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임 패러독스(프리 데스티네이션) 별 다섯개 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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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예술/영화리뷰

타임 패러독스(프리 데스티네이션) 별 다섯개 추천

by 깨알석사 2014. 12.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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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타임 패러독스

영화를 보면 처음에 이해하다가도 어느 순간부터 복잡해지기 시작한다. 이야기의 전개는 이해해도 머리속 다른 한쪽에서는 그 범위를 벗어나기 때문인데 이런 영화 좀 본다는 사람들은 뻔한 이야기다, 예상 가능하다. 반전이 약하다 등등 깨알같은 평론을 할 순 있지만 패러독스 자체가 모순을 의미하기 때문에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것을 한 번에 이해한다면 그건 천재다. 모순 자체를 푼 다는 것 자체가, 그리고 이 영화를 아주 쉽게 이해했다는 것 자체가 패러독스이며 모순이다.

결국 영화를 다 보고나서 몇가지 주어진 단서를 가지고 역으로 추척해 들어가야 하는데 원래 영화라는 것이 반전이 있거나 모순된 점을 부각시키려면 스토리 전개도 꼬와주어야 하는게 원칙이다. 동일한 내용을 가지고 다시 똑같은 영화를 만들었을 때 어떤 장면을 먼저 보여주고 장면의 순서를 어떻게 배열하고 편집하느냐에 따라 완전히 달라지기 때문이다. 이 영화는 주인공이 어떤 사람인지 무얼 하는 사람인지 설명없이 시작해 초반에 폭파범이 등장하고 주인공이 얼굴 화상을 입으면서 새 임무이자 마지막 임무에 재투입되는 장면으로 시작되는데 초반과 달리 중반은 술집에서 바텐더가 된 주인공과 여자인지 남자인지 알수 없는 묘령의 손님과 대화를 주고 받는 부분으로 중반까지 이어 나간다. 

상당히 오랫동안 이 술집 대화를 비중있게 다루는데 극 초반의 장면을 기억속에 담아둔 사람들은 무언가 연결고리가 있는가? 라는 호기심과 뉴스에 방영되는 폭파범 사건을 보면서 은연 중에 이 녀석이 그 폭파범이구나! 라는 착각과 혼란을 심어준다.

초반에 이미 결과가 예상되었다고 말하는 사람들은 똘끼 아니면 천재다. 중반까지 나오는 장면은 감독의 의도대로 이 영화를 보는 사람들이 엉뚱한 생각을 갖게 만들도록 편집되어 있기 때문이다. 어떤 연결고리도 없으며 서로 상반된 이야기가 짧은 시간안에 등장하기 때문이다. 마치 여러명의 주인공들이 각자의 이야기를 가지고 등장하면서 결국에는 마지막에 서로가 연결되고 영화가 끝나는 시나리오처럼 그런 뻔한 생각을 갖게 만들고 이 곱상하게 생긴 여자같은 남자가 폭파범일 것이라는 아주 쉬운 미끼를 관객에게 던져 주는 것이다. 앞전의 주인공 장면과는 판이하게 다른 느닷없이 바텐더가 된 주인공이 등장하면서 이것이 비밀임무인지 과거 회상인지 알 수도 없다.

이 때 묘령의 손님이 자신의 이야기는 최고의 이야기감이라고 하자 술 내기를 하게 되는데 영화를 본 사람이라면 알겠지만 최고의 이야기감은 확실하다. 이전의 폭파범, 주인공은 머리속에서 잊혀지고 이 손님이 들려주는 이야기에 우리 모두가 빠져 듣기 때문이다. 관객은 재미없는 과거의 회상일거라는 예상을 깨고 역시 손님의 말대로 영화속 그 손님의 과거 이야기에 몰입하고 빠져들게 된다.

이 영화를 보고 난 이후 다른 사람들이 작성한 평론들을 보니 비슷하면서도 조금씩 다른 해석들이 많았다. 공통적으로는 시간여행에서 오는 모순과 그 모순이 주는 또 다른 모순에서 오는 재미의 반감, 뻔한 결말과 뻔한 이야기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에 그 모순을 풀기 위해 또 다른 모순이 존재하는 것 자체가 모순이라는 재미의 요소, 뻔할 것 같으면서도 확연히 다른 전개 등을 언급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개인적으로 이 영화는 꽤 잘 만든 영화라고 말하고 싶다. 중간 중간 사람들이 놓치기 쉬운 곳에 단서를 주고 있으며 정답이 없는 결말을 만들어 냄으로 여러가지 답들이 존재하게 만들었다. 깨알도 닭과 알의 이야기를 언급한 적이 있다. 과학적으로나 학문적으로나 당연히 닭이 먼저다, 알은 닭에서 떨어져 나온 2차원이고 닭은 알에서 태어난게 아니라 알이 그대로 자라난 것이기 때문에 1차원 존재다, 닭과 알은 사실 언어유희의 예로서 말장난에 가깝다. 할아버지, 아버지, 아버지와 자녀, 어른과 아이, 성인과 아기로 말을 바꾸면 닭과 알 이야기와 똑같은 말인데 답이 여러개로 나눠지기 때문이다.

닭은 알을 낳고 낳은 알은 닭과 다른 존재이지만 그 알은 닭 자체이기 때문에 닭과 알은 사실 닭과 닭이 될 뿐이다. 닭과 닭에서 하나는 그대로 닭으로 두고 하나는 닭의 어린시절인 알로 바꾸어 놓으면서 모순을 유발하는 것이다. 이 영화에서도 닭과 알 이야기가 나온다. 자기 꼬리를 먹는 뱀 이야기도 나온다. 영화는 작은 공간으로 시작해 그 공간을 담고 있는 또 다른 공간을 보여주고 시간이 지나면서 그 공간을 담은 또 다른 공간, 또 다른 공간식으로 확장해 나간다. 여기서 한 템포라도 이해를 못하면 공간과 공간을 구별하지 못하고 영화 내용을 이해하기 어려워진다. 이 영화의 핵심은 가장 바깥공간에 있다. 이 바깥공간을 설명하기 위해서 그 바로 아래 공간을, 그리고 그 아래 공간을 설명한다면 이해하기 쉽지만 그 만큼 영화적 재미요소는 떨어진다. 연출자의 의도대로 중간 공간의 이야기 없이 바깥공간과 가장 안쪽의 작은 공간을 이어 보임으로서 관객들에게 무한한 혼란과 모순을 심어주어 영화의 몰입도를 높이는 것이다.

영화에서는 설명되지 않거나 설명하기 난해한 부분들이 꽤 많다. 그런 궁금증을 가진 사람들을 위해 지금부터는 다른 사람과 다른 관점에서 풀어보니 궁금했던 사람들은 참고해 보기 바란다. (어디까지나 나만의 착각에서 나온 해석들~)


1. 시간총국과 그 책임자는 모든 것을 알고 있었다, 주인공이 범인인 것과 타임머신 오류는 의도적이었다?

아니다. 타임머신이 오류가 난 것은 시간총국이 알지 못했다. 은퇴시점에서 장비는 무용지물이 되야 하는데 오류가 발생해 기능 정지가 되지 않았다. 영화의 요소 요소를 보면 책임자는 폭파범이 시간여행을 한 다는 것을 눈치채지 못했다. 정확히 말해 시간여행을 할 수 있는 사람은 시간총국 요원들과 일부(자신과 같은 책임자)만이 가능했기에 폭파범이 시간여행자라는 건 예상하지 못한 것이다. 만약 알았다면 너무나 쉽게 조치가 가능했을 것이고 이야기는 전혀 다르게 전개가 되었을 것이다. (배신한 요원과 요원을 쫒는 기관 등으로) 시간총국 책임자는 폭파범 때문에 기관이 발전했다라고 말했고 그말에 주인공은 테러리스트를 흠모하는 것 같다라는 말로 되 받아쳤다. 이것을 가지고 시간총국 발전을 위해 의도적으로 폭파범을 만들고 의도적으로 방치하며 타임머신 오류도 의도적으로 그랬을 거라는 것은 생각이 들었다면 영화를 처음부터 다시 봐야 한다.

누군가에 의해 조작된 만행이고 그것으로 자신의 인생에 오점을 남긴 주인공이라면 미래의 자신을 죽이는 것 보다 시간총국과 책임자를 처단하는 내용으로 영화가 바뀌었을 것이다. 자신이 잘못한게 아니라 그렇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결국 의도치 않는 오류로 인해 은퇴 이후 폭파범이 된 자신의 실수를 깨닫고 미래의 자신과 만나 잘잘못을 따지다 결국 자신이 저지른 실수를 만회하기 위해 과거의 주인공이 미래의 주인공을 처단하는 내용이 존재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영화에서는 폭파범이 시간여행자라는 생각을 관객은 물론 영화 속 주인공과 책임자, 기관들까지 하지 못했다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2. 우리가 본 영화 내용은 주인공의 마지막 임무와 그 직전의 임무 두 가지를 동시에 보여준 것이다.

마지막 임무는 주인공이 기관요원이 되기 위해 처음으로 돌아가 요원이 될 수 있도록 자신의 존재를 설계하는 것이고 직전의 임무는 자신이 실패한 유일한 임무였기 때문에 마지막 임무를 수행함과 동시에 별도로 자기 시간을 내어 시간여행을 통해서 직전 임무를 다시 완수하기 위해 시간여행을 하게 된다. 이 두 가지를 구분하지 못하면 혼란이 올 수 있지만 마지막 임무는 사실 직전의 실패 임무에서 새롭게 알게된 사실로 인해 마지막 임무에도 영향을 주게 됨으로 영화의 스토리가 완성되는 것이다. 

마지막 임무는 그리 어려운게 아니다. 두 개의 임무를 구분 지어 봐야 하는 것도 그런 이유다. 사실 마지막 임무만 수행했다면 영화처럼 되지 않는다. 주인공이 미련을 못 버리고 직전에 실패한 임무에 다시 불법으로 개입함으로서 의도치 않는 사실을 깨닫게 되고 결국 마지막 임무라는 것이 자기를 설계하는 것이기 때문에 불법 임무에서 얻게 된 정보가 결국에는 뫼비우스 띠처럼 이어져 직전에 실패한 임무, 그리고 자신 스스로와, 마지막으로 수행하는 임무가 모두 하나의 이야기가 되어 버리기 때문에 우리는 구분을 하고 보지만 주인공은 섞어서 보여주기 때문에 우리에게 혼란을 초래하는 것이다. 감독의 의도대로, 

3. 왜 존은 제인과 관계를 맺고 아이를 갖게 하는가? 아이의 아빠가 누구인지 그리고 제인이 누구인지 뻔히 알면서 왜 그런일이 가능했을까?

그것이 바로 마지막 임무이기 때문이다. 주인공이 자신의 과거로 돌아가 존이라는 자신과 마주하게 되면서 그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공감해주다가 결국 자신이 해야 할 일(그래서 자기 대신 자기 일을 부탁한다)이 무엇인지 보여주게 되고 그것을 본 존은 숙명이자 운명으로 받아들이게 된다. 이 자체가 바로 주인공의 마지막 임무에서 비롯된 임무수행의 결과이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애초에 그 일은 주인공이 바텐더로 등장하면서 부터 예견되었던 주인공의 임무 중 하나였던 것이다. 바로 존과 제인이 만나서 사랑을 하게 만들고 아이를 낳게 하는 것, 바로 자신이 요원이 되기 위한 재설계인 것이다. 시간여행이라는 것을 통해 시공간을 넘어 다니면서 특별한 임무를 수행한다는 것을 알게된 존은 자신이 왜 이렇게 살게 되고 과거에 왜 그런 일이 생겼는지에 대해 알았기 때문이다. 모든것이 지금의 존이 존재하기 위한 것이기 때문이다.

4. 영화의 혼동 그리고 혼란, 본격적인 이야기가 전개되는 시점은 바로 직전 임무에 재투입 되는 순간부터다.

원래 주인공은 마지막 임무만 수행하면 되는데 바로 전에 실패한 작전을 다시 완료하기 위해 불법으로 시간여행을 하게 된다. 여기가 사실 핵심이다. 영화에서는 굉장히 짧게 나오고 간단하게 처리했지만 이 과정이 영화의 대부분을 차지할 만큼의 분량이 별도로 존재했어야 할 정도로 중요 하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아주 소량으로 처리된 건 극적인 요소와 자질구레한 과정을 생략하기 위해서다. 굳이 다 보여주지 않고 간단하게 설명함으로 관객에게 쉽게 의미를 전달하려는 목적인데, 앞과 뒤에 어떤 일이 생기지만 그 중간과정을 생략하고 통으로 보여주지 않음으로서 관객들을 혼란에 빠트리는 것이다.

폭파범과 마주한 주인공은 불법으로 전 임무시간에 다시 개입하지만 같은 실패를 겪고 자책감에 빠진다. 그 때 입에 피를 묻힌체로 침대에 눕는 자신의 공간이 잠깐 등장한다. 녹음기 버튼을 누르고 녹음을 하는 그 장면은 영화 전개상 의미가 없어 보인다. (편집상 빠져도 상관없다는 뜻이다) 하지만 이 장면이 존재하는 이유가 바로 굉장히 중요하다. 고뇌하던 주인공을 보여주면서 마지막 임무와 두번씩이나 실패한 불법임무 때문에 힘들어 하던 주인공은 녹음기를 작동하고 대화를 시작하는데 창밖의 지역과 날씨를 언급하며 옷 장에서 두꺼운 코트와 모자를 쓴다. 정말 뜬금없이...

그건 바로 녹음기의 역활과 시간여행을 뜻하는 감독의 숨은 연출력이다. 물론 이후에도 녹음기는 매우 중요한 역활을 게속 한다. 이 장면이 인상적인 것은 바로 녹음이라는 것을 통해 계속된 실패를 수정하기 위해 불법으로 재투입을 계속함으로서 이 공간에 오는 과정이 중복되게 되는데 바로 미래의 자신에게 과거의 자신이 남기는 메세지이기 때문이다. 옷 장에 있는 코트는 과거의 자신이 남긴 메세지를 들은 또 다른 과거의 자신이 지금의 자신을 위해 준비해 둔 것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이런 수많은 과정을 통해 실패요소를 줄여간다는 것이다.

감독은 이 과정을 모두 생략했다. (감독이 정말 잘했다) 그 하나의 씬으로 주인공이 얼마큼의 불법 시간여행을 하는지 누구도 예상하지 못하게 만들면서도 생각보다 꽤 많은 불법여행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전해주었다. 얼굴 수술에서 나오는 의사가 의미심장하게 던진 그 말도 바로 이것과 연관되어 있는 것이다. "당신은 내가 알고 있는 사람중에 가장 많은 접속을 했다"라는 의사의 말이 괜히 등장한게 아니다. 결국 실패한 임무를 성공적으로 마무리하게 되는 것이고 마지막 임무에서 새롭게 시작하는 자기 자신에게 미래에 있을 문제(자기가 변절한 것)를 제거하여 원래대로 끝까지 실패 없이 요원 임무를 수행하게 만듬으로서 직전의 임무와 마지막 임무 모두를 완료한다는 것이 결말이다.


이외에도 양성인이라는 것 역시 풀기 쉬운 숙제다. 스페이스 쿱이라는 회사말고 시간총국 책임자가 맡고 있는 진짜 회사(바로 시간총국)가 제인에게 두 번 일종의 섭외가 들어오는데 스페이스 쿱은 양성인과 태도불량이라는 이유로, 시간총국은 임신이라는 이유로 퇴짜를 받는다, 시간총국은 과거, 현재, 미래, 가족이 존재하지 않는 나만 있어야 하기 때문에 임신은 퇴짜 대상이다. 책임자는 특별한 능력을 가진 능력자들을 찾는다고 자주 말했다. 관객은 그 특별한 능력이 무엇인지, 초능력인지, 시간여행을 할 수 있는 체력을 말하는 것인지 알지 못했지만 그 특별한 능력은 바로 양성을 뜻하는 것이다. 양성이라면 두 성을 분리해서 두 개의 존재를 기본으로 만들 수 있고 두 개의 존재를 통해 새로운 존재, 즉 아기를 만들 수 있기 때문인데 이것이 가능한 이유는 바로 시간여행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겉으로는 모순이지만 이론적으로는 모순이 안되는 것이다. 양성인만이 바로 시간여행자가 될 수 있는 조건이 되는 셈이다. 자기 자신을 과거로의 여행을 통해 가족 없이, 부모 없이도 탄생할 수 있도록 "세탁"할 수 있기 때문이다.

처음에 부모가 존재했다고 해도 시간여행의 시점을 맞춰서 자기 자신에게 자신이 다가가 결합을 하고 반복되는 시간여행을 통해 자기를 창출함으로 아무런 연고도 없는 독립적인 사람으로 새롭게 태어나는 것이다. 그것이 사실 시간여행자들의 마지막 임무고 우리는 그 과정을 영화로 본 것이다. 양성인이 아닌 경우라면 이런게 가능하다. 내가 과거로 날아가 엄마를 만나 결혼을 하고 아기를 낳으면 그 아기는 바로 나다. 그 아기와 지금의 나(내가 과거로 가기전의 아버지가 존재했기에)와는 다르다고 해도 시간여행의 세탁과정을 통해 해결이 가능하다. 지금의 내가 과거의 엄마와 만나 출산한 아기, 그 아기가 시간총국의 요원으로 들어가면 되고 그 아기가 다시 시간여행을 통해 엄마와 만나면 결국 아버지와 아기는 동일하게 바뀌기 때문이다. 아버지라는 별도의 존재가 있던 나와 달리 이렇게 만들어진 아기의 아버지는 시간여행자, 존재하지 않는 인물로서 아버지가 될 수 있다. 시간총국 입장에서는 처음의 시간여행자는 포기하고 시간여행자로 인해 분화한 그 여행자의 아기를 시간여행자로 선택하면 해결되는 문제다. 하지만 문제는 바로 엄마(또는 아내)라는 존재가 과거, 현재, 미래에 존재하게 되어 시간여행자로서의 자격이 없게 된다. 연고와 가족이 없는 독립된 사람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양성인만이 가능한 이유가 그 이유다. 시간여행을 통해 성별까지 바꿀 수 있다면 내가 남자일 때 내가 여자로 접근해 나를 만들 수 있는, 모순되지만 모순되지 않는 세상 어디에도 연고가 없는 독립적인 사람 만드는게 가능하다.

결국 특별한 능력은 양성인을 말하는 것이고 소수의 양성인들은 시간여행자로서 범죄와 싸우게 되는 것이다. 영화에서는 주인공이 자기 말고 시간여행자가 더 있다고 언급을 한다. 모두 같은 과정을 겪었을 것이다. 이 주인공이 다른 시간여행자와 다른 것은 바로 주인공 스스로가 마지막 임무과정과 유일하게 실패한 임무에서 자기가 연관되어 있기 때문에 이야기거리가 되는 것이다.

시간총국에서는 유일하게 실수한 것이 폭파범의 정체와 그의 능력을 간과했다는 것이다. 시간여행을 할 것이라고 예상했다면 다른 방법으로 얼마든지 잡을 수 있었지만 그것을 간과했기에 시간여행을 통해서도 그 동안 잡지 못했던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시간여행자 중 한 사람이 범인이라고 예상치 못했다는 것도 유추할 수 있다. 문제가 되는 시간여행자의 미래나 과거를 통해 언제든지 제압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주인공이 미래의 자신을 총으로 쏘는 장면도 혼란이 많은 부분이다. 미래의 자신을 만나기 위해서는 미래로 가야 하지만 주인공은 미래로 가지 않았기 때문이다. 미래에 가지 않았는데 노쇠한 자신이 등장했다는 건, 그 자도 시간여행을 하고 있다는 뜻이 된다. 그리고 시간총국에 자신이 전해준 단서(폭파타이머 부속품)에서 알게 된 정보로 자신의 또 다른 자신과 마주하면서 왜 그런 일을 하는지 알게 되는데, 이 부분도 꽤 중요하다.

왜 그런짓을 하는지 이유를 몰랐다면, 또는 모르는 상황에서 그냥 죽였다면 분명 주인공은 미래의 자신처럼 폭파범이 되는 되풀이가 반복되었을 것이다. 관객들도 이 시점에서는 총으로 쏴서 죽인다고 해도 너는 결국 그럴 것이다라고 생각하게 되지만 그게 아니라는게 중요하다. 주인공이 사실을 몰랐다면 그대로 자연스럽게 은퇴시점에서 타임머신 오류로 인해 자신만의 올바른 일(범죄를 막기 위해 또 다른 범죄를 저지르는 일)이라고 생각한 것을 결국에는 그대로 했을지 모르지만 미래의 자신에게 이미 왜 그랬고 그래야만 했는지 충분히 들었기 때문에 자신감 있게 나는 절대 그렇게 하지 않을 것이다라고 말 하면서 여러번의 총을 쏴대며 자기를 죽인 것이다. 결국 미래의 나와 단절하고 새로운 미래를 창조하겠다는 것이 된다. 그 과정에서 미래의 나는 분명히 존재했고 시간여행을 다녔기 때문에 마지막 임무를 통해 새로 출발하는 존에게 녹음기를 남기며 메세지를 전해주는 것으로 영화가 끝나게 되는 것이다. 마지막 임무를 수행한 나는 최선을 다해 풀지 못한 임무를 수행하고 미래를 바꾸었지만 미래의 내가 남겼을지도 모르는 것들로 인해 내가 다시 그렇게 될 수 있다는 경고를 남김으로서 싹을 자르는 것이다.

패러독스 자체가 난제다. 당신의 임무는 임무를 실패하는 것 입니다라는 말과 같다. 당신의 임무는 실패하는 것이 임무이기 때문에 실패를 하면 임무를 성공한 것이 되고 실패를 하지 않고 성공을 하면 임무를 실패하는 모순이 생긴다. 나는 거짓말쟁이야 라고 했을 때 그게 맞는 말이면 거짓말이기 때문에 그 말 자체가 거짓말이 되어서 거짓말쟁이가 아니게 된다. 반대로 틀린 말이라면 거짓말쟁이가 아니기 때문에 모순이 생겨 어떤 경우에도 이치에 맞지 않는다. 영화에서 등장하는 이런 모순의 관계는 하나하나 나눠서 보면 모순 덩어리라서 풀기 어렵다, 큰 공간과 개별적인 공간으로 나눠서 보아야 한다. 이 영화의 제목이 타임 패러독스인 이유도 바로 이것 때문이다. 

모순 덩어리로 얼룩지어진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모순을 담기 위해서는 모순이 아닌 참과 거짓이 구분되야 한다. 영화를 전체적으로 보면 모든 이야기는 꽤 단순하다. 범죄와 싸우는 시간여행자가 마지막 임무라는 것을 수행하고 은퇴하는데 그 임무는 자신을 양성인 과정에서 신분을 세탁하고 정체성을 찾아주어 요원으로서 만드는 재설계 과정이라는 것이다. 다만 이 영화는 그 시간여행자 중 한 사람이 희대의 범인과 겹쳐지면서 그 범인과 싸우는 장면과 마지막 임무과정이 합쳐져 나올 뿐인데, 합쳐진 상태에서 역설(모순)적으로 범인과 싸우는 부분은 대부분 일부로 보여주지 않음으로서 모순을 한번 더 꼬게 만들어 착각의 늪에 관객을 빠지게 만든 것이라는 게 포인트다.

거기에 시간총국이 의도적으로 이런 판을 조성했을지도 모른다는 장치를 보여줌으로 시간여행을 총괄하는 시간총국이 얼마큼 개입하고 알고 있는지 연상토록 하여 미궁에 더 빠지도록 만든 것이다. 하지만 줄거리 상으로는 의도가 아닌 실수에 따른 과정으로 풀이가 되기 때문에 이 역시 영화 전개상 맥락의 모순이 발생하면서 관객을 흔들어 놓는 것이다. 앞뒤 사정을 이해하고 있다면 그런 장치에 속지는 않겠지만 속게 만들어 놨다. 개인적으로는 최근에 본 영화 중 가장 잘 만든 영화가 아닌가 싶다. 이 영화를 보고 헷갈리면서도 뭔가 알 것도 알고 모를 것 같지만 재미있게 봤다면 그것은 무조건 뚫리지 않는 방패와 무조건 뚫어버리는 창에 대한 이야기를 영화로 만든 것과 같기 때문이다. 이 말도 안되는 창과 방패의 모순 이야기를 다루었으니 얼마나 모순이고 그 모순을 푸는 과정은 얼마나 재미있겠는가? 물론 이 모순은 당연히 모순으로 끝나야 하는것도 모순이 갖는 매력이다. 모순을  풀면 또 다른 모순이 생기기 때문이기도 하다.  별 다섯개 추천~ 10점 만점에 10점, 수우미양가에서 수로 평가한다.


마지막으로 이 모든것의 시작이자 마지막은 주인공이 또 다른 주인공에게 한 대사에 담겨져 있다. "만약, 시간을 거슬러 당신의 인생을  망친 사람을  아무런 제약없이 죽일 수 있다고 보장해준다면 당신은 그를 없앨 수 있겠는가?" 일반적인 의미라면 "네"라고 하겠지만 당신의 인생을 망친 사람이 바로 당신이라는 걸 알게 되면 이야기가 전혀 달라진다. 그럼에도 "네"라고 한다면 새로운 미래, 새로운 인생이 시작될 수 있다. 그런 대사를 친다는 것 자체가 존은 "네"를 의식하고 있다는 것이고 그럴 것이다라는 뜻이 된다. 그러기 위해서는 과거의 자신도 같은 생각을 가져야 한다. 이 대사 역시 돌고 돈다. 제인에게는 이런 일이 생기게 만든 존이 자신이자 인생을 망친 장본인으로, 존에게는 미래의 자기 자신이 자신을 망친 사람이 된다. 두 사건이 별개라고 설명했듯이 이 대사도 두 사건에 모두 똑같이 대입이 가능하다.

자신의 정체성을 혼란시키고 아름다운 인생을 송두리째 망가트린 존은 제인에게 "만약, 시간을 거슬러 당신의 인생을  망친 사람을  아무런 제약없이 죽일 수 있다고 보장해준다면 당신은 그를 없앨 수 있겠는가?" 라는 물음에 결국엔 "네"가 아닌 "아니오"가 나올 수 밖에 없는 상황을 풀어 쓴 스토리고 

또 다른 사건, 범죄자가 된 자기 자신과의 대립에서는 "만약, 시간을 거슬러 당신의 인생을  망친 사람을  아무런 제약없이 죽일 수 있다고 보장해준다면 당신은 그를 없앨 수 있겠는가?"라는 물음에 반대로 "예"를 선택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을 만들어 아니오를 선택한 제인은 존이 되는 것이고 네를 선택한 존은 새로운 미래를 만들 수 있게 된 것이다. 범죄자가 아닌 새로운 인생을 살 그 미래에 대한 새로운 자신에 대한 답은 제인에게 맡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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