유지하는 가족 이야기다. 전직 공무원인 아버지, 교직에 있는 어머니, 그리고 럭비계에서 인정 받는 큰 아들을 포함한 다섯 자녀는 행복한 가정 생활을 보여준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영화는 가족의 실체를 낱낱이 보여준다. 동네에서 인심 좋고 배려심 많기로 소문 난 아버지는 알고 보면 납치 조직의 우두머리고 가족들 중 막내를 제외하고 나머지는 모두 그의 행동대원들이다. 납치한 사람은 집의 지하실에 가두고 돈을 뜯어낼 때까지 고문한다. 영화는 그렇게 이들이 벌이는 이중 생활을 쭉 그려낸다.
워낙 충격적이고 믿기 힘든 내용이라 영화가 개봉되기 이전 책과 드라마(TV)로 이미 소재가 쓰였다. 영화까지 만들어 졌으니 이 가족의 이야기는 사실상 모든 미디어로 제작된 셈인데 30년이 넘어가는 이 시점에서도 아직도 아르헨티나 국민은 물론 다른 나라 사람들에게 큰 충격을 줄 정도로 계속 화자되고 있다.
자극적인 범죄, 스릴러물 영화로 보자면 놀랄 일이 없지만 실제 이야기고 어느 곳이든 생기기 힘든 유례 없는 사건이다보니 다가오는 충격은 다른 영화의 그것과 많이 다르다.
아르헨티나가 군사정권이던 시절 많은 사람들이 정치적인 이유로 납치, 고문을 당했다고 한다. 아버지는 그 때 정부를 위해 납치, 고문을 담당하던 사람으로 군사정권이 끝나고 문민정권이 들어서자 퇴직을 하게 되고 이후 생업을 위해 군사독재정부에서 하던 범죄를 그대로 이용해 사적 벌이로 이용한다. 그 과정에서 가족들의 협력과 협조가 없었다고 할 수 없는데 악의 평범성이 여기에도 그대로 들어나는 것 같아 무서움을 배가 시킨다.
영화는 일반인 7점대, 전문가 7점대로 상당히 비슷한 평가를 받았다. 전문가 평점이 높은 편인데 아마도 실화라는 점이 가장 큰 변수가 아니었나 생각이 든다. 스토리 자체가 실화다보니 짜임새가 있을 수 밖에 없고 각색을 따로 할 필요 없이 있는 그대로를 보여주기만 해도 상당한 파급력 있는 소재라 실화라는 걸 알고 보는 것과 모르고 보는 건 굉장한 차이를 내게 하는 기준이 아닌가 싶다.
초중반을 넘어 후반에 가면 아버지와 큰 아들간의 싸움이 철장안에서 벌어지는데 그 장면이 사실 압권이고 하이라이트라고 할 수 있다. 아버지가 어떤 존재인지, 아들은 왜 아버지를 따라 협력해야 했는지 그 장면이 다 설명한다. 그리고 무서움의 끝을 보여준다.
나는 10점 만점에 7점, 수우미양가에서 "미"로 보통의 수준으로 평가 하려 한다. 소재가 다이나믹하고 실화극이지만 오히려 그 점 때문에 점수를 높게 줄 수 없다. 다른 나라 사람의 이야기라고 하지만 장소의 문제일 뿐, 내 이웃에 이런 사람이 있다면 정말 끔찍할 것 같고 이런 영화도 굉장히 거북스러울 것 같다 (평생의 트라우마)
평범한 가정이 실체가 다른 소재는 꽤 많았다. 간첩이라든가 범죄를 공동으로 저지르거나 식은 많았지만 실화를 바탕으로 한 것은 거의 없다. 애초에 그런 실화가 생기기 힘든 것도 분명하고 실화의 경우를 바탕으로 해도 이 수준으로 이렇게 까지 하는 가족은 없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아버지의 평범한 모습과 표정이 압권이다. 아무렇지 않게 행동하는 그를 보며 왜 저렇게 되었을까 하는 생각도 잠시 해 본다. 분명 처음부터 저런 악인은 아니었을텐데 환경의 중요성을 다시금 깨닫는다.
배경인 된 아르헨티나는 우리에게 나라 이름은 익숙해도 사실 잘 모르는 나라 중 하나다. 남미에 위치하며 브라질을 빼고 남미 대륙 대부분을 차지하는 큰 나라다. 세계 면적으로 보면 세계1위 러시아는 워낙 독보적인 존재고 아메리카 대륙에서는 세계 2위 캐나다, 세계 3위 미국, 세계 5위 브라질을 빼고 가장 크다. (세계 4위가 중국, 아르헨티나는 그 넓다는 6위 호주, 그리고 7위 인도 다음 8위로 세계에서 8번째로 큰 국토를 가졌다)
인구 수는 우리와 비슷한데 국토 크기는 27배 크고 한반도 전체로 따지면 10배 이상 크다. 남미 국가들이 대부분 그러하듯 농업, 축산업이 발달되어 있어 육가공 식품 가격이 매우 저렴하다. 우리나라 한우 기준 소 한 마리 값이 천만원대라면 아르헨티나는 최고 등급의 소 한 마리를 통째로 사도 50만원이 안된다. 50만원이면 소 한마리 사서 동네 잔치 할 수 있다는 뜻이다. 부속물, 특수부위 역시 매우 싸서 1인분 기준으로 천원 수준이면 충분히 먹을 수 있다. 우리와는 농산물, 축산물 교역을 하지 않아 수입은 되지 않는데 소고기 최고 등급 300g을 사도 만원이 안되는 곳이라 만약 수입이 된다면 우리나라 소고기 시장에 큰 변화가 생길 여지가 크다.
축구로 워낙 유명한 나라라 축구를 좋아하거나 잘 알면 친근하게 느끼는 나라이기도 하다, 마라도나, 메시가 모두 아르헨티나 사람이다. 축구에 살고 축구에 죽는 나라 중 하나로 주변 나라의 축구 열기는 아기 수준, 사실상 축구 하나로 모든 것이 통한다고 보면 된다.
남극을 가기 위해서는 꼭 거쳐야 하는 나라가 아르헨티나이다. 남극과 가장 가까운 대륙이면서 최남단 지역은 아르헨티라 국토로서 남극 가는 비행기는 다 여기서 출발한다. 그래서 펭귄을 볼 수 있는 나라이기도 하다. 남미의 다른 나라들처럼 스페인 식민지로 출발해 언어는 스페인어를 쓴다. 세계 3대 폭포라고 알려진 이구아수 폭포가 아르헨티나의 대표 관광지며 수도는 부에노스 아이레스, 마테차가 굉장히 유명해 전 국민이 물 대신 마실 정도라고 알려져 있고 마테차의 대표적인 수출 나라이기도 하다.
영화 속 배경이 1980년대인데 치안 상태는 현재도 영화와 크게 다르지 않다. 그래도 전 보다는 나아졌다고 할 수 있지만 아직도 좋은 편은 아니며 밤에 돌아다닐 때는 주의를 해야 하는 나라 중 하나다. 특히 빈부격차가 심하고 빈민가가 많아 외진 곳에 가는 건 위험한 행동이 될 수 있다. 우리에게도 친숙한 266대 프란치스코(프란체스코) 교황이 바로 아르헨티나 사람이다.
영화의 결말은 이들이 경찰에 잡히고 재판을 받는 것까지만 그려진다. 이후 과정은 자막으로 설명을 하는데 이들 가족의 개인별 삶에 대해 짧게 설명하는게 결말의 전부, 경찰에 잡혔고 재판까지 갔으니 모든 가족이 달게 죄값을 치루었을거라 생각하기 쉽지만 결론은 그렇게 정의가 우뚝 서는 모습으로 아름답게 그려지지 않는다. 더군다나 주위 사람들은 이들이 누명을 썼거나 협박 받아서 강제로 했다고 믿는 정도니 우리가 생각하는 극단적인 처벌은 아예 없다.
그나마 아버지가 무기징역을 받은 것이 가장 크다고 할 수 있는데 결국 나중에 무기가 유기로 바뀌고 징역살이를 끝내고 "변호사"로 살았다는 걸 보면 세상 일은 참 알 수 없다는 걸 느낀다.
진짜 나쁜 사람은 나쁘게 보이지 않는다라는 걸 다시 한번 증명한 영화
절도나 사기 등 생업을 범죄로 삼는 경우가 없는 건 아니지만 이런 식의 흉악 범죄를 생업 수단으로 삼는다는 것이 그저 놀라울 뿐이다. 우리나라가 아닌 외국의 사건이라는 것이 그나마 위안이라면 위안인데 우리도 고문 기술자가 없던 것도 아니고 군사 독재정권도 비슷하게 경험하다보니 씁쓸함이 많이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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